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서 전망을 찾고자 했던

중국공산당 초기 지도자 취추바이의 여정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1920년 가을,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취추바이는 새로운 기회의 땅, 붉은 물결의 소비에트러시아로 향한다. 신아국유기는 저자가 중국에서 출발해 19211,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하얼빈을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여러 가지 국내외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하얼빈에서 50일 이상 발이 묶이고, 이후에도 기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2021125일이 되어서야 취추바이 일행은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역에 도착한다. 이어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여의 기록이 적도심사(赤都心史)이다.

 

상하이에서 좌련(左聯)을 이끌던 1930년대 초 취추바이와 루쉰

 

몰락한 신사집안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주체로 서기를 희망하다

 

1899년 장쑤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취추바이의 집안은 대대로 서생과 관리를 배출했던 신사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취스웨이는 전통 지식과 예능에 재주가 있었지만, 생활을 꾸려나가는 재주는 없었다. 몰락한 집안에서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던 취추바이는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러시아어 전수관에 들어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5.4운동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학생운동을 지도하고, 이후 리다자오가 발기한 마르크스연구회에 참여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공부하게 된다.

5·4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망을 찾던 취추바이는 1917년 혁명으로 탄생한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 눈길을 돌리고, 신보(晨報)의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가게 되는데 이때의 여정이 이번 선집에 실린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햇수로 4년을 머물면서 이론을 공부하고, 현실을 관찰하여, 실천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이후 1923년 소비에트러시아를 방문한 천두슈(陳獨秀)를 따라 귀국하여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면서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한다.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서 신사 계급의 몰락은 필연적이었고 이에 따라 취추바이 자신 또한 존재를 상실하고 세계에서 부재하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취추바이는 왕조가 붕괴되고 새로이 나타난 사회에서 그 자신이 변화한다면, 자신은 옛 체제와 더불어 소멸할 존재였을지언정 새로운 사회에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체로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분투하다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생을 마감한다.

 

하얼빈을 출발하여 극동공화국을 거쳐 붉은 빛의 나라로

 

취추바이는 신보의 특파원으로 동지 2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나게 되는데, 신아국유기에는 출국을 결정하고 신변을 정리하면서 갖게 된 회한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불안감 등 자신의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중국 국내에서부터 극동공화국을 거쳐 모스크바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보게 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사회상이나 인간의 심리가 기록되어 있다.

192010월에 베이징을 떠난 취추바이는 하얼빈에서 발이 묶이면서 이 유기(遊記)’를 쓰기 시작하는데, 단순하게 보면 중국에서 러시아까지의 노정을 기록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저자의 사상적 경험이자 마음의 여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2111월이 되어서야 탈고한 신아국유기에는 길 위에서 겪었던 모든 견문과 경험, 구체적인 사실, 마음의 여정 속 동요와 기복, 사상과 이론 전부가 들어 있다.

신아국유기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는 저 멀리서 가냘픈 한 줄기로 빛나던 붉은 빛의 세계로 들어가 깨닫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빛을 다시 중국으로 가지고 와 단잠에 빠져 있던 중국의 인민들을 돕고자 했다.

나는 어쨌든 모두를 위해 광명의 길을 열고 싶다. 나는 가고자 하며, 또 나는 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일떠섰다. 나는 아향(소비에트러시아)으로 떠난다.(1920. 11. 4. 하얼빈)

 

혁명과 내전을 겪은 이론의 실험장 모스크바에서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람을 만나다

 

적도심사는 저자가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간의 기록으로서 신아국유기에 이어서 쓴 글이다. 두 책 모두 무미건조한 기행문이 아니고 여행안내서도 아니며,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그 수준이 상당하다. 저자는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문학성 있는 시와 산문으로 채웠다.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러시아와 볼셰비키는 백군의 반란을 빌미로 전시공산주의(戰時共産主義)라는 급진적 사회주의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취추바이가 소비에트러시아로 들어갔을 때는 이러한 전시공산주의에서 벗어나 막 신경제정책(NEP)을 시작하던 단계였다. 혁명과 내전을 겪은 소비에트러시아는 이론의 실험장이었다. 당과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국가적·사회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인간들은 이에 반응하여 실천하고 생각하며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개혁과 변화의 현장,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접하고 관찰한 취추바이는 이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던 일, 러시아 귀족문화의 잔재를 경험한 일, 러시아식 사회주의, 러시아의 종교, ‘노동자에 대한 상념, 시베리아 유배 경험자와의 만남 등 취추바이의 글쓰기는 모스크바에서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분야를 가로지른다. 그러면서도 중국인으로서의 의 존재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톨스토이 생가, 야스나야 폴리아나 방문

 

취추바이는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의 손녀와 교류하면서 톨스토이 생가를 방문하는 여행단에 합류하게 되는데, 적도심사에서는 이때의 여행기를 제법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30여 명의 여행단은 기차를 타고 툴라로 가서 야스나야 폴리아나를 방문한다. 여행에 동행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생가에서는 또 톨스토이의 친척들을 여럿 만나 톨스토이의 생전 모습을 들어본다. 톨스토이파들이 꾸리고 있는 코뮌에도 들른다. 혁명 후에도 톨스토이의 유적이 보존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야스나야 폴리아나에 혁명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을 때, 소장파 농민들은 들고 일어나 톨스토이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 했지만, 노인들은 톨스토이의 됨됨이를 기억하고는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했었다. 나중에 중앙정부가 인력을 파견하여 이 역사의 유적을 지킨 것이다.

 

러시아에서 병을 얻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던 취추바이에게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은 답답했던 마음을 확 풀어주는 일이었다. 그 시골에는 세계적인 위대한 대문호의 흔적과 향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구시대의 러시아, 즉 귀족적 풍모가 아직도 풍광에 남아 있었고, 사람들의 꿈에 서려 있었다. 취추바이는 평민 농민과 지식계급의 감정에는 사회문제가 여전히 선명하고 깊게 뿌리 박혀 있었지만 지식계급 문제와 농민 문제는 노도와 같은 10월혁명에 힘입어 그 뿌리가 흔들렸고, 이제 점차 해결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서 그날의 감동을 기술한다.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의 의미

 

취추바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소비에트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농업국가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다. 취추바이는 여기서 소비에트의 사회를 보려 했다. 그가 행했던 사회의 관찰은 곧 사회 성원들의 다양한 삶과 그들의 심리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기록하는 것에 자기 글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에트 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피지배층의 심리 기록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 주체가 형성되는지를 살핀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취추바이는 초기 중국공산당의 실천을 조직하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중국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좌익모험주의로 비판받고 실권을 빼앗겼으며, 정치적으로 실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방향을 모색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소비에트러시아가 막 건설되고 나서의 사회상과 이념적으로 교조화되기 전 중국 사회주의 운동의 실상과 그에 대한 대응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 간과되고 있는 지점,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문장 

북풍이 살을 에고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이 얽혀있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이래 빛 한 줄기를 보지 못했다지금까지 햇빛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알지도 못한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 P.79 화는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 P.153 이 두 책은 모두 저자의 문학 작품으로 그 수준이 유치하기는 하지만 결코 무미건조한 기행문도 아니며, 여행안내서도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

📌 P.158 무거운 어둠이 평화롭고 고요히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높이서 타들던, 은촛대의 양초는 이제는 짧아져 흐릿한 빛을 낼 뿐이고, 부끄럼 많은 항아姮娥는 이미 저녁 화장을 지운 뒤였다. 주흥도 다하고 피곤에 전 무희는 허리에 힘이 빠져 흐느적대고 있었다.

📌 P.180 톨스토이 전시관은 우리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다. 전시관은 청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피아는 갖가지 그림과 사진을 설명해주었다. 톨스토이가 직접 그린 작은 그림에는 조랑말 한 마리와 성인 한 명이 있었다. 소피아는 말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주었던 장난감이라고 말했다.

📌 P.217 레닌은 대회에 출석하여 서너 번 발언을 하였다. 그는 독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발언이 침착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었지만, 절대 대학교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진지하고 과감한 정치가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한 번은 복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 P.278 이처럼, 나의 사명은 분명하다. “나는 장차 무엇이 되려는가?” 나는 가 인류 신문화의 배아가 되길 바란다. 신문화의 기초는 본래 역사적으로는 대치해왔으나 지금 시대의 초입에 이르러 서로를 보조하는 두 문화, 즉 동방과 서방을 연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 

취추바이(瞿秋白, 1899–1935)

현대 중국의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 문학가, 학자이다.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5.4운동에 참여하면서, 혁명가이자 정치가로서의 길로 들어섰고, 소비에트러시아 여행 이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가로 살아갔다. 중국공산당 당 장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중앙위원회 총서기로서 무장봉기를 지도하는 등 혁명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언론인으로서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고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했다. 문인으로서 본서와 같은 문학성 짙은 글을 다수 발표하는 한편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에 참여하면서, 마르크스주의문예이론의 보급과 좌익문학 건설에 공헌했다.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상하이대학上海大學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으며, 중국어의 라틴화 방안 등 중국언어문자의 개혁과 대중화를 연구하고 실천하려고 했다.

 

 역자 

이현복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청말 新政時期 문학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현대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 사회주의운동과 좌익문학, 華人文學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논문으로 1920년대 중국 공산주의의 인간화와 혁명-瞿秋白의 이념의 현실화와 변용, 陳映眞 초기 소설에서 좌절과 절망의 의미-서사구조분석을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혁명과 역사-중국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무중풍경(공역), 타이완신문학사(공역), 저서로 길 없는 길에서 꾸는 꿈 중국 신문학 100년의 작가를 말하다(공저)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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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국유기(아향기정)

서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발跋

적도심사

프롤로그

1 여명
2 무정부주의의 조국
3 전쟁과 노래
4 가을빛
5 코뮌公社
6 혁명의 반동
7 사회생활
8 「번민……」
9 하얀 달
10 러시아식 사회주의
11 종교적인 러시아
12 노동자의 부활
13 ‘노동자’
14 「사자死者의 집」의 환향인
15 Angel
16 귀족의 보금자리
17 모스크바의 붉은 물결
18 레닌과 트로츠키
19 남국 『혼이나마 돌아오시오, 강남은 애달프오.魂兮歸來哀江南』 유신庾信
20 관료문제
21 신新 자산계급
22 기아飢餓
23 영혼의 감상
24 민족성
25 “동방월”(중추절에 짓다)
26 돌아가세
27 지식노동
28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기
29 “뭐!”
30 붉은 10월
31 중국인
32 집에서 온 편지
33 ‘나’
34 생존
35 중국의 ‘잉여 인간’
36 ‘자연’
37 이별
38 일순간
39 적막
40 새벽놀
41 표트르Pyotr의 성
42 러시아의 눈
43 미인의 소리
44 아미타불
45 신촌新村
46 바다
47 야우자Yauza강
48 새로운 현실
49 생활
미주

해제

 

 

 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취추바이 지음|이현복 옮김|336쪽|148*212 

 978-89-6545-727-5 94820|28,000원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와 『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알라딘: 취추바이 선집 (aladin.co.kr)

 

취추바이 선집

취추바이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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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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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파이채굴러 2021.05.17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최재목의 무덤기행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을 찾다'에 산지니 펴낸 『나는 나』의 내용이 인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의 젊은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1903~1926)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쓴 수기입니다. 그녀는 일본과 조선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같이 생활하고 옥중에서 결혼하였으며, 천황과 황태자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되어 있던 중 23살의 나이로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습니다.

 

박열과 가네코의 다정했던 한 때.

 자주와 자치…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회

최근 오슬로 대학에서 온 박노자 교수를 만났다. 마침 영화 ‘박열’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나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일본 제국을 미워한다.”는 박열의 대사 한 토막을 기억해냈다.

가네코의『옥중수기』를 보면, 박열을 만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가네코가 “저기…. 난 일본인이에요. 그러나 조선에 특별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가네코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대할 때 가지는 감정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것을 확인할 필요”에서였다. 그러자 박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권력계급이오. 일반 민중은 아니오. 특히나 당시과 같이 편견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친근감마저 가지고 있소.” 다시 가네코가 박열에게 말한다: “당신은 민족운동가인가요? 사실 난 조선에 오랫동안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 때문인지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독립운동가라면 유감스럽지만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요.”

(조정민 옮김, 『나는 나』, 337쪽).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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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가 살았던 부강리 집의 현재 모습.

학대와 불운에서 ‘나 자신’을 찾다

가네코는 학대와 불운에서 ‘나 자신’을 확립한다. 그렇게 ‘나 자신’이란 인간을 찾을 수 있게 한 모든 불행한 운명, 학대에 대해, 그녀는 감사한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뒤, 도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정민 옮김, 『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옥중수기』, 238쪽) 

 

‘부강’ 체험①: ‘개’에게로 연결된 ‘동포’ 의식

가네코가 조선의 부강에서 체험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우선 주요한 것만 언급해두기로 한다.

먼저 그녀의 ‘부강’ 체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개’에게서 느낀 ‘동포’ 의식이다.

부강을 떠나 일본의 야마나시에 있는 외가로 다시 갔을 때, 외삼촌이 키우는 개를 데리고 주변을 산책하면서 그녀는 이런 회상을 한다.


“문득 조선의 고모네가 기르던 개가 떠올랐다. 그 춥고 추운 조선의 겨울밤에, 멍석 하나 없이 밖에서 잠자던 개가 생각났다. 내가 배곯고 집 밖으로 쫓겨났을 때, 마치 나의 고통과 슬픔을 알기라도 하는 듯 꼬리를 흔들거나 고개를 떨어뜨리고 콧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오던 개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개의 목을 꼭 붙들고 껴안으며 혼자 소리 죽여 울던 것도, 그리고 밤에 몰래 나가 개에게 멍석을 깔아주었던 일도 또 어릴 적, 아버지에게 찔려 죽은 가여운 개의 죽음도./조선에 있었을 때 나는 나와 개를 항상 연결 지어 생각했다. 우리 둘 모두 학대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가장 딱한 동포라는 생각까지 했다.”(조정민 옮김, 같은 책, 183쪽)


가네코의 『옥중수기』에는, 부강 시절 할머니에게 쫓겨나서 어린 그녀가 “만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과 모래가 섞여 가차 없이 얼굴과 다리를 때리는” 춥고 추운 조선의 겨울밤을 지새우는 장면이 나온다(조정민 옮김, 같은 책, 104쪽). 쫓겨난 그녀와 함께 밤을 지새운 따스한 개. 그 개보다 못한 차디 찬 ‘할머니=일본인’이 그녀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가난-반감-반항심-동정심’에서 ‘사회주의사상’으로  

조선에서 체험한 것은 위의 ①∼③ 외에도 고리대금업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목도하면서 가네코는 조선인들이 불쌍하게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것에 한없이 동정심을 갖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사회주의/사상’에 접하면서 ‘불이 붙는다’.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조선의 할머니 집 하인 고씨를 동정했던 것도, 불쌍한 개마저 동지처럼 느꼈던 것도 그 외에 이 수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불쌍한 조선인에 대해 한없이 동정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아아, (중략) 우리와 같은 불쌍한 계급을 위해, 나의 모든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투쟁하고 싶다.//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어떻게 이러한 정신을 살려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무력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그에 대한 준비도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불평, 불만, 반항심만 가득한 일개 반항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조정민 옮김, 앞의 책, 300쪽)


가네코는 ‘가난→반감→반항심→동정심→사회주의사상’의 경로를 밟으며 이곳까지 왔다. ‘불평, 불만, 반항심만 가득한 일개 반항아’가 사회주의/사상에 이론화되어 투쟁심을 기른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믿음’과 ‘거리’를 갖고 있었을까. 일본인에 대한 ‘반항심’과 조선인에 대한 ‘동정심’이 국가・권력에 대한 ‘회의’를 거쳐, ‘위안 없는 사유’ 아나키즘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사뭇 궁금해진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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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에게 나라와 민족의 구분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만이 유의미한 차이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돕고자 노력한 대상은 일본인에 의해 고통받는 조선인뿐 아니라, 세계의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상관없이 자유를 빼앗기고 혹사당한 모든 이들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민족을 넘어서 '사람과 삶' '인류와 인권'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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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19.04.22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글 읽었어요. 정말 흥미로운 글입니다.

교수신문/저자의 말말말

 

 

 

중국식 사회주의

 

 근대 캉여우웨이로부터 쑨원의 삼민주의, 그리고 ‘중국식 사회주의’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평등’이다.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대동의 ‘天下爲公’과 ‘均’의 정신을 현실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모습은 우려스러운 것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가장 ‘평등’한 사회에서 심각한 ‘불평등’ 사회로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상사회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단지 물질적 분배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 가치 영역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실험,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모순된 체제의 유합은 경제 성장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빈부의 격차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화해사회론이 대두된 데에는 이러한 현실이 큰 작용을 한 것이다. 그러하다고 해서 근대 이래 중국 지식인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평등’사회를 포기한 것이라 평가해선 곤란하다는 점이다. ‘화해사회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국은 근대 이래 ‘오래된 이상’에 대해 여전히 같은 태도를 갖고 있다.

 

 근대 중국이 그러했듯, 오늘날 중국의 혼란 역시 역사 전환기의 민중이 겪어야 할 시련이다.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사람들은 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중국의 꿈’이라는 이상적 성격이 강한 정책 목표가 제시된 것은 중국의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의 꿈’이 실현될 수 있기 위해선 상품경제와 공유제의 균형, 당과 법치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중국식 사회주의가 그 목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달성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근대 이래 인류의 이상사회에 대한 지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국가다. 특히 세계화의 걷잡을 수 없는 파도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걸어온 중국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 그 추이를 지켜보는 마음엔 기대와 우려가 함께 섞여 있다.

 

 

이연도 중앙대 교수(중국근대철학),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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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총서 28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

 

 

 


 

오래된 미래,

중국식 사회주의의 기원을 찾아서

 

 

 

 

 ▶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국식 사회주의’의 정치철학적 연원을 찾아서

 

 중국 근현대 정치, 사회 철학을 연구하며 사상과 정치현실의 상호 접속에 관한 학술적 작업을 개진해온 이연도 교수의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중국 정치사상의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 입문서로 중국 사회 및 학계의 움직임을 조망할 수 있는 사상적 시각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자는 캉여우웨이의 대동사상을 시작으로 근현대 시기 중국에서 대두된 이상사회론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규명해왔으며, 특히 중국 특유의 전통적 이상사회관의 흐름을 중심으로 ‘중국식 사회주의’에 내재한 사상사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 힘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의 문제의식을 심화, 확장하여 근대 이후 중국에서 제기된 다양한 이상사회론의 내용과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현 중국 체제를 포함하여 근대 이후 중국의 정책 목표 기저에 흐르는 의식을 밝히는 것으로 나아간다.

 

 

 


 장쩌민 체제의 ‘소강사회(小康社會) 건설’, 후진타오의 ‘화해사회주의(和諧社會主義)’ 그리고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제기된 ‘중국의 꿈(中國夢)’. 집권 전환 시기에 따라 채택된 이 구호들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가 천명한 대표적인 정책 슬로건으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목표와 지향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 및 G2부상에 따른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 이 구호들에 공통적으로 담긴 의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근대 이래 지속되어온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이 바로 현 중국 체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임을 강조하며 책의 서문을 연다.

 

 

 

 

▶ 공상적 유토피아? 유일무이한 대규모 유토피아 실험?
 ‘이상사회론’으로 고찰한 중국 혁명의 역사

 

 ‘이상사회론’을 통해 근현대 중국 정치철학의 흐름을 살핀 이 책은 전공자뿐만 아니라 현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심층적으로 중국의 정치체제 및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저자는 총 9장에 걸쳐 동양의 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인물과 사상을 소개하여 이상사회론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상사회 건설 의지가 정치 체제에 대한 사유로 정교하게 정립되기 시작한 근대 중국에서부터 ‘중국식 사회주의’로 요약되는 현 체제에 이르는 시기를 아우르며, 캉여우웨이, 량치차오, 장빙린, 쑨원, 량수밍, 슝스리, 마오쩌둥에서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는 인물들의 사상과 행보가 중국 역사의 흐름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근대 중국에 이르러 대두되기 시작한 대동(大同)사상을 소개하며 사상에 내재한 실천성을 통해 중국 내부에서 이상사회론이 촉발된 배경과 의미를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정치, 사회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온 유가 사상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며 서양의 유토피아론과 근본적 차이를 갖는 동양 이상사회론의 연원이 드러난다. 이후의 장에서는 캉여우웨이의 대동사상을 비롯, 량치차오의 이상국가론, 장빙린의 부정적 유토피아론, 쑨원의 삼민주의, 량수밍의 향촌 건설 이론, 슝스리의 외왕학, 중국식 사회주의의 모태가 된 마오쩌둥 사상이 차례로 소개된다. 각 장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사상은 연대기적 흐름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중국 특유의 전통 이상론인 대동이 진화하고 다각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동이라는 이상은 공상적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중국 현대사를 휩쓴 ‘인민공사’나 ‘문화대혁명’과 같은 대규모 유토피아 실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사상의 계보를 따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만나게 된다.

 

 

 

 

 

 

▶ 중국에 잠재된 불가능한 미래,
  이상사회론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인민공사와 문화대혁명으로 대변되는 마오쩌둥의 거대한 유토피아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마감되었지만, 중국은 그 공과(功過)에 대해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문화에 혁명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단지 정제(政制)나 체제 개혁이 아닌,

생활 세계 문화 전반의 혁명을 꿈꾸었던 이 거대한 실험은 다시는 되풀이되기 힘들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시도가 의미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후기> 중에서

 

 

 저자는 근현대 시기 중국 체제의 기저에 흐르는 이상사회론의 다양한 양상을 통해 유토피아적 사유에 내재한 긍정성을 도출하는 동시에 언제든 디스토피아로 전환될 수 있는 정치 이론의 모순 또한 놓치지 않는다. 사상을 기치로 삼아 실천된 운동과 혁명은 급진적이었지만 희생과 그늘을 동반했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가 재차 강조하듯 초월과 현실의 긴장이 동양 사상의 생명력이라면, 이상사회론에 내재된 현실 변혁의지, 실천성, 부정(否定)의 힘, 균평(均平)의 가치, 자기 각성과 윤리의식의 고양, 인민의 주관 능동성 등의 가치가 품은 가능성은 말 그대로 잠재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잠재성은 중국 정치 현실의 향방과 더불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끊임없이 사유되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이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실재하는 한, 중국을 이끌어가는 의식형태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실재하는 것임이 반복해서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저자 소개   

 

 

목차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

이연도 지음 | 319쪽 | 23,000원 | 2018. 6. 30

 

중국 정치사상의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 입문서로 중국 사회 및 학계의 움직임을 조망할 수 있는 사상적 시각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자는 캉여우웨이의 대동사상을 시작으로 근현대 시기 중국에서 대두된 이상사회론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규명해왔으며, 특히 중국 특유의 전통적 이상사회관의 흐름을 중심으로 ‘중국식 사회주의’에 내재한 사상사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 힘썼다.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 - 10점
이연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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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도쿄가 있는 일본 간토 지역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집들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넘어졌다. 사람들은 거기에 깔린 채 생매장을 당했다.  겨우 뛰쳐나온 사람도 미친개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문명의 낙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 머리말 중에서


지진 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방화, 강도, 폭탄 투하 등의 활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혐오성 폭력이 거세졌고 6,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 그리고 민간인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국가 내의 ‘또다른 위험분자’ 무정부주의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였습니다. 이 때 체포된 이들 중에 근대 일본의 대표적 여성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가네코 후미코(1903~1926)와 그녀의 연인이자 무정부주의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리더 박열(1902~1974)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 <나는 나>는, 가네코가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기록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쓴 옥중 수기입니다.


///


아시아 여성 아나키스트의 옥중 수기라니. 어찌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책이라 생각되어 저는 <나는 나>를 주저없이 이번 독서후기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순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딱딱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밝힌 그녀의 당부대로 엮인 이 책은,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하룻밤 만에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독서후기를 시작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나는 나>의 ‘압축 불가능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삶이란 누구의 것이나 원체 ‘압축 불가능’한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의 첫 독서후기 대상이었던 <루쉰 그림일기>가 루쉰의 삶의 다방면을 비추면서도 그의 일생의 화두들에 일관성을 부여/부각하여 ‘루쉰=중국의 민족적 영웅’이라는 상을 형성하는 데 비해, <나는 나>는 특정한 질문에 답하거나 하나의 뚜렷한 주장을 펼치는 글이 아닙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에게 이 글을 쓰라고 요구한 것은 아마 “[그녀가]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한 (...) 이유”가 궁금해서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이 옥중수기의 맺음말에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반생을 여기에 펼쳐놓고 싶었다.”라고 씁니다 (13, 344). 이 자기역사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스스로가 한없이 비참하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그립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


가네코 후미코는 호적상 1903년생이나 실제 출생년도는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조선에 있는 친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기 전까지 그녀는 무적자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보내달라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가네코의 어머니는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사생아로라도 올려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려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바보같이, 사생아 신고를 하겠다고? 사생아는 평생 떳떳하게 살 수 없어.”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28). 가네코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지는 못할 망정, 사생아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가네코의 이모와 사랑에 빠져 가네코와 어머니를 떠나고, 어머니는 의지할 사람을 찾아 다른 남자들을 만났으나 뒤이은 관계들도 곤궁한 생활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가네코는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농촌 마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친할머니가 가네코를 데리러 찾아옵니다. 조선에 사는 가네코의 고모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 가네코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고모의 아이로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친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가게 됩니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부강이라는 마을에서 조선인 소작농들을 고용하고, 고리대금업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넉넉한 친할머니 집안이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이곳에서도 마땅한 보살핌은커녕 하루하루 학대를 받았습니다. 손님이 가네코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녀를 손녀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냥 좀 아는 집 아인데, 여하튼 지독하게 가난한 집 아이라 예의도 모르고 말도 천박해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데려온 거랍니다.”라고 말합니다 (92). 아들의 혈육이라 데려오기는 했으나, 줄곧 빈곤 속에서 자라 할머니가 바라던 얌전한 소공녀가 될 수 없었던 가네코를 할머니는 손녀로 인정하거나 양녀로 들일 의향이 없었습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상태. 이 경계적인 위치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모진 학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잘 들어, 후미. 가네코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너는 이와시타 가문의 아이야. 이와시타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는 거야. (...) 농부 자식에게 지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 이름을 뺏어버릴 거야.” 라고 말합니다 (94).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정말 학교 출석부에서 ‘이와시타 후미코’는 ‘가네코 후미코’로 바뀝니다 (94). 그러나 이 ‘가네코 후미코’가 이와시타 집안에 속한 아이라는 게 마을에 알려진 이상, 후미코는 언제나 ‘이와시타 가문’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후미코에게 ‘가난뱅이 자식처럼 험하게 놀지 말고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라’ 며 감시하고, 동시에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 둘 순 없어.”라면서 쉴틈없이 부려먹습니다 (111). 가족이고,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착취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타인간의 선을 그으며 실수로 깨트린 냄비값까지 물어내라 합니다 (102).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후미코는 자신이 조선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가깝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할머니 집안의 머슴 고씨를 동정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인 자신과 조선인들간의 ‘다름’을 매일같이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어느날은 할머니의 미움을 사 몇일을 굶고 쫓겨난 후미코를 한 조선인 아낙이 보리밥이라도 먹겠느냐고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때 후미코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 [할머니가] 조선인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를 우리 집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하며 호통을 칠 게 분명했기에 호의를 거절합니다 (140).

이후 박열을 만나 가네코는 그가 독립운동가인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라고 말합니다 (337). 그녀는 계급의 차원에서 조선인들과 공감하였으나 그녀는 일본인인 자신이 조선인들이 겪은 민족적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1919년, 시집 갈 나이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으로 돌려보내집니다. 조선에서의 생활보다는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진실된 바람과 목적”, 즉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습득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는 것”을 이루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딸인 후미코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려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하나의 물건처럼 외삼촌에게 [아내로] 팔려고” 했고(193), 도쿄에 보내달라고 허락을 구하자 “어린여자아이를 혼자 도쿄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니? 바보같이. 세상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아. (...) 남자가 잠시 여자에게 길을 물어도 세상 사람들은 곧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한번 그런 소문이 나봐라. 그럼 그 여자는 끝인거야. 흠진 물건이 되고 마는 거지.”라며 단칼에 가네코의 희망을 꺾습니다 (212).

그러나 결국 가네코는 한차례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도쿄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떠납니다. 이 곳에서 역시 공부보다는 결혼을 하라는 설교를 듣지만, 신문팔이, 비누장사, 식모, 오뎅집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공부를 하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도쿄에서 가네코는 어느정도 가족이라는 체제 밖에서의 생활을 꾸리고,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이런 가네코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합니다. “저 여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하숙집을 돌아다니는 매춘부 아닐까?” (316) 가족 체계 밖에 있는, 그러니까 딸, 아내, 어머니, 여자 형제로 확인되지 않는 여성은 매춘부--사회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여성의 대표적 이미지--라 의심하는 사회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끊임없이 ‘나 자신’ 그 자체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했습니다.


///


젊은 여성이자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던 이로서 가네코 후미코는 뿌리깊은 억압의 구조에 대해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의 기쁨이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씁니다. 또한, “인간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327~328). 하지만 그녀의 니힐리즘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서 이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성취하든 성취하지 않든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정한 생활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와 일치된다. 먼 저편에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328-9)


조선에 살던 시절,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27). 어쩌면 '이상' 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더욱 굳게 지키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지 모릅니다.




[참고 문헌]


23세 꽃다운 나이, 옥중에서 숨진 그녀가 남긴 것은

서평 <가네코 후미코> 야마다 쇼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한국의 무정부주의 (영문)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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