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당신 어루만지는 속 깊은 소설

조명숙 단편집 '조금씩 도둑'…세월호 사고 10년 뒤 무대 등 개성·문체 다채로운 9편 실어


소설가 조명숙


소설가 조명숙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의 표제작에 나오는 주인공 세 명은 꿈이 싱그럽던 열여섯 살 소녀 시절에 본명 대신 '띠띠'와 '바바'와 '피융'이라는 별명을 정해 서로 부른다.


띠띠도 바바도 피융도 울퉁불퉁하고 불친절한 삶을 살아내느라 지쳤고, 상처받았고, 돈벌이에 시달린다. '…열여섯 그때만 해도 인생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 각각 한마디씩 별명에 대한 덕담을 해 주기로 했을 때 피융이 그랬던 것처럼 띠띠! 경적을 울리면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싹 비켜 줄 줄 알았다.' 바바는 종업원 없이 돼지국밥집을 하고, 피융은 집안 경제가 풍비박산 나자 부식가게를 열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적출 수술을 한 상처투성이 띠띠는 마트 빵집 종업원이다.


언뜻 이 단편소설은 가난하고 심란한 여성들의 '상처받은 삶 이야기'로 흐를 듯하지만 안 그렇다. 따뜻하게 존재를 보듬는다.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살림이 확 핀다든가 엄청 유쾌한 일이 들이닥치지도 않는다. '염색약을 다 바르고 비닐 캡을 씌워 주자 피융은 침대에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한숨 자자." 될 대로 되라는 듯 피융이 눈을 감았다. 띠띠는 피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 정도의 행복이고 이 만큼의 따뜻함이다.


조명숙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린 건 뭘까? 작가가 속 깊이 생각한 우리 삶의 속내, 우리 삶의 진실이다. 휘황한 이야기, 감각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아니다. 삶을 응시하고 겪어낸 작가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낸 수제품 같은 단편소설 9편을 '조금씩 도둑'은 실었다.


차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달리,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난데없이 밀고 들어와 인생을 아예 파괴해버릴 만큼 강하고 아프다고 한다. 이번 작품집에서 트라우마에 휩쓸리는 어둡고 우울한 주인공은 '점심의 종류'에 나오는 영애다. 영애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미를 잃었다. 그 뒤 10년이 지난 2024년을 소설은 무대로 한다.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은 '하루하루가 사고의 다음날'로 느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프다.


다른 수록작품은 개성과 문체가 무척 다채로운데, 우리 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심각함과 유머, 역설이 뒤섞이면서 묘하게 단단하고 끈적한 느낌을 준다. '러닝 맨'은 '아픈 유머'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은 못 하는 장애가 있다. 아버지는 첫째 부인에게서 아들 셋, 둘째 부인에게서 막내딸을 뒀다.

  

겨우 서른여섯 살밖에 안 된 막내 딸이 둘째 엄마의 제삿날에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한다. "독한 암에 걸렸고 여섯 달밖에 못 산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팬티만 입은 채 동네를 뛰기 시작한다. 막내를 살리고 싶은 말 못하는 염원이 전류처럼 느껴지고, 가족사와 자기 삶의 회한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보인다.


수록작 '조금씩 도둑'에서 띠띠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를 느끼자면 여간 세심하지 않으면 안 돼. 안 보이는 것을 봐야 하고, 주어진 것들을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해." 이 말은 곧 조명숙 작가가 소설 쓰는 법으로도 느껴졌다. 삶의 진실을 수작업으로 그리는 소설가에게 작품 쓰기는 존재증명의 방식이다.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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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50422.22021191402

Posted by 비회원

2005년에 등단한 신예작가 이미욱이 총 8편의 단편을 묶어 첫 소설집을 펴내었다. 이미욱의 이번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는 다양한 소재들의 조합과 함께, 가독성 있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신진 소설가의 탄생을 예고한다. 오타쿠, 외모지상주의, 동성애, 등교거부 현상, 은둔형 외톨이, 왕따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들을 젊은 감각으로 끄집어 올리고 있는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시대를 떠다니는 영혼들을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과 함께 펼쳐내 보이고 있다. 동시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갖는 부단한 자의식을 통해, 시대가 품고 있는 병폐를 소설가 특유의 감성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미욱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



소설의 제목인 『서비스, 서비스』는 애니메이션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TV판 차회예고에서 미사토라는 캐릭터가 던지는 멘트이다. 이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표제작 「서비스, 서비스」의 여주인공 코코미 또한, 프리허그, 메이드까페 등의 일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끊임없이 무형의 것을 제공한다는 소설 속 소재(서브컬쳐)를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다.


표류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를 끌어올리다

그들은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혈연이 아니라 같이 살면서 서로를 보살펴주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위험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작가는 탄력 있는 구성과 속도감 있는 문장, 그리고 섬뜩하리만큼 예리한 인물들의 자의식을 통해 이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_조갑상(소설가·경성대 교수)

결여의 자리를 대타자의 규율로 채우는 과정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의 인물들이 성장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다만 그들이 결여 속에서 앓고 있는 그 고통을 방치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비정한 가학성이야말로 이 작가가 혹한에 대하여 말하는 어떤 방식은 아닐까? _전성욱(문학평론가)


핵가족화와 일인 가정, 동거가족 등 현대 사회의 ‘가족’이란 마냥 안온하고 따스한 위로의 공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외로움’의 공간이자 ‘전장’의 공간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싸움’이 끊임없었던 아픈 기억의 공간일 수 있다. 표제작 「서비스, 서비스」에서도 건담 프라모델에 집착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혼 후 각자 재혼해버린 부모로 인해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민재. 그렇게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채 살아온 민재는 자기 방의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건담 프라모델에 집착한다. 프라모델의 세계를 알려주었던 친구와 함께 떠났던 일본여행에서 민재는 메이드까페 소녀 코코미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서 귀청소 마사지를 받으며 어린 시절 그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상처들을 상기한다. 민재에게 있어 코코미의 다정한 ‘서비스’는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으나, 코코미에게는 그저 감정이 결여된 공허한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족해체 위기에 대한 젊은이의 보고서

이번 소설집을 통해 작가는 비정한 현대사회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소외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주인공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바로 ‘버림받음’의 정서이다. 말 못할 사정으로 엄마를 언니로 알고 자라는 여주인공(「단칼)이나 태어나자마자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유기 당하는 아이(「쎄쎄쎄」), 나이 어린 아빠한테서 집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자고 오라고 문전박대 당하는 「분실신고」속 소녀는 각기 부모로부터 버림받는다. 메이드까페 소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소년(서비스, 서비스」),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부모와 친구,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은둔형 외톨이 여성(숨은 그림자」), 못생긴 외모로 인해 남자에게 거절당하는 여성(「미미」), 그리고 부모와 친구로부터 버려지면서 본인의 처지를 작은 먼지와 동일시하며 위안받는 청소년(「연애(涓埃)」), 이명 증세로 동시통역사 일을 할 수 없어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살아가는 사내(「사막의 물고기」)까지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 나아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작가 이미욱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버림받고 있는 이들을, 마치 아슬아슬하면서도 세밀한 정물화를 그려내듯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상실된 결핍을 향한 부질없는, 그러나 의미 있는 몸짓

애니메이션 음악, 가게를 홍보하는 내레이터의 음성, 스피커에서 터지는 유행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거리에 퍼지자 형광 빛깔의 간판들이 들썩거렸다. 수많은 소리에 민재와 준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인파로 흥청거리는 거리의 끝자락에는 노란 트레이닝복 재킷을 걸치고 블랙 미니스커트를 입은 빨간 머리 여자가 ‘Free Hug’(프리 허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프리 허그를 받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치 벌 받는 자세처럼 보였다.

“저기 빨간 머리 여자애 얼굴이 우울해 보여. 누군가 안고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아.”

준세는 빨간 머리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듯 양손을 들었다.

“더 외로운 사람이 덜 외로운 사람을 안아 준다고 하잖아.” _「서비스, 서비스」, 55쪽.


이미 상실된 결핍이란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욱 소설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상실된 결핍을 무엇으로든 채우고자 필사적인 몸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몸짓은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기 상처 입은 등장인물들이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환부를 기꺼이 드러내며 서로를 위안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투성이 삶을 보듬는다. 결국 작가 이미욱은 버림받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상처받은 이들이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상처를 겪어본 자들만이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비스, 서비스』가 가지는 둔중한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지닌다.




글쓴이 : 이미욱

198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5년 《국제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단칼」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w-mioff@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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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서비스』

산지니소설선 18
이미욱 지음
문학 | 국판 | 264쪽 | 12,800원
2013년 9월 24일 출간 | ISBN : 978-89-6545-226-3 03810

이미욱의 첫 소설집. 오타쿠, 외모지상주의, 동성애, 등교거부 현상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들을 젊은 감각으로 끄집어 올리고 있는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시대를 떠다니는 영혼들을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과 함께 펼쳐내 보이고 있다. 동시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갖는 부단한 자의식을 통해, 시대가 품고 있는 병폐를 소설가 특유의 감성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서비스, 서비스 - 10점
이미욱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