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의 언어

-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에 대하여

 

최영철 시인의돌돌(실천문학, 2017)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 2014)를 읽고

 

 

 

   

 

내 꿈에 놀러와

 

겨울. 추위에 몸을 떨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고개를 숙였구나, 춥구나, 생각하다가 시를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시를 읽는 것은 힘들다. 시를 읽는 것은 무용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컷 자고 일어난 주말에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커다란 창이 있는 책상 앞에 앉기도 하며, 밀린 빨래들이 신나게 굴러다니는 세탁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겨우 읽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무용함의 효용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읽을 때는 아무 생각없이 읽지만 읽고나면 그래, 시를 읽어야지. 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시를 읽는 좋은 방법은 한 손에 시집을 들고 스르륵 넘겨보며 저절로 멈추게되는 곳부터 시작하는 것. 내가 처음 멈춘 페이.

 

 

"내 꿈에 놀러와

오는 길목 마트에 들러

새로 나온 꿈 세트 한 꾸러미 잊지 마"

(잊지마 꿈 세트부분, 돌돌)

 

 

마트에서 사갈 수 있는 꿈, “오래전 내놓고 잊어버린 꿈”, “깨고 나서도 꿈이어서 좋았지중얼거리게 되는 꿈은 반짝이는 희망이나 열린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맨 얼굴의 꿈이다. 일상에서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을 위한 기다림인지를 묻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맨 얼굴의 꿈을 보려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거긴 내가 내가 아니야라고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곳에서 시인은 자주 서있고 중얼거리는데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너의 앞은 우리의 앞은 무척 깜깜해, 라는 속삭임을 듣게되기도 한다. (“인기척이 없어도 어김없이 길은 열리고/아무도 없는 미래가/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이라 했다/길이 너무 많아/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일상에서의 나의 기다림을 잠시 잊고서 거짓없는 그 캄캄한 말을 따라가는데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는 건 왜일까. 허무하다거나 절망적이라는 말보다 그 믿음이 더 크게 느껴질 즈음, 너무 많은 길 속에서 만나게 된 어떤 것들 때문일까.

 

 

길 위의 것들

너를 한번 안아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

떨며 선 나목과 새와 길고양이와

청설모와 멧돼지와 좀도둑과 육교와

세상 모든 노숙

나도 너에게 무엇인가를 받고

그 보답으로 내가 너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안 되겠니

너의 배고픔과 나의 배부름을

공평하게 맞바꾸는 건

너의 싸늘함과 나의 따스함을

신나게 맞바꾸는 건

저울 하나 갖다 놓고

정확하게 칼로 잘라 맞바꾸는 건

바람이 달아주는대로

이 무거운 등짐 맞바꾸는 건"

(노숙에게부분, 돌돌)

 

 

나약한 것들,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은 것들을 앞에 두고도 내려다보지 않고 나란히 서있는 것은 힘들다. 불안하게 중얼거리는 시의 말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말로 안 되겠니’, ‘안 되겠니하며 옆에서 바라보는 일일 뿐이다. 거리의 말들, 선언의 말들과 멀리 떨어진 그 넋두리를 따라가다보면 당연하게도 납죽엎드려 저만치 기어가는 벌레같은 시인을 만나게된다. 나는 인사를 한다.

 

 

살의는 없었으나 짐짓 있는 힘 다해 내리친

나에게 보은이라도 하려는 듯

영영 숨이 끊어진 척 먼 딴 데를 보고

나 역시 서슬 시퍼런 척 납죽

까무러치는 척 정신을 잃은 척

부리나케 쫓아와

숨이 가쁜 듯 납죽

기어들어가는 척 숨 넘어가는 척

애도하는 척 납죽

그게 탄로 나 짐짓 먼 딴 데를 보고

눈시울을 닦는 척"

(납죽부분, 돌돌)

 

 

 

 

마음 노동자의 일

 

이번 시집 돌돌에는 유년의 기억(진흙 쿠키), 민중과 혁명에 대한 믿음(프라이 하는 법), 자본의 무자비함과 역사 인식(디엠지 부동산에 대한 전망)에 관한 사유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나는 이 시들을 읽으며 결코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무자비한 꿈의 진실을 읽기를 바랬다. 그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가 매일 고개를 숙이며 쓸모없이 걱정하는 일상의 안위를 잠시 제쳐두고 더 크고 아름다운 고개 숙임과 자주 꿇어 벌겋게 닳아오른 무릎을 바라보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집을 엮으며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을 마음 노동자의 일이라 정의했다. 일생의 반을 마음 노동자로 살아온 시인의 무릎은 무슨 색일까. 말로 세상을 사는 일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일이고 노심초사하는 일이다.

 

 “너무 오래,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 엄밀히 말해 그 말들은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파장이요 자연의 율동이었다. 나는 그것들의 말을 엿들은 염탐꾼이었고 누군가가 무심코 흘리고 간 말을 주워담아 궁굴려본 흉내쟁이였다.” (노심초사의 즐거움중에서 ) 시인은 여전히 그것을 하고 있다.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가마뫼라는 말

가마솥처럼 생긴 뫼라는 말

앙다문 솥뚜껑 아래 부글부글 끓는 뫼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불끈 솟는 힘이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절절 끓는 힘이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굳게 다문 힘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끌벅적 떠들어 어수선하다는 말

부산이라는 말

주된 생산물이 아니라 무엇에 편승해 슬쩍 덩달아 나왔다는 말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꿀꿀이죽이라는 말

공돌이 공순이란 말

번득이는 생선 비늘이라는 말

 

덩달아 시끌벅적

지금도 끓고 있다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에 참기름을 붓고

그 가마뫼라는 말에 깨소금을 붓고

그 가마뫼라는 말에 각설탕을 붓고

 

오랫동안 굳은살과

바짝 조인 허리띠와

움켜쥔 땀방울을

슬슬 풀어주고 싶다는 것

슬슬 닦아주고 싶다는 것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앙다문 가마솥 같은 뫼라는 말"

  (「부산 釜山이라는 말전문, 금정산을 보냈다』)

 

 

 

 

 

돌돌 - 10점
최영철 지음/실천문학사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블로그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산지니가 읽는 시>.

가볍게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찾아뵐 수 있기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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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7.12.11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마음 노동자가 하는 노심조차의 일이라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앞으로 프로샤 님께서 올려주시는 글들도 기대가 되네요 : )

  2. BlogIcon 산그늘12 2017.12.22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 나온 꿈 한 꾸러미'에는 어떤 꿈들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금정산을 보냈다』

원북원 선포식 현장







지난 화요일, 부산시청 1층 대강당에서 최영철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 2015 원북 도서 선정을 기념해, 선포식이 있었습니다.

저와 짐니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출판사 식구들이 현장을 다녀왔는데요.

그동안 몇 번 원북원 선포식 행사장을 다녀왔지만,

우리 출판사가 선정된 것은 출판사 역사상 처음이여서 더욱 더 설레고 신났답니다.


선포식을 시작하기 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더군요.

앞쪽에 사회하시는 분의 유머넘치는 진행 멘트에,

선포식 행사가 자칫 지루할 뻔도 한데 그야말로 빵빵 터졌습니다 하하.





김석준 부산시교육감님과 서병수 부산시장님의 인사말씀과 격려사가 이어졌고요.



이국환 원북원부산운동 운영위원장, 김석준 부산광역시 교육감, 서병수 부산광역시장, 손상용 부산광역시의회 부의장, 성세환 BNK 금융그룹 회장 다섯 분께서 『금정산을 보냈다』를 2015년 원북도서로 선포하며 선포식 본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윽고 이윤택 연출가와 최영철 시인과 함께 밀양연극촌/김해 도요마을에서 함께 숙식하며 연극을 하는 '연희단패거리'에서 축하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최영철 선생님의 시 「부산이라는 말」과 「금정산을 보냈다」의 시구로 극이 연출되었는데요.

신나고 경쾌한 무대였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감상하실까요? ㅎㅎ







시극 공연이 끝나고 바로 본무대인, 오늘의 주인공 최영철 시인의 초청 강연식이 이어졌습니다.

최영철 시인께서는 강연 중 시가 가지는 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원북원 투표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시는 난해한 것' '시의 쓸모없음'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고, 이에 대해 최영철 시인께서는 사람들이 시를 바라보는 인식을 듣고는 못내 안타까웠다고 하셨습니다.

원북원도서가 선정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가 홀대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말이죠.

원북원도서 『금정산을 보냈다』의 맨 앞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시인의 자필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나의 쓸모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최영철


더불어 「금정산을 보냈다」의 시작 배경을 설명하면서,

중동으로 아들을 취업보낼 수밖에 없는 못난 아비였음을 토로하셨습니다.

그 정서가 바로 시에 녹아 있는 거겠죠.

하지만, 이 시에도 '쓸모있음'이 존재한다며 일화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들을 요르단으로 떠나보내며 김해공항 출국장에 이 시를 쥐어보내면서

모 일간지 칼럼에 에세이를 썼던 것이 당시 요르단 한인사회에 소문이 나서,

아들이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못난 아비가 그래도 아들에게 하나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어찌나 먹먹하던지요.

시의 쓸모있음, 시의 힘이란 바로 그런 거겠죠.




마지막으로 독자 사인회가 이어졌는데요.

어찌나 많은 시민들이 시인께 몰려들던지

출판사 식구들은 식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답니다 T_T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모든 행사를 마쳤습니다.

맨 왼쪽 고생하신 산지니 출판사 대표님과, 왼쪽에서 다섯 번째 시민도서관 관장님, 여섯번째 원북원도서 운영위원회장 동아대학교 문창과 이국환 교수님도 보이시네요.

무엇보다 한가운데 최영철 시인님도 밝게 웃어주시고

뜻깊은 행사 자리가 마무리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 식구 단체 컷입니다.

행사를 파하고 회식자리에서, 원북원 선포도 좋지만 수고하신 출판사 식구들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고 시인께서 말씀해주셔서, 역시 출판사를 알뜰살뜰 챙기시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실제로 강연하면서 제일 먼저 대표님을 불러세워서 칭찬해주시고 부산출판사를 응원해달라고 시민들께 당부하시기도 하셨고요.^^

좌로부터 전성욱 前 산지니 편집주간이자 현재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주간님. 강수걸 대표님, 그리고 저 ^^;, 박지민 디자이너, 최영철 시인님, 윤은미 前 편집자, 권문경 디자인 팀장님.. 그리고 여기 선포식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손수경 편집자와 문호영 편집자 모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다함께 좋은 책 많이 만들어요^^


BONUS CUT +

원북원 선포식에 가는 도중 전성욱 선생님과 강수걸 대표님의 뒷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찍어보았습니다. 가방끈을 한쪽으로 풀고 있는 모습조차 비슷하신 거 있죠?^^


원북원 책 구매는>>

(반양장)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양장)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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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5.04.28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북원선포식 현장에 처음 가봤는데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어요.

  2. 김원북 2015.05.09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 중간에 원북 선포는 부산시장, 부산시교육감, 부산일보사장, 부산시의회부의장 이렇게 4분은 맞는데 나머지 1분은 성세환 BNK 금융그룹 회장님이 선포하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매년, 분기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교양도서' 사업의 여름분기에 어중씨 이야기가 선정되었습니다.

분야는 과학기술 3종, 문학예술 15종, 사회문화 4종, 역사 4종, 종교철학 4종 등 총 30종입니다.

그중, 문학예술 15종에 산지니에서 펴낸 최영철 시인의 『어중씨 이야기』가 당당히! 뽑혔습니다.

여름 분기에 신청을 받고 가을에 책을 보급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소식이 늦게 전해졌네요.^^


드디어 마크를 달고, 최영철 시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이야기들이 청소년들에게 전해질 생각을 하니 설레입니다.


이 책은 도시에 살다가, '도야마을'에 정착한 어중씨의 삶을 그리고 있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입니다.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모든 것에 너무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어중씨의 삶은 아마 청소년뿐 아니라 현대인들이 잃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책의 배경이 되는 도야마을과 이름이 비슷한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에서 최영철 시인은 살고 있습니다.


편집자인 저희 아버지도 직장인이신데, 종편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애청하시며 퇴직 후 귀농을 꿈꾸고 계십니다.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낀 현대인들이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따뜻한 시골 생활,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겠죠.


아름다운 '어중씨 이야기'의 시골 마을 이야기의 이야기를 읽으며, 도시에 살며 잊고 지냈던 따뜻한 감성을 배워 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할 듯 싶습니다.


여유로운 어중씨는 저자 최영철 시인과 비슷한 듯 안 비슷한 모습입니다^^ 위트와 재미가 넘치는 동화의 매력으로 빠져 보세요~


아울러, 청소년 도서에 선정된 『어중씨 이야기』 많이 많이 애독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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