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풍부한 자료로 생생히 그린 마르크스의 마지막 2년

정선양

280호 | 2019-03-27 |

 

기존 마르크스 전기들에서 그의 말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가 말년에는 정치 활동을 거의 중단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은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투쟁을 다뤘다. 저자 마르셀로 무스토는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사회학과 부교수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기초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여러 책과 마르크스의 서신, 노트 필기 등을 종합해 마르크스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 문혜림 옮김 | 산지니 | 2018년 | 235쪽 | 20000원

 

마르크스는 이미 1880년 여름 의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일도 삼가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계를 회복시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그의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암으로 고통받았고, 마르크스는 자신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1881년 말에 먼저 세상을 뜬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 호기심과 이론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류학과 수학을 탐구했는데, 인류학 연구는 《민속학 노트》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여성 차별의 기원, 국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다른 인류학 보고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다. 《민속학 노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는 기초가 된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며 러시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무스토의 책에서는 특히 러시아 농촌 공동체(옵시나)와 관련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혁명적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는 해체돼야 할 운명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는 1882년에 러시아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의 러시아적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시작점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마르크스가 스탈린주의 식의 기계적인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진정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전망했던 것이다.

 

오해 걷어내기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례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건강을 위해 요양했던 알제리에서의 경험만 봐도 그런 주장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알제리에서 쓴 편지들에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만, 유럽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대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표현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을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에 대한 곡해는 더욱 발전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을 걷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언론인 존 스윈튼이 말년의 마르크스를 인터뷰한 내용은 유명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존재의 근본 법칙에 관해”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투쟁이죠!” 

마르크스는 기력이 존재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계속 공산주의 선동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말년의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왜곡에 맞설 근거들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프랑스 사회주의노동당연맹의 선거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벌인 논쟁을 소개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강령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혹여라도 당시의 논쟁을 맥락에서 떼어 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강령에는 “상비군 해체, 인민 무장” 등과 같은 요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혁명적 강령에 최저임금 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걸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원문읽기: <노동자 연대> https://wspaper.org/article/2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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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인생ㅣ송태웅 지음ㅣ산지니ㅣ160쪽

 


▶ 고요에 잡아먹히지 않고
   함께 느긋해지고 함께 팽팽해지다


 

산지니시인선 열다섯 번째 시집 송태웅 시인의 『새로운 인생』이 출간되었다. 2003년 『바람이 그린 벽화』, 2015년 『파랑 또는 파란』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비겁한 내면의 풍경을 과장과 꾸밈이 없이 담백하게 담았다. 시집을 내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과 좌절도 있었지만 시인은 좌초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송태웅 시인은 담양, 광주, 제주, 순천을 돌아 지리산 구례에 터를 잡았다. 전원생활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지 않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외로움과 자연이 준 고독함 속에서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했다. 그 속에서 시 쓰는 일도 쉽지 않다. 


「시인의 말」에서 “언제부터인지 시가 괴로웠다 / 그건 네 옷이 아니니 벗어버리라고 / 연기암 오르는 길의 시누대들이 / 죽비처럼 등짝을 때려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인은 삶의 무게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지금부터 살기 위하여” 시를 쓴다. 시인은 고요에 잡아먹히지 않고 느긋해졌다가 팽팽해졌다가를 반복하며 과거에 짊어진 인생의 상처를 돌아보면서 묵묵히 나아간다.

 

 

 

 

▶ 도약을 준비하는 시인의 「새로운 인생」

 

 

나는 당분간 일용노동자로 살기로 했다
내 등을 떠밀어 다오
서투른 몸동작으로

 

삽과 괭이와 해머와 철사와 커터 들을 다루는 나를
이제야 그들의 눈빛에서
체념과 순응의 본능을 읽을 줄 알게 된 나를
내 어머니에게 이런 나를 보여주고 싶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
꿀꺽 침을 삼키는 나를

 

_「새로운 인생」부분

 

시인은 선언한다. “당분간 일용노동자로 살기로” 한 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이라고. 비록 “서투른 몸동작”이지만, 그도 이제 “삽과 괭이와 해머와 철사와 커터 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도구의 “체념과 순응의 본능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가 된 것이다. “방 안에 웅크렸던 나라는 짐승”이 자신의 삶 속에 비로소 고요를 넘어서는 생동을 끌어들였다. 시인 스스로를 구원하는 시들로 읽는 이의 마음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 혼자 밥 먹는 날, 고독함에 대한 솔직한 고백


 

시집에는 유독 밥 짓는 내용의 시가 많다. “혼자만의 식사를 위해 이거 웬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 간혹은 내가 내 스스로를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메추리알 장아찌를 담그며」), “소고기를 볶아 미역국을 끓이고”(「새벽에 쓰는 시」) “일생의 저녁을 먹네”(「혼자 먹는 저녁」)처럼 시인이 혼자 밥 짓고 상 차리는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혼자 먹는 밥상 풍경이 쓸쓸하고 애잔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다. 자연 속에 살든 도심에 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장면이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런 타인을 훔쳐보기도 한다. 시인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고독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준다.

 

 

 

추천사


오월 광주에 있다가 살아남은 시인은 신산스런 삶을 짊어지고 절대 고독 속으로 투신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송태웅의 시들은 이 비극의 끝에서 자연 그리고 인간과 하나가 된 맑고 깊고 높은 경지를 내보이고 있다. 시인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는 이 시들이 많은 사람들을 역시 구원하리라 확신한다. 고독하고 외로운 자만이 모든 것의 혈육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의 영혼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하는, 지리산 같은 ‘지리산 고독 시인’이 여기 있다._나해철(시인)

  

 

저자소개

 

송태웅
1961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고 광주고와 전남대 국문과를 나왔다. 2000년 계간 『함께 가는 문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그린 벽화』, 『파랑 또는 파란』 등이 있으며 이번 시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현재는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틈만 나면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지리산과 섬진강의 나날들을 구가하고 있다.

  

 

목차

 

 

         

 

 

 

새로운 인생 - 10점
송태웅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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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약자』에 실린 박노자(오슬로국립대) 교수의 추천글입니다.

 

 

우리 모두 소수자다!

 

홍세화 선생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서 한 가지 명언 격의 말이 있다. ‘존재를 배반한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처해 있는 처지와, 언론 등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입되어 결국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되는 의식은 거의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소수자 문제는 그 중의 하나다. 우리가 부르주아 언론에서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에 이 이야기가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이미 그렇게 잡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그 이야기의 골자는 어디까지는 ‘불법 체류라는 약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저 약자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겨주자’는 정도 이상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려는 의식이 외국의 보수 매체에 비해 그나마 약해서 다행인지 모르지만, 악덕 기업주들에게 월급을 체불당하고 착취를 당하는 ‘저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멀리 있는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는’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와 참 사이 먼 의식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사실 외국인의 노동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인 ‘불안 노동’의 한 종류일 뿐이고 ‘노동 불안화’의 희생자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 존재의 기본적 조건이다. 임금 체불이나 손찌검을 덜 당하고, 월급을 약간 더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박해 받을 일은 없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지만, 사실 대형 마트나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한국 여성의 처지는 근본적으로 그 외국인 노동자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원래부터 근대적 무산계급의 특징이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안 노동은 –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이든 국내인 비정규직의 노동이든 – 이 소외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몰고 가고 노동자를 직장 관계에서 원자화된 ‘일회용 용품’으로 만든다.

 

언제 비정규직으로 몰릴지 모를 우리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사실 ‘저들이 얼마나 불쌍한가’에 대해 ‘우월한 자의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는, ‘우리가 저들과 어떻게 연대해서 자본의 지배에 맞설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에 훨씬 더 부합되는 의식이다. 소수자라는 말이 요즘 인기가 많지만, 실제 지배계급이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는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의 대다수가 이런저런 측면에서 ‘소수자’의 신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식의 형성은, 지배자들과 그들의 수하에 있는 매체들이 결코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소망하는 것은 결국 국적, 성별, 장애의 유무 여부, 고용 형태 등으로 생기는 ‘차이’를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그 차이로 인해 생기는 ‘거리’를 영구화, 절대화시키는 것이다.


무산계급, 즉 이 세계의 짓밟힌 모든 자들의 연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수자 담론’은 가능한가? 이수현의 이 번의 저서는 분명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그리는 소수자들이 우리와 멀고 다른, 연민의 대상이 돼도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니고, 우리 옆에 있고 우리와 쉽게 동일시될 수 있는 가깝고 친숙한 존재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와도 그들의 모습은 절대 ‘이방인’ 같지 않다. 안산시의 ‘국경 없는 마을’에서 고용 불안과 실업, 산업 재해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늘 걱정하고, 한국의 노동 운동의 문화도 많이 받아들여 ‘한국식’으로 머리띠를 매고 율동을 하면서 투쟁하는 한편 한국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본국의 문화도 전수하려고 애쓰는 저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우리’ 그 자체다.


저들에 대한 이수현의 서술을 읽노라면 우리 옆에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고생하고 유럽이나 일본, 미국에 나간 한국 동포와 똑같은 걱정, 고민을 하는 저들을 ‘단속’한다는 당국의 처사를 무자비한 폭력 이외의 어떤 다른 것으로 보기 힘들게 된다. 한반도 바깥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적어도 4~5백만 명으로 헤아려지는데, 우리가 ‘나가는’ 이민은 당연지사로 여기고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범법자 취급하여 ‘단속’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같은 노동자, 같은 인간들이 우리와 가까운 데에서 ‘단속’으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져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는, 그들과 당연히 연대해야 할 한국의 ‘주류’ 노동 운동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은 이수현의 책 속에서 담겨진 근본적인 물음이 아닌가 싶다. ‘만국 무산자의 단결’이 표어가 아닌 현실이 되자면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현장 보고서의 형식을 띤 이수현의 책은 ‘아픈 진실’이다. 약은 쓴 맛이 나야 효과가 있다는데, 나는 이수현의 원고를 읽을 때에 정말로 ‘쓴 약’이라고 생각되었던 부분은 부산 삼광사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부분이었다. 불교와 오랜 인연이 되고 불교 공부를 늘 번잡한 일상 속의 ‘내면의 즐거움’으로 삼아온 탓인지, 계급사회 속에 편입되어 부처님의 본의를 잃은 종교가 그 원래 가르침의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는 이 담담한 ‘현장 이야기’를 읽을 때에 거의 눈물 날 지경이었다. “당신 죽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나가라.” 이것이 깡패의 막말도 아니고 가장 자비스러워야 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성직자의 말이라면 우리 사회는 이미 파탄을 맞은 것이다. 마르크스가 한 때에 종교에 대해서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마약’이라고 했지만 이미 ‘짓밟힌’ 처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 운동을 한다고 무단으로 해고시키고 “죽든지 말든지 나가라”고 하는 종교 집단이라면 더 이상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민중의 희망을 대변할 줄 모르는, 말 그대로 ‘마약 제조 및 판매’ 업체 수준의 집단일 뿐이다.


하급 성직자(전도사, 부목)와 노동자(운전수 등)의 착취가 불교의 대형 사찰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대형 교회의 특징이기도 한데, 해당 사찰 내지 교회의 신도들에게 한 가지 꼭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들이, “당신이 죽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해고 노동자에게 말하는 수준의 성직자들이 정말로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시는가? 저 성직자들을 존중해주고 헌금 내지 불전(佛錢)으로 저들의 ‘종교 자본’을 키워주는 것이 과연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원하실 일일까?


이수현의 책이 그리는 대한민국은 잔혹한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도도 아니고 차라리 ‘유전즉신 무전즉수 (有錢卽神 無錢卽獸)’, 돈이 있으면 인간 이상의, 신과 같은 대접을 받고, 돈이 없으면 인간 이하의, 동물도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은 박정희 식 ‘병영 자본주의’를 이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적 모델의 실체다. “비정규직 노동자 주제에 무슨 연애를 할 수 있느냐”는 한 비정규직의 말을 읽었을 때에 노비들까지도 연애와 결혼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일상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비정규직을 ‘현대판 천민’이라 부르지만 연애할 생각을 못할 정도로 심신을 파괴시키고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것은 전근대의 ‘천민 대접’보다 한층 가혹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뒤에 절망은 하지 않는다. 이 지옥을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투쟁하고 자신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생긴다. 1987년의 대투쟁은 결국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배제를 기반으로 했던 개발 독재 모델을 무덤으로 보내고 대자적 계급으로서의 한국 노동 계급의 탄생을 알리지 않았던가? 결국 언제인가 가까운 미래에 김대중과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도 노동자의 대투쟁으로 조각이 날 것을, 이 책을 읽고 믿게 되는 바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다. 몇 번을 다시 봐도 감동적이고 기분 좋은 이 영화는 80년대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모습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본문 129쪽)

우리옆의 약자 - 10점
이수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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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김곰치
쪽수 : 272p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135-8
값 : 13,000원
발행일 : 2011년 1월 24일





 


김곰치 르포 산문집 『지하철을 탄 개미』출간

『발바닥, 내 발바닥』 이후 6년 만에 작가 김곰치가 두 번째 르포 산문집인 『지하철을 탄 개미』를 묶어 내놓았다. 생명과 개발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장삼이사의 아포리즘을 나르며 발바닥으로 뛰어다닌 결과물인 12편의 르포와 소설가 김곰치의 감성이 담긴 13편의 산문을 한 그릇에 담았다.

왜 르포인가?

김곰치는 본업인 소설이 있다. 그러면 소설가가 자기 주제의식이나 현실의 이야기를 소설로 하면 되지 왜 르포인가?

“소설은 현실의 사건을 형상화하는 데 발이 느리다. 왜냐하면 소설은 그야말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완성도가 생명이다. 언어예술로서 소설은 어떤 소재와 주제를 놓고 한 작가의 인생에서 늦게 쓰면 늦게 쓸수록, 또 오래 쓰면 오래 쓸수록 완성도의 성취 확률이 높아진다. 다양한 장르적 분화가 일어나 소설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시사문제를 놓고 형상화가 거친 사회고발소설을 쓰느니 감정적 자아를 솔직히 드러내는 르포르타주가 보다 효율적이고 적합하다고 본다.” -작가와의 대화 중에서

김곰치 르포 글쓰기의 핵심은 ‘약자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옹호’

김곰치 르포 글쓰기의 핵심은 ‘약자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옹호’라고 요약할 수 있다. 『발바닥, 내 발바닥』이 자연의 생명권에 대한 작가의 질문과 주장이 주되게 담았다면 이번 『지하철을 탄 개미』는 사람, 자연, 물건의 생명권을 함께 바라보자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주제의식이 확장되고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김형율 르포(사람), 한양주택 르포(물건), 태안 르포(자연)가 이 세 가지 사안에 집중하고 있다.

김곰치는 남루하고 비참한 세속에서 어떤 숭고함을 찾으려 애쓰는 작가다. 그의 글은 삶의 터를 빼앗기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들, 그 연약한 생명의 외로움에 대한 따뜻한 포옹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에는 빼앗고 내쫓는 세상의 야비함에 대한 서늘한 추궁이 담겨 있다. 그는 어떤 순간에라도 쉽게 동조하거나 조급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느리게 사유하면서 뜨거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보편적 진실에 가 닿는다. 그래서 김곰치는 진정 발바닥으로 사유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머리로 글을 쓰는 세상의 잘난 사람들이 동서고금의 아득한 이름들을 빌려 제 생각을 풀어낼 때도, 그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외로운 이름들을 애써 부르며 그들과 함께한다. 그러니 김곰치는 “누군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 그 위로의 힘”을 알고 실천하는 참으로 놀라운 작가가 아닌가. -전성욱(문학평론가)

섬세한 소설가의 감성을 담아낸 산문

『지하철을 탄 개미』의 2부, 3부에서 르포작가로서의 김곰치의 치열한 정신을 볼 수 있다면, 1부, 4부에서는 소설가 김곰치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르포를 취재하고 쓸 때는 지사(志士)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야말로 공적인 문제를 놓고 누군가와 다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취재와 글쓰기가 끝나면 작가는 약간의 후유증을 앓으며 일상으로 돌아온다. 평범한 동네 청년으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도시생활자로 돌아와 우리 주변을 돌아본다. 지하철을 타고 개미를 보고 복잡한 감동을 받고, 산책하고 음악 듣고 벤치에 앉기를 좋아하고... 그러다 길을 덮은 시멘트와 블록 틈새에서 줄기와 잎을 내고 있는 잡초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내가 나라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는 섬세한 소설가의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지하철을 탄 개미

르포가 책의 분량을 많이 차지하지만, 제목은 산문에서 따왔다. ‘지하철을 탄 개미’... 불안하고 연약하고 안쓰럽고 또 분명한 하나의 신비스러운 생명의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현재 우리네 삶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그와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는 이 책 머리말에서 ‘사랑과 싸움의 르포’라고 말했다. 사랑하고 싸우고 좌절하고 새로 인식하고 다짐하는 르포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도 지하철을 탄 개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장편르포도 기대

김곰치는 소설가이다. 그동안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두 권의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빛』을 출간했다. 앞으로 『빛』에 이은 두 편의 장편소설 『말』 『소리』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는 700매 분량의 경장편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장편르포에 대한 기대도 가져본다. 운명과도 같이 어떤 사건, 어떤 인물을 놓고 불같은 그런 시간이 작가에게 올 것이라 믿는다. 작가는 앞으로도 계절마다, 또는 일 년에 두세 번, 르포를 쓰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도시의 후미진 골목을, 또는 어떤 사건의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 같다.


저자 : 김곰치

1970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빛』이 있고, 르포 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이 있다.
1999년 제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차례

머리말 직접적이고 진실하고 겸손한

제1부 산문 첫 번째 이야기
한 사람
숨 쉬고 싶다
지하철을 탄 개미
을숙도에서
인사동에서 울다
옛날 옛날에
새만금갯벌은 죽지 않는다, 다시 산다
잘 자라, 아이들아

제2부 르포 첫 번째 이야기
“글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파요”-김형율의 삶과 죽음 1
“나는 아프다!”-김형율의 삶과 죽음 2
이 집은 살아 있는 생명의 집이다-서울 한양주택 사람들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지키는 사람들-서울 한양주택 사람들 2
바다는 망하고 우리는 병났다-태안에서 1
누가 바다의 주인이냐-태안에서 2

3부 르포 두 번째 이야기
시간에 지쳐 울지는 않겠다-탈북 청소년
“지난 반년, 하루 한 시간밖에 못 잤어요”-국립마산병원에서
아름다운 이별도우미, 호스피스-부산의료원에서
어느 40대 여성노동자의 1인 시위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본능은 꿈틀댄다-부산역 광장에서
봄 되면 평택에 모내기하러 오세요

4부 산문 두 번째 이야기
산책과 벤치
지역작가로 살아보니 알겠다-내가 산지니와 손을 잡은 까닭
인생의 최대사건
오래된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도대체 저건 뭐야! 하고 외칠 때가 있다

지하철을 탄 개미 - 10점
김곰치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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