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단의 원로 이규정(79) 작가가 지난해 펴낸 역사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이 최근 몽골어로 번역돼 몽골 현지에서 출간됐다.
소설가 이규정 씨는 "경남 함안 출신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1883~1921)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번개와 천둥'의 몽골어 번역판이 지난 3월 몽골에서 출간됐다"고 18일 밝혔다. 번역은 울란바토르대 강사이자 총장 비서인 다쉬체벨마 씨가 했다.
산지니출판사에서 나온 '번개와 천둥'은 대암 이태준의 불꽃 같은 삶을 생기 넘치는 문체로 되살린 역사인물소설(본지 지난해 3월 14일 자 14면)이다. 이태준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교(현재의 연세대 의과대학)를 졸업한 이태준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눈을 뜬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1914년 몽골로 가게 된 그는 몽골을 휩쓸던 성병을 퇴치해 몽골 민중의 사랑을 받는다.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했으며, 이 나라 최고 훈장까지 받은 그는 현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1921년 러시아 군대(백군)에 의해 피살된다. 38세에 타계한 그를 기리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다.
'번개와 천동'의 몽골어 번역은 안경덕 몽골종교문화연구소장이 주도했다. 안 소장은 "한국과 몽골의 문화교류 확산을 모색하던 중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을 몽골에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침 이규정 선생의 '번개와 천둥'이 있어 지난해부터 번역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이태준 선생의 모교인 연세대 의대의 기독교인 교수님들이 번역 사업 취지를 높이 사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며 "초판은 500부를 찍었는데 앞으로 몽골의 각급 학교에서 독후감 대회를 여는 등 이 책의 보급과 활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규정 소설가가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이 몽골에서 번역 출간돼 대암 이태준 선생의 일대기가 몽골에서 재조명받게 됐다. 부산일보DB
몽골인들이 존경했던 의사이자 강건한 독립운동가였던 대암 이태준 선생의 일대기가 몽골에서 재조명받게 됐다. 원로작가 이규정(79) 소설가가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이 몽골에서 번역 출간됐다. 지역 작가 소설이 해외에 번역 출간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몽골에서 활동 중인 안경덕(72) 몽골문화연구소장은 "지난해 중순 몽골 출판사 DLP와 '번개와 천둥' 번역 출판을 계약하고, 1년 가까운 작업 끝에 지난달 출간해 이달 판매에 들어갔다"고 4일 밝혔다.
몽골인에게 존경 받았던 이태준 일대기 그린 이규정의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 몽골서 번역·출간 '이례적'
지난해 부산문화재단 우수도서 선정
안 소장은 "2008년부터 몽골 울란바타르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태준 선생을 알게 됐는데, 선생의 일대기를 추적해보고 싶었지만 자료가 별로 없어 고민하던 중 이규정 소설가가 쓴 책을 발견했다"며 "이 작가가 흔쾌히 번역 출간을 허락해 이태준 선생의 모교 연세대학교의료원 교수들의 협조를 받아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번개와 천둥
'번개와 천둥'은 '신의(神醫)'로 추앙받던 박애주의자 의사이자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38년 짧은 생을 마감한 이태준(1883~1921)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실화 소설.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집필 구상에 들어간 이 작가는 몽골과 이태준 선생의 고향 경남 함안을 수차례 오가며 수집한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1년 넘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이 작가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책을 완성했다. 지난해 발간된 소설은 부산문화재단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태준 선생 일대기 소설을 쓴 인연으로 이 작가는 최근 충남 천안에 세워질 예정인 이태준 선생 비석에 새길 비문을 쓰기도 했다.
이 작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에 희생되거나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꾸준히 소설을 써 왔는데 이번 소설도 그 연장선상이었다"며 "작가의 사회적 책무라는 본래 사명에 충실해서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의식과 안목을 가지고 열심히 소설을 쓰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집필에 매진하고 있는 이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암울한 역사 속에서 생을 이어온 재일 교포들의 신산한 삶을 담은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 이규정 선생이 친필 사인을 한 '번개와 천둥'이라는 책을 보내주셨다. 몽골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의사 대암 이태준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실화소설이다. 분주한 가운데 독서를 미루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편 어느 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탓에 뜬눈으로 새벽기도를 드리는 일까지 생겼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몇 시간 만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동이지만, 한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활자 속에서 생생하게 마주하며 느껴 오는 감동과 아픔이 나 자신을 향한 반성과 뜨겁게 교차하는 독서였다.
항일투사 이태준 실화소설 이규정 '번개와 천둥'에 감동
몽골의 야생마 타키처럼 순치되지 않는 삶 살아 선비이자 민족의 '대의인' 지금 우리 모습 되돌아보게 해
대암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출생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아 신간회와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서도 활동했다. 1912년, 중국 난징 망명을 거쳐, 1914년 선생은 독립군을 양성하자는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갔다. 당시 그곳에서 창궐하던 매독으로 고통당하던 민중들의 참상을 보고 헌신적으로 치료활동을 펼쳐 몽골인들에게 '신의(神醫)'라고 불렸다. 또한 선생이 세운'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은 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이 조달되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그 후에도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던 중 1921년, 그가 38세가 되던 해 일본 장교를 참모로 둔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피살됐다.
우리 정부는 이태준 선생에게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으며 2000년 7월에는 재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이태준 기념공원'을 몽골 울란바토르 시에 세웠다.
이규정 선생은 2001년 몽골 여행을 갔다가 한국인 안내자의 소개로 이태준 기념공원에 들르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민족의 아픔을 껴안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태준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삶이 가슴을 적셨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태준 선생은 유학을 깊게 공부했고 학문으로 익힌 높은 뜻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해 실천한 분이다.
공자가 인간을 분류한 종류 중에 향원(鄕原)이라는 것이 있다.'향원'은 내 집에 기침소리를 내며 들어오지 않아도 조금도 유감이 없는 친밀감과 믿음을 주는 사람이며, 자기 주변에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게 지내는 사람을 두고 가리키는 칭호라고 한다. 향원으로 사는 것이 한 사회 일원으로서 더 이상 흠을 잡을 수 없는 세련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 향원들이야말로 '덕을 해치는 사람들'이라며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라고 강하게 분노를 했다고 한다. 공자가 향원을 미워한 이유는 겉으로는 신의가 있고 옳은 행동을 하며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결코 성인의 도리를 행할 수 없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세상에 맞게 살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부류라는 것이다.
이태준 선생이야말로 공자가 말하는 '진짜 같은 가짜'인 사이비가 아닌, 배우고 닦은 선비 정신을 진실하게 살아낸 진정한 인격자이자 우리 민족의 대의인(大義人)이다.
이태준 선생은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섰고, 가족의 안전도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지원하는 일보다 우선일 수 없었다. 생전에 이태준 선생이 좋아했다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몽골의 야생마 타키는 현실에 끝내 순치되지 않는 삶을 살다간 그를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네…." 새뮤얼 울만이 78세에 쓴 시 '청춘'의 첫머리이다. 울만의 시를 따르면, 소설가 이규정(78) 김성종(74) 선생은 부산 소설계의 빛나는 청춘 작가이다.
1937년생으로 팔순을 바라보는 이규정 작가가 최근 펴낸 역사인물소설 '소설 대암-이태준 번개와 천둥'(산지니)은 전개가 매우 활달하고 생생했다. 이태준(1883~1921)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 2기 졸업생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천신만고 끝에 1910년대 몽골에 들어가 그 나라를 망친 성병을 몰아내 신의(神醫)로 추앙받지만, 허무하게 살해당한다.
역사인물소설은 인물 재현에 그치거나 인물에 끌려다니다 생기를 잃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번개와 천둥'은 펄떡대는 생선처럼 살아있는 느낌이다. 이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써서 이미 신문에 내놓은 뒤에도 이 소설의 비결이 여전히 궁금했다. 그래서 이규정 작가를 만났다.
그는 2001년 몽골과 바이칼호로 문학기행 갔을 때 이 소설을 구상했다. 2010년에는 대암이태준선생기념사업회를 따라 몽골 울란바토르의 이태준기념공원 방문 및 교류 행사에도 참가했다. 그간 이태준 관련 논문과 자료를 몽땅 모아 공부했다. 한창 작품을 쓰던 2011년 4월 작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해서 소설을 계속 썼다. 그 바람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려 솔직히 후회스럽긴 하다." 2012년에는 아내가 위중한 병에 걸려 집필은 또 한 번 벽에 부딪혔지만, 극복했다.
'번개와 천둥'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다 이규정 작가가 1996년 펴낸 대하소설 '먼 땅 가까운 하늘'(전3권·동천사)이 화제가 됐다. 아마 한국 문단에서 사할린 동포의 기구한 삶과 민족의 아픔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그린 대하소설일 것이다. 내친김에 기자는 절판된 '먼 땅 가까운 하늘' 1~3권을 구해 며칠 만에 다 읽었다. 1991년 집필에 들어가 5년 만에 탈고한 이 대하소설이 왜 한국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반드시 재조명해 가치를 재평가해야 할 빼어난 대하소설이다.
이 대하소설은 권정생의 '한티재 하늘'처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할린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이다. 그중에서도 함안, 서울, 진주, 평양, 부산, 일본, 사할린으로 이어지는 주인공 이문근의 인생은 민족사의 아픔 자체다. '먼 땅 가까운 하늘'에서 보여준 작가의 치열한 취재,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 역사의식과 리얼리즘 정신이 '번개와 천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청년 작가 이규정'을 생생히 느꼈다.
'청년 작가'를 이렇게 꼽다 보니, 김성종 작가가 최근 펴낸 연작소설 '달맞이언덕의 안개'(새움)가 떠올랐다. 베테랑 추리소설가 노준기가 시칠리아산 와인 '도망간 여자'를 마시며 노련하고도 정열적인 활약을 펼치는 이 소설은 사실 면모가 매우 다양하다.
범죄의 고리를 절묘하게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추리소설도 있다. 부산 근교 원전 사고를 소재로 문명의 반성을 촉구한 문제작 '죽음의 땅에 흐르는 안개, 그리고 개들의 축제', 테러사건 현장을 찾아다니는 '런던의 안개' 등 독특하고 새로운 작품도 있다.
연작소설 '달맞이언덕의 안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준기는 허무주의에 빠진 노인 같지만, 여전히 엄청난 정열로 활약을 펼친다. 그 점에서 자신의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에서 숱한 인물을 창조한 김성종 작가가 빚어낸 또 하나의 캐릭터이다.
최근 몇 년 새에도 세 권짜리 장편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2006)부터 '후쿠오카 살인' '안개의 사나이'에 이어 '달맞이언덕의 안개'까지 도무지 쉴 줄 모르는 70대 중반 김성종 또한 부산 소설계의 대표 청춘 작가다.
몽골의 신의(神醫)이자, 조선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을 그린 역사 인물 소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다. 몽골인들은 이곳에서 매독이 창궐했던 1910년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대암(大巖)라는 호를 가진 조선인 의사 이태준 선생을 기린다.
몽골에서 ‘신의’라고 불리던 이태준 선생은 타지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에 묵묵히 참여한 숨겨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몽골에서 개업한 병원은 독립운동의 거점 중 하나였고, 상해 임시정부는 선생을 군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국내 자료는 현재 학술논문과 아동서 정도뿐이다.
이 책은 의사, 독립운동가, 그리고 신념을 갖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이태준 선생을 그려냄으로써 오늘날 한국을 가능하게 한 우리의 선조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왜경을 피해 한양을 도피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독립운동에 대한 다짐을 굳히는 계기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만남, 혈혈단신으로 도착했던 중국 남경에서 보다 원대한 독립운동의 꿈을 품고 동지들과 몽골로 떠나는 여정, 몽골에서 우연히 매독 환자를 발견한 일 등 그의 삶의 전환점들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안창호 선생은 갓 의술에 길로 들어선 이태준에게 의사(醫師)만이 아니라 의사(義士)로도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또 소설은 심리에 대한 묘사를 구체화해 독자가 역사적 인물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몽골에서 치료한 첫 환자이자 진료 보조자가 된 베르테는 어느 날 선생에게 몽골에 사는 독특한 야생마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타키’는 순치되지 않는 야생마이기에 ‘말과 비슷하나 결코 말이 아닌 짐승’이라고 한다.
선생은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통치 아래 고분고분해진 조국의 벼슬아치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긴다. 이후 타키는 실제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아내와 광활한 몽골 고원으로 한나절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고된 생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이태준 선생에게 힘이 된 것 중 하나는 신앙이었다. 소설 속 이태준 선생은 성경 중 잠언의 ‘정의를 굳게 지키면 생명에 이르지만 악한 일을 좇으면 죽음을 불러들인다’라는 구절을 되새긴다.
소설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독립운동이나 의사로서의 활동과 이어져 있는 지 살필 수 있어 시대적 배경이나 한 인간의 삶을 단순화하지 않으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신의(神醫)'라고 칭송받던 박애주의자 의사. 38년 짧은 생을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다 간 조선의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1883~1921) 선생의 올곧은 삶이 장편 소설로 부활했다.
'소설의 사회적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이규정(78) 소설가의 힘겨운 노력 덕분이다.
애국지사 이태준 선생이 노작가의 가슴에 자리 잡은 건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 '이태준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우연히도 작가와 같은 고향(경남 함안) 출신인 이태준 선생의 삶을 추적하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이규정 소설가 심층 취재 바탕 실화 소설 '번개와 천둥' 출간 박애주의자 대암의 삶 재조명
함안과 몽골을 수차례 방문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이태준 선생의 일가를 만나 심층 취재에도 공을 들였다. 하지만 '조국 국권 회복을 위해 생을 바친 애국지사들에 무관심한' 우리 문단의 빚을 홀로 나서 덜어내는 작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실화 소설 '번개와 천둥'(산지니)은 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다. 2011년 3월 드디어 집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후유증으로 1년 넘게 고통을 겪었다.
2012년 후반에야 다시 집필을 하게 됐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아 하루 30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기나긴 사투 끝에 노작가는 고난의 시대, 불의와 타협 없는 삶을 살다간 이태준 의사(義士)를 완성도 높은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역사 속에서 불러냈다.
이규정 작가의 소설 '번개와 천둥'.
그는 이태준 선생과 함께했던 짧지 않은 세월을 힘겹게 마감한 소감을 "후련하다"고만 했다.
또 하나의 소명을 다한 '후련함'일 듯하다. 일제강점기 올곧은 지식인의 삶이 던지는 울림은 어수선한 이 시대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병명도 모른 채 부모와 아내를 잇달아 사별해야 했던 이태준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 면허 의사 김필순을 만나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백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나라 지키는 일의 근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환자뿐 아니라 나라를 살리는 일에도 뛰어든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진료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쫓기게 된 선생은 중국 난징을 거쳐 군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몽골로 건너간다. 매독이 창궐한 몽골의 참상을 외면하지 못해 의료 봉사에 나섰고 몽골에 세운 동의의국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다. 몽골과 중국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던 선생은 한 일본인 병사의 총에 맞아 운명한다.
소설은 김필순, 신규식, 김규식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행적도 따라간다. 그 시대에도 이미 '병원을 차려 돈벌이에 골몰하는 의사들'이 있었고 '나라 잃은 시대, 잠시 저항하다가도 이내 길들여져 적국의 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이태준은 길들여지지 않는 몽골의 야생마 타키처럼 현실의 부조리에 맞섰다. 소설이 신앙인 이태준을 통해 세속화된 한국의 기독교에 던지는 울림 역시 가볍지 않다.
쉼 없는 노작가의 다음 여정은 1963년 일본으로 밀항해갔던 재일교포의 신산한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 될 예정이다. 부산작가회의 고문인 작가는 신라대 교수,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요산문학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몽골인들은 매독이 창궐했던 1910년대에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한 조선인 의사를 기린다. 그러나 몽골에서 ‘신의’라 불리던 이태준 선생은 타지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에 묵묵히 참여한 숨겨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선생이 몽골에서 개업한 병원은 독립운동의 거점 중 하나였고, 상해 임시정부는 선생을 군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태준 선생에 대한 국내 자료는 현재 학술논문과 아동서 정도뿐이다.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은 의사, 독립운동가,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선생을 그려내, 엄연히 오늘날의 한국을 가능하게 한 우리의 선조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대암(大巖)’이라는 호를 가진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청년기에 선생은 지인과 함께 함안 지역 내 만세운동을 조직하려다 계획이 발각된 후,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상경했다. 세브란스 의학교 2기 졸업생인 선생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던 때에 안창호 선생을 치료했고, 그 연유로 왜경들에게 쫓기게 된다.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가 몽골로 떠난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도움으로 1914년 후레라는 지역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었다. 이곳이 많은 몽골인 환자들을 치료하며 중국과 몽골에서 활동하는 지사들을 보살피고 자금을 확보하는 거점이 된다. 하지만 선생의 활동은 몽골 내로 한정되지 않았다. 임시정부에서 맡긴 임무를 수행하며 중국을 드나들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 제조기술을 보유한 헝가리 청년을 의열단 쪽에 소개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독립운동과 관련된 임무를 치르기 위해 또다시 중국으로 향하던 중, 선생은 당시 몽골을 침략한 제정 시기 러시아 군인 출신 운게른 남작의 부하들에게 붙잡혔고, 결국 한 일본인 병사의 총에 운명하였다. 이때가 1921년, 갖은 ‘번개와 천둥’으로 점철된 생을 선생은 38세의 창창한 나이에 마감하였다.
사실을 넘어 진실을 비추는 역동적인 이야기
역사 인물 소설은 자칫 사실관계의 나열식 서술로 지루해질 수 있지만, 『번개와 천둥』에서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구성한 원로 작가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선생이 왜경을 피해 한양을 도피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독립운동에 대한 다짐을 굳히는 계기였던 도산 선생과의 만남, 혈혈단신으로 도착했던 중국 남경에서 보다 원대한 독립운동의 꿈을 품고 동지들과 몽골로 떠나는 여정, 몽골에서 우연히 매독 환자를 발견한 일 등 이태준 선생 삶의 전환점들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안창호 선생은 갓 의술의 길로 들어선 이태준에게 의사(醫師)만이 아니라 의사(義士)로도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대암, 그대는 백성의 질고(疾苦)를 가엾게 여겨 의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의사(醫師)를 넘어 나라를 구하는 의사(義士)로도 살아야 해요. 의사(義士)란 정의에 죽고 정의에 사는 사람 아닌가? 이것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리요 정의이네. 처음 만났을 때도 말한 것 같지만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네. 대암 같은 인재는 백성들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의술에도 봉사해야겠지만 백성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정신적 의술도 발휘해야 하네. 대암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란 뜻이네. (…) 대암을 보니, 나와 함께 이 나라를 살릴 동지로 일하고 싶어 하는 소리네.” (…) 태준은 도산의 그러한 제의, 나라 살릴 동지란 말이 너무 반갑고 영광스러웠다.
_「경성 탈출」 중에서
또한, 저자는 심리에 대한 묘사를 구체화해 독자가 역사적 인물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몽골에서 치료한 첫 환자이자 진료 보조자가 된 버르테는 어느 날 선생에게 몽골에 사는 독특한 야생마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타키’는 순치되지 않는 야생마라 “말과 비슷하나 결코 말이 아닌 짐승”이라고 한다. 선생은 ‘타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통치 아래 고분고분해진 조국의 벼슬아치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긴다. 이후 ‘타키’를 실제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아내와 광활한 몽골 고원으로 한나절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고된 생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이태준 선생에게 힘이 된 것 중 하나는 신앙이었다. 소설 속 이태준 선생은 성경 중 잠언의 “정의를 굳게 지키면 생명에 이르지만 악한 일을 좇으면 죽음을 불러들인다”는 구절을 되새긴다. 이태준 선생에게도 감명을 준 안중근 의사 또한 천주교 신자였을 만큼, 이 시대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기독교와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간단치 않게 얽혀 있었다.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은 선생은 처음에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함께 계획했던 지인의 권유와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기독교를 접했다. 소설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독립운동이나 의사로서의 활동과 이어져 있었는지 살필 수 있어, 시대적 배경이나 한 인간의 삶을 단순화하지 않으려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바위처럼 꿋꿋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해낸 이의 삶
환자들에게 이태준 선생은 치료를 위해서라면 말을 타고 먼 길도 달려가는 의사였으며,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료들에게는 몽골이라는 드넓은 타지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지표’였을 것이다. 단단한 바위는 세월의 풍파를 견딘다고 하지만, 『번개와 천둥』을 통해 우리는 이태준 선생이 ‘인내’를 넘어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며 시대를 ‘살아낸’ 인물임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동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그의 삶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번개와 천둥’을 헤쳐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이규정
경남 함안 출생. 1977년 단편 <부처님의 멀미>를 월간『시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치우』등 9권과 장편소설, 동화집, 이론서, 산문집, 칼럼집,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현재 부산 원로 민주인사 단체인 민족광장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 활동으로 천주교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일붕문학상, 부산시문화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요산문학상, PSB(현 KNN)부산방송 문화대상, 가톨릭대상, 이주홍문학상,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2002년에 정년퇴임했다.
1. 경성 탈출
2. 눈에 어리는 고향마을
3. 도천재의 추억
4. 탈향, 한양 살이
5. 세브란스 의학교
6. 새 출발
7. 남경 고초
8. 중국을 떠나다
9. 몽골, 그 광활한 평원
10. 동의의국 개업
11. 독립운동의 거점 동의의국
12. 김은식과의 재혼
13. 운게른의 등장
14. 임시정부의 군의관 감무(監務)
15. 1차 임무 수행
16. 조선 입국과 고향방문
17. 장애와 악운
18. 번개와 천둥
작가의 말
작가 약력
『번개와 천둥』 소설 대암 이태준
이규정 지음 | 문학 | 신국판 변형 | 328쪽 | 13,000원 2015년 3월 10일 출간 | ISBN :978-89-6545-282-9 03810
1910년대 몽골에서 독립운동과 의사로서 활동했던 대암 이태준을 조명하는 장편소설. 먼 타지에서 자신의 본분을 묵묵히 다해낸 선생을 의사, 독립운동가, 신념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약속과 예측
정동 이론을 젠더 연구와 연결시키고, 이를 ‘젠더·어펙트’ 연구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책에는 물질과 담론,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 등 근대적 이원론으로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정동적 분석을 담은 열두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문학/사상 2 : 주변성의 이행을 위하여
‘중심’과 ‘주변’이라는 문제틀은 실체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다르게 배분되는 정치적 힘을 가리키는 은유라고 해야 더 알맞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심/주변의 관성적 이항대립을 깨뜨리기 위해 어떤 개념적 장치를 가져야 하는가?
통증보감
아프면 병원 가고, 약 먹고, 수술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연치유력과 생활습관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한다. 질병의 증상과 통증 부위에 따라 원인을 정리하고, 도움이 되는 운동을 정리해 실었다.
베스트셀러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좋은 일의 기준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가 가진 일에 대한 낡은 관념을 되짚어보고 변화하는 좋은 일의 기준에 대해 말한다. 삶과 함께하며 일할 권리, 나쁜 노동을 거절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어떠한 고용형태라도 차별 받지 않는 구조, 어린 노동자들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 등 일에 대해 활발하게 논한다.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2020년 부산 원북원도서 선정도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불안, 고통, 슬픔. 지치고, 지겨운 삶 속에서도 견뎌야 하는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게 하는 글들이 담겨 있다.
벽이 없는 세계
★국경 없는 시대에 필요한 지정학 전략★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붕괴와 포퓰리즘 부상을 필두로 한 50개의 주요 이슈를 통해 국제 정치 현안을 다룬 책이다. 미국, 중국, 터키, 러시아 등 세계 주요국의 지정학 전략을 통한 국제 정세를,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측면에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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