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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5 함께 읽는 시의 느낌 :: 구덕도서관 최영철 시인 초청 강연회

해가 쨍쨍했던 목요일 (6/4), 구덕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앞마당에는 폐백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도서관을 두르는 울타리 건너편으로는 숲으로 난 산책길이 보이는 곳.

나무그늘 아래 책 읽기 좋은 

아담한 '동네 도서관' 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구경/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이 날 제가 도서관에 간 건

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올해의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


최영철 선생님은 시가 오늘날에는 소수자의, 변방의 장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80년대에는 문창과 학생들 대부분이 시를 쓰는 이들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은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쓸모와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지금, 시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의 속성 때문에

최영철 시인은 "그래도 시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고 하십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시를 한 편 나누기로 합니다. 

선생님께서 낭독하실 테니, 저희 참석자들은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시를 눈으로 읽다가 소리내어 말하고 들으면 다르듯이, 

써보는 것도 느낌이 새롭습니다.


    첫사랑 

              -이우걸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 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3장 6구로 이루어지는 시조에서는, 마지막 두 구가 클라이막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이 그리는 풍경은 뜨겁기는커녕 오히려 심심합니다.

최영철 시인은 청산유수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 순간을 추억하는 시를 함께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익숙하고 훈련된 것이 아니라 

낯설고 처음인 것마냥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고 꽃이지만, 시인은 그 꽃을 매번 새롭게 봅니다.

"수없이 마음을 뺏기는" 사람이 시인인 것입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라"

최영철 선생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수영 사적공원의 곰솔나무


시인은 표제작인 <금정산을 보냈다> 이야기를 꺼내시며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요르단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아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인들은 사실 엄청난 부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빈손이어야 삼라만상이 자기에게 안깁니다. 

좋은 차 타고 흙길 밟지 않는 사람에게는 들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세요." 라는 제안을 하실 때에는

선생님이 오래 사시던 수영에 있는 

사적공원의 푸조나무에 대한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잎-푸조나무 아래


동반 강사로 자리해주신 조명숙 소설가님!


최영철 시인의 짧은 강연이 끝난 뒤, 

조명숙 소설가의 진행으로

시를 함께 읽고, 읽은 시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표제작 <금정산을 보냈다>를 참가자 분의 낭독으로 함께 읽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 이 시의 주제는 부모의 사랑입니까? 시가 너무 어렵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시는 평소에 쓰는 말로 쓰여져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데요.

답: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시입니다. 이것은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몰라야 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시를 이해할 수 있나요?

답: 시의 관문은 이해가 아닙니다. 이해는 서사적입니다. 시는 공감의 예술입니다. 또, 시는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걸 볼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없는가'하지 마시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이해의 통로로 접근하기보다, 느낌을 주는 시를 찾아 읽으시길 바랍니다. 



번외 질문: 시집 뒤에 실린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들꽃을 만지실 때도 꼭 "만져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 만지신다 읽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답: 네, 정말 그렇습니다. 물어봐야 되요. 꽃을 만져보면 꽃이 부끄러워서 몸도 비틀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게 시심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강연회를 마치고 나오니 구덕도서관의 얼굴마담이라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반갑게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시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