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카페 구석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는 일,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공을 주워 다시 던져주는 일, 거실 천장의 전구를 가는 일,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는 일…. 그토록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정태규(61) 소설가가 지난해 '영혼의 근육'으로 쓴 작품집

〈당신은 모를 것이다〉 (마음서재)에서 피를 토하듯 내뱉은 위 구절을 기억하시는지?

"4년 전 서울로 거처 옮겨

페북으로 대중과 소통 고립 피하는 유일한 통로

안구마우스로 긴 글 힘들어 봄에 시 5편 발표 예정

10만 명에 1명 걸리는 병

9년 전 진단 땐 절망·혼란 지금은 오히려 담담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2011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지 올해로 9년째. 루게릭병의 공식 명칭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천체물리학자 고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았던 병. 근육운동을 조절하는 뇌세포가 파괴되어 근육이 점차 소실되고 끝내는 온몸이 굳어져 꼼짝없이 침실에 누워 지내야 하는 병. 발병한 지 3~5년 안에 사망한다는 불치의 병.

그러나 소설가 정태규는 놀랄 만한 정신력으로 '몸의 감옥살이'를 이겨내고 있다. 그는 비교적 건강할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스타로 활동할 만큼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며 여전히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물론 부인 백경옥 씨의 헌신적인 '옥바라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일 터. 발병하기 전만 해도 그는 촉망받는, 부산의 대표적 중견작가였다.

지난 연말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 전에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정중하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그의 답은 유쾌했다. "아이코! 내가 인터뷰 대상이 될 줄이야 ㅋㅋㅋ. 영광이오. 언제든 환영하오."

그는 예의 장난기를 잃지 않았다. 그와 이메일로 문답을 주고받았다. 답변은 1주일이나 걸렸다. 그는 '안구 마우스'라는 컴퓨터 기계장치를 통해 눈 깜빡임으로 한 자 한 자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답변을 토대로 대면 인터뷰는 보충 질의·답변 형식으로 진행됐다.

 

-언제 서울로 이사하셨지요?

 

"(백경옥 씨가 대신 답변) 2015년 3월에 왔어요. 아들 둘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보니 제 혼자는 간호하기가 벅찼어요. 지금도 아들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하하. 이 병의 특성상 더 나빠질 것도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상태죠. 가끔 내가 환자인 걸 잊을 때가 있을 만큼 적응했다고 할까요. 목에는 트라 수술(목 절개술)을 해서 호흡기를 연결해 숨을 쉬고 배에는 관을 연결해 음식을 섭취하죠. 다리를 약간 움직이는 정도이고, 눈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를 갈 수 있을 정도죠."

이 갈기는 그의 주요한 의사전달 수단. 긍정의 뜻은 약하게 한 번, 부정은 세게 한 번, 전체적으로 못마땅하면 격렬하게 여러 번, 석션(기관지 가래를 빼내는 것)은 약하게 두 번. 가장 중요한 용도는 잠잘 때 자세를 바꿔달라는 신호라고.

 

-페이스북은 어떤 의미이지요?

 

"루게릭 네트워크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주로 환우나 그 가족이 정보를 공유하는 곳인데요. 그 카페의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병은 앓은 지 3년만 지나면 모든 인간관계가 다 끊긴다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페이스북이죠. 말하자면 페이스북은 고립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죠.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페북에 빠지고부터 하루가 짧게 느껴집니다. 댓글 몇 개 달고 나면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아요. 이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는데, 음악 듣고 영화 보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죠. 페북을 하고 나서 외로움을 덜 타는 건 있어요. 투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시를 쓴다면서요. 소설에서 시로 전향한 겁니까?

 

"대학 2학년까지 시를 썼어요. 그런데 내 글쓰기를 지켜보던 동기생 하나가 내 시가 점차 산문화돼간다고 차라리 소설 쓰기를 유혹했는데 그 꾐에 넘어가 소설로 전환했어요. 아직 쓰고 싶은 장편 소설이 두 편이나 있지만 이제 안구 마우스로 긴 글쓰기를 하면 눈이 몹시 피로해요. 그래서 시 쓰기로 돌아갈까 해요. "

그의 시는 부산작가회의에서 발행하는 〈작가와 사회〉 2019년 봄호에 5편 발표될 예정이다. 그는 컴퓨터 화면에 자신의 시 몇 편을 자랑스럽게 띄워 보여줬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황당했죠. 10만 명 중 1~2명이 걸린다는 병에 하필 내가. 불운의 로또를 맞은 기분이랄까. 참 어이가 없었죠. 받아들이기 힘들고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은 좀 극복했습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죠. 지금은 오히려 담담해요. 아니면 어쩌겠어요.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즐기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맨날 드러누워 좋아하는 일, 영화를 보고 음악 듣는 일은 실컷 즐기는 시간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

 

-부산의 작가들이 안구 마우스를 구입해 줬다죠?

 

"고 옥태권 부산소설가협회 회장과 김은영 〈부산일보〉 기자 등이 주동해 중앙동 40계단에서 저를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행사를 열었죠. 부산소설가협회 회원은 물론 부산작가회의 회원도 많이 참석해 그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가 없죠. 그때 모금한 돈으로 고가의 안구 마우스를 살 수 있어 더더욱 고맙고. 부산소설가협회 회원은 지금도 문병을 자주 옵니다."

그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며 안간힘을 썼고, 그럴 때마다 기계음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에 몸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뭘 가장 하고 싶습니까?

 

"2~3년 내 여러 신약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지만, 뭐 안 나와도 할 수 없고요. 현재로선 버킷 리스트가 되겠군요. 하도 많아서. (웃음). 두 손으로 힘차게 자판 두드리며 글쓰기, 노래방 가서 신촌블루스의 '골목길'과 정태춘의 '첫차를 기다리며' 열창하기, 수제 호프·잘 내린 아메리카노 커피·잘 익은 자두 실컷 마시고 먹기, 페친들과 번개 하기."

 

<1996년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식 때 부인과 함께 한 정태규>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요?

 

"잘한 일은 문학을 선택한 일, 큰아들에게 자신이 원하던 음악을 하게 한 일이고요, 문학한답시고 가정에 소홀한 게 제일 아쉬워요."

 

-새해 소망이 있습니까?

 

"첫 시집을 발간하는 일."

이때 '누님 얘기'라는 글자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부인이 금방 눈치챘다. "아, 남편이 자신의 누님들에 관한 얘기를 좀 해주라는 겁니다." 백 씨는 시누이들에 대한 얘기를 했다. "경주와 진주에 사는 누님 두 분이 있는데, 서울로 이사온 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달 문안을 오세요. 혈육의 정이 얼마나 도타운지 모릅니다.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도 받아요."

그러자 정 선생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만족한다는 뜻이다.

 

-팬과 '페친'들에게 한 말씀을.

 

"창밖엔 함박눈이 소담스레 내리고 있습니다. 눈은 내려 쌓여 모든 것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웁니다. 우리 마음도 저 눈처럼 하얗고 둥글게 되기를 바랍니다. 창밖엔 햇살 눈부신 새 아침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올해에도 페친 여러분의 마음에 언제나 눈부신 아침이 찾아오길 기도합니다. 새해에도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겠지만 싸워 이겨 냅시다. 체르노빌 들판에도 꽃은 핍니다. 지난해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산으로 오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그의 육체를 위리안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혼마저 가두는 데는 끝내 실패했노라는.

 

소설가 정태규는

1958년 경남 합천 출생

부산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부산일보 신춘문예(1990) 등단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1996)·

제28회 향파문학상 수상

부산작가회의 및 부산소설가협회

회장 지냄

소설집

〈청학에서 세석까지〉

〈길 위에서〉 〈편지〉 등

 

길 위에서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편지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청학에서 세석까지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독서 수준이 높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저는 보통 소설집을 읽을 때 처음엔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독서 속도가 느려지고, 대충 읽고, 얼른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래서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설집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건 소설집을 읽지 않고 그냥 넘기기엔 단편 소설만의 묘미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지요. 짧지만 작가의 의식이 집약적으로 모여있는 단편 소설. 그 매력을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소설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편집장님께서 단편소설 교정보시는 것을 돕긴 했지만, 출판되어 나온 책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죠. 사회나, 정치 책을 읽을 기회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사장님이 소설집 두권을 하사해 주습니다. 한권은 정태규 소설가의 『길 위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의 작가 28명이 콩트 분량의 소설을 모아 만든『부산을 쓴다』라는 소설집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정태규 선생님의 작품을 중심으로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고 말았죠.

   전 평소에도 남자 소설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도 물론 좋아하지만 왠지 모르게 남자 소설가의 작품에 끌리는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쿨럭)은 아니겠고 뭔가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새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집 읽는 것을 조금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걱정과 함께 독서를 시작했으나 『길 위에서』에 모여 있는 소설들은 뒤로 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은 소설가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였습니다. 거의 시에 가까운 서술의 기법이라든가, 특히 『부산을 쓴다』중「편지」는 정말 한편의 시와 같은 소설이었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면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망자의 기억은 마멸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망자는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망자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 지층처럼 쌓여 산 자의 마음을 이루고 그 산 자의 마음은 그 다음 사람의 마음에 다시 쌓여질 것이다. 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렇게 쌓여온 마음들이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네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나 아닐는지. 그는 돌계단을 내려오며 그런 상념들을 떠올린다. (『길 위에서』중 「시간의 향기」, 본문 120~121쪽)

  하지만 소설가가 그렇게 서정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고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제 정치 하의 살벌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의 풍자도 살벌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좋아. 당장 잡아들이고 놈들이 결성했다는 단체 이름도 하나 지어. 좀 과격하고 자극적인 이름으로 말이야. 그리고 반혁명파로 의심되는 엘리트 놈들 몇을 지도자급으로 만들어 넣어. 놈들을 잡아들이는 대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 최대의 반혁명적 간첩단 사건이라고 일면 톱으로 때려서 분위기를 조성해.”(『길 위에서』중 「감춰진 머리」, 본문 232~233쪽)


  최근 젊은 소설가들의 소설만을 편식하듯이 읽었던 나에게 역시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니고 ‘잘 쓰는 소설가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소설 속에 녹여 자신의 소설을 성장시키는 구나!’하는 작지만 엄청난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는 시간 날 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을 내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시간 날 때 책을 읽겠다는 말은 읽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말이더라고요. 이번에 한번 시간을 내어 소설집에 도전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책이 제가 오늘 소개한 정태규 소설가의 『길 위에서』라면 더욱 좋고요 :-)

길위에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태규 (산지니,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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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쓴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태규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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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요즘 출판계에선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최대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사건'이 화제입니다.

<엄마를 부탁해>가 아마존 18위에 올랐네요(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블로그)


아직 책을 안 읽은 분들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출간 당시 화제가 됐었지요. 2009년 원북원부산을 뽑는 독서 캠페인에서  저희 책 『부산을 쓴다』와 경합을 벌여 우리를 슬프게 한 책이기도 합니다.

원북원서울이나 원북원마산이 아니라 '원북원부산'을 선정하는 캠페인이었기에, 부산의 정체성과 장소성을 풍부하게 드러낸, 부산 소설가 28인의 합동소설집  『부산을 쓴다』가 걸리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베스트셀러에 대한 대중의 호응과 인지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국내 출판 저작권 분야는 수출에 비해 수입 의존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번역출판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외국 책을 많이 수입해서 내지만 우리 책을 외국에 수출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는 거지요. 반면, 미국 출판시장에서 해외문학의 번역 출판 비율이 1%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외국 작가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자신의 책을 올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낼 수 잇었던 것은 글의 힘, 즉  엄마를 소재로 한 책의 보편적 정서가 바다 건너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있겠지만, 책을 미국 출판 시장에 소개하고 계약을 성사시킨 케이엘에이전시 이구용 대표의 노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의 한국 문학 수출 분투기'라는 부제가 달린 『소설 파는 남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는 책을 내기도 했지요.

아마존에 올라 있는 독자 리뷰를 보니 책을 보면서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당장 울엄마부터 돌봐드려야겠다 등등.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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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쓴다 - 10점
정태규 외 27인 지음, 정태규.정인.이상섭 엮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얼마 전 김미혜 소설가의 갑작스러운 별세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16일 향년 52세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는 소식을 신문 지면을 통해서 봤는데요. 재작년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부산을 쓴다』라는 책에도 선생님 작품이 실려 있는 인연이 있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미혜 소설가의 생전의 모습


책에 넣을 저자 사진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 ‘참 예쁘시게 웃으시는 분이구나’ 했었는데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명랑한 성격의 고인은 오로지 소설밖에 모르는 타고난 예인이었다고 합니다. ‘현상은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현상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면 된다’라는 각성을 늘 마음에 품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아프시면서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실 수 있었는가 봅니다.

고인은 부산 출생으로 1994년 문화일보를 통해 등단했고, 작품집으로 콩트집 『웃어주기』(1990), 창작집 『몇 가지 증상의 일상적 소묘』(2001) 등을 남겼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부산을 쓴다』에 실린 단편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을 싣습니다. 내용이 길어 두 번에 나눠 싣습니다.

 

별을 향해 쏘다!!
-온천천-

 진부하고 재미없는 표현이지만, 어떤 고통이나 기쁨도 고통만이 전부거나 기쁨 자체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즈음, 삶에 대해 안도한다. 귀찮고 힘든 일 속에 숨은 예측불허한 삶의 비의와 모순처럼 보이는 것에 숨은 정연한 질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기운들은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안달나지 않게 해서 좋다.

본가에서 살다 이곳 아파트로 가출(?)한 이듬해. 단지 내의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을 개별 난방으로 바꾸자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대주민발표가 있었다. 물론 나는 반대했다. 주면 주는 대로 살면 편할 걸, 숨쉬기도 힘든 세월을 사는 내게 이사한 지 일 년 만에 멀쩡한 집을 파뒤집는다는 사실도 그렇고. 좁디좁은 베란다에 보일러를 설치한다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다행스럽게도 반대의견이 많아 개별 난방공사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일이 터졌다. 각 동별로 찬반투표가 시작되었고 결국 우리 동도 대세에 밀려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닫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초 계획된 베란다 쪽이 아니라 뒷방을 뜯어내고 복도에다 보일러를 단다는 것. 내심 걱정한 소음의 피해와 공사 규모는 줄어들게 되었지만 뒷방에 가득 찬 짐들은 또 어쩔 것인가!

공사비 마련과 짐 옮길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희한한 일이 생겼다. 20년도 더 전에 상 하나를 같이 받은 사람이 작은 출판사를 열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A4용지에 인쇄해 내게 보내준 것이 있었는데, 무심하게 봐 왔던 그 책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것이었다. 순간 한 생각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혹시 복사나 제본도 가능한가 하고. 그의 답이 시원했다. 복사도 제본도 가능하고, 전화도 반갑다고. 아마도 나를 박대하지 않던 그의 친절함 때문에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하이고, 그기 먼 고민이라꼬. 내가 가서 당장 옮기 주께요. 10분이면 될 걸 갖고.”
공사하기 일주일 전, 그는 이십 몇 년 만에 나타나 정말 순식간에 뒷방을 깨끗이 비워 주었고, 그 방에서 나온 술 한 병을 손에 들려주자 실은 바빠 죽을 판이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내 힘으론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 예정에 없던 전화 한 통으로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한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빈 방의 장판을 들춰 보니 목욕탕 쪽 방바닥이 시커멓게 곰팡이에 절어 있었다. 위층의 목욕탕 배수관이 터졌을 때, 우리 집으로 새어 내려온 물이 바닥에서 썩는 중이었던 것이다. 워낙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방이라 나는 방바닥이 썩는 줄도 모르고 있었고.

사연을 들은 사직동 영혜 씨가 고무장갑까지 챙겨서 달려왔고, 함께 락스를 풀어 씻고 닦고 말리고 하느라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린 오후. 영혜 씨가 가자마자 K 선생께서 한 보따리나 되는 밑반찬을 싸들고 오셨다.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를 보는 K 선생의 눈빛이 아련했다. 찬물 한 잔 마시지 않은 그분은 금방 일어나셨고, 떠난 자리엔 두툼한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통화 때마다 공사비 걱정을 하시더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가슴이 저려 왔다.

파쇄기의 소음으로 온 세상이 떠나갈 것 같던 공사 당일. 시멘트 먼지의 폭탄 속에서도 어쨌거나 무사히 하루해는 저물었다. 방을 파뒤집는 공사도 끝났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웬걸. 이번엔 온수관 해체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자화수기(磁化水機)! 이사올 무렵, 자화수기는 꼭 있어야겠기에 아는 여사님께 부탁을 했는데 굳이 대금을 마다하셔서 더 귀히 여기고 있던 물건. 그러니 공사 전에 그놈부터 미리 챙겨 놔야.

온수관 해체작업이 끝난 후 자화수기를 부착했다. 그런데 601호 전직 선생님이 오셔서 내 집 아닌, 옆집 603호에 자화수기가 달렸다는 거였다. 그럴 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 선생이 부러지게 말씀하셨다. 계량기 잠궈 놓고 들어가서 물 틀어 보면 된다고. 이 선생과 함께 두 집의 계량기를 잠궈 가며 확인한 결과. 자화수기는 4년이 넘도록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달려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이 선생이 나를 비웃었다. 바보 쪼다라고. 욕먹어도 쌌다. 허나 욕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공사 아니었으면 아니, 이 선생 아니었다면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 아닌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아셨냐고. 공사하기 전 각 계량기마다 호수 적는 걸 보셨는데 내가 자화수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에 제대로 달았는지 확인해 봤단다. 그랬구나. 인생은 이처럼 복선으로 넘치고, 처처의 귀인들은 알아서 맹활약 해 주시고.

자화수기를 내 집에 달자 물때가 끼지 않아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도 타일 바닥이 뽀송뽀송한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았다. 한데 깨끗하니까 오히려 재미가 나서 온종일 청소하느라 고단한 몸이 더 고단해졌다. 무리했다 싶었는데, 결국 대형사건 하나를 저지르고 말았다. 뻑뻑한 현관문을 있는 힘껏 열다가 육중한 철문에 왼발 엄지발톱을 통째로 날려 먹은 것이다. 생발톱이 날아가 버린 발가락은 처참하고도 무서웠다. 몇 달 고생을 했고, 죄 없는 일이어서인지 발은 덧나지 않고 잘 나아 주었다. 방심한 나는 발톱이 덜 난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센텀시티로 이사 온 동창 순애의 차를 타고 쑥 캐러도 가고 가까운 외출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약해진 피부가 신발 속에서 서로 맞닿아 다친 발이 성이 나 버린 것이다.

덧난 발은 처음의 통증과는 강도 자체가 달랐다. 진통제는커녕 항생제 한 알 먹지 않고 동인당고약과 에너지워터만 바르며 생으로 통증을 이겨 냈다. 그러다가 엊그제 비뇨기과 개업의인 사촌동생 영수에게 전화를 했다. 통증이 뒤늦게 녀석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듣자 평소와 다르게 녀석이 엄청 반가워했다.

“아이고, 그렇잖아도 내가 전화 한 번 때릴까 했는데.”
발을 다쳐서 어쩌고저쩌고 덧나서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녀석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제 말만 했다.
“아, 잘 됐네. 오늘 밤에 쫌 봅시다.”
발이 아파서 못 나간다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 마, 나오소. 내가 의산데 뭔 걱정이라요.”

망미동에서 택시 타고 오다가 토곡사거리에서 국민은행 쪽으로 좌회전하라, 좌회전해서 한 150미터쯤 오면 오른편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그 주유소를 축으로 유나삼계탕 골목으로 우회전,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한양아파트 6동과 21동을 양쪽에 두고 관통하게 된다, 그 길을 계속 직진하다 보면 온천천 길과 딱 마주치게 되는데 왼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택시를 버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 길을 건너면 바로 온천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허나, 계단으로 내려가지 말고 연안교 쪽으로 10미터만 올라오면 누님이 좋아하는 화장실도 있고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그곳으로 저녁 먹고 9시까지 나와라, 집에 갈 때는 모셔다 준다.

녀석의 설명이 그랬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아픈 발을 배려하기는커녕, 그 발을 끌고 밤 9시에 만나자니. 한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녀석이 그렇게 나오니 통증이야 어떻든 불안감이 가시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나가 볼 생각도 생겼다. 저녁식사 전 잠깐 아고라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해운대 진숙 씨가 재활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치워 주겠다며 전화도 없이 찾아왔다. 고마움 섞어 저녁상을 차렸고, 그래봤자 찬 없는 시시한 저녁을 먹었고, 시간이 되어 진숙 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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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박경효 선생님과의 점심식사

<산지니> 출판사의 점심 시간은 ‘1시’입니다. 여느 사무실이 12시인데 비해, 조금 늦은 편이지요. <산지니> 사무실은 법조타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12시에 나갔다가는 치열한 자리 경쟁에 휩싸이게 마련입니다. <산지니>의 식사 시간이 다소 늦은 이유는 바로 ‘한가로움’을 확보하기 위함이지요. 조금 늦게 하는 식사라, 당연히 밥맛도 더 좋습니다.

보통 직원들끼리 단출하게 먹는 편입니다만, 종종 반가운 손님들과 함께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시는 박경효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점심을 함께하였습니다.


옮겨간 곳은 사무실 근처의 횟집. <산지니> 식구들은 ‘회덮밥’을, 선생님은 ‘내장탕’을 시키셨습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이 최근에 구입하셨다는 캐논의 G10 카메라를 구경하였답니다. 튼튼한 바디와 휠로 조작되는 조리개까지! 앞으로의 활약이 잔뜩 기대됩니다. 카메라 테스트를 하느라고 돌아가며 여러 컷을 찍었는데, 그중 잘 나온 선생님을 여기에다 올립니다.


볼로냐, 아동서와 예술서의 천국

박경효 선생님은 다음 주에 볼로냐로 떠나실 예정입니다. 이번 달 23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www.bookfair.bolognafiere.it)에 참석하시기 위함이지요. 올해는 우리 나라가 최초로 주빈국으로 참가한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박 선생님은 지난 해 <입이 똥꼬에게>라는 창작 그림책으로 제14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셨는데, 이번 여행은 그 ‘포상’이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입이 똥꼬에게> 판권이 해외로 수출되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소개되길 함께 기원해 봅니다.

최근에 읽은 이홍의 <만만한 출판 기획>에 마침 이런 문구가 나오더군요.

“볼로냐는 아동서와 예술서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모든 분야의 편집자가 다 가지는 않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할 북페어가 볼로냐라고 한다.” (169p)

도서전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그리고 볼로냐아동도서전은 출판인들이 한번쯤 참석하길 꿈꾸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외 도서전에 다녀오고 나면 사표를 내는 편집자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네요. 엄청난 문화 충격에 따른 상대적 초라함을 이기지 못한 탓일까요? 이런 후유증 때문에 절대 해외 출장을 안 보내는 사장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들 속에서 도서전의 수준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보게 됩니다.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표어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Round in a Circle).'
+ 포스터 이미지 출처 :  http://www.bologna2009korea.or.kr/


박경효 선생님과 산지니의 인연

식사를 맛있게 끝내고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려는데, 아차차! 서빙 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선생님의 점퍼 위에 커피를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거듭 사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럼, 서비스라도...” 한 것이 냉큼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시 뒤, 테이블에 오른 것은 맥주 두 병. 그 후 짧지만 기분 좋은 ‘낮술’ 타임이 훈훈하게 이어졌답니다.

박경효 선생님과 산지니의 끈끈한 인연은 네 권의 책 속에 녹아 있습니다. <제갈 선생 7일 7장>, <빛>,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부산을 쓴다>가 바로 그 책들이지요. 박경효 선생님께서 활발한 아동문학화가로 활동하시는 가운데, 앞으로도 <산지니>와도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게 되길 바랍니다.

“박경효 선생님, 볼로냐 잘 다녀오세요!”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