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1화 :: 동래읍성의 아픔을 420년만에 발굴하다-부산 동래왜성

 


 

 

위의 사진은 무엇일까요?

 

  2005년 4월 부산 동래구 수안동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동래읍성 유적입니다. 처참했던 1592년 음력 4월15일 동래읍성 전투상황을 그대로 간직한 유적이죠.

 

  이후 경남문화재연구원은 곧바로 발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성곽을 따라 땅을 길게 판 해자에선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과 투구, 환도, 창, 화살촉 등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전쟁의 처참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뼈였습니다. 해자 밑바닥에선 남자 59명, 여자 21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81명의 뼈가 발굴됐는데요, 이 가운데 8명의 두개골에선 칼에 베이거나, 활이나 총, 둔기 등에 맞은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이렇듯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끝까지 저항하다 스러져간 조선 백성들의 주검이 동래읍성 해자에 아무렇게나 던져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이 420여년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 치열했던 동래읍성 전투 그 이후... 병참선 확보, 통치 목적의 동래왜성

 

 

  왜군은 동래읍성을 함락한 뒤 동래읍성 동헌에서 동쪽으로 700여m 떨어진 구릉 꼭대기에 동래왜성을 쌓았다. 임진강·행주대첩·2차 진주성·울산성 전투 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굵직굵직한 싸움에 참전했던 킷가와 히로이에(吉川廣家)가 이 왜성을 만들어 머물렀다.

  그는 왜군 장수 중에 가장 많은 3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와서 부산 증산왜성 등을 쌓은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의 사촌이다. 킷가와는 모리 가문의 선봉대를 맡았는데, 자신의 공적을 쌓기 위해 조선인의 코를 베어가는 왜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킷가와 가문 문서>에는 그가 1597년 9월1일부터 같은달 26일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선군의 코 1만4800여개를 베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학계는 조선군의 코가 아니라 아녀자와 노약자 등 조선 백성들의 코를 베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동래읍성의 동장대. 임진왜란 때 왜군은 이곳에 동래왜성의 전투지휘소인 천수각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

 

  강이나 바다 근처 낮은 구릉에 있는 대부분의 왜성과 달리 동래왜성은 내륙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학계는 왜군이 부산의 국방·행정 중심지였던 동래에 병참선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내륙에 동래왜성을 쌓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왜군은 동래왜성을 쌓으며 1446년(세종 28년) 세워진 옛 동래읍성을 파괴해 석재를 조달했다. 조선은 1731년(영조 7년) 옛 동래읍성의 6배 규모로 새 동래읍성을 건설하며 동래왜성 성벽의 돌을 가져다 사용했다. 왜군은 동래왜성을 쌓으며 옛 동래읍성의 돌을 재활용했고, 조선은 새 동래읍성을 쌓으며 동래왜성의 돌을 또다시 재활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동래왜성에 석축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동래왜성 2곽 추정 지역을 지나 구릉 꼭대기로 올라가면, 1곽이 나온다. 전투지휘소인 천수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조선후기 동래읍성의 동장대가 세워졌다. 해운대, 기장, 구포 등 부산 외곽으로 가는 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장대 동쪽 비탈엔 30~40m 길이의 해자가 보인다.

  1979년 동장대 복원공사 당시 이곳에서 조선 기와가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일본에 돌아가 세운 구마모토(熊本) 무기시마(麥島)성 천수각에서 같은 제작틀로 만든 기와가 출토됐다. 동래읍성에서 가져간 것을 본보기로 만든 기와를 일본성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렬사 경내로 들어가 동래구 칠산동 쪽으로 내려가면, 동래사적공원의 구릉을 타고 길게 늘어서 있는 조선후기 동래읍성 복원 성벽이 보인다. 조선후기 동래읍성의 문 가운데 하나인 ‘인생문’도 저 멀리 보일듯 말듯하다.

  인생문이라는 이름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인생문 고개를 통해 도망간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라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에서 죽은 주검들을 성 밖 묘지로 옮기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인생문은 1731년(영조 7년) 새로 만든 조선후기 동래읍성에 딸린 문으로 1592년(선조 25년) 일어난 임진왜란과는 관련이 없다. 임진왜란 때 억울하고 처절했던 조선 백성 사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내용이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 2화에서 계속

 

*본 게시물의 순서와 책의 목차는 상이합니다.

*게시물의 내용은 책 본문의 내용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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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잠홍 2016.04.2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군은 옛 동래읍성을 파괴해 그 돌로 왜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에는 또 동래왜성의 돌들로 새 동래읍성을 쌓았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왜성은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말이 실감나요. 만약 돌들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 BlogIcon 단디SJ 2016.04.25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왜성에는 숨은 역사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요. 동래읍성에서 가져간 기와를 일본성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재밌는 부분 중 하나예요.


신국판, 300쪽, 10,000원

'부산의, 부산에 의한, 부산을 위한' 특별한 소설집이 출간 됐습니다. 사실 이 멋진 제목은 연합뉴스 고미혜 기자님의 작품입니다. 신간 <부산을 쓴다>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을 요렇게 달아놓으셨드라구요.

 

 

 

그림 심점환 (부산일보 사진제공)

작년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8년 8월 14일부터 매주 한 차례 부산일보에 연재됐던 단편소설들을 묶어 책으로 낸 것입니다. 책에는 신문에 연재되지 않은 8편을 더해 모두 28편의 작품이 실렸습니다. 책은 글을 살리느라 그림을 뺐지만 신문 연재는 서양화가 심점환의 그림도 같이 볼 수 있답니다.

 

20대 여성 작가부터 70대 원로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28명의 소설가들이 쓴 원고지 30장 분량의 짧은 글들의 배경은 구포시장, 사직야구장, 용두산공원, 반송, 영도다리, 온천천 등 부산 곳곳입니다.

 

 

온천천은 부산 금정산에서 시작해 금정구,동래구,연제구를 거쳐 흐르는 하천입니다. 과거 무분별한 개발로 하천 생태계가 거의 파괴되고 오염이 심해 사람들이 외면했는데, 1995년부터 연제구에서 온천천 살리기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자연환경이 많이 살아났습니다. 더불어 하천옆의 집값, 땅값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 받아 주말이면 꽤 북적거립니다.


 

정태규의 '편지'는 동래읍성 해자(垓字)에서 발견된 400년 전 부부의 편지를 읽고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아내의 이야기다.

임진왜란 당시 함락의 슬픔을 안고 있는 동래읍성은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부부의 애틋한 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됐다.

1987년 초량동을 배경으로 한 정형남의 '필름 세 통의 행방'에는 생전의 요산 선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위군중과 진압경찰이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요산 선생이 축사를 위해 찾았는데, 성황리에 마친 그 출판기념회의 사진을 찍은 필름 세 통의 행방은 이십 년이 훌쩍 뛰어넘은 후에도 묘연하다.

촛불집회를 보도하는 TV에 우연히 잡힌 옛 사랑을 찾아 서면으로 간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조명숙의 '거기 없는 당신'에서 등장하는 대현지하상가, 동보극장, 쥬디스태화처럼 부산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지명들도 소설집 곳곳에서 등장한다.
-연합뉴스

수록작 가운데 박명호의 단편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는 사직야구장을 무대로 부산 사람들의 유별난 야구 사랑을 그렸다.
-조선일보




부산을 노래한 시는 간간이 시집으로 묶여 나왔지만, 소설의 경우 집단적으로 지역을 화두로 한 창작물이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으로는 혹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서울을 쓴다><마산을 쓴다> <통영을 쓴다> 등등.

 책의 표지 그림은 부산역 맞은편 보리밥집 거리 풍경인데, 첫 창작 그림책 <입이 똥꼬에게>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젊은 미술가 박경효의 작품입니다. 최영철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산지니)에 그린 부산 관련 작품들과 그림책에 실린 원화들로 2008년 여름  광안리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었지요.



 

책 속으로

 

삼팔따라지 인생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짓고땡 노름판에서 삼월 사꾸라와 공산 팔 패를 잡으면 끝장이지만 여기서는 숫자의 의미가 확 달라진다. 평일에는 파리를 날리다가도 장날이 되면 한 밑천 톡톡하게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일장이 현대인들의 외면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구포장은 좀 다르다. 낙동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사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도 장날이 되면 유동 인구가 이만여 명을 넘을 정도다. 
- 본문133~134p <아름다운 숙자씨>

 

도와줄 거라며 불룩한 배를 디밀고 여기저기 다니던 남편은 가만히 있으라는 타박을 듣고 난 후 먹다 남은 배를 손가락으로 집어먹고 있었다. 안 먹으면 그것도 처치 곤란이니 이곳저곳 얼쩡거리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명절 끝이라 여전히 주는 것 없이 미웠다.
저렇게 맛있을까.
H는 힐끗 남편을 쳐다본 후 다시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따 반송 한 번 가 볼까?”
입 안에 배를 문 남편의 불분명한 발음이었지만 H는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뭐 바안쏭?
여벌 수저를 챙기던 H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사람이 갑자기……?
수저를 들고 있던 손끝이 아주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어쨌든 못 들은 척했다.
“반송에 가 보자니까.”
못 들은 척하기에는 너무 큰 목소리였다.
“뭐 하러?”
H는 시치미를 떼고 최대한 퉁명스럽게 물었다.
“상가를 한 번 볼까 해서. 3호선이 개통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H는 갑자기 볼일이 생각났다는 듯 수저를 내팽개치고 베란다로 나갔다. 금방까지 떠올리고 있던 ‘그때 그 사람’ 변이 살고 있던 곳이 바로 반송이었다.  
- 본문133~134p <반송을 만나는 두 가지 방법>


차례

1부
편지 - 동래읍성 정태규
마지막 인사 - 범어사 정인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 - 사직야구장 박명호
별을 향해 쏘다!! - 온천천  김미혜
연꽃은 피고, 또 지다 - 두구동 연꽃소류지 이인규
온천장의 새벽 - 금정산 전용문
영혼들의 집 - 영락공원 유연희

 2부
다시, 희망을 - 구포국수 이상섭
연인 - 을숙도 박향
일몰 - 삼락공원 김일지
물이 되어 - 녹산 수문 주연
설레는 마음으로 - 다대포  김서련
아름다운 숙자 씨 - 구포시장  고금란

3부

거기 없는 당신 - 서면 조명숙
가족사진 - 용두산공원 황은덕
아침바다를 만나다 - 태종대 옥태권
시간의 꽃을 들고 - 부산진성  박영애
영도, 다리를 가다 - 영도다리 구영도
필름 세 통의 행방 - 초량  정형남
태양을 쫓는 아이 - 하얄리아부대 이정임

4부
모리상과 노래를 - 해운대  조갑상
반송을 만나는 두 가지 방법 - 반송 정영선
뜨거운 안녕 - 좌수영교 이미욱
빛과 그늘 - 광안리  문성수
낙농마을 이야기 - 황령터널  정혜경
내 님을 그리사와 - 정과정비  이규정
매미가 울었다 - 수영사적공원  김현
월가(月歌) - 이기대  나여경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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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낭만인생 2009.10.1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책 같아요

    • BlogIcon 산지니북 2009.10.15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호. 낭만인생님. 감사합니다. 부산에 살고 있거나 부산에 살았던 분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책이지요. 다들 좋게 평해주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