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에서 10월에 출간된 단편소설집 <마니석, 고요한 울림>, 읽어보셨나요? 

 

<마니석, 고요한 울림>은 풍부한 상징성과 문학성을 띠면서도 독특한 티베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또한 작가 페마체덴(萬瑪才旦)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라는 점이 독특한데요.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마니석, 고요한 울림>의 저자 '페마체덴'과 함께하는 행사가 저 멀리 중국 남경과 홍콩에서 있었습니다. 자칭 페마체덴 선정·선동가이자 <마니석, 고요한 울림>의 해설을 쓰시기도 한 임대근 선생님이 그 현장에 직접 참석하시고, 참관기를 보내주셨는데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께 보실까요?

 

 

 

 

 

페마체덴을 찾아서

 

 

임대근(한국외대 교수)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난징을 거쳐 홍콩엘 다녀왔다. 페마체덴을 찾아간 여정이었다. 페마체덴은 티벳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베이징영화대학(北京電影學院)에 들어가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까지 여러 단편과 장편을 연출했다. <초원>(단편: 草原, 2005), <성스러운 돌>(단편/장편: 靜靜的嘛呢石, 2005), <나팔바지 휘날리던 1983년>(喇叭褲飄揚在一九八三, 2009), <쿤덴을 찾아서>(尋找智美更登, 2009), <올드독>(老狗, 2011), <오색신검>(五彩神箭, 2014), <타를로>(塔洛, 2015), <진파>(撞死了一只羊, 2018) 등 여러 영화를 찍었다. 그의 영화는 상영될 때마다 이슈가 됐다.

 

페마체덴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랑가수의 꿈』(流浪歌手的梦, 2011), 『마니석, 고요한 울림』(嘛呢石, 静静地敲, 2014), 『부딪혀 죽은 양 한 마리』(撞死了一只羊, 2018) 등 여러 단편집을 냈다. 그의 소설과 영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러 영화들이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만들어진다. 그래서 소설이니 영화니 하는 장르를 나누기보다는 이야기에 대한 희망, 티벳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희망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0월 28일 난징공항에 내린 나는 곧바로 난징대학 뉴캠퍼스를 찾았다. 난징대학 중문과의 양거수(楊戈樞) 교수 겸 영화감독이 주최한 ‘페마체덴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에 열린 페마체덴과의 대화: ‘페마체덴의 티벳어영화’

왼쪽이 사회를 맡은 양거수 난징대 교수, 오른쪽이 페마체덴

 

 

 

난징대학에서 ‘대화’를 마치고 작가 서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일요일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강당 안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문답이 오고갔다. 참석자들은 가을 저녁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가 중국문학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소수민족’ 문학과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티벳어영화’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독특한 일이었다. 나는 ‘티벳어영화’라는 말은 ‘화어전영’(華語電影: 중국어영화)이라는 말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 관계상, 그리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이 의제는 길게 토론되지 못했지만, 나는 다음날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난징으로 유학을 온 티벳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자 마침 새로 나온 소설집 『부딪혀 죽은 양 한 마리』에 작가의 친필 서명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중산릉의 한 호텔에서 열린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 토론회

 

 

이튿날에는 중산릉 안에 있는 한 호텔에서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난징의 역림(譯林)출판사 관계자들과 난징대, 난징사대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페마체덴의 이야기를 읽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마체덴은 “나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논의를 한 자리에서 한 건 처음”이라며 “그래서 이번 토론회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페마체덴 문학의 이야기가 구조화되는 방식, 영화의 미학적 스타일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소수민족 출신 작가라는 이유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문화적 맥락이나 사회적 맥락으로 끌고가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사뭇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11월 1일, 홍콩으로 건너간 나는 홍콩침회대학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은 페마체덴 소설의 번역에 대한 짧은 북토크와 페마체덴이 지금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상영이 있었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마니석, 고요한 울림』(산지니, 2018)이 출간된 과정을 함께 나누었다. 스페인에서 온 마이알렌 마린 라카르타 교수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타를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크 시작 전, 페마체덴은 티벳에서 손님을 맞는 의식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하다’라는 하얀 실크로 된 스카프를 우리 목에 걸어준 것이다. 페마체덴의 소설은 이미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세계의 독자를 만나고 있다.

 

 

 

홍콩침회대학에서 열린 페마체덴 북토크.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북토크에서 페마체덴 감독이 마이알렌 교수에게 ‘하다’를 걸어주고 있다.

 

 

이어 상영된 다큐멘터리 <나의 소년 라마>는 영화 <성스러운 돌>의 주인공이었던 소년 라마가 환속한 뒤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며 살아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지 꽤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작업 중’인 이유는 그 추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에게는 영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수도원 안의 세계와 바깥 세계가 나뉘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언제쯤 영화가 마무리되겠느냐?”고 묻자 “아직 알 수 없지만, 곧 끝낼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년이 자신의 삶이 그대로 기록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페마체덴이 기록하는 티벳에 관한 중요한 에스노그라피로 남을 것이다.

 

11월 2일에는 역시 홍콩침회대학에서 ‘페마체덴을 번역하기’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열렸다. 프랑스의 브리짓 두장 교수, 프랑수아즈 로빈 교수, 스페인의 마이알렌 마린 라카르타 교수, 미국의 로버트 바넷 교수, 홍콩의 로콰이청 교수, 제시카 영 교수, 그리고 내가 발표를 맡았다. 우리는 페마체덴의 문학이 세계 각지의 언어로 번역돼 나가는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또 그의 영화가 중국 바깥의 세계에서 수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단편집까지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문화번역’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홍콩침회대학에서 열림 심포지움.

왼쪽부터 페마체덴, 브리짓 두장 교수, 프랑수아즈 로빈 교수

 

 

나는 그의 이야기가 ‘열려 있는’ 구조를 선호한다고 보았다. 그의 인물들은 치밀하지 않다. 그의 사건도 인과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는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과는 정반대에 서 있으면서도 매우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번역’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세상의 언어들은 저마다 힘을 가지고 있다. 힘세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있는가하면, 그보다는 힘이 약한 한국어와 티벳어도 있다. 우리는 힘센 언어를 약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매우 자연스러워한다. 그러나 힘이 약한 언어가 힘센 언어로 번역되면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는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식민과 탈식민, 근대와 탈근대, 그리고 문화번역의 수행 과정의 복잡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심포지움이 끝나고 페마체덴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된 『마니석, 고요한 울림』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페마체덴이라는 ‘중심’을 두고 모인 우리는 즐거웠다. 늦게까지 이어진 토론과 식사와 나눔의 자리를 통해 페마체덴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티벳과 중국, 우리가 사는 아시아와 더 넘어 자리한 세상들, 그 안에서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소통하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모두들 대견해 했다. 난징과 홍콩으로 이어진 문화와 학술의 여행은 내게 적잖은 성찰과 각성을 가져다 주었다.

 

 

페마체덴(萬瑪才旦)

 

티베트인으로서 작가이자 영화감독, 번역가다. 시베이 민족대학에서 티베트어와 문화를,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9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티베트어 소설집 『유혹诱惑 』, 『도시 생활都市生活 』과 중국어 소설집 『방랑 가수의 꿈流浪歌手个梦 』, 프랑스어 소설 『Neige』, 일본어 소설 『영혼을 찾아서寻找智美更登 』가 있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2002년부터 티베트의 문화와 생활을 깊이 있고 세심하게 그려낸 영화를 만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고요한 마니석静静的嘛呢石 >, <진파撞死了一只羊 >, <영혼을 찾아서 寻找智美更登>, <올드 독老狗 >이 있다.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각본상, 상하이영화제 아시아 신인 최고감독상, 중국 진지상 최고연출가 데뷔작상, 도쿄 FILMeX영화제 최고영화상, 브루클린 영화제 최고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 중이다.

 

 

 

 

마니석, 고요한 울림 - 10점
페마체덴, 김미헌/산지니

 

Posted by 실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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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⑤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무어화(無語話), “말하지 않고 티벳스러움(Tibetan-ness)을 드러내기 

 

 

 

페마 감독의 작품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티벳의 문화정체성을 표현하는 진실한 티벳영화라는 데 있다. 그의 장편영화 다섯 작품 중에서 중국 국영중앙방송 영화채널(CC-TV6)에서 출품한 2009나팔바지 휘날리던 1983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 전부가 티벳어 영화이다.

 

 그는 2014101차 인터뷰에서, 왜 티벳영화를 찍느냐는 질문을 하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찍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내가 제일 익숙하고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티벳언어이다. 티벳어는 언어이지만 티벳민족을 구성하는 근간이 된다고 티벳어 영화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현재 티벳 전역의 학교, 공장, 기업에서 표준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는 시대에 그가 티벳어를 강조하는 것은 민족 자존감과 민족 정체성의 발로로 보인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에는 중국스러움(Chineseness)’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고향인 티벳 마을을 배경으로 티벳 전통문화와 가족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티벳인 영화배우, 영화제작자, 영화 스태프들과 티벳어 영화를 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티벳스러움(Tibetan-ness)’은 대부분 영화에서 티벳 전통풍습을 곳곳에 배치하여 내러티브의 플롯으로 활용하거나, 티벳 정신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活佛)’의 존재나, ‘쿤둔 왕자의 설화를 등장시키거나, 오색신전에서 랄롱 페도로의 활쏘기 전설과 전통 장희(藏戱) 가면극을 내러티브 속 에피소드로 배치한다.

 

 

중국 시짱자치구의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의 풍경

 

활불의 사례를 보면, 활불은 티벳불교에서 라마가 전생(轉生)한 화신(化身)이며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대대손손 다시 태어나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불교 윤회사상과 티벳의 고대무속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제도로서, 티벳의 신정(神政)체제와 티벳정치를 상징하는 제도이다. 1950년 중국이 티벳을 무력침공할 때 활불들의 존재는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민족단결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규정했고, 지속적으로 단속하여 한때, “마을마다 사원이 있고, 마을마다 활불이 있다고 알려진 티벳의 활불은 20세기 초 1만여 명에서 현재 수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티벳인들에게 활불은 민족의 영혼을 상징하는 심장과 같은 존재이며, 페마 감독이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을 등장시킨 것은 티벳의 민족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티벳 불교에서 불세출의 전설적인 영웅에 대한 숭배와 출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는데, 성스러운 돌오색신전에서 쿤둔 왕자’, ‘랄롱 페도르를 등장시켜 이를 재현해내고 있다. 이와 같이, 페마 감독은 이러한 티벳스러움을 영화 속 모티브로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티벳인들의 염원과 삶에 들어 있는 우애, 평화, 단결, 정의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보여준다.

 

중국 5세대 황지엔신 감독은 이러한 티벳 소재의 영화는 우리들이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영화이다. 티벳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우리들의 감성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베이징영화학원 시에페이 교수는 페마 감독의 시나리오는 그가 티벳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둘째, 티벳인의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내러티브의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스러운 돌에서는 소년 라마승과 고향의 아버지, 늙은 개에서는 티벳 유목개를 팔려는 반항적인 아들과 이를 지키려는 아버지, 오색신전에는 신전대회의 가치보다는 승부에 집착하는 아들과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관계가 주축을 이룬다. 페마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속 가족관계는 불교적 가치관과 정신세계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형제와 모녀지간에도 그러한 자상하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전통문화와 정신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201411212차 인터뷰 중에서) 이러한 자상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이에 순응하고 스스로 깨우쳐 성장해나가는 아들과의 관계는 티벳인들의 전통적인 가족윤리를 보여주는 한편, 티벳인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이 어떻게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 영화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들이 TV를 시청하는 장면

 

 

셋째, 현대 문물의 범람 속에 충돌하고 소멸되는 안타까운 티벳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페마 감독은 서부대개발과 현대화로 대변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열풍 속에서 티벳인과 공동체가 어떠한 험난한 여정을 겪고 있으며, 또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페마 감독의 작품 속에는 티벳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성스러운 돌에서는 활불이 텔레비전과 VCD를 보는 것을 즐기고, 티벳 소년들은 새해맞이 쿤둔 왕자전통공연보다는 총과 폭력이 난무하는 홍콩액션영화를 더 보고싶어 한다. 늙은 개에서는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티벳 마을에서 티벳 유목개를 팔아서라도 돈을 벌려는 물질주의 가치관이 난무하고, 초원에서 유목을 하고 전통을 지키려는 노인들은 소외되고 밀려나 있다. 오색신전에서는 활쏘기대회의 가치관보다는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양궁을 사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서부대개발 열풍, 그리고 한족의 대량 이주는 티벳 커뮤니티의 변화와 해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를 미신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 국민교육은 전통 불교중심의 티벳 신정체제(神政體制體) 와해를 불러왔으며, 사회주의 현대화가 부른 물질주의 가치관은 우애, 단결, 자존감의 정신문화를 구가하던 티벳인들의 삶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늙은 개에서 표현하듯이, 중국 한족들의 티벳 지역으로의 대량 이주와 상업 정착은 티벳 공동체 해체를 초래하고 위협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략 800만 명 이상의 한족이 티벳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라싸의 경우, 13,000여 개의 상점과 호텔 중 티벳인이 운영하는 곳은 수백 개에 불과한 현실이다.

 

현재 티벳은 사회주의체제 대 불교체제, 현대화 개발 대 전통풍습 고수, 한족 중원문화 대 티벳 전통문화 존속, 물질주의 가치관 대 인간중심의 가치관이라는 대립과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페마 감독은 바로 이러한 시대와 지점에서 순수하고 자존감 높은 티벳 공동체와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영화 속에 담아냄으로써, 작금의 세태와 현실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페마 감독이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티벳인들의 고귀한 공동체문화와 가치관은 티벳 지역뿐 아니라, 중국을 넘어 인류보편적 가치관으로서 우리 시대의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페마 감독은 티벳이 직면한 정치적 주권문제, 한족화문제, 현대식 개발 문제, 물질주의 가치관의 범람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말하기방식, 무어화(無語話)’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페마 감독은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중국/티벳 사이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탈()정치적 영화이며, 사회성보다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풍격을 보여준다. 그저 티벳 전통풍습과 에피소드를 통해 그 속에 깃든 티벳 정신문화를 담담히 사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가장 강렬한 현실비판적 영화인 늙은 개에서조차 마지막 6분의 롱테이크 장면을 통해 대사 한 마디 없는 장면으로 마무리할 뿐이다.

 

페마 감독은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제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대신 티벳인들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삶과 인생관을 보여주면서, 말없는 외침을 던진다, “이 티벳과 티벳인들을 보라!” 역설적으로 그의 말하지 않는 외침이 우리 시대 티벳 문제에 대한 더욱 강렬한 도덕적 정치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⑥에서 계속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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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18.07.06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벳의 이야기가 많이 없는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티벳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라마가 환생한 사람으로 대대손손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굳게 믿고 있고요. 전생을 기억한다고 이야기하는 라마도 많이 있다고 하네요.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무형을 유형에 담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글에 담아 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2. chlgurwn33 2018.07.27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道, 無, 空, 해탈, 열반, 깨달음
    이러한 말이 무수히 많지만
    이러한 말은 한마디로 통틀어
    죄를 짓지 않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번뇌, 업(業), 죄를 짓지 않는
    계시종교의 완전함에 비한다면
    자연종교의 불완전함이 있기는 하지만
    인도는 힌두교나 불교나 윤회를 믿으니까
    불교는 힌두교 문화권에서 발생한 종교지만
    그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시’ 책 제4권 106번 155페이지에서
    예수님께서 “윤회는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시’ 책 제7권 221번 645페이지에서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오류라고 말씀하셨듯이
    또 영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말씀해주셨듯이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윤회 없는 공사상도 역시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4권 ‘106. 가나의 집에서’ 편 155페이지 16-24째 줄까지【“오! 유다야! 유다야! 너는 죄인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엄격하겠구나! 사람들도 그들이 한 생명과 또 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을 둘 다 서슴지 않고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두 생명을 가졌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아! 저는 선생님이 윤회(輪廻)를 암시하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두 가지 생명을 모두 위태롭게 한다. 만일 네가 하느님이라면, 본능 외에 이성을 타고난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겠느냐?”】, ‘154. 게라사에서 출발’ 편 602페이지 10째 줄에서 603페이지 25째 줄까지【“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이교도들이 믿는 영혼이 다른 육체에 환생한다는 이론을 확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딴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것도 설명해 주십시오.”
    “똑똑히 들어라. 너는 정신이 진리를 자발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로 그것이 우리가 여러 일생을 산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네가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고, 어떻게 죄를 지었고, 어떻게 벌을 받았는지를 알 만큼 넉넉히 배웠다. 동물적인 사람 안에 어떻게 유일한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합해졌는지 설명해 주었다. 영혼은 매번 창조되고 절대로 계속적인 화신(化身)을 위하여 이용되지 않는다. 이 확실성이 영혼들의 기억에 대해서 네가 단언한 것을 무효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하여도 그래야 할 것이다. 동물은 한번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다. 사람은 비록 한번밖에 나지 않지만 기억을 할 수 있다. 그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인 영혼으로 기억한다. 영혼은 어디서 오느냐? 사람의 영혼은 어느 영혼이나 말이다.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은 누구시냐? 지극히 지적이고, 지극히 능하신 완전한 영이시다. 영혼이라는 이 기묘한 것, 그분의 부성(父性)의 명백한 표로 사람에게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려고 창조하신 이것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 자신의 특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것을 창조하신 아버지처럼 지능이 있고, 신령하고, 자유롭고, 불멸의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의 생각에서 완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창조되는 순간에는 천분의 일순간 동안 첫사람의 영혼과 같다. 즉 공으로 받은 선물로 인하여 진리를 이해하는 완전한 존재이다. 천분의 일 그리고는 형성이 되고 나서는 원죄로 손상을 입는다. 네게 이것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시는 영혼을 가지고 계신데, 그 창조되는 존재는 나면서 지워지지 않는 표로 상처를 입는다고 말이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예, 영혼이 생각되는 동안은 완전합니다. 창조된 이 생각이 천분의 일순간. 그리고 생각이 사실로 나타나면, 그 사실은 죄로 인해 생긴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잘 대답했다. 그러므로 영혼은 사람의 육체에 결합할 때에 그의 신령한 존재 안에 그 비밀의 싹인 창조주신 존재, 즉 진리의 기억을 가지고 온다. 아기가 태어난다. 아기는 착하고 훌륭할 수도 있고 불성실할 수도 있다. 아기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그의 ‘기억’에 천사들의 임무는 빛을 비추어 주고, 덫을 놓고 다니는 자는 어두움을 던진다. 사람이 빛을 추구하고, 따라서 점점 더 큰 덕행들을 추구하여 영혼을 자기 전체 존재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 따라서 영혼 안에는 마치 그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가로질러 있는 장벽을 점점 얇게 만드는 것처럼 기억하는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덕행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느끼는 것이다. 반대되는 주장이나 치명적인 무지로 인하여 흐려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속해 있는 민족들에게 윤리적 지식의 글들을 공급할 만큼은 넉넉히 깨닫는다. 알아들었느냐?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느냐?”
    “예, 결론을 내리자면, 영웅적으로 실천한 덕행을 가진 종교는 영혼에 참 종교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소질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가서 쉬고 축복을 받아라. 어머니도, 또 너희 자매들과 여자제자들도. 하느님의 평화가 너희들의 휴식 위에 내리기를.”】,

  3. chlgurwn33 2018.07.2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7권 ‘221. 자캐오의 집에서 회개한 사람들과 같이’ 편 642페이지 18째 줄에서 646페이지 29째 줄까지【“도대체 무엇을 알고자 하오?”
    “저희들은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옛날 작가들이…. 그러나 저희들은 고대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짐승같은 인간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그걸 모릅니다. 영혼은 무었입니까? 혹 이성인가요?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왠고하니, 그렇다면 저희는 영혼이 없어야만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들은 영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영혼이라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면, 무형의 것이라고 하고 불사불멸의 것이라고 하는 영혼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과 더불어 끝나니까 불멸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죽은 다음에는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거 보시오. 영혼은 생각이 아니오. 영혼은 영이고, 생명의 무형의 근원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생명을 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그러나 참된 근원이오. 그것은 하도 숭고한 것이어서 아무리 강력한 생각도 그것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생각은 끝이 있소. 그러나 영혼은 비록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소. 더없이 행복하게 되거나 지옥에 떨어지거나 계속해서 존재하오. 그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거나 더럽게 했다가 다시 깨끗하게 해서,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그의 인성에 생명을 주라고 주셨던 대로 그분께 돌려드릴 줄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오.”
    “그렇지만 영혼이 우리들 안에 있습니까?, 또는 하느님의 눈처럼 우리들 위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소.”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갇혀 있군요? 노예로?”
    “아니오. 여왕으로 있소. 영원하신 분의 생각에는 영혼, 즉 영은 사람 안에, 사람이라고 불리는 창조된 동물 안에 군림하는 것이오. 영혼은 모든 왕중의 왕이시고, 모든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분에게서 왔고, 그분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 그분의 선물과 그분의 권리이며,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위대한 영원한 나라의 왕을 만들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난 다음 신(神)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시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집에서 ‘사는 사람’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으며, 영혼은 여왕으로,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소.
    그의 하녀들은 사람의 모든 덕행과 기능이고, 그의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하녀와 생도는 사람의 생각이오. 생각은 영으로 능력과 진리를 얻고, 정의와 지혜를 얻고, 훌륭한 완전에 올라갈 수가 있소. 영의 빛이 없는 생각에는 언제나 결함과 어두움이 있을 것이고, 절대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요. 과연 영혼의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하느님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그 진리들이 신비들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오. 세상을 떠나서 높은 곳으로 비약하면서, 완전한 지능, 완전한 능력,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성을 만나러 올라가고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지렛대의 받침점이 없으면 사람의 생각은 눈이 어둡고 얼이 빠질거요. 데메테스, 이것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항상 환전상만은 아니었으므로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선생님은 정말 예언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환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내리막길의 마지막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여왕이라면, 왜 군림하지 못하고, 사람의 나쁜 생각과 나쁜 육체를 굴복시키지 않습니까?”
    “굴복시키는 것은 자유도 공로도 아닐 것이고, 압제일 거요.”
    “그러나 생각과 육체는 자주 영혼을 괴롭힙니다. 이건 저와 저희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래서 영혼을 노예를 만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혼이 우리 안에 노예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고상한 ―선생님은 그것을 ‘하느님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이라고 정의하셨지요.― 것이 하등의 것에 의해서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영혼이 노예상태를 겪지 말라는 것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의 원수를 잊고 있소? 하등(下等)의 영들은 당신들도 알고 있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모두가 잔인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기억하면서 제가 이런 인간이 돼서 늙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것은 오직 지옥의 영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때의 길잃은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그 때처럼 깨끗하게 될 만큼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혹 뒤로 돌아 걸어가는 것이 허용됩니까?”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소. 당신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요. 흘러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진 않소. 흘러간 시간을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흘러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소. 그러나 그것은 필요하지 않소.

  4. chlgurwn33 2018.07.2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설을 아는 곳에서 왔소. 그것은 틀린 학설이오. 영혼들은 세상에 머무르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절대로 이 세상의 육체로는 돌아오지 않소. 어떤 동물 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그와 같이 초자연적인 것이 짐승 안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 안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만일 그 영혼이 여러 육체 안에 들어 있을 수 있었다면, 최후의 심판에서 육체가 영혼과 다시 결합한 다음에 어떻게 갚음을 받겠느냐 말이오. 그 학설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적인 생(生)을 누리며 계속해서 깨끗해지는 동안에 최후의 재생*(여기서「재생」(再生)이라고 번역한 것은 réincarnation, 즉 영혼이 다른 육체에 들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에서야 영혼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완전에 이르기 때문에 그 마지막 육체가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오. 이것은 오류이고 모욕이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한된 숫자의 영혼밖에 창조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고,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오. 또 사람을 하도 타락해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함으로 오류이고 사람에 대한 모욕이오. 사람은 곧 상을 받지 못하고, 백의 아흔 아홉은 죽은 다음에 깨끗하게 함을 거쳐야 할 거요.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기쁨을 준비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은 사람이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마지막 날 이후에 그의 육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거요. 사람은 그의 영혼을 위하여 육체를 하나밖에 가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한 생명밖에 가질 수가 없으며, 그를 낳아준 사람들이 만들어 준 육체와 그 육체에 생명을 주라고 창조주께서 창조해 주신 영혼을 가지고 상급을 받으러 갈 것이오.
    시간은 뒤로 거슬러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생*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 그러나 자유로운 의지의 충동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허락되오. 그렇소. 하느님께서는 이 의지에 강복하시고 그것을 도와 주시오. 당신들은 모두가 이 의지를 가졌었소. 그러니까 죄인이고 악습에 젖고, 더럽혀지고, 사악하고, 도둑질 하고, 타락하고, 타락시키고, 살인자이고, 독성자(凟聖者)이고, 간통자인 사람이 뉘우침의 목욕을 하고 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마치 자신의 죄를 갚고자 하는 의지가 그 속에 어떤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병적인 껍질을 산(酸)이 침식해서 부수어 놓는 것과 같이 묵은 사람의 타락한 본질을 부수고, 한층 더 타락한 정신적인 자아를 흩어버리고, 다시 건강하게 되어 새로운 생각과 깨끗하고 좋고 어린애다운 새 옷으로 꾸며진 자신의 깨끗해진 영을 드러내 좋소. 오!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다시 만들어진 영혼을 훌륭하게 덮어 그를 완성된 거룩함인 그의 초월적인 창조에까지 지키고 도와 줄 수 있는 옷이오. 그 완성된 거룩함이 내일에는 ―인간적인 정신과 인간적인 시간의 단위로 보면 먼 장래이겠지만, 영원의 생각으로 보면 매우 가까운 내일―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러울 것이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 안에 어린 날의 깨끗했던 어린 아이를 다시 만들 수 있소. 어머니가 가슴에 껴안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하느님의 천사가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바라보시던 다정스럽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착하던 어린 아이를 말이오. 당신들의 어머니들! 그 어머니들은 어쩌면 덕행을 많이 가진 여인들이었는지 모르오…. 하느님께서는 그 어머니들의 덕행에 상급을 주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으실 거요. 그러므로 모든 덕행있는 사람을 위하여 오직 한 가지, 즉 착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나라만이 있을 때, 그 어머니들과 같이 있게 같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오. 혹 어머니들이 좋지 않아서 당신들의 파멸에 이바지했을 수도 있소. 그러나 그 어머니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신들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 사랑이 없는 것으로 인해서 당신들이 나쁘게 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들을 거두어들인 지금, 당신들은 거룩하게 되어서, 천상의 기쁨 속에서 어떤 사랑도 초월하는 사랑을 누리도록 하시오.
    다른 것 물어볼 것이 있소?”
    “없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영혼」: 구약성경 총141절 + 신약성경 총17절 = 구, 신약 총158절 참조.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페마 체덴의 티벳영화

 

 

 페마 감독은 2002년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첫 단편영화 성스러운 돌(靜靜的嘛呢石)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가 베이징영화학원 진수생 1년차일 때, 방학 과제물로 자신의 고향에서 영화를 찍어 오라고 하여 단편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이 영화는 2005년 그의 첫 장편영화인 성스러운 돌의 원형이 된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 인물관계 구성은 장편영화에 그대로 차용되었으며, 티벳어를 사용하고 티벳문화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 그리고 다큐멘터리적 객관적 카메라 스타일은 이후 장편영화의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2004년에는 35mm 컬러필름을 사용한 단편영화 초원(草原, TheGrassland)을 연출하였다. 이 영화는 방생한 양을 잃어버린 어머니와 아들이 야크를 타고 메이롱초원으로 떠나는 여정을 다룬 21분짜리 단편영화이다. 이 영화는 티벳 초원을 배경으로 티벳인들의 인생관과 사람관계, 그리고 자연에 대한 태도 등을 담담한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드러낸다.

 

  2005년에는 고대 티벳 지역에서 하늘에 날씨를 비는 주술 종교인 방백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최후의 방박사(最後的防雹師)를 연출했다. 페마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세 살에 단편영화로 연출을 시작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곧바로 중국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신예감독이 되었다. 소수민족인 티벳인으로서 자신의 고향 티벳을 배경으로 티벳문화를 표현하는 그의 예술성에 대해 중국문화계 전체가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2005년에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성스러운 돌이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티벳 감독과 티벳 영화 스태프들이 스스로 티벳의 문화를 티벳어로 제작한 최초의 장편영화라 평가받고 있다.

 

 

 

▲〈성스러운 돌(静静的嘛呢石)〉영화 포스터

 

 

 “성스러운 돌은 중국영화사 100년 중에서 티벳감독이 연출한 최초의 본토영화이며, 최초의 티벳문화를 반영한 영화이다”, 티벳 소년 라마승의 눈을 통해 사회주의 현대화 바람이 부는 90년대 초 티벳 농촌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공동체문화를 표현하였다. 이 영화로 중국 국내에서는 2006년 제9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아시아신인상’, 25회 중국금계장 신인감독상등을 수상했으며, 해외에서도 제24회 캐나다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특별상 부문에 초청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두 번째 장편영화 쿤둔(즈메이겅덩)을 찾아서(尋找智美更登, Soul Searching)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고, 다큐멘터리 가타대법회(嘎陀大法會), 상야사(桑耶寺)를 연출했다. 그의 두번째 장편영화인 쿤둔을 찾아서는 티벳의 전설 속의 왕자인 쿤둔(즈메이겅덩 왕자, Drime Kunden) 공연을 위해 일어난 일화를 다룬 110분짜리 장편영화이다. 쿤둔은 티벳민족의 전설 속의 왕자이며, 티벳민족의 대표적인 민족연극의 주요 소재이다.

 

 페마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첫번째 영화 성스러운 돌을 찍을 때, 티벳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어떤 감정이 일어났다. 티벳 전통문화와 불교정신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쿤둔에서는 곳곳에서 사라져가는 티벳 전통문화와 불교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영화는 암도 지방의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속에는 감독의 영화스타일이 된 고정된 카메라와 풀쇼트(full shot)를 사용한 롱테이크 기법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영화 속 배우들은 모두 티벳 출신들이고, 티벳 마을을 배경으로 티벳어로 제작된 영화이다.

 

 

 

2008년 티벳 독립 시위 현장

 

쿤둔을 찾아서가 상영되던 시기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티벳 지역에서 1959년 이래 최대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베이징올릭픽 개최로 중국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인도 임시정부와 티벳지역에서 1950310일 인도 망명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314일부터 18일까지 티벳자치구 라싸시를 중심으로 쓰촨성과 칭하이성 일대에서 라마승을 중심으로 대다수 지식인과 민중들이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2008310일 티벳 망명청년조직인 티벳청년회의(TYC: Tibet Youth Congress)’가 주축이 되어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벳까지 걸어가겠다는 대장정시위가 일어났다. 라싸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300여 명의 승려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314일을 기점으로 티벳 전역에서 대규모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민간인 18명과 경찰 2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인도 임시정부에서는 140여 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승려 600여 명이 군수송기로 강제이송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티벳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의 내정이며 조국 통일문제라 주장했다. 한 티벳 영화인의 증언에 의하면, “이 시기를 전후해서 국제영화제의 그의 이름을 중국식 발음인 완마 차이단(Wanma Caidan)에서 페마 체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2009년에는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 나팔바지 휘날리던 1983(喇叭袴飄蕩在1983, Flares wafting ln 1983)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1983년 개혁개방 초기 나팔바지와 디스코춤이 유행하는 시골 마을과 청년들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복고풍의 작품이다. 페마 감독은 연출만을 맡았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중국어로 된 영화이다. 페마 감독에 따르면, “중앙방송 영화채널에서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내 연출을 부탁해서 만든 영화이다. 평소 시나리오와 연출을 도맡아온 감독의 제작 성향과 티벳어 영화를 고집해온 역정에 비춰본다면, 이 영화는 페마 감독의 작가주의 영화목록에 넣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늙은 개(老狗, Old Dog)〉포스터

 

 2011년에는 그의 네 번째 장편영화인 늙은 개(老狗, Old Dog)를 연출했다. 이 작품에서 페마 감독은 물질주의 가치관과 한족 문화 유입이 티벳 농촌에 침투하여 황폐화되고 있는 티벳 공동체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시기의 티벳지역은 2008314 독립시위 이후 티벳인 라마승과 지식인들에 대한 체포가 늘어났고, 중국 정부의 정신교육 강화와 통제가 심화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이러한 티벳지역의 시대적 분위기가 강하게 들어 있다.

 

 이후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페마 감독은 2014년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인 오색신전(五彩神箭, The Sacred Arrow)을 연출하였다. 티벳 전통민속행사인 활쏘기 시합을 둘러싼 티벳 마을 청년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2015년에는 <타를로(塔洛,Tharlo)>를 연출했다. 티벳인으로 티벳어를 사용하는 티벳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은, 이번에도 흑백의 화면과 롱테이크 속에 도시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티벳인들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사실적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었다.

 

 이와 같이, 페마 감독은 2편의 단편영화, 3편의 다큐멘터리, 6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중 나팔바지 휘말리던 1983을 제외한 모든 영화가 티벳 마을을 배경으로 티벳 배우들이 출연하여, 티벳 문화를 다루고 있는, 티벳어 영화라는 점에서, 중국영화 지형 내에서 티벳영화라는 매우 독특한 로컬영화의 영역을 개척해온 독립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티벳인 스스로 자신들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페마감독은 사회주의정부 수립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첫 번째 티벳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티벳 간의 정치적 주권문제라는 문화정치학적 외부상황과 중첩되면서 국제적으로 이례적인 주목을 받는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⑤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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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①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중국영화’, 혹은 ‘티벳영화’라는 이중적 속성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 페마 체덴(혹은, 완마차이단) 에 대한 작품을 소개하고 그의 ‘티벳영화’에 대한 사회맥락적(context) 의미를 분석하여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티벳영화’란, 영화 제작의 주체로서 티벳인들이 티벳 지역을 영화 속 배경으로, 티벳인들의 문화, 가치관, 문화정체을 스스로 재현하는, 티벳어로 만들어진 영화로 정의할 수 있다. ‘티벳(Tibet)’은 지리적으로는 현재 중국 영토인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칭하이(靑海)성, 쓰촨(四川)성 일대에 살고 있는 티벳인들의 거주 지역을 총칭하는 말이다. 티벳은 지금의 서장자치구라 불리우는 티벳 고원 지역에 대부분 집중 거주하고 있으며, 칭하이(靑海), 쓰촨(四川), 깐쑤(甘肅), 윈난(澐南) 등에 분산 거주하고 있다. 티벳 고원지대의 정식 행정명은 서장자치구이며, 동쪽으로 쓰촨성, 남동쪽으로는 칭하이성, 북서쪽으로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 남쪽으로는 인도, 네팔, 부탄,미얀마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문화정체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티벳영화’라는 명명(命名)은 중 국 내 특정한 지역을 일컫는 로컬(local)영화의 호칭으로서는 유효한 명제이지만, 이를 국적 개념으로 환원한다면 중국-티벳 사이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 문제와 중첩되면서 복잡한 문화정치학적 개념 정의가 요구된다. 티벳은 현재 민족국가 수립을 하지 못한 ‘조국 없는 디아스 포라(statesless diaspora)’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적으로 ‘티벳영화’를 정의하자면, 현재 티벳은 실정법상 중국의 영토이므로 명백한 ‘중국영화’이며, ‘중국영화’의 하위개념이자 로컬영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적에 입각하여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해본다면 ‘중국’과 ‘티벳’이라는 수직적 복속관계로는 쉽게 환치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티벳은 9세기 토번 왕국이 몰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천 년이 넘도록 독립적인 국가를 세운 적은 없다. 그렇지만 티벳 특유의 고립된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문화정체성과 민족성을 유지해왔다. 토번(吐藩, 630~842년) 시대에는 통일된 왕조가 건립되어 국가정체성이 확립되었다. 특히, 송첸 감포(Srong-Btsan-Sgan-Po, 618649)왕이 집권하면서는 수도를 현재의 라싸(Lhasa)로 옮기고, 티벳문자를 제창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이 시기 세력이 확장되자 당 태종은 문성(文成) 공주를 시집보내고, 네팔에서는 티춘(Khri Btsun) 공주가 시집오면서 불교가 유입되었고, 그때 세운 소조사(小照寺)가 지금도 라싸 포탈라궁 옆에 남아 있다. 두 왕비의 불교 헌신에 힘입어 불교는 적극 권장되었고 전통 토착 무속신앙인 뵌뽀교가 결합된 독특한 티벳불교의 기초가 정초되었다. 토번(吐藩)국의 ‘번’의 어원은 티벳 고대 무속 신앙 뵌뽀교의 ‘뵌(Bon)’에서 나왔다고 한다. 티벳불교는 인도 후기불교의 하나인 밀종과 티벳 토착종교인 뵌교가 결합하여 형성된 특수한 종교이며, 보통은 ‘라마교’라 부른다.

 

  토번 왕조 몰락 이후에는 호족들과 티벳불교가 결합된 정교합일(政敎合一) 체제라는 독특한 정치지배질서를 갖춰왔다. 몽골과 원나라의 세력이 밀려오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을 티벳불교로 개종시키고 “종교적 스승과 정치적 후원자(religious teacher and political suppter, 帝師關係)”라는 독특한 정치적 관계를 맺어왔다. 티벳에서는 이러한 특수관계를 정치적 예속관계로 보지 않고, 종교 중심의 공시(供施)관계로 본다. 이러한 신정체제는 청나라 옹정제 이 후에는 암반(amban, 만주족 언어로 대신이라는 뜻)이라는 관료를 상주시키게 함으로써 티벳은 청나라의 직접 보호령 아래 들어간다. 티벳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원청(元淸)과의 관계는 밀착된 반면에, 상대적으로 한족 국가와의 관계는 미약한 관계를 유지하는 전통을 보여왔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원인을 북방이민족인 몽골, 만주족과의 문화친연성과 종교적 밀착관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몽골 초원과 티벳 고원과 중국 서부 간쑤, 칭하이, 신장 일대에 이르는 지역은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동일한 생활양식을 공유한 ‘반월형 문화벨트’ 지역이었다고 지적한다.

 

  청 말에 이르러, 1890년에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티벳에 진출하였고, 1904년 영국군이 라싸를 강제 침략하기도 했지만, 1908년 ‘중・영 협약’을 통해 티벳의 영토적 주권이 중국에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티벳은 1913년 ‘티벳협약’을 통해 독립국가를 선포하고 내각을 구성하여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장제스의 국민당정부에 의해 중국 관할로 편입되었고, 다시 1947년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1949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에는 1950년 티벳을 무력으로 장악하였고, 1951년에는 중국과 티벳 사이에 ‘17개 조항’ 협약을 맺어, 군사 및 외교권을 포기하고, 대신 민족자치권과 종교적 자유를 보장받는 선에서 중국/티벳 관계가 합의되었다. 이후 민족자치권 문제를 놓고 중국 중앙정부와 줄곧 대립하다가 1959년 제14대 달라이가 인도로 망명을 하였고, 지금의 인도 다람살라 티벳 임시정부(The Government of Tibet in Exile)를 구성했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티벳문제를 주권문제가 아닌 자국의 통일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티벳 임시정부는 신정(神政)을 바탕으로 하는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1987년 달라이가 미국 의회연설 이후 평화 5조안을 발표하면서 티벳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1989년에는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티벳의 독립문제는 전 세계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종교관과 중화민족단결을 주장하는 중국 정부와 신정 자치권을 주장하는 티벳 임시정부 사이에는 합의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에서 볼 때 티벳의 신정체제는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정치체제로 여겨질 수 있으며, 특히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과의 중화민족단결을 국체로 내건 중앙 정부로서는 완전한 신정체제로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티벳 임시정부의 요구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에 대항하기 위해 아미타불의 환생으로 달라이 라마 다음의 영적 세속적 권위를 인정받는 제11대 판첸라마를 베이징에 억류하고, 중국 측이 새로 옹립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보여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 정부의 사회주의 현대화 정책과 서부대개발(西部大開發) 정책은 티벳 전통문화의 해체와 급속한 한족화(漢族化)를 초래하였고, 2008년에는 티벳 라싸 지역과 쓰촨성을 중심으로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한 3월 14일 이른바 ‘3・14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중국/티벳 간의 주권관계를 고려할 때, ‘티벳영화’라는 기표는 문화정치학적으로 문제적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티벳영화’라는 개념은 ‘중국영화’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하는 중국 내 소수민족영화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알 수 있는 독립 투쟁과 분규, 특히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달라이 라마와 임시정부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티벳영화’를 ‘중국영화’ 안에 포함하는 것이 어딘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티벳영화’를 ‘중국영화’이라는 국적 안에 귀속시켜 소수민족의 다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아니면 문화정체성과 주권투쟁에 근거하여 별개의 ‘티벳영화’로 분류해야 할지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티벳영화’는 국적으로는 하나이지만 문화정체성으로는 중국/티벳이라는 이중신분을 가진 특수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②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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