해양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을 수상하며 무섭게 떠오른 늦깎이 신예 소설가 김득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아디오스 아툰」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2014년 단편 「나홋카의 안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득진 소설가는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등단 후 짧은 시간 안에 그만의 특유한 스타일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험 가입, 도시재개발 사업, 기업 운영, 참치 어획 등 현실과 밀착된 소재를 통해 도시인의 불안을 그린 『아디오스 아툰』. 소설집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인간의 실존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삶을 버텨내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

아디오스 아툰





부표처럼 떠도는 뱃사람들의 인생사

나의 지나온 삶을 지레짐작하고서 곁눈질로 지켜봐주는 선장의 존재는 아버지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불빛도, 사람의 기척도 없이 스스로의 밝음으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배 위에서의 삶은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판과도 같았다. (…) 불빛이 사라진 뒤면 파도 소리만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절대 고독의 세상으로 배와 내가 한 몸이 된 채 스며들었다. 몸을 스쳐가는 무풍지대의 적막은 되돌아온 편지만큼이나 허허로웠다. 그럴 때면 바다와 싸워서도 결코 지는 법이 없었던 선장의 고함 소리가 기관실까지 들려왔다. _「아디오스 아툰」, 156-157쪽.

표제작 「아디오스 아툰」은 참치잡이 선단의 기관장으로 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담긴 정통 해양소설이다. 젊은 시절, 함께 결혼을 맹세했던 여자가 자신을 배신하고 미국으로 떠난 것에 분노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선상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 모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연 많은 안타까운 이들이다. 특히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와 아내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선원이 된 마이클과, 망망한 바닷가에서 조난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선원생활을 함께한 톰이 ‘나’는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이제 주인공은 구식의 참치조업 방식을 그만두고 최신식의 원양어선을 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과거 원양어선을 타며 겪었던 선상생활이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최신식 선박에 잡혀 죽어가는 참치에게 작별을 고한다.


불안의 현실을 메우는 노동의 자리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서술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포장 없이 그려내고 있는 게 이번 소설집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연극적 요소와 몽환적인 작품 분위기를 통해 작품집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기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소설 「어떤 각본」은 의사소통의 힘겨움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 인간 군상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이한 화법을 가진 친구의 아내 p에게 차용증서를 받아내려고 하는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까지의 일화를 통해 서로의 말과 말이 어긋나는 데 있어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떤 각본」 中

한편, 불안한 현실을 살고 있는 도시인의 삶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보험을 갈아타다」는 주목할 만하다. 남편의 월급과 아들의 그럴듯한 직장을 두고 보험이라고 표현하는 ‘나’. 그런 주인공에게 보험설계사 친구 N의 보험상품 가입 권유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현대인의 경제적 불안을 ‘보험’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발명품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고용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또한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일로를 고치다」에서는 기계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 소외되고 있는 인간의 노동여건에 주목한다. 비닐시트 생산 공장에 근무하는 ‘나’는 동료 ‘ㅊ’과 25층 높이의 고층에서 기계를 고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과잉업무에 지친 ‘ㅊ’에게 회사는 납품기일에 맞춰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도록 무리하게 요구하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묵묵히 일과를 마무리하다 추락사한 동료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리며, 작가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보험을 갈아타다」 中

표제작과 마찬가지로 해양소설 작품인 「나홋카의 안개」 또한 건설현장의 일용직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고용을 전전하던 주인공이 러시아 기지에 있는 수산회사의 육상 근무자 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고려인 여성의 아픈 역사와 함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고려인 후손의 삶을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집」은 폭력에 관한 소설이다. 도시 재개발로 강제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네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자 주인공은 예의주시한다.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아픈 가족사 때문인데,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며 현실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유년 시절의 아픈 가족사와 현재의 범죄적 상황이 잘 연결된 소설로서 한 가지 불행의 은폐가 곧 또 다른 범죄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작품이다.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지음 | 문학 | 국판 | 212쪽 | 13,000원

2015년 12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27-7 03810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아디오스 아툰'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김득진의 첫 소설집. 2014년 단편 '나홋카의 안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득진은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등단 후 짧은 시간 안에 그만의 특유한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보험 가입, 도시재개발 사업, 기업 운영, 참치 어획 등 현실과 밀착된 소재를 통해 도시인의 불안을 그린 '아디오스 아툰'. 소설집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인간의 실존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 : 김득진

2014년 <동양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홋카의 안개」로 등단하였다. 중편소설 「아디오스 아툰」으로 2014년도 해양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고, 「떠돌이 개」로 2015년도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커피를 훔친 시』를 내었다.


차례



아디오스 아툰 - 10점
김득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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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6.01.14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췌해주신 부분이 참 좋네요!

  2. BlogIcon 콩콩콩 2016.01.14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널리 사랑받는 소설이길 바랍니다.

  3. BlogIcon 솟대 2016.01.14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짧은 시간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에
    경의를 밤낮 몰두하신 열정에 박수를^*^


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지은이:



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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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5.10.22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나왔네요^^!

산지니시인선 011


은근히 즐거운

표성배 시집




속화된 자본의 시간을 견뎌내고 얻은

시인의 ‘쇳밥’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성배 시인이 『기계라도 따뜻하게』(문학의전당, 2013) 이후 2년 만에 새 시집 『은근히 즐거운』을 내었다. 이번 시집은 자연이 선물하는 계절의 바뀜에 대한 서정성과 더불어 전투적인 노동시가 아닌, 자본주의의 속화된 시간을 자연사물에 빗댄 시어들로 가득하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시 속에는 사람살이의 따스한 시선”(이월춘 시인)이 느껴지는 표성배 시인의 목소리에는 노동자의 고단한 삶의 풍경들을 “은근히 즐거운” 일상으로 바꾸는 기쁨과 소박한 아름다움의 행보가 담겨 있다. “일상의 숨겨진 진실을 맛보는 즐거움이 잘 드러”(정훈 문학평론가)나는 표성배의 시들은 시간의 편린이 응축된 삶의 각성들을 담았다. 세상의 모든 관계들을 “헐렁했으면 좋겠다”고 성찰하는 시인의 자각과 성찰이, 생활인의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대인의 ‘의지’로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컨테이너 사무실 유리창을 바라보며

사람살이의 따스함, 그 온기를 느끼다

이번 시집의 3부와 4부는 실제 현장노동자로서 근무하고 있는 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표제작인 「은근히 즐거운」에서는 라면을 끓이는 사소한 행위가 시인에게 주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노동을 하는 생활인으로서 휴일이 갖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시인에게 ‘일요일’이 가져다주는 시상은 “라면을 끓여서 (…) 회취를 하고 싶은”(「은근히 즐거운」) 욕망을 갖게 한다. 개인의 사적 공간이 인간 사이의 관계와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열다섯 살 처음 공장에 출근했던 내 모습을 떠올”(「체 게바라를 읽는 밤」)리기도 하고, “컨테이너 사무실 유리창에서 바라보는/ 비 내리는 야외 작업장”(「트랜스포터」)에서 운반용 기기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살펴봤더니/ 어라!/ 나보다 먼저 일할 준비를 끝”(「새 기계」)낸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제복을 칼같이 차려입은 용역들”(「정리해고」)을 앞세우고 도착한 정리해고 소식에 관해서 초연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시인은 일상과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따뜻한 봄 햇살 같은 긍정성을 잃지 않는다. 


나는 월요일부터 화요일을 지나 점점 다가오는 일요일이 즐겁다


일단 일요일에는 좀 늘어지게 방바닥에 배를 깔고 등을 붙이고 있다 보면 아침은 슬쩍 건너뛰고 그로부터 내 즐거움은 슬슬 시작되는데


생각만 하면 월요일부터 입가에 웃음이 침처럼 흘러내리는데 아이들도 아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바로 라면을 끓이는 일인데


(…)


내 월요일은 지난 일요일과 다가오는 일요일 사이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라면을 끓여서는 윗집 아랫집 아재 아지매 할 것 없이 소리쳐 불러서는 회취를 하고 싶은데


라면가락이 좀 퉁퉁 불더라도 누구라도 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일인데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 되면 하느님이라도 불러보는 일인데

- 「은근히 즐거운」 부분




바쁜 일상의 한가운데, 속박을 거부한 채

자신을 놓아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인간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노동’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 볼 수 있다. 일터에서 일을 하고(기계를 돌려 쇠를 깎다가 그만/ 망치를 내리쳐 굽은 쇠를 펴다가 그만-「그만 병문안 가자」 부분),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고(티브이에서는 프로야구가 한창이다/ 야구장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가 조마조마해서 그런가 -「고마 뭐 쫌이라는 놈」 부분), 주말에는 밀양 얼음골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사과가 익기 전에 모범운전수처럼 달려가서는 가뿐하게 달려가서는 얼음지기가 있나 없나 살살 살펴보고는 얼음을 양손 가득 떼어내어 화아─ 하고 불어보는 거야 -「얼음골」 부분) 한다. 그러나 생활인의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시민의 모습을 이어나가며 자본주의 톱니바퀴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구차한 생의 형식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솔직함을 드러낸다.


멍에처럼 짊어진 노동의 무게


무거워 무거워서 어찌어찌 끌고 갈 수 없다면


툭 끊어 버리자


그림자라도 끊어 버리자


딱 하루만이라도 끊어 버리자

- 「월차휴가」 부분



자연과 자본주의의 시간을 관조하는

시인의 상념이 빛을 발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가사 중)를 불렀던 과거 산업화 시대 공장노동자의 이야기처럼, 노동자인 시인에게도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즐거움과 별개로 자본과 노동의 사회 시스템 속에 종속된 채 다가온다. 스스로 “쇳밥을 너무 먹어 온몸이 딱딱 쇳소리를”(「탓」) 낸다고 고뇌하는 시인의 현실적인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인은 ‘쇳밥’처럼 딱딱해져버린 자신의 언어를 반성한다. “옥상에 망루를 짓고 십자가를 진 세입자들이나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며 노구(老軀)를 던지는 주민들이나 쫓겨난 일터로 돌아가고자 신발 끈을 묶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달빛과 달맞이꽃 사이처럼 그런 아침과 저녁을 맞으면 좋겠다”(「헐렁했으면 좋겠다」)며 시인은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딱딱한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보듬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자신의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지”(「시인의 말」) 물으며 오늘도 하루하루 세상의 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노랗게 물드는 가을 들판처럼 내 말은 풍성하지 못하구나


입으로는 가을가을 하는데 겨울겨울 하고 서릿발이 솟구나


아무래도 탓은 쇳밥 탓이구나


그래도 가을이구나


가을이구나 하고 가을이구나

- 「탓」 부분



은근히 즐거운 | 산지니시인선 011

표성배 지음 | 문학 | 46판 양장 | 164쪽 | 11,000원

2015년 4월 20일 출간 | ISBN : 978-89-6545-288-1 03810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성배 시인이 <기계라도 따뜻하게> 이후 2년 만에 출간한 시집. 이번 시집은 자연이 선물하는 계절의 바뀜에 대한 서정성과 더불어 전투적인 노동시가 아닌, 자본주의의 속화된 시간을 자연사물에 빗댄 시어들로 가득하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시 속에는 사람살이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표성배 시인의 목소리에는 노동자의 고단한 삶의 풍경들을 "은근히 즐거운" 일상으로 바꾸는 기쁨과 소박한 아름다움의 행보가 담겨 있다. 




글쓴이 : 표성배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공장은 안녕하다』, 『기찬 날』, 『기계라도 따뜻하게』 등이 있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차례



은근히 즐거운 - 10점
표성배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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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5.04.28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산지니시인선 두 번째 책이네요.
    나뭇잎 속에 묻혀 있는 시집의 자태를 보니
    마구 즐거워지는데요. 제작담당자로 뿌듯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