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어펙트 총서 01

약속과 예측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

잔혹한 낙관주의의 한국 사회 앞에 펼쳐진 두 갈래 길: '약속예측

 

한국판 뉴딜‘AI노믹스’, 그리고 여론 예측정치의 지평 위에서 작동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나중을 위해 지금의 잔혹함을 인내하는) ‘잔혹한 낙관주의와 기술적 미래라는 정동적 사실로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위협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 예측 정치, ()’의 총합 통치 전략이 바로 정동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동은 대안 정치의 핵심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정치가 단순히 공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이고 인문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동 이론이며, 이는 젠더 연구의 역사 위에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정동 이론이 전 지구적 연결의 시대를 사유하는 새로운 방법론이라면, 젠더 연구 역시 연결성과 윤리를 의존, 돌봄, 침해가능성 등의 맥락에서 오래 탐구해왔던 것이다.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팀 <연결신체 이론과 젠더·어펙트 연구>의 첫 성과로, 약속과 예측: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가 출간되었다. ‘젠더·어펙트 총서시리즈의 문을 여는 이번 책은 정동 이론을 젠더 연구와 연결시키고, 이를 젠더·어펙트연구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책에는 물질과 담론,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 등 근대적 이원론으로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정동적 분석을 담은 열두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역사공간그리고 매체의 범주에 따라 총 3부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구성은 정동의 근본적인 조건인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더 나아가 공간의 물리적이고 가상적인 차원을 함께 살핌으로써 그 경험의 정치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이 책에서 외부에서 수입된 이론이 아니라 자생적 연구를 통해 젠더·어펙트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정초하고자 하며, ‘연결성을 탐색하는 다채로운 시선과 함께 정동적 전회이후 인문의 미래를 약속한다.

 

 

주체의 역사 다시 쓰기 또는 연결신체의 역사 새로 쓰기

정동(情動, Affect) 이론은 부대끼는 몸들의 반복적인 되기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들의 시간성을 뒤쫓아 가는 일이다. 정동 이론이 즐겨 사용하는 약속이라는 어휘는 “pro(/전에)+mittere(놓다, 보내다)”라는 어원을 지니며 미리/앞서 내놓는다는 뜻으로, 현재에 이미 미래에 대한 전망이 기입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동적 약속의 장소 가운데 하나로서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교차하는 젠더화된 몸이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예측의 패러다임이 근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몸을 규율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젠더 연구와 결합한 정동 연구는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가 말하는 잔혹한 낙관주의가 새겨진 약속이라는 개념과 함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을 새롭게 연결하려는, 이를 통해 인문의 미래를 약속하려는 시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문의 방법론으로서의 정동 이론은 신체가 무엇을 하는지, 특히 신체가 언어와 이성이 아닌 힘들에 의해 어떻게 좌우되는지를 묻는다. 욕망하고, 운동하며, 사유하고, 결정하는 신체는 다른 신체들과의 부대낌과 상호 작용(inter-action), 그리고 내부 작용(intra-action)을 두루 거치며 되기를 반복하고 지속한다. 이 과정을 염두에 두었을 때, 개별적이고 내면적인 주체의 역사는 초개체적 차원의 정동과 뒤얽힌 연결신체의 역사로 다시 쓰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1연결신체의 역사에서는 장애, 돌봄, 기술 등의 범주를 중심으로, 연결신체의 역사를 중층의 연결망으로서 펼쳐 보이고자 한다. 박언주는 치매인을 상호정동적 관점에서 살피며 공유된 존엄(shared dignity)에 대해 논의한다. 소현숙은 장애인의 역사를 되짚으며, 1960~90년대 시행된 가족계획사업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장애인 강제불임수술을 비판한다. 이화진은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기 위한 시도로서 장애 관객의 범주를 길어 올린다.

마지막으로 권명아는 미래 예측 시스템을 해킹하는 시간여행자로서의 몸에 주목함으로써 연결신체의 역사와 미래 사이의 연결지점을 마련한다. 과거와 현재, 사회와 물질, 운동과 상태, 수동과 능동 등이 상호 공존하는 공통구조로서의 역사에 대한 검토는 인문의 미래를 연결성의 차원에서 다시 쓰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선험적 범주로서의 공간에서 살된 존재로서의 환경으로

부대낌과 상호작용을 그 조건으로 삼는 연결신체는 자연스럽게 살된 존재(fleshy beings)로서의 환경과 다시 한 번 연결된다. 그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동 또는 운동, 흐름을 발생시키고, 또한 다시 그 흐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정동-발생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2공간과 정동은 특정한 정동적 영역으로서 공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김보명은 최근 여성 공간에 대한 접근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트랜스젠더 여성 배제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해 페미니즘 공간정치학의 역사와 전망에 대해 고찰한다. 권영빈은 서사화가 아닌 공간화의 관점에서 작가 박완서의 소설에 나타난 을 젠더지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또 다른 젠더지리지로서 신민희의 글은 로컬 부산의 성장서사에 의심을 품으며, 여성의 해양노동이 이루어지는 부산의 배후지를 비로소 가시화한다. 이시다 게이코는 야스쿠니신사를 중심으로, ‘남성적내셔널리즘과 여성적위령 행위의 관계를 탐색한다. 2부에서 다루는 다양한 층위의 정동적 공간들은 이처럼 젠더의 범주에서 검토됨으로써, 교차성 및 취약성에 대한 사유를 이끈다.

 

 

 

미디어로서의 신체, 신체의 정동적 형성에 얽힌 미디어라는 포맷

정동적 공간은 물리적 장소로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예컨대, 최근 들어 그 용례가 빈번하게 발견되는 피지털(phygital)’이라는 용어는 신체를 둘러싼 물리적 장소와 미디어라는 가상적 장소의 혼종을 사유하게 한다. 이때, 미디어는 단순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공론장, 아카이브 등 결코 단성적이지 않은 포맷(formats)을 취하며 미디어에 접속된 신체를 정동적으로 형성(formulation)한다. 신체 역시 다양한 힘들이 교차 또는 횡단하는 일종의 미디어임은 물론이다.

3미디어와 연결성은 바로 이러한 사례들, 즉 개인적이고, 집단적이고, 담론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신체들이 서로 정동을 일으키고 수정되는 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다. 최이숙은 함께 돌봄을 의제화한 정치하는 엄마들의 관계성을 각종 미디어 안팎에 걸쳐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권두현은 동아시아 미디어 문화의 주요한 테마였던 신파(新派)’를 정동체계로서 논의하기 위한 이론적 모색을 시도한다.

김나영은 고전소설이라는 연구대상과 연구자가 디지털이라는 매체적 조건 속에서 연결되는 새로운 양상에 주목한다. 입이암총은 민주화투쟁의 장()으로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홍콩의 사례를 통해 용무(勇武)’라는 정동에 휩싸인 몸을 증강현실적 미디어와 함께 살펴본다. 젠더·어펙트 총서의 첫 번째 책은 이러한 창발적인 논의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 소개

*젠더·어펙트연구소

젠더·어펙트연구소는 정동(情動, affect)과 젠더의 연구방법을 결합하여 주체와 몸, 삶과 죽음, 질병, 장애, 소수자, 포스트휴먼 등에 대한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며 연결의존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의제를 발굴·연구하고 있다.

 

박언주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주요 교육 분야는 사회복지실천, 노인복지, 사회복지와 문화다양성, 질적연구방법론 등이다.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 연구와 더불어 여성노인의 구술생애사 연구를 통해 노동, 빈곤, 이주 등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여성노인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1980년대 중산층 국제이주가족의 계층 재생산 전략과 젠더역할의 변화, 가정폭력피해여성의 자녀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권자 결정 경험등이 있다. 공저로 조국 근대화의 젠더정치(아르케, 2015), 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다산출판사, 2014)이 있다.

 

소현숙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한국 근현대 가족사, 사회사, 여성사, 마이너리티 역사를 전공했다. 주요 논문으로 “Collaboration au féminin en Corée”, 식민지시기 불량소년담론의 형성, '만들어진 전통'으로서의 동성동본금혼제와 식민정치, 식민지 조선에서 불구자' 개념의 형성과 그 성격, 전쟁고아들이 겪은 전후:1950년대 전쟁고아 실태와 사회적 대책등이 있으며, 저서로 이혼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역사비평사, 2017), 공저로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한국과 독일 일상사의 새로운 만남(책과함께, 2006), 식민지 공공성: 실체와 은유의 거리(책과함께, 2010), 日韓民衆史硏究最前線(有志舍, 2015) 등이 있다.

 

이화진

연세대학교 매체와예술연구소 전문연구원. 연세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한국의 영화와 극장 문화에 대해 연구해왔다. 주요 논문으로 전쟁과 연예, 더 많은모두를 위한 영화, 할리우드에서 온 왜색영화등이 있다. 저서로 소리의 정치(현실문화, 2016), 조선 영화(책세상, 2005)가 있고 공저로 조선영화와 할리우드(소명출판, 2014), 조선영화란 하()(창비, 2016), 할리우드 프리즘(소명출판, 2017),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등이 있다.

 

권명아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근현대 문학과 젠더 이론, 정동 연구, 문화 이론 등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와 함께 지역의 문화적 실천에도 주력해왔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반헤이트 스피치 운동과 이론에 대한 비교 고찰, 증강 현실적 신체를 기반으로 한 대안기념 정치 구상등의 논문을 썼으며, 주요 저서로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 작용의 정치(갈무리, 2018),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갈무리, 2012) 등이 있다.

 

김보명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여성학을 전공했다. 페미니스트 역사와 시간성, 인종정치학에 관심을 갖는다. 최근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재부상에 대해 연구하면서 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천이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에 대한 질문들을 탐색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페미니즘 정치학, 역사적 시간, 그리고 인종적 차이, 혐오의 정동경제학과 페미니스트 저항등이 있고, 공저로 교차성×페미니즘(여이연, 2018)이 있다.

 

권영빈

젠더·어펙트연구소 특별연구원. 동아대에서 강의한다. 정동과 공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로 한국 현대소설을 읽고 분석하면서 젠더화된 신체와 여성의 공간 경험을 젠더지리학의 방법으로 연구한다. 최근 박완서 소설의 젠더지리학적 고찰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 논문으로 박완서의 미망에 나타난 ()근대공간의 건축술: 젠더지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성(開城)의 탄생이 있다.

 

신민희

젠더·어펙트연구소 특별연구원.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후 경성대, 동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불륜 서사의 문학적 재현 방식 연구(2015)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역의 문제를 젠더적 관점, 정동적 관점에서 독해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시다 게이코(石田 圭子)

일본 고베대학 국제문화학부 준교수. 연구 분야는 미학·예술학·표상문화이다.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문교육학부 외국문학과(영어·영문학) 및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예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논문으로 ボリス・グロイスにおけるアートと政治交差について, アルベルト・シュペーアの廃墟価値理論をめぐって, 今日のアートにおける批判とはかー参加型アートを中心にー가 있고, 공저로 Transcultural Intertwinements in East Asian Art and Culture, 1920s-1950s(Freie Universitaet Berlin, 2018)가 있다.

 

최이숙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미디어 및 언론 현상을 연구해왔다. 주요 논문으로 미투 운동(#Metoo) 관련 TV 보도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 1960~1970년대 한국 신문의 상업화와 여성가정란의 젠더 정치, 1920년대 동아일보기사에 나타난 이성-감정등이 있다. 공저로 다시 보는 미디어와 젠더(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한국신문의 사회문화사(한국언론진흥재단, 2013), 한국텔레비전 방송 50(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등이 있다.

 

권두현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동국대에서 강의한다. 미디어와 한국 현대문학/문화의 관계, 특히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와 대중문화를 대상으로 테크놀로지와 정동의 문제틀을 적용시킨 연구들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텔레비전 현상과 현대 드라마의 미학, 기계의 애니미즘 혹은 노동자의 타나톨로지-1970년대 한국의 테크노스케이프와 생명, 신체, 감각, 관계론적 존재론의 정동학-텔레비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타난 연결과 의존의 문제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나영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성신여대에서 강의한다. 한국 고전소설과 설화 등 고전서사 분야를 연구한다. 변신 모티프로 박사학위논문을 썼고 이후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에 관심을 두고 텍스트별 등장인물의 차별화된 특성을 구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운영전>의 서사구조에 내재한 비극성: 신화적 서사패턴의 변용과 인간 욕망의 좌절, 노비로 등장하는 정수남과 느진덕정하님의 정체-안사인본 <세경본풀이>를 중심으로, 고전서사에 형상화된 노비의 존재성 탐구등이 있다.

 

입이암총(葉蔭聰)

링난대학교 문화연구학과 방문조교수이자 홍콩 독립미디어 InMediaHK의 공동설립자. 국립대만대학 건축과 도시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연구 분야는 도시학·현대 중국학이다. 주요 논문으로 Becoming a Revanchist City: A Study of Hong Kong Nativist Movement, Political De-politicization and the Rise of Right-wing Nativism가 있고, 저서로 Nativist Right and Economic Right: The Case of an Online Controversy(本土右翼與經濟右翼由一宗網絡爭議說起, jcMotion, 2016)가 있다.

 

 책 속으로

P. 31-32

한국 사회에서 치매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지배적 치매 서사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고, 그 과정에서 치매인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왔다. 지배적인 치매 서사는 치매 증상을 중심으로 획일화하여 기능 상실과 의존을 부각함으로써 치매인의 개별성과 다양상을 간과하고 있고, 돌봄의 대상으로 치매인을 인식함으로써 치매인의 인간 존엄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축소해 왔다. 대안으로 제시된 인간중심접근은 치매인의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조건에 해당하는 개별성과 독립성은 인지능력에 기반한 근대적 개인 개념에 근거하고 있어서 상실과 의존으로 표상되는 치매인의 경험세계 속에서 긴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치매인의 경험세계에서 상실과 의존, 그리고 개별성과 독립성은 어떻게 유지되거나 극복되는지, 나아가 치매인의 인간 존엄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_박언주, 인간 존엄의 조건으로서의 상호의존과 연결성: 치매인의 경험세계를 중심으로중에서

 

p. 73

적정한 수의 자녀를 출산하는 것과 더불어 건전한자녀의 출산이라 표현되었던 자녀의 은 바로 인구의 자질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이미 인구를 인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시선은 일제 말 전시체제하에서 나타났지만,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와 발맞추어 인력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실업자를 없애고 완전고용을 이룩하자는 목표가 제시되는 가운데, 인구의 양적인 억제와 더불어 인구의 질적인 향상이 과제로 인식되어 갔던 것이다.

_소현숙, 우생학의 재림과 정상/비정상의 폭력: 가족계획사업과 장애인 강제불임수술중에서

 

P. 114

다양한 손상을 지닌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분류하고 동질화하는 것은 그 집단 내의 다양한 차이를 평준화해버리기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 관객이라는 범주는 장애와 비장애라는 이분법을 넘어 장애의 다양성과 교차성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기 위한 이론적 전략으로서 유효하다. 장애 관객의 범주는 사회적 장애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을 거부하고 장애 그 자체를 본질화하려는 게 아니라, 손상이 있는 몸을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신체적 온전함이라는 보편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특수성을 드러내고, 관람 공간이 신체적으로 정상적이고 중립적인공간으로 동질화되는 데 저항하려는 것이다.

_이화진, 보통이 아닌 몸의 영화 보기에 대하여: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관객의 역사화를 성찰하기중에서

 

P. 157

한국 사회는 오래된 잔혹한 낙관주의’(나중을 위해 지금의 잔혹함을 인내하는)와 기술적 미래라는 정동적 사실로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위협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정동 이론과 페미니스트 정동 이론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몸 없는 미래는 없으며, 미래는 몸으로 온다. 몸 없는 미래를 꿈꾸는 정치적 기획이 엄청난 미래를 예측한다고 해도, 결국 당도하는 것은 죽음 혹은 소멸이다. 사라지는 몸들을 통해 이미 당도하고 있듯이 말이다.

_권명아, 젠더·어펙트 연구에서 연결성의 문제: 데이터 제국의 도래와 인문의 미래중에서

 

P. 203

페미니즘 리부트의 강력한 모멘텀을 제공한 강남역 사건에서부터 미투 선언의 흐름들, 그리고 최근의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들은 여성들이 안전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여성만의 공간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유가 되었다. 신체적, 문화적 동질성으로 상상되는 여성은 공간이자 공동체이자 집합적 주체로 기능하면서 페미니즘 실천의 안전하고 확고한 터전으로 표상되지만 실제로 이렇게 동질적이고 견고한 실재로 표상되는 여성이 성별이분법과 생물학적 본질주의의 작용 속에서 담론적으로 구성되고 실천되는 범주이자 효과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질주의적 담론에 기대어 여성대중을 페미니즘의 주체와 동력으로 조직하고 이를 통해 여성의 권리와 이해관계를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들 속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의 탈정치화와 보수화에 있다.

_김보명, 여성 공간과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배제를 중심으로중에서

 

P. 219-220

박완서는 등단작 나목을 포함해 전쟁 경험을 환기하고 있는 다수의 작품 속에서 과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투쟁을 초점화하는데, 이때 집은 가부장 질서에 매어 있는 여성들의 거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지닌 지리학의 차원에서 보다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집을 매개로 펼쳐지는 전시의 경험은 그 안에서 부대끼고 시달리는 몸()의 물질성에 각인됨으로써 전쟁이 몸으로 접혀진(fold) 특정한 존재 양태를 불러온다. 집은 더 이상 개인에게 친밀하고 안정된 공간이 아닌 개인 내부 혹은 가족·공동체를 화해 불가능한 존재로 구조화하는 장소가 되며, 이러한 경험은 그것이 체현된 이들 의 물질성과 확실성으로 인해 무엇으로도 재현되거나 환원되거나 분유(分有)되지 않는다.

_권영빈, 한국전쟁과 젠더화된 생존의 기록: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전시(戰時)의 집에 대한 젠더지리학적 고찰중에서

 

P. 253

부산이 도시의 성장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은 공간의 위계적 분배를 통해 작동해왔다는 것을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삼는다. 그 안에서 지역-낙후-낙후된(나이 든) 사업-기술의 발전 없음의 관계는 노동이 젠더화되는 지점과 맞닿는다. 따라서 노동의 공간적 분할과 불균등한 발전의 과정을 시간성·인과성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사유를 통해 노동의 젠더화를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는 남성노동자에서 여성노동자라는 자리바꿈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라는 주체 역시 단일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없음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배후지를 젠더지리학적으로 검토하는 일이다.

_신민희, 항구도시 부산과 여성노동자들의 해양노동중에서

 

P. 286

영화(<남자들의 야마토>)에선 전우를 위해,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결의가 남자들의 아름다운 각오로 여기저기서 강조되고 있다. 또 특공으로 인한 죽음의 불합리함을 언급하는 곳이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의 각성, 이를 위한 핑계를 누구라도 납득하도록 만들고 만다. (중략) 이는 야스쿠니에 바쳐진 신부인형이 결국엔 야스쿠니가 말하는 내셔널리즘 신화를 강화하는 데 쓰이고 마는 구조와 유사하다. 전사에 따른 슬픔과 아픔(‘여성적인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내셔널리즘(‘남성적인 것’)의 강화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_이시다 게이코, 야스쿠니신사의 위령과 여성적인 것의 관계에 대해: 현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한 측면중에서

 

P. 326

정치하는엄마들이 표방한 당사자 정치는 한국사회에서 돌봄을 둘러싼 정치의 영역이 매우 광범위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돌봄 책임자로 규정된 여성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교차하는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배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 전 구성원들이 연대에 기초한 함께 돌봄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이들의 정관과 차별에 맞선 다양한 활동은 보살핌의 윤리가 민주주의를 가부장제로부터 구원해내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함을 보여준다.

_최이숙, 모성에 대한 전유와 돌봄의 의제화: 정치하는엄마들을 중심으로중에서

 

P. 382

신파성은 법적 정의와 시적 정의, 정의 윤리와 돌봄 윤리, 시장 관계와 돌봄 관계 등 수많은 힘들의 구성물로 볼 수 있다. 그 힘들에 주목할 때, 신파성에 대한 논의는 격동하는 감정으로서의 파토스(pathos)에서 에토스(ethos)로 그 초점을 옮길 수 있게 된다. 에토스는 체계적 양상을 띤다. 에토스는 개인의 본능과 정서의 조직이 문화적으로 표준화된 체계의 표현이다. 따라서 에토스는 사회 미학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에토스는 윤리 미학과도 밀접하며, 윤리 미학은 또한 윤리 정치이기도 하다. 몸과 힘과 윤리의 문제는 신파를 미감의 문제로서 다루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하는 동시에 넘어서면서 정동적 지평에서의 논의를 시도하게끔 한다.

_권두현, 신파성재론을 위한 시론: ‘신파에 대한 사회적-관계적 접근중에서

 

P. 394

현재와 미래의 고전문학 연구의 정동적 실천 방향에 대한 고민 역시 학문 연구에 있어 일정한 혹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연구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태되지 않고 진전할 수 있는 원동력과 추진력을 발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종이 문서에 활자화된 텍스트를 대상으로, 연구자의 직관과 통찰을 기본 도구 삼아 이룩되어 온 고전소설 연구가 과학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는 데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고전소설 텍스트와 연구자[인간] 그리고 기계[컴퓨터]가 어떠한 관계 맺음[연결]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가야 하는지를 짚어보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인지할 때이다.

_김나영, 고전서사 연구에서 연결성에 대한 논의의 현단계: 고전소설의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 사례 검토를 중심으로중에서

 

P. 450

나는 용무(勇武)가 일종의 젠더화된 정동으로, 진화적 시간 흐름으로서의 민주화가 시간적으로 붕괴하고 교착에 빠졌다는 감각으로 구성되는 다양한 정서들의 집합이라고 주장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젊은 남성 활동가들은 외국인 혐오와 영토적 충성심에 기댄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의 소멸, 단지 남성 활동가 단체에 특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배적 자각이 증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전세계에 걸친 오늘날의 정치 문화에 중심적인 증상이기도 하다.

_입이암총, 홍콩의 파열된 시간: 청년, 행동주의, 영토적 충성심중에서

 

   목차

서문: 정동적 전회 이후, 젠더어펙트 연구의 시작을 알리며

 

1: (연결)신체의 역사

인간 존엄의 조건으로서의 상호의존과 연결성: 치매인의 경험세계를 중심으로 (박언주)

우생학의 재림과 정상/비정상의 폭력: 가족계획사업과 장애인 강제불임수술 (소현숙)

보통이 아닌 몸의 영화 보기에 대하여: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관객의 역사화를 성찰하기 (이화진)

젠더·어펙트 연구에서 연결성의 문제: 데이터 제국의 도래와 인문의 미래 (권명아)

 

2: 공간과 정동

여성 공간과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배제를 중심으로 (김보명)

한국전쟁과 젠더화된 생존의 기록: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전시(戰時)의 집에 대한 젠더지리학적 고찰 (권영빈)

항구도시 부산과 여성노동자들의 해양노동 (신민희)

야스쿠니신사의 위령과 여성적인 것의 관계에 대해: 현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한 측면 (이시다 게이코)

 

3: 미디어와 연결성

모성에 대한 전유와 돌봄의 의제화: 정치하는엄마들을 중심으로 (최이숙)

신파성재론을 위한 시론: ‘신파에 대한 사회적-관계적 접근 (권두현)

고전서사 연구에서 연결성에 대한 논의의 현단계: 고전소설의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 사례 검토를 중심으로 (김나영)

홍콩의 파열된 시간: 청년, 행동주의, 영토적 충성심 (입이암총)

 

 

 

 

 

 

지은이: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쪽 수 : 528

판 형 : 148*225

ISBN : 978-89-6545-690-2 93300

가 격 : 30,000원

발행일 : 2020년 12월 28일

 

‘젠더·어펙트 총서’ 시리즈의 문을 여는 이번 책은 정동 이론을 젠더 연구와 연결시키고, 이를 ‘젠더·어펙트’ 연구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책에는 물질과 담론,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 등 근대적 이원론으로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정동적 분석을 담은 열두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역사’와 ‘공간’ 그리고 ‘매체’의 범주에 따라 총 3부로 구성된다.



 

 


 
약속과 예측 - 10점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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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56회 저자와의 만남

『집요한 자유』의 정미숙 평론가를 만나



지난 2월 27일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정미숙 평론가의 『집요한 자유』로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날의 자리는 소박했지만 참석하신 분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늦은 포스팅이 아니길 바라며, 이날의 이야기를 요약 발췌해서 담았습니다. 조금씩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새 산지니의 문화로 자리 잡은 담당 편집자의 인사말. 저는 이날 『집요한 자유』는 애정으로 문학을 평했다고 오신 분들께 전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정미숙: 평론집을 진작 냈어야 했는데, 글부터 쓰자는 생각이 앞서 책은 천천히 써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뒤늦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책 출간과 함께 제가 사랑하는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 좋네요.


책 표지 그림은 앙리마티스의 <이카루스>입니다. 표지에 대한 의견을 출판사에서 물어왔을 때 앙리마티스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배경이 된 파랑과 보라는 이상, 떨어지는 별, 구멍 난 심장. 이러한 모습이 저와 닮은 듯했고 늘 무언가를 극복하고자 하는 야수성이 제 내면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그림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김필남: 책 제목이 『집요한 자유』인데 ‘집요한’과 ‘자유’과 자칫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은데 책 제목을 집요한 자유라고 지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정미숙: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을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 멀리 있는 자유를 집요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집요한' 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더라고요 하하. 자신이 원하지 않고 밀쳐버리면 소설도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집요한 자유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정미숙 평론가는이번 책에서 젠더의 시각으로 소설, 시, 시조를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를 비평했습니다. 전공분야인 소설 이외에 다양한 장르를 비평할 수 있었던 청탁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하 그러나 숨겨진 놀라운 일화도 있었습니다.




정미숙: 여성소설 연구자이고 페미니즘 연구자이기에 저에게 이런 주제로 청탁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사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문학을 즐기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청탁 들어온 문학작품을 넘겨 읽으면서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산 여고를 다녔는데요, 제 모교에 시조로 등단하신 이우걸 선생님이 세계사 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고교 시절에도 제가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우걸 선생님이 이영도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께 이영도 유치환의 서한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네가 그런 시도 읽었느냐고 하셨지요.


이후 등단을 하고 평론가가 되어도 글을 쓰지 않았을 때 이영도 선생님이 저에게 왜 평론가가 되어도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시조를 주면서 평론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진땀이 났지요, 그러나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그래서 이우걸 선생님의 시조를 평론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시조의 문이 열리면서 시의 비평문도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전공이 아니었기에 필요 이상의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면서 작품에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필남: 이우걸 선생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정미숙: 지금까지 나온 이우걸론 중에 네가 최고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하


 작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도 이렇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 값진 건 재능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그 재능을 포기하지 않게 격려해 주신 이우걸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과 제자, 작가와 평론가. 좀처럼 맺기 어려운 인연이지만 서로에게 좋은 벗이 된 것 같네요. 물론 이우걸론은 책 3부「탐미적 성찰의 흰 그늘」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여『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는 이영도 시인에게 연서를 보낸 유치환 시인의 편지를 엮은 서한집입니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저 역시 궁금하네요.

다음은 젠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젠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정미숙: 젠더라는 것은 태어나서부터 정치적인 이슈를 가지게 됩니다. 젠더를 획득하면서 다수에서 소수가 되거나 중심에서 주변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젠더를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여성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치열하게 고민한 고뇌를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릴 때는 페미니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을 다니면서 억지로 페미니즘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저는 가부장의 혜택을 받고 자랐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접근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미숙 평론가는 여성주의가 최고이거나 독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젠더는 공평하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겠지요.

여성주의, 여성 재현 방식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중 70~80년대 노동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작품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정미숙: 그 당시 대표적인 시인은 백노해와 백무산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동시를 쓸 때는 여성 시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식이 같을 수도 없었고요. 여성의 몸이 워낙 취약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돈도 힘도 없기에 성추행 등 자신의 취약한 상황을 고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명으로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현장의 강렬함을 전달하기 위해 유산이나 김혜자의 안내양 이야기에서 몸을 수색당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안내양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등 몸이 약하기 때문에 사건 안에서도 주변이 될 수밖에 없는 여성을 이야기합니다. 김혜자 시인은 대학 졸업자지만 그 시대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시를 썼고 그러한 시들은 지식인들에게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시대도 지금과 같이 여성의 몸과 체력이 떨어지면서 노동 현장을 지속적으로 지키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젠더는 몸-젠더-섹슈얼리티가 함께 가면서 문제를 발생합니다. 동성애도 여자의 몸에 남자의 젠더관이 들어와서 문제가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은 부분이고요.


이 이야기를 들은 독자 “노동시에서 노동자 전체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다시 여성으로 분화되어 여성의 자리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노동시와 성차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 1부 「사랑과 소외의 변주곡」에서 자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쓰인 저자와의 만남이네요. 그러나 실제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정미숙 평론가의 꾸밈없고 솔직한 대답이 좌중을 사로잡으며 시종일관 유쾌했습니다. 텍스트와 텍스트 밖을 오가며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정미숙 평론가가 젠더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며, 삶의 문제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대학 때 저 역시 페미니즘을 전공한 전공 교수님 덕분에 강제적으로 수업을 듣고 심지어 영화분석까지 했던 그때를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그 수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사유할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 마지막 소감을 듣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마무리 역시 정미숙 평론가다운 솔직하고 재치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공부할 의향이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면서 체력이 되면 열심히 쓰고 싶습니다.”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공부할 의향이 있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물론 체력도요.

이 글을 보신 분은 정미숙 평론가에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다양한 글을 청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날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3월 저자와의 만남은 목학수 교수의『미국대학의 힘』입니다.

  오늘 18일 화요일 

  부산대학교 앞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에서 7시에 열립니다. 

  많이 놀러 오세요! 자세히 보기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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