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내일은 세월호가 침몰한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유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202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부터 10년 뒤를 상상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점심식사를 그린 「점심의 종류」 입니다.


"이걸 밥이라고 먹어?" 

힐난인지 걱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투다. 

힐난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하겠지.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푹 뜬다. 그래. 이건 밥이 아니다. 

영애는 밥 아닌 밥을 입에 넣는다. 

밥과 장아찌를 씹는 입 저쪽, 어금니 하나가 시큰거린다. 

어쩌다 밥알이 푹 빠지기도 하는 그 어금니는 

썩어 뿌리만 남아 주기적으로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치통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발뒤꿈치에 두툼하게 앉은 각질이라든가, 

큐티클이 자라는 손톱, 수북한 겨드랑이 털 같은 것들처럼, 

치통이 올 때마다 영애는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십 년째 치통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치통과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주인공 '영애'가 먹는 것은 "노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밥", 

"시큼한 냄새"가 나는 시장에서 산 김치, 곰팡이가 핀 무장아찌입니다. 

이런 밥 아닌 밥을 입안에 욱여넣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여동생은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을 주문합니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 

음식은 이제 머릿속에 저장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미가 마음속에 있는 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을 넣으면 속에 있던 유미가 그것을 몽땅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 (…) 

영애는 유미가 먹지 못하게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유미가 싫어하던 것만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다. 

어디에 있니? 

점심은 뭘 먹니? 

매일 주고받던 말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뒤라면 모를까.

-조명숙, 점심의 종류


세월호 1주기가 조금 지나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서, 

조명숙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상 속에서는 어느 평범한 아줌마로 살면서도, 작가로서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였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서울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광화문에 안 갔어요. 안 갔다고 해야 하나, 못 갔다고 해야 하나 헷갈리지만... 제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깊이 공감하고 혼자 막 눈물도 흘리는데 실제로 행동은 안되더라고요.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고 힘들어 하고 있을 무렵에 저 역시도 어린 생명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편안하게 보냈잖아. 그 바다를 보면서 보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마음이... 어떨까" 이후에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과 몇몇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들을 보며서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모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

제 스스로는 「점심의 종류가 작위적인 부분이 많아서 (세월호) 유족 분들한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느꼈던 분노, 모멸감을 느끼면서 '아직도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가?'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 날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시던 작가님의 모습, 

그리고 함께 눈물 흘렸던 독자분들이 기억납니다.



그때 그 바다의 현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이백 명의 승선객 중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었고,

시신으로 건진 사람이 또 일흔일곱이었다.

나머지 마흔여섯은

마흔여섯 날을 두 번이나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 세상을 떠난 생명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바다. 회한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미를 담그고 있는 바다에 간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딸을 잃은 뒤 '영애'는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지만

가끔 바다에 갑니다. 바다에 가는 것을 

이제는 소리도, 냄새도, 움직임도 느낄 수 없는 딸에게 가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부산입니다. 

이곳에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 평론선 12


은유를 넘어서

구모룡 평론집


수사의 은유를 넘어서, 시를 이해하는 진정한 길


대중들이 시에 다가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요즈음, 수많은 문학용어와 낯선 문학기호를 통해 그 어려움이 배가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시와 문학에 대한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지금에도 시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문학의 모든 장르와 인문학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이에 다양한 평문과 비평을 통해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시적 지향에 대해 살피고자 시 평론집 『은유를 넘어서』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은유로서의 ‘시’가 아닌, 은유의 도서관을 나와 현실 지향적인 구체성을 획득한 시학을 개진하고 있다. 특히 최영철 시인의 시학을 평한 평론 ‘은유를 넘어서’가 표제로 등장해, 최 시인의 시 세계가 언어를 세계로 연결하는 것에서 그치는 ‘은유’를 넘어 일상적인 어법으로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서정시학을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말 가혹한 과업입니다.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는 것, 시와 잘 노는 것, 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와 그 도구인 언어를 잘 가지고 노는 것, 잃었던 흥을 되살리는 것, 우리말의 묘미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시인의 고통스러운 과업입니다.”/ 배한봉과의 대담에서 최영철이 한 진술인데 시인의 시쓰기에 대하여 매우 적절한 해명이 아닌가 한다. 그가 말한 “가혹한 과업”은 ‘범속한 트임’의 필연이다. 나는 이러한 최영철의 시적 성취를 “은유 넘기”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_「은유를 넘어서-최영철론」, 274-275쪽.



수사의 은유를 넘어서, 시를 이해하는 진정한 길


저자는 시적 경험을 형성하는 것은 주체와 언어 그리고 세계라 말하며, 오늘날 시 속에 내재된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른바 ‘극서정시’와 ‘미래파’ 논쟁이 그것인데, 소통불능의 과소비적 시들에 대해서 서정시 본연의 절제와 여백을 활용하고자 등장한 ‘극서정시’와 더불어 과잉된 수사와 난해한 독백과 해체로 가득한 ‘미래파’ 시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미래파’ 시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시를 쓰고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함께 새로이 나타난 한국 현대시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이들 두 흐름이 갖춰야 할 시의 본질은 ‘타자와의 공명’이자 ‘소통’에 있다며 시적 주체와 언어 세계가 만나 빚는 상호작용과 변증법을 모색함과 동시에, 시인의 표현이 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와 세계의 지평에 가닿는 작업이 중요하다 말하고 있다.



그들만의 성채에 갇힌 시와 시인을 구하라!


오늘날 ‘시라는 제도’ 안에서 ‘시인이라는 위신’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은데, 저자는 소수 시인들에 한정하여 작품을 엄선하는 종합문학지와 달리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싣고 있는 시전문지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저자는 시인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는 시가 아닌, 타자와 공명하는 시적 지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시인의 관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업이 시쓰기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힘든 창조적 반복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지평을 개진하는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명인의 시 「문장들」을 예시하며 “길 위에 서 있는 존재”인 시인들의 숙명, 즉 “힘겹게 부재의 언어, 침묵의 문장을 얻는” 시작 행위와 “지금-여기의 삶이 지닌 허위와 진실”을 드러내는 시쓰기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 시인의 시적 지평은 시행착오와 도로(徒勞)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방황과 반복은 시인의 숙명이다. 그는 시를 만나기 위해 길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는 부재와 현전 사이에서 요동하면서 힘겹게 부재의 언어, 침묵의 문장을 얻는다. 물론 이러한 규정에 대하여 지나친 엄숙주의라고 반발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를 편지나 광고 카피와 같은 소통의 한 형식으로 보자는 실용주의적 견해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사물에 대한 내적 생명의 감각을 누가 표현하며 교환가치로 메말라가는 현실에 누가 제동을 걸 것인가. 시인은 개별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적 지평을 통하여 지금-여기의 삶이 지닌 허위와 진실을 드러내어야 한다. _「시를 만나는 기쁨」, 25쪽.


시를 만나는 기쁨을 논한다


누구나 시인의 생동하는 시어들을 만나며 공감하던 뜻깊은 순간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가 주는 오롯하고 빛나는 감정들이 우리의 삶을 깨우치는 일은, 오늘날 세속화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느새 찾기 힘든 경험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시를 만난다는 것은 시인이 감각하는 세계와의 경험을 또 다시 경험하게 해주는 삶의 독특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참다운 시를 만나는 것이란 소박한 삶의 국면을 들추어냄으로써 시인의 살아 있는 감각을 느끼는 기쁨이 된다. 저자는 시의 줄어든 위상에도 시적인 것을 찾아 온몸을 기투하는 시인들의 시들을 “사랑과 현대성”, “존재와 타자의 지평”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난파하는 세상과 시인의 눈물: 세월호 이후의 문학


세상의 시적 진실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존재가 바로 예술가(시인)라 할 때,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가장 먼저 감각하며 표현한 것도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재난 이후의 공허한 처방보다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려 한 최영철 시인의 「난파 2014」, 「기억하자 이 비겁을」과 제 아이를 잃은 심정으로 애도시를 써내려가며 페이스북에 시편들을 발표한 나해철 시인의 「세월호 규명시 266」를 비롯해 그간 많은 시인들이 재난 이후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애도의 대열에 합류해왔다. 1980년대 광주 민주항쟁과 이를 탄압하기 위해 자행된 국가폭력 속 죄의식이 1980년대 한국 문학인들에게 자리하고 있었다면, 이제 다시 반복되는 우리 시대의 원죄 ‘세월호 참사’가 다시금 1980년대의 죄의식으로 시인들을 불러내고 있다. 구모룡 평론가는 시인들이 발화하는 어떠한 애도도 유가족의 슬픔을 치유할 수 없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가 불러일으키는 완전히 새로운 삶”(롤랑 바르트)―비타 노바를 위한 시인들의 역할과 책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저자 : 구모룡(具謨龍)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되었고 그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박사학위논문은 「한국 근대 문학유기론의 담론분석적 연구」(1992)이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지성사, 동아시아 미학, 문화연구 등을 가르치면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세계관과 형식』,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예술과 생활-김동석문학전집』(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을 출간하였다. 현재 제유(synecdoche)의 수사학으로 동아시아 시론과 미학을 설명하는 저술을 준비하는 한편, 새로운 시론과 평전 쓰기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은유를 넘어서 | 산지니 평론선 12

구모룡 지음 | 문학 | 신국판 | 350쪽 | 25,000원

2015년 5월 29일 출간 | ISBN : 978-89-6545-298-0 03810

산지니 평론선 12권. 구모룡 평론집. 은유로서의 '시'가 아닌, 은유의 도서관을 나와 현실 지향적인 구체성을 획득한 시학을 개진한다. 특히 최영철 시인의 시학을 평한 평론 '은유를 넘어서'가 표제로 등장해, 최 시인의 시 세계가 언어를 세계로 연결하는 것에서 그치는 '은유'를 넘어 일상적인 어법으로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서정시학을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차례

더보기



은유를 넘어서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중견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조금씩 도둑』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작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품들인 가정과 국가 폭력, 친구와 연인, 그리고 예술 안에서 조명숙 소설 속 인물들의 어두운 삶의 파편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 우물물 길어올리듯 상처의 흔적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집 『조금씩 도둑』에서 독자들은 작가 조명숙이 들려주는 생의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일상에 잠복해 있는 현실의 그 ‘리얼’한 재생

글은 기교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아마도 이 작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_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집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이끌고 있는 여럿 인물들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10년 이후의 유가족의 슬픔을 재현한 「점심의 종류」에서부터,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조명숙 소설이 갖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소설이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때, 현대사회의 병리를 짚는 것도 소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소설은 수록작 「하하네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지망생 ‘유’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글쓰기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물과 사람과 시간 같은 것’에 예민하려 했지만 결국 그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인 ‘하하네이션’ 내에 있는 현실의 비극에 둔감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라고 되묻는다. 




딸을 잃은 세월호 그 사건 이후, 십 년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_「점심의 종류」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통탄할 사건은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기가 된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아픔과 보상금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세월호 문제는, 인양을 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달라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공식 요청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국민여론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시점이다. 조명숙의 단편 「점심의 종류」은 사건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영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하며 서술되는데, ‘영애’는 6·25 전쟁으로 평화롭던 가족의 균열을 보이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다시금 고통을 받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도 도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결국 ‘영애’의 동생 ‘영미’마저 이민을 떠나고, 대한민국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구원을 받기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이다.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낸 네 마음

서른두셋쯤의 나이, 띠띠와 피융이 지나온 나이의 그들이 거기 있었다. 워커를 신은 피융이 손을 내밀었고, 스카프를 두른 띠띠가 그 손을 잡았다. 탁자 아래서 그들의 무릎이 어깨처럼 조심스럽게 부딪쳤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띠띠는 분명히 느꼈다.

“피융과 나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서늘하고 메마른 혼잣말이 피융이라는 이름이 뚫어 놓은 구멍을 빠져나갔다. 잔영만 남은 여러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런 때가 있었다.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네 번이었는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 마침내 피융이 오면 띠띠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손을 잡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피융의 눈은 얼마나 까맣고 초롱했던지. 띠띠는 재생하고 싶은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_「조금씩 도둑」 중에서

열여섯 무렵, 용희, 선경, 영미 대신에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다짐하던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로 한 나이가 되기까지의 상처 입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는 표제작 「조금씩 도둑」은 과장된 시선이 아닌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냈다. 꿈 많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절수술에 후유증까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는 셋의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이 난다. 더욱이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국 친구였던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만 ‘띠띠’의 마음이 애달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수긍하기로” 하면서 띠띠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은 여자로 버텨냈다. 자궁을 축출한 여자가 매번 해바라기 씨를 주문하며 오지 않는 택배기사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월」과,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나비의 저녁」 또한 상실을 겪은 여성의 삶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생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환상의 기록으로서의 소설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달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섯 달에서 두 달을 더 산 막내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병원에 옮겨졌다. 막내가 숨을 거두던 날에도, 세 오빠들이 침울함을 가누지 못한 채로 화장장에 다녀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새벽을 달렸다. 아버지의 달리기는 막내가 죽은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막내가 폐암이라는 말을 꺼낸 날 갑작스럽게 달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집에서 두 블록 지난 파출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비명을 삼킨 것도 그날 밤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 _「러닝 맨」 중에서

특유의 감수성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조명숙의 소설은 「이치로와 한나절」과 「러닝 맨」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덧붙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성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사건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묘사한 뒤, 이를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발함을 보인다. 자기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자살을 해버린 친구 청수, 그리고 눈과 귀와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타난 원숭이와 보낸 한나절의 기록을 조명숙은 소설 속에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온 원숭이는 환각이나 환상일 테지만 결국 엄마와 청수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나’의 마음이 담긴 ‘일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족사의 곡절과 함께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그려낸 「러닝 맨」 또한, 자식의 환상 속에서 달리는 아버지의 서사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환상의 서사들 속에서, 독자는 조명숙 소설이 드러내는 삶의 보편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차례

더보기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