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윤리성

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Reviewed by 엘뤼에르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 윤여일은 본인이 평소 견지하고 있던 ‘윤리성(Ethica)’에 대한 고찰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네 가지 사유감각으로 풀어내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자본론」보다 논리적 밀도는 떨어지지만 다양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키며 현실을 때렸다. 이처럼 저자 윤여일은 지식의 가치를 기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지식의 기능성과 윤리성 사이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가장 심급의 영역으로서의 '사상'을 사유함

     이 책은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적 영위의 핵심 개념차이를 밝히고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저자의 성찰을 심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이때 ‘이론’은 지적 주체가 고유하게 만든 자신의 구성물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저자는 바라보았다. 또한, 현실감을 잃고 현실을 분할할 언어 개념으로 남은 ‘이론’에 대해서도 응수를 놓음과 동시에, 맥락을 잃고 학술적 과시성향으로 기능하는 오늘날 지적풍토를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이론의 이론됨을 성찰한다고 긍정한다. ‘이론’이 억압한 것의 흔적을 살피는 것이 바로 비평이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론은 축적됨과 달리, 비평이 가지는 논쟁은 축적되지 않음도 윤여일 저자는 동시에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 자신이 비평이 대상임에도 비평할 수 있는지를 사고하는 것이 ‘사상’이고, 이는 곧 가장 심급의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사상’이 바로 저자 윤여일이 언급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자기응시에서 출발하는 행위라고 규정짓고 있다.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인문학을 반성하다

     윤여일 저자는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과 같은 네 가지 층위의 사유감각을 통해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윤리성’에 대해 고찰한다. ‘현실감각’ 부문에 있어서는 자주 외롭지만 고독할 줄 모르는 양떼 인간을 두고, “나는 남과 다르”지만 그러고는 기꺼이 유행을 좇는 현대인들을 소비주의적 대중매체(TV, 신문, 책)의 영향력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윤리적 감수성을 타락시키는 TV라는 매체를 현실감각적인 면에서 고찰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사회화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정치감각’ 부문은 유동하는 정치와, 정치의 응고물인 권력에 대해 사유한 장이다. 성숙된 정치적 사고란 무엇인지 도덕성과 다른 차원에서 신중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유덕한 지도자 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조건에서 유리된 유토피아적 전망 역시 정치적 체념의 토양이 되기 쉽다며 오늘날 정치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윤여일 저자는 정치도 경제, 문화와 나란한 사회의 부문이 아닌 사고의 심급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더불어, 사상계가 내놓는 지식이 사회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현학적인 대상에 젖어들고 지식의 언어가 지식인들의 언어로만 남는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바깥에서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질타한 것이다. 지적 주체가 진정 인식하고자 한다면 윤여일 저자는 대중 속에서 있으면서 그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다.


번역 행위의 본질은 바로 '토론'에 있다 

    ‘번역감각’ 부문에서는 번역 행위가 본질적인 토론행위임을 사유했다. 또한 ‘번역의 정치성’에 대해 논의했는데, 여기에 언어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번역자가 번역을 매개로 보편성을 재사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언어감각’ 부문에 있어 언어를 만나는 것이 강렬한 정신적 체험이자 버거운 육체적 체험이라고 언급했다.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 지적 주체는 무엇을 사유하고 있는지 사유할 수 없고, 따라서 글로 ‘써야 한다’. 쓴다는 행위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은 홀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꺼내는 이상 윤리적 방침이 필요한데, 이는 자기 회의가 감싼 고백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식이란 무릇 지식을 습득하는 지적 주체와 지식 자체의 관계에서 지식과정이 성립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중에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지적 스승들의 아카데믹한 저작들이 보여주는 지식이라는 것이 지적 주체를 쇄신할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일종의 철학적 소품집인 셈이다. 결국 지적 주체인 지식인들이 지적 대상에게 다가가는 인식절차를 구체적으로 밟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핵심 주제의식이다.


산지니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현장>>

http://sanzinibook.tistory.com/548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속편격인 윤여일 선생의 근간 『상황적 사고』가 올해 출간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저자 소개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여행의 사고 둘》 《여행의 사고 셋》 등을 쓰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Posted by 비회원


1994년 11월 30일, 영광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는 이듬해 3월로 예정된 상업운전을 앞두고 배관 지지대가 흔들리는 사태가 발생하여 K는 40% 시운전 중인 발전소 현장을 방문했다. 중공업 회사에 근무하던 2년차 직장인 K는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미국에서 공급된 부품이 왜 기능을 못하는지 엔지니어도 잘 알지 못해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


그리고 2012년 7월 31일, 영광 원자력 근처 바닷가로 피서를 간 K는 발전소를 바라보며 착잡한 상념에 잠겼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고장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멜트다운사고는 한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흘렸고 출판계에서는 다양한 책이 기획 출판되었다.


먼저 국내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사상으로서의 3·11(그린비)'은 원로 사상가로부터 젊은 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일본 지식인들의 사유를 담은 책으로, 3·11 이후 인류에게 어떤 삶의 가능성과 과제가 놓여 있는지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총 18편의 글을 수록하여 내셔널리즘, 근대, 기술과 과학, 세계와 자연, 항상적 봉기 등 각기 다른 주제와 입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전망을 제시하였다.


조정환이 엮은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갈무리)'은 국내외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하였는데, 감응하는 후쿠시마, 비판하는 후쿠시마, 모색하는 후쿠시마로 구분하여 지구 전체를 향해 절규하는 후쿠시마를 대중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한겨레신문 도쿄 특파원인 정남구가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시대의창)'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시점부터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연이어 폭발한 과정 그리고 이후 일본인들 삶의 변화까지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현지 특파원이 울며 기록한 2011년 3월 11일 이후'라는 부제처럼 대지진 당시 몸으로 겪은 체험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그날부터 시작된 심층 취재는 사건의 진앙으로부터 후폭풍에까지 가 닿는다. 


   

고리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위한 모종의 은폐가 지금 이 시간 진행 중이다.


신고리 핵발전소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765㎸ 송전탑 건설로 밀양에서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이 7년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미완성 기술인 핵발전은 현세대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세대의 생존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위험한 기술체제이다.


핵에너지를 정당화하는 무기인 기후재앙론과 석유피크론에 냉철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소설가를 비롯한 작가들의 적극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도서출판 산지니 대표

 

 



#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 박노해 등 지음/갈무리/1만8000원


# 사상으로서의 3·11


- 쓰루미 순스케 등 지음/그린비/1만5000원


#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 정남구 지음/시대의 창/1만6500원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