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최계락문학상 '다다'의 서규정…농익은 삶 밀도있게 묘사

 

 

 

낙화 /서규정


만개한 벚꽃 한 송이를 오 분만 바라보다 죽어도

헛것을 산 것은 아니라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모심이 있었고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



盤松洞

인구 십만 명 이상이 사는 반송동엔

결혼식장이 없다네

그러니 청년들아

어찌 저찌 연애를 하다

두둥실 아이를 배

급히 교회당을 빌려 예식을 마치고

첫날밤도 아닌 그 밤에

와인 몇 잔 마신 신부가 핑 돌아

사실은 처녀가 아니었다고 고백을 해도, 무조건

받아들여라

뜨고 지는 이치는 같은 것이고

곧 동백꽃 진다

 

결혼식장보다 공동묘지가 가까운

우리 동네에선 그 첫, 이라는 말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다만, 첫 죽음들을 묻을 뿐이다

 

제16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로 서규정(67·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지난 5월 펴낸 '다다'(산지니 펴냄)이다.


최계락문학상은 한국적 순수 서정을 노래하며 맑고 높은 시 세계를 펼친 지역 대표 문인 최계락(1930~1970)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고자 2001년 국제신문과 최계락문학상재단(이사장 최종락)이 제정해 해마다 수여한다.

서 시인은 1949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20대부터 부산에서 살며 시인의 삶을 살았다. 그간 '다다'를 포함해 시집 7권을 냈다. 서 시인은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황야의 정거장'이 당선돼 등단했으며, 한국해양문학상과 부산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2년간 최계락문학상 수상자가 2명씩 배출됐으나, 올해는 이견 없이 1명을 결정했다.

심사위원(조영서 이유경 시인, 구모룡 문학평론가)들은 "서 시인의 시집 '다다'는 서정적인 추상을 경계하면서 시적 발화와 시어의 밀도를 따져 존재의 진실을 온 몸으로 파고 든다"고 수상작을 평가했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6시 국제신문 4층 중강당에서 열리며 상금은 1000만 원이다.

 

제16회 최계락문학상 서규정 시인 문학세계

"제가 누구랑 싸우지 않고 그럭저럭 살았거든요. 그랬더니 이런 복이 다 있네요."

제16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 서규정(67) 시인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인복' 덕분이란다. 고향이 아닌 낯선 동네 부산에서 40년간 살며 고비가 닥칠 때마다 지역 문단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았더니 이런 큰 상을 받는 기쁜 날이 왔다는 얘기였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엄청 기뻤다"고 말했지만 그는 들뜨지도, 넘치지도 않게 소감을 이어갔다.

"최계락 시인의 시는 서정적이고 맑고 깊은 정신이 느껴지는데 제 시는 투박하고 거칠어요. 최계락문학상과 다소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심사위원들께서 잘 봐주셨나 봐요."

그는 늦깎이 시인이다. 전라북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휩쓸려 27세에 부산으로 도망쳤다. 이후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을 때마다 시집 2권과 문학잡지 1권, 평론집 1권을 사서 읽었다. 3년째가 되자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차례 신춘문예에 낙방하고 방황한 나날을 버텨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7권을 펴냈다.

"좋은 시는 '편지' 같은 시예요. 연애편지를 휙 읽어도 보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처럼 편안하고 쉬운 시어로 써도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시, 그게 좋은 시가 아닐까요. 배배 꼬고 쥐어 짜내는 시는 고통스러워요. 시를 보고 위안을 받아야지 왜 고문을 당해야 합니까."(중략)

 

서규정 시인 수상 소감 "지평 너머 새로운 시를 향해 또 정진"

먼저 심사위원님께 절부터 해야 한다. 수상이 뜻밖이라고 놀란 눈을 치켜뜨고 부산스럽게 겸손을 떨긴 싫다. 갈 길이 멀고 목이 타는 보따리장수에게 찬물 한 대접 크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까진 딱 사십 년이 걸린 셈인가. 전라도 땅에서 무작정 낙동강다리를 건너와 몸을 둘 곳은 노동 현장밖에 없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그럭저럭 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밥만 먹고 살아야 하나.(중략)

아무리 빼어난 시도 결국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엉뚱한 장인정신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지평 너머엔 새로운 시의 市場이 벌써 열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순 중반을 넘는 황혼 무렵, 바쁘다 바빠, 등짐을 가득 지고 긴 침을 흘리는 낙타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야겠다.

 

(왼쪽부터 조영서, 이유경, 구모룡)

심사평- 추상 경계하고 존재의 진실 파고들기 큰 울림

다섯 권으로 걸러진 심사 대상이 둘로 줄어드는 데 큰 주저는 없었다. 서정적 추상을 경계하면서 시적 발화와 시어의 밀도를 따져 서규정의 시집 '다다'를 선정하였다.

서규정의 시는 일찍이 미학주의와 현실주의를 가로지르는 개성적인 위치로 주목을 받아왔다. 진실한 자기표현을 통하여 현실의 허위를 돌파하는 시적 모험을 지속한 것이다. 그는 자기로부터 개진된 발화가 고백이나 나르시시즘에 머무는 우를 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체적 세계를 놓치고 관념으로 쉽게 이월하는 추상화로 기울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시적 표현이 세계 내 존재의 긴장과 생동하는 수행을 매개로 구체성을 획득한 희귀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서규정은 시인으로서 자기를 세상의 잡음 속에 배치함으로써 일상과 세계의 모든 사물에 공명한다. 작고 미천하고 버려진 것들의 실존에 동참하는 그는 안으로부터 열려 그 외부와 화해하는 서정적 신체를 매우 건강하게 노래하고 있다. 바닥과 허공을 한데 두고 사유하는 그의 시적 행보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2016-11-06 | 김현주 기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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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 10점
서규정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 시인선 시리즈의 열두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신정민 시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 「색깔빙고」 부분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신정민 시인은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 「돌 속의 길이 환하다」로 당선되어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개성적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문학이 문학일 수 있는 것, 바로 일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만의 감식안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정민 시인은 이러한 직관의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균열하여 세계 안의 미세한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언어로 만들어낸 세계의 균열을 표현해낸 결과물인 셈이다.


처음 보는 얼굴처럼

익숙함을 거부하는 일상의 비(非)일상화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밤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방추상회」 부분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미학적 태도가 분명하게 견지되는 시편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시가 「방추상회」이다. 뇌에서 얼굴에 대한 정보 처리 역할을 담당하는 ‘방추상회’라는 이름에서 시인은 ‘가게’라는 발상을 이끌어내고,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예술의 기능을 도찰해낸다. 이는 개성적인 시선을 통해 비일상적 맥락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으로서, 이질적인 시어와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시인의 문법이 주목되는 구절이다. 한편 「색깔빙고」에서는 “흑백”, “회색”, “새빨간”, “검은색”, “흰색” 등의 색상을 통해 놀이하듯 시어들을 풀어내고 있는데, 어떠한 논리적 연관 없이 낯선 문법을 통해 독자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초대하고 있다.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 「나이지리아의 모자」, 부분


표제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나이지리아 아이들에 대한 시인의 인간적 유대와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이 관통하는 이번 시집에서 다소 이질적인 작품이나, ‘벽화마을’의 모순적 풍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여우의 빛」, 언어적 표현법에 대한 자의식을 담고 있는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빈곤”과 “굴욕”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 NGO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시이다. 이처럼 시인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문학과 삶, 언어와 세계 사이의 간절한 연결선을 시어로 “풀어 뜬다”. 문학과 삶이 동떨어지지 않는 시인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제작이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신정민 지음 | 문학 | 국판 | 144쪽 | 10,000원

2015년 12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28-4 03810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쓴이 :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 만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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