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이 열렸습니다.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의 저자이신 정상천 작가님이 직접 오셔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에 대해 강연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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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X공간에는 작은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강연자 분이 쓰신 책이나 산지니 출판사 신간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산지니 출판사 도서 목록과 팜플렛은 자유롭게 열람하고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산지니X공간에서 강연하는 정상천 작가님 )

 

오랫동안 외교부 공직에 있으셨던 정상천 작가님은 주말마다 역사 공부를 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명칭은 정상천 작가님의 롤모델이자 실제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에게서 따 온 것입니다.

 

 

 

 

 

 

 

 

 

(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음)

 

( 산지니X공간에서 정상천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 )

 

부산에서 가장 큰 한약방 중 하나를 운영하는 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서영해 선생은 부친의 재력 덕에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프랑스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에는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어려서 화교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살면서 20년 동안 외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임시정부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인재가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이 불어를 활용한 외교 업무를 도맡았습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 초등, 중등, 고등 수준의 학업과정을 6년 만에 마칠 정도로 서영해 선생은 매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불어 실력은 매우 유창했고,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과 어울릴 만큼 인간관계도 좋았다고 합니다.

 

 

 

 

 

 

 

 

 

 

(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파리의 호텔 드 상리의 객실 )

 

( 열정적인 강연을 하고 있는 정상천 작가님 )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 파리의 호텔 드 상리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여 국제 언론에 대응하였습니다.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의 부당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아주 작은 객실 한 칸에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홀로 해낸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의 임시정부 시절 명함, 서영해 선생이 받은 독립 유공 훈장)

 

 

( 서영해 선생과 이승만의 모습 )

 

정상천 작가님은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서영해의 명함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상천 작가님이 서영해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자, 서영해가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만큼 서영해는 임시정부 외교의 주축이었습니다. 같은 외교 업무를 하며 친밀하게 지내던 이승만과는 후에 정치적 의견 차이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이집트 여인』에 소개된 서영해의 소설

 

 

 

임시정부에서 따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은 스스로 돈을 벌어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는 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아 고려통신사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가 쓴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의 소설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의 소식이 대부분 전해졌다면, 서영해는 세계의 언론에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알린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 한국에 돌아온 서영해 선생과 그의 가족들 )

 

( 류영남 선생님이 서영해 선생을 널리 알려 달라는 황순조 여사의 부탁을 회고하는 장면)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엘리자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황순조 여사와 결혼하였습니다.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기 전 서영해 선생을 찾았지만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정상천 작가님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통해 서영해 선생의 삶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분들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음 출판도시 인문학당은 4월 18일 오후 6시 산지니X공간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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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이주의 신간도서]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外

 

 

 

 

 

 


                                  ▲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 이용준著 / 더봄刊
지난 1984년 출판돼 단행본으로만 2억 8천만 부를 팔아치운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을 통해 경영을 배울 수 있는 책이 출판됐다. 저자는 드래곤볼에 등장한 인기캐릭터 손오공, 프리저, 베지터, 피콜로, 셀 등이 처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이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과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유수의 외국계 기업에서 조직 개발 및 기업 교육을 담당하던 와중에 드래곤볼을 읽다 비즈니스 관점의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베지터의 실패는 교만에서 비롯됐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배우는 시간관리’, ‘왜 기뉴의 체인지는 실패했는가’ 등의 챕터를 통해 비즈니스에 대해 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전망이다. 값 1만5천 원


 

 

 


                                   ▲ 사람이 너무 어려운 나에게



사람이 너무 어려운 나에게 / 가토 다이조著 / 작은우주刊
누구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살기 원한다. 인간이라면 타인에 의해 재단 당하고 잘려나가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잔인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신의 침대에 뉘어서 침대보다 크면 잘라내고 작으면 늘여서 죽였다고 한다. 오늘날 심리적으로 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학대당한 상처를 평생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사회가 제공하고 부모가 동의한 스펙이라는 틀 속에 구겨 넣어지고 있으며 생존하고 인정받으려고 자신을 억압하고 감추며 살고 있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허상을 만들고 그것을 실제의 자신이라 믿으며 모든 것을 바쳐 그 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부류이다. 저자는 무책임한 평가와 무관심한 지적에 노출되어 악영향을 받은 이들이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일어서지 못함을 안쓰러워하며 일어서는 법을 알려주려 한다. 값 1만3천800원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정상천著 / 산지니刊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조명한 책이 출판됐다. 그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그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값 1만6천 원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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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 /산지니 /1만6000원

 

 

조선 독립에 일생을 바쳤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의 삶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독립 활동을 했던 서영해 선생에 관해 묻혀있던 기록은 1998년부터 15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한 저자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인 저자는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하게 공부하고 집필을 계속한 전문가다.



책은 부산 초량의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3·1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막내’로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선 서영해 선생의 일대기를 촘촘하게 담고 있다. 개인 서영해의 이념과 사랑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언론인, 문필가, 외교관, 독립운동가 역할을 두루 해냈던 서영해 선생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임시정부와 유일하게 연락하며 27년간 고군분투한 거목이었다. 1932년 상해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사건 이후 상해에 있던 안창호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교섭을 펼치고,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침략상과 조선의 참모습을 알리는 데도 주력했다.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은 물론 이집트,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한 외교를 전개하는 동시에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한국 전래민담 ‘거울, 불행의 원인’, 단편소설 ‘구두장수의 딸’ 집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능은 조국의 독립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아낌없이 쓰였다.

 

저자는 “큰 족적에도 불구하고 서영해 선생은 우리 기록에 남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상해로 건너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 박사가 아닌 김구 선생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서영해 선생의 삶은 다른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신산했고 굴곡졌으며, 세계사와 우리 근현대사의 격랑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제라도 그의 업적과 뜻을 기리고, 1995년 수여받은 건국훈장 중 4등급 애국장에 머물러 있는 포상도 재검토해 새로이 추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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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국가균형발전위 정상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펴낸 정상천씨.

 그는 “나 역시 외교관으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만큼 뛰어난 외교관이었던 서영해 선생에게 이끌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천씨 제공

 

 

프랑스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1914~1984) 이름 앞에 따라붙던 수식어는 ‘일요일의 역사가’였다. 이런 수식어가 붙은 건 그가 제도권 밖에서 역사 연구를 진행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자신을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불러 달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인 정상천(56)씨다. 정씨는 평일에는 공무에 매진하고, 휴일에는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최근엔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1949·사진)의 업적을 살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까지 펴냈다. 이 책은 서영해의 삶을 정리한 최초의 평전이다.

 


정씨는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제강점기에 미국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다면 유럽엔 서영해 선생이 있었다”며 서영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거듭 강조했다.

 


“서영해 선생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임시정부 외교의 양대 축이었어요. 해방 이후 ‘제1호 외교부 장관’이 됐어야 했던 분이죠. 하지만 해방 이후 (이 전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패했던) 김구 선생 편에 서면서 지금은 잊힌 인물이 돼 버렸어요.”

 


부산 출신인 서영해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이듬해 혈혈단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임시정부의 지시로 파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유럽에 머무는 내내 일본에 의해 왜곡되는 조국의 이미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많은 한국인에겐 잊힌 존재다.

 


정씨가 서영해 평전을 펴낸 계기를 설명하려면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그는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국학자료원)를 출간했는데, 여기엔 5쪽 분량으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서영해의 유족이 정씨를 찾아왔다. 정씨는 유족으로부터 서영해 선생 이야기를 듣다가 평전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영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유럽 대표’였는데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진 적이 거의 없었어요. 책을 쓰면서 그분의 삶을 살피니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어떤 사심도 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에요.”

 


경북대 불어교육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정씨는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일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역사학 논문을 발표했고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그는 “내 몸에 역사가의 DNA가 흐르는 것 같다. 계속 자료를 뒤지고, 글을 쓰게 된다”며 웃었다. 이어 “올해가 3 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시 들여다봤으면 한다”며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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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역사의 덤불 속에 가려진 서영해를 발굴하며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



28일 저녁 7교보문고광화문점 배움에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와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교보문고광화문점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었는데요긴장도 됐지만 많은 분이 자리를 꽉 채워주셔서 뜨거운 열기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저자의 알찬 설명으로 서영해 선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 있었습니다서영해 선생의 삶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한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다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습니다서영해 선생의 활동 무대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불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분이 필요했지요.

운명처럼필연처럼 평소 역사를 공부하시고 불어에도 능통한 정상천 작가가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에서 우연히 서영해 선생의 명함을 발견하고 이것이 인연의 끈이 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정상천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말을 사용하신 분은 파리에 실제로 계시고 저의 모델입니다프랑스의 고위공직자이시면서 역사학계에 많이 알려지신 분입니다파리에 공부하면서 이 분을 알게 되었고 저도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그는 누구인가?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사셨고 그중 7년 동안은 파리에서 공부를 했고, 20년은 외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완전히 역사 속에 잊혀진 분입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정의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철저히 잊혔고 제가 그분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서영해 출생지로 현재는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서 있다]

1920년에 프랑스에 갈 여력이 없었을 텐데요. 부친이 한약방을 하셔서 재력이 있어서 서영해의 유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부산 초량동에 서약국을 하셨습니다. 제가 주소만 가지고 생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워낙 부자셨고 당시에 이 일대가 서석주 옹의 땅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 근처에 태어나셨고 화교 학교도 다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교 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화교에 중학교 과정이 전 세계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내용입니다. 선생은 부산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서영해와의 만남

그렇다면 서영해 선생은 왜 상해를 가게 되었을까요. 16살 때 3.1만세운동을 참여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밤참 먹는 재미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일제 탄압의 부당함으로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제가 휴직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명함을 보고 이 분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엄청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일부 자료를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잊혀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제목으로 서영해 선생을 5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임정의 유럽 외교를 담당한 외교관

서영해 선생은 1929년도에 호텔 드 상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호텔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5~7만 원 정도 하구요. 호텔에 찾아가면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방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노선 차이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연애할 때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서영해 선생의 부인도 오스트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제네바에 국제연맹 활동으로 6개월 동안 동거동낙한 후 19335월 말 파리에 와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정치적인 노선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김구 선생은 어떻게 우리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분단된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과 서영해 선생은 친밀한 사이였는데요. 김구 선생이 서영해에게 백범일지를 주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생에게 라고 적어 주었습니다. 서영해는 조소앙 선생 다음으로 백범 선생에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걸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가, 서영해

 

임시정부가 고려통신사에 재정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 원고를 기고하고 원고료 받아서 고려통신사를 이끌어갔습니다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서영해 선생은『거, 불행의 원인을 집필했고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다가 서영해의 역사소설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선전, 외교활동이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주변이라는 말을 빼고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집트 여성 운동가가 만든 잡지인 이집트 여인에도 서영해 선생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체코, 프라하까지 활동 범위가 넓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스 수아> 특집 기사에 실렸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서영해 선생은 파리에 미술 공부하러 온 엘리자를 만나 빈 시청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엘리자는 타오라는 갤러리를 빈과 이탈리아에 운영했습니다두 분의 유일한 혈육은 스테판입니다.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죽기 전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언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파리에 있는 출판사에 '서링하이(서영해의 중국식 이름)'를 아는지 찾아봤다고 합니다. 스테판은 2013년에 투병 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수지에게 책을 써서 꼭 혼을 풀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상천 작가가 사무실에 스테판 사진을 걸어놓고 책 집필에 열정을 다하셨다고 하시네요)

수지왕은 2017년에 3주 정도 한국에 서혜숙(서영해 6촌 후손) 선생 댁에 머물면서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방문하고 부산에도 찾아갔습니다. 스테판의 딸 수지 왕과 스테파니가 47일 한국에 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면 스테판이 성이 왕 씨가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식닝 왕이라는 중국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어 성이 바뀌게 됩니다.


 서영해 선생의 마지막 생애는 미스테리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사료실장이 1948년도에 상해 한인들 연구하면서 서영해 선생의 사진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상해 인성학교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졸업사진이 마지막 추정 기록입니다. 마지막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야 할지 계속해서 발굴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에 묻힌 서영해 선생이 지금이라도 후손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이외 많은 독립운동가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

이날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서영해 선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과 

정상천 작가가 책 출간하기까지 쏟아부은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은 부산 독자를 만나러 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 '번개와 천둥' 현지어로 출간




부산 문단의 원로 이규정(79) 작가가 지난해 펴낸 역사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이 최근 몽골어로 번역돼 몽골 현지에서 출간됐다.

소설가 이규정 씨는 "경남 함안 출신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1883~1921)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번개와 천둥'의 몽골어 번역판이 지난 3월 몽골에서 출간됐다"고 18일 밝혔다. 번역은 울란바토르대 강사이자 총장 비서인 다쉬체벨마 씨가 했다.

산지니출판사에서 나온 '번개와 천둥'은 대암 이태준의 불꽃 같은 삶을 생기 넘치는 문체로 되살린 역사인물소설(본지 지난해 3월 14일 자 14면)이다. 이태준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교(현재의 연세대 의과대학)를 졸업한 이태준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눈을 뜬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1914년 몽골로 가게 된 그는 몽골을 휩쓸던 성병을 퇴치해 몽골 민중의 사랑을 받는다.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했으며, 이 나라 최고 훈장까지 받은 그는 현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1921년 러시아 군대(백군)에 의해 피살된다. 38세에 타계한 그를 기리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다.

'번개와 천동'의 몽골어 번역은 안경덕 몽골종교문화연구소장이 주도했다. 안 소장은 "한국과 몽골의 문화교류 확산을 모색하던 중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을 몽골에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침 이규정 선생의 '번개와 천둥'이 있어 지난해부터 번역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이태준 선생의 모교인 연세대 의대의 기독교인 교수님들이 번역 사업 취지를 높이 사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며 "초판은 500부를 찍었는데 앞으로 몽골의 각급 학교에서 독후감 대회를 여는 등 이 책의 보급과 활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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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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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규정 선생이 친필 사인을 한 '번개와 천둥'이라는 책을 보내주셨다. 몽골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의사 대암 이태준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실화소설이다. 분주한 가운데 독서를 미루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편 어느 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탓에 뜬눈으로 새벽기도를 드리는 일까지 생겼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몇 시간 만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동이지만, 한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활자 속에서 생생하게 마주하며 느껴 오는 감동과 아픔이 나 자신을 향한 반성과 뜨겁게 교차하는 독서였다. 

항일투사 이태준 실화소설 
이규정 '번개와 천둥'에 감동 

몽골의 야생마 타키처럼 
순치되지 않는 삶 살아 
선비이자 민족의 '대의인' 
지금 우리 모습 되돌아보게 해


대암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출생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아 신간회와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서도 활동했다. 1912년, 중국 난징 망명을 거쳐, 1914년 선생은 독립군을 양성하자는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갔다. 당시 그곳에서 창궐하던 매독으로 고통당하던 민중들의 참상을 보고 헌신적으로 치료활동을 펼쳐 몽골인들에게 '신의(神醫)'라고 불렸다. 또한 선생이 세운'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은 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이 조달되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그 후에도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던 중 1921년, 그가 38세가 되던 해 일본 장교를 참모로 둔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피살됐다. 

우리 정부는 이태준 선생에게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으며 2000년 7월에는 재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이태준 기념공원'을 몽골 울란바토르 시에 세웠다.

이규정 선생은 2001년 몽골 여행을 갔다가 한국인 안내자의 소개로 이태준 기념공원에 들르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민족의 아픔을 껴안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태준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삶이 가슴을 적셨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태준 선생은 유학을 깊게 공부했고 학문으로 익힌 높은 뜻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해 실천한 분이다.

공자가 인간을 분류한 종류 중에 향원(鄕原)이라는 것이 있다.'향원'은 내 집에 기침소리를 내며 들어오지 않아도 조금도 유감이 없는 친밀감과 믿음을 주는 사람이며, 자기 주변에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게 지내는 사람을 두고 가리키는 칭호라고 한다. 향원으로 사는 것이 한 사회 일원으로서 더 이상 흠을 잡을 수 없는 세련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 향원들이야말로 '덕을 해치는 사람들'이라며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라고 강하게 분노를 했다고 한다. 공자가 향원을 미워한 이유는 겉으로는 신의가 있고 옳은 행동을 하며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결코 성인의 도리를 행할 수 없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세상에 맞게 살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부류라는 것이다. 

이태준 선생이야말로 공자가 말하는 '진짜 같은 가짜'인 사이비가 아닌, 배우고 닦은 선비 정신을 진실하게 살아낸 진정한 인격자이자 우리 민족의 대의인(大義人)이다.

이태준 선생은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섰고, 가족의 안전도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지원하는 일보다 우선일 수 없었다. 생전에 이태준 선생이 좋아했다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몽골의 야생마 타키는 현실에 끝내 순치되지 않는 삶을 살다간 그를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황영주 | 부산일보 | 201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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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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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神醫·조선 義士’ 이태준 삶 그리다


▲ 번개와 천둥 이규정_산지니_328쪽_1만3천원


몽골의 신의(神醫)이자, 조선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을 그린 역사 인물 소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다. 몽골인들은 이곳에서 매독이 창궐했던 1910년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대암(大巖)라는 호를 가진 조선인 의사 이태준 선생을 기린다.


몽골에서 ‘신의’라고 불리던 이태준 선생은 타지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에 묵묵히 참여한 숨겨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몽골에서 개업한 병원은 독립운동의 거점 중 하나였고, 상해 임시정부는 선생을 군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국내 자료는 현재 학술논문과 아동서 정도뿐이다.

이 책은 의사, 독립운동가, 그리고 신념을 갖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이태준 선생을 그려냄으로써 오늘날 한국을 가능하게 한 우리의 선조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왜경을 피해 한양을 도피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독립운동에 대한 다짐을 굳히는 계기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만남, 혈혈단신으로 도착했던 중국 남경에서 보다 원대한 독립운동의 꿈을 품고 동지들과 몽골로 떠나는 여정, 몽골에서 우연히 매독 환자를 발견한 일 등 그의 삶의 전환점들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안창호 선생은 갓 의술에 길로 들어선 이태준에게 의사(醫師)만이 아니라 의사(義士)로도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또 소설은 심리에 대한 묘사를 구체화해 독자가 역사적 인물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몽골에서 치료한 첫 환자이자 진료 보조자가 된 베르테는 어느 날 선생에게 몽골에 사는 독특한 야생마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타키’는 순치되지 않는 야생마이기에 ‘말과 비슷하나 결코 말이 아닌 짐승’이라고 한다.

선생은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통치 아래 고분고분해진 조국의 벼슬아치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긴다. 이후 타키는 실제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아내와 광활한 몽골 고원으로 한나절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고된 생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이태준 선생에게 힘이 된 것 중 하나는 신앙이었다. 소설 속 이태준 선생은 성경 중 잠언의 ‘정의를 굳게 지키면 생명에 이르지만 악한 일을 좇으면 죽음을 불러들인다’라는 구절을 되새긴다.

소설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독립운동이나 의사로서의 활동과 이어져 있는 지 살필 수 있어 시대적 배경이나 한 인간의 삶을 단순화하지 않으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김장선ㅣ경기신문ㅣ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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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신의(神醫)이자 조선의 독립운동가,

우리의 선조 이태준을 기억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몽골인들은 매독이 창궐했던 1910년대에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한 조선인 의사를 기린다. 그러나 몽골에서 ‘신의’라 불리던 이태준 선생은 타지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에 묵묵히 참여한 숨겨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선생이 몽골에서 개업한 병원은 독립운동의 거점 중 하나였고, 상해 임시정부는 선생을 군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태준 선생에 대한 국내 자료는 현재 학술논문과 아동서 정도뿐이다.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은 의사, 독립운동가,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선생을 그려내, 엄연히 오늘날의 한국을 가능하게 한 우리의 선조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대암(大巖)’이라는 호를 가진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청년기에 선생은 지인과 함께 함안 지역 내 만세운동을 조직하려다 계획이 발각된 후,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상경했다. 세브란스 의학교 2기 졸업생인 선생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던 때에 안창호 선생을 치료했고, 그 연유로 왜경들에게 쫓기게 된다.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가 몽골로 떠난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도움으로 1914년 후레라는 지역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었다. 이곳이 많은 몽골인 환자들을 치료하며 중국과 몽골에서 활동하는 지사들을 보살피고 자금을 확보하는 거점이 된다. 하지만 선생의 활동은 몽골 내로 한정되지 않았다. 임시정부에서 맡긴 임무를 수행하며 중국을 드나들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 제조기술을 보유한 헝가리 청년을 의열단 쪽에 소개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독립운동과 관련된 임무를 치르기 위해 또다시 중국으로 향하던 중, 선생은 당시 몽골을 침략한 제정 시기 러시아 군인 출신 운게른 남작의 부하들에게 붙잡혔고, 결국 한 일본인 병사의 총에 운명하였다. 이때가 1921년, 갖은 ‘번개와 천둥’으로 점철된 생을 선생은 38세의 창창한 나이에 마감하였다.


실을 넘어 진실을 비추는 역동적인 이야기


역사 인물 소설은 자칫 사실관계의 나열식 서술로 지루해질 수 있지만, 『번개와 천둥』에서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구성한 원로 작가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선생이 왜경을 피해 한양을 도피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독립운동에 대한 다짐을 굳히는 계기였던 도산 선생과의 만남, 혈혈단신으로 도착했던 중국 남경에서 보다 원대한 독립운동의 꿈을 품고 동지들과 몽골로 떠나는 여정, 몽골에서 우연히 매독 환자를 발견한 일 등 이태준 선생 삶의 전환점들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안창호 선생은 갓 의술의 길로 들어선 이태준에게 의사(醫師)만이 아니라 의사(義士)로도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대암, 그대는 백성의 질고(疾苦)를 가엾게 여겨 의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의사(醫師)를 넘어 나라를 구하는 의사(義士)로도 살아야 해요. 의사(義士)란 정의에 죽고 정의에 사는 사람 아닌가? 이것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리요 정의이네. 처음 만났을 때도 말한 것 같지만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네. 대암 같은 인재는 백성들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의술에도 봉사해야겠지만 백성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정신적 의술도 발휘해야 하네. 대암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란 뜻이네. (…) 대암을 보니, 나와 함께 이 나라를 살릴 동지로 일하고 싶어 하는 소리네.” (…) 태준은 도산의 그러한 제의, 나라 살릴 동지란 말이 너무 반갑고 영광스러웠다.

_「경성 탈출」 중에서

또한, 저자는 심리에 대한 묘사를 구체화해 독자가 역사적 인물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몽골에서 치료한 첫 환자이자 진료 보조자가 된 버르테는 어느 날 선생에게 몽골에 사는 독특한 야생마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타키’는 순치되지 않는 야생마라 “말과 비슷하나 결코 말이 아닌 짐승”이라고 한다. 선생은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통치 아래 고분고분해진 조국의 벼슬아치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긴다. 이후 ‘타키’를 실제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아내와 광활한 몽골 고원으로 한나절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고된 생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이태준 선생에게 힘이 된 것 중 하나는 신앙이었다. 소설 속 이태준 선생은 성경 중 잠언의 “정의를 굳게 지키면 생명에 이르지만 악한 일을 좇으면 죽음을 불러들인다”는 구절을 되새긴다. 이태준 선생에게도 감명을 준 안중근 의사 또한 천주교 신자였을 만큼, 이 시대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기독교와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간단치 않게 얽혀 있었다.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은 선생은 처음에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함께 계획했던 지인의 권유와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기독교를 접했다. 소설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독립운동이나 의사로서의 활동과 이어져 있었는지 살필 수 있어, 시대적 배경이나 한 인간의 삶을 단순화하지 않으려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바위처럼 꿋꿋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해낸 이의 삶

환자들에게 이태준 선생은 치료를 위해서라면 말을 타고 먼 길도 달려가는 의사였으며,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료들에게는 몽골이라는 드넓은 타지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지표’였을 것이다. 단단한 바위는 세월의 풍파를 견딘다고 하지만, 『번개와 천둥』을 통해 우리는 이태준 선생이 ‘인내’를 넘어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며 시대를 ‘살아낸’ 인물임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동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그의 삶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번개와 천둥’을 헤쳐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이규정

경남 함안 출생. 1977년 단편 <부처님의 멀미>를 월간『시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치우』등 9권과 장편소설, 동화집, 이론서, 산문집, 칼럼집,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현재 부산 원로 민주인사 단체인 민족광장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 활동으로 천주교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일붕문학상, 부산시문화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요산문학상, PSB(현 KNN)부산방송 문화대상, 가톨릭대상, 이주홍문학상,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2002년에 정년퇴임했다.


차례 보기

『번개와 천둥
소설 대암 이태준

이규정 지음 | 문학 | 신국판 변형 | 328쪽 | 13,000원
2015년 3월 10일 출간 | ISBN :978-89-6545-282-9 03810

1910년대 몽골에서 독립운동과 의사로서 활동했던 대암 이태준을 조명하는 장편소설. 먼 타지에서 자신의 본분을 묵묵히 다해낸 선생을 의사, 독립운동가, 신념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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