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감싸는 연대의 손길완월동 여자들서평

 

인턴 박희빈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부쩍 외로움이 늘었다지금껏 가꿨던 대인관계가 전부 희미해진 느낌이라 별안간 허무해지기도 한다. ‘연대라는 단어만 봐도 울컥하는 건그래서일까단어에서 연상되는 단단한 기운이 나를 보듬어주는 기분이라서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완월동 여자들에 끌린 게 당연해 보인다정확히 말하자면 살아남아 사람을 살리는 여성 연대의 기록이라는 부제목에 끌린 게

 

완월동 여자들은 살아남아 사람을 살리는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언니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살림의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자매애와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 성매매 당사자를 언니라 칭한다. 따라서 완월동 여자들에는 ‘언니라는 다정한 호칭과 부산 사투리를 살린 대사들이 가득하다실감 나는 사투리 표기에 웃음 짓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완월동이 어디야?"

 

 

 

 

 

완월(玩月)동은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과 충무동 일대의 성매매 집결지다현재 지명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그 기원은 알 수 없다하지만 지명에 사용된 한자를 통해 의미를 파악해볼 순 있다희롱할 완()에 달 월(). 이때 ()’은 여성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표현이다, 완월동은 여성을 희롱하며 가지고 노는’ 동네인 것이다.

 

구구단을 간신히 외우던 나이부터 부산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완월동 여자들을 통해 완월동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부산의 모든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남포동 일대는 빠삭하다고 생각했는데(고등학생 때 자주 놀러 갔었다). 내가 놀러 다닐 때 누군가는 삶을 빼앗기고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내가 사는 곳과 그 근처에서, 내가 오가는 길에서 말이다.

 

 

"가족이나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성매매 여성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그들은 "내 주변에는 절대 있을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내가 "우리 주변의 여성들이 아니라면 과연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하고 재차 물으면,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 주변에는 결단코 그런 여자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성구매자들의 필요에 의해 사고 팔리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을 사는 당사자들에 의해 '이방인'으로 취급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실체는 있지만 그들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無)의 존재였다.

 

171~172p

 

··) 경찰은 우리에게 훈계하듯이 말했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봐라. 왜 그 여성들 편만 드냐?" (···) 그들의 중립은 우리 사회의 가치와 관습을 따르는 교육에서 나온 중립이었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이어져 온 관념의 중립이었다. 그들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가면서도 그런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기존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217p

 

 

무엇을 제대로 아는 건 몹시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다. 제대로 알고 나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싶어지고, 자연스레 시비에 휘말릴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눈을 돌렸다. 온갖 살인사건도, 성범죄, 묻지마 범죄들도. 기사 제목을 다 읽기도 전에 허겁지겁 뉴스를 꺼버렸다. 깊게 알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너무 오래 못 본체하고 있었다. 

 

 

 

 

완월동 여자들언니들은 성매매 여성이기 전에 한 명의 여성이다. 그리고 한 명의 여성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다. 언니들을 '성매매 여성'이라고 뭉뚱그리는 건, 그들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가려버린다. 그렇기에 물건을 사고팔듯이,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하게 언니들을 사고팔 수 있는 거겠지.

 

 

 

세상은 성매매 여성들을 특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없는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로 지워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라는 것, 별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85p

 

 

『완월동 여자들』엔 살림의 소장과 활동가들의 분투, 그리고 살림이 구하고자 했던 언니들의 현실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흔히 숫자로 뭉뚱그려지는(oo사건 피해자 xx명) 피해자들의 삶을 담았다는 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개인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살아남아 사람을 살리는 '살림'의 연대란 이런 게 아닐까.  

 

 

 

 

현재 완월동은 폐쇄되어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충분하지 않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그렇다면 완월동 폐쇄 이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도 연대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완월동을 새롭게 탈바꿈하고 가해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완월동과 언니들을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체했던 게 무엇인지, 그 결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연대의 손길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완월동을 통해서 만난 우리는 아름답고, 질긴,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구절(102p)처럼.

 

 

 

완월동 여자들 - 10점
정경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 부산 완월동을 아시나요? 


지금은, 부산 완월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업소 여성들을 위해 활동해온 활동가의 원고를 편집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 원고를 읽으며 완월동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일제에 의해 전국 최초로 만들어졌고, 한때 아시아 최대의 성매매 집결지라 불렸던,

부산의 마지막 남은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다행인 것은, 많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의 노력에 의해서 

이제 완월동도 폐쇄 수순에 들어간 것입니다. 

단순히 폐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사업과 함께 

생계 수단을 잃은 여성들을 위한 자활사업도 진행이 됩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해운대에 놀러갔을 때, 
어떤 골목에 늘어선 가게의 분홍 불빛 아래에 앉아 있던 여성들을 
힐끗힐끗 쳐다봤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곳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린 날의 저처럼 
'호기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성구매자 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그곳에,
'무대뽀 정신'으로 다가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원고는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을 만들고 
15년간 활동해온 정경숙 활동가의 이야기입니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여성 인권에 눈을 뜨고,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완월동으로 들어가기까지.
 
언니들(성매매여성들을 일컫는 말)과 울고 웃고, 지지고 볶는 사연들로 가득합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활동가들의 기쁨과 슬픔,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의 오해, 선입견을 숫하게 받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언니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결국 집결지 폐쇄라는 결과를 이루어낸 활동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전국 곳곳의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되고, 
그 공간들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여러분께 이 책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곳 완월동. 
그곳에서 울고 웃었던 언니들과 활동가들의 이야기. '완월동 여자들
열심히 편집 중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 


Posted by 에디터날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산지니북 2020.07.18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기를 걷다> 작업할 때 본문에 들어갈 사진 때문에 조갑상 작가님과 완월동에 갔는데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사진 못 찍게 하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