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예빈님께 책을 빌렸네요.

한나 아렌트가 주인공인 그래픽 노블이라고 블로그에 소개를 했기에 재밌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재밌어서 저도 추천 드립니다.

<뉴요커>에 카툰을 그렸던 켄 크림스타인(Ken Krimstein)2018년에 블룸스버리(Bloomsbury) 출판사에서 펴낸 책입니다. 켄 크림스타인은 그림도 독특하지만 글이 굉장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네요. 철학, 역사 등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엿보입니다.

더숲에서 좋은 책을 출판했네요. 아마도 책을 발견한 것은 이 책의 감수를 맡은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김선욱 교수님이신 듯한데요, 덕분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삶을 세 번의 탈출에 초점을 맞추어 조망합니다. 물론 매독으로 아버지가 사망하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거쳐 뉴욕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렌트의 전 생애를 다루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아렌트의 삶에서 큰 변곡점이 되는 세 번의 탈출입니다.

첫 번째 탈출은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나치에 의해 체포당한 후 베를린에서 체코를 거쳐 프랑스로 탈출한 1933년의 일입니다. 두 번째 탈출은 1940년에 이루어집니다. 파리에서 지내던 아렌트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남부에 있는 귀르라는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수용소에서 나와 은신처에서 남편인 블뤼허, 엄마, 발터 벤야민 등의 친구들과 지내다가 포르투갈을 거쳐 뉴욕으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벤야민은 이때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게 되죠.)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이런 두 번의 육체적인 탈출이 아니라 마지막 세 번째의 탈출인 듯합니다. 제 생각에 그건 하이데거로부터의 정신적인 탈출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데요, 감수자이신 김선욱 교수님도 이렇게 언급하십니다.

 

  이 책의 방점은 세 번째 탈출에 있다. 독일에서의 탈출, 그리고 파리에서의 탈출이라는 앞선 두 번의 탈출과 세 번째의 탈출은 서로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세 번째 탈출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넘어 그녀의 핵심적 사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는 이 세 번째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가 가진 사상의 핵심인 듯 그려내는데, 나는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은 그 세 번째 탈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볼 기회를 제공한다.”-김선욱(숭실대 철학과 교수,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뉴욕에서 아렌트는 여러 가지 활동에 몰두합니다. 기사를 쓰고, 강연을 하고, 책을 집필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세워나갑니다. 소위 아렌트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사유체계를 세워나가기 위해 그녀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조건을 빼앗아버리는 새로운 힘이 지구상에 나타났는데, “기존의 이론들을 묵묵부답이었기에새로운 사유를 통해서 이를 해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바로 탈학습(Unlearning, 독일어는 Verlernen)’의 개념입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한나 아렌트를 읽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덜 읽어볼 만한 책을 권하고 있는데요, 여기 바로 산지니에서 출간한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리 루이제 크노트의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Unlearning with Hannah Arendt은 독특한 독일 책이다. 이렌트가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며 강조했던 이야기’,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위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를 신비로울 만큼 시적으로 풀어냈다. 매혹적인 책이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독일어 원제: Verlernen, Denkwege bei Hannah Arendt)에는 탈학습을 위한 4가지 키워드가 나오는데요, 바로 웃음’, ‘번역’, ‘용서’, ‘실현입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 법정에서 아이히만을 만나고 웃음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로 동료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죠. 하지만 아렌트에게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한 해석의 방법이 필요했을 겁니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脫出)()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두 책에 공통적으로 () 자가 들어가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n번방 사건도 그렇구요.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 아렌트라면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10점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더숲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Posted by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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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예빈박사 2020.04.16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벤야민 죽는 장면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구요 ㅠㅠ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4.20 0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재밌다고 소문으로만 들었어요. 글을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아렌트를 좋아하세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인턴 최예빈


사는 게 왠지 시시해질 때마다 집어 드는 그래픽 노블이 있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이 지었고, 국내에선 더숲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타 출판사 책 언급하니 좀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눈감아 주세요 대표님)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아렌트의 생애를 그린 만화다. 이렇게 설명하면 예림당에서 내는 WHY 시리즈 위인전 느낌일 것 같지만, 엄연히 성인 대상의 그래픽 노블이다.


뭔지 아시죠?


어쨌든 그 책을 통해 전체주의 광풍으로 혼돈을 맞았던 20세기 초 유럽 모습과 지금은 전설이 된 천재들(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인물조차 업적 설명을 위한 각주가 달려있다)이 기어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이렇게 열렬한 게 바로 삶인데!” 같은 생각이 절로 들어 권태를 씻고 일어나게 된다. 사유하지 않는 것이 그릇된 사유 보다 더욱 위험한 거라는 아렌트의 일침이 귓전을 때리고, 무기력해진 몸과 정신을 다시 한번 일으켜 내는 것이다.

 

쓸데없이 서두가 길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아렌트를 좋아하냐 물었을 때 내가 아유 그럼요”(그런데 누가 아니라고 할까?)라 대답하는 배경에는 만화책 한 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좀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아렌트 팬을 자처하면서 아렌트의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위의 그래픽 노블을 포함해 아렌트 다룬 책 서너 권 읽었지만, 정작 그가 직접 쓴 책은 읽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제목은 술술 나오고 어디가서 어쭙잖게 아는 체도 하지만 기실은 단 한 권도 안 읽었다. 그러니 아렌트를 좋아한다는 내 대답은 알량한 허세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렌트가 직접 쓴 책보다 아렌트를 오랫동안 숙고해온 다른 어떤 이가 그에 대해 쓴 책이 좀더 아렌트를 아렌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너무 아렌트 안 읽은 티 팍팍 내는 발언인가?


아렌트와 블뤼허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저자 마리 루이제 크노트가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사유해낸(그렇담 이것은 메타사유인가) 걸출한 작품이다.

저자는 웃음/번역/용서/표현 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탈학습을 설명한다. 탈학습이란, 이미 존재하는 언어체계와 전승되어온 관념들에 대한 이해를 폐기하고 기존 맥락을 분해하여 개념의 새로운 쟁취를 시도하는 것으로, 친숙한 것을 다시 낯선 것으로 바꿈으로써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아렌트의 이러한 독특한 사유방식이 계획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닌 충격에 대한 반작용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며 늘 낯선 세계에 내던져졌던 아렌트는 기존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자신 안에 계속해서 축적했다. 그리고 그 충격에 의한 반작용으로 체득한 사유방식탈학습을 통해 기존 통념을 뒤집는 사유(악의 평범성!)를 구축했다. 또한 아렌트의 웃음, 번역, 용서, 표현 행위는 앞선 충격에 의해 형성된 균열을 봉합하거나 덮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열어둔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균열에 계속해서 관여하도록 한다. 관여가 바로 아렌트의 정치 개념에 대한 실마리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탈학습이라는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사고의 폐쇄성이 짙어지고 있는 오늘날 특히 되새길 지점이 많은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렌트보다 더 아렌트처럼 생각하는마리 루이제 크노트, 즉 저자의 존재.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탈학습으로 설명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아렌트를 떠올렸까. 아마 아렌트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더 오래 그러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덕분에 아렌트를 읽지 않고도 아렌트를 만나게 된다. 혹은 만났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의 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속 텍스트가 아닌 카뮈의 추천사였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에게 받은 편지 속에 묘사된 자신을 보고 진짜 나를 마주친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타인의 애정이 개입된 해석이야말로 그를 더욱 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글쓴이 

마리 루이제 크노트Marie Luise Knott

프리랜서 기자, 번역가, 작가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해왔으며, 독일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를 설립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예술과 문학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출판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한나 아렌트에 관해서 Von den Dichtern erwarten wir Wahrheit(한나 아렌트시인에게 진실을 갈구하다) Hannah Arendt/Gershom Scholem, Der Briefwechsel, 1939-1964(한나 아렌트와 게르숌 숄렘, 서신교환, 1939-1964)을 출판하였다.


 

        옮긴이 

배기정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시대 문인들의 중국문화 수용과 문학적 변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학술교류처(DAAD)가 선정한 중앙대학교 독일유럽연구센터(ZeDES)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변화를 통한 접근(공저), 독일 신세대 문학(공저)이 있고, 역서로 망가진 시대-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이 있으며, 패자의 표상에 새겨진 선한 유럽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럽비전과 현재적 의미,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적 체념-알프레드 되블린의 망명소설 바빌론왕의 유랑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김송인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관련 해외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재학중이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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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카 2020.03.24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렌트가 주인공인 그래픽노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3.25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박사님, 집에 <전체주의의 기원> 있는데 빌려드릴까요?ㅎㅎ (몇 년째 읽고 있어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아렌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도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