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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9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 - 『사포의 향수』서평

출근길에 오르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들어오는 냄새들이 있다. 역에서 파는 군고구마 냄새와 도시락 반찬 냄새, 그리고 옆 사람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도 있다.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예방할 수 있어도 이런 냄새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나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지만 갖가지 냄새를 사랑한다. 그래서 요즘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새벽 공기, 벚꽃 나무 밑의 바람 냄새 등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그렇게 보면 마스크가 이런 냄새는 또 잘 거른다).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들은 평소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밥 짓는 냄새, 연인의 샴푸 냄새, 여행지의 독특한 토양 냄새 등은 우리를 그 추억 속에 젖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가 종식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마스크 특유의 섬유 냄새를 맡을 때마다 지금의 시기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향수는 후각이 가지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기억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마치 사포의 시에 등장하는 그녀의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사포의 향수』 개정 전 표지

 

『사포의 향수』는  향에 대한 역사와 그 행적을 톺아나가며 우리를 그 시대로 데리고 간다. 특히 고대 지중해에 집중하여 향수의 문화사를 전개해 나가는데,화부터 시,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록을 해석한다.

향수를 떠올리면 어쩐지 현대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향수는 후각에 대한 욕망인 만큼 기원전부터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서정 시인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생소할 수 있으나 호메로스와 쌍벽을 이루는 여류 시인이었다고 말하면 그 영향력이 달리 보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 뒤에는 서정시인이라는 말과 함께 ‘레즈비언(lesbian)’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레즈비언은 원래 ‘레스보스 섬의 사람’이란 뜻이었으나, 사포로 인해 그 의미가 달라졌다. 사포는 레스보스 섬에서 남성 귀족들에게만 통용되던 학문과 예술을 여성에게 교육하였다. 그 영향으로 ‘남성과 똑같이 여성이 학문을 배우는 곳’이라는 의미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여성동성애자’라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우리의 운명은 슬픈 것이네,

사포여! 어떻게 당신과 헤어진다는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네.

“행복한 마음으로 가거라,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항상 기억하여라.

너는 이를 진정 모른다는 말인가?

나는 네가 모든 것을 잊기를 바라네.

우리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기쁨을 누렸는지를.

오랑캐꽃, 사프란 그리고 장미 화관

당신은 내 옆에서 머리에 화관을 썼지

봄꽃 꼬아 만든 화관을 여린 목에 둘렀지

온몸이 꽃에서 풍기는 풍부한 브렌테이온 향과

바실레이온 향유로 휘감기고

달콤한 사랑이 함께한 푹신한 침대 위로

사랑의 욕망이 피어올랐지

그곳에는 언덕도, 주변의 신성함도, 순수한 샘도,

그곳에는 우리도 없었네.(fr. 97 Voigt)

- p.40

 

사포는 서정시를 통해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특히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향유는 사랑의 감정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표현하는 향유는 연인을 감싸는 달콤한 사랑의 향기이다. 장미와 꽃, 송진 등 본연 그대로의 향기를 아름답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포는 ‘인공적인’ 향을 최초로 표현했다. 이는 향수의 고대사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점이다. 고대에 제조사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포는 향기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였지만, 누구에게나 향기가 사랑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향수 자체가 워낙 비싸게 거래되어서 일반인들은 손도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향수가 사치품이라는 인식은 고대에도 존재했고, 실제로 맞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대의 희극 작품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영화, 드라마 등이 그러하듯 고대의 희극 작품에도 그 시대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케피소도로스의 희극 작품 『트로포니오스』에서는 한 귀족과 하인의 이야기를 통해 고대의 향수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짐작 가능하다. 귀족이 자신의 발에 바를 향수를 사오라고 하인에게 지시하자, 하인은 “바카리데 꽃 향수를 살 돈 때문에 저보고 매춘을 하라는 말인가요?”라며 응수한다. 당시의 향수가 귀족 혹은 거부의 전유물이자 사치품이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향수의 이러한 사회적 특성 때문에 향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학자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는 소크라테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시인 세모니데스는 향기를 풍기는 여성은 남편과 가족에게 불행이라며 여성의 향수 사용을 반대하면서도, 만찬에서 남성이 향유를 바르는 것에는 찬성했다. 이와 다르게 소크라테스는 향수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좋지 못한 습관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운동을 통해 덕을 배양하는 것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쩌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에게 향수는 '나'를 가리는 악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를 따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많은 제자들이 향수에 대한 견해를 표출하였다. 그들은 향수는 물론 냄새에 대한 근원적 원인을 탐구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기록은 『사포의 향수』에 그대로 녹아 있다.

 

『사포의 향수』 개정판 표지

 

『사포의 향수』에서는 학자들의 작품과 의견을 통해 당시 향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나라간의 무역과 전쟁을 통한 향유의 전파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제조술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며 핵심적인 인물로 테오프라스토스를 거론한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인간의 몸과 후각의 측면에서 향기를 접근하지 않고, 향기를 뿜어내는 존재인 식물에 집중한다. 그는 똑같은 식물이라 하더라도 토양과 기후 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식물이 뿜어내는 향기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좋고 나쁨으로 대비되는 두 향기에 치중하지 않고 냄새를 더욱 세분화하여 분류한다.

 

테오프라스토스는 냄새에 대한 정확한 분류가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는 냄새를 단순히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로 구분한 플라톤의 이론을 배제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보다 세밀한 분류를 받아들이면서 처음에는 냄새들을 단맛과 신맛의 일반적인 형태로 나눈 데 이어 이후에는 매운맛, 강한 맛, 약한 맛, 단맛 그리고 진한 맛을 분류하였다.

- p.151

 

흔히 향수를 구매할 때에 향수의 노트를 확인하면 Sweet, Spicy 등으로 향을 표현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향을 구분하고 표현한 것에 토대를 마련한 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이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인터넷에서도 향기를 유추하고 주문할 수있게 되었으니, 그들의 연구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향수에 대해 연구하고 그 과정과 역사를 기록하였다. 『사포의 향수』는 이러한 기록을 총망라하여, 향료와 향수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저자인 주세페 스퀼라체 또한 고대의 향수사를 주제로 여러 편의 논문을 집필하고, 테오프라스토스의 『냄새에 대하여』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며 이런 기록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종교의 영역에서 사용되었던 향수는 결혼, 만찬 등의 사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현대에는 일반 시민들도 손쉽게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는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향수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되었다.

향수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20살 무렵, 나는 그 유명한 『젊은 느티나무』 첫 문장을 보게 되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향수를 주문했다. 내 인생의 첫 향수였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뭍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첫 문장에 나 또한 심하게 설레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비누 향을 포함해 다양한 향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어떤 향수도 그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 같다. 언젠가 『사포의 향수』처럼 한국의 향수사에 대한 책이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의 향수사에 대한 책이 출간된다면 그 기록에는 『젊은 느티나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나도 『젊은 느티나무』의 오빠처럼 비누 냄새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데, 대체 무슨 비누 냄새인지…. 누가 브랜드랑 제품번호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알라딘: 사포의 향수 (aladin.co.kr)

 

사포의 향수

향신료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차원에서 시인 사포, 철학가 소크라테스, 역사가 테오프라스토스 등의 기록으로 향수 제조술의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향수 제조술의 비밀로 유지되었던 일련

www.aladin.co.kr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사포, 열 번째 뮤즈–사랑의 시인 (naver.com)

네이버 캐스트: 사포 (naver.com)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문학과지성사

광주일보 (kwangju.co.kr)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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