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점령 서사 

점령군의 PX로 변한 도쿄 긴자


1945년 패전후 일본은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일본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당해본 일본인들의 피지배 경험이었다. 책은 점령기간 동안 일본인의 삶에 미국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당시의 일본 문학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다. 타국에 의한 피점령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직, 간접적 영향을 받으며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만들어진 점령 서사>가 던지는 내용이 단순히 이웃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1946년 당시,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람은 1,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식량난과 싸우는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가의 영·미어 교재가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렸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전후 일본사회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도구이자 새로운 가치관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미어를 열망하고,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문 38쪽)

 또한 팡팡이나 온리여성들은 일본인을 상대로 할 때에는 다분히 수치심을 느끼지만, 외국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도 고백한다. 특히 양팡이라고 불리던 여성들은 외국인만을 상대로 하는 만큼 소위 팡글리쉬로 의사전달을 하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타 지역 내지는 친인척들의 귀에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녀들은 상대가 외국인에 국한될 경우에 ‘안심’과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일본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을 선택하여 교제하는 것을 ‘정조의 이동’으로 이해하고, 이를 일본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 여성의 활약은 대단히 진취적인 현상으로 해석되었을 뿐 아니라, 직업의 일환으로까지 설명되기도 하였다. (본문 130쪽)

현지처에 해당하는 일본인 여성'온리'는 1945년 10월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 장교들이 출입하는 클럽에도 '온리'와 동반하는 미군들이 많았다.

  

팡팡 : 패전 직후 거리에 넘치던 매춘부의 총칭. 처음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던 여성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GHQ가 성병 방지를 이유로 미군에게 매매춘 행위를 금지시키자, 이들은 일본인을 상대로 영업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미군만을 상대로 하던 여성을 ‘양팡’이라고도 불렀다.

온리 : 미군상대 매춘부 가운데 특정한 남성과 관계를 가지던 여성을 말한다. 불특정한 미군 남성과 관계를 가지던 이들은 ‘양팡’, ‘버터플라이(butterfly)’라고 불리었다. ‘온리(only에서 유래)’들은 ‘현지처’적인 의미가 강하였고, 미군이 기지를 옮길 경우에는 자신의 ‘온리’를 동료들에게 넘겨주기도 하였다.

양팡 : ‘팡팡’과 ‘잉글리쉬’를 결합시킨 조어. ‘팡팡’들이 미군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던 일본어식 영어 및 일본어와 영어가 뒤섞인 말을 가리킨다.


책소개 더보기

서장 <점령과 문학>

1장 <미어米語의 탄생>
2장 <전후 일본과 미국의 젠더적 관계>
3장 <‘재일조선인’이라는 중간자>
종장 <교차의 장場, 오키나와>

만들어진 점령 서사 - 10점
조정민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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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공선(게잡이 배)'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고?

아침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특이한 뉴스를 발견했다.

'게공선'이라면 20여 년 전 읽어본 소설이 아닌가. 그런데 그 책이 지금 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지?

1929년에 발표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이라는 일본 소설이 예년에 비해 47배나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게공선'은 게잡이 배를 무대로 가혹한 노동현실에 신음하는 노동자를 그린 소설. 일본공산당원이었던 작가는 1933년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숨졌다.

내가 읽었던 책은 1987년 부산에 있는 친구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한 것이었다. 출근하자마자 당시 '게공선'을 번역했던 이귀원 선생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일본에서 이 책이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대해 이 선생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 선생은 올해 초 고바야시 다키지의 추모행사에 초청받아 일본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로 대표되는 절망사회 일본에서 왜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있을까? 전 세계적 경제공황을 예고하는 징후는 아닐까? 앞으로의 출판기획과 관련해서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2008년 6월 11일 부산일보 발표글.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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