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쓰면 쓸 수록 닳는데 책은 신기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늘어나는 느낌이다. 바캉스 준비로 다시 읽은 책 속 문장들이 나의 어느 곳을 늘려준 느낌이다.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낯선 곳이라도 혹은 낯익은 내 방이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신 어딘가에 늘어난 부분을 찾아가는 여름 휴가이길. 

마음의 여유이거나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이라던가. 

어느덧 새로운 여름이 올 것이다. 혹은 가을?


















  에어콘 바람에 지쳤다면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김응교 옮김, 문학과 지성사


다니카와 슌타로 시를 읽고 있으면 자꾸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제목처럼 고독하지만 참신한 시로 우주인인 나를 달랜다. 낮 동안 에어콘 바람에 지쳤다면, 여름밤에 샤워하고 잠들기 전 야금야금 읽으면 좋은 시집이다. 이 시는 시인이 ‘노인 홈’에서 치매 걸린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쓴 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시가 제일 좋더라.


하얀 개가 이 집을 지키고 있다

끊이지 않고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가 이 집을 헹구고 있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이 집을 축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어떤 단어도 건방진 소리다


(중략)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는 여든네 살이 있다

투덜투덜 계속 떠드는 여든여덟 살이 있다

노인들은 이제 인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거기 있는 것으로 인생에 답하고 있다

그 답이 되돌아온다

당신에게 우리들은 중요합니까라고


「하얀개가 있는 집-노인 홈 요리아에서 177쪽






  도심을 떠나고 싶다면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이레


자신의 삶이 자신이 쓰고 싶은 ‘시’였다고 말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호숫가에서 2년 넘게 숲 속에서 산 원조 자연인이며 삶의 철학을 실천한 혁명가다. 작가와 함께 계절마다 달라지는 월든 호수와 숲속을 거닐며 도심을 잠깐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맺은 말 어느 쪽






  뜨거워 지고 싶다면  


나는나, 가네코 후미코, 조정민 옮김, 산지니 


출판목록에서 ‘나는 나’를 보자마자 박열과 연애 이야기를 말하며 흥분했던 내 친구에게 나는 ‘나는 나’를 선물했다. 휴가기간 읽으면 좋겠다며 콧노래를 부르더니 며칠 후 답장을 보내왔다. ‘후미짱, 눈물 철철 흘리면서 읽었다’ 아무래도 친구와 만나면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산 가네코 후미코를 이야기하며 뜨거워져야겠다. 나도 몇 소절 스티커를 붙였다. 질 수 없으니. 


할머니가 무적자라고 가네코 후미코를 구박하는 대목에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라곤 나 자신이 태어났고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나는 태어나 살아있음을 분명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나는 태어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조선 」 99쪽





 마음이 심심하다면  


마음사전, 김소연, 마음산책 

말 그대로 마음사전이다. 한 구절씩 씹어 먹으면 헛헛한 마음이 조금 괜찮아진다. 심심하지만 여행을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해질 녘이 되어도 한가롭게 날기나 하는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를 탕진했지. 

그 재미는 눈물 나게 좋은 거더라.    여행은 어땠니 294 







TV 끄고 가볼까요?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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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루 2012.08.15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어컨 바람에만 지치지 않았을 뿐 나머지 경우에 다 해당하는데 세 권의 책 다 읽어 보고 싶네요 ㅠㅠ
    맛깔나는 책 소개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막 생깁니다 ^^

  2. 전복라면 2012.08.1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나가 제일 눈에 띄지만ㅋㅋㅋㅋ 다나카 슌타로 시선집도 읽어 보고 싶네요.

김열규 산문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스스로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을 출간하였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는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련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는 데 주력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유년 시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복하기 전 일제 강점기에 그토록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맹세하곤 했는데, 이게 뭐람? 광복을 맞은 이제,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으라니!”(p142)

 광복 후, 좌익 학생 단체 소속의 선배들이 시켜 공산당의 ‘적기가’를 불렀던 일은 소년 김열규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빚어진 정치 집단의 이념 갈등은 학생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산문집『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은 일제 시대와 광복,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게 되는 소년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부평동 사거리에서 ‘마사무네야 혼텐(正宗屋 本店)’이라는 정종 도매 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열규 교수는 일본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한 그곳에서 ‘누가 뭐래도 여긴 우리 조선 땅이야!’라며 마음속에 긍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유년을 보낸 부산은 일본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한국의 현대사를 더욱 실감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소재를 저자는 무겁게 풀어내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부산 풍경과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밌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년다울 수 있었던 그때!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유년기를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 마음껏 시내를 활보하면서 이웃집 형과 함께 일본인 소학교에 원정을 떠나 일본아이들을 응징했던 일, 그리고 「부산일보」(당시 ‘후잔닛보’)에 작문 글이 실려서 신문사로 한걸음에 달려갔던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모습들을 노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소년의 눈으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늙은 소년 김열규 교수가 켜는 아코디언의 울림을 듣다 보면, 어느덧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 부산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소년이 된 우리네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꼬맹이’ 소년 김열규의 삶을 그린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와 철들기 시작할 무렵 ‘학생’ 김열규의 삶을 담은 「얌생이와 돗따」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를 겪은 유소년기와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청소년기의 김열규 교수 모습을 나눈 셈입니다. 특히나 2부 「얌생이와 돗따」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군수품을 만들면서 꿇어앉아 맞이하던 광복의 순간들이 묘사되어 있어 한국 현대사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기억에 스며든 둥지, 부산

 6․25전쟁이 끝나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까지 자신을 품어주고 가꾸어준 부산을 둘도 없는 ‘내 둥지’라고 말하는 김열규 교수. 광복로, 보수천, 자갈치, 영도다리, 중앙동 40계단, 범어사 등 그의 기억 속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며 변모했습니다. 지금은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바뀐 중앙동 40계단은 6․25전쟁 시대를 회고하는 역사박물관 거리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40계단의 중턱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은 저자가 학생 시절, 좌익과 우익 학생의 싸움을 겪은 곳이라 김 교수에게는 아픈 사연이 깃든 장소입니다.

 한편, 지금의 부산 서구청에 위치했던 ‘대정(大正)공원’의 지명을 설명하면서 일본말로 ‘다이쇼’라고 하는 일본 왕의 칭호를 언급하고, 오늘날 국제시장의 전신인 ‘돗떼기시장’이 ‘돗따(取, 취할 취)’에서 왔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합니다. 보수동 헌책방의 기원도 바로 이 ‘돗떼기시장’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많은 책들을 수집했는데, 이 책들은 어린 김열규로 하여금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여, 훗날 학자 김열규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지은이 : 김열규

쪽수 : 184쪽

판형 : 국판

ISBN : 978-89-6545-179-2 03810

값 : 11,000원

발행일 : 2012년 6월 28일

십진분류 : 814.6-KDC5

       895.744-DDC21


저자소개 >> 김열규

1932년 경남 고성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문학 및 민속학을 전공했다. 37년간 서강대학교에서, 11년간 인제대학교에서 전임교수로 있었고, 2년간 계명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행복』, 『한국인의 에로스』, 『욕, 카타르시스의 미학』, 『푸른 삶, 맑은 글』, 『왜 사냐면 웃지요』,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등 50여 권이 있다.




차례>>


첫머리에 | 부산, 한국 현대사의 전위대

1부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알짜 부산 놈! 부평동에서 자라면서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용동, 영생유치원과 항서교회에서

‘나가테 도오리(광복로)’의 야시장에서

전차에 얽힌 추억

용두산 신사에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민 이겨라! 봉래 이겨라!

‘후잔닛보(釜山日報)’에 글이 실리고

보수천 ‘검정다리’에서 물놀이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대신동, 고원견산에서 여우를 만나다

까치고개 넘어 괴정으로

하단과 명지에서 수박서리

송도에서 친구 목숨을 구하고

나의 영도다리

2부 얌생이와 돗따

대연동 못골고개를 달리면서

감내 바다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수영의 군사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다

부경대학교 앞뜰의 백사장에서 조개며 고동을 줍고

역사를 간직한 제1부두

‘학생 치안대’로 파출소 근무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

해운대 백사장에서 ‘적기가’를 부르고

‘대정공원’의 삼일절 기념식에서 우익의 테러를 당하다

국제시장의 전신, ‘돗데기시장’의 출발

대연동 못골 저수지에서 뱀과 헤엄치기 경주를

범일동 전차 정거장 지척에 공동 우물이 있었으니

6ㆍ25전쟁의 후방기지 제2부두에서

6ㆍ25난리 통의 부산 거리

부산의 전시 피난 대학

범어사의 인연

종장에| 내게 끼쳐진 부산이여!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 10점
김열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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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impulsion 2015.05.06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껏 소년다울 수 있었던 그때!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