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소설집

 

 

일상의 균열을 통해 피어나는 삶의 질문들

 

  소설 「끌」은 평생 가구를 만들며 성실하게 살아온 목수의 이야기다. 가구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그것을 보람으로 삼는 주인공(남편)에게 두 가지 시련이 닥친다. 하나는 가구 업계의 불황이고, 두 번째는 아내의 외도다. 호구지책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주인공은 친구의 주선으로 다시 나무와 연장을 만지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끌로 생채기 난 가구를 다듬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원망도 함께 끌질해 나간다. 소설 「끌」에서는 주인공과 아내의 관계를 끌과 나무의 관계로 보여주며 아내의 외도로 상처받은 주인공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다.

 

  서랍장 생채기를 화심으로 삼아 꽃을 갉작갉작 그린다. 가는 꽃문양이 새겨지는 자리마다 물비린내와 습한 흙냄새가 섞인 듯한 생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가루가 날린다. 끌 자루를 잡은 손에 느슨하게 힘을 풀어 포개진 꽃잎 안쪽 선을 다독이듯 민다. 자잘한 금을 꽃술로 삼아 가는 평끌 끝을 쓱싹쓱싹 그린다. 안쪽으로 오므린 꽃잎 부분을 지날 때 끌 자루에 힘을 살짝 뗀다. 내가 끌 자루에 매달린 것 같다. 몇 걸음 물러서서 서랍장을 본다. 생채기는 꽃으로 피어났다. _「끌」에서.

 

  「슬리퍼」는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여자는 출장 피아노 레슨 강사이고 그녀의 남편 K는 피아니스트이자 음대 교수다. 여자는 자신의 외도를 의심하며 옥죄고 다그치는 남편 K를 떠나 바닷가로 향한다. 평소 외반무지증이 심해 꽉 조이는 신발을 신지 못하는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백사장을 거닐며 늦여름의 바닷가의 풍경을 음미한다. 소설 말미,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를 신고 남편의 피아노 협연을 보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나’와 ‘자유’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슬리퍼’라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K는 무대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객석은 조용해졌다. K가 건반에 손을 올리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헛기침 소리도 멎었다. 앙코르곡은 브람스의 소품 ‘왈츠’였다. ‘왈츠’라는 곡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애잔한 선율이었다. 여자를 안고 업었으며 여자의 목을 조르던 저 손으로 K는 지금 왈츠를 치고 있다. 여자는 앞좌석 의자 밑 저 깊숙이 밀려나 있는 슬리퍼를 발로 당겨 신었다. _「슬리퍼」에서.

 

 

소통의 부재를 그려낸 현대인의 자화상

 

  소설집 『끌』에서는 빚에 허덕이는 생활고, 반지하와 같은 허름한 주거환경,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믿음 등이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장악한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러한 남루한 삶을 통해서 소통의 부재와 비윤리성을 드러낸다.

 

  소설「인질」은 택시기사 동수가 손님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돌려주기 위한 과정 속에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수는 습득한 스마트폰을 인질로 삼아 사례비를 뜯어내려고 하지만 습득한 폰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번호가 하나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 즐겨찾기에 저장된 사람들도 폰 주인에게 욕설을 내뱉을 뿐, 정작 폰 주인에게는 무관심하다. 핸드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전자기기임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의 주인공과 즐겨찾기에 저장된 사람들은 부재중이다. 독자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 사물인 스마트폰(핸드폰)을 통해 현대인들의 소통이 부재한 각박한 삶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더불어 끝까지 핸드폰(인질)의 주인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결말을 통해 허상에 사로잡혀 필요 없이 부박하게 사는 우리네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여기 택시로 오기엔 아주 멀어.”
  “허명이라는 사람의 집은 어딥니까?”
  “집? 그 아이의 집을 알았다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지.”
  “아이, 어서 안 들어오고 뭘 해?”
  언감생심 목소리 사이로 여자의 고태 어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금 내가 아주 급한 볼일을 보는 중이거든, 그럼 이만.”
  동수는 남아 있는 팥빵을 마저 욱여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지방까지 갖다 줬다고 사례비와 차비에 웃돈까지 바랐던 것이야 말로 언감생심이었다. _「인질」에서.

 

  「창」의 주인공 나는 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복학준비생이다. 창틀을 수리하는 A/S 과장을 따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본다. ‘창’은 소통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창 안에 갇혀 있거나, 창밖으로 내몰려 있다. 소설은 소통의 대표적 이미지로 ‘창’을 보여주면서 그 속의 혹은 그 밖의 고독한 현대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창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에 대해 꼬집는다.

 

  “앞이 트였다고 모두 전망인 것은 아니라고. 김 군도 아파트를 많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창 앞에 볼 게 뭐 있었어? 전망, 전망들 하지만 정작 전망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전망이라 하지 않지. 요새 사람들, 세계로 어디로 다니면서 좋은 것은 다 보고 사는데 뭘 더 보고 싶겠어. 사람들이 넓은 창을 원하는 것은 뭘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누가 저들을 봐 주기를 바라는 거지.” _「창」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숙고

 

  「부벽완월」과 「비문」은 일종의 예술가소설이다. (…) 예술의 목적, 예술과 정치(도덕)의 관계,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등 전통적인 미학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 두 단편은 예술가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_황국명(문학평론가)

 

  「부벽완월」은 고려 말 묘청의 난을 평정한 김부식이 부벽루에 올라 달을 보며 정지상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질투를 품어 묘청의 난 때 그를 죽였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김부식 입장에서 그 사실에 대한 변명의 기회를 준다. 「부벽완월」은 서경천도, 묘청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부식이 지상에게 품은 것은 질투가 아니라 동경과 흠모였다는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쓰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김부식이 시 구절 하나를 취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문학에 대한 열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 홀로 발아되어 꽃을 피운 가요처럼 지상의 시들도 모두 제 흥에 겨운 시들이었다. 지상의 시 어디에도 세상과 엮이고 싶은 마음은 서려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은 세상의 한복판에 쓰러지고 말았다. _「부벽완월」에서.

 

  「비문(飛蚊)」은 18세기 무렵 조선의 화공 최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리는 타락한 양반 안유백의 하인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엄숙한 태도를 드러내거나 예술적 행위에 대해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수리의 예술적 경험과 그 기록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수리의 그림을 된장독 덮개로 쓰거나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안유백의 억압이 그러하다. 잔인한 주인 안유백은 수리의 동료이자 도망 노비인 상두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초상화를 그리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붙들린 상두는 모진 매질 끝에 끝내 자결하고, 수리는 화폭 가득 검은 먹물만 칠해진 것을 초상화라고 제시하여 안유백의 격분을 산다. 조선시대 후기의 변화하는 시대상에 역행하는 안유백에게 저항하는 화공 최수리를 통해 예술가의 역할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리 눈엔 이것이 검은 바탕으로만 보이십니까? 소인의 눈엔 쉬파리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꼬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리께서는 혹시 비문증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눈 한쪽 망막에 검은 점이 있어 언제나 파리 한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병이지요. 나리는 모르셨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비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앓는 비문증은 이상하게도 푹푹 썩은 것만 보면 온통 파리가 바글바글 들끓는 것처럼 보입니다.” _「비문(飛蚊)」에서.

 

 

 

| 이병순 소설집

이병순 지음 | 문학 | 국판 | 238쪽 | 13,000원

2015년 9월 11일 출간 | ISBN : 978-89-6545-315-4 03810

 

이병순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표제작 「끌」을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슬리퍼, 창, 스마트폰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을 통해 일상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는 삶의 질문을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가다듬어 나가는 인물과 소설 곳곳에 자리한 일상의 흔적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더불어 문학의 의미,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역사적 인물인 김부식, 정지상을 주인공으로 한 「부벽완월」, 18세기 말 조선의 어느 화공 이야기를 다룬 「비문」에서는 문학과 예술에 관한 작가의 숙고와 성찰을 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글쓴이 : 이병순

 

 

부산 출생.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끌」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차례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이수경 2015.09.11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하다 하면 흔하고 개인차 있기 마련이지만 ,제목이 주는 신선함과 편안함에 이끌려 푹 빠져서 독서다운 독서를 했습니다~~
    작가님의 2번째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 BlogIcon 단디SJ 2015.09.14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가까이 있는 소재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작가님의 매력에 푹 빠졌답니다! 얼른 이병순 작가님의 두 번째 작품도 만나보고 싶어요 >.< 이수경님 말처럼 편안하면서 신선한! 그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집인 것 같아요!

  2. BlogIcon Tale 2015.09.11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정독하러 갑니다.

    • BlogIcon 단디SJ 2015.09.14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 소설집에 실린 8편 모두 참 괜찮은 작품이라 책장이 후다닥~ 넘어갈껍니다 ㅎㅎㅎ 요즘 날씨도 정말 좋은데, 즐거운 독서 되셔요 : )

 

 

안녕하세요! 인턴 희얌90입니다.

김헌일 작가님 인터뷰엔 제가 카메라를 들고 동행했었는데요. 

 

저는 홀로(ㅠㅠ) 저자 인터뷰를 하러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출발하는 기쁨~

저자인 서정아 소설가님과는 일요일 오전 9!

한적한 대학가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날씨가 유독 추웠어요. 따뜻한 차 한 잔씩 들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Q.안녕하세요.날씨가 많이 춥죠?

A.(웃음)

 

 

 

멀리서 작가분이 걸어 오셨는데요. 엄.청.나.게. 미인이셨어요.

 

Q.첫 소설집을 내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A.뭐 그렇게 달라진 건 없어요. 소설집이 나온지 좀 지났죠?

Q.3개월 그 정도 됐죠?

A., 그래서 그 동안 딱히 이렇다 저렇다할 변화는 없었어요. 그치만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틈틈이 잡지나 이런데 원고를 내서 짧은 글이 실리긴 했어도 제대로 남들한테 보여준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소설집이라는 책이 완성돼 나와서 친구들한테나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점은 좋았어요. 격려도 많이 받고. 그런게 좋았죠.

Q.첫 소설집이 10년 만에 나왔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A.아무래도, 책으로 나오기가 오래 걸렸으니까.

 

Q.10년간의 집필기가 궁금해요.

 

A.10년 동안 열심히 글을 썼어야했었는데. 집필하는 동안 공백기가 사실 있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 걱정이나 먹고 사는 현실에 부딪혀서 등단은 해놓고 글을 거의 못 적었어요. 한 몇 년간은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글을 쓸 시간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몇 년은 글 쓰는 걸 쉬었죠. 그렇게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됐고, 일을 그만두면서 제대로 집필을 시작했죠.

Q.공백기가 컸는데, 소설 쓰는데 무리는 없으셨나요?

A.공백기 동안 저는 글을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공백기 동안 지내온 직장생활이 소설을 쓰는 토대로 작용하더라구요. 경험이 쌓이니까 소설로 옮겨 올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의 소설집이 완성될 수 있었어요.

 

Q.소설로 들어가면, 작가님의 소설엔 여성 화자가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데, 모두 다른 차원의 여성들이에요. 이런 캐릭터들은 어디서 가져오고 캐치하시는지 궁금해요.

 

A.저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말을 잘 안하는 편이어서 주로 친구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거기에서 인상 깊었거나 충격적인 사건이나 거기에 속한 인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을 쓸 때, 제일 기본적으로 인물을 설정해요. 그러고 나서 소설 상황에 맞게 더 색을 입히고 설정을 하죠. 그러면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게 되고, 성격 묘사나 이런 것들을 꼼꼼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그럼 기존에 있었던 인물을 소설에 맞는 캐릭터로 개조시키는 거군요?

A.그렇다고 볼 수 있죠. 가장 기본적인 성격이라든지 외모, 이런 것만 가지고 와서 소설에 맞게 덧붙이는 거죠.

 

Q.소설 속에 딱히 이렇다 할 지명들, 공간의 이름들이 등장하지 않아요. 주로 어디를 배경으로 삼아 쓰고 계시나요?

A.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제가 부산으로 살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쓰지 않아요. 더욱이 제가 사투리로 대화 표현을 하지 않는데 그게 지역적 특색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정해지면 소설적 분위기가 한정되어 버려서 지역이나 지명을 쓰지 않아요. 또 사투리를 쓰게 되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투리를 쓰지 않고 있어요. 서울도 아니고 어디도 아닌 곳을 배경으로 등장시켜서 소설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혹은 소설적 상황만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Q.그렇다면 사투리로 대화하는 소설을 쓰지 않으실 건가요?

A.좀 더 지역적 내공이 쌓이면, 그때 한 번 도전해볼게요.(웃음)

 

Q.특별히 여성 화자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제가 여자이기도하고, 여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설 묘사나, 대사에 있어서 더 사실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남자 화자보다 더 손이 가요.

Q.거기에 대부분 작가님의 경험도 바탕이 됐겠죠?

A.그렇죠. ‘내 방엔 달팽이가 산다에 나오는 원룸은 정말 제가 살았던 곳을 배경으로 했어요, 정말 여름에 비만 오면 달팽이가 등장하곤 했죠. 그때마다 저도 소설 속 화자처럼 손을 막 씻기두하고 달팽이를 휴지에 싸서 버려 버리기도 하고 했어요.

Q.직장 생활상을 리얼하게 그리신 것도 작가님의 체험이 어느 정도 있어서 겠군요?

A.그렇죠.

 

Q.소설에서 대화쓰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다양하고도 많은 대화들을 정말 말하는 것처럼 잘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나를, 알아?’에서 처럼요.

A.대사는 일단 제가 쓰고 나서 소리 내서 읽어봐요 근데 대사 쓸 때가 지문보다 힘들고 신중해져요. 왜냐면 쓸모없는 말이 대사로 들어가면 단편의 압축미가 사라진달까? 이 말이 꼭 필요한 건가 고민 많이 함 조금 우리가 실제로 말하는 구어체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일상적이면서도 소설적으로 좀 가볍지 않게 쓰는 편이에요. 모든 대사를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런걸 생각하면서 쓰는 편이죠.

Q.거기에 작가님의 생각도 많이 들어가나요?

A.모두가 제 생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제가 그 주인공이 돼서 주인공의 생각대로 말하게 되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요.

 

Q.‘이상한 과일에 나오는 동성애의 이웃의 등장이 신선했어요. 하필 동성애(게이)의 이야기를 넣어 극적 효과를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A.이상한 과일에 등장하는 빌리 홀리데이 가사에 보면 이상한 과일이 열렸네라는 말이 있어요. 그 가사에 착안을 해서 쓴 작품이에요. 빌리 홀리데이는 흑인이고 백인에 대한 폭력, 즉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노래를 한 사람이죠. 근데 현대에 와서 성소수자들의 어떤 위치가 달라졌다한들 그들은 일종의 소수자잖아요. 그런 소수자를 등장시켜 이상한 과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죄들을 그들에게 덮어 씌워 그들의 죄를 용서받는 그런 주제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소수자를 찾다보니 현대에 성소수자가 제일 적합하다 생각했고 그 때문에 설정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에 게이 이웃의 물건을 불태우는 장면은 자신들의 죄를 함께 불태우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죠.

Q.소수자들에게 책임을 다 전가한 것이군요?

A.그렇죠. 그렇게 자신들의 죄를 씻는 거죠.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루트>는 흑인의 린치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고 만든 노래이다.

 

 

Q.‘해산에서 보면 과거에 왔다가 현재에 왔다가, 빙하로 가는 날엔에서도 고등학교 때 벌어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현재로 와 만나는 것들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층위의 만남에 접합점을 찾는 작업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현재는 과거의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물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과거이야기를 자주 넣는데 요즘 소설이 전부 그냥 쭉 뭐 순차적으로 서술되지 않잖아요? 순서대로 쓰는 건 재미도 없고 해서 그렇게 쓰진 않아요. 소설의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들 지금 뭐 레몬차를 마시는데 과거에 레몬차를 마시던 때로 돌아가서 과거의 일을 천천히 서술하는 것이 독자에게 이해하기 쉽고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요. 그런 장치들을 생각해 놓고 미리 틀을 짜놓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Q.굉장히 치밀하시군요. 메모를 미리 해놓으시나요? 장치들에 대해서?

A.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은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때도 있어요,

 

Q. 뒤에 해설에도 등장하지만 벌레동물’, 그 기타의 것들이 소설 사이사이에 화자의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만나 화자를 괴롭히거나, 신경 쓰게 하는데 그것들이 일종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암시하는 하나의 매개인가요? 그것들의 등장이 의미심장해서 꼭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A.이것들(벌레나 괴식물)이 등장함으로 인해서 뭐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층위로 쓴 것은 아니구요. 화자에게 일어난 일은 결국 일어날 일이고, 어쩌면 그것들이 없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이것들이 등장함으로써 전달되는 것은 바로 화자의 자각이에요. 벌레나 식물들이 사건이 벌어진 것을 자각하도록 하거나 혹은 더 극대화시켜서 그 일에 대한 반성이나 인식을 빨리 하도록 돕는 거죠.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풍뎅이의 아름다운 반짝임은 화자 자신의 젊음을 유지시키는게 허무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것이 그것들의 용도이죠. 이것 때문에 없던 일도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튀게 하는 것. 그런 것이 목적인 것 같아요. ‘잎이 삼킨 것들에서 파리지옥이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원장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인식처럼요.

 

Q.벌꿀의 비행에서와 같이 관계를 다루는 것이 좋았어요. 유부남과 사귀는 친구의 불안한 연애,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주인공과 연인의 뜻밖의 헤어짐과 같은 것. 관계에서 느껴지는 부조리를 어떻게 캐치해 내시나요?

 

A.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숙했던 것 같아요. 그냥 사람들을 보면, 저 사이에. 저 관계에. 어딘가 빈틈이나 불안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쭉 그런 생각을 했고 제 소설집의 큰 주제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 혹은 불안감이 주가 됐죠.

Q.어릴적부터 쌓아온 경험이 소설에서 빛을 드러낸 것이군요?

A.그렇다고 볼 수 있죠.(웃음)

 

여담이지만….

 

Q.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A.저도 오랜만에 문학의 대담을 나눈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 평소엔 아이를 키우는 것 때문에. 이런 자리가 그리웠어요.

Q.사실 저는 문청으로써 부럽습니다. 젊은 나이에 등단을 하셔서. 제 목표가 젊은 나이에 등단하기거든요!

A.젊을 때 등단하면 또 그것대로의 단점이 있어요. 성숙이 안됐다고 할까? 문학적 소양을 덜 쌓아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데 차질이 생겨서 어쩌면 공백기를 가질 수도 있거든요. 그 공백이 나쁜 건 아니지만, 등단을 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할 때도 있어요.

Q.그렇군요. 다음 작품에 차질이 생기면 원치않는 공백이 생길수도 있겠군요.

A.문학적 소양때문만 아니라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쩌면 제일 클 수 있어요.

Q.어떻게든 장단점이 있다는 거군요.

A.그렇죠.

Q.그래도 부럽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A.고맙습니다.

 

싸인 요청에 응해주시는 서정아 작가님

 

 

이렇게 싸인을 받았습니다. 글씨도 예쁘십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느낀 점은 서정아 작가님의 '이상한 과일'에는 서정아라는 인간의 인생이 착즙된 액기스가 들어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경험한 것,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것, 다양한 인간 관계…. 작가님이 느끼고 겪은 것들은 소설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정말 감명깊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던 첫 소설집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독후의 감동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데요~

이상 서정아 작가님의 짱팬 1호가 된 희얌90이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엘뤼에르 2015.01.20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정아 선생님의 직장 경험이, 소설 창작에 바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주변에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앞으로 그들의 소설에 등장인물이 되지 않을까 살짝 두렵기도 하네요.ㅎㅎ 우선 희얌90님부터 조심해야겠어요^^ 인턴 기간 끝나기 전에 소설 보여주실거죠?ㅎㅎ

  2. BlogIcon 초코라떼mj 2015.01.20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 저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ㅠㅠ 제가 두분 인터뷰하는 사진도 멋있게 찍어드렸어야 했는데..

  3. BlogIcon 독자 2015.01.28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을 읽고 작가님이 궁금해서 찾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인터뷰를 읽으니 책의 내용이 더 질 이해되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 전복라면 2015.01.29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독자님! 블로그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