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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28 [작가 돋보기] 시간의 소설가 정영선 (1)

[부산·경남 작가의 재발견] 시간의 소설가 정영선

 

정영선 소설가는 경상남도 남해 1963년에 태어났습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셨구요, 데뷔는 1997년 단편소설 '평행의 아름다움'으로 하셨습니다. 수상 내용으로는 2006년 부산작가상, 2001년 부산소설문학상이 있습니다.

저서로는 『말하는 유물(2013, 문학수첩)』, 『부끄러움들(2011, 낮은산)』, 『시간여행(2010, 시간여행)』, 『물의 시간(2010, 산지니)』, 『실로만든달(2007, 문학수첩)』, 『평행의 아름다움(2006, 문학수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작가 탐구를 시작해볼까요? 자! 작가를 알려면 바로 그 작가의 작품을 보라는 말이 있죠?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구요?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죠. 왜냐면 지금 제가 급조한 말이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보면 작가가 보인다는 건 다들 동의하시지 않나요? (하핫) 어쨌든 지금부터 정영선 작가에게 빠-져- 봅시다!☞☜

대표적으로 세가지 작품을 살펴볼까요?

 

Ⅰ. 평행의 아름다움

첫 번째로 살펴 볼 작품은 2006년 ‘문학수첩’에서 나온 『평행의 아름다움』입니다.

등단 10년 만에 첫 창작집 『평행의 아름다움』을 낸 정영선 소설가. 첫 창작집 안에는 <평행의 아름다움>을 비롯한 <맹인모상盲人模象>, <속續난중일기>, <그림자 살인>, <겨울비>, <로취베이트>이 함께 묶여 있습니다.

 

 

표제작인「평행의 아름다움」에서 보여 지는 두 부부의 관계는 자본의 권력과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와해된 관계로, 불구적 의존과 예속으로서의 결혼이라는 관계양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민석이 전하는 민석부부 이야기와 연수가 전하는 연수부부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중도 해지한 적금 하나가 바닥이 났을 때 남편은 참을 수가 없는 듯이 짜증을 냈다. 그 후 남편은 항암 치료와 감기 치료가 다를 이유가 없다는 듯이 무관심했다. 난 이를 악물고 남편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다짐을 했지만 결국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암보다 남편의 무관심과 짜증이 더 무서웠다.

- p215

방사선 치료는 몇 번 중단되었다. 백혈구 수와 몸무게 부족 때문이었다. 오른쪽 겨드랑이는 화상을 입은 듯 허물거렸고 오른팔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남편은 술을 먹고 온 밤이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뼈만 남은 내 몸 위로 올라왔다. 그때마다 눈물이 났다.

- p217

 

연수의 남편은 연수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로 명문대 박사출신입니다. 연수가 만나고 있던 민석의 집안과는 극과 극인 셈이죠. 당연히 연수의 부모님은 민석이 아닌 자신들이 정해준 혼처로 결혼하길 권합니다. 연수는 부모님의 결정을 받아들여 결혼하구요. 연수는 대전으로 떠나면서 민석에게 마지막으로 ‘마흔 살까지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면 꼭 만나자’고하며 떠납니다. 그리고 유방암에 걸린 연수는 양쪽 가슴을 다도려내고 병원에서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죠.

 

오늘은 어머니의 제사다. 처제 집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일곱, 다섯 살인 덕우와 장우는 이모 집에서 세 살, 한 살인 이종 사촌과 같이 생활했다. 아들놈들은 언제 세수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땟국물이 겹쳐 있는 얼굴에 겨드랑이가 터진 옷을 입고 빈 요구르트 병을 씹고 있었다. 처제는 한 살 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 p218

아내는 어깨를 수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튀김이나 전은 사 왔고 다른 준비도 내가 절반이 넘게 했으니 그렇게 힘들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가 저렇게 팽팽한 얼굴로 피곤을 가장하며 제사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내의 말대로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는 어머니와의 불화 때문일까.

- p235

 

민석은 연수와의 헤어짐 뒤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봉제 공장에서 곰돌이를 만들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민석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그녀를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경리라고 속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민석이 아무리 그녀를 경리라고해도 회사의 청소부쯤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처음 결혼할 당시 민석의 무관심에도 집안을 이리저리 꾸미며 행복해하던 아내는 변한지 오랩니다. 1년에 20분 지내는 어머니의 제사에도 성의를 표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조차 돌보지 않죠. 이런 관계에서 온전한 부부관계가 성립되기는 쉽지않을거예요. 그에 비해 민석은 반듯한 사람으로 나오죠. 그는 최선을 다해 가정을 돌봅니다만, 가끔 헤어진 연수의 생각을 하기도합니다.

연수는 같은 병실을 쓰는 할머니에게 곧 ‘방학’이라는 말을 듣고 생기가 돕니다. 교사인 민석을 생각한 것이지요. 그녀는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네 손에 닿거든 마흔이라 생각하고 내게 와줘.’

 

Ⅱ. 물의 시간

두 번째로 살펴 볼 작품은 2010년 ‘산지니’에서 나온 『물의 시간』입니다. 바로 이 책인데요.

 

 

문재원 교수님은 『물의 시간』에 대해 "물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상태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말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다는 의미였어요.

작가님이 선수쳐서 "또 명성황후야?"하는 질문의 답을 책 안에 넣어두셨더라구요. 소설의 주인공은 명성황후가 아닙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시간' 이예요.

 

명성황후

정영선 소설가는 시간에 대한 궁금증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셨다던데요, 결국 시간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또한 물에 초점을 두고 시간 이야기를 한 것은, 물이 길을 찾아가고 순서대로 흘러가는 것이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네요. 또한 물은 여성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또한 물시계를 사용했던 조선을 의미하기 위해 물에 초점을 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에선 아직도 물시계를 쓴다네. 하루에 한 번, 정오가 되면 물통에 물을 붓지. 그 물은 해가 뜰 무렵까지 대롱을 타고 물통으로 빠져나간다네.” / “그런데 그 나라에선 그 물을 햇볕에 말린다네. 깨끗이 증발되는 적도 있지만 한 번씩 결정이 생길 때도 있다더군. 그걸 그 나라의 왕후에게 준다는 거야.” / “ 결정이 생긴다는 건 뭔가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 생긴다는 걸 의미하고 그건 왕후들의 몫이라고…….” / “글쎄, 나도 잘 모르지만……. 그 결정을 역사와 똑같이 보는 건 아닐까. 역사는 전부 중국의 문자인 한문으로 되어 있고 여자들은 그 글을 배우지 않으니.”

- p22

 

'결정'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미 죽은 인물인 명성황후를 역사대로 위험에 빠트리기 위한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소설은 명성황후의 죽음과 물시계의 멈춤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사라진 시간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물의 시간』은 한사람의 개별적 죽음과 한 시대의 죽음을 ‘시간’이라는 테마로 겹치게 하지요.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곳에 그 누구도 아닌 왕후 자신이 있었다. 왕후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이마를 만질 때마다 뭉클하게 설움이 돋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따뜻한 기운들이 손바닥 아래로 번져갔다. 누군가 이마를 짚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라니……. 왕후는 놀라면서도 전루군의 이름을 떠올렸다.

- p271

 

전루군을 알고 계시나요? 책의 첫 장을 넘겼을 때, 저는 ‘전루군’을 제가 모르는 어느 조선 왕자님의 군호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전루군은 조선시대 시간을 측정하는 관리였다고 하네요.

 소설의 시작은 전루군이 파루를 잘못 알렸다고 끌려가는 장면부터입니다. 조선의 시간과 서양의 시간이 충돌한거죠. 수십년간 새벽에 파루 치는 소리를 들어온 명성황후는 전루군이 알린 그 시간이 맞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그를 두둔합니다. 이 소설은 명성황후와 전루군의 숨겨진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함부로 아는 척 할 수는 없었다. 권세가 조금 기울어졌지만 왕비를 배출한 부원군의 집안이었다. 천문관이었던 아비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냇물이 불어나는 지금 집안의 높고 낮음을 따질 때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딱 말문이 막혔다.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까지 붉어졌다. (중략) “빨리 업히시오!” 여자아이는 신기하게도 눈물을 뚝 그치고 그의 등에 업혔다. 살이 파일 정도로 어깨를 꽉 잡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얇은 비단 저고리를 통해 빠짐없이 들려왔다.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와 똑같아서 더 어지러웠다. 다섯 걸음이면 건널 내를 여덟 걸음이나 걸었다. 내를 다 건넜을 때도 여자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봉출도 내려놓기가 싫었다. 멀리 소녀의 집이 보였다. 내려달라고 했다.

- pp69-70

 

전루군인 봉출과 민 첨정의 외동딸이었던 명성황후의 첫 만남입니다. 읽으면서 두근두근했던 장면이예요. 남의 연애 소설을 몰래 들춰보는 느낌도 들었구요. 굉장히 설레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왕후에게 첫 소금을 올린 것은 원자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주상께서 왕후보다는 이 상궁과 그 사이에서 난 완화군에게 마음을 두고 계셨다. 완화군께서 세자가 되었으면 왕후께서는 폐비가 되실 판이었는데 그때 불란서와의 양요가 일어나 그 일을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소금만 올리고 다음 원자 아기씨를 기다린다는 뜻만 전했다.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 p224

 

물시계의 물에서 소금이 나는 것은 왕실의 비밀이죠. 그만큼 소금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의 의미는 책을 읽어보시면 와닿으실거예요.

 

Ⅲ. 부끄러움들

세 번째로 살펴 볼 작품은 2011년 ‘낮은산’에서 나온 『부끄러움들』입니다.

 

 

소설의 무대는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 글쓰기 반이구요, 글쓰기 반 학생 4명이 과제로 받은 단편소설을 각각 한 편씩 읽어 나가는 '액자식 구성'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단편소설의 제목은 책의 차례에서도 보여지듯 <브래지어>, <부끄러움들>, <침 넘기기>, <엄마 냄새가 난다> 총 4편입니다. 배경은 주인공 심온 외 아이들이 사는 곳은 부산 산복도로 마을로, 한국 전쟁 때 피난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형성된 산동네구요, 작가는 심온의 집이나 마을 풍경 등을 묘사하면서 부산 산동네의 독특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랄치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도 랄치의 가슴은 여전히 예뻤다. 그런데 랄치 엄마는 왜 브래지어를 며칠 동안이나 베란다에 널어 둔 것일까. 나는 랄치의 가슴이 베란다에 걸어 둔 브래지어라도 되는 듯 멍하니 보고 있었다. 랄치가 내 눈길을 느낀 듯이 어깨를 들어 올렸다.

- <브래지어> p34

승주는 천천히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승주가 일부러 목을 긁는 걸 봤기 때문이다. 긁지 않았으면 두드러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친구들은 데모하다 잡혀가는데 사법고시 치는 게 부끄러워서 깁스를 했다는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 <부끄러움들> p67

아저씨가 코를 바닥에 풀며 말했지만 연경이 눈에는 흉터로 보이지 않았다. 머리 안에 숨어 아버지를 조종하는 벌레 혹은 누군가 일부러 심어 둔 바코드 칩처럼 보였다. 그 안에 아버지의 삶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일요일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버스가 끊긴 어두운 산복도로를 바람을 안고 걸어 올라와야 했고 지하철이 끊긴 날은 싼 목욕탕에서 밤을 새웠다.

- <침 넘기기> p102

악 악 악! 고함을 지르며 오르막을 올라갔다. 지나가는 차가 내뿜는 시커먼 연기가 입안으로 들어와도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인숙이 아줌마와 친구가 하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애초에 아줌마가 엄마를 기억하지 못했던 거라니,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린 아들을 업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엄마 생각에, 은봉이는 고함을 지르는데도 눈물이 났다.

- <엄마 냄새가 난다> pp132-133

 

정영선 소설가는 이 책의 제목 『부끄러움들』의 의미를 부끄러움을 느껴야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해서 그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설을 읽으시면 작가가 얼마나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보이실거예요.

『부끄러움들』은 읽으면서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돼요. 주위에 흔하게 있지만 흔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들. 이 작품을 빗대어 내 주변에 있는 부끄러움들에 대해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자, 정영선 소설가의 대표적인 작품들 몇가지 소개해드렸습니다. 맛보기로 작품을 한부분만 뜯어봐서 감칠맛 나시죠?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들며 집필하신 정영선 소설가의 작품. 더 읽고 싶다면, 직접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느껴보시는건 어떨까요?

 

작품보다 작가 정영선이 더 궁금하다면?

『문학을 탐하다』 소설가 정영선 편을 참고해보세요.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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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신소영 2014.08.12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고등학교 선생님 작품이 생각나서 찾다가 들어왔는데 제 기억 속 선생님이 아닌 작가로서의 선생님과 마주하니 기분이 묘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