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_ 『방법으로서의 중국』 미조구치 유조 지음|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296쪽|25,000원

그가 내세운 중국학은 바로 ‘자유로운 중국학’이다. 여기서의 자유의 의미는 물론 ‘진화’에서 벗어나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그러한 중국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가리킨다.

 

 



 
   
 

중국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미조구치 유조(1932~2010)의 초기 저작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국내 독자들에게 선을 보인다. 오래 전부터 이 책의 번역을 염두에 뒀는데, 이제야 출판을 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특히 중국의 싼롄서점에서 ‘미조구치 유조 전집’의 완간을 앞두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미조구치의 저작은 많이 번역돼왔지만 유독 이 책만 번역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던 차였다. 이미 번역된 저작들 대부분이 전문 연구서임에 반해 이번에 출간된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자신의 학술연구를 바탕으로 ‘지금 중국을 말하는 이유’를 종래의 일본 중국학을 비판하면서 밝히고 있는 저서라는 점에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1980년대에 발표한 논문들을 수록한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근대 중국을 분석하는 주류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주류적 방법론이란 중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종래의 시각 즉 진화론에 입각한 단계론적 시각을 가리킨다. 미조구치는 종래의 양무운동-변법유신-신해혁명이란 단계론적 구도에 따른 중국 근대사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병폐를 나았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아울러 진보-보수, 사회주의-자본주의, 선진-후진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적 구도로는 중국의 근대가 지닌 독특함 그리고 이것이 드러낸 다양한 역사구조상의 모순들을 정확히 투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현재적 시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내용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당시에도 이와 같은 서구 중심의 근대 이해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도 제기됐다. 그런데 미조구치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근대 특히 현실 중국(중국 사회주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식의 단계론적 시각에서 ‘봉건’이라고 명명된 전근대를 일방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획득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미조구치는 중국의 근대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大同的 근대’라고 정의하고, 근대 중국에서 일어난 혁명 전체를 장기적으로 부감하는 시각을 갖지 않고서는 중국의 근대를 규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非’가 아닌 ‘異’적인 전근대와 근대의 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투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조구치의 이러한 주장이 중국의 근대를 분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즉 그의 중국 연구는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말한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라는 구호는 중국 연구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미래 세계의 문명에 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데 중국 연구가 일조할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서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인데, 그것은 중국 근대사의 제 현상을 횡적으로 대비하고 종적으로 탐문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중국 연구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미조구치의 시선은 중국학의 역사로 옮겨 간다. 이 책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바로 일본 중국학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인 이유다.


미조구치가 1980년대에 현실 중국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일본 중국학 분야의 선배 연구자인 다케우치 요시미를 비롯한 좌파 지식인들의 탈근대적 중국론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그는 좌파 지식인들의 탈근대론적 중국론 역시 사회주의 중국을 이상화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거부했다는 서구식의 근대 이해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미조구치가 비판한 근대에 대한 단계론적 해석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위에서 그들의 중국 연구가 성립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바로 앞의 선행 중국학 연구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해 일본의 중국학 연구사의 흐름을 중심적인 학파를 대상으로 기술했는데, 그는 이를 크게 ‘중국 없는 중국학’과 ‘중국밀착적 중국학’으로 구분했다. ‘중국 없는 중국학’은 일본의 전통 漢學과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유럽)의 시놀로지를 수용한 지나학이 해당한다고 규정한 반면, ‘중국밀착적 중국학’은 바로 앞에서 말한 좌파들의 낭만적 중국 이해 또는 연구라고 지적한다.


근대 이전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대에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한학’이 존재했었다. 그 ‘한학’의 내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근대 이후에도 동아시아 각국에서 여전히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현실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한학’적 연구방법론만으로는 부족하며, 아울러 서구의 시놀로지를 수용한 지나학 역시 과학적 방법론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차례로 비판했다. 미조구치에게 중국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바로 현재의 중국이며, 그리고 이 중국은 결코 과거가 박제화 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 역시 이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한학’이나 ‘지나학’은 그런 점에서 ‘살아 있는 학문’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파악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교(학)가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포착하고, 근대 이후의 ‘봉건’이란 이름으로 부정된 反 유교 운동의 과격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학문이 정치(혁명)과 결부됨으로 그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과거(전통)에 대한 학술적 해석에 있어서 경계해야할 사안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일본 중국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그가 내세운 중국학은 바로 ‘자유로운 중국학’이다. 여기서의 자유의 의미는 물론 ‘진화’에서 벗어나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그러한 중국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가리킨다. 이러한 자유야말로 이제까지 중국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보증이 되며, 이 객관대상화의 철저야말로 일본의 한학이나 지나학과 같은 ‘중국 없는 중국학’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중국을 단순히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중국에 대한 몰입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그런 범위 내에서 또 하나의 중국밀착적 중국학이 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면 시종 자신의 개인적 목적의 소비에 이용하는 한에서 또 하나의 중국 없는 중국학이 되는 것은 결코 자유로운 중국학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에 미조구치는 진정 ‘자유로운 중국학’은 어떤 양태이든 목적을 중국과 자기 내부에 두지 않고, 결국 목적이 중국과 자기 내에 해소되지 않는, 역으로 목적이 중국을 넘는 중국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으로 정의된다.
일본 중국학에 대한 미조구치의 이와 같은 정리는 바로 한국의 중국학 연구자들에게 우리 중국학의 역사와 위상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향후 우리의 중국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한다. 과연 우리의 중국학은 우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자신을 상대화하는 눈을 통해 중국을 상대화하고 더 나아가 중국 연구를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인 인식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광덕 건국대 강사·중문학

필자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근대문학가 루쉰 및 동아시아 근대 지식의 형성과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루쉰』, 『일본과 아시아』, 『중국의 충격』, 『루쉰전집』 등을 번역했다.





교수신문 | 2016-02-22

원문 읽기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지식의 윤리성

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Reviewed by 엘뤼에르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 윤여일은 본인이 평소 견지하고 있던 ‘윤리성(Ethica)’에 대한 고찰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네 가지 사유감각으로 풀어내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자본론」보다 논리적 밀도는 떨어지지만 다양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키며 현실을 때렸다. 이처럼 저자 윤여일은 지식의 가치를 기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지식의 기능성과 윤리성 사이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가장 심급의 영역으로서의 '사상'을 사유함

     이 책은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적 영위의 핵심 개념차이를 밝히고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저자의 성찰을 심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이때 ‘이론’은 지적 주체가 고유하게 만든 자신의 구성물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저자는 바라보았다. 또한, 현실감을 잃고 현실을 분할할 언어 개념으로 남은 ‘이론’에 대해서도 응수를 놓음과 동시에, 맥락을 잃고 학술적 과시성향으로 기능하는 오늘날 지적풍토를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이론의 이론됨을 성찰한다고 긍정한다. ‘이론’이 억압한 것의 흔적을 살피는 것이 바로 비평이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론은 축적됨과 달리, 비평이 가지는 논쟁은 축적되지 않음도 윤여일 저자는 동시에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 자신이 비평이 대상임에도 비평할 수 있는지를 사고하는 것이 ‘사상’이고, 이는 곧 가장 심급의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사상’이 바로 저자 윤여일이 언급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자기응시에서 출발하는 행위라고 규정짓고 있다.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인문학을 반성하다

     윤여일 저자는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과 같은 네 가지 층위의 사유감각을 통해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윤리성’에 대해 고찰한다. ‘현실감각’ 부문에 있어서는 자주 외롭지만 고독할 줄 모르는 양떼 인간을 두고, “나는 남과 다르”지만 그러고는 기꺼이 유행을 좇는 현대인들을 소비주의적 대중매체(TV, 신문, 책)의 영향력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윤리적 감수성을 타락시키는 TV라는 매체를 현실감각적인 면에서 고찰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사회화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정치감각’ 부문은 유동하는 정치와, 정치의 응고물인 권력에 대해 사유한 장이다. 성숙된 정치적 사고란 무엇인지 도덕성과 다른 차원에서 신중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유덕한 지도자 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조건에서 유리된 유토피아적 전망 역시 정치적 체념의 토양이 되기 쉽다며 오늘날 정치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윤여일 저자는 정치도 경제, 문화와 나란한 사회의 부문이 아닌 사고의 심급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더불어, 사상계가 내놓는 지식이 사회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현학적인 대상에 젖어들고 지식의 언어가 지식인들의 언어로만 남는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바깥에서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질타한 것이다. 지적 주체가 진정 인식하고자 한다면 윤여일 저자는 대중 속에서 있으면서 그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다.


번역 행위의 본질은 바로 '토론'에 있다 

    ‘번역감각’ 부문에서는 번역 행위가 본질적인 토론행위임을 사유했다. 또한 ‘번역의 정치성’에 대해 논의했는데, 여기에 언어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번역자가 번역을 매개로 보편성을 재사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언어감각’ 부문에 있어 언어를 만나는 것이 강렬한 정신적 체험이자 버거운 육체적 체험이라고 언급했다.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 지적 주체는 무엇을 사유하고 있는지 사유할 수 없고, 따라서 글로 ‘써야 한다’. 쓴다는 행위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은 홀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꺼내는 이상 윤리적 방침이 필요한데, 이는 자기 회의가 감싼 고백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식이란 무릇 지식을 습득하는 지적 주체와 지식 자체의 관계에서 지식과정이 성립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중에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지적 스승들의 아카데믹한 저작들이 보여주는 지식이라는 것이 지적 주체를 쇄신할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일종의 철학적 소품집인 셈이다. 결국 지적 주체인 지식인들이 지적 대상에게 다가가는 인식절차를 구체적으로 밟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핵심 주제의식이다.


산지니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현장>>

http://sanzinibook.tistory.com/548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속편격인 윤여일 선생의 근간 『상황적 사고』가 올해 출간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저자 소개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여행의 사고 둘》 《여행의 사고 셋》 등을 쓰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