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선구적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가 제시하는 중국학의 미래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

평생 중국 연구에 천착하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국내에서도 중국 철학에 대한 여러 저서와 중국 근대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평가를 비판하는 『중국의 충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0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를 선도하며 중국의 왕후이, 쑨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미조구치 유조의 첫 저서이자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드디어 국내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구축하고자 한 선구적 중국연구자의 선언이다. 문화혁명을 비롯하여 20세기 후반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관찰하면서, 저자는 유럽을 기준으로 해서는 중국의 근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미조구치는 선진-후진이라는 틀 대신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세계를 볼 것을 제안한다.

1989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행된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국내에 중국학 연구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중국학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중국의 근대성에 대한 미조구치의 총체적인 시각을 오롯이 전해주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중국학과 사상에 입문하려는 연구자들, 그리고 중국을 대상으로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과 청년들은 21세기 중국학의 방향을 정립하고 중국 연구가 지닌 세계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중국학에도 일침이 되는

서구 기준 단계론과 일본의 ‘중국 없는 중국학’ 비판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중국의 근대를 보는 종래의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시작된다. 미조구치가 비판한 중국 연구의 시각은 서구 근대의 기준에 의해 중국의 근대를 단계론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상화된 중국상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하는 단계론적 시각은 진보-보수, 사회주의-자본주의, 선진-후진이라는 단순이원론적 구도에 의지해, 중국의 근대가 지닌 독특함을 정확히 투시하지 못한다. 저자는 종래의 양무운동-변법유신-신해혁명이란 단계론적 구도에 따른 중국의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병폐를 낳았는지 이 책에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시각으로는 1949년 이후 중국의 근대사 역시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사회주의와 198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수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조구치는 일본의 ‘중국 없는 중국학’을 비판한다. 일본의 중국학은 일본과 중국이 공유하는 문화에 매몰되어 정작 중국과 일본의 차이는 세심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나 단테를 읽는 사람이 유럽 근대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고전인 『사기(史記)』나 『당시(唐詩)』를 읽는 것은 순전히 문학 또는 철학계의 일이지, 당대(唐代)와 송대(宋代) 중국을 알기 위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유교가 재평가되면서 일어난 유교 관련 연구들도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지닌다.

중국이 일본과 유럽과는 매우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는 그 상대적 독자성이, 이때 유럽형 사고에 익숙한 우리 일본인의 역사관에 많은 자극을 줄 것이라는 한에서 그 독자성—단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이 문제가 될 것이다. (112쪽)

미조구치 자신은 중국의 근대를 “대동(大同)적 근대”라고 정의하고, 근대 중국의 혁명 전체를 장기적으로 부감하는 시각을 갖지 않고서는 중국의 근대를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중국의 ‘이(異)’적인 전(前)근대와 근대의 총 프로세스를 역사적으로 투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문의 목적이 중국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중국학”

『방법으로서의 중국』에서 미조구치는 “자유로운 중국학”을 주창한다. 여기서 ‘자유’는 진화론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학(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중국 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는 이제까지의 중국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보증이 되며, 이 객관·대상화의 철저함이야말로 일본의 한학이나 지나학과 같은 “중국 없는 중국학”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단순히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중국에 대한 몰입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또 하나의 중국 밀착적 중국학이 되거나, 시종 자신의 개인적 목적의 소비에 이용하는 점에서 결코 자유로운 중국학이 아니다.

미조구치는 진정 “자유로운 중국학”은 어떤 양태이든 목적을 중국과 자기 내부에 두지 않고, 결국 목적이 중국과 자기 내에 해소되지 않는, 역으로 목적이 중국을 넘는 중국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이다. 미조구치는 중국 연구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삼았고, 그래서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라고 하는 자신의 중국 연구의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은 우리가 원한다면 중국이라는 이 좋든 싫든 독자적인 세계를 통해 이른바 중국 렌즈로 유럽을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종래의 ‘세계’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유’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법’, ‘계약’이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 보편적 원리로 간주되어온 것을 일단은 개별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상대화이지, 소위 일본주의적인 일본 재발견, 동양 재발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화는 세계의 상대화이므로 당연히 자기의 세계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중국학이 중국을 방법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일본도 상대화하는 눈에 의해 중국을 상대화하고, 그 중국에 의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 인식을 충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화된 다원적 원리 위에서 한층 고차원적인 세계상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128쪽)




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과연 우리의 중국학은 우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는 중국 연구를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인 인식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을까.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기존의 원리들을 재검토하는 것은 새로운 원리의 모색과 창조에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을 방법으로 한다는 것은 세계의 창조 그것 자체이기도 한 바인 원리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독자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중국을 상대화하여 바라보는 작업은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세계를 오롯이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21세기에도 서구의 사상은 여전히 지식 체계에서의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으로 중국과 뭉뚱그려지는 우리나라의 중국학도 미조구치가 지적한 ‘중국 없는 중국학’에 빠질 위험이 있다.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 연구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길잡이 삼아 우리의 중국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기원한다.




지은이 : 미조구치 유조 (溝口雄三)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중국 사상사를 전공하였다. 도쿄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나고야대학 대학원을 거쳐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중국철학과 교수와 다이토분카대학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2010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은 책으로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방법으로서의 중국』, 『중국의 공과 사』, 『중국의 사상』, 『중국사상문화사전』(공저)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옮긴이 :

서광덕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현 건국대 강사

역서: 『루쉰』, 『일본과 아시아』, 『중국의 충격』, 『루쉰전집』 등


최정섭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현 성결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 성공회대 강사.

역서: 『텍스트의 제국』,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차례




방법으로서의 중국아시아총서 18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지음 | 서광덕 · 최정섭 옮김 | 학술 |

신국판 296쪽 | 25,000원 | 2016년 1월 29일 출간 | 978-89-6545-331-4 94910


평생 중국 연구에 천착하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의 첫 저서로,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구축하고자 한 선구적 중국연구자의 선언이다. 선진-후진이라는 틀이나 유럽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세계를 볼 것을 제안한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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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턴 시작 후 첫 서평을 올리게 된 ‘솔율’입니다    즐거워

막상 시작하려니 긴장되는 이 기분.. 두근두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앞표지 (슬쩍 나온 저 통통한 건.. 어허허)

  오늘 제가 서평을 쓸 책은 ‘류원빙’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라는 책입니다. 중국 영화라니. 한국 영화나 미국 영화에 익숙한 제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런데 그 낯선 느낌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요. 전반적으로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역사와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먼저 저자에 대해 알아볼까요? 저자 ‘류원빙’은 1967년 중국 산둥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도쿄대학원에서 학술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영화전문대학원대학 객원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학술연구원으로 있다고 합니다. 전공 분야는 영화론과 표상 문화론이라고 하네요.

  저서로는 『중국 항일 영화, 드라마의 세계』(쇼덴샤 신서, 2013), 『증언 일중 영화인 교류』(슈에이샤 신서, 2011), 『영화 속의 상하이』(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4) 등이 있습니다. 저서만 보아도 저자의 자국 영화에 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네요.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도서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차

  사진을 보셨듯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추천사, 서장, 본문, 맺음말,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서를 읽은 후 본문을 제외한 부분들 또한 본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특히 중국의 제6세대라 일컫는 감독 중 하나인 ‘자장커’감독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답니다.

  잠시 맨 위의 도서 사진을 다시 볼까요? 본 제목 아래 부제로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이란 문구가 쓰인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어느 영화 소년은 바로 이 책의 저자를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부제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은 1980년대 파란만장했던 중국의 역사와 함께 그 속에서 꽃피웠던 영화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봅시다. 본문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문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혁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줄인 말인데요, 모두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하 문혁)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 운동입니다. 본래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으로 인해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현상이 발생하자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면서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개방파들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군사)’이 조직되었고 그들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이때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고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숙청되었습니다. 마오쩌둥 사망 후에야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를 내렸고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는데요.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바로 문혁 이후의 중국 사회를 영화라는 소재를 빌려 풀어내고 있습니다.

 

 

  약간 어려우시죠?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 장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과연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긴장긴장)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의 본문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문혁에서 덩샤오핑 시대로-불길한 기억으로부터의 해방, ‘제2장, ‘외부로’로 향하는 시선-한정된 정보로부터 얻는 영감, ‘제3장, 제작, 유통, 검열-중국 영화를 지탱하는 것, 방해하는 것, ‘제4장, 스타 탄생-개혁개방 후, 물신이 된 여배우가 그것인데요. 차근차근 한 장씩 알아가 보도록 합시다.

 

 

  제1장, 문혁에서 덩샤오핑 시대로-불길한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에서는 중국의 문혁시절 고난을 그려낸 당시 중국 영화의 독특한 장르 ‘상흔 영화’를 중심으로 당대의 상황이 ‘역사’로 변모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혁 이후 1978년이 되자, 덩샤오핑을 대표로 하는 ‘탈문혁파’가 마오쩌둥 이론을 상대적으로 수용해야함을 주장하는 동시에 문혁 시절 속박되었던 사상에 대한 탈피를 외칩니다. 이는 사상 해방 운동과도 연결되며 이전 중국 전체를 옭아맸던 문혁 이데올로기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여 새로운 ‘덩샤오핑 시대’의 서막을 알립니다.

  이러한 정세 변화를 수용하듯, 중국 내에선 1979년을 경계로 문혁과 정면으로 맞서는 새로운 유형의 영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문혁 당시 시민들이 겪은 고통, 그리고 트라우마를 감상적으로 표현한 소위 ‘상흔 영화’라 불리던 장르인데요. 이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중국에서 제작된 120여편의 영화 중 50편에 달했다고 합니다. 주로 ‘사인방(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권력을 휘두르며 탄압을 주도한 공산당 지도자 네 명. 장칭, 야오원위안, 왕훙원, 장춘차오)에 의해 탄압받은 정치적 사건이 중심이었다고 하네요.

 

- 영화 <열번째 총알자국> 문혁 시기,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은 아버지. 그리고 장난감 총을 겨누고 있는, 비행의 길로 들어선 아들. <열번째 총알자국>에선 둘의 대조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또한 ‘상흔 영화’의 가장 큰 모토는 자본주의의 억압을 고발하는 것으로, ‘적에게 입은 상처’가 모티프로 종종 등장했습니다. 사상을 억압하고 한 가지로 압축하려 했던 마오쩌둥이 아닌 개방적인 정책을 취했던 덩샤오핑 정부의 흐름과 이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이전의 억압과 폭력을 적으로 두고 남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서로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방법으로 이러한 장르를 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2장, ‘외부’로 향하는 시선-한정된 정보로부터 얻는 영감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서방의 문화가 중국에 유입될 때 일어난 ‘문화 번역’문제를 대중, 그리고 예술 운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검증합니다.

  당시 서양 문화의 중심에는 춤이 있었습니다. ‘디스코 댄스’‘브레이크 댄스’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당시 외국 영화를 보면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내로 유입된 춤들은 중국 청년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중국의 영화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젊은 주인공이 로큰롤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강렬한 장면이 포스터로 인쇄되는 등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성향을 보입니다.

 

- 영화 <로큰롤 청년> 서구문화 유입의 예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중국의 영화감독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입니다. 앙드레 바쟁의 영화는 세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데요, 바로 ‘롱 테이크’, ‘리얼리즘 미학’, ‘영화의 사진적 이미지 존재론’입니다. 롱 테이크란 촬영 기법중 하나로 카메라 쇼트를 짧게 끊지 않고 긴 시간동안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리얼리즘 미학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여다보는 것과 연결이 되는데요. 허구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영화의 사진적 이미지 존재론이란 사진을 찍은 것처럼 순간을 포착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이 세 가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담 이러한 바쟁의 의식을 물려받은 감독들의 영화는 어땠을까요? 네, 당시 있는 그대로의 현실, 다큐멘터리에 입각한 영화가 많이 탄생했습니다. ‘원 쇼트 = 원 신’이라는 방식을 채용해 있는 사실 그대로의 꾸밈없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 영화 <필승의 의지> 실제 중국 여자 배구선수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1980년대의 중국영화산업의 시선은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장의 제목처럼 외부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부제에 있듯이 그 시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시민들이 (사상적으로) 어느 정도는 억압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 억압이 영화에게도 미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한정된 시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당시 어떤 검열, 즉 억압이 영화를 누르고 있었을까요? 제3장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제3장, 제작, 유통, 검열-중국 영화를 지탱하는 것, 방해하는 것에서는 중국영화의 제작, 검열, 배급 구조와 함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영화 시스템에 가져온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체제였던 사회주의가 영화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데요.

  1950년대 전반,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영향을 받은 검열 제도는 크게 각본에 대한 검열과 완성된 작품에 대한 검열, 이렇게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각본에 대한 검열이 우선이었는데 이 역시 아무 각본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권위 있는 영화 잡지였던 『전영창작』, 『전영신작』 등에 각본이 실려야만 검열의 우선순위를 잡을 수 있었는데 당시 잡지에 투고된 작품은 4,000편이 넘었지만 실리는 것은 몇몇 프로 각본가들의 것이었다고 하네요.

 

- 영화 <주청전> 남녀가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때, 여주인공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바지춤을 추스르는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삭제당함.

 

  잡지에 각본이 실린다는 것은 영화화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실리고 나서도 촬영소에서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검열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각본은 검열기관인 ‘전영국’를 비롯해 중국 당정부에까지 전달되었으며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각본 검열이 통과되고 촬영·편집이 완성된 후 완성작에서의 검열 역시 까다로운 기준으로 이루어졌는데요. 1차로 각 촬영소에서 검열을 한 후, 2차로 전영국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써보았는데 이 글로만 보아도 중국 내 영화 검열은 많은 경로를 통해 아주아주 까다롭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이러한 검열방식이 과거보단 느슨해졌다고 하나 현재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는 사실은 제게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 영화 <지금 무슨 생각해?> 노동자 청년과 당 간부가 화해하는 장면

 

  1983년 개봉한 영화 <지금 무슨 생각해?>는 적극적인 당 간부의 노력으로 노동자 청년과 간부가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역시 당 간부가 나쁜 이미지로 비춰질 것을 우려한 당의 압력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오히려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해준다면 믿으실까요? 부정적인 시각에선 당 간부의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현재 깨어있는 독자의 눈으론 오히려 당 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화해가 힘들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도자층이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검열이 오히려 대중들에게 충고를 받을 여지를 준다는 사실이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네요.

 

 

 

 제4장, 스타 탄생-개혁개방 후, 물신이 된 여배우에서는 문혁 이후 중국에서 국민적 인기를 떨친 두 명의 여배우 ‘류샤오칭’과 ‘조안 첸’ 통해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의 스타 소비 형태와 시장 자유화에 따른 여배우의 ‘물신화’ 경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류샤오칭과 조안 첸은 영화 <작은 꽃>으로 동시에 영화계 톱스타로 등극했는데요. 이 두 사람의 청순한 이미지는 문혁으로 황폐해진 중국인들의 마음에 여유로운 정감을 선사했고, 둘은 국민적 아이돌로써 인기를 떨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여배우로써 서로 다른 길을 걷는데요. 먼저 ‘류사오칭’은 여배우로써 종래의 사회적 상식적 성윤리를 대변하는 검열에 맞서 언제나 도발적이고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브라운관 안과 밖 상관없이 화려한 패션과 팜므파탈적인 생활로 유명했는데요. 여기서 여배우의 ‘물신화’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류샤오칭’은 욕망이 강한 배우였습니다. 자부심이 넘쳤고 당당했지요. 화려한 만큼 받았던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는 대중 심리를 이용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항상 대중의 관심을 바라며 일부러 자신에 관한 스캔들과 루머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스캔들로 배우 생활이 위기에 닥쳤음에도 자서전을 펴냄으로써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했으며 그야말로 참된 류샤오칭 자신이 아닌 물신, 즉 스타로써의 욕망에 사로잡힌 생활을 했습니다.

 

- 류사오칭

 

  제도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80년대 후반 태도를 바꾸는데요. 정치적으로 권위적인 위치에 선 것입니다. 그녀는 당 위원 활동까지 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킵니다. 미국에서의 러브콜도 거부한 채, 그녀는 “내 뿌리는 중국에 있고, 내 뒤에는 만리장성이 있다”고 말하며 중국에서의 작품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브라운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하네요.

  ‘조엔 첸’ 역시 노동자로써의 모델이 만연하던 시기에 아주 모던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 여배우입니다. 청초함을 강조했던 그녀는 단박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소녀다운 순수함을 가진 그녀의 외모는 중국 내에서 ‘미의 규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1년 8월, 인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조안 첸이 갑작스럽게 유학을 선언합니다. 중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는데요. 중국 내에서 유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자국 내 시민들이 외국으로 나가기 쉬워진 점을 감안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중국의 이데올로기는 스타를 제도에 맞추기 위한 모델로 삼았기에 스타 스스로의 매력을 발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역시 그녀가 미국으로 넘어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조안 첸

 

 

  미국에서의 시작은 그녀에게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양적 외모가 서구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자신을 제도에 맞추기로 결심합니다. 미국이 바라는 체형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이전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중국 내 여론은 그녀를 배신자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미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최근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톱스타가 된 후 서로 다른 길을 걷기도 했지만, 둘 모두 어느 하나의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개방 이후 중국 시민들의 외부를 향한 욕망, 그리고 일편적인 제도에서 벗어나고 했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드셨죠? no  감사

  이렇게 본문은 마무리가 되었네요. 각 장의 특징이 뚜렷하여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픈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자체 검열(ㅋㅋ)된 부분도 많은데요 (아쉬운 분들은 맨 아래 이미지를 눌러주는 센스!) 오랜만에 쉽지만은 않은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이고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 아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읽는 내내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특히 역사를 영화를 통해 배운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이해하기도 쉬웠구요.

  한 이데올로기에 억눌렸던 중국이 변화하는 중요한 시점, 1980년대 파란만장했던 중국의 역사를 알고 싶으시다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추천 도장 꽝꽝꽝!!!

 

 

이상 솔율의 첫 서평이었습니다사랑해5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급 마무리란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탓이겠지요 허허허;;;)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 10점
류원빙 지음, 홍지영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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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라면 2015.02.03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X씨 닉네임을 솔율로 정했군요? 소나무엔 밤보다 잣이 더 가깝지 않나ㅋㅋ(농담) 추천도장이 꽝도 아니고 꽝꽝꽝이니까 저도 꼭 말고 꼭꼭꼭 정독할게요. 사실 솔율씨 포스팅 읽으니까 뭐 책 다 안 읽어도 되겠다 싶네요(엘뤼에르 미안)

  2. BlogIcon 잠홍 2015.02.03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율님 첫 포스팅이 완전 알찬데요?!! 저도 전복라면 님과 동감하는 바입니다, 포스팅 읽으니 책은...꼭 읽고 싶어지더란 말입니다. 언급하신 영화들도 다 보고 싶네요!
    다음 포스팅도 기대할게요 :)

  3. BlogIcon 엘뤼에르 2015.02.03 1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율님 반가워요^^ 저는 4장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송혜교가 중국 영화에 등장하고 하는 모습이 마치 조안 첸의 사례 같기도 하고, 류사오칭이 자서전을 내면서 대중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신정아씨가 『4001』을 출간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여론전을 펼치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더욱 재밌었습니다.
    장별로 정리된 포스팅이 너무 다채롭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