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서평 이벤트 당첨자 발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서평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아무도 신청 안 하면 어쩌나 하고 소심하게 행운의 숫자 넘버 세븐으로 모집인원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모집인원은 가뿐히 넘겼으나, 전화번호나 주소를 쓰지 않아 저를 당황하게 하셨어요. 다음번에는 주소와 전화번호 칸을 별도로 만들겠습니다. 긁적긁적. 주소 쓰고 기운 빠지셔서 전화번호 쓰지 않으신 듯. 또르르. 신청 이유를 성실히 써주셨지만 전화번호를 기입하지 않으신 분들!! 다음에 다른 책으로 꼭 신청해주세요! 



당첨자 발표(성/전화번호 4자리)
김**(8427)
구**(2584)
하**(2920)
곽**(0456)
윤**(1959)
유**(5611)
박**(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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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자유롭게 써주시면 됩니다. 성실히 써주신 분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지니 신간을 한 권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작은 이벤트이지만 오늘 하루 행복한 뉴스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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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송합니다. 

사진과 예쁘게 포장해준, 날개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이번에는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서울도서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책으로 보는 31운동: 그 시간의 기억과 흔적을 읽다> 기획전시와  자료실별 테마도서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전시 연계 강연으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을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으로 보는 31운동:  : 그 시간의 기억과 흔적을 읽다]


독립운동사를 책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나무 원형에는 시민들이 3.1운동을 기억하는 갖가지 키워드가 적혀 있었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독립운동과 삶-강연]


강연 전 서울도서관 사이트에서 미리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신청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민들이 신청해주셨구요. 색다른 장소에서 순수하게 독자와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서영해"라는 이름만 듣고 궁금해서 강연에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 지금껏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서영해는 부산출신으로 아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하셨습니다. 당시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서영해의 아버지인 서석주는 콜레라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잘 처방했다고 합니다. 서영해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 상해로 독립운동을 하러 갈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으로 많이 갔는데 서영해는 왜 프랑스로 갔을까요?

파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의 중심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고 1919년 3월 임정의 외무총장 김구식이 파리에 도착하고 뒤를 이어 조소앙 등이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파리에서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요.


김규식도 영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했고 다국어를 할 수 있었지만, 임정 내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재가 없었습니다. 파리강화회의 이후 임정 내에 불어를 잘하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서영해는 임정의 불어 인력 양성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파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단 6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보통은 완전히 졸업하기까지 11년이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고려통신사를 설립해서 국제언론에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서영해가 고려통신사로 사용한 호텔 드 상리는 여전히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직접 호텔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몸만 겨우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작은 책상이 보입니다. 이 방은 정식 방이 아니고 옥탑방이라고 하네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을 이 작은 방에서 임정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홀로 조선의 독립을 알렸다고 하네요. 

저도 호텔 외부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요. 좁고 어두운 방을 보니 뭉클해졌습니다. 조선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이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서영해가 머물렀던 숙소와 활동들은 *MBC 다큐멘터리 4월 1일 오후 8시 55분에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 혹시 보셨나요? 언론에 크게 조명받은 사진입니다. 정상천 작가가 서영해 앨범을 보다가 발견한 사진으로 김구 재단에도 없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 사진은 1938년 중국 창사에서 조선혁명단원 이운학이 권총을 난사한 '남목청 사건' 당시 생긴 것으로, 총알을 맞고도 의연한 김구 선생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중요한 사료이며, 서영해와 김구 선생이 친밀한 사이임을 알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4월 11일 부산시립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임시정부 100주년 특별전-서영해" 전시에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서영해는 정치적 승자였던 이승만과 한때는 친했지만 정치노선 차이로 멀어졌고 해방 이후 국내에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과 이화여전 등에 강사로 활동했는데요. 서영해는 국내에 머무는 동안 황순조 여사와 결혼했는데요 그때 제자들이 서영해 선생에게 준 결혼축하 패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출간 이후에도 서영해의 자료 발굴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날 책에 담지 못한 서영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외 서영해의 언론가로서 문필가로서의 활약상, 오스트리아 여인과의 결혼과 이별, 귀국 후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한국 생활, 이후 상해로 건너가 행방불명되기까지 저자가 직접 발굴하고 자료를 모아 발견한 서영해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궁금한 내용은 28일 부산에서 진행하는 정상천 작가의 강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아시나요?"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많이 와주세요! 저녁 6시 30분, 산지니X공간입니다.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동글동글봄



[인터뷰] 정상천 균형위 운영지원과장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독립운동가' 불러낸 사연은

 

"공무원이 일은 안 하고 책만 쓰네"라고 비아냥대는 시선도 있지만,

그가 역사 관련 책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스타트업4] 정상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은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현직 공무원 신분이지만, 주말을 포함해 짬이 날 때마다 역사 관련 자료를 들여다본다. 물론 그가 하는 일과 역사는 큰 관련이 없다. 주변에서 쏘아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타트업4>가 정 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과장은 지난 14일부터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통해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 출간을 목표로 도서 출판 그룹인 산지니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23일을 남긴 현재, 후원금액 1,615,000원을 모으며, 목표를 161%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정 과장이 맡고 있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운영지원과 과장이라는 직책은 언뜻 보기에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책을 기획하게 됐을까.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 (출처: 본인)


제가 하는 일과 책의 연관성은 전혀 없습니다. 공직생활 하면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국비 유학생으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 별명이 일요일의 역사가입니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니 주중에는 근무를 해야 해서 주말에만 공부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부릅니다. 틈틈이 계속 공부해서 이번에 다섯 권 째 책을 발간하게 됐습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을 살린 거죠. 사실 업무와는 관계가 없지만, 전공과는 아주 관계가 깊습니다.”

 

현직 공무원이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많은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과장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사실 목표 금액인 백만원이라는 금액은 적은 금액입니다. 백만 원은 벌써 다 찼습니다. 후원자가 41명이나 되는 것을 보니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하.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두 번째 목적은 사전 홍보입니다. 서영해 선생 관련해서 책을 쓰고 있는 분이 두 분이 더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장석흥 교수와 파리의 재야 사학자가 관련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점을 찍어 두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고 있다. 최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받기 위해서 진행 했습니다.”

 

그가 직접 느끼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체감온도는 어떨까.

 

이 정도면 괜찮아요. 하하. 반응 좋습니다.”

 

그가 여러 독립운동가 중, 서영해 선생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2013년에 쓴 책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5페이지에 걸쳐서 서영해 선생을 언급 했습니다. 그 책을 보고 서영해 선생 유족들이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족과 산지니 출판 그룹의 강수걸 대표가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산지니 출판 그룹 에서 저에게 책을 써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 서영해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책을 보던 중, 서영해 선생의 명함이 눈에 띄어서 였습니다. ‘독립운동가도 명함이?’ 도대체 서영해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책에 소개하게 됐고, 그것이 인연이 돼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관련 자료가 상당히 부족했다.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데에는 서영해 선생 유족들의 도움이 컸다.

 

서영해 선생 유족들이 준 자료가 있었습니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에 영해(嶺海) 문고가 있는데, 여기에는 서영해 선생 관련 유품 860여 개가 기증돼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의 둘째 부인인 황순조 여사는 경남여고에 교사로 재직할 당시, 서영해 선생의 유품, 편지, 원고들을 동료 교사였던 류영남 박사에게 전달한 뒤, 출판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출판이 어렵게 되자, 류영남 박사는 황순조 여사가 교장 직을 지낸 경남여고에 유품을 기증 했습니다. 그리고 경남여고에서 올해 부산시립박물관에 유품 전부를 기증했습니다.”

 

이처럼 서영해 선생 관련 자료는 대부분 유족들에게 나온 것일 뿐, 관련 사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영해라는 인물이 완전히 잊혀진 까닭은 남북 분단과 관련돼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김구 선생을 추종했고, 이승만 박사와는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멀어진 사이가 됐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만 할 뿐, 흔적은 없습니다. 1956년까지는 상해에 사셨습니다.”

 

서영해, 그는 왜 철저히 잊혀졌을까.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이 북한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 측면에서 볼 때, 미국에 이승만 박사가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 선생이 있습니다. 주 정부 이외에 양대 축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이 프랑스에 있으면서 프랑스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스위스 제네바, 스웨덴, 중동,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활동했습니다. 활동 범위가 굉장히 넓었습니다. 체코에도 지부가 있었다고 하고요.”

 

정 과장은 이처럼 서영해 선생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기까지 조금은 견디기 벅찬 과정을 겪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공무원이 책을 쓴다고 하면, ‘저 친구는 일은 안 하고, 책만 쓰나’,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담컨대, 일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힘은 역사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나온다.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원동력입니다. 잊혀진 인물을 발굴한다는 짜릿함이 있죠. 잊혀진 역사적 사실을 발굴한다는 짜릿함은 금광을 캐는 광부들이 느끼는 감정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금맥을 개발한다는 짜릿함.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인 김규식, 조소앙과는 달리, 위대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철저하게 잊혀진 인물을 발굴해 알린다는 것에서 금맥을 발굴한 것과 같은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양 대 축 중 하나의 축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은 미국의 이승만을 중심으로만 얘기했었다면, 이제는 서영해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의 유럽외교에 대해서 부각시켜야 하며, 그래야 균형이 맞다고 보는 것이다.

 

서영해 선생은 860여 권이나 되는 책을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할 정도의 문필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단편소설 <구두 장수의 딸>, <잊혀진 파리의 여인> 등의 집필 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와 한국이라는 잊혀진 국가의 존재를 알린 거죠. 일본이 완전히 병합해서 지구상에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서영해라는 인물을 통해서 계속해서 오랫동안 한국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킨 것입니다.”

 

일요일의 역사가가 아닌,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으로서의 그는 이처럼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이 국가 균형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볼까.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죠. 사실은 지금은 남북이 분단돼 있기 때문에 남한만의 균형발전이잖아요. 어떤 이들은 국토가 좁은데 무슨 균형 발전이냐. 중국·유럽·미국도 아니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작아도, 균형 발전은 필요합니다. 수도권인 서울·인천·경기, 부산, 대전, 인천 등 광역시로 발전이 집중돼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인해 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한반도 균형 발전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현대사,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잊혀진 북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재조명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임시정부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일성 장군의 활동 내력입니다. 임시정부를 부각시키면 북한 정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비롯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부각시키면, 만주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 세력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만주를 함께 평가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것도 균형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좌우의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합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서영해 선생을 2019년으로 다시 불러낸 정 과장은 향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잊혀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삶 또한 다루고 싶습니다.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을 했던 민필호 선생의 아들 민영백 ()민설계 회장의 외삼촌이 신규식 임시정부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입니다. 민필호 선생, 신규식 선생의 삶에 대한 책은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스타트업4=임효정 기자] hj@startup4.co.kr

 

출처 : 스타트업4(Startup4)(http://www.startup4.co.kr)

 

 

Posted by 동글동글봄

안녕하세요. Y편집자입니다. 


오늘 새벽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고향 가는 티켓도 발권하고 룰루랄라

어제 오픈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도 달성했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을 14일인 어제 시작했고 

목표액을 백만 원으로 잡았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루 만에 목표액이 달성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관심에 보답드리기 위해 

책 출간에 더욱더 힘을 내겠습니다.


아직 펀딩일자가 한 달 남았으니 널리 많이 알려주세요.


[텀블벅 바로가기 https://tumblbug.com/activist]


*표지는 시안입니다. 더 좋은 디자인으로 독자분들에게 찾아가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전격 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MBC 방송 확정!

∴ 도서 소개

독립운동에는 무장투쟁만 있지 않다. 
언론가, 문필가, 외교관 그리고 독립운동가 서영해!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임시정부와 유일하게 연락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27년간 고군분투했던 큰 거목이었지만 최근에까지 우리에게는 잊혔던 이름!

긴밀하고 촘촘했던 서영해의 외교활동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고려통신사 설립
한국인으로 최초로 불어소설을 집필,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
한때는 이승만과 친하였고 김구와도 긴밀하게 연락했던 서영해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가 
1920년 12월 프랑스로 단신 유학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사무실을 얻어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였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고 전 유럽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참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단순히 기사만 쓴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서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담당하며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이라는 장편 소설과 『거울, 불행의 원인』이라는 이름의 한국 전래민담, 「구두장 수의 딸」과 같은 단편소설 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이후 상해에 살고 있던 
도산 안창호가 일경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 교섭을 한 것은
서영해의 큰 외교적 성과였다

프랑스 정부와 여론을 움직여 일본정부에 압박을 가하게 하고 국제여론을 조성하였다. 비록 안창호 선생이 석방되지는 못했지만 ‘서영해’라는 이름 석 자와 그가 운영하는 고려통신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안타깝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영해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시피 그는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 박사를 따르지 않고 김구 선생을 추종하였다. 

서영해가 우리에게 남긴 삶과 사상

서영해는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개인적으로는 단란한 가족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는 교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포사회로부터 재정적 후원도 기대할 수 없었고, 상해의 임시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았다는 기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영해 혼자서 독자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고군분투하였다.


**이번 책 출간으로, 서영해의 조국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신념을 기리는 건 물론, 서영해 이외에 잊힌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조명되어 그 숭고한 정신이 후대에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함께 화합하기를 바랍니다**

∴ 책 본문 소개



∴ 도서 사양

판형: 152mm*225mm
쪽수: 약 324쪽
정가: 16,000원
표지: 몽블랑, 210g, 4도 인쇄 
본문: 미색모조, 100g, 2도 인

∴ 본문 미리보기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아도 그 삶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한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한 내용들도 가득 차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서영해의 삶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압권일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그리고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만큼 그대로 투영된 삶도 많지 않다.

(…)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파리에 한정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전역과 때로는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유럽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_들어가는 말 중

고려통신사는 임정의 외무부가 대유럽 외교를 위해 서영해를 통해 1929년 파리에 설립한 통신사이자 외교기관이었다. 고려통신사 설립 이전에는 황기환을 중심으로 한 파리위원부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문제를 호소하고 독립을 청원할 목적으로 1919년 4월 설치되어 활동하였다. 파리위원부는 1921년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외교 및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유럽에서 임정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_고려통신사 설립 중

서영해가 1929년 파리에서 발간한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Autour d’une vie  coréenne)』은 그가 고려통신사를 설립한 이후 첫 번째 시작한 일이었다. 부제로 한문과 한글로 ‘한국역사소설’로 표시되어 있는 이 책은 순수 문학소설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었다._한국인이 쓴 최초의 불어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Autour d’une vie  coréenne)』

∴ 작가 소개 

정상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다.

∴ 굿즈 상세 소개 [미니 편지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보세요”

파리에서 홀로 독립운동을 하던 서영해는 임시정부에게, 백범 김구에게,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에게 자주 국제정세와 조선독립 운동의 염원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가 유일한 소통의 매체이자 독립을 활동을 알리는 끈이었습니다. 서영해가 간절한 마음으로 조선독립운동의 염원을 담은 편지를 썼듯이, 평소 미루어 두었던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해보세요.

-매직칼라 색편지지 6매, 110*160mm
-크라프트 봉투 2매, 115*165mm
-실버 스티커 2매

 ★ 리워드 한 눈에 보기 ★

A: 19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1권+미니 편지지1세트
B: 22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1권+미니 편지지2세트
C: 35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2권+미니 편지지1세트
D: 38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2권+미니 편지지2세트
E: 48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3권+미니 편지지1세트(무료 증정)

* 모든 도서는 저자 친필 싸인 초판본으로 발송됩니다.
* 모든 리워드 금액이 배송비 포함입니다.


· 프로젝트 일정

편집 최종 및 제작 준비: 2019.1~2019.2
인쇄 및 제작 시작: 2019. 2월(예정)
텀블벅 프로젝트: 2019.1.14.~2.14
배송: 펀딩 종료 후 2주 이내 후원자에게 도착 예정.


★★★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Posted by 동글동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