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9.05.20 독립운동 관련 도서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2. 2019.04.22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_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저자 정상천 선생님 출연
  3. 2019.04.16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와 함께하는 따뜻한 커피 한잔
  4. 2019.04.11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 : 부산박물관 서영해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3)
  5. 2019.04.04 [국제신문]-[문화] 뒤늦게 조명받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6. 2019.04.02 [부산일보]-[문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7. 2019.04.01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저자 정상천 작가님과의 만남
  8. 2019.03.27 [행사알림]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1)
  9. 2019.03.27 [세계일보]-[문화] ‘파리의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전기 나왔다
  10. 2019.03.27 [OBS NEWS]-[문화] [새로 나온 책] 독립운동, 그 위대한 여정
  11. 2019.03.25 OBS뉴스 '새로 나온 책'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소개되었습니다!
  12. 2019.03.20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MBC 다큐멘터리 방영!
  13. 2019.03.04 TV책방북소리, 박태근 MD가 추천하는<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14. 2019.03.04 [국제신문]-[문화] 유럽서 27년간 고군분투한 부산 출신 ‘임정의 막내’
  15. 2019.03.04 [국민일보]-[시사] “美에 이승만 있었다면 유럽엔 서영해 있었다”
  16. 2019.03.04 [한겨레신문]-[문화 책과 생각] 3월1일의 밤, 횃불은 무엇을 꿈꾸었나
  17. 2019.02.28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저자와의 만남
  18. 2019.02.25 [내일신문]-[신간]『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무대에서 조선독립을 알리다
  19. 2019.02.22 [서울신문]-[그 책속 이미지] 펜을 든 동양 소년, 독립을 외치다
  20. 2019.02.22 [매일신문]-[서평]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 펴냄
  21. 2019.02.21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1)
  22. 2019.02.21 [광주일보] 3·1절 100주년 앞두고 ‘독립운동’ 서적 봇물
  23. 2019.02.19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24. 2019.02.19 [한국일보] ‘잊어진 독립운동가’ 파리의 서영해
  25. 2019.02.18 [뉴시스] 100주년, 책으로 되새기는 3·1운동

3.1 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도서관협회에서 독립운동 서적을 정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총 4가지의 기준으로 목록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_독립운동가가 직접 저술한 서적
    _독립운동 관련 저명 서적
    _독립운동가 평전
    _여성독립운동가 관련 서적

 

*도서 목록은 한국도서관협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바로가기

 

이 목록 중 독립운동 관련 참고도서 목록에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를 담은 <나는 나>가 올라있네요.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_<나는 나> 中

영화 <박열> 중 가네코 후미코

 

 

<나는 나>의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의 정치적 동지이자,

남편이었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의 책도 목록에 있습니다.

 

 

 

이번 목록에 아쉽게 오르지 못했지만,

산지니에서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출간되었습니다.

 

부산 출생으로, 임시정부의 유럽 외교관으로 활동했지만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있었던 서영해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책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목록을 보니, 독립운동과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여기에는 낯선 이름도 많이 보이는데요.

그만큼,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3.1절과 임시정부 수립일이 지나고,

독립운동가를 돌아보는 열기가 한풀 꺾인 듯합니다.

한때의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겠습니다.

 

참고로,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서영해 선생님 전시

 "서영해_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가 6월 9일까지 열리네요.

아직 안 가보신 분들은 남은 기간 중에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산지니 인턴의 서영해 전시 관람 후기_클릭!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에디터날개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저자 정상천 선생님께서 출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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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라파 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201213일 아침 남프랑스에서 제일 큰 항구인 마르세유에 하륙할 때다. 대저 나이 스무살 전에는 어찌 그렇게도 간이 크며 어렵고 무서운 것이 없었는지 따뜻한 부모 슬하에 이별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흉중에는 깊이 남모를 천진한 어린 포부를 가지고 용맹스럽게 세계 정복을 떠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 27년간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을 넘나들며 우리 독립의 정당성을 알려온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남긴 자필 유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다고 할만큼 우리 독립운동가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인데요.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주목을 받고 계시죠. 독립운동가 서영해. 우리에게 그 잊힌 기억을 일깨워주실 분을 우리 문화시대 초대석에 모셨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저자.

 

어떤 마음이 들어서 책까지 쓰게 되었나요?

-불 근대관계 연구 우연히 어떤 문서에 서영해라는 한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 명함이 있었다는 것도 그동안 몰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대표라는 것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서영해 선생 관련 자료를 복사해서 국내에 가져왔습니다.

그 후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라는 책 집필하면서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이름으로 5페이지 정도로 서영해 선생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을 유족들이 보고 접촉해와서 지난 2월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벌이신 독립운동에는 어떤 영역이 있었나요?

서영해 선생은 1923년에 고등학교 과정 졸업하고 1926년부터 임시정부를 대변하였습니다. 1927년에 집안으로부터 유학 송금이 끊기자 포도농장 인부, 식당 종업원, 도서관 사서 일을 했습니다.

사서로 일하던 당시 어떤 기자가 한국은 미개하다. 일본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라고 쓴 기사에 반박 기사를 쓰며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8년에 임시정부의 지시로 언론기관인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숙소인 호텔 드 상리를 주소지로 하며 본격적인 언론, 문필활동, 외교활동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국제회의에도 참여하셨습니다. 유럽이 세계무대의 중신일 때, 제네바 국제연맹, 파리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 반파시스트 회의, 작가회의 등 임시정부의 유일한 공식 대표로서 유럽에서 개최되는 각종 회의에 참석해서 일본의 식민지 피폐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활동을 하셨는데 잘 알려지지 않으셔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서영해 선생께서 유럽에서 벌인 많은 활약, 활동들 참 놀랍고 이 사실이 이제야 밝혀진다는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국악방송에서 서영해 선생님을 최초로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셔서 너무나 감격하고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도 하늘에서 기쁜 모습으로 방송을 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들으시면서 같이 가슴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상천 선생님이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 4월 11일에 방송에 출연하셔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어떤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셨는지,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우리나라의 독립에 기여한 바는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정상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수십 년간 많은 노력을 해오신 서영해 선생님의 삶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시작으로 서영해 선생님을 비롯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업적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어떤 희생도 무릅쓰지 않은 것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맡은 바였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그분들을 가슴에 새기고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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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여 알라딘에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추천도서를 포함하여 책을 구매하면

 상해임시정부 커피잔과 받침을 증정하는데요.

산지니에서 펴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이벤트 도서에 포함되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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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91326&start=welcomepop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박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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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불대한민국임시정부대표'라고 표시되어 있는 서영해의 명함에서 착안한 현수막이네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신 전시 기획 담당자분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서영해의 삶을 간략하게 요약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수지와 스테파니가 등장하고 많은 분들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좌:수지,우:스테파니(서영해 선생님의 손녀들)

 

 

 

 

 

 

서영해 선생님의 유일한 혈육 스테판과 그 자녀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속에도 등장하는 서영해 선생님의 후손들입니다. 수지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의 기록물을 유심히 보고 있는 스테파니

 

 

학예사의 친절한 설명을 전해듣고 있는 수지와 스테파니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한글로 기록된 기록물을 읽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우리나라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학예사의 설명을 듣는 수지와 스테파니

 

 

 

 

 

 

 

서영해 선생님의 책상을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정말 서영해 선생님이 앉아 계셨던 것처럼 그 시대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네요.

 

 

 

좌: 보베 리쎄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우: 리쎄 졸업반 때의 모습. 아랫줄 우측에서 두 번째가 서영해

 

 

류영남 선생님이 기증하신 서영해 선생님의 기록물들입니다. 유럽과 상해 등지에서 활동하신 서영해 선생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한국에 계신 서영해 선생님의 후손 분들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산지니X공간에서 열린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아시나요? 에도 직접 찾아와 주셨는데요. 이렇게 다시 뵈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관련 포스팅을 볼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자필로 남긴 여러 기록물들입니다. 류영남 선생님께서 얼마나 소중히 보관하셨는지 짐작이 가네요. 아주 오래되었지만 잘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의 서영해

 

 

 

 

 

 

그렇게 수지, 스테파니와 함께하는 특별전 관람이 끝났습니다. 수지는 할아버지인 서영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모든 자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수집하여 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서영해 특별전 포스터

 

 

 

시민들이 직접 채운 태극기

 

 

 

 

 

 

 

 

특별전을 관람하기 전에, 또는 관람 후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함께 읽어 보아요.

미처 전시하지 못한 자료와 일화가 모두 담겨 있답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 | 판 |  16,000원 | 

 9788965455790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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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부산박물관서 11일부터 특별전

 

 

- 외교·소설로 일제의 침략 알려
- 서신·사진 등 130여 점 전시
- 강연회·음악 공연도 준비


오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부산박물관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린다. 임시정부의 주프랑스 대사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서영해 선생을 기리는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가 이날 시작해 6월 9일까지 개최된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의 서영해 선생. 부산박물관 제공

서 선생에 관한 소식은 지난해 연말부터 적지 않게 알려졌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서 선생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다. 밀정에게 총을 맞은 백범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진을 통해 서 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2월 서 선생의 독립운동기를 담은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가 발간돼 본격적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먼저 서 선생에 관해 소개하면 1902년 부산 초량의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정에서 활동했다. 1920년 프랑스로 간 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침략과 조선의 참모습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34년 임시정부의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45년 2월 프랑스 대사로 공식 임명됐으며 1936년 9월 브뤼셀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국제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한국 전래민담 ‘거울, 불행의 원인’, 단편소설 ‘구두장수의 딸’로 조국의 독립과 우리 역사·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서 선생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그를 단지 독립운동가로 한정하기에 재능이 너무 많았다. 서 선생은 해방 후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정치 혼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등을 지켜보다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부인과 함께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 들렀다가 우여곡절 끝에 생이별했고 1956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1937년 12월 서영해 선생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

서 선생에 관한 재조명 작업은 지난해 관련 유품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앨범, 프랑스 언론 기고문, 임정과 주고받은 서신 등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695점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됐고 이번 전시에 130여 점이 공개된다. 유품은 부인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과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 경남여고 역사관에서 관리하다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번 특별전은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파란만장했던 일생과 치열했던 독립운동으로 구성됐다. ‘영해嶺海, 태산과 그 깊은 바다’로 시작해 ▷‘압록강 철교 넘어 상하이, 파리로’ ▷‘임시정부 주프랑스 특파위원 서영해’ ▷‘귀국 후의 활동’ ▷‘결혼 그리고 영원한 이별’ 순으로 진행된다. 테마별로 서 선생과 관련한 유물 영상 사진 자료 등이 입체적으로 연출된다.


개막식은 오는 11일 오후 4시 부산박물관 부산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오후 1시30분 부산박물관 대강당에서 ‘3·1 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제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초청강연회와 부산시립예술단의 기념 음악회가 펼쳐진다. 특히 이날 서 선생의 손녀 수지와 스테파니가 박물관을 방문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두 손녀는 서 선생과 파리로 유학 온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스테판의 딸이다. 서 선생은 2차 대전 발발로 엘리자와 만날 수 없게 됐고 부산으로 돌아와 결혼한 황순조 씨와도 뜻하지 않게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손녀들은 2017년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찾은 후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부산에 온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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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습니다.”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기획과장이 올해 펴낸 그의 저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특히 부산 출신이기도 한 서영해 선생에 대한 재조명이 부산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서 선생, 3·1운동으로 수배 받아

파리로 건너가 임시정부 외교 활동

“市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한 서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과 함께 ‘임시정부 외교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서 선생은 임정이 독립의 수단으로 외교를 염두에 두고 기획해 키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정 과장은 부산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지난 28일 부산을 찾아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서 선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서 선생은 1902년 1월 13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한다. 당시 서 선생의 나이 겨우 17세로 ‘임정의 막내’이기도 했다. 서 선생은 이듬해인 1920년 12월 임정의 외교활동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고, 1934년 4월 2일 임정의 주불외무행서에 임명된다.

 

 

 

서 선생은 파리에서 ‘고려 통신사’를 세워 언론활동을 하는 등 27년 동안 유럽에서 언론가, 문필가, 외교가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해방 후 서 선생은 이승만이 아닌 김구의 노선을 추종한 데다, 정부 수립 후 상하이로 건너가 실종되면서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사람들에게 잊혔다.

 

 

정 과장은 2000년 파리에서 한-프랑스 경제 관계 연구를 위해 1년 동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다가 서 선생을 처음 발견했다. 정 과장은 “당시 Seu Ring-Hai라는 명함이 첨부된 문서를 처음 보게 됐다”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로 표기된 서 선생의 명함을 봤을 때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정 과장은 이 때부터 프랑스 현지에서 서 선생 관련 자료를 수집하거나, 유족들과 연락하는 등 본격적인 서 선생 연구를 시작했다. 정 과장은 “오랜 기간 동안 서영해라는 인물에 빠져 있다 보니 가끔씩 서 선생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 선생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산사람 DNA’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서 선생과 같은 훌륭한 분을 더 많은 부산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부산시 등에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사진 정종회 기자 jj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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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지난주 목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이 열렸습니다.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의 저자이신 정상천 작가님이 직접 오셔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에 대해 강연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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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X공간에는 작은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강연자 분이 쓰신 책이나 산지니 출판사 신간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산지니 출판사 도서 목록과 팜플렛은 자유롭게 열람하고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산지니X공간에서 강연하는 정상천 작가님 )

 

오랫동안 외교부 공직에 있으셨던 정상천 작가님은 주말마다 역사 공부를 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명칭은 정상천 작가님의 롤모델이자 실제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에게서 따 온 것입니다.

 

 

 

 

 

 

 

 

 

(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음)

 

( 산지니X공간에서 정상천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 )

 

부산에서 가장 큰 한약방 중 하나를 운영하는 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서영해 선생은 부친의 재력 덕에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프랑스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에는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어려서 화교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살면서 20년 동안 외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임시정부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인재가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이 불어를 활용한 외교 업무를 도맡았습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 초등, 중등, 고등 수준의 학업과정을 6년 만에 마칠 정도로 서영해 선생은 매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불어 실력은 매우 유창했고,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과 어울릴 만큼 인간관계도 좋았다고 합니다.

 

 

 

 

 

 

 

 

 

 

(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파리의 호텔 드 상리의 객실 )

 

( 열정적인 강연을 하고 있는 정상천 작가님 )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 파리의 호텔 드 상리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여 국제 언론에 대응하였습니다.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의 부당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아주 작은 객실 한 칸에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홀로 해낸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의 임시정부 시절 명함, 서영해 선생이 받은 독립 유공 훈장)

 

 

( 서영해 선생과 이승만의 모습 )

 

정상천 작가님은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서영해의 명함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상천 작가님이 서영해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자, 서영해가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만큼 서영해는 임시정부 외교의 주축이었습니다. 같은 외교 업무를 하며 친밀하게 지내던 이승만과는 후에 정치적 의견 차이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이집트 여인』에 소개된 서영해의 소설

 

 

 

임시정부에서 따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은 스스로 돈을 벌어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는 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아 고려통신사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가 쓴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의 소설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의 소식이 대부분 전해졌다면, 서영해는 세계의 언론에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알린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 한국에 돌아온 서영해 선생과 그의 가족들 )

 

( 류영남 선생님이 서영해 선생을 널리 알려 달라는 황순조 여사의 부탁을 회고하는 장면)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엘리자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황순조 여사와 결혼하였습니다.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기 전 서영해 선생을 찾았지만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정상천 작가님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통해 서영해 선생의 삶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분들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음 출판도시 인문학당은 4월 18일 오후 6시 산지니X공간에서 열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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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은 최근에 들어서야 정상천 작가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외교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영해의 뜨거운 삶을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작가님과 함께 짚어가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일시: 3월 28일 (목) 저녁 6시 30분

 

장소: 산지니 X 공간

 

*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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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공무원 역사학자 정상천 박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펴내

 

 

정상천 작가(왼쪽)와 서영해 선생의 6촌 종손녀 서혜숙·김기영 부부. 서씨 부부는 저자가 서영해 전기를 집필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다.

 

최근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 인쇄에 들어간 화제의 신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를 쓴 정상천(57) 작가를 만나 책을 쓰게 된 경위와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 1902∼?) 선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였다. 정 작가는 현직 공무원이다. 일반적인 전문 작가도 아니고 재야사학자는 더구나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5년,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통상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현재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말에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역사 배달부’를 자처한다. 

 

 

저자 정상천은 공무원으로서보다는 지금까지 총 5권의 역사서 저술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1994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박사를 마친 튼튼한 학문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에 저술한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프랑스 외교 사료를 통해 본 한·불 관계 비사’(국학자료원)는 그의 세 번째 저술로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120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 중 역사적 의의가 있으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으로 집필되었으며, 관련 분야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부산에 있는 출판사 ‘산지니’가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하였다. 정 작가는 파리1대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수집한 서영해 관련 사료를 참조하여 2013년 출간한 그의 저서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소제목으로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신간에서는 서영해의 친척들로부터 받은 자료,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영해문고 자료,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영해의 유품과 유고, 앨범 등 폭넓은 자료들이 참고 되었다. 촘촘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02년 부산 초량동의 한약방 집 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난 서영해는 3·1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소위 ‘임정의 막내’가 된 서영해는 임정 요인들의 권유로 미국보다는 유럽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보내어져서 불어에 매우 능통한 외교관이자 언론인, 문필가로 육성되었다. 서영해는 임정이 ‘기획한’ 유학생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하였으며, 20여 년간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한 유일한 외교관이었다. 그는 7개 언어를 구사했다. 그래서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다’라는 유명한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서영해(가운뎃 줄 안경) 선생이 1956년까지 생존해 있었음을 확인하는 사진. 임시정부 부속학교였던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졸업 사진이다.

 

 

정상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서영해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국내에서는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서영해는 17세 나이에 부산지역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하였습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다가 임정요인들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1947년 5월에 귀국하기까지 27년을 해외에서 지냈고, 귀국 후에도 국내 체류기간이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그를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1956년까지 상해조선인민인성학교에 교사로 근무한 후 북한으로 갔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서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애써 외면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임정의 열강에 대한 외교라면 우리는 모두 이승만 박사만 알고 있는데, 서영해는 유럽에서 어떤 외교활동을 하였는지?

 

 

“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1929년 9월 28일 서영해는 파리 5구에 위치한 자신의 숙소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합니다. 물론 임정의 지시로 설립했지만, 재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소개, 일본 상품 배척, 일본의 외교와 선전을 방해하는 활동을 목표로 파리를 중심으로 강연, 언론 기고, 책자 발간 등의 활동을 통해 외교독립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개최된 많은 국제회의에 임정의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나라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탈의 폐해에 대해서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서영해는 1929년 7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2회 반제국주의자 세계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국제무대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12명의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임정은 서영해에게 프랑스 정부에 대한 항의와 더불어 석방교섭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언론에 배포한 호소문 ‘유럽의 자유양심에 고함’을 통하여 한국인들이 일본의 야만적인 억압에 신음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일어난 도산 안창호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체포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 망명가들에 대한 환대의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하였습니다.

 

 

비록 상해임시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안창호의 석방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체포된 12명중 9명은 석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33년 1월초에 이승만이 미국에서 제네바에 도착하여 국제연맹을 상대로 독립청원서 제출 등 외교활동을 전개할 때 그와 함께 6개월간 숙식을 함께하며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서영해는 1936년 9월 3일부터 6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회 만국평화대회와 193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2회 대회, 1935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문화 보호를 위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 등에 참석하여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사정과 독립운동을 널리 선전하였습니다.

 

 

서영해는 유럽지역에 있어서 우리 임정의 유일한 공식대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9월 주법특파위원(駐法特派委員), 우리나라의 해방이 임박해 오면서 1944년 3월 주불특파원, 1945년 3월 12일에는 명실상부한 주프랑스대사의 직위인 주법대표(駐法代表)로 임명되었습니다.” 

 

 

 

 

정상천 박사가 2월 27일 교보문고 배움홀에서 열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북 콘서트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서영해가 북한에 살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는 북으로 갔으며,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였고,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

 

 

“그는 1948년 말 유럽에서 다시 남북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부인 황순조와 함께 상해를 거쳐 프랑스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상해에 머무는 동안 중국이 공산화되는 기막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중국 여권을 가진 서영해는 부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최근 그가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임정의 부속학교)에서 1956년까지 근무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6·25 때 납북되었던 임정요인들이 상해에 있던 서영해와 연락이 닿았을 것이고, 형식적이나마 김일성의 초청을 통해 당시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장이었던 선우혁과 함께 북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북한 탈북자 중 어느 유력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서영해는 6·25 전쟁 때 납북된 임정 요인들이 살고 있던 평양 창광산 자락에 거주하였으며, 임정 요인들이 만든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노동신문에도 기고를 자주 하였고, 민주여성동맹위원장이던 박정애·허헌의 딸 허정숙과 가깝게 지내는 등 당시 북한에서도 대단한 엘리트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자료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언제 어떤 이유로 숙청당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대쪽 같은 성격에 미루어 볼 때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1963년~1965년 사이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나 삼석 특설묘지 등 다른 애국지사들이 묻힌 곳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여전히 그의 마지막은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서영해와 관련 어떤 일들을 추진할 계획인지?

 

 

“우리 역사교과서에 서영해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임정 외교의 양대 축 중의 하나를 담당했던 서영해가 유럽에서 펼쳤던 활동을 평가해서 역사 기록에 남기는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1995년에 서영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는데, 그가 1926년부터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하여 단신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노고에 비하면 전체 5등급으로 된 건국훈장 중에서 4등급인 애국장을 받은 것은 격에 맞지 않은 포상입니다.

 

 

최소한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 정도는 새로이 추서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최근에 제가 한국외교협회에서 발간하는 ‘외교’지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에서의 외교활동 평가 및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였습니다. 오는 4월 발간될 예정인데, 거기에 자세한 외교활동과 평가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등 각종 자료에 그의 사망연도가 1949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망년도 미상’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서영해의 유가족과 협의해서 ‘서영해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관련 자료 발굴과 학술적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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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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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 앵커 】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죠.
새로 나온 책, 오늘은 독립운동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봅니다.

【리포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정상천 / 산지니]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펜과 종이를 들고 독립에 앞장선 이도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외교관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 선생인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독립운동의 불모지였던 유럽에서 식민 통치의 부당함을 알리며 항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서영해 선생.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겁니다.

 

 

 

<영상취재:한정신/영상편집:김영준>

김희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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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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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 (3월 25일) 'OBS뉴스 새로 나온 책'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소개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광복을 외쳤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하였는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시작으로

 

그동안 숨겨졌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정상천 저자와 함께하는 인문학당이

이번 주 목요일 (3월 28일)에 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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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MBC 다큐멘터리 방영!

 

 

MBC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 그중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에서는 서영해의 잊혀졌던 삶을 되짚어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시청해 봅시다!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 - 100년만의 귀향 통해 해외의 독립운동사 정리


오는 4월 1일(월)부터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머나먼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영웅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특집 다큐 4부작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가 찾아온다.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영웅들은 결국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지에 외롭게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숨겨진 영웅의 후손들을 찾아,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선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보고 선조들이 다시 밟지 못했던 땅, 대한민국으로 초대한다. 배우 손현주와 허일후 아나운서를 주축으로 각 분야의 다양한 샐럽들이 사절단이 되어 직접 초대장을 전달하고, 잊고 있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촬영 중 만난 후손들과 세계 각지에 흩어진 독립운동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은 4월 10일(수)부터 MBC 1층 로비에 전시되어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iMBC 김미정 |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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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자 : (1부) 4월 1일 오후 8시 55분 

 

 

 

< 정상천 저자, 영해문고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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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3.1절과 함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들이 열렸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는 "임시정부"편이 방영됐어요.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해부터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좇는 여정은 뭉클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안으로 밖으로 항일투쟁에 힘쓴 독립운동가들. 그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많죠.

저희 출판사에도 출간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도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지만 역사 속에 묻혀진 독립운동가입니다. 

이번에 tbs시민의방송, <TV책방북소리>에서 네 명의 북벤져스들이 책을 추천하는 방송에서 박태근 MD분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추천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영해가 독립운동을 하고 상해로 넘어가 프랑스에서 활동한 내용까지 간략하게 잘 정리해서 소개해주셨어요. 




[영상바로 보기 https://youtu.be/a88-K1v3KBc]



 


서영해는 부산 출신으로 17세 3.1운동을 했고 흔히 만세운동세대로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칩니다. 서영해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후 유럽 사회에 한국을 알리기 위해 <고려통신사>를 설립합니다.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고 활동 당시 한국을 알리는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을 펴냅니다. 1부는 한국의 역사 문화와 근대 한국의 정세와 혁명을 다루고, 2부는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전통 풍습을 다룹니다. 마지막 3부는 주인공의 독립운동과 3.1운동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걸 모두 불어로 썼고 대공황 시기에 5쇄까지 인쇄가 됐다고 합니다. 지금도 책이 나온 후 5쇄까지 인쇄되는 게 힘든데요. 당시 이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책에는 서영해가 프랑스 언론에 불어로 기고한 글과 기사를 직접 번역해서 실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외무장관이었던 조소앙에게 보낸 편지와 김구 선생의 안부를 묻는 내용 등을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박태근 MD분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알차고 재밌게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머지 북벤져스분들이 소개해주신 책도 함께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언론 조명 기사]

  • 10:22:28 [국제신문]-[문화] 유럽서 27년간 고군분투한 부산 출신 ‘임정의 막내’
  • 10:02:56 [국민일보]-[시사] “美에 이승만 있었다면 유럽엔 서영해 있었다”
  • 09:30:04 [한겨레신문]-[문화 책과 생각] 3월1일의 밤, 횃불은 무엇을 꿈꾸었나
  • 2019.02.28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저자와의 만남
  • 2019.02.25 [내일신문]-[신간]『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무대에서 조선독립을 알리다
  • 2019.02.22 [서울신문]-[그 책속 이미지] 펜을 든 동양 소년, 독립을 외치
  • 2019.02.22 [매일신문]-[서평]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 펴냄
  • 2019.02.21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2019.02.19 [한국일보] ‘잊어진 독립운동가’ 파리의 서영해
  • 2019.02.18 [뉴시스] 100주년, 책으로 되새기는 3·1운동
  • 2019.02.15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_<이데일리>
  • 2019.02.14 2019 창비 <책씨앗>에 산지니 도서가 소개되었습니다
  • 2019.02.12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책 소개) (1)
  • 2019.02.12 다니엘이 나타났습니다-서영해 선생의 후손을 찾아서
  • 2019.02.08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의 정상천 저자 인터뷰_<이데일리>
  • 2019.01.24 KBS 역사 한방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소개
  • 2019.01.15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펀딩을 응원해주세요 (5)
  • 2018.12.19 [원희복의 인물탐구]서영해 문서 발굴 역사가 정상천





  • Posted by 동글동글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 /산지니 /1만6000원

     

     

    조선 독립에 일생을 바쳤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의 삶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독립 활동을 했던 서영해 선생에 관해 묻혀있던 기록은 1998년부터 15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한 저자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인 저자는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하게 공부하고 집필을 계속한 전문가다.



    책은 부산 초량의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3·1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막내’로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선 서영해 선생의 일대기를 촘촘하게 담고 있다. 개인 서영해의 이념과 사랑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언론인, 문필가, 외교관, 독립운동가 역할을 두루 해냈던 서영해 선생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임시정부와 유일하게 연락하며 27년간 고군분투한 거목이었다. 1932년 상해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사건 이후 상해에 있던 안창호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교섭을 펼치고,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침략상과 조선의 참모습을 알리는 데도 주력했다.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은 물론 이집트,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한 외교를 전개하는 동시에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한국 전래민담 ‘거울, 불행의 원인’, 단편소설 ‘구두장수의 딸’ 집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능은 조국의 독립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아낌없이 쓰였다.

     

    저자는 “큰 족적에도 불구하고 서영해 선생은 우리 기록에 남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상해로 건너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 박사가 아닌 김구 선생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서영해 선생의 삶은 다른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신산했고 굴곡졌으며, 세계사와 우리 근현대사의 격랑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제라도 그의 업적과 뜻을 기리고, 1995년 수여받은 건국훈장 중 4등급 애국장에 머물러 있는 포상도 재검토해 새로이 추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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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박은해
    국가균형발전위 정상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펴낸 정상천씨.

     그는 “나 역시 외교관으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만큼 뛰어난 외교관이었던 서영해 선생에게 이끌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천씨 제공

     

     

    프랑스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1914~1984) 이름 앞에 따라붙던 수식어는 ‘일요일의 역사가’였다. 이런 수식어가 붙은 건 그가 제도권 밖에서 역사 연구를 진행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자신을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불러 달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인 정상천(56)씨다. 정씨는 평일에는 공무에 매진하고, 휴일에는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최근엔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1949·사진)의 업적을 살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까지 펴냈다. 이 책은 서영해의 삶을 정리한 최초의 평전이다.

     


    정씨는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제강점기에 미국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다면 유럽엔 서영해 선생이 있었다”며 서영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거듭 강조했다.

     


    “서영해 선생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임시정부 외교의 양대 축이었어요. 해방 이후 ‘제1호 외교부 장관’이 됐어야 했던 분이죠. 하지만 해방 이후 (이 전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패했던) 김구 선생 편에 서면서 지금은 잊힌 인물이 돼 버렸어요.”

     


    부산 출신인 서영해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이듬해 혈혈단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임시정부의 지시로 파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유럽에 머무는 내내 일본에 의해 왜곡되는 조국의 이미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많은 한국인에겐 잊힌 존재다.

     


    정씨가 서영해 평전을 펴낸 계기를 설명하려면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그는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국학자료원)를 출간했는데, 여기엔 5쪽 분량으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서영해의 유족이 정씨를 찾아왔다. 정씨는 유족으로부터 서영해 선생 이야기를 듣다가 평전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영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유럽 대표’였는데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진 적이 거의 없었어요. 책을 쓰면서 그분의 삶을 살피니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어떤 사심도 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에요.”

     


    경북대 불어교육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정씨는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일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역사학 논문을 발표했고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그는 “내 몸에 역사가의 DNA가 흐르는 것 같다. 계속 자료를 뒤지고, 글을 쓰게 된다”며 웃었다. 이어 “올해가 3 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시 들여다봤으면 한다”며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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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박은해

     

    3·1운동 100년 맞아 관련 저작 봇물

    ‘3월 1일의 밤’ ‘촛불의 눈으로…’ 등
    1919년 되살리고 현재적 의미 짚어
    그때 ‘만세’처럼 ‘어떤 미래’ 환영할지… 

     


     

    3월1일이다. 100년 전 이날, 경성과 평양 등 7개 도시에서 대낮에 “만세!”가 터져나왔다. 한반도 전역에서 이어질 시위와 봉기의 시작이었다. “만세!”는 3·1운동을 대표한다. ‘만년 동안 이어지라’는 축원은 황제나 왕 앞에서 의례적으로 외치는 봉건적 구호였다. 그러나 1919년의 “만세!”는 달랐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바라는 희망과 환영의 외침이었다. 3·1운동도 이후 역사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왔다. 민족주의, 민중주의, 공화정을 추구한 민주주의 운동 등 여러 시각에서 해석하며 우리는 3·1운동을 알아가는 중이다. 3·1운동 100년을 맞은 올해는 3·1운동 시기를 다층적으로 복원해 내고, 2016년 가을·겨울의 촛불 시위 등 오늘의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는 책들이 눈길을 끈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3월 1일의 밤>(돌베개)은 3·1운동 시기를 세밀하고 다채로우며 폭넓게 그려내며, 당시 일어난 사건과 현상 들에 질문하고 그 의미를 찾아간다. 3·1운동은 낮, 장터, 태극기로 표상된다. 그러나 “밤의 사건이요, 산 위에서 만세 부른 사건이며 독립만세기를 휘날린 사건”이다. ‘밤’을 내세운 건 기존의 익숙한 틀로 3·1운동에 접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밤은 원근을 잠재우고 형태를 묻어버린다. 멀고 하찮았던 존재가 성큼 다가오게도 한다. 3·1운동 속 그들을 조명할 때도 ‘3월1일의 밤’에 가까운, 덜 알려진 사람들을 우선했다.” 실제로 3월1일 밤 경성에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만세 시위를 했다. 또 3월 말 경성에서, 그리고 이후 경기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밤에 산에 올라가 횃불을 든 밤샘 시위가 벌어졌다.


    3월1일 ‘독립 선언’을 하고 만세를 불렀는데, ‘독립이 돼서 만세를 불렀는지’ 아니면 ‘독립하기 위해 만세를 불렀는지’ 시위 참가자들에게 그 의미는 중층적이었다. ‘선언’은 “와야 할 미래를 당겨쓰는 언어적 양식”이었다. 또 “목표한 미래를 일궈내려는 자기 결의의 표현”이었다. “독립의 선언이 곧 독립의 현실을 구성한다는 믿음이야말로 3·1운동의 비밀이다. ‘와야 할 현실’을 ‘도래한 현실’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러한 정언명령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감염시킴으로써, 3·1운동의 대중은 그 스스로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사진 백소아 기자
    사진 백소아 기자


    권 교수는 선언·대표·깃발·만세·침묵·약육강식·제1차 세계대전·혁명·시위문화·평화·노동자·여성·난민/코스모폴리탄·이중어·낭만·후일담 등 16개의 표제어로 조선과 동아시아, 세계의 역사와 문학을 넘나든다. 3·1운동의 사상·문화적 배경을 살피고, 3·1운동의 숨은 얼굴을 복원하고, 3·1운동 전후의 문화의 변화를 3·1운동의 영향 아래 재평가한다. 권 교수는 “집필 막바지이던 어느 날 밤은 자리에 눕는데 눈물이 났다. 3·1운동에, 그 사람들에 미안해서. 내 사랑과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 죄스러워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3·1운동을 사랑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게 지났다”는 말처럼, 이 책은 10여년 사랑이 풍요롭게 결실을 맺고 있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는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논의한다. “‘만세’의 경험은 한국인들의 국가 구성과 사회 운영의 기본원리를 바꿔놓았다. 만세 이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민족주의는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일상적 원리로 부상했다. 이 원리들은 촛불과 미투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진행 중인 고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3·1운동 때 시위를 주동한 학생, 노동자, 농민은 ‘대표’를 자처한 경우가 많다. 이기훈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이때 나온 “내가 대표다”와 촛불시위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주목한다. “3·1운동은 공화와 주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시초이고, 촛불은 그 정치원리의 구현이자 정점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조교수는 “(3·1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광장에 나왔고, 그것들이 섞여서 거대한 저항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런 면에서 촛불은 3·1운동과 많이 닮았다.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저항들 중에서도 촛불만큼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한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외쳤던 경우가 없지 않았는가? 이런 다양성이 파편화되지 않고 하나로 모인 것이 3·1운동과 촛불이 공유하는 가장 유사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은 앞머리 좌담에서 ‘3·1운동’인지 ‘3·1혁명’인지 논쟁하며, ‘미완의 혁명’ ‘현재 진행 중인 혁명’이라는 시각도 내놓는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3·1혁명과 임시정부>(두레)에서 역사의 대전환을 가져온 이 사건을 ‘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는 한·일 두 나라 10명의 학자들의 5년에 걸친 3·1운동에 대한 공동 연구 성과를 담았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종 때 ‘국민’ ‘국민의식’이 등장한 과정을 추적해 독립 만세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힌다. 사사가와 노리카쓰 전 메이지대 교수는 3·1운동 만세시위 관련 6608건의 재판 판결문 분석을 통해, 일제 정치권과 사법부의 견해 차이, 그에 따라 신문 과정에서 비인간적 폭력이 더 가해진 정황을 설명한다.


    독립운동가를 다룬 책들도 출간됐다. 정운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3·1혁명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역사인)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행적을 당시의 재판기록과 신문자료 등을 통해 정리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 산지니)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한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인 서영해의 삶을 다룬다. 김구를 따랐던 서영해는 정부 수립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 뒤 행방불명됐다.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근현대 인물 한국사>(하성환 지음, 살림터)는 이념 등을 구실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다룬다.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열화당)도 친필본과 같은 판형, 세로쓰기로 한문과 한글 본이 나왔다.


    이와는 사뭇 대조적인 <원문으로 보는 친일파 명문장 67선>(김흥식 지음, 그림씨)도 있다. 이완용·송병준 등의 글을 실었다. “일제 강점기로 돌아가서 한번 살아보고,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심각하게 돌아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 겨레 모두가 해야 하는 일 아닐까? 그래야만 비로소 친일파의 문제가 말 그대로 우리 삶의 문제, 우리 겨레 미래의 문제가 되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만세!”를 부르며, 우리는 어떤 과거와 단절하고 어떤 미래를 환영하고 있는가.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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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박은해

    역사의 덤불 속에 가려진 서영해를 발굴하며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



    28일 저녁 7교보문고광화문점 배움에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와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교보문고광화문점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었는데요긴장도 됐지만 많은 분이 자리를 꽉 채워주셔서 뜨거운 열기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저자의 알찬 설명으로 서영해 선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 있었습니다서영해 선생의 삶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한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다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습니다서영해 선생의 활동 무대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불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분이 필요했지요.

    운명처럼필연처럼 평소 역사를 공부하시고 불어에도 능통한 정상천 작가가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에서 우연히 서영해 선생의 명함을 발견하고 이것이 인연의 끈이 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정상천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말을 사용하신 분은 파리에 실제로 계시고 저의 모델입니다프랑스의 고위공직자이시면서 역사학계에 많이 알려지신 분입니다파리에 공부하면서 이 분을 알게 되었고 저도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그는 누구인가?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사셨고 그중 7년 동안은 파리에서 공부를 했고, 20년은 외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완전히 역사 속에 잊혀진 분입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정의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철저히 잊혔고 제가 그분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서영해 출생지로 현재는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서 있다]

    1920년에 프랑스에 갈 여력이 없었을 텐데요. 부친이 한약방을 하셔서 재력이 있어서 서영해의 유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부산 초량동에 서약국을 하셨습니다. 제가 주소만 가지고 생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워낙 부자셨고 당시에 이 일대가 서석주 옹의 땅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 근처에 태어나셨고 화교 학교도 다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교 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화교에 중학교 과정이 전 세계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내용입니다. 선생은 부산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서영해와의 만남

    그렇다면 서영해 선생은 왜 상해를 가게 되었을까요. 16살 때 3.1만세운동을 참여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밤참 먹는 재미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일제 탄압의 부당함으로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제가 휴직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명함을 보고 이 분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엄청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일부 자료를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잊혀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제목으로 서영해 선생을 5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임정의 유럽 외교를 담당한 외교관

    서영해 선생은 1929년도에 호텔 드 상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호텔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5~7만 원 정도 하구요. 호텔에 찾아가면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방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노선 차이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연애할 때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서영해 선생의 부인도 오스트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제네바에 국제연맹 활동으로 6개월 동안 동거동낙한 후 19335월 말 파리에 와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정치적인 노선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김구 선생은 어떻게 우리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분단된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과 서영해 선생은 친밀한 사이였는데요. 김구 선생이 서영해에게 백범일지를 주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생에게 라고 적어 주었습니다. 서영해는 조소앙 선생 다음으로 백범 선생에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걸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가, 서영해

     

    임시정부가 고려통신사에 재정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 원고를 기고하고 원고료 받아서 고려통신사를 이끌어갔습니다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서영해 선생은『거, 불행의 원인을 집필했고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다가 서영해의 역사소설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선전, 외교활동이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주변이라는 말을 빼고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집트 여성 운동가가 만든 잡지인 이집트 여인에도 서영해 선생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체코, 프라하까지 활동 범위가 넓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스 수아> 특집 기사에 실렸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서영해 선생은 파리에 미술 공부하러 온 엘리자를 만나 빈 시청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엘리자는 타오라는 갤러리를 빈과 이탈리아에 운영했습니다두 분의 유일한 혈육은 스테판입니다.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죽기 전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언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파리에 있는 출판사에 '서링하이(서영해의 중국식 이름)'를 아는지 찾아봤다고 합니다. 스테판은 2013년에 투병 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수지에게 책을 써서 꼭 혼을 풀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상천 작가가 사무실에 스테판 사진을 걸어놓고 책 집필에 열정을 다하셨다고 하시네요)

    수지왕은 2017년에 3주 정도 한국에 서혜숙(서영해 6촌 후손) 선생 댁에 머물면서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방문하고 부산에도 찾아갔습니다. 스테판의 딸 수지 왕과 스테파니가 47일 한국에 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면 스테판이 성이 왕 씨가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식닝 왕이라는 중국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어 성이 바뀌게 됩니다.


     서영해 선생의 마지막 생애는 미스테리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사료실장이 1948년도에 상해 한인들 연구하면서 서영해 선생의 사진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상해 인성학교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졸업사진이 마지막 추정 기록입니다. 마지막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야 할지 계속해서 발굴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에 묻힌 서영해 선생이 지금이라도 후손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이외 많은 독립운동가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

    이날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서영해 선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과 

    정상천 작가가 책 출간하기까지 쏟아부은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은 부산 독자를 만나러 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주벌판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벌이거나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총이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정상천이 지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이런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서영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자 신분으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다.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 전역과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이른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이 같은 기록을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만나가며 재조명했다. 유고 글과 프랑스 언론 기고문, 현지 인터뷰 등을 번역해 싣기도 했다. 서영해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면면을 보게 되는 셈이다. 재조명되고 있는 서영해의 삶도 남다르지만 저자의 삶도 흥미롭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등을 거쳐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고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에 근무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공부하고 집필활동을 해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서영해의 열정적 삶이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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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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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316쪽/1만 6000원

    빛바랜 흑백사진, 서양 소년들 사이로 익숙한 외모의 동양 소년이 앉아 있다. 다부진 입매가 돋보이는 소년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 간 서영해(원 안)다. 우리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보베시의 ‘리세’에서 파란 눈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에 저항해 어떤 이는 총과 폭탄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펜을 들고 낯선 땅에 갔다.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서방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1920년 프랑스로 유학 간 청년 서영해를 그린다. 그는 임정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렸다. 불어로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인 엘리자와 결혼해 아들 스테판을 낳았고, 스테판의 딸인 수지 왕이 할아버지의 첫 전기에 추천사를 썼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서울신문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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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파리 보베시 리쎄 고등중학교 졸업반 때의 모습.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서영해.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일생을 조선독립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축 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돼 있다. 또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지은이는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 서석주의 8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적부터 총명해 '서약방의 백미'로 불렸다. 세살에 서당에 다녔고 네살 때 천자문을 떼어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학교, 화교학교를 마친 그는 일제치하에 억압받던 당시 우리 나라의 암담한 현실과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평민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집안 내력에 뭔가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이런 활동은 사회적, 민족적 현실에 대해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 전까지 1년 6개월간 상해에 머물렀다. 상해 임시정부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 중에 나이도 몸집도 제일 작아 '임정의 막내'로 불렸다. "부모님 걱정하신다. 돌아가거라." 임정 어르신들의 염려에도 서영해의 독립에 대한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임정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1919년 4월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1920년 북경으로 가서 의열단, 고려공산당, 국민대표회의 등 활동에 전념했다.

     

    임정은 국제외교무대에서 공용어인 불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서영해를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서영해는 파리 북쪽 보베시 각급 학교에 입학해 초·중·고 과정을 6년 만에 마쳤다.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한 유학만 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주불대표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그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의 유학생활의 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영해는 프랑스 유학 4년째 되던 해에 퇴학을 당할 뻔했던 일화가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선생이 "인구가 600만명인 조선민족은 매우 게을러서 조상이 전해준 문화유산까지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굴욕적 내용의 강의를 했다. 이에 서영해는 책을 집어 던지며 "조선민족은 2천만이고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육은 미개한 일이다"고 반박했던 것.

     

    조선독립을 위한 기고를 통해 프랑스 언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언론이야말로 해외에서 독립운동하기에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1929년 파리고등언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임정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게 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 스페인, 벨기에, 제네바, 체코 등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돌아다니며 강연과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서영해는 1936년 주프랑스특파원으로 임명되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가자 나치를 피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3여 년간 참여하기도 했다.

     

    이승만과 서영해는 한때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나중에 독립운동에 대한 노선차이와 개인적 성격차이로 멀어지게 됐다. 서영해는 광복후 귀국해보니 국내정세는 난장판이었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김구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 김구를 추종하던 서영해는 광복 후 국내 정치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재출국하게 된다. 서영해는 1956년 상해에서 인성학교에 근무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중국에서 병사했다는 설, 제3국으로 갔다는 설, 북한으로 가서 살다 사망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316쪽 1만6천원.

     
     


    매일신문 김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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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Y편집자입니다. 

    이번주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정리 기간이라 은근 바빴네요. 네! 텀블벅은 내일 발송될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기대해주세요.


    텀블벅 준비하기 전에 한 번 해봤던 분이 발송하는 일이 장난 아니더라 해서 정말 그럴까 했는데요. 목표금액은 달성했지만 발송 도서가 아주 많은 건 아니라서 무난하게 진행했지만 후원자가 많아서 발송해야 할 도서가 많다면 정말 전 직원이 동원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그런 날이 많았으면 하는 이 마음은 뭐죠ㅎㅎ


    오늘 아침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쓴 저자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텀블벅에 보낼 사인을 다 하셨다고 하시네요.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정말 매일매일 저자와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같아요. 아침에 출근을 알리며 알림처럼 울리는 책 소식. 반갑고 또 즐거운 아니겠어요. 책이 나온 후 아무도 기사를 써주지 않고 서점에 세일즈 포인트가 올라가지 않는다면 편집자로서 기운이 쭉쭉 빠지지요. 


    오늘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책 작업을 하면서 

    언론에 조명되지 않은 서영해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서영해는 파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 이후에 고국에 돌아와 서울에 살면서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불어를 가르쳤는데요. 일본인이 만들었던 불어교과서는 던져버리고, 본인이 직접 타이프를 직접 쳐서『초급 불어』라는 불어책을 만들어서 강의했다고 합니다. 


    불어에 있는 특유의 기호표시는 만년필로 직접 표기했다고 합니다. 우리만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서영해 선생의 굳은 의지와 집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서문에는 "일본인이 만든 교과서를 배제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교과서를 쓰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독립에 대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러고 적혀 있네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입니다.



    [서영해가 직접 작성한 초급불어, 169쪽]


    서영해가 고국에 돌아오니 자신을 파리에서 일본 대사관에 밀고하며 일본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 공공연히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친일을 빠르게 청산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때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의 업적이 아직도 후대에 전해지고 있지요. 


    "일본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했던 서영해 선생은 어지러운 국내 정세와 혼탁한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함께 완전체로 완전한 독립을 하기 바쁜데 이념과 세력 다툼으로 정치인들은 바빴으니까요.


    한때는 이승만 박사와 친했지만 정치적 이견 차이로 결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김구와 친밀해졌습니다. 서영해의 책과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는『백범일지』에 김구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백범일지』원본이라고 하네요. 거기에 " 서영해 지제 혜존, 무자원단 백범 김구"

    "뜻을 같이하는 동생 서영해에게 이 책을 드리니 간직해 달라, 1948년 새해 아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범일지 친필서명(백범이 서영해에게), 171쪽]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이 책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정리한 내용이 책에 정성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 남한단독정부가 설립되지 않고 통일된 하나의 정부가 세워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서영해는 다시 프랑스로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역사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과거를 공부하고 역사를 읽으면서 현재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죠. 서영해의 삶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얼핏 책에 한자가 많다고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책을 고르신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소설 ‘대한독립만세’ ‘독립운동가…’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인문·연구서 ‘만세열전’ ‘파리의 독립운동가…’ 등 숨은 주역 조명
    광주 만세운동 다룬 소설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눈길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독립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을 다룬 청소년소설과 다양한 인문서·연구서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출판사 서해문집은 청소년문학 여섯 번째 시리즈로, 청소년소설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담긴 소설집 ‘대한 독립 만세’를 출간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엮었다. 정명섭, 신여랑, 이상권, 박경희, 윤혜숙 작가가 의기투합해 발간한 결과물이다.

    그 가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다룬 정명섭 작가의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이다.

    정 작가는 당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해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진 역사의 현장을 담았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수피아여학교 학생 윤형숙과 최수향, 교사인 박애순과 진신애를 중심으로 만세운동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윤형숙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한쪽 팔을 잃고 ‘혈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야기는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준다.

    “순사 보조원에게 끌려 나가던 윤형숙이 외쳤다. “조선 독립 만세! 일본은 물러나라!” 고개를 절레절래 저은 일본 순사는 자리에 앉아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중)

    이밖에 책에는 제주도 조천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다룬 ‘열다섯, 홍련’(신여랑), 경기도 용인의 만세운동인 ‘봄바람 스치는 남바위를 쓰고’(이상권), 통영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통영의 꽃, 국희’(박경희), 강원도 홍천의 항일운동 이야기 ‘끝나지 않는 아침’(윤혜숙)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독립운동가가 된 고딩’(초록서재)은 이진미 작가가 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태웅이는 어느 날 체험학습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한복판으로 가게 된다. 과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당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며 당시 열일곱, 열여덟 살 학생들이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실제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익상 의사의 이야기를 차용해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이규희가 쓴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꿈터)는 1919년 3월 1일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왔을 때 과연 그 태극기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단초가 됐다. 일본 순사들이 태극기를 빼앗아가는 것에 분노한 도철이는 할아버지와 태극기 목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설이 아닌 인문서와 연구서로 만세운동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책들도 있다.

    3·1운동의 기획자들, 전달자들, 실행자들을 토대로 엮어낸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만세열전’(생각정원)은 숨은 주역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역사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통 영웅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과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열아홉 살 나이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배제고보 2학년 김동혁은 책에서 처음 다루어진 인물이다.

    “이 책은 3·1운동 시기 독립과 자유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중략)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복원하는 것이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펴낸 ‘3·1 혁명과 임시정부’(두레)는 왜 3·1운동이 아니고 3·1 혁명인지를 주장한다.

    “국권을 빼앗긴 뒤 한민족은 해방투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전략·전술을 동원하여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이 3·1 혁명으로 집약되면서 민족적 에너지가 폭발했다. 국치 9년만에 폭발한 3·1 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임과 더불어 봉건군주체제를 종식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렸던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책도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상천 저자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에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던 서영해의 삶이 녹아 있다.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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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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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이번 달 가장 많이 쓴 단어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아닐까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쓰고 또 확인하고 듣고 읽으니까요.


    제가 열심히 쓴 만큼 독자분들에게도 많이 닿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준비한 저자와의 만남 장소는 교보문고광화문점입니다.


    이날 서영해 선생의 삶과 책 집필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일시: 2019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장소: 교보문고 광화문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외교ㆍ저술활동으로 독립운동
    일대기 ‘파리…’ 출간 이어
    90년前 불어로 쓴 소설 번역

     

    1930년 2월 이집트 월간지 ‘이집트 여인’에 실린

    서영해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의 소개 글.

     

     

    “그는 (중략)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이상주의자, 평화 수호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그리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일제 강점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외교, 저술 활동으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 1956년 실종된 이후 60여 년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그 이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에서 뒤늦게 호명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전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이어, 그가 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이 번역돼 나왔다.

     

    ‘파리의 독립운동가…’는 한국과 프랑스에 남아 있는 각종 사료, 유족들의 증언을 종합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영해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큰 한의원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에 참여했다 수배자로 몰리자 이름을 희수에서 영해로 바꾸고, 상하이 임시정부 일을 잠시 돕다가 1920년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에 언론사인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해 27년 간 임시정부 파리 통신원, 주프랑스 대표위원을 지내며 한국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 여론을 끌어내려 애썼다. 그의 독립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에는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뒤늦게 평가할 나올 정도로 활약이 컸다.

     

     

    이승만과 서영해의 한때 가까웠던 모습. 파리 시절에 찍은 것이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서영해의 삶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이 아닌 남북한 통일 정부를 지향한 김구를 따르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중국으로 갔다는 짧고 모호한 기록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월북 설이 파다했지만, 북한에도 남아 있는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자 정상천씨는 외교통상부 출신 국가균형발전위 과장이다. 2000년 파리로 국비 유학을 갔다가 서영해라는 이름과 우연히 만난 뒤 그의 비극적 삶에 매료됐다. 정씨는 18일 통화에서 “서영해는 남북한이 통일되는 완벽한 독립을 꿈꿨지만, 분단의 현실과 국내 정치 갈등 속에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핍박 받으며 철저하게 잊혀진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았다”고 말했다.

     

     

     서영해 전기를 다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 번역서. 산지니•역사공간 제공

     

     

    서영해의 이름은 해외에서 더 크게 조명 받았다. 한국 역사와 풍습을 서술한 그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은 1929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었고, 유럽뿐 아니라 이집트 언론에까지 소개 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한국 독립을 넘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의 외침이 공명한 덕분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의 절규로 끝맺는다. “일본의 범죄행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바로 문명 사회 전체다! 억압하는 일본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인류 전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에 내쏘는 거침없는 일갈에 유럽인들은 매료됐다.  

     

     

     

    1937년 3월 22일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에 참석한 서영해. 노르웨이, 덴마크, 멕시코, 쿠바 지식인들과 함께였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어느 한국인의 삶’ 해설에서 “자유·평화 사상에 바탕을 둔 서영해의 자취는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 차원에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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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정상천 지음, 316쪽, 1만6000원, 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서영해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 그의 삶을 짚었다. 서영해의 유고, 프랑스 현지언론 기고, 인터뷰를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 수배대상자가 된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설립한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이 왜곡한 한국 이미지 바로잡기에 주력한다. 오스트리아인 엘리자와 결혼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스테판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은 서영해를 가족과 갈라놓았다. 타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광복 후 조국은 그를 환대하지 않았고, 백범(白凡)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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