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하는데, 아직은 쌀쌀한 날씨 탓에 어영부영 넘어갔던 3월.

그렇게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제 덩치를 조금씩 키우던 나무의 눈들이 이제 꽃으로 만개하는 것을 보고 '아, 봄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꽃이 피는 4월이 왔네요.

지난 주는 4월의 첫 주말이었는데요, 여러분들은 지난 주말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별 특별한 일 없이 오는 봄을 조용히 맞이했는데요, 뉴스를 보니 봄 나들이 가는 행락객들로 도로가 가득 찼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생기가 넘치고 곳곳에 아름다움이 넘치는 4월.

하지만, 68년 전 한국근현대사에 새겨진 4월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가 폭발했던 사건이 제주에서 발생합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6.25 전쟁이 끝날 때까지인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에 반대하는 무장봉기한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토벌대가 무고한 양민들까지 대량 학살한 비극을 초래하죠. 

 

 

 

생각해보니,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것은 교과서가 아닌 현기영 선생의 소설『순이삼촌』이었습니다. 2013년에는 연극으로 한 번 더 만날 기회가 있었고요. 순이삼촌은 4.3사건의 희생자로, 당시 발포학살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신경쇠약과 환청증세로 평생 고통을 끌어안고 살다 결국 아픔이 서린 그 시체밭에서 자살을 하고 말죠.

 

살아 남았지만,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삶.

시대가 한 개인의 삶에 할퀴고 간 상처를 찬찬히 짚어보며 제주4.3사건의 아픈 역사는 물론 평화와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주 4.3사건 하면 떠오르는 영화도 한 편 있죠?

 

무덤같이 어둡고 비좁은 동굴에서

삶을 갈구했던 제주 사람들을 그린 오멸 감독의 <지슬>(2012)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5km 밖에 있으면 다 죽인다”

소탕 작전에 밀려 동굴로 들어온 마을사람들은 왜 같은 나라의 군인을 피해 도망쳐 왔는지도 모른채 붙잡히면 죽는다는 일념 하나로 동굴 안으로 몰려들어 옵니다. 1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동네 마실이라도 온 것처럼, 그 좁은 동굴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요, 집에 두고 온 돼지 걱정을 하는가 하면 이웃집 총각의 장가 걱정을 하기도 하죠. 순박하고 정감이 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왜 저들이 죽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굴 속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그들의 안식처였던 동굴이 군인들에게 발견되고 최후의 방어막으로 굴 안에 불을 피우며 도망치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결국 마을과 동굴을 모두 휩쓸고 가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2015년 7월에 출간된 김유철 작가의 장편소설 『레드 아일랜드』가 생각나네요.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 동무였던 김헌일과 방만식은 이데올로기가 무성한 시대의 파도 속에 휩쓸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처지가 됩니다. 또한 외지인 홍성수가 제주도민들과 함께 죽음을 맞고, 내지인 김헌일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게 되죠. 『레드 아일랜드』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엇갈리는 운명을 통해 잔인한 시대와 아픈 역사의 상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두 친구의 떨리는 대화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의 마음에서

잔인한 역사가 남기는 상처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이 작품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많은 영화인들에게 소개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책소개

4월의 붉은 제주, 그 속에 휩쓸린 이들의 이야기 -『레드 아일랜드』(책소개)

 

>>언론스크랩

거대 권력에 맞섰던 민초에 바치는 헌사 (부산일보)

1948년 4월, 비극의 섬을 보다 (제민일보)

BIFF 아시아필름마켓, E-IP 마켓 참가작 20편 선정 (아주경제)

무자비한 시대에 등 떠밀린 사람들 (제주일보)

아시아필름마켓 현장, 모든 미디어서 통할 '원천 콘텐츠' 영화산업 뜨거운 화두로 (부산일보)

 

 

레드 아일랜드 - 10점
김유철 지음/산지니

 

  

 

 

샛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잎이 물결치는 제주 섬의 검은 사월.

오늘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의 봄을 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의 검은 봄을 떠올려봅니다.

 

 

 

Posted by 비회원

영화·문학·인문학·사진·연극·여행 등 다채로운 체험 통해 체득한 사유 오롯이 담겨…
55편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평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전성욱 지음 l 산지니 l 347쪽 l 1만8000원

 



 

▲ 전성욱 평론가 사진=산지니 제공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최초의 빛을 기억하는 어둠 속에서 자학과 자만도 밀려간다. 바람이 불고 나는 또 무너진다. 그제야 나는 너를 비로소 온전히 호명할 수 있다.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이하 오문비)’을 이끌며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성욱 평론가가 최근 첫 번째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를 펴냈다. 
 “현실에 대한 예민함 없는 언어의 자의식은 혼자만의 자폐적 사유 속에서 글쓰기를 그저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149쪽)   
 이 책에는 영화와 문학, 인문학, 사진과 연극, 여행 등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체득한 그의 사유가 오롯이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55편의 글은 날카로운 그의 시선으로부터 호명된 예술에 대한 일종의 비평적 글쓰기다. 
 1부는 프랑스 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에서부터 한공주, 지슬 등 시대를 반영해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에 관한 감상이 가득하다. 또한 2부는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김학이의 ‘나치즘과 동성애’ 등 인문학과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이상섭의 ‘챔피언’ 등 문학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3부는 사진전과 연극, 여행으로 진행되는 그의 일상이 노래되며 첨언에서는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있다.
 “세상의 모든 여행은 위험하다. 떠남과 만남, 그 구체적 사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상념과 관념으로 존재하던 여행은, 바로 그 떠남의 순간부터 무수한 만남들의 지평을 연다.”(241쪽)
 호명함으로써 완성되는 그의 글쓰기는 독자를 움직이게 한다. 그가 안내하는 책, 영화, 연극을 만나다 보면 온전히 내 것으로 그것들을 사유하고 싶어진다. 떠남으로 시작된 무수한 만남, 그 만남의 선명을 위해 최근 비 오는 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를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 첫 번째 산문집이다. 소감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미 발표작이다. 청탁을 받아 쓴 원고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한 영화와 책, 연극 등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다소 난잡하다. 일종의 잡문이다. 마치 일기장과 같다. 글 속에 온전한 내가 드러났다. 쑥스럽다.”
 - 최근 한국 영화의 티켓파워가 대단하다. ‘한공주’, ‘지슬’ 등 국내 영화에 대한 글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최근에 본 국내 영화에 대해 듣고 싶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이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 특유의 색채가 강하며 시간에 대한 사유가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감독의 자의식이 명확히 그려지는데 그 때문에 그의 영화가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나에게 영화의 재미, 그러니까 줄거리나 볼거리에서 그저 얻는 즐거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다시 능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영화의 존재론적 힘, 그 놀라운 향락의 희열에 눈뜨게 해준 것은 고다르였다.”(27쪽)
 - 영화, 사진,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듯하다. 그것들이 가진 매력은.
 “현장감이다. 영화나 사진, 연극이 주는 현장감은 나를 설레게 한다. 마치 좋은 책을 만났을 때,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희열과 비슷하다. 사진 속 피사체의 모습,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 무대 위 지친 배우의 표정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지성의 기획과 조직을 통해 한 권의 결실로 드러나는 공적인 역량을 창출한다는 것이, 모든 노고를 마다할 수 있는 최선의 보람이다.”(337쪽)
 -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이다. 잡지를 만드는 일의 매력과 그 한계는.
 “오문비는 전국 유일의 비평전문 잡지다.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 비평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거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잡지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잡지는 ‘협업’의 연속이다. 편집위원들과 주제를 잡는 등 잡지 발간과 관련, 구체적 논의를 통해 조율하는 과정이 지루하면서도 재밌다. 한계는 아무래도 재정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 지난 16일 발간된 오문비 2015 봄호도 정말이지 어렵사리 나왔다. 이번 호는 편집 위원들의 열정과 박한 고료에도 좋은 원고를 보내준 필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문학평론은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글쓰기다. 다시 말해 비평의 행위는 평론이라는 글쓰기로 표현된다.”(330쪽)
 - 마지막 첨언에서 평론가로서의 고민의 흔적이 가득하다. 평론은, 또 평론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평론은 ‘어긋남’의 글쓰기다. 공감이 아닌 공감하지 못하는, 그 불화에서 오는 어떤 철학, 예술, 미학의 글쓰기다. 그 불화에서 오는 소통이 평론이다. 앞으로도 평론가로서 그 어긋남 속에 숨어있는 그 어떠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경관ㅣ경북도민일보ㅣ2015-03-23

원문 읽기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다양한 예술 넘나드는 폭 넓은 평론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영화·독서기록·사진전 등 다뤄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전성욱(사진) 씨가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산지니)를 펴냈다.


전성욱 평론가는 부산에서 나오는 전국구 비평지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0년 펴낸 평론집 '바로 그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저자가 무척 폭이 넓고 다양한 예술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글을 쓴 점이 이 책에서 먼저 눈길을 끈다. 문학평론가가 낸 책은 대개 문학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문집을 표방한 이 저서는 폭넓고 자유로워 구미를 당긴다. 1부에서 영화를 보고 쓴 글, 2부에서 독서기록, 3부 사진 연극 여행에 관한 글을 실었고 4부에서 비평가로서 정체성을 묻고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수록했다.

문학평론가로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2부에서 저자는 최근 주목받는 인문학자 윤여일의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부산 문단의 소설가인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이상섭의 '챔피언', 허택의 '몸의 소리들', 배길남의 '자살관리사' 등의 작품을 읽고 산문을 썼다. 윤여일을 읽고 이론적인 글을 전개하다가 이렇게 마무리한다.

'…학문은 현실의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반성되어야 한다. 윤여일은 길 위의 만남에 예민한 유목의 에세이스트다. 길 위에서 걷는 몸의 공부가, 그를 저 모순과 역설과 망상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예술을 일상으로 접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저자 자신의 다짐으로도 비쳐 산문집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1부에서 다루는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걸작선',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들)', 다르덴 형제의 속죄와 구원에 관한 영화들, 오즈 야스지로 50주기 특별전부터 '한공주' '지슬' 등으로 다양하다. 마리오 스테파토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등을 보고 쓴 글은 독특하다. 이론적 용어가 많고 다소 까다로운 전개로 쉽게 읽히지 않은 글도 있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3-01

원문 읽기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을 읽지 않은 대개의 사람들은 아마도 제목의 그 삼촌이라는 말을 쉽게 오해하고 될 것이다. 남녀 구분 없이 가까운 이웃을 일컫는 이 말에 대한 뭇 사람들의 오해만큼이나 제주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일천하다. 제주에 대한 내 인식의 기초는 국민국가의 논리로 학습된 네이션의 감각에 깊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제주란 나에게 경험을 초월한 저 아득한 관념의 지평 어딘가에 있다. 화산의 섬 제주가 대한민국의 국토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제주에 대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심상들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제주는 역시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가 닿기 힘든 심원한 기표다.

 

이런 저런 독서와 공부로 얼룩진 내 심상의 지리 속에서 제주는 무엇보다 43의 장소다. 인식의 이런 편향이란 제주를 삼다도나 국내 제일의 허니문 관광지로 떠올리는 그 자동화된 환기의 습벽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제주를 역사적 사건의 장소로 환기하는 내 인식의 편향이야말로 어쩌면 더 간교하고 영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반성적인 회고 속에서도 역시 43은 나에게 제주의 그 난존하는 모든 이질성들을 압도하는 주인기표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제주에 가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제주는 실감이 아닌 감상이다. 그리고 그 감상이란 아마도 몇몇의 텍스트들이 상호텍스트적인 맥락 속에서 대화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근원적인 것은 현기영의 단편들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억눌러온 슬픔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울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순이 삼촌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이런 주해는 그 울음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순이 삼촌은 그렇게 발설되지 못한 그 죽음의 풍문을 세상에 알린 용감한 역작이었다. 이야기꾼으로 더 깊어진 현기영은 마지막 테우리(1994)43의 현재성을 탁월한 구성과 문체로 풀어냈다. 이 단편은 마치 지금의 강정을 예감이라도 한 듯 침범당한 순수에 대하여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리하여 초원은 이제 다시 한 번 환란을 맞고 있는 것이었다. 밖에서 솔씨 하나만 날아와도 발 못 붙이게 완강하게 거부하던 초원이 사방에 아스팔트도로로 절단되고, 야초를 걷어내어 그 자리에 골프 잔디가 심겨지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 완간조차 되지 못한 김석범의 <<화산도>>는 조총련계라는 이유로 입국이 불허한 작가의 처지에서 40여 년 전 고향의 기억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현지조사 없이 이룩한 대작이다. 물론 작가의 정치적 ()의식이 작품의 어떤 편향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 자체로 그 작가와 작품을 정신적으로 해금하지 못하는 우리 문화의 열악함을 반증한다. 그렇게 43은 여전히 일종의 금기이며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소란스런 격전의 장소다. 그렇다면 지금 독립영화 <지슬>돌풍이란 무엇을 함의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의 흥행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의 수상이 가져다 준 세속적인 요인마저도 저 작은 규모의 영화가 가져온 돌풍의 의미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억압된 것의 회귀를 말했던 프로이트를 빌리지 않더라도, 억압된 것은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예상 밖의 그 돌풍이란, 나에게는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집단적 무의식의 한 증상으로 여겨진다.

 

<지슬>(2012)은 애도의 영화다.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라는 네 개의 챕터(시퀀스)는 이 영화의 구성이 제의적 구조를 차용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망자의 원혼을 떠나보냄으로써 산 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의가 갖는 애도의 기능이다. 영화라는 형식으로 제의를 치르겠다는 연출의 발상은 엄중하지만, 동시에 그 합목적적인 제례의 의식이란 진정한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합적인 틀이다. 작위적인 제례가 일종의 낭만적 허위라면 그 제의의 플롯을 그대로 내러티브로 한 구성은 영화적 진실의 단면들을 훼손할 수 있다. 애초에 애도란 불가능한 것이므로 그 연출의 의도는 이미 무망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는 저 제의의 구조를 느슨하게 용접함으로써 어떤 미학적 결손을 제어한다. 제작비의 고충과 제작 여건의 불미함은 오히려 연출의 방법을 창신하는 역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지슬>의 토벌작전을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씬처럼 연출할 수 있었다면 학살은 그저 스펙터클로 전락했을 것이다. 비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투박함으로써 오히려 핍진했고, 정적인 미장센의 연극적인 장면들은 수동적인 몰입을 방해함으로써 흥미로운 소외효과를 연출했다. 그것은 마치 피트 왓킨스의 실험적인 영화 <코뮌>(2000)의 흔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적 형식의 이런 성취는 진혼과 애도라는 목적과 창발적으로 불화하는가.

 

<지슬>43을 순결한 여성에 대한 겁간으로 유비한다. 토벌군에게 겁탈당하는 순덕이 직접적이라면 오름의 곡선을 여성의 나신과 오버랩하는 장면은 좀 더 은유적이다. 토벌군의 일원이면서 가마솥에 김 상사를 삶아 죽임으로써 신화적 폭력을 청산하는 신적 폭력의 상징성을 암시하는 정길은 사실 여자다. 이 같은 원형 상징적 표현은 전래하는 제주의 할망(대지모신) 신화를 의도적인 재현한 것이다. 폭력의 재현을 젠더 정치학의 차원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외지인과 섬사람, 가해자와 희생자의 위상은 분법의 논리로 선명해진다. 죽은 어미가 남긴 아이의 울음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해원과 상생의 표상으로써 모성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죽임의 폭력에 대한 살림의 상징성으로 드러나는 지슬(감자)이라는 사물로 집중된다. 끝내 마을을 버리지 못했던 어머니가 지슬을 남기고 죽임을 당하자 마을을 찾았던 아들은 다시 산으로 돌아가 그 지슬을 마을 사람들에게 먹인다.

 

제주 무속본풀이의 여신들은 육지의 여신들과는 유사하면서도 나름의 독자적 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다산과 풍요의 원형으로서 여신의 의미는 보편적이다. 생명의 살림에 닿아있는 여신의 모성적 상징성은 <지슬>에서 43이라는 특이성의 사건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해소시킨다. 신위에서 소지에 이르는 유교적 제의의 구도 안에서 과연 이런 여신적 주술이란 논쟁적이라 할만하다. 애도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위해서는 그 불가능한 애도의 제의를 집전하는 사제가 요구되며 <지슬>은 그것을 전래하는 샤머니즘의 여신으로 충족했다. 불가능한 것의 재현은 역설적으로 그 불가능함의 진솔한 고백이라는 아포리아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슬>은 애도와 제의라는 정합적 내러티브와 함께 여신의 상징성으로 그 아포리아에 맞선 작품이다.

 

<지슬>이 제의적인 영화인 것처럼 <비념>(2012)은 역시 주술적인 다큐멘터리다. 비념이란 비나리고, 그러니까 그것은 곧 민초의 소망이 담긴 소규모의 굿이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종이 가면을 쓴 사람들은 귀신이며, 카메라는 마치 그 귀신들의 시선처럼 지금 이 망령의 세계를 배회한다. 43의 희생자들을 대변이라도 하듯 카메라는 학살이 있었던 장소들을 찾아가 이리저리 비춘다. 영화는 43 당시의 기록 영화를 거꾸로 되감는 장면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비가역성을 표현한다. 역사는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들은 역사의 그 흔한 오류들을 속절없이 되풀이 하곤 한다. <비념>이 유념하는 것은 바로 그 어리석은 반복에 관한 것이다. 43을 강정과 병치함으로써 오류의 역사를 되풀이 하는 한국의 현대사는 일종의 질문이 된다. 기억은 망각되기도 전에 벌써 또 다른 기억으로 대체된다. 그리하여 하나의 기억은 다시 또 다른 기억에 잠식당한다. 강정이란 역시 땅의 훼손이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국가의 법집행은 빨갱이들을 축출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해 치렀던 43이라는 폭력적 제의의 사후적 반복이다.

 

<비념>은 조용하지만 격렬한 영화다. 결혼한 지 겨우 이태 만에 강상희 할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역사적 수난의 시간은 유독 여성에게 가혹하다. 난리를 피해 오사카로 이주한 여성들의 목소리도 그 가혹한 시간을 담담하게 증언한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 지구와 달의 거리는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급하게 가까워졌지만 43에 이르는 우리들의 역사적 회고의 거리는 멀고 또 멀다. 영화는 그 거리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영상과 사운드를 기교적으로 운용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화의 실험인 것이다. <비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쉬이 말해지지 않으므로 영화는 내내 조용하다. 그러나 그 말 없음 속에는 말하고자 하는, 그리고 말해야만 하는 의지의 긴장이 팽팽하기에 그 조용함은 대단히 격렬하다.

 

<지슬>이 과거로 돌아가 원혼의 넋을 달래려 한다면 <비념>은 그 원혼을 현재로 불러와 산 자들의 망각을 고통스럽게 추궁한다. <지슬>이 역사의 폭력을 대모신의 순결에 대한 훼손과 회복의 서사로 말하고 있다면 <지슬>은 여성들의 몸과 기억에 각인된 현재적 상처를 어루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의 3일은 왔고 앞으로도 43은 반복될 것이다. <지슬>이 지난 시간을 위로했다면 <비념>은 깊은 여운으로 지금의 우리들을 추궁했다. 43의 그 시간들처럼 <지슬><비념>은 잊혀진 사건이 되겠지만 다시 또 다른 발설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 발설들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비경(秘境) 속에서 비경(悲境)을 발견하고는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제주를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일까?

'기타 >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이징 기행  (3) 2013.09.05
모더니즘이라는 파르마콘  (1) 2013.08.26
제주의 비경 - <지슬>과 <비념>  (0) 2013.06.26
가족이라는 아포리아  (0) 2013.05.13
사랑과 죽음  (2) 2013.02.06
상하이 기행  (8) 2012.07.08
Posted by 전성욱
TAG 비념, 지슬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요즘 온수입니까, 엘뤼에르, 전복라면 편집자는 산지니 홍보를 주 목적으로 하는 TF팀을 꾸려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하며 산지니를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홍보팀이 더 힘나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진을 누르세요~) 

 

              

 

 

 

오늘은 4월 3일입니다. 1948년 4월 3일, 올레길이 놓여 지금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섬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마침 위 사건을 다룬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이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조용 흔들어놓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저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전성욱 선생님도 호평하셨으니,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에 곧 평이 올라올지도?)

 

 

사장님이 권하신 책 『대한민국 잔혹사』(김동춘, 한겨례출판, 2013)를 읽고 있습니다.  4.3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 책은 아닙니다. 한겨례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라 저도 한 편씩은 보았었는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니 큰 흐름을 이해하기가 한결 편하네요. 정부가 수립된 이후 반복되는 국가의 폭력에 물든 대한민국의 풍경을 그리고 비판하는 책입니다.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국가와 사회가 버리는 것보다 참담한 일이 있을까?" 오늘처럼 참담한 날은 많았고,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많을 것입니다.

 

 

“야, 옥구열이. 너 평양 갔다 왔지? 그렇다고 한마디만 하고 끝내자.”

너무 느닷없는 말이라 멍해져 있는 그를 보고 수사관이 다그쳤다.

“17일, 새벽 4시에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간첩선 타고 진남포로 해서 평양 갔다 왔잖아.
채소 장사 했다는 걸 어느 동네 어느 아줌마가 증명해 줄 수 있나, 안 그래?”

신문은 수사관들이 교대로 드나들며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들어온 상고머리는
신문방법을 바꾸기라도 한 건지 제법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짬뽕까지 시켜 주었다.


“음식을 남기면 되나, 옥 선생이 자시던 거는 옥 선생이 깨끗하게 비워야지.”

상고머리가 이죽거렸다. 어느새 옥구열은 칠성판 위에 반듯하게 눕혀지고
짬뽕국물이 코 위에 얹힌 수건 사이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갔다 왔다고 한마디만 하면 깨끗하게 끝날 걸 뭔 고생을 이리 할까.”

호흡이 잠기고 심장이 터지고, 옥구열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희미한 어둠 속에 총을 든 놈이 칠성판 끝으로 가고 있었다.

─조갑상, 『밤의 눈』 에서


 

 

국가와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버림받은 적이 없는 제게, 미래의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과거에 엄연히 존재했던 폭력과 위협을 보여준 책은 『밤의 눈』입니다. 김동춘 선생님이 이 책의 뒤표지에 들어갈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연이 그렇게도 닿는군요.

이 책을 작업하면서 문득 무서워져서 농담을 했습니다. "이런 책 왜 편집했냐고, 누가 나 잡아가서 거꾸로 묶어 놓고 코로 설렁탕을 먹이면 어떡하죠?"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들은 왜 죽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 없음이 계속 무서웠습니다.

 

 

 

 

“호롱불 킬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밤의 눈』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대한민국 잔혹사 - 10점
김동춘 지음/한겨레출판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