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대학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논문과 학술서 출판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 집필에 매진하는 연구진들을 위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우수저서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특히 저자 지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라 우수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들에게 격려하는 차원의 제도이며, 타 기관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지 않고 출간된 인문사회분야의 우수한 교양서에 대하여 사후에 포상 성격의 사업비를 지원함으로써 연구자들의 저술의욕을 고취하는 목적에서 제정된 사업입니다.
산지니의 저자는 무려 5종의 책의 12명의 저자분이 수상하였습니다.
(유토피아라는 물음이라는 책에서 여덟 명의 필진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한국연구재단의 2014년 인문사회분야 우수저서로 선정된 책은 59종이라고 합니다.
그럼, 산지니 수상도서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 내용은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접수과제정보의 연구요약에서 발췌하였습니다.(저자분들께서 하나하나 직접 올려주신 내용입니다.^^)
연구요약: 학문하는 자가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들, 그 속에서의 사고들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된다. 서론 「상황적 사고」에 이어 본론 여덟 장이 배치되고 보론「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로 마무리된다. 본론은 학문하는 자가 겪게 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전개한 사고들을 담았다. 저자 자신의 체험에서 고민의 소재를 취해 일반 독자와 공유하려 시도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 사회사상사를 공부하는 지역연구자로서 타국을 오가고 외국의 언어와 정신을 익히는 동안 생겨나는 상황 속에서 일반 독자와 공유할 사색거리를 발굴해낸다는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작성했다. 다음은 일반 독자도 겪을 수 있는 네 가지 상황을 본문에서 취해 요약한 것이다.
(1) 외국어를 배워나가는 상황 - 「맥락의 전환」
처음 외국어를 입에 담으면 이물감이 느껴진다. 낯선 발음이 불편하고 상대에게 온전한 의미로 전달될지 불안하지만 점차 숙달될수록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진다. 일반 독자가 모국어도 추상 개념을 익히는 일은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어석했던 표현들이 어느새 몸에 익으면 외국어 실력은 붙은 셈이나, 외국어로 경험해야 했던 날것의 피부감각은 잊히고 만다. 마찬가지로 애초 생경했던 어떤 추상 개념이 점차 익숙해져 점차 개념과의 긴장관계를 잃어버리면 그 개념은 일반 독자에게 사고를 다듬기보다 안이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외국어 학습 상황은 한 가지 사례로서 「맥락의 전환」은 이처럼 외부의 맥락을 통과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모어의 정신세계에 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다뤘다.
(2) 외국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상황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
삶의 일부로 삼아 몰입할 책이 있다. 만약 그 책이 타언어로 써진 것이라면 그 책은 번역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번역하는 까닭은 남들에게 소개하기에 앞서 자신이 그 책을 진정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책을 외국어인 채로 남겨둔다면 대강의 의미에 만족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번역의 시련을 거친다면, 마음에 드는 문장만이 아니라 논리적 흐름과 말투까지도 읽어내야 하니 정말로 이해했는지가 가려진다. 나아가 번역자는 번역을 통해 과거의 정신, 외국의 정신을 지금 자신의 사회 속에서 되살려낼 수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는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일본 사상가의 번역자로서 저자가 번역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체험을 사색거리로 빚어내고 있다.
(3) 외국에서 지내는 상황 - 「내재하는 적대성」
외국에서 생활하면 홀로 있어도 날몸으로 다니는 게 아니다. ‘나’라는 개체는 이미 기억과 정보로 구성된 맥락의 덩어리다. 그래서 외국살이에서는 이질적 맥락들 사이에서 충돌과 교착, 교섭과 소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나’는 타인과 만나 한국인으로서 발화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는데, 그때 ‘나’라는 개체가 한국사회의 상황이나 역사를 얼마만큼 동일시해도 되는가는 결코 자명한 문제가 아니다. 그 고민을 통해서야 진정한 국제감각을 지닌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4) 한국에서 외국의 사태를 대하는 상황 - 「‘멀다’와 ‘가깝다’ 사이」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해일이 도호쿠 지역을 덮쳤고, 다음 날 후쿠시마현에 있는 도쿄전략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원자로 노심 용융이 발생했다. 그동안 수만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겨났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으며, 그보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방사능에 노출된 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인국에서 벌어진 사태의 심각성은 한국사회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멀다’와 ‘가깝다’ 사이」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치른 막대한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그 희생의 하중을 조금이라도 이식하고자 이웃나라의 상황으로부터 얻어야 할 한국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다.
이 책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더듬어 간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권력보다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작동하면서 사회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를 양산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들뢰즈와 푸코의 권력 이론을 참조한다. 이 책은 새로울 것도 없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기에 간과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무관심한 정치와 고루한 일상에서 권력이 우리를 현재 지금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를 밝힌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장은 하나의 고원으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어 내용을 보완하기도 한다.
먼저 프롤로그는 전반적인 들뢰즈와 푸코와 저자의 소개와 더불어 영화와 실생활 등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편재되어 있는 몇몇 실례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권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하는 소개의 글이다.
1장은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언어에 나타나는 권력적 속성을 다룬다. 이 주제는 “언어의 기능은 명령”이라는 들뢰즈의 언어에 대한 기발한 접근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 언어에서 드러나는 명령어적인 속성을 영화와 CF와 TV 프로그램, 그리고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예로 들면서, 들뢰즈 이론을 쉽게 설명하고 적용한다.
2장은 1장 언어와 권력과 연결되어 얼굴에 나타나는 명령어적인 속성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얼굴표정과 함께하기에 얼굴은 의미화와 해석을 위한 근거가 된다. “얼굴은 정치”라고 정의하는 들뢰즈의 테제를 역시 영화와 일상에서의 다양한 예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얼굴이 명령어적인 속성이 강한 기표적인 전제적 체제와 그 체제를 탈주하는 탈기표적인 체제를 중심으로 얼굴의 정치성을 설명한다.
3장은 먼저 들뢰즈가 예술철학에서 강조하는 재현 담론 속에 숨겨진 권력적 속성을 이야기한다. 재현의 권력적 속성을 탈영토화하는 실례를 예술작품을 통해 밝힌다. 또한 언어의 권력적 속성인 “언어의 통일성”을 서울 표준말과 방언을 비교하여 이야기하고, 언어의 권력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예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들뢰즈가 분석하는 권력의 위험을 다양한 예들을 통해 설명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조성의 정치학을 제시한다.
4장은 주디스 슈클라의 속물근성을 들뢰즈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슈클라는 출생과 연관된 세습 속물근성과 파벌 속물근성으로 분류하는데, 이것들은 우리나라에 너무나 만연하고 있고, 들뢰즈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이론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두 가지 속물근성은 파시즘적 속성과 전체주의적인 속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 파시즘적이자 전체주의적인 파벌 속물근성과 세습 속물근성이 권력의 작동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다양한 병리적인 현상이 되는 실례들을 분석한다.
5장은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에 강조하는 예술이론을 적용하여 두 가지 시작품을 분석한다. 예술가의 창조적인 작업을 매우 우선시하는 들뢰즈의 접근은 기존의 재현적인 내용과 형식을 탈주하는 시작품을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김혜영과 황병승의 작품에 수록된 시들을 욕망, 기호, 그리고 생성의 관점으로 재현의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예들을 이야기한다.
6장은 푸코의 권력 작동 방식을 구체화한다. 규율과 감시를 통해 하나의 담론이나 지식이 지식-권력으로 작동하면서 신체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생체-권력을 설명한다. 규율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취업과 시험의 예를 통해 분석하고, 일망감시 체제를 통해 비가시적으로 감시가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규율과 감시를 통해 어떻게 지식-권력과 생체-권력이 작동하는지를 밝힌다.
7장은 푸코와 들뢰즈의 권력 담론 속에서 유사한 점을 분석하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일상에서 작동하는 예들을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언어의 권력에서 화용론적 접근과 푸코의 언표와 담론의 접근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또한 권력이 생산적이라고 테제와 권력은 미시-물리적이라는 테제는 들뢰즈와 푸코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 테제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권력이 편재되어 훈육적 혹은 예속적 주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들뢰즈의 노마드적 주체와 푸코의 윤리적 주체를 비교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통해 수동적인 주체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를 되돌아보고, 신체 규율과 인구통제 두 측면으로 작동하는 생체권력이 자본주의에서 우리를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고발하고, 그 속박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공공미술은 노후한 마을에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생각의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재생의 역할을 하는 것이 현대의 공공미술 개념이며 정설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통영 동피랑,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공미술 마을이 있다. 이곳들은 한결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벽화를, 공공미술을 구경하는 우리는 왜 공공미술을 하는지? 누가 벽화를 그렸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서나 비슷비슷한 벽화가 있다고 퉁명스러운 얘기만 한다. 오래된 벽화는 낡고 헤어진 모습에 흉물이 되었다며,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주최측과 작가에게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본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는 마을에서, 도시에서 보이는, 즉 현존하는 미술의 현황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현대에 왜 공공미술이 성행 하는지를 우선 미술사의 관점과 예술가의 입장에서 풀어본 책이다.
저서에는 우선 대중 속에 미술과의 접목이 일어나는 장소인 도시로부터 시작한다. 도시가 발전하다가 쇠퇴하게 되면, 다시 재생을 꾀한다. 이 과정에 공공미술이 개입된다. 그러나 모든 도시공간에 미술이 개입되지 못한다. 그래서 공공이라는 장소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공적과 사적공간에 관해 언급한다. 그리고 공공미술이 근대적 미술 개념인 '사적 미술'의 경계를 넘어선 것으로, 예술이 사회를 위한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로, 다시 사회를 위한 예술로 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다시 예술은 왜 '공공'이라는 용어와 접목하려 하며, 접목해야 할까? 아니면 접목 당하고 있을까?' 의 의문으로 들어가 공공미술을 하는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지역마다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만들기를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부산의 경우 40여개가 넘는 공공미술마을이 있다. 이 중 골목길 부활, 달동네, 산복도로 등 장소와 지리적 특징이 반영된 15개소를 소개하며 장·단점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공공미술이 도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작가와 행정가, 주민들 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에 대한 제언이 담겨있다.
필자 가의 「유토피아의 초상―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에서 디스토피아를 읽다」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동시적인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함으로써 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적인 버전 속에 맞물려 있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의 창출을 드러낸다.
필자 나의 「유토피아, 충돌의 공간―한센인 집단 거주 용호농장에 대하여」에서 분석되고 있는 용호농장은 다수와 소수자 간의 유토피아적 의식이 충돌하고 길항하는 공간이다. 이윤과 직결된 도시적 공간 확보라는 도시인들의 유토피아적 의식과 한센인들의 생존 공간 확보라는 유토피아적 의식이 충돌하는 과정, 그리고 끝내 단절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으로서의 용호농장이 탄생되고 소실되는 과정을 오현석은 섬세하게 찍힌 자신의 르포사진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자 다는 김사과의 천국에서를 통해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작동하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는 상황, 물신화된 유토피아 관념의 허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이를 경유하여 윤성희의 구경꾼들을 통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필자 라의 「아토포스로서의 “제4세”―「선(線)에관한각서」의 안팎」은 작가 이상의 문학 속에 들어있는 묵시적이고 파국적인 심판의 이미지를 당대의 전시체제를 인지하는 이상의 역사신학적 관점의 반영으로 읽고 있다. 달과 지구의 충돌, 멸형(滅形)의 시간, 절대의 추구 등 이상이 말하는 ‘불세출의 그리스도’가 도래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은 삶을 군국의 단순한 질료로 재편하는 체제에의 불복종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필자 마의 「우울 이후, 안티-유토피아―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에 나타난 파국의 희망」은 광대한 사유화의 영역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오늘, 유토피아라는 개념과 그 내실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의 것인지, 어디에서부터 가능하고 또 불가능한지를 다시 정의하지 않을 때를 상상한다. 타락한 유토피아적/건축적 세계와 맞서는 세계감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필자 바의 「동일성의 구축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추구가 물질적 조건의 변혁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작성되었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기획이 해방기 이기영의 소설 『땅』에서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세세히 분석한다.
필자 사는 「싱글이 넘치는 신세계―결혼과 유토피아의 안과 밖에 대한 질문」은 일부일처제 사회, 가족 공동체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세계를 구상했었던 푸리에의 유토피아, 이른바 팔랑스테르의 실재적 가능성을 통해서, 현재 구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란 어떤 것일까를 더듬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최윤교의『싱글빌』과 2006년 세계문학상 당선작이었던 『아내가 결혼했다』가 보여주었던 결혼 및 가족에 대한 시각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의 질문법을 통해 국가에서 싱글인 ‘나’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들 7편의 비평에 이어져 있는 기획번역 2편은 포스트 유토피아 인류학이라는 공동비평집에 수록된 글들로 필자 바와 필자 자의 공동번역으로 싣게 되었다.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는 자신의 글「유토피아들」을 통해 여러 유토피아‘들’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제안하고 있다. 그 중 핵심이 되는 것은 그가 말하는 ‘감촉(촉감)’의 존재이다. 그는 ‘운동’에 내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에 구속되지 않는 어떤 장소로서의 ‘포스트’의 상황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실례로 두 번째 번역글 카스가 나오키의 「유토피아의 무게, 포스트 유토피아의 위안」은 피지 섬에서 수행된 인류학의 분석이 유토피아의 발로를 놓쳐온 것을 돌아보면서, 피지 선주민의 ‘식인’ 풍습을 취급하는 인류학자들의 선입견이 낳은 몰이해에 대해 비판한다. 인식에서 쓰여진 글이다. 카스가는 ‘선주민,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붙이고, 언어를 통한 이해 너머를 지향한다. 이렇게 카스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상상된 세계가 현재에 출현했을 때,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모색한다.
2013년 현재 미국에는 약 7만여 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있다. 이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라고 한다. 대학원생이 많았던 과거와는 반대로 점점 대학(학부)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대학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뜨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대학의 현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교에 20년 이상 몸담은 교수이자 미국 대학의 호기심 많은 방문자인 저자는 건물, 시설 등 ‘대학의 하드웨어’와 운영, 교육, 제도 등 ‘대학의 소프트웨어’ 속에 숨겨진 미국 대학의 힘과 경쟁력을 예리하게 발견해 독자에게 전한다.
미국에서는 좋은 미식축구 팀이 있다면 별도의 대학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미식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다. 그래서 학교 홍보나 재정 안정에 기여하는 미식축구팀 코치에 높은 연봉을 준다. 또한 기금 조성에 실패했을 경우 대학 총장이 사임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미국 대학의 운영방식이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학문과 진리 탐구를 수행하는 데 우선적인 것은 그에 필요한 재정 확보일 것이다. 저자 역시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고 고백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이 ‘고객’인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면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시민들이 앉아 스케치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대학 건물, 냉난방과 각종 시설이 잘 구비된 강의실,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학 경찰(University Police)과 비상 전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셔틀 버스(University Bus), 수영장․축구장․야구장․테니스코트․미식축구 경기장 등 각종 운동 시설,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는 문서 교정 서비스 같은 각종 편의 서비스와 장학지원 제도, 입시 제도 등 미국 대학의 면면은 한국 대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점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중국에 가 있는 저자 윤여일 선생에게서 메일이 왔다. 중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졌고 사쿠라이 다이조 씨에게도 책을 전달하고 싶으니 중국에 『상황적 사고』를 보내줄 수 없냐고. 저자는 책 작업 마지막까지 한국에 있었고 제작에 들어갔을 때 중국에 갔기 때문에 책을 받아볼 수 없었다. 원고가 오가는 동안 일찌감치 중국에 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마치 소설의 발단처럼 느껴졌다.
저가 윤여일이 말한 사쿠라이 다이조는 텐트연극을 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단 한 편의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한 장소에 텐트를 세우고 한 차례의 공연이 끝나면 텐트를 걷고 떠난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3·11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년 후에 팔레스타인, 광주 그리고 후쿠시마에 관한 연극을 했다. 저자는 이번 책에 사쿠라이와 텐트연극에 대해 아주 흥미롭게 썼다.
이처럼 이 책은 꼭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글만 모은 건 아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주어진 자신의 상황 속에서 쓴 글들을 묶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사상은 가능한지 묻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익숙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사고는 주체적인 자신의 사고가 아닌 타인에게 주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자신의 사상의 가능성을 찾고 개성을 회복하길 원한다고. 그건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함께 살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다. 무력한 현실 정치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삶의 무기. 저자는 그것을 사상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무기는 무엇일까. 나 역시 조심스럽게 사유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자기 전 불 꺼진 방에서 오늘 하루를 생각하는 시간,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희망,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인생이 비루하다고 비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밤에도 컴퓨터를 끄지 않고 시간에 쫓겨 겨우 잠들 때가 많았다. 나는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힘, 어느새 바쁜 일상 속에 사라진 사유의 시간을 되찾게 하는 동력.
저자에게 한 통의 메일이 더 왔다. 멀리까지 책을 보내줘서 고맙다며 사쿠라이의 텐트 연극 사진을 보내왔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 매일 똑같은 근육만 쓰는 내 근육이 부끄러워졌다. 드디어 소설의 발단이 시작된 걸까.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밤 같은 책이에요, 그러나 저자와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그 밤을 잘 걸어 나간다면, 지금의 무기력한 현실에서 우리만의 무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자신만의 발단을 이 책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은미 산지니 편집부
위에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기획회의』350호의 출판사 서평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상황적 사고』에 대한 편집자 서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에서 벗어나 편집자가 편집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일화, 개인적인 서평 등을 진솔하게 쓰는 코너입니다.글에도 나오고 블로그에도 공개하려고 했던 사진이기에 이렇게 공유합니다. 다만 저자가 사쿠라이 다이조 선생 외에 얼굴 공개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하셨기에 그때의 상황을 전하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눈물과 땀이 범벅된 배우들의 얼굴과 뜨거운 텐트 안에 연극은 저 혼자 봐야겠네요. 사진도 글처럼 아주 멋지게 찍으셨네요. 사진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저자 윤여일의 텐트연극 기록입니다.
'클때까지 화이팅!'이 다양하게 변용되어 쓰이고 있네요.ㅋ
모두들 고생많으셨고, 책 나오면 모두의 축제죠. 저자분들도, 번역자분들도, 편집자도, 인턴분도, 대표님도, 편집장님도, 디자이너 선생님도 모두들 화이팅!
그리고 책을 곧 읽을 독자 여러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차가 걸린 풍경, 흥해라!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지금, 지난 5년의 정부를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 정치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왔고 외면은 곧 현실정치 왜곡으로 변형되어왔다. 이러한 체념과 무력감 속에서 저자는 “체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무력함을 내적 동력으로 삼아 현실정치를 외면하지 않되 현실정치와는 다른 위상, 굳이 부른다면 사상의 영역이라고 불러야 할 곳에서 이룰 수 있는 성과는 없는지 따지기로 했다(「상황적 사고」, 29쪽)”고 말한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러한 무력함 속에서 사상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유한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의 이명박 집권기 동안 저자 윤여일이 쓰고 번역하고 비평한 글들을 모은 평론집이다. 저자가 2008년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었을 때 한국 사회는 이명박 정권의 본격적인 행보와 함께 촛불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사회는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어선 노동자들의 착취와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게공선』이 당시 일본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다시 붐이 일기 시작했다. 저자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촛불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정리해고, 가정 붕괴, 부채 지옥 등이 가속화되고 있었고 일본 사회 역시 빠르게 격차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글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상황 속에서 쓰인 글들이다. 저자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올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달리지 않는 까닭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상황 속으로 진입하면 오류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지만 그만큼 사고는 자신의 처한 현실의 모순과 겹쳐 단단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다른 사회의 타자에게도 가닿을 수 있도록 발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독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 제약된 현실조건 속에서
사상의 개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저자 윤여일은 묻는다.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기성의 정신세계가 균열된 자리에서 사상이 출현한다. 사상은 그 균열을 자신의 내적 모순으로 전환시켜 성장을 도모한다(「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0쪽)”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상을 시도하는 자의 구체적 현실에 바짝 다가가야 하기에 다시 묻는다. “비서양에서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서양의 근대는 비서양을 지배해가는 과정이었고 “자주 거론되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계열은 연대기적 순서를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이 순서는 늘 지정학적 틀에서 배분되어왔다. 이 인식론적 구도에서 서양과 비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문명적 격차로 번역되었고, 비서양의 사건은 이 구도에 의해 의미가 해석되어왔다(「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2쪽)”고 한다. 저자는 그 결과 비서양의 세계 인식은 심각하게 제약당한다고 말한다.
사상에게 있어 제약의 조건은 가능성의 조건이다. 자신의 환경이 지닌 제약을 통해서만 사상은 자신의 가능성을 움켜쥘 수 있다. 그리하여 비서양의 사상은 세계 인식과 자기 인식을 제약당하지만, 그 한계에 내재함으로써 자신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한계에 내재한다는 것은 힘관계의 비대칭성을 사고의 전제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래야 열위이고 뒤처져 있고 유한하지만, 그 조건에서만 가능한 정신의 개성을 길러낼 수 있다.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6쪽)
저자는 오히려 제약의 조건은 사상의 가능성의 조건이라 말한다. 제약된 상황 속에서 기꺼이 복잡한 사고를 감행하고, 자신 내부의 어둠을 살피며 사상을 빚는다. 이러한 사상은 가능성이 되고 정신의 개성이 된다. 사상의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신의 개성을 가지기 위한 그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이기를 원하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상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고자 한다.
▶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사상의 자원은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이 책은 저자 윤여일이 2012년 펴낸『지식인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연장선상에서 발간한 책이다. 『지식인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는 구체적인 사건의 언급 없이 사변적인 언어로 리얼리티를 만들었다면 『상황적 사고』는 매 글마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구체적인 사건에서 자신의 사유를 풀어냄으로써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었다. 평론은 총 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현실적 현실론 비판」에서는 저자 자신을 포함해 이명박 정권을 등장시킨 혹은 막지 못한 대중을 비판대상으로 삼아 이명박 정권의 현실론에 조응하는 대중의 현실감각을 파고들었다.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은 대중의 현실감각을 다룬 「비현실적 현실론 비판」과 달리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감정을 분석한 글이다.
「정치의 원점」에 나오는 텐트 연극 사쿠라이 다이조 사진입니다. 현재 중국에 계신 윤여일 저자가
직접 메일로 보내온 사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블로그로 포스팅할게요^^
「맥락의 전환」은 저자가 일본에 체류하면서 느낀 경험과 동아시아에 관한 일본인 동료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전하고자 했다. 「내재하는 적대성」은 한국의 촛불운동에 대한 구체성과 촛불운동이 가지는 성과에 대해 논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는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과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를 번역한 저자가 왜 자신이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생을 위한 사」는 저자 자신이 속해 있었던 ‘수유너머’의 생성과정과 이를 통해 공동체의 삶을 이해하는 지평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멀다’와 ‘가깝다’ 사이」는 3·11 이후 일본 지식인들의 고뇌를 번역해 한국과 일본 민중의 간극을 메우며 고뇌를 공유하고자 한 글이다. 「정치의 원점」은 텐트연극을 하는 극작가이자 배우 사쿠라이 다이조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그의 존재를 알리고 그가 가진 사상을 글로 번역하고자 했다.
글쓴이 :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도쿄외국어대학 외국인연구자로서 일본에서 체재했으며, 2013년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서 중국에서 체류 중이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둘, 셋』 을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만들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사상으로서의 3․11』,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을 옮겼다.
『상황적 사고』
크로스 크리틱 02 윤여일 지음 인문 사회 정치 비평 | 신국판 | 296쪽 |
18,000원 2013년 7월 12일 출간 | ISBN :978-89-6545-221-8 04800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의 이명박 집권기 동안 저자 윤여일이 쓰고 번역하고 비평한 글들을 모은 평론집이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러한 무력함 속에서 사상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유하며 이 책으로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독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 윤여일은 본인이 평소 견지하고 있던 ‘윤리성(Ethica)’에 대한 고찰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네 가지 사유감각으로 풀어내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자본론」보다 논리적 밀도는 떨어지지만 다양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키며 현실을 때렸다. 이처럼 저자 윤여일은 지식의 가치를 기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지식의 기능성과 윤리성 사이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가장 심급의 영역으로서의 '사상'을 사유함
이 책은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적 영위의 핵심 개념차이를 밝히고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저자의 성찰을 심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이때 ‘이론’은 지적 주체가 고유하게 만든 자신의 구성물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저자는 바라보았다. 또한, 현실감을 잃고 현실을 분할할 언어 개념으로 남은 ‘이론’에 대해서도 응수를 놓음과 동시에, 맥락을 잃고 학술적 과시성향으로 기능하는 오늘날 지적풍토를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이론의 이론됨을 성찰한다고 긍정한다. ‘이론’이 억압한 것의 흔적을 살피는 것이 바로 비평이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론은 축적됨과 달리, 비평이 가지는 논쟁은 축적되지 않음도 윤여일 저자는 동시에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 자신이 비평이 대상임에도 비평할 수 있는지를 사고하는 것이 ‘사상’이고, 이는 곧 가장 심급의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사상’이 바로 저자 윤여일이 언급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자기응시에서 출발하는 행위라고 규정짓고 있다.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인문학을 반성하다
윤여일 저자는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과 같은 네 가지 층위의 사유감각을 통해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윤리성’에 대해 고찰한다. ‘현실감각’ 부문에 있어서는 자주 외롭지만 고독할 줄 모르는 양떼 인간을 두고, “나는 남과 다르”지만 그러고는 기꺼이 유행을 좇는 현대인들을 소비주의적 대중매체(TV, 신문, 책)의 영향력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윤리적 감수성을 타락시키는 TV라는 매체를 현실감각적인 면에서 고찰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사회화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정치감각’ 부문은 유동하는 정치와, 정치의 응고물인 권력에 대해 사유한 장이다. 성숙된 정치적 사고란 무엇인지 도덕성과 다른 차원에서 신중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유덕한 지도자 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조건에서 유리된 유토피아적 전망 역시 정치적 체념의 토양이 되기 쉽다며 오늘날 정치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윤여일 저자는 정치도 경제, 문화와 나란한 사회의 부문이 아닌 사고의 심급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더불어, 사상계가 내놓는 지식이 사회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현학적인 대상에 젖어들고 지식의 언어가 지식인들의 언어로만 남는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바깥에서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질타한 것이다. 지적 주체가 진정 인식하고자 한다면 윤여일 저자는 대중 속에서 있으면서 그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다.
번역 행위의 본질은 바로 '토론'에 있다
‘번역감각’ 부문에서는 번역 행위가 본질적인 토론행위임을 사유했다. 또한 ‘번역의 정치성’에 대해 논의했는데, 여기에 언어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번역자가 번역을 매개로 보편성을 재사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언어감각’ 부문에 있어 언어를 만나는 것이 강렬한 정신적 체험이자 버거운 육체적 체험이라고 언급했다.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 지적 주체는 무엇을 사유하고 있는지 사유할 수 없고, 따라서 글로 ‘써야 한다’. 쓴다는 행위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은 홀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꺼내는 이상 윤리적 방침이 필요한데, 이는 자기 회의가 감싼 고백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식이란 무릇 지식을 습득하는 지적 주체와 지식 자체의 관계에서 지식과정이 성립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중에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지적 스승들의 아카데믹한 저작들이 보여주는 지식이라는 것이 지적 주체를 쇄신할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일종의 철학적 소품집인 셈이다. 결국 지적 주체인 지식인들이 지적 대상에게 다가가는 인식절차를 구체적으로 밟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핵심 주제의식이다.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속편격인 윤여일 선생의 근간 『상황적 사고』가 올해 출간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저자 소개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여행의 사고 둘》 《여행의 사고 셋》 등을 쓰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통증보감
아프면 병원 가고, 약 먹고, 수술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연치유력과 생활습관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한다. 질병의 증상과 통증 부위에 따라 원인을 정리하고, 도움이 되는 운동을 정리해 실었다.
바람, 바람, 코로나19
문선희 작가의 첫 소설집.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문선희 작가는 이런 세태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각박한 현실 아래 상실되어 가는 절대가치의 회복을 주장한다.
보존과 창조
다양한 비평활동과 연구를 통해 지역과 문학을 잇는 시야를 꾸준히 넓혀왔던 구모룡 평론가는 이번 비평집에서는 주변 장르로 인식되어왔던 시조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며, 현대시조의 새로운 세계관을 가늠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좋은 일의 기준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가 가진 일에 대한 낡은 관념을 되짚어보고 변화하는 좋은 일의 기준에 대해 말한다. 삶과 함께하며 일할 권리, 나쁜 노동을 거절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어떠한 고용형태라도 차별 받지 않는 구조, 어린 노동자들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 등 일에 대해 활발하게 논한다.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2020년 부산 원북원도서 선정도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불안, 고통, 슬픔. 지치고, 지겨운 삶 속에서도 견뎌야 하는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게 하는 글들이 담겨 있다.
벽이 없는 세계
★국경 없는 시대에 필요한 지정학 전략★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붕괴와 포퓰리즘 부상을 필두로 한 50개의 주요 이슈를 통해 국제 정치 현안을 다룬 책이다. 미국, 중국, 터키, 러시아 등 세계 주요국의 지정학 전략을 통한 국제 정세를,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측면에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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