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전히 소설을 꿈꾸는 소설가가 있다. 다만 살기 위해 자신을 감추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져, 그것에 무뎌지는 자신을 마주하기 두려워지던 시기였다. 세상에서 고립된 게 외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우연히 글을 쓰게 되었다. 겹겹이 쌓여있던 사연들을 내놓으며 억눌렸던 정체성을 길어 올렸다. 그렇게 글쓰기는 삶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소설가 김비는 트랜스젠더이다. 학교에서 그녀는 세상의 편견을 배웠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정상’이란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희생되곤 했다. 생존을 위해선 몸가짐이나 행동, 말투를 조심해야 했다. 자신을 부정하는 것만이 사회에 내디딜 수 있는 길임을 공부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글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배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이 큰 용기를 주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학창시절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 흔한 백일장에서 상을 타본 경험 한 번 없었다. 글을 배우고 싶어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드라마 작가 교육원이었다. 방송극은 글도 쓰고, 돈도 벌 수 있게 해 줄 거란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초반에는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선생이나 동기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급반으로 올라가자 ‘난센스’란 규정이 돌아왔다. 애초부터 대중적인 코드를 바탕으로 한 방송극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기성의 가치관과 적당히 타협하며,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서사의 구조는 소수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했던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소설, 추락하는 자들의 실패한 이야기

소설을 처음 쓴 것은 성소수자 온라인 동호회 게시판에서였다. 전에 써놓았던 방송극을 소설로 풀어 낸 것이었다. 사실 소설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 전문적인 글쓰기이다.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문법도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소설이 각별히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소수를 위한 글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를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이데올로기를 반성적으로 되물으며, 그것의 한계를 지시한다. 소설은 추락하는 자들의 이야기다. 온갖 성공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자기계발식 영웅서사들이 만연한 시대에, 소설은 세상에 감추어진 가장 보통의 실패를 담는다. 소설에 자신의 사연을 위탁한 배경에는 아마 이런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비의 짝지 박조건형이 김비를 그린 그림. 글의 노동은 멈출 수가 없다. kimbee.net 자료

소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때, 게시한 작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생각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환희를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가 홈페이지를 개설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김비의 이야기를 더욱 경청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마침 글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고심 끝에 승낙했고, 그렇게 개설된 홈페이지(www.kimbee.net)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트랜스젠더 김비의 이야기에 세상이 응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홈페이지 개설은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김비의 이야기에 감응했다. 그녀의 사연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보듬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설레기도 했다. 반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단순한 의문과 의심에서 찾아온 이도 적지 않았다. 때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이나, 성적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은 선의로 응해준 각종 인터뷰들이었다. 그 즈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상승하여, 여러 매체에서 김비를 찾곤 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고자, 대부분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진실을 전하기보단 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단일 뿐이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는 날들이 연속되고 있었다.

문창과로 가는 대신 독서로 창작 연마

소모되는 시간이 쌓여갈 즈음, 다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잃어가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플라스틱 여인’. 트랜스젠더의 사랑과 비운을 담았다. 불안한 다수가 되기보단 안정적인 경계인이 되고자 한, 어느 여인의 선택에 관한 소설이었다. 이 작품으로 별다른 기대 없이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응했고, 당선되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등단은 김비에겐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여성동아 공모는 오직 여성들만 응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만해도, 김비는 주민등록상 남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계된 기자가 김비의 성정체성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행히 심사에 오를 수 있었고,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가능성에 내기를 걸었다. 김비에게 등단은 단순히 소설가의 지위를 공인 받았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그보단 오히려 세상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감격이 더 컸다. 등단 이후, 김비는 자신의 소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한 없이 부끄러웠고, 그리하여 소설을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졌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다짐했지만, 별다른 방법을 알진 못했다. 문예창작학과 진학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만류했다. 창작을 아카데믹하게 습득한다는 것이 김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문예창작학과의 존재를 감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그저 독서에 열중했다. 여러 선생님들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작가 교육원에서의 경험이 서사적인 짜임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독서를 통해서는 주로 자신의 문장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문장이 메말라 간다고 느낄 때면, 여전히 잘 써진 단편을 찾곤 한다.

김비의 짝지 박조건형이 그린 그림.

외면 당했지만 세상을 버리지 않은 소설가

등단 이후, 김비는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에 관해 탐닉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하기까지의 곤경과 그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그 과정이란 동일성을 억지로 찾아내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여로에 가깝다. 그렇게 발표한 작품이 ‘빠쓰정류장’(2012)과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2015)이란 장편이다.

‘빠쓰정류장’은 폐암 말기의 순옥과 직장에서 사고로 다리를 잃은 남편, 그리고 트랜스젠더 리브 간의 일시적인 동행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은 존재조차 확실치 않은 사연 많은 버스정류장을 찾아 전국을 떠돈다. 세상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던 이들이 삶의 여러 관문들(터미널)을 통과한다는 상상력이 이채롭다. 반면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은 비상계단이라는 한정된(혹은 금지된) 공간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다. 위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계단 위에서, 살기 위해 오르거나 내려가야만 하는 군상들의 제자리걸음을 담았다. 대체로 비슷하게 살 것이 강제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서열을 정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엾은 사람들의 일상을 신비롭게 묘사한다.

이처럼 김비는 절망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곁에 있던 타자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세상은 그녀를 쉽게 외면하곤 했지만, 그녀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김비는 한국문단에서도 약간은 비켜서 있다. 그녀는 마감이 없는 소설가이다. 청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항상 쓸 수 있었다. 김비의 작품에 여러 출판사들이 응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이 조금 더 다양해 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다채로운 만큼, 소설의 여러 매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만을 바랐다. 매출의 규모가 문단 내 위상과 직결되고, 대형출판사의 바깥이 문단에서의 소외로 간주되는 시대이기에, 그녀의 바람은 더욱 소중하다. 배움을 ‘사는 재미’로 알고, 소설이 삶과 다르지 않은 김비의 이야기가 각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다만 한 뼘 만이라도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그녀, 여전히 소설을 꿈꾸는 소설가 김비의 이야기는 언제라도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허민 문화연구자ㆍ인문학협동조합 연구복지위원장

한국일보 | 2016-04-24

원문 읽기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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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6.04.26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로 글 쓰는 공부(?!)를 하셨다니.. 놀랍네요.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아이구~ 힘들어'하는 그림에서 집필 작업의 고단함이 느껴져요 ㅎㅎ

  2. 권디자이너 2016.04.2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기하지 않고
    한 뼘씩 쌓아가는 과정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김비 작가님! 화이팅!

  3. BlogIcon 별과우물 2016.04.27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의 짝지분이 그려주신 그림에서 애정이 느껴지네요. 따로 창작과를 가지 않고 독서를 선택하신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따뜻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제목에 은박으로 강렬하게 새겨진 ‘작화증 사내’라는 두 단어. 독자들은 이 ‘작화증’이라는 다소 생경한 표현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이 책의 편집자인 나 또한 처음 원고를 받아들고 낯설어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중적인 이름인가 하는 회의는 책 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한 사내의 이야기 『작화증 사내』의 미덕은 그런 '낯섦'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한 마리 흉물스런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카프카의 『변신』 첫 구절처럼, 이 소설의 제목이 주는 '낯섦'은 어쩌면 매우 신선하고 기묘하면서도 꽤나 아름답다.


이야기를 써 놓은 적이 있나요? 박이 물었다. 뭣 때문에요? 작화증 사내는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어디에든 쓰일 곳이 있지 않나 해서 한 말입니다. 재밌는 환상시리즈로 책을 엮어도 좋을 것 같네요. 환자는 뚫어지게 박을 바라보았다. 선생은 내가 여기 왜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지 않습니다. 그저 말로 내뱉은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엉뚱한 선로로 옮겨졌으니까요. _「작화증 사내」中


얼마 전 출간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를 재밌게 읽고 있다. 주인공이 친했던 친구 그룹의 모든 이름에는 색채에 관련된 한자가 있지만 정작 자신은 색채 없는 이름을 지닌 한 고독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그의 이름이 ‘만들다’라는 뜻의 쓰쿠루(作, つくる)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완독하지 못한 소설이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어쩐지 정광모 작가의 『작화증 사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에 근거가 없는 일을 말하는 병리현상인 작화(作話) 증세란, 말 그대로 말을 만들어(作) 낸다는 뜻이다. 문득 만든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철도를 계획해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하루키 소설 속의 쓰쿠루,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정광모 소설 속의 사내, 책을 편집하고 만드는 나, 그리고 이 책 『작화증 사내』를 착상하고 글을 썼을 작가 정광모의 삶까지, 내 삶의 언저리에는 이렇듯 수많은 만드는 일로 점철된 일상이 차곡히 배여 있다. 그리고 묵묵히, 또 차분히 일을 행해 나갔을 이들의 결과물들이 주변에 녹아져 있음도 마찬가지다. 삶과 문학은 이처럼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다.


동료 문인들의 낭독극. 장소연, 문성수, 박향 소설가.



출판사 근처의 소극장에서 정광모 작가의 최근작 『작화증 사내』를 두고 문학콘서트가 열렸던 것은 유월 십칠일 월요일이었다. 꼬박 일여 년이 넘는 편집과정을 거치고, 책으로 탈바꿈한 이 책에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이 포착되어 있다. 역사를 재구성하고 포장해서 전시 흥행으로 일확천금을 누리려는 큐레이터의 삶, ‘시시포스의 돌 굴리기’라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호텔 사장의 욕망, 수능시험이라는 매년의 통과의례 속에 발생한 해프닝을 두고 사건 해결보다 수습에만 급급한 교무부장과 교감의 삶 등,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승진이나 출세, 전시 흥행, 관광객 유치 등 다양한 욕망들을 품고 있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그런 사람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빛나 보이는 것은 그들을 차분히 관조하는 ‘작화증 사내’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런 삶을 조롱하지도 비웃지도, 그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욕망’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찰하고 그려내고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들을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내의 무미건조하고 ‘욕망’하지 않는 삶을 두고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게끔 만드는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이 책은 담담하고 건조한 필치로 그려낸다.


저 남자가 정신이상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서요. 만약 저 사람이 바깥 사회에 있었더라면 기발하기도 하고 재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보였을 텐데요? 글쎄 그게 그 사람한테 이미 말려든 거라니까요. 저 작화증 사내가 회사에서 무심하게 지어낸 얘기로 일으킨 소동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끌려온 거예요. 제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인정했어요. 저 사람은 자기가 본 영화와 책이나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를 대담하게 섞어 탁월하게 이야기를 버무려 내요. 누구든지, 뭐든지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죠. 더 두려운 건, 그걸 본인이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지요. 악성 작화증 증셉니다._「작화증 사내」中




정기문 평론가와 정광모 소설가.



정기문              비문학적 글쓰기와 문학의 글쓰기는 결이 다르다. 글을 쓰는 작가의 신념이 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글쓰기에 있어서 고충은 없었는가?


정광모                퇴고의 과정이 힘들었다.



정기문              읽으면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나는 이 책의 테마를 ‘자본주의’, ‘기억’, ‘타자’, ‘우울’, ‘책임과 윤리의 문제’로 판단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바로 「기억금지구역」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할아버지의 초상이 걸린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손자의 대립을 이야기 삼고 있는데, 역사를 왜곡하고 비틀면서도 ‘일제강점기 시대 신관옷을 입고 있는 한국남성’이라는 흥행요소를 놓치지 않으려는 큐레이터의 욕망이 담겨 있다. 이처럼 역사는 훗날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과 해석으로 재구축되고 재생성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 있어 ‘기억’이 중요한 요소이다. 큐레이터의 욕망과 함께 자본의 축적을 풀어내고자 자본에 공모하는 손자의 선택과 갈등도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작가에게 있어서 과거란 어떤 요소인가?


정광모                과거는 기묘하다. 말랑말랑하고 실체 없는 것이다. 밀가루같이 변용가능한 성질의 것이랄까. 나는 과거를 역사적 과거와 문학적 과거로 나누고자 한다. 「기억금지구역」의 작품 속 ‘신관 옷을 입은 할어버지’는 이를테면 보기 싫은 기억이자 상기하기 싫은 과거의 일부였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거들은 우리 주변에도 흔하지 않은가. 그러나  문학적 기억으로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기억은 놓치지 않고 복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선 작품 낭독 중인 정광모 소설가.



정기문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체제의 무의식을 폭로하고 까발리는데 그 존재의의가 있다고도 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하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데 반해, 등장인물의 자살과 같은 요소는 보였으나 굳이 비판하자면 체제를 탈주하려는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책임문제도 뒤따라야 하는 게 아닐까 보는데……


정광모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작년께 출간된 『밤의 눈』이라는 조갑상 소설가의 장편소설을 살펴보노라면, 그것이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소설임을 주목해야 한다. 세상에는 이처럼 소설보다 더 믿기 힘든 기묘한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데에도 책임을 져야 된다고 본다. 문학의 죽음을 논하는 시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인 나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신념이랄까. 이런 모순된 체제를 탈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썼다. 비록 작품에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대학 학예제 발표 시절 정광모 작가의 모습.



독자질문             소설이 참 간결하고 담백하다, 맛있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 「답안지가 없다」를 재밌게 읽었는데, 수능시험 과정의 소상한 진행과정이라던가 어떻게 구상하고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가 궁금하다.


정광모                이런저런 조사도 함께 병행하면서 교직에 있는 아내의 도움도 받았다. 매년 수능시험마다 비행기도 못 뜨게 할 정도의 야단법석을 떠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나라 사회현상의 특이점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로 인한 다양한 이야기 발상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의 수능현상에서 일어나는 한 교감 선생의 고뇌를 구상하게 되었다.


정기문              작가 본인의 삶의 경험치를 넘어갈 때, 보통 인터뷰와 사전조사가 뒷받침되어야 리얼리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를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정광모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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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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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온수입니까 2013.07.04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가, 책의 생명성을 불어넣는 것 같아요. 문인들의 낭독극은 아주 재미있었구요^^ 오랜만에 찾아온 엘뤼의 포스팅 좋아요:)

  2. BlogIcon 깜달 2014.11.13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읽게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