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지은이:



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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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지 소설집

내 안의 강물




“내 강은 언제나 꽃이 만발해 있어.”

 결핍된 가족구조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한 연인의 초상

문학이 상처 혹은 기억의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을 그 궁극으로 삼는 것이라 할 때 김일지 소설이 지닌 의미는 심대하다. 김일지는 가족에게 상처받은 근원적인 상처, 우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를 호출하여 무대에 세웠다. _정미숙(문학평론가)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중견소설가 김일지의 신작 소설집 『내 안의 강물』이 출간되었다. 『타란툴라』 이후 8년 만에 출간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정서적 결핍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가족의 유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그린 김일지의 『내 안의 강물』. 각기 다른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처 입은 과거와 조우하게 하면서, 불안한 현재를 넘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떠도는 섬 같은 현대인의 모습

우리는 6년을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수연이라는 동생이 있고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 할머니가 우리를 키웠다는 것, 그런 테두리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어머니도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나 또한 그의 가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어머니가 없다는 것, 부자인 아버지가 있다는 것, 그 외에는 일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둘 다 뿌리 없이 떠도는 섬 같은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_「내 안의 강물」, 115쪽.


중편 「내 안의 강물」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6년간 동거하는 한 연인의 삶을 교차하여 그려내고 있다. 동거 형태의 불확실한 사랑 속에서 흔들리는 여자(연이)와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가는 남자(준규)의 상처와 고민, 변화의 양상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이다. 두 주인공은 오랜 기간 함께 살아왔지만 서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깊은 정을 통하는 연인일지라도, 내면의 상처를 보여줄 수 없는 현대인들의 취약한 관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은 연이가 수술을 위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계기로 관계가 보다 끈끈해진다. 그러나 어머니의 학대를 겪었던 연이와 기혼자였던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준규는 각기 다른 상처를 서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들 마음의 생채기는 결코 봉합되지 못한다.


불안의 궤적을 그리다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현실을 잊는 알콜중독자 ‘성재’(「거머리」),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만 같은 누나에게 학원비와 용돈을 지원받으면서 늦은 나이에 춤에 빠져든 ‘나’(「나비」), 여덟 살 연하의 20대 남자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 여자(「동거」),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과거와는 달라진 삶을 살아가는 두 여고 동창생(「지금처럼 되기 전에」) 등 표제작 이외의 단편 속 주인공들 또한 불안한 현재를 걷고 있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정미숙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김일지의 소설은 인물들이 취한 불안의 궤적을 따르며 (…) 가파른 현실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는 인물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린, ‘불안’의 시학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못한 현실에 맞서 그들이 보이는 것은 우울의 정서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김일지의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내놓은 ‘희망’의 정서이다. 정신병동에서 일기를 쓰면서 치료 의지를 밝히거나(「거머리」) 거울을 다시 보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나비」)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삶의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연애와 결혼의 모순관계 속에서 냉정히 판단하고 그 관계를 끊어내려고 한 여성인물(「내 안의 강물」)의 등장을 통해 어두운 삶을 비관하던 주인공의 삶을 향한 새로운 결단을 읽어낼 수 있다.


글쓴이 : 김일지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고 1986년 제1회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2006년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소설집으로 『타란툴라』가 있다.


내 안의 강물 | 김일지 소설집

김일지 지음 | 문학 | 국판 | 272쪽 | 13,000원

2015년 10월 15일 출간 | ISBN : 978-89-6545-317-8 03810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김일지의 소설집. <타란툴라> 이후 8년 만에 출간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정서적 결핍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가족의 유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그린 김일지의 <내 안의 강물>. 각기 다른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처 입은 과거와 조우하게 하면서, 불안한 현재를 넘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차례



내 안의 강물 - 10점
김일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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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중견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조금씩 도둑』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작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품들인 가정과 국가 폭력, 친구와 연인, 그리고 예술 안에서 조명숙 소설 속 인물들의 어두운 삶의 파편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 우물물 길어올리듯 상처의 흔적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집 『조금씩 도둑』에서 독자들은 작가 조명숙이 들려주는 생의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일상에 잠복해 있는 현실의 그 ‘리얼’한 재생

글은 기교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아마도 이 작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_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집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이끌고 있는 여럿 인물들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10년 이후의 유가족의 슬픔을 재현한 「점심의 종류」에서부터,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조명숙 소설이 갖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소설이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때, 현대사회의 병리를 짚는 것도 소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소설은 수록작 「하하네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지망생 ‘유’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글쓰기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물과 사람과 시간 같은 것’에 예민하려 했지만 결국 그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인 ‘하하네이션’ 내에 있는 현실의 비극에 둔감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라고 되묻는다. 




딸을 잃은 세월호 그 사건 이후, 십 년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_「점심의 종류」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통탄할 사건은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기가 된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아픔과 보상금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세월호 문제는, 인양을 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달라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공식 요청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국민여론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시점이다. 조명숙의 단편 「점심의 종류」은 사건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영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하며 서술되는데, ‘영애’는 6·25 전쟁으로 평화롭던 가족의 균열을 보이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다시금 고통을 받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도 도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결국 ‘영애’의 동생 ‘영미’마저 이민을 떠나고, 대한민국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구원을 받기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이다.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낸 네 마음

서른두셋쯤의 나이, 띠띠와 피융이 지나온 나이의 그들이 거기 있었다. 워커를 신은 피융이 손을 내밀었고, 스카프를 두른 띠띠가 그 손을 잡았다. 탁자 아래서 그들의 무릎이 어깨처럼 조심스럽게 부딪쳤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띠띠는 분명히 느꼈다.

“피융과 나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서늘하고 메마른 혼잣말이 피융이라는 이름이 뚫어 놓은 구멍을 빠져나갔다. 잔영만 남은 여러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런 때가 있었다.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네 번이었는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 마침내 피융이 오면 띠띠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손을 잡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피융의 눈은 얼마나 까맣고 초롱했던지. 띠띠는 재생하고 싶은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_「조금씩 도둑」 중에서

열여섯 무렵, 용희, 선경, 영미 대신에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다짐하던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로 한 나이가 되기까지의 상처 입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는 표제작 「조금씩 도둑」은 과장된 시선이 아닌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냈다. 꿈 많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절수술에 후유증까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는 셋의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이 난다. 더욱이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국 친구였던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만 ‘띠띠’의 마음이 애달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수긍하기로” 하면서 띠띠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은 여자로 버텨냈다. 자궁을 축출한 여자가 매번 해바라기 씨를 주문하며 오지 않는 택배기사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월」과,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나비의 저녁」 또한 상실을 겪은 여성의 삶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생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환상의 기록으로서의 소설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달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섯 달에서 두 달을 더 산 막내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병원에 옮겨졌다. 막내가 숨을 거두던 날에도, 세 오빠들이 침울함을 가누지 못한 채로 화장장에 다녀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새벽을 달렸다. 아버지의 달리기는 막내가 죽은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막내가 폐암이라는 말을 꺼낸 날 갑작스럽게 달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집에서 두 블록 지난 파출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비명을 삼킨 것도 그날 밤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 _「러닝 맨」 중에서

특유의 감수성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조명숙의 소설은 「이치로와 한나절」과 「러닝 맨」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덧붙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성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사건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묘사한 뒤, 이를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발함을 보인다. 자기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자살을 해버린 친구 청수, 그리고 눈과 귀와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타난 원숭이와 보낸 한나절의 기록을 조명숙은 소설 속에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온 원숭이는 환각이나 환상일 테지만 결국 엄마와 청수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나’의 마음이 담긴 ‘일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족사의 곡절과 함께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그려낸 「러닝 맨」 또한, 자식의 환상 속에서 달리는 아버지의 서사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환상의 서사들 속에서, 독자는 조명숙 소설이 드러내는 삶의 보편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차례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인턴 희얌90입니다.

김헌일 작가님 인터뷰엔 제가 카메라를 들고 동행했었는데요. 

 

저는 홀로(ㅠㅠ) 저자 인터뷰를 하러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출발하는 기쁨~

저자인 서정아 소설가님과는 일요일 오전 9!

한적한 대학가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날씨가 유독 추웠어요. 따뜻한 차 한 잔씩 들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Q.안녕하세요.날씨가 많이 춥죠?

A.(웃음)

 

 

 

멀리서 작가분이 걸어 오셨는데요. 엄.청.나.게. 미인이셨어요.

 

Q.첫 소설집을 내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A.뭐 그렇게 달라진 건 없어요. 소설집이 나온지 좀 지났죠?

Q.3개월 그 정도 됐죠?

A., 그래서 그 동안 딱히 이렇다 저렇다할 변화는 없었어요. 그치만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틈틈이 잡지나 이런데 원고를 내서 짧은 글이 실리긴 했어도 제대로 남들한테 보여준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소설집이라는 책이 완성돼 나와서 친구들한테나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점은 좋았어요. 격려도 많이 받고. 그런게 좋았죠.

Q.첫 소설집이 10년 만에 나왔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A.아무래도, 책으로 나오기가 오래 걸렸으니까.

 

Q.10년간의 집필기가 궁금해요.

 

A.10년 동안 열심히 글을 썼어야했었는데. 집필하는 동안 공백기가 사실 있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 걱정이나 먹고 사는 현실에 부딪혀서 등단은 해놓고 글을 거의 못 적었어요. 한 몇 년간은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글을 쓸 시간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몇 년은 글 쓰는 걸 쉬었죠. 그렇게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됐고, 일을 그만두면서 제대로 집필을 시작했죠.

Q.공백기가 컸는데, 소설 쓰는데 무리는 없으셨나요?

A.공백기 동안 저는 글을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공백기 동안 지내온 직장생활이 소설을 쓰는 토대로 작용하더라구요. 경험이 쌓이니까 소설로 옮겨 올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의 소설집이 완성될 수 있었어요.

 

Q.소설로 들어가면, 작가님의 소설엔 여성 화자가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데, 모두 다른 차원의 여성들이에요. 이런 캐릭터들은 어디서 가져오고 캐치하시는지 궁금해요.

 

A.저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말을 잘 안하는 편이어서 주로 친구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거기에서 인상 깊었거나 충격적인 사건이나 거기에 속한 인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을 쓸 때, 제일 기본적으로 인물을 설정해요. 그러고 나서 소설 상황에 맞게 더 색을 입히고 설정을 하죠. 그러면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게 되고, 성격 묘사나 이런 것들을 꼼꼼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그럼 기존에 있었던 인물을 소설에 맞는 캐릭터로 개조시키는 거군요?

A.그렇다고 볼 수 있죠. 가장 기본적인 성격이라든지 외모, 이런 것만 가지고 와서 소설에 맞게 덧붙이는 거죠.

 

Q.소설 속에 딱히 이렇다 할 지명들, 공간의 이름들이 등장하지 않아요. 주로 어디를 배경으로 삼아 쓰고 계시나요?

A.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제가 부산으로 살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쓰지 않아요. 더욱이 제가 사투리로 대화 표현을 하지 않는데 그게 지역적 특색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정해지면 소설적 분위기가 한정되어 버려서 지역이나 지명을 쓰지 않아요. 또 사투리를 쓰게 되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투리를 쓰지 않고 있어요. 서울도 아니고 어디도 아닌 곳을 배경으로 등장시켜서 소설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혹은 소설적 상황만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Q.그렇다면 사투리로 대화하는 소설을 쓰지 않으실 건가요?

A.좀 더 지역적 내공이 쌓이면, 그때 한 번 도전해볼게요.(웃음)

 

Q.특별히 여성 화자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제가 여자이기도하고, 여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설 묘사나, 대사에 있어서 더 사실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남자 화자보다 더 손이 가요.

Q.거기에 대부분 작가님의 경험도 바탕이 됐겠죠?

A.그렇죠. ‘내 방엔 달팽이가 산다에 나오는 원룸은 정말 제가 살았던 곳을 배경으로 했어요, 정말 여름에 비만 오면 달팽이가 등장하곤 했죠. 그때마다 저도 소설 속 화자처럼 손을 막 씻기두하고 달팽이를 휴지에 싸서 버려 버리기도 하고 했어요.

Q.직장 생활상을 리얼하게 그리신 것도 작가님의 체험이 어느 정도 있어서 겠군요?

A.그렇죠.

 

Q.소설에서 대화쓰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다양하고도 많은 대화들을 정말 말하는 것처럼 잘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나를, 알아?’에서 처럼요.

A.대사는 일단 제가 쓰고 나서 소리 내서 읽어봐요 근데 대사 쓸 때가 지문보다 힘들고 신중해져요. 왜냐면 쓸모없는 말이 대사로 들어가면 단편의 압축미가 사라진달까? 이 말이 꼭 필요한 건가 고민 많이 함 조금 우리가 실제로 말하는 구어체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일상적이면서도 소설적으로 좀 가볍지 않게 쓰는 편이에요. 모든 대사를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런걸 생각하면서 쓰는 편이죠.

Q.거기에 작가님의 생각도 많이 들어가나요?

A.모두가 제 생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제가 그 주인공이 돼서 주인공의 생각대로 말하게 되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요.

 

Q.‘이상한 과일에 나오는 동성애의 이웃의 등장이 신선했어요. 하필 동성애(게이)의 이야기를 넣어 극적 효과를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A.이상한 과일에 등장하는 빌리 홀리데이 가사에 보면 이상한 과일이 열렸네라는 말이 있어요. 그 가사에 착안을 해서 쓴 작품이에요. 빌리 홀리데이는 흑인이고 백인에 대한 폭력, 즉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노래를 한 사람이죠. 근데 현대에 와서 성소수자들의 어떤 위치가 달라졌다한들 그들은 일종의 소수자잖아요. 그런 소수자를 등장시켜 이상한 과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죄들을 그들에게 덮어 씌워 그들의 죄를 용서받는 그런 주제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소수자를 찾다보니 현대에 성소수자가 제일 적합하다 생각했고 그 때문에 설정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에 게이 이웃의 물건을 불태우는 장면은 자신들의 죄를 함께 불태우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죠.

Q.소수자들에게 책임을 다 전가한 것이군요?

A.그렇죠. 그렇게 자신들의 죄를 씻는 거죠.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루트>는 흑인의 린치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고 만든 노래이다.

 

 

Q.‘해산에서 보면 과거에 왔다가 현재에 왔다가, 빙하로 가는 날엔에서도 고등학교 때 벌어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현재로 와 만나는 것들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층위의 만남에 접합점을 찾는 작업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현재는 과거의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물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과거이야기를 자주 넣는데 요즘 소설이 전부 그냥 쭉 뭐 순차적으로 서술되지 않잖아요? 순서대로 쓰는 건 재미도 없고 해서 그렇게 쓰진 않아요. 소설의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들 지금 뭐 레몬차를 마시는데 과거에 레몬차를 마시던 때로 돌아가서 과거의 일을 천천히 서술하는 것이 독자에게 이해하기 쉽고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요. 그런 장치들을 생각해 놓고 미리 틀을 짜놓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Q.굉장히 치밀하시군요. 메모를 미리 해놓으시나요? 장치들에 대해서?

A.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은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때도 있어요,

 

Q. 뒤에 해설에도 등장하지만 벌레동물’, 그 기타의 것들이 소설 사이사이에 화자의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만나 화자를 괴롭히거나, 신경 쓰게 하는데 그것들이 일종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암시하는 하나의 매개인가요? 그것들의 등장이 의미심장해서 꼭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A.이것들(벌레나 괴식물)이 등장함으로 인해서 뭐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층위로 쓴 것은 아니구요. 화자에게 일어난 일은 결국 일어날 일이고, 어쩌면 그것들이 없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이것들이 등장함으로써 전달되는 것은 바로 화자의 자각이에요. 벌레나 식물들이 사건이 벌어진 것을 자각하도록 하거나 혹은 더 극대화시켜서 그 일에 대한 반성이나 인식을 빨리 하도록 돕는 거죠.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풍뎅이의 아름다운 반짝임은 화자 자신의 젊음을 유지시키는게 허무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것이 그것들의 용도이죠. 이것 때문에 없던 일도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튀게 하는 것. 그런 것이 목적인 것 같아요. ‘잎이 삼킨 것들에서 파리지옥이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원장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인식처럼요.

 

Q.벌꿀의 비행에서와 같이 관계를 다루는 것이 좋았어요. 유부남과 사귀는 친구의 불안한 연애,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주인공과 연인의 뜻밖의 헤어짐과 같은 것. 관계에서 느껴지는 부조리를 어떻게 캐치해 내시나요?

 

A.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숙했던 것 같아요. 그냥 사람들을 보면, 저 사이에. 저 관계에. 어딘가 빈틈이나 불안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쭉 그런 생각을 했고 제 소설집의 큰 주제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 혹은 불안감이 주가 됐죠.

Q.어릴적부터 쌓아온 경험이 소설에서 빛을 드러낸 것이군요?

A.그렇다고 볼 수 있죠.(웃음)

 

여담이지만….

 

Q.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A.저도 오랜만에 문학의 대담을 나눈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 평소엔 아이를 키우는 것 때문에. 이런 자리가 그리웠어요.

Q.사실 저는 문청으로써 부럽습니다. 젊은 나이에 등단을 하셔서. 제 목표가 젊은 나이에 등단하기거든요!

A.젊을 때 등단하면 또 그것대로의 단점이 있어요. 성숙이 안됐다고 할까? 문학적 소양을 덜 쌓아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데 차질이 생겨서 어쩌면 공백기를 가질 수도 있거든요. 그 공백이 나쁜 건 아니지만, 등단을 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할 때도 있어요.

Q.그렇군요. 다음 작품에 차질이 생기면 원치않는 공백이 생길수도 있겠군요.

A.문학적 소양때문만 아니라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쩌면 제일 클 수 있어요.

Q.어떻게든 장단점이 있다는 거군요.

A.그렇죠.

Q.그래도 부럽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A.고맙습니다.

 

싸인 요청에 응해주시는 서정아 작가님

 

 

이렇게 싸인을 받았습니다. 글씨도 예쁘십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느낀 점은 서정아 작가님의 '이상한 과일'에는 서정아라는 인간의 인생이 착즙된 액기스가 들어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경험한 것,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것, 다양한 인간 관계…. 작가님이 느끼고 겪은 것들은 소설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정말 감명깊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던 첫 소설집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독후의 감동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데요~

이상 서정아 작가님의 짱팬 1호가 된 희얌90이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인생은 즐거운 게임 같은 거야.”



거운





무기력한 인생을 조롱하는 맹랑한 속삭임


1994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박향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즐거운 게임』. 소설가 박향은 10대 청소년부터 중년 여성에 이르는 다양한 층위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들의 무기력한 삶 속에 담긴 상실과 소외를 그려내고 있다. 불륜과 이혼, 암에 걸린 남자, 버림받은 여인 등 『즐거운 게임』 속 인물들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황량한 사회 속에 홀로 내쳐진다. 하지만 그 인물들은 자신을 옥죄이고 고통에 이끈 ‘가정’의 굴레를 애써 긍정하려 하지 않고, 냉정하게 가족의 틀 밖에서 삶을 분석하려 한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박향 소설가는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과 무기력한 삶의 편린을 집요하게 포착해 낸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대부분 ‘가족’의 공간인데, 바람을 피우던 남편의 죽음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 부모를 잃고 삼촌 곁에서 자란 여인 등 보편적인 ‘가족’ 경계의 테두리를 넘어선 이들의 삶 속에서 독자들은 가족의 관계와 현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게 될 것이다.


▶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포착하다.


박향의 소설세계는 느닷없는 불운과 온갖 상처로 장악된다. 때로는 결코 청산하지 못할 질긴 빚으로, 때로는 돌연한 죽음으로 작중인물들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삶에 대한 의식을 증폭시키고 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일깨운다. 박향의 소설에서 일상의 수런거림이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멸을 돌이킬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생을 계속한다는 것, 생을 계속하는 한 상실이 끔찍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박향 소설이 지닌 공감력의 요체이다. _황국명 (문학평론가)


소설집 『영화 세 편을 보다』와 장편 『얼음꽃을 삼킨 아이』로 여성의 내면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평과 함께 정제된 문체로 2000년대 여성주의 소설의 신호가 되었던 소설가 박향은, 두 명의 화자를 병치하여 다른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권태로운 삶의 단편을 소설 속에 비춰내는가 하면(「대화법」) 편의점을 ‘정글’이라고 부르는 불량학생들을 내세운 「지브라」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동물원에 갇힌 맹수로 은유한다. 박향의 이번 소설집에는 새로운 기법과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점철된 다양한 삶들이 작품 속에 조각되어 독자를 ‘즐거운 게임’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 구질구질하지만, 그래도 인생


박향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일상에 상처받고, 관계에 지친 이들이지만 이들은 결코 삶을 긍정하지도, 절망에 허우적대며 삶을 내팽개치지도 않는다. 긍정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의 임신 소식과 함께 태풍처럼 몰려온 암 선고에 절망하는 사내(「자연의원」), 애인이 떠나버린 후, 임신한 채 매일 불러가는 자신의 배 사진을 찍어 애인에게 전송하는 여인과 아내의 죽음 이후 황폐한 삶을 살고 있는 삼촌의 기구한 삶(「토끼풀의 탄생」), 외도의 이유를 따지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즐거운 게임」), K제과점 빵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내를 가진 남자와 마찬가지로 K제과점 빵의 팬인 엄마를 가진 나의 우연한 만남과 느닷없는 이별(「달콤한 빵」), 아버지의 부재로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엄마와 자살을 꿈꾸던 고등학생 딸(「육포 냄새」),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여자 ‘소냐’와 자폐증 소녀 ‘성언’의 기묘한 동거(「대화법」), 광활한 정글을 꿈꾸지만 답답한 학교에 갇혀 사는 불량 청소년 학생들의 성장기(「지브라」),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일상탈출을 꿈꾸지만 실패하고, 찜질방에서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 청소년의 이야기(「요괴인간」) 등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학교와 사회, 가정에서 소외당하는 현대인의 겪는 삶을 포착하며, 그들이 잃어버린 잃게 된 ‘인간성’에 대하여 깊은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토끼풀’, ‘게임’, ‘빵’ ‘육포’, ‘동물원’과 같은 삶의 다양한 은유로 인해 예민한 생명감을 잃지 않고 있으며, 육질의 시대에 기계만 남아 울려대는 핸드폰과 함께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등(「육포 냄새」) 박향 특유의 시대적 고찰도 놓치지 않았다.



▶ 정제되고 압축된 문체로 빚어낸 일상의 수런거림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다. 여자의 말은 바람이다. 나는 몸을 가볍게 흔든다. 나는 나무다. 가지가 흔들리고 이파리가 몸을 살짝 뒤집는다.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나는 머리카락 갈래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러붙는 걸 느낀다. 그녀는 말 중간 중간에 흐느끼고 있다. 가끔 흐느끼느라 말을 끊고 짧은 침묵에 잠기기도 한다. 그녀의 말은 바람을 품은 나무처럼 그저 눈을 감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전에 내가 듣지 않고자 밀어냈던 말들이 싱싱하게 살아서 나를 찾아온다. _p.194「대화법」

「작가의 말」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소설의 본질은커녕 혹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는 박향의 말처럼, 그녀의 소설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누더기가 된 일상의 상처를 기워내어 상처를 두고 곱씹으며 사유하는 빛나는 통찰력과 함께, 사물을 넌지시 바라보며 독특하게 그려내는 문장의 힘은 갖은 묘사를 덜어내어 더 강력하다. 삶이 비루해 보이고 구질구질하다 여겨질 때, 여기에 놓인 박향의 소설을 읽어보자. 과연 이 육질의 시대에 인간성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지은이 : 박향

쪽수 : 280쪽

판형 : 국판

ISBN : 978-89-6545-196-9 03810

값 : 13,000원

발행일 : 2012년 9월 17일

십진분류 : 813.7-KDC5

895.735-DDC21







글쓴이 : 박향

경남 남해 출생으로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연대표 속의 전쟁」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제3회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집 『영화 세 편을 보다』와 장편소설 『얼음꽃을 삼킨 아이』가 있다.



차례

자연의원

달콤한 빵

즐거운 게임

토끼풀의 탄생

육포냄새

대화법

지브라

요괴인간

해설

작가의 말


즐거운 게임 - 10점
박향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김경연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


▶ 문학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김경연의 평론집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변화하는 한국문학의 주요 징후들을 포착하고 해석한 김경연의 첫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이 출간되었다.
현재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경연은 비평에 대한 특유의 섬세함과 열정으로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젊은 평론가이다.
문학종언론 이후에도 여전히 문학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김경연은 변방의 위치로 내몰린 모든 남루한 자들과 더불어 변방을 결핍이 아니라 신생(新生)의 거점으로 사유하는 일관된 비평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세이렌들의 귀환』은 여성, 타자/지역, 그리고 역사/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을 조명한 작품들의 의미를 변방(주변부)에 위치한 비평가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평가한 책이다.

▶ 페미니즘의 시각을 견지하며 여성/여성문학에 초점을 맞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여성문학을 초점화했다는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일련의 평론집과 차별성을 갖는다.
페미니즘과 젠더의 문제는 김경연의 비평의 근거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 틀이기도 한데, 이 책의 총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1부 ‘여성을 횡단하는 여성’은 이러한 여성과 여성문학에 관련한 글을 묶은 것이다.
 「혁명 이후 여성문학의 행로-87년체제와 90년대 여성문학의 변화」는 87년체제의 분위기 속에서 발아한 90년대 여성문학의 특이성을 김인숙, 공지영, 공선옥의 소설을 통해 해석한 글이다.
이어 실린 「아버지 혹은 가족을 사유하는 세 가지 방식-2000년대 여성문학의 모험」은 90년대 여성문학의 정체(停滯)를 심문하면서 등장한 2000년대 여성작가들의 모험에 주목한 글이다.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의 시도들」은 2000년대 팩션의 유행 속에서 ‘황진이’를 소재로 쓴 남북한 작가의 소설을 비교하였다. 1부에 수록한 글들은 단수인 ‘여성’이 아닌 복수인 여성‘들’을 긍정하며, 여성이라는 집합적 정의를 횡단하는 새로운 여성문학의 징후를 읽어내려는 문제의식을 내보인다.


능력주의 신화에 들려 있는 한, 페미니즘은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만사는 제 할 탓이기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탓할 수가 없다. 머더-되기를 불사하는 전능한 마더, 투명인간으로 비가시화되는 아버지, 점점 교묘하게 계급을 재생산하는 교육신화는 가부장제와 세습사회의 실질을 은폐하고 있기에 ‘뒤로 가는 문학’이 대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김경연은 아프게 지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 소설들의 뒤를 잡아당기는 스티키 플로어(sticky floor)의 지층을 더할 수 없이 날카롭고 묵직하게 짚어낸다는 점이다. 진단이 정확한 만큼 처방 또한 분명하다. 고통을 기입하고 정치화하는 이와 같은 비평의 지향에서 페미니즘과 혁명은 행복하게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_임옥희(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외(外)로 들어가서 외(外)로 보기


2부 ‘타자/지역이라는 접경’은 우리시대의 각종 타자들과 접속하는 시와 소설, 그리고 변방의 위치에 있는 지역문학이나 대중문학의 의미를 조명해보는 글들이다.
「경계를 횡단하는 탈국의 서사를 위하여」에서 김경연은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유입된 제3세계 디아스포라, 특히 겹겹의 폭력에 유린당하는 이주노동자 여성과 아이들을 재현한 최근 한국 소설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낸다.
「지역을 통과하는 소설」이나 「불경한 텍스트를 재독하다-조선작 소설 다시 읽기」에서는 지역문학이나 대중문학의 결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글들을 통해 저자는 중심을 되받아 쓰려는 구호로서의 지역문학을 넘어 중심의 폭력을 증거하는 흔적이자 중심의 허(虛)를 겨냥하는 역능으로서의 지역문학을 상상한다. 아울러 1970년대 조선작의 소설을 재독하며 일체의 진지함을 훼절하는 불경한 방식으로 엄혹한 시대의 폭력을 감당해온 대중문학의 의미에 주목한다.


외(外)로 들어가서 외(外)로 보기. 김경연의 비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선이자 목록이다. 유령들, 백수들, 여성들, 철거민들, 이주노동자들, 성적 소수자들, 지역으로 탈색된 지방들, 무엇보다 ‘그것’들의 목소리와 문학들. 일부는 더 이상 문학의 주변이나 외부라고 이름 붙이기 곤란한 위치로 격하되고 격상되었지만, 여전히 허방을 품고 있는 지점을 다시 외(外)의 시선으로 들어가서 외(外)의 자리로 되돌려놓고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김경연 비평의 미덕이자 공력이며 또한 매력이다. _김언(시인)

▶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감각하는 문학의 대응 논리에 주목


3부 ‘역사와 현실의 감각’은 문학 종언론 이후 문학의 이행이나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감각하는 문학의 대응 논리에 주목한 글들로 묶여 있다.
특히 「기원을 향수하는 노스탤지어의 열정-최근의 팩션 읽기」는 문학 장을 구성하고 있는 작가, 독자, 비평가의 정체와 위상이 총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팩션 혹은 뉴에이지 역사소설의 부상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글이다.
더불어 「유령의 생(生)을 사는 ‘짧은 이야기들’의 운명」은 포기할 수 없는 문학의 윤리에 대해, 문학의 죽음을 생성의 문학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하는 글이다.
「불안을 감각하는 서사들」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가 질병처럼 앓는 불안을 화두로 삼은 소설들을 통해 불안을 불행으로 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는 능동적 힘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보고 있다.

▶ 변방의 비평가 되기를 흔쾌히 선언하다


1990년대 이후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변화는 문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적·거시적 이념이 약화된 자리에 사적·미시적인 차원의 개인·내면·일상 등이 문학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고, 아울러 근대(성)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 제기되면서 여성·지역·외국인 등 기왕의 주변부 타자들, 즉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문학적 관심 역시 촉발되었다.
이 책에 실린 김경연의 평론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김경연은 무엇보다 여성·이방인·지역 등 우리 사회에서 주변부의 위치로 내몰린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관심을 견지하고, 아울러 이들 소수자들을 문학의 육체로 삼은 최근 한국문학의 면면을 읽어내며 그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지역(변방)에 위치한 비평가로서 이러한 주변부를 조명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여기에는 저의 실존적 고민이 담겨 있기에 더욱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마이너리티와 이들을 초점화한 문학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_저자의 말

비판이 자신의 입장으로부터 다른 것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비평은 오히려 자신의 근거 자체를 되묻는 일이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지역에 위치한 여성 비평가 김경연은 마이너리티들을 조명하는 일이 자신의 실존적 근거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세이렌들의 귀환』을 통해 변방의 비평가 되기를 흔쾌히 선언하고 있다.


저자: 김경연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1920~30년대 여성잡지와 근대 여성문학의 형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오늘의문예비평』에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 시도들」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살아있는 신화, 황진이』,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혁명 이후의 문학』이 있으며, 편저로 『불가능한 대화들』이 있다.

『세이렌들의 귀환』 산지니평론선 7

| 문학 | 평론


김경연 지음
출간일 : 2011년 6월 7일
ISBN : 9788965451556
신국판 | 356쪽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변화하는 한국문학의 주요 징후를 포착하고 해석한 김경연의 첫 평론집. 모든 남루한 자들과 더불어 변방을 결핍이 아니라 신생(新生)의 거점으로 사유하는 비평의식을 보여준다.


차례

서문 변방의 감각과 역설의 비평

1부 여성을 횡단하는 여성
혁명 이후 여성문학의 행로-87년체제와 90년대 여성문학의 변화
아버지 혹은 가족을 사유하는 세 가지 방식-2000년대 여성문학의 모험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의 시도들
항온과 변온, 그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김미현론
21세기 신(新) 계몽소설의 출현-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비체들의 사(史), 혹은 고통과 공포의 기록-천운영의 『명랑』

2부 타자/지역이라는 접경

경계를 횡단하는 탈국(脫國)의 서사를 위하여
“오(O)·세계”를 횡단하는 유령의 시학
지역을 통과하는 소설의 시선
동물이 되거나 혹은 인간이 되거나
불경한 텍스트를 재독하다-조선작 소설 다시 읽기
망각을 가르는 기억의 정치-윤이상과 소설 『나비의 꿈』

3부 역사와 현실의 감각

기원을 향수하는 노스탤지어의 열정-최근의 팩션 읽기
유령의 생(生)을 사는 ‘짧은 이야기들’의 운명
불안을 감각하는 서사들
전통과 현대의 접속, 딸의 서사에서 어머니의 서사로-황석영의 『심청』
스펙터클 사회를 사유하는 소설의 힘-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편만(遍蔓)한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명행, 『사이보그 나이트클럽』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