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시인선 011


은근히 즐거운

표성배 시집




속화된 자본의 시간을 견뎌내고 얻은

시인의 ‘쇳밥’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성배 시인이 『기계라도 따뜻하게』(문학의전당, 2013) 이후 2년 만에 새 시집 『은근히 즐거운』을 내었다. 이번 시집은 자연이 선물하는 계절의 바뀜에 대한 서정성과 더불어 전투적인 노동시가 아닌, 자본주의의 속화된 시간을 자연사물에 빗댄 시어들로 가득하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시 속에는 사람살이의 따스한 시선”(이월춘 시인)이 느껴지는 표성배 시인의 목소리에는 노동자의 고단한 삶의 풍경들을 “은근히 즐거운” 일상으로 바꾸는 기쁨과 소박한 아름다움의 행보가 담겨 있다. “일상의 숨겨진 진실을 맛보는 즐거움이 잘 드러”(정훈 문학평론가)나는 표성배의 시들은 시간의 편린이 응축된 삶의 각성들을 담았다. 세상의 모든 관계들을 “헐렁했으면 좋겠다”고 성찰하는 시인의 자각과 성찰이, 생활인의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대인의 ‘의지’로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컨테이너 사무실 유리창을 바라보며

사람살이의 따스함, 그 온기를 느끼다

이번 시집의 3부와 4부는 실제 현장노동자로서 근무하고 있는 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표제작인 「은근히 즐거운」에서는 라면을 끓이는 사소한 행위가 시인에게 주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노동을 하는 생활인으로서 휴일이 갖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시인에게 ‘일요일’이 가져다주는 시상은 “라면을 끓여서 (…) 회취를 하고 싶은”(「은근히 즐거운」) 욕망을 갖게 한다. 개인의 사적 공간이 인간 사이의 관계와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열다섯 살 처음 공장에 출근했던 내 모습을 떠올”(「체 게바라를 읽는 밤」)리기도 하고, “컨테이너 사무실 유리창에서 바라보는/ 비 내리는 야외 작업장”(「트랜스포터」)에서 운반용 기기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살펴봤더니/ 어라!/ 나보다 먼저 일할 준비를 끝”(「새 기계」)낸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제복을 칼같이 차려입은 용역들”(「정리해고」)을 앞세우고 도착한 정리해고 소식에 관해서 초연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시인은 일상과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따뜻한 봄 햇살 같은 긍정성을 잃지 않는다. 


나는 월요일부터 화요일을 지나 점점 다가오는 일요일이 즐겁다


일단 일요일에는 좀 늘어지게 방바닥에 배를 깔고 등을 붙이고 있다 보면 아침은 슬쩍 건너뛰고 그로부터 내 즐거움은 슬슬 시작되는데


생각만 하면 월요일부터 입가에 웃음이 침처럼 흘러내리는데 아이들도 아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바로 라면을 끓이는 일인데


(…)


내 월요일은 지난 일요일과 다가오는 일요일 사이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라면을 끓여서는 윗집 아랫집 아재 아지매 할 것 없이 소리쳐 불러서는 회취를 하고 싶은데


라면가락이 좀 퉁퉁 불더라도 누구라도 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일인데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 되면 하느님이라도 불러보는 일인데

- 「은근히 즐거운」 부분




바쁜 일상의 한가운데, 속박을 거부한 채

자신을 놓아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인간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노동’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 볼 수 있다. 일터에서 일을 하고(기계를 돌려 쇠를 깎다가 그만/ 망치를 내리쳐 굽은 쇠를 펴다가 그만-「그만 병문안 가자」 부분),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고(티브이에서는 프로야구가 한창이다/ 야구장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가 조마조마해서 그런가 -「고마 뭐 쫌이라는 놈」 부분), 주말에는 밀양 얼음골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사과가 익기 전에 모범운전수처럼 달려가서는 가뿐하게 달려가서는 얼음지기가 있나 없나 살살 살펴보고는 얼음을 양손 가득 떼어내어 화아─ 하고 불어보는 거야 -「얼음골」 부분) 한다. 그러나 생활인의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시민의 모습을 이어나가며 자본주의 톱니바퀴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구차한 생의 형식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솔직함을 드러낸다.


멍에처럼 짊어진 노동의 무게


무거워 무거워서 어찌어찌 끌고 갈 수 없다면


툭 끊어 버리자


그림자라도 끊어 버리자


딱 하루만이라도 끊어 버리자

- 「월차휴가」 부분



자연과 자본주의의 시간을 관조하는

시인의 상념이 빛을 발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가사 중)를 불렀던 과거 산업화 시대 공장노동자의 이야기처럼, 노동자인 시인에게도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즐거움과 별개로 자본과 노동의 사회 시스템 속에 종속된 채 다가온다. 스스로 “쇳밥을 너무 먹어 온몸이 딱딱 쇳소리를”(「탓」) 낸다고 고뇌하는 시인의 현실적인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인은 ‘쇳밥’처럼 딱딱해져버린 자신의 언어를 반성한다. “옥상에 망루를 짓고 십자가를 진 세입자들이나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며 노구(老軀)를 던지는 주민들이나 쫓겨난 일터로 돌아가고자 신발 끈을 묶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달빛과 달맞이꽃 사이처럼 그런 아침과 저녁을 맞으면 좋겠다”(「헐렁했으면 좋겠다」)며 시인은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딱딱한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보듬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자신의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지”(「시인의 말」) 물으며 오늘도 하루하루 세상의 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노랗게 물드는 가을 들판처럼 내 말은 풍성하지 못하구나


입으로는 가을가을 하는데 겨울겨울 하고 서릿발이 솟구나


아무래도 탓은 쇳밥 탓이구나


그래도 가을이구나


가을이구나 하고 가을이구나

- 「탓」 부분



은근히 즐거운 | 산지니시인선 011

표성배 지음 | 문학 | 46판 양장 | 164쪽 | 11,000원

2015년 4월 20일 출간 | ISBN : 978-89-6545-288-1 03810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표성배 시인이 <기계라도 따뜻하게> 이후 2년 만에 출간한 시집. 이번 시집은 자연이 선물하는 계절의 바뀜에 대한 서정성과 더불어 전투적인 노동시가 아닌, 자본주의의 속화된 시간을 자연사물에 빗댄 시어들로 가득하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시 속에는 사람살이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표성배 시인의 목소리에는 노동자의 고단한 삶의 풍경들을 "은근히 즐거운" 일상으로 바꾸는 기쁨과 소박한 아름다움의 행보가 담겨 있다. 




글쓴이 : 표성배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공장은 안녕하다』, 『기찬 날』, 『기계라도 따뜻하게』 등이 있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차례



은근히 즐거운 - 10점
표성배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 평론선·11


비인칭적인 것

고봉준 평론집




고봉준의 네 번째 평론집 『비인칭적인 것』은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의 최근 시대적 변화에 개입하여 주체, 문학과 정치, 민주주의, 주권, 노동시 등의 문제들을 직접 마주하고자 한다. 고봉준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 백무산론」으로 등단한 이래 문학평론가로서 우리 시대 문학의 지형도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비평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이다.

책은 총 4부에 걸쳐 26편의 비평을 실었다. 먼저 1부에서는 사회 흐름에 따른 시 비평의 양상과 민주주의라는 키워드 속에 정치와 시의 관계를 논하였다. 2부에서는 담론 중심의 논의를 통해 시의 세계를 규명하고, 세 편의 소설 작품을 분석하며 ‘악령의 도시’를 드러내고자 한다. 3부에서는 2000년대의 문학을 언급하며 이러한 문학이 우리 삶을 어떻게 투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4부에서는 우리가 노동시라고 불렀던 것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우리가 진정으로 의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사유한다. 이 책은 다양한 학문적 담론을 차용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작품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사상과 감성의 지형을 포착한다.


주체의 전유물이 아닌 언어와 목소리

특정한 인칭에 속하지 않은 세계



최근의 한국문학에는 ‘주체’와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의 발화법, ‘주체’의 전유물이 아닌 언어와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비(非)인칭적인 느낌’이라고 칭했다. 문학의 창조성은 사고와 감각의 지도를 바꾸는 일에서 비롯된다. 문학에서 ‘새로움’이란 이 일에 부여된 가치평가이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세계를 보고 느끼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학에서 새로움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감각,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다. 어쩌면 문학 자체가 타자로의 생성 변화를 받아들여 자신을 바꾸는 일, 지켜야 할 견고한 ‘나’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은 아닐까. 

_「평론집을 내면서」, 5쪽.


비인칭은 ‘없음’이다. 이 없음이라는 것은 주체도, 대상도 없음을 말한다. 저자는 ‘나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도, ‘우리’도 아닌 다른 방식의 상태를 그려내고자 한다. 이 비인칭적인 목소리의 발현으로 시는 규정된 무엇인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인칭과 소유격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익숙한 세계로 인하여 아무런 죄의식 없이 폭력으로 이끌려 간다. 저자는 『비인칭』을 통하여 없음을 그려내고, 최근 문단의 흐름 안에 내포되어 있는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며 실험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이것이 시인가? 그렇다, 이것도 시다

_박준, 「세상 끝 등대 2」전문, 119쪽.  


토건을 앞세운 개발 문제, 촛불 집회 등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우리는 민주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대중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민주주의는 변화가 필요하며, ‘해방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연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정치의 형태가 아닌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변하는 소용돌이의 중심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무엇이 나의 자아인지 명확히 판별할 수 없다. 2000년대의 젊은 시는 이 세계에서 더 이상 ‘나’가 독백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타자’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여기에서, ‘시’와 ‘시 아닌 것’의 구분 또한 할 수 없다. 낭만주의-사실주의-모더니즘으로 연결된 시의 ‘이름’. 당시 이 이름을 벗어난 시들은 시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고, 예외의 범주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는 이제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잠재성의 새로운 차원을 개방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례를 통하여 이러한 경계선을 지우는 작업에 돌입한다. 


현대 문학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저자는 2000년대부터 2014년 최근까지 출간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으로 하여 지옥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2부에서는 ‘악령의 도시’라는 주제로 세 편의 소설과 함께 자본주의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린다. 3부에서는 심윤경의 소설과 더불어 다양한 작가들의 시세계를 바라본다. 3부를 여는 작품으로 곽은영의 『불한당들의 모험』이 언급되는데, 곽은영의 시에서는 소녀가 끝없이 방랑하고 여행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작품을 포함하여 사회의 얼굴을 여실히 드러내는 최근 문학을 조명하고, 우리를 억누르는 지배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 어두운 그림자를 밝혀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작가론을 통하여 현대 문학의 발자취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끊임없이 의심하라



‘노동시’라는 오래된 이름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노동시인 것, 아닌 것의 구별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모든 장소는 노동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일터라 규정된 공간을 떠나 사생활의 공간에서도 노동이 이루어지고, 착취당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저자는 ‘이제는 노동시로 규정되어 있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라며 노동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한다.

저자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예외’, ‘폭력’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사회 속에서 폭력은 실제적인 폭력의 행위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폭력은 더욱 치밀하게, 더욱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더 이상 남의 말이 아니다. 이미 ‘예외’와 ‘정상’을 구분할 수 없는 지점으로 들어간 지금, 정의가 무엇인지 또한 구별하기 쉽지 않다. 바로 옆에 폭력이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쉽사리 눈치채기 어렵다. 저자가 말하는 문학의 본질은 정의 실현이며,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질서와 믿음을 해체하여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경’을 넘는 일과 ‘이방인’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정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을 동등한 우리의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들의 문화와 신념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 공적인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그들에게 동등한 발언권과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가, 지난날의 ‘정의’는 지금 이 어려운 물음들에 직면해 있다.

 _4부 「약속, 빚, 정의(justice)」, 429쪽.





저자 : 고봉준

1970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 : 백무산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고,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활동하면서 지식과 삶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을 출간했고, 첫 평론집으로 제12회 고석규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포지션』, 『딩아돌하』, 『문학선』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인칭적인 것』산지니평론선 11

고봉준 지음 | 비평 | 신국판 | 437쪽 | 25,000원

2014년 12월 8일 출간 | ISBN : 978-89-6545-273-7 03810

고봉준의 네 번째 평론집으로,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의 최근 시대적 변화에 개입하여 주체, 문학과 정치, 민주주의, 주권, 노동시 등의 문제들을 직접 마주하고자 한다. 고봉준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 백무산론'으로 등단한 이래 문학평론가로서 우리 시대 문학의 지형도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비평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차례




비인칭적인 것 - 10점
고봉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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