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산문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스스로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을 출간하였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는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련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는 데 주력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유년 시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복하기 전 일제 강점기에 그토록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맹세하곤 했는데, 이게 뭐람? 광복을 맞은 이제,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으라니!”(p142)

 광복 후, 좌익 학생 단체 소속의 선배들이 시켜 공산당의 ‘적기가’를 불렀던 일은 소년 김열규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빚어진 정치 집단의 이념 갈등은 학생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산문집『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은 일제 시대와 광복,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게 되는 소년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부평동 사거리에서 ‘마사무네야 혼텐(正宗屋 本店)’이라는 정종 도매 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열규 교수는 일본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한 그곳에서 ‘누가 뭐래도 여긴 우리 조선 땅이야!’라며 마음속에 긍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유년을 보낸 부산은 일본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한국의 현대사를 더욱 실감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소재를 저자는 무겁게 풀어내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부산 풍경과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밌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년다울 수 있었던 그때!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유년기를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 마음껏 시내를 활보하면서 이웃집 형과 함께 일본인 소학교에 원정을 떠나 일본아이들을 응징했던 일, 그리고 「부산일보」(당시 ‘후잔닛보’)에 작문 글이 실려서 신문사로 한걸음에 달려갔던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모습들을 노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소년의 눈으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늙은 소년 김열규 교수가 켜는 아코디언의 울림을 듣다 보면, 어느덧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 부산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소년이 된 우리네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꼬맹이’ 소년 김열규의 삶을 그린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와 철들기 시작할 무렵 ‘학생’ 김열규의 삶을 담은 「얌생이와 돗따」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를 겪은 유소년기와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청소년기의 김열규 교수 모습을 나눈 셈입니다. 특히나 2부 「얌생이와 돗따」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군수품을 만들면서 꿇어앉아 맞이하던 광복의 순간들이 묘사되어 있어 한국 현대사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기억에 스며든 둥지, 부산

 6․25전쟁이 끝나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까지 자신을 품어주고 가꾸어준 부산을 둘도 없는 ‘내 둥지’라고 말하는 김열규 교수. 광복로, 보수천, 자갈치, 영도다리, 중앙동 40계단, 범어사 등 그의 기억 속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며 변모했습니다. 지금은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바뀐 중앙동 40계단은 6․25전쟁 시대를 회고하는 역사박물관 거리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40계단의 중턱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은 저자가 학생 시절, 좌익과 우익 학생의 싸움을 겪은 곳이라 김 교수에게는 아픈 사연이 깃든 장소입니다.

 한편, 지금의 부산 서구청에 위치했던 ‘대정(大正)공원’의 지명을 설명하면서 일본말로 ‘다이쇼’라고 하는 일본 왕의 칭호를 언급하고, 오늘날 국제시장의 전신인 ‘돗떼기시장’이 ‘돗따(取, 취할 취)’에서 왔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합니다. 보수동 헌책방의 기원도 바로 이 ‘돗떼기시장’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많은 책들을 수집했는데, 이 책들은 어린 김열규로 하여금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여, 훗날 학자 김열규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지은이 : 김열규

쪽수 : 184쪽

판형 : 국판

ISBN : 978-89-6545-179-2 03810

값 : 11,000원

발행일 : 2012년 6월 28일

십진분류 : 814.6-KDC5

       895.744-DDC21


저자소개 >> 김열규

1932년 경남 고성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문학 및 민속학을 전공했다. 37년간 서강대학교에서, 11년간 인제대학교에서 전임교수로 있었고, 2년간 계명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행복』, 『한국인의 에로스』, 『욕, 카타르시스의 미학』, 『푸른 삶, 맑은 글』, 『왜 사냐면 웃지요』,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등 50여 권이 있다.




차례>>


첫머리에 | 부산, 한국 현대사의 전위대

1부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알짜 부산 놈! 부평동에서 자라면서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용동, 영생유치원과 항서교회에서

‘나가테 도오리(광복로)’의 야시장에서

전차에 얽힌 추억

용두산 신사에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민 이겨라! 봉래 이겨라!

‘후잔닛보(釜山日報)’에 글이 실리고

보수천 ‘검정다리’에서 물놀이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대신동, 고원견산에서 여우를 만나다

까치고개 넘어 괴정으로

하단과 명지에서 수박서리

송도에서 친구 목숨을 구하고

나의 영도다리

2부 얌생이와 돗따

대연동 못골고개를 달리면서

감내 바다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수영의 군사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다

부경대학교 앞뜰의 백사장에서 조개며 고동을 줍고

역사를 간직한 제1부두

‘학생 치안대’로 파출소 근무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

해운대 백사장에서 ‘적기가’를 부르고

‘대정공원’의 삼일절 기념식에서 우익의 테러를 당하다

국제시장의 전신, ‘돗데기시장’의 출발

대연동 못골 저수지에서 뱀과 헤엄치기 경주를

범일동 전차 정거장 지척에 공동 우물이 있었으니

6ㆍ25전쟁의 후방기지 제2부두에서

6ㆍ25난리 통의 부산 거리

부산의 전시 피난 대학

범어사의 인연

종장에| 내게 끼쳐진 부산이여!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 10점
김열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 |문학|수필

조갑상 지음
출간일 : 2006년 12월 8일
ISBN(10) : 899223502x
신국판 | 292쪽

소설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의 지난날과 오늘을 살펴본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걸어 다녔던 길을 따라가면서 작가들의 생각과 작품의 무대를 복원해보고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살펴본다.




 글쓴이 소개

조갑상(曺甲相)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대학원에서 「김정한소설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하면서 경성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에 관계된 저서로는 『소설로 읽는 부산』(1998),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2000), 공저『춘향이 살던 집에서 구보씨 걷던 길까지』(2005)가 있으며, 창작집 『다시 시작하는 끝』(1990)『길에서 형님을 잃다』(1998)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2003) )『테하차피의 달』(2009)을 냈다.


차례

제1장 강은 멀고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곳, 구포
- 조명희의 「낙동강」과 김정한의 「독메」

끊긴 구포다리와 낙동강의 홍수
그 시절에 이 강을 건넜던 사람들
윤상은 선생의 집터를 찾아

제2장 동경유학생의 발길을 따라, 중앙동과 동광동
- 염상섭의「만세전」, 최찬식과 이병주의 소설들

붐비는 터널, 가까운 일본
'관부연락선'을 탔던 사람들
우체국 삼거리에 서서
일본화된 부산거리와 이인화의 두통

제3장 임시수도, 그 복닥거리는 삶을 따라, ‘완월동 제면소’에서 범일동 조선방직까지 - 이호철의 『소시민』

'완월동'국수공장에 모인 사람들
피난시절의 기호공간,국제시장
'땅끝'으로서의 부산과 어느 일본인 신사의 인사
'웃부산'으로 가는길

제4장 온천과 겨울바다, 물 위의 세계, 해운대
- 이태준의 「석양」과 최서해, 김성종의 소설들

동해남부선과 해운대
수로의 낙원호텔과 천국호텔
1930년대의 해수욕 풍경과 은빛 밤바다 위의 달
우리 아이들의 해운대

제5장 곰삭은 부산, 동래와 온천장 그리고 일광 바다
- 손창섭의 「비 오는 날」과 이주홍, 김정한, 윤후명의 소설, 오영수의「갯마을」

동래읍성에 살았던 이들
비의 장막 너머로 사라진 청춘을 찾아
붐비던 시절,온천장과 금강원의 모습들
'갯마을'의 어제와 오늘

제6장 해풍에 씻긴 근대 한국과 부산의 축소판, 영도
-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과 김은국, 조해일, 천운영의 소설들

대평동으로 가는 똑딱선
낭항동 전차종점에서
영도다리에서 다이빙하던 '내 친구 해적'

제7장 송도와 남부민동, 그리고 완월동 언덕배기
- 서정인의 「물결이 높던 날」과 최인훈의 「하늘의 다리」, 안수길, 이호철의 소설들

바다 앞에 서는 두 가지 방법
고향을 잃은 두 문학청년이 부산에서 살았던 모습

제8장 시간 너머에 공간이 있다
- 부산의 원형, 동구

좌천동,부산의 역사가 모인 곳,그리고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고관,또는 수정동 외솔배기
초량시장 일대,그리고 '박기출외과; 찾기
남선창고,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의 시나마찌,텍사스촌,상해거리
,매축지,에서 현대백화점까지

제9장 요산 김정한 소설의 현장을 찾아서
- 을숙도에서 남해 선구리까지

남산동 생가와 범어사
「모래톱 이야기」와 을숙도, 그리고 낙동강
양산 메깃들과 물금,화제-「사밧재」「산서동 뒷이야기」「수라도」
삼랑진으로 가는 길-「뒷기미 나루」


책소개

『이야기를 걷다』는 경성대 국문과 조갑상 교수가 소설을 빌려 부산이라는 도시를 읽어온 지 8년 만에 낸 세 번째 책이다. 저자는 1998년에 『소설로 읽는 부산』, 2000년에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를 경성대 출판부에서 펴낸 바 있다. 이번 세 번째 책은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과 《작가와 사회》에 시간을 두고 쓴 글을 다시 정리하고 사진과 지도를 보충했다. 시간을 두고 쓴 글들이기 때문에 그 사이 모습이 변한 곳이 많아 저자는 3개월에 걸쳐 사진가와 함께 일일이 다시 찾아다니며 원고를 고쳐 쓰고 사진을 찍었다.

집필동기

조갑상 교수는 이 책의 집필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의 지난날과 오늘을 살펴보고 싶었다. 현실과 소설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소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미메시스(재현)하는 것이고, 소설 속에서 재현되는 현실은 공간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소설의 생동감이 공간에 대한 묘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설정된 인물이 걸었던 공간을 따져 보는 일은 소설을 살피는 데 가장 집중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이다.”

공간학 연구에 문학을 빌린 형태의 글쓰기나 문학현장 답사와 같은 글쓰기가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여러 가지 책이 나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도시 공간에 대한 글쓰기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형편이고, 부산에서는《오늘의 문예비평》에 문학을 중심에 놓고 지역학과 공간학을 이야기하는 연재가 있었을 뿐이다. 문학현장 답사기는 답사문화의 활성화와 더불어 창작의 산실, 작품무대에 대한 답사 형식의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기획되어 왔으나 이 역시 지방에서는 출판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소설이라는 문학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으며, 소설 속에 구현된 문학현장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자취를 하나하나 발로 밟아 가며 더듬어본다는 점에서 부산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척 반길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문학작품의 현장답사, 문학공간학과 관계되는 저서나 논문은 있지만, 서울을 제외한 한 특정지역을 소설을 통해 집중적으로 탐색한 글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지역의 역사와 사회사를 모르고 지역발전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소설을 통해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안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교양 지식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지역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편안한 방법이다. 또한 이 책은 전문적인 학술서라기보다는 에세이풍의 교양도서에 가까운 글쓰기 형태이기 때문에 일반 교양서적을 읽는 독자와 문학이나 부산에 애정과 흥미를 가진 독자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할 것이다.
역사(근현대사), 지리, 사회과목을 담당하는 중등학교 교사들이 이 책을 읽는 다면 학생들에게 좀 더 재미있게 지역의 역사, 지리, 사회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여러 작가들에게서 어떻게 해서 지역을 그렇게 잘 아느냐는 말과 공간이 뚜렷한 작품을 써야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역학(부산학) 연구에 문학이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부산학 연구의 한 방법론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부산이 낳은 민족문학의 큰 봉우리 요산 김정한선생

마지막 장 「요산 김정한 소설의 현장을 찾아서」는 부산이 낳은 민족문학의 큰 봉우리 요산 김정한선생(1908~1996)의 문학답사기 형태를 띠고 있다. 남산동 생가와 범어사, 「모래톱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을숙도와 낙동강, 요산이 양산농민저항사건에 연루되어 학업을 중단하게 만든 양산 메깃들과 물금·화제, 근현대사의 폭력을 고스란히 재현한 「뒷기미 나루」의 삼랑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산이 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초기 작품 대부분을 썼던 남해로 이어진다. 가는 길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지도와 사진도 곁들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요산문학의 답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머리에

소설을 빌려 부산이라는 도시를 읽어온 지 8년 만에 세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책에 실린 글들은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과 《작가와 사회》에 시간을 두고 쓰여졌지만 수록된 글들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시간, 소설 속의 작중인물들이 걸어 다녔던 길을 따라 가면서 작가들의 생각들을 따지며 작품의 무대를 복원해 보고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살피는 일,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동구라는 부산의 한 지역을 추억한 글들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문학양식 중에서 현실세계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하더라도 소설 속의 인물이 경험했던 공간이 우리가 사는 현실공간과 일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는 현실과 소설이 마주치는 미메시스(재현)의 문제를 두고 소설의 세계는 작가의 깊은 욕망에 따라 장악된 현실의 수정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현실을 빌려 작가의 의도에 따라 구축한 또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기에 둘 사이를 직접적으로 겹쳐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인물을 빌려 걸었던 길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시간은 사라지고 흘러가도 공간과 장소만이 남는 것은 우리 실제 삶의 이치와 다를 바 없기에 우리는 공간을 통해 떠나간 인물과 시간을 다시 붙들 수 있다. 소설 속의 공간과 장소는 우리들에게 지금 여기에서의 일상적 경험의 차원을 떠나 지난 시간을 살았던 이들의 삶과 고뇌에 찬 영혼들의 속삼임을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중앙동 부산우체국 사거리는 「만세전」의 동경유학생 이인화에 의해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 ‘조선’의 현실을 축사한 상징적 장소가 되고, 삼랑진역은 유학길에 오른 『무정』의 주인공들이 수해를 당한 헐벗은 농민들을 위해 즉석음악회를 여는 곳으로서 1910년대 낙관적 계몽주의의 시선이 집약된 공간이 된다. 또한 낙동강과 구포역, 구포다리는 조명희와 김정한의 작중인물들의 발걸음에 의해 역사적 의미공간이 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썼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효율성만이 강조된 근대화의 산물이겠지만, 특히나 항구도시로서 부산은 급격하게 기억의 공간을 무너뜨리며 성장했다는 생각이다. 기억의 공간들이 여지없이 파괴됨으로써 부산이 추상적인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는 기왕의 지적들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어김없이 확인되었다. 기억할 공간이 없다면 지나간 시간도 무화된다. 우리 인간이 기억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공간과 같이 시간이 사라지는 모습은 안타까움 이상의 마음을 갖게 한다. 물론 『뉴욕의 역사』를 쓴 프랑수아 베유의 말처럼 대도시의 역사는 썼다 지우고 지금 현재에도 다시 써넣는 양피지 같은 역사일 수밖에 없겠지만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나 건축물까지 헐면서 역사가 부재하는 도시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행이나 답사형식의 글들이기에 글을 썼던 시점과 책으로 묶어내는 오늘 사이에도 길이 새로 나고 건물이 헐리고 세워지기에 다시 발품을 팔아 처음의 원고를 수정 보완해야 했음은 어쩔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부산과 경남 일부지역, 그리고 김정한소설 읽기의 한 통로로 자리했으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이겠다.


책 속으로

점이라는 농촌 주부의 이야기를 통해 국유지 불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김정한의 단편 「독메」(1970)에 김해 쪽에서 구포다리를 건너오는 장면과 구포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독메란 넓은 들에 흩어져 있는 고립촌락들을 이르는 말로 김해 사람들은 섬바위, 들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포다리도 저쪽 끝이 빤히 바라보이면서도 실상은 멀었다. 게다가 길 폭이 좁은 위에 쉴 새 없이 차가 오고 가기 때문에, 점이는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한쪽 옆으로 바싹 붙어 가야만 했다. 그래도 우락부락한 운전수들은 마구 퍼붓기도 했다.
“눈깔이 없나?”
점이는 눈물이 핑그르르 돌 때도 있었다.
다릿목에서는 거간꾼들이 각다귀처럼 덤빈다. 안 된다! 예까지 끌고 온 물건을 그들에게 헐값으로 넘길 수는 없다. 점이는 억척보두 같이 장거리로 끌고 간다. 그러나 시장 안 채소전 거리에는 들어갈 도리가 없다.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허가가 없기 때문이다.
부득이 시장밖에 리어카를 세워야 한다. 그래도 장 세금은 꼬박꼬박 물었다. 팔에 완장을 두른 시장 사무원이 어느새 보고 달려온다.
도회지 아낙네들은 도대체들 여간내기가 아니다. 이것저것 마구 뒤져 내 가고 얼토당토않은 값을 걸어온다.
(본문, 23쪽)

구포 다리

해마다 되풀이되는 낙동강 하류의 홍수는 이 지역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근대문학이 이 근대적 축조물을 통해 하구 범람의 숙명을 극복하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연을 폭력적으로 교정함으로써 획득하게 된 안온함은 더 큰 자연의 위력 앞에 별 힘을 쓰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지만. 혹 옛 사람들은 하구 범람에 맞서 투쟁했던 게 아니라 생명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2003년 태풍 ‘매미’로 끊기기 전의 구포다리와 끊긴 후의 모습. (20쪽)

새로 짓기 전의 구포역과 오늘의 모습

구포역은 1920년대의 문제작 「낙동강」의 여자주인공 로사가 북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해서 기념비적인 공간이 되었다. 동경으로만 향했던 근대 지식인들에게 ‘북행’은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했을 것이고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을 타개할 희망으로 보이기도 했을 법하다. 식민지 수탈의 첨병인 철도 내부에 가로 놓여 있는 식민지 극복에의 희망이 서서히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에서부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지 않던가. 우렁찬 기차 소리 사이로 날카롭게 비켜나가는 로사의 상기된 얼굴이 문득 스친다. (31쪽)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해방 후 난전에서 시작되었다. 전쟁 중 이곳은 생존의 공간이자 기회의 공간이기도 했다. 삶이 펄떡거리며 뛰는 시장이 희망을 주었다는 것은 이념의 각축장이었던 그 시기에 다른 삶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전쟁 당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 (82쪽)

해운대 해수욕장


최서해 소설에 묘사된 해운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옛 사진이다. 동백섬에서 바라본 광경인데 멀리 장산이 보인다. 사진에는 카메라의 피사체에 해운대를 담아내기가 역부족이었는지, 해송 세 그루가 흐느적 서 있다. 이는 해운대라는 자연을 카메라라고 부르는 원근법적 인식으로 장악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최서해에게 해운대가 ‘옛날 한시를 읽는 맛’으로 다가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116쪽)

영도

근대 초기 지금의 중구청 쪽에서 바라본 영도와 오늘날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바라본 영도의 모습이다. (159쪽)

영도 다리

역사적인 건축물이 거의 다 사라진 부산에서 영도다리는 가장 기념비적인 것이다. 영도다리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다. (173쪽)

완월동

‘법’은 완월동 사창가를 만들고 또 폐쇄시켰다. 뒤편에 천마산이 흐리게 보이는 1920년대의 완월동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다. 일인들이 많이 살았던 ‘부산’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는 ‘매춘’이었다. 도시 운영에 있어서 세금 부담을 가장 많이 담당했던 것도 바로 게이샤로 대표되는 매매춘 종사자였다고 한다. 처음에 이들은 일본에 유곽이 들어서는 방식 그대로 보수천 양 쪽으로 들어서 있었는데, 땅값 상승과 보수천 매립 등으로 완월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대만에서는 현지 여성을 고용하여 영업을 했다고 하는데 조선에서는 일본여성이 직접 고용되었다는 점이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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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걷다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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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


신국판, 300쪽, 10,000원

'부산의, 부산에 의한, 부산을 위한' 특별한 소설집이 출간 됐습니다. 사실 이 멋진 제목은 연합뉴스 고미혜 기자님의 작품입니다. 신간 <부산을 쓴다>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을 요렇게 달아놓으셨드라구요.

 

 

 

그림 심점환 (부산일보 사진제공)

작년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8년 8월 14일부터 매주 한 차례 부산일보에 연재됐던 단편소설들을 묶어 책으로 낸 것입니다. 책에는 신문에 연재되지 않은 8편을 더해 모두 28편의 작품이 실렸습니다. 책은 글을 살리느라 그림을 뺐지만 신문 연재는 서양화가 심점환의 그림도 같이 볼 수 있답니다.

 

20대 여성 작가부터 70대 원로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28명의 소설가들이 쓴 원고지 30장 분량의 짧은 글들의 배경은 구포시장, 사직야구장, 용두산공원, 반송, 영도다리, 온천천 등 부산 곳곳입니다.

 

 

온천천은 부산 금정산에서 시작해 금정구,동래구,연제구를 거쳐 흐르는 하천입니다. 과거 무분별한 개발로 하천 생태계가 거의 파괴되고 오염이 심해 사람들이 외면했는데, 1995년부터 연제구에서 온천천 살리기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자연환경이 많이 살아났습니다. 더불어 하천옆의 집값, 땅값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 받아 주말이면 꽤 북적거립니다.


 

정태규의 '편지'는 동래읍성 해자(垓字)에서 발견된 400년 전 부부의 편지를 읽고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아내의 이야기다.

임진왜란 당시 함락의 슬픔을 안고 있는 동래읍성은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부부의 애틋한 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됐다.

1987년 초량동을 배경으로 한 정형남의 '필름 세 통의 행방'에는 생전의 요산 선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위군중과 진압경찰이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요산 선생이 축사를 위해 찾았는데, 성황리에 마친 그 출판기념회의 사진을 찍은 필름 세 통의 행방은 이십 년이 훌쩍 뛰어넘은 후에도 묘연하다.

촛불집회를 보도하는 TV에 우연히 잡힌 옛 사랑을 찾아 서면으로 간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조명숙의 '거기 없는 당신'에서 등장하는 대현지하상가, 동보극장, 쥬디스태화처럼 부산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지명들도 소설집 곳곳에서 등장한다.
-연합뉴스

수록작 가운데 박명호의 단편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는 사직야구장을 무대로 부산 사람들의 유별난 야구 사랑을 그렸다.
-조선일보




부산을 노래한 시는 간간이 시집으로 묶여 나왔지만, 소설의 경우 집단적으로 지역을 화두로 한 창작물이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으로는 혹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서울을 쓴다><마산을 쓴다> <통영을 쓴다> 등등.

 책의 표지 그림은 부산역 맞은편 보리밥집 거리 풍경인데, 첫 창작 그림책 <입이 똥꼬에게>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젊은 미술가 박경효의 작품입니다. 최영철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산지니)에 그린 부산 관련 작품들과 그림책에 실린 원화들로 2008년 여름  광안리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었지요.



 

책 속으로

 

삼팔따라지 인생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짓고땡 노름판에서 삼월 사꾸라와 공산 팔 패를 잡으면 끝장이지만 여기서는 숫자의 의미가 확 달라진다. 평일에는 파리를 날리다가도 장날이 되면 한 밑천 톡톡하게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일장이 현대인들의 외면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구포장은 좀 다르다. 낙동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사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도 장날이 되면 유동 인구가 이만여 명을 넘을 정도다. 
- 본문133~134p <아름다운 숙자씨>

 

도와줄 거라며 불룩한 배를 디밀고 여기저기 다니던 남편은 가만히 있으라는 타박을 듣고 난 후 먹다 남은 배를 손가락으로 집어먹고 있었다. 안 먹으면 그것도 처치 곤란이니 이곳저곳 얼쩡거리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명절 끝이라 여전히 주는 것 없이 미웠다.
저렇게 맛있을까.
H는 힐끗 남편을 쳐다본 후 다시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따 반송 한 번 가 볼까?”
입 안에 배를 문 남편의 불분명한 발음이었지만 H는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뭐 바안쏭?
여벌 수저를 챙기던 H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사람이 갑자기……?
수저를 들고 있던 손끝이 아주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어쨌든 못 들은 척했다.
“반송에 가 보자니까.”
못 들은 척하기에는 너무 큰 목소리였다.
“뭐 하러?”
H는 시치미를 떼고 최대한 퉁명스럽게 물었다.
“상가를 한 번 볼까 해서. 3호선이 개통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H는 갑자기 볼일이 생각났다는 듯 수저를 내팽개치고 베란다로 나갔다. 금방까지 떠올리고 있던 ‘그때 그 사람’ 변이 살고 있던 곳이 바로 반송이었다.  
- 본문133~134p <반송을 만나는 두 가지 방법>


차례

1부
편지 - 동래읍성 정태규
마지막 인사 - 범어사 정인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 - 사직야구장 박명호
별을 향해 쏘다!! - 온천천  김미혜
연꽃은 피고, 또 지다 - 두구동 연꽃소류지 이인규
온천장의 새벽 - 금정산 전용문
영혼들의 집 - 영락공원 유연희

 2부
다시, 희망을 - 구포국수 이상섭
연인 - 을숙도 박향
일몰 - 삼락공원 김일지
물이 되어 - 녹산 수문 주연
설레는 마음으로 - 다대포  김서련
아름다운 숙자 씨 - 구포시장  고금란

3부

거기 없는 당신 - 서면 조명숙
가족사진 - 용두산공원 황은덕
아침바다를 만나다 - 태종대 옥태권
시간의 꽃을 들고 - 부산진성  박영애
영도, 다리를 가다 - 영도다리 구영도
필름 세 통의 행방 - 초량  정형남
태양을 쫓는 아이 - 하얄리아부대 이정임

4부
모리상과 노래를 - 해운대  조갑상
반송을 만나는 두 가지 방법 - 반송 정영선
뜨거운 안녕 - 좌수영교 이미욱
빛과 그늘 - 광안리  문성수
낙농마을 이야기 - 황령터널  정혜경
내 님을 그리사와 - 정과정비  이규정
매미가 울었다 - 수영사적공원  김현
월가(月歌) - 이기대  나여경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