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그가 가진 야성에 대해

 

 

최영철 작가 하면 『문학을 탐하다』에 나오듯이 야성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과거, '왜 야성을 잃어가냐'는 말을 듣고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야성을 날카롭게 갈았다고 합니다. 야성이라는 단어에서 품겨져 나오는 의미(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 때문에라도  더욱 그의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20여 년이 넘도록 꾸준한 시작 활동을 펼쳐온 작가인 그는 창녕에서 태어나 줄곧 부산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의 정취가 그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쳣다고 하는데요. 산문집과 몇 편의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산문집으로 작가가 느낀 부산 곳곳의 모습들을 애정 있게 실어놓은 책입니다. .

-제1부 풍경들

무궁화에게는 그것이 명예로운 훈장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부채일 수도 있으리라. 이 꽃이 화사하고 강건하기까지 어떤 풍상을 견뎌왔는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무궁하는 역사의 아픈 생채기를 거름으로 먹고 피었다.

 

부산 대청 뜰에 핀 나라꽃 무궁화를 보고 작가가 느낀 감정입니다. 좌천동 수정동 영주동 대청동으로 이어지는 산복도로의 구비마다에는 전쟁을 피해 남하한 피난민을 생각나게 하는 집들이 아직도 골목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미안한 감정이 듭니다. 대청공원으로 오르는 길 앞만 보고 오르는 게 아닌지, 앞만 보고 급하게 달려, 놓친 것들이 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봅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무궁화에는 단순히 예쁘다라고 느끼는 감정만 있지는 못합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의미가 드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린 아팠던 과거를 회상하는 매개물로서 무궁화를 보기도 합니다. 일제시대 때 무궁화를 키워서도 단순히 꽃으로서 예뻐해서도 안되었기에 안타까웠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무궁화에게도 투영시켰나봅니다. 우리는 보통 무궁화를 생각할 때 만개한 꽃의 모습만을 기억합니다. 져서 떨어진 모습도, 봉우리의 모습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무궁화의 화사하고 강건한 이미지를 우리가 부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길을 가다 무궁화를 본다면 눈짓으로라도 ‘고생했지’, ‘잊지 않고 있어’ 라는 위로의 말을 던져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일테니깐요

강물은 이 하구에 이르러 바닷물과 섞이기 전 흘러온 먼 시간을 반추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 잠깐 몸서리를 친다. 그렇게 구부러지고 멈칫대며 저 먼 바다로 나아간다.

강물이 바닷물과 섞이기 전 잠깐 몸서리를 치며 바다로 나아간다고 생각해보셨나요? 저의 경우는 하염없이 강물만을 바라 본적은 어릴 때나 있는 기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강물을 보며 흘러온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고도 바다와 섞이기 잠시 동안 그 시간을 반추한다고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강이 그 자리에 있다고만 느꼈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의 경우가 아니라 큰 강의 경우는 물살의 흐름이 쉽게 잡히진 않습니다. 또한 강과 바다를 별개로 생각하길 마련이죠. 이런 면에서 작가는 부산의 끝자락인 낙동강을 애정있기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강을 볼 때는 산에서 시작해온 조그만 물줄기를, 바다를 볼때는 물줄기가 모아져서 생긴 강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모천(母川)을 말입니다.

길을 가는 것은 발의 노동이다. 지난 세기, 머리의 욕망을 쫓아가느라고 발은 너무 고단했다. 발은 머리의 강압에 못 이겨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갔고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갔다. 그렇게 마지못한 전진을 거듭하면서 하부의 발은 상부의 머리를 향해 뭐라고 물만을 터트렸겠지만 좀 쉬었다 가자고 정중히 건의해보기도 했겠지만, 머리는 발의 멱살을 부여잡거나 등을 떠밀며, 때로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발의 기운을 붇돋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경건한 평화를 느꼈다. 발에게 경배하는 하심은 상부에 자리한 머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이다. 맹렬한 전진의 시대를 거치며 우리의 발은 차가웠고 머리는 뜨거웠다. 그 역행이 파생시킨 불상사가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불협화음들이다. 겨울 끝자리의 바깥바람은 머리를 차게 했고 지하 깊숙한 암반에서 솟구치는 온천수는 발을 따뜻하게 했으니, 길을 나서기에는 호사스럽고도 평온한 준비였다.

작가가 우리 몸의 발에 대해 느낀 부분입니다. 우리는 흔히 손의 고생에 대해서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발의 불만, 노동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생각하는 머리와 가장 떨어져 있어서 무관심을 받는지, 아니면 몸에 가려 눈이 보기 힘든 곳에 있기 때문인지 여하튼 글을 읽고 나니 참 불쌍하기 그지없는게 바로 발인 것 같습니다. ‘머리는 발의 멱살을 부여잡거나 등을 떠밀며, 때로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며 여기까지 왔다’ 라는 구절을 보면서 제가 한 홍콩여행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 4박5일의 여정동안 학생인 저는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웬만한 곳은 걸어다녔습니다. 지하철 한 두정거장 정도는 발에게 부담해버렸는데 한 이틀이 지나니깐 서서히 이 아이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습니다. 무릎도 아프고 발바닥이 아파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중간 중간 뭐라 하고 때려가면서 여행을 마쳤습니다. 고맙게도, 끝까지 여행을 마쳤지만 저는 발의 기운을 붇돋우고 있는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 발의 차가움을 무시하고 그의 고통을 담보로 머리, 눈의 즐거움만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이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불협화음으로 나타났고 저의 여행도 끝에는 균형이 깨지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발만 다그치느라고 머리가 과부화가 걸린 것인지, 아니면 발의 반란으로 머리가 져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2시에 떠나야되는 비행기를 오후 2시로 착각하고 비행기를 놓쳐버렸습니다. 교통비 1000원 아끼겠다고 애쓰다가 비행기값 몇만원을 날려버린거죠. 참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것은 제 살 파먹기에 불과함을 이 책을 빨리 봤다면 저 자신 또한 발에 기운을 붇돋우는 사람에 속하지 않았을까요?

 

간절곶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그렇지만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그 사실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해는 나날이 새롭게 생성되어야 할 희망의 다른 이름이어서, 해가 늘 그 자리에 있다면 희망 역시 참으로 진부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절망이 없다면 희망도 없고, 서편으로 넘어가는 해가 없다면 동녘을 밝히는 찬란한 광명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이의 눈에 비친 해는 어느 자리에서 보든 그것은 가장 먼저 뜨는 해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이의 눈에 비친 해는 어느 자리에서 보든 그것은 가장 먼저 뜨는 해이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해를 보는 이유가 내안의 희망을 다지기 위해 본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고 굳이 새해를 보기위해 수많은 인파에 싸여 아등바등 하는 것보다는 어느 자리에서 보든 그것이 가장 먼저 뜬 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경우는 매년 새해를 보기위해 산이나 바다를 다녔는데요. 왠지 첫해의 해를 봐야지만 내 자신에게도 그리고 남들에게도 부지런한 새해 첫날을 맞았다고 자부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만큼은 해를 보러가지 못했는데 매일 뜨는 해이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낭만 따위를 따지기에는 현실을 알아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점은 상징적인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새해 첫날에 뭐했어? 어디 갔어?’ 이런 질문에 떳떳하게 ‘여행 갔다왔어’라든지 ‘부지런했어’. 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간 것은 아닐찌. 라는 생각이 들자 굳이 마음을 다지는게 아니라면 갈 필요가 없기도 하며 그건 어디서나 내 마음에 따라 달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건 작가가 말하는 마음을 품고 새해를 보며 다짐하는 거겠지만. 혹시라도 그럴만한 시간여유가 없으신 분은 다시한번 구절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당!!

 

 

대학은 가장 처음의 자리이며 종교는 가장 나중의 자리이다. 처음과 끝은 대부분 그렇게 서로 통한다. 대학은 개성에 물들지 않은 상대적 순수성이고 종교는 현실의 더께를 벗은 절대적 순수성이다.

앞에 작가가 말하는 구절은 제가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만 발췌해 올린 것인데 제 느낌을 같이 적은 글입니다.^^ 특히 이 구절이 무엇보다 더 와닿았는데요. 공감도 가며 현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마저 이처럼 됐으면 하는 마음였습니다. 대학과 종교는 정말로 순수해야 하는데 요새는 그러지 못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취업의 장이 되어버렸고 종교는 돈에 휩쓸려 현실의 무게와 같아져버렸습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았으나 지성을 가진 이들을 품고 있는 대학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순수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어린시절, 대학, 사회 이 모든 현실을 거쳐서 씻음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변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순수성이겠지요.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아직 이 둘의 낱말이 주는 의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건 사람인 것 뿐이구요.

-2부 작품들

 

강건하면 자신만만하기 쉽고 애절하면 구차하기 쉽다. 그러나 동백은 강건하면서도 애절하다. 강건해지려고 이를 악무는 사이 안은 애절해졌고, 그 애절함이 남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다시 이를 악무는 사이 밖은 더욱 강건해졌다. 강건하나 자신만만하지 않고 애절하나 구차하지 않다. 그렇게 단련된 것이 동백이고 그 동백이 부산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가 된 것은 필연이었다.

바다는 그것들을 다 품고 있기에 숨이 차 조금씩 땅을 위로 내보냈을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듯이 말이다. 땅은 그러니까 바다가 분가해 보낸 자식들이고, 바다는 땅의 아주 오래 전 어머니였다.

동백과 바다는 부산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다하면 해운대나 광안리를 떠올릴 것이며 부산 해운대에 와본 분들이라면 동백섬에 펴있는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회상할 것입니다. 또한 이것들이 부산을 상징하는 것은 부산사람의 기질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겠죠. 바다같이 드센 면이 있으나 분가하여 나와 땅에 살면서 동백마냥 강건하고 애절한 마음을 가지게 됬습니다. 전쟁통에 피난민을 감싸 안는 그 혼란 속에서 부산 고유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동백과도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찔러본다』

‘찔러본다’ 시집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강아지를 찔러보는 햇살, 다랑이를 찔러보는 비, 열매를 찔러보는 바람처럼 시적 화자인 ‘나’를 찔러보는 존재들, 그 소외된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강렬한 응시의 힘과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이 ‘찔러봄’을 통해 시인은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야성으로 빛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건강한 삶의 천진성을 발견하고 자연의 진정성과도 만납니다.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자연과 화합하게 합니다. (책 소개에서)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화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 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

- 『찔러본다』

자연-인간-리듬 이 세가지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3요소입니다. 특유의 리듬감이 통통 튀며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햇살, 비, 바람 자연을 상징화하는 것들을 통해 물체를 찔러본다고 표현하면서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는 윗도리 하나를 척 걸쳐놓듯이

원룸 베란다 옷걸이에 자신의 몸을 걸었다

딩동 집달관이 초인종을 누르고

쾅쾅 빚쟁이가 문을 두드리다 갔다

그럴 때마다 문을 열어주려고 펄럭인

그의 손가락이 풍장되었다 (중략)

- 『풍장

시인은 일상에서 일어나기 쉬운 일들을 소재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격한 표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하지도 않습니다. 일상적인 모습을 구체화 시켜 덤덤하게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시적 세계는 어떠한 것인지 시인의 표현을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시는 견디며 흔들리고 견디며 꽃 핀다. 견디며 울부짖는다. 나의 시는 결실과 풍요를 노래하지 않는다. 수확과 충만을 노래하지 않으며 높고 청아한 하늘과 맑은 새소리를 노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곧 다가올 퇴락과 소멸의 지점에 먼저 마음이 가 있다. 모든 결실과 절정은 곧 다가올 파국에 대한 불안과 상실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시는 아지 못할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또는 뻔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날의 일상들과의 줄다리기이다. 막연한 희망과 절망을 보다 절실하게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그 끈은 자신을 옭아매는 힘겨운 오라일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오라를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은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그 끈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처음 부여잡던 각오 그대로 쉼 없는 자기갱신으로 더욱 단단히 더욱 팽팽히 그 끈을 바투 쥐어야 할 책무가 나에게는 주어져 있다.  

앞에서 최영철 시인에 대해서 야성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견디어 울부짖는 모습을 표현하는 그의 시를 보면 왜 야성이 어울리지는 느껴집니다. 소개한 작품 외에도 찾아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 10점
최영철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찔러본다 - 10점
최영철 지음/문학과지성사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2014 원북원도서 올해의 책 투표하러 가기>> http://www.siminlib.go.kr/onebookone2/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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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I 

산지니



문화의 지역화와 문화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산지니’는 2005년 2월 부산 연제구에 터잡은 지역 출판사이다. 산지니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강수걸 대표의 대학시절에 학교 앞에 있었던 사회과학 서점의 이름을 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산지니의 원뜻인 산속에서 자라 오랜 해를 묵은 매로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매를 뜻하는 이름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의미로서의 산지니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출판 환경 속에서, 지역출판의 여건 속에서 오래 버티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물론 오래 버티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산지니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지고 ‘지역문화예술’에 집중하며, 이것들이 출판으로 이어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산지니의 주요 저자가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교수, 연구자, 기자, 미술가 등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 산지니는 지역문화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책들의 발간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종합출판사를 지향하며 현재까지 216권의 책을 출간했다.    



경향article 2013년 5월호



article. 출판사를 열게 된 계기, 부산에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산지니. 출판사를 차리게 된 근본적 이유는 워낙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부전시립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에 반해, 중·고교 시절은 책에서 좀 멀어졌다. 대학 때 사회과학서적에 매료되었다.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후 모 중공업 회사에 들어갔고, 외국회사와 접촉하는 일을 할 때 계약서나 저작권 문제를 유심히 살폈다. 3년만 다니고 출판사를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난 후에야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에 입문할 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편협한 독서와 좁은 인맥으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집 근처 도서관과 서점을 배회했던 시기가 있었다. 출판사 근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기획할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출판 기획은 무엇인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책과 출판하고자 하는 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정리되지 못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결국 출판사를 차리기로 했다. 그렇게 1년간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 결과물이 지금의 산지니 출판사이다. 서울에 올라가 창업할 것인가, 내가 나고 자라고 생활한 부산에서 시작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해보자고 결심했고, 2005년 2월 척박한 맨땅에 부딪힌다는 느낌으로 출판사를 시작했다.



article. 산지니를 만들 때, 참고하거나 롤 모델로 생각했던 출판사가 있었나?

산지니.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 보리출판사의 윤구병 대표 등 산지니를 설립하면서 공부하고 학습했던 많은 출판인의 출판철학을 참고했다.

 


article. 초기 인문, 사회과학 위주로 출판을 시작했지만 소설, 수필, 평론, 아동도서 등 종합출판을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방향을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산지니. 특정 분야의 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산지니를 비롯한 지역 출판사는 종합출판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무릇 출판의 역사는 늘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과거, 서양의 대학이 도시를 중심에 놓고 발전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을 지키는 것은 지역민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9년 동안 출판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의 기획출판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출판미디어의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기획과 다품종 소량출판을 통해 좋은 책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데 있다고 본다. 



article.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기획, 섭외, 편집, 디자인, 교정 교열 등 구체적인 일정이 어떻게 되는가?

산지니. 기획부터 시작된다. 출판사의 각 편집자는 작가와 독자(미래 독자를 포함)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람으로, 신간 기획과 진행, 교정·교열, 홍보 등 출간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대체로 책을 내는 과정은 개인이 아닌 팀의 협업 아래서 진행된다. 원고를 검토하고 분석한 다음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의 시작은 편집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출판사의 장래와 방향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article. 산지니는 ‘지역문화 콘텐츠’에 주력하고 있다. ‘부산’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가?

산지니. 부산은 영화가 먼저 들어왔던 최초의 영화도시이자, 전쟁과 식민지를 거친 역사성이 짙은 도시이다. 부산에서 자라온 부산시민으로서 항구도시로서 부산이 가지고 있는 개방성에 주목했다. 과거 부산이 문화와 외국문물이 들어오는 항구도시로서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국제도시로서의 특징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무중풍경』과 같은 중국 영화문화를 다룬 책과 함께, 중국의 해양문화를 다룬 『바다가 어떻게 문화가 될 것인가』, 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의 문학비평서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등의 책을 통해 도시 부산이 어떻게 문화와 문학,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주목하였다. 앞으로  부산이 가진 해양성을 살려 해양문학작품과 함께 일제강점기 부산의 왜관 관련 저서를 출간예정에 있다.  산지니는 부산을 넘어 아시아 10대 출판사를 목표로 경영하고 있고, 부산의 ‘지역문화 콘텐츠’ 육성은 아시아 10대 출판사로 도약하기 위한 전초가 될 것이다.


article. 저자 대부분이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교수, 연구자, 기자, 미술가 등이다. 지역의 저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산지니의 장점으로 보인다. 저자를 어떻게 섭외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산지니. 이를테면,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을 함께 작업했던 최영철 시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부산의 중견 시인 최영철 선생을 처음 본 것은 광주였다. 2006년 5월, 광주의 거래서점인 충장서림과 삼복서점을 둘러보기 위해 주차할 곳을 찾다가 옛 도청자리에 차를 댔고, 나오는 길에 건물 한 쪽에서 5‧18 문학행사를 발견했다. 팔레스타인 등 외국 문인들이 참석해 시낭송, 강연하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는데, 마침 최영철 시인이 시낭송을 하고 있었다. 

             몇 달 후, 최영철 시인의 시집 『호루라기』를 주제로 부산 영광도서에서 독서토론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최영철 시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몇 달 전 광주에서 열린 행사 때 봤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왜 아는 척을 안 했느냐”며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반가워했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써놓은 산문을 모아 산문집을 내자고 제안을 했다. 최영철 시인은 팔리겠느냐고 걱정하면서 원고를 건네주었다. 이 책이 바로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이다.

             시인의 깊고 넓은 사색의 풍부함을 드러내는 글에 예술 작품을 곁들여 차별화된 책을 만들고 싶어서 지역화가 박경효 씨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사진을 싣기보다 그림과 함께 하면 좀 더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경효 씨가 부산 곳곳을 다니며 스케치하고, 채색하여 30여 점의 유화를 완성하기까지는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들었다. 시간과 공을 들여 출간한 이 책이 우수무학도서로 선정되었다. 공들인 책은 누군가는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 같다. 

             이처럼, 저자를 섭외하는 데 딱히 어떤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신문이나 지역인사들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면서 그들을 ‘책’을 매개로 이어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 저자들을 연결해 주기 쉽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산지니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article. “지역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지역색이 짙은 책을 출간하면 판매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산지니의 책을 꼭 봐줬으면 하는 독자가 있나?

산지니. 산지니가 부산지역의 독자들만 타깃으로 잡는 것은 아니다. 전국유통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높이 날고 멀리 보고 오래 버티는 산지니처럼’이라는 모토처럼 주 독자층도 넓게 잡고 있다. 최근 미국 아마존 한국법인이 세워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타깃을 아시아를 넘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 나아가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 등으로 거시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전에 한 인터뷰에서 “지역색이 짙은 책을 출간하면 판매에 문제가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사실, 부산지역의 독자들은 부산 소재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지니에서 주로 판매되는 판매추이를 분석해도 부산에서 판매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부산도 서울 같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게 현실이다. 부산지역 콘텐츠를 내기 때문에 이 같은 난점이 존재하지만, 지역의 의미 있는 책을 꾸준하게 낼 의무감이 있다. 이는, 지역 콘텐츠의 수준을 서울에 있는 출판사 못지않은 보편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감이 뒤따른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article. 출간한 책 중에서 많이 팔리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산지니. 부산의 대표적인 소설가 조갑상 경성대 교수의 산문집인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를 소개하고 싶다. 이호철의 『소시민』의 배경이 된 완월동, 조명희의 『낙동강』, 김정한의 『모래톱이야기』에 나오는 구포다리와 을숙도 같이, 소설가 조갑상은 부산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소설의 현장을 살펴보고,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와 지금의 변화된 모습을 추억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던 조 교수를 창업 초기에 찾아 갔다. 부산 문단 역사의 대표적 인물인 요산 김정한 선생의 평전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김정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설가로 요산의 평전을 쓰기에는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조 교수는 당장은 시기상조이며 상황이 무르익으면 추진할 사안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조 교수가 부산에 관한 산문을 쓴 게 있는데, 책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전화를 했다. 지역 출판사로서 꼭 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 출간을 결정했는데, 책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사진이 필수적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옛 사진은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그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지금의 부산 사진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따로 사진가를 섭외하기에는 출판사 재정이 허락지 않아, 사진에 일가견이 있던 출판사의 디자이너가 직접 사진을 찍었다.

             창립 때부터 지금껏 출판사의 모든 편집디자인을 도맡고 있는 권문경 디자이너는 내면은 세심하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한 소설가의 성큼성큼 큰 발걸음을 종종거리고 따라다니면서 몇 날 며칠을 달동네를 오르내리고 도심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1년 여의 시간을 공들인 끝에 책이 나왔는데, 이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출판사 재정에 많은 보탬이 되어 더욱 애착이 가는 책이다. 또 이 책의 실물을 보고 그동안 부산을 피상적으로만 알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부산은 다양한 콘텐츠가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후 부산 콘텐츠를 어떻게 책으로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2013년 동인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조갑상 교수의 『밤의 눈』은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6·25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장편소설이다. 맹렬한 작가정신으로 둔중한 역사를 끄집어 올린 소설작품이라는 점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산지니의 책들


article. 운영하면서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산지니. 지역에서 출판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통이다. 알려진 출판사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는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환영받으나, 그렇지 않은 책은 잘해야 한두 권. 그마저도 거절당하기 일쑤이다. 이런 현상은 작은 서점일수록 두드러졌다. 서점에 책이 공급되었다고 해도 독자들의 눈에 잘 띄는 매대에 책을 진열하는 경쟁에서 지역출판사는 밀릴 수밖에 없다. 정기적으로 서점을 방문하여 자사 출판물을 관리할 수 있는 영업사원을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점에 출판사의 인지도를 높이려면 최소 한 달에 2-3종의 신간을 출간해야 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팔려야 그나마 영업사원 한 명이라도 둘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지역 출판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월말이 되면 지불금액 때문에 경영자로서 속 타는 괴로움을 매달 반복했다. 경영평가를 받는 입장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좋은 경영자는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합리적 경영을 통해 내실 있는 출판사를 만드는 게 목표이나, 사실 사람 간의 관계망으로 이루어지는 출판업에서 ‘합리적 경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경영자가 ‘합리적 경영’을 하는 경영자가 아니듯, 올바른 판단으로 가치 있는 출판물을 제작하는 ‘좋은 출판인’으로 남고 싶다.



article. 책이 출간된 이후 어떤 활동에 신경을 쓰는가?  

산지니. 지금까지 출판사는 책만 잘 만들어내면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출판사는 콘텐츠를 생산·유통·소비하는 중심거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출판사는 책을 펴내는 곳이기도 하고 서점이기도 하며 도서관이기도 하고, 미디어이기도 하고, 지역문화 창달의 커뮤니티이기도 해야 한다. 지역에 존재하는 작은 도서관과 결합하고 공공도서관 사서들과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산지니는 전 직원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인 블로그 활동과 함께,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만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대규모 자본으로 과점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출판 현상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지역출판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매달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고,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한 SNS활동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출판사 홍보차원을 넘어, 출판미디어 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article. 산지니는 지역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사회가 수도권으로 이탈하지 않고 20대가 취업하는 데에 공감하기 위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대학과 지역사회와 맺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산지니. 산지니가 지역출판사인만큼, 우수한 지역인재들의 양성을, 지역이탈을 막기 위한 기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늘 책임감을 갖고 있던 차였다. 비록 출판사가 재정적 문제로 신규인력채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나, 우수한 교수진들로 구성된 부산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장의 실무를 미리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는 적극 활동하려 한다.

             예를 들면 산지니는 현재 한국해양대와 산학협력 가족회사로 활동하고 있고, 동아대 인문대학 학생들의 인턴활동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역대학과의 다양한 연계활동을 통해 20대 청년이 이력서에 인턴경력을 한 줄 추가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출판사가 어떤 곳이며 출판문화 교육, 나아가 부산의 문화 관련 행사들에 함께함으로써 부산의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 article 지면


article. 출판문화가 서울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비단 이것이 출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역의 출판사로서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산지니. 산지니는 부산에 있지만 전국적으로 책을 유통하는 몇 안 되는 출판사이다. 부산의 오래된 출판사들도 기획출판을 해왔는데, 주로 어린이책이나 문학 쪽에 한정되어 있었다. 지역에서 출판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이제 상당히 무르익었다. 인쇄·제본이 서울보다 떨어지는 면은 있다. 일반 인쇄는 문제가 없는데, 컬러가 들어갈 때 약간 차이가 있고, 특히 양장 제본을 할 때 문제가 된다. 지역에서는 전국 유통을 하는 데 난점이 있고, 수도권에 출판사가 많은 이유도 그래서인데, 산지니는 파주에 창고를 계약해서 월 임대료를 주고 전국 유통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서울에 있는 출판사와 별 차이가 없다.

             정부에서 큰돈을 들여 설비투자를 하고 인쇄소, 제본소, 출판사, 에이전시가 파주에 집결되다 보니, 우리나라 출판 수준이 외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출판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파주에서만 출판이 되고 타 지역은 전무하다면 균형발전이 안 된다. 이를 테면, 부산을 소재로 한 책들은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는 내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출판계에서 최소 오천 부는 팔려야 계속 기획을 해나간다고 한다. 그러니, 지역을 소재로 기획한 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지역의 문화를 풍요롭고 다양하게 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시장메커니즘과 문화가 꼭 같이 가는 건 아니므로.

             출판시장 위축 상황은 늘 안타깝다. 공공도서관 증설과 함께, 유통물류단지가 있는 수도권으로의 물류비 부담을 정부나 부산시가 지원해 준다면 지역 출판업계 종사자로서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article. 할인 판매가 일반화되고 광고 마케팅 비용이 비싸지면서 자본력이 없는 출판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풀어가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산지니. 출판이 위기인 것은 먼저 독서문화의 전반적인 퇴행에 따른 시장 침체가 근본 원인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유통에 따른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여타 지역의 영세한 출판사들은 전국의 대형 서점 진출은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지역 서점과의 직거래를 선호하게 된다. 지역 출판사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큰 출판사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우선, 출판계의 오랜 염원인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한때 도서정가제 찬반 여부로 논쟁이 있었지만, 이 제도가 선행되어야 유통구조의 불합리성과 지역서점이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영화 입장료 중 일정비율을 영화산업진흥기금으로 조성한 영화계를 본떠 만든 출판계의 ‘출판문화산업진흥기금’ 조성안이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입법 논의에 있다. 

             게다가 부산의 공공도서관들이 도서 구입 시 지역 출판사의 책을 일정 정도 의무적으로 구매하게끔 하는 것도 제도화된다면, 산지니를 비롯한 지역 출판계에 큰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article. 출판은 이미 사업으로서 베스트셀러나 시장을 좇는 경향이 크다. 규모는 작더라도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 노력은 중요하다. 

산지니. 이미 출판사 숫자는 양적으로 너무 팽창했다. 이처럼, 출판사 숫자가 많은 것은 출판업이 신고 업종이라 특별한 시설이나 규모에 대한 검증 없이 사업자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부분 출판사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출판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다 보니 무실적의 출판사로 난립하는 것으로 그치기도 한다. 

             기존질서에서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 변화를 주도해 기존의 게임법칙을 바꾸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특히 세상의 변화는 중심이 아니라 약한 고리인 변방에서 일어나지 않았나. 산지니와 같은 지역출판미디어는 서울 중심의 출판을 극복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창업이념과 원칙을 지키는 것, 틈새시장을 찾아 공략할 것,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냉정히 판단하고 대응할 것, 사람과 그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말 것을 염두에 둔다면 색깔을 잃지 않는 의미 있는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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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온수입니까 2013.05.07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이쁘게 잘 나왔네요^^ 산지니 외 다른 출판사도 정독해야겠네요 훗훗

  2. 권 디자이너 2013.05.07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종이 잡지로 읽었는데 첨엔 글씨가 좀 작아서 약간 읽기 힘들었지만
    읽다보니 내용이 재밌어서 불편한 줄도 몰랐네요.
    한정된 지면에 가능한 많은 내용을 싣고자 한 편집자, 디자이너의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찔러본다'는
얼마전 출간된 최영철 시인의 시집 제목입니다.
참 재밌는 제목이지요^^
이 제목을 처음 봤을때,
저는 사람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말곤 생각나는 것이 없었는데요,
햇살이 강아지를 찔러보고,
비가 다랑이논을 찔러보고,
바람이 열매를 찔러보는 등
시인의 상상력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찔러본다'를 처음 듣고 무엇을 연상하셨나요?


찔러본다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화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 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


최영철 시인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가족사진』『홀로 가는 맹인약사』『야성은 빛나다』『일광욕하는 가구』『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그림자 호수』『호루라기』 등과 산문집 『우리 앞에 문이 있다』『나들이 부산』『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책소개 링크),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나비야 청산 가자』를 펴냈습니다. 2000년에 백석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

작년 9월 산문집『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저자와의 만남 행사때 모습입니다. 엊그제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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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러본다 - 10점
최영철 지음/문학과지성사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 10점
최영철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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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효 선생님과의 점심식사

<산지니> 출판사의 점심 시간은 ‘1시’입니다. 여느 사무실이 12시인데 비해, 조금 늦은 편이지요. <산지니> 사무실은 법조타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12시에 나갔다가는 치열한 자리 경쟁에 휩싸이게 마련입니다. <산지니>의 식사 시간이 다소 늦은 이유는 바로 ‘한가로움’을 확보하기 위함이지요. 조금 늦게 하는 식사라, 당연히 밥맛도 더 좋습니다.

보통 직원들끼리 단출하게 먹는 편입니다만, 종종 반가운 손님들과 함께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시는 박경효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점심을 함께하였습니다.


옮겨간 곳은 사무실 근처의 횟집. <산지니> 식구들은 ‘회덮밥’을, 선생님은 ‘내장탕’을 시키셨습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이 최근에 구입하셨다는 캐논의 G10 카메라를 구경하였답니다. 튼튼한 바디와 휠로 조작되는 조리개까지! 앞으로의 활약이 잔뜩 기대됩니다. 카메라 테스트를 하느라고 돌아가며 여러 컷을 찍었는데, 그중 잘 나온 선생님을 여기에다 올립니다.


볼로냐, 아동서와 예술서의 천국

박경효 선생님은 다음 주에 볼로냐로 떠나실 예정입니다. 이번 달 23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www.bookfair.bolognafiere.it)에 참석하시기 위함이지요. 올해는 우리 나라가 최초로 주빈국으로 참가한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박 선생님은 지난 해 <입이 똥꼬에게>라는 창작 그림책으로 제14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셨는데, 이번 여행은 그 ‘포상’이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입이 똥꼬에게> 판권이 해외로 수출되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소개되길 함께 기원해 봅니다.

최근에 읽은 이홍의 <만만한 출판 기획>에 마침 이런 문구가 나오더군요.

“볼로냐는 아동서와 예술서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모든 분야의 편집자가 다 가지는 않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할 북페어가 볼로냐라고 한다.” (169p)

도서전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그리고 볼로냐아동도서전은 출판인들이 한번쯤 참석하길 꿈꾸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외 도서전에 다녀오고 나면 사표를 내는 편집자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네요. 엄청난 문화 충격에 따른 상대적 초라함을 이기지 못한 탓일까요? 이런 후유증 때문에 절대 해외 출장을 안 보내는 사장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들 속에서 도서전의 수준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보게 됩니다.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표어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Round in a Circle).'
+ 포스터 이미지 출처 :  http://www.bologna2009korea.or.kr/


박경효 선생님과 산지니의 인연

식사를 맛있게 끝내고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려는데, 아차차! 서빙 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선생님의 점퍼 위에 커피를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거듭 사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럼, 서비스라도...” 한 것이 냉큼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시 뒤, 테이블에 오른 것은 맥주 두 병. 그 후 짧지만 기분 좋은 ‘낮술’ 타임이 훈훈하게 이어졌답니다.

박경효 선생님과 산지니의 끈끈한 인연은 네 권의 책 속에 녹아 있습니다. <제갈 선생 7일 7장>, <빛>,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부산을 쓴다>가 바로 그 책들이지요. 박경효 선생님께서 활발한 아동문학화가로 활동하시는 가운데, 앞으로도 <산지니>와도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게 되길 바랍니다.

“박경효 선생님, 볼로냐 잘 다녀오세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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