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⑤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무어화(無語話), “말하지 않고 티벳스러움(Tibetan-ness)을 드러내기 

 

 

 

페마 감독의 작품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티벳의 문화정체성을 표현하는 진실한 티벳영화라는 데 있다. 그의 장편영화 다섯 작품 중에서 중국 국영중앙방송 영화채널(CC-TV6)에서 출품한 2009나팔바지 휘날리던 1983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 전부가 티벳어 영화이다.

 

 그는 2014101차 인터뷰에서, 왜 티벳영화를 찍느냐는 질문을 하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찍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내가 제일 익숙하고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티벳언어이다. 티벳어는 언어이지만 티벳민족을 구성하는 근간이 된다고 티벳어 영화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현재 티벳 전역의 학교, 공장, 기업에서 표준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는 시대에 그가 티벳어를 강조하는 것은 민족 자존감과 민족 정체성의 발로로 보인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에는 중국스러움(Chineseness)’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고향인 티벳 마을을 배경으로 티벳 전통문화와 가족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티벳인 영화배우, 영화제작자, 영화 스태프들과 티벳어 영화를 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티벳스러움(Tibetan-ness)’은 대부분 영화에서 티벳 전통풍습을 곳곳에 배치하여 내러티브의 플롯으로 활용하거나, 티벳 정신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活佛)’의 존재나, ‘쿤둔 왕자의 설화를 등장시키거나, 오색신전에서 랄롱 페도로의 활쏘기 전설과 전통 장희(藏戱) 가면극을 내러티브 속 에피소드로 배치한다.

 

 

중국 시짱자치구의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의 풍경

 

활불의 사례를 보면, 활불은 티벳불교에서 라마가 전생(轉生)한 화신(化身)이며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대대손손 다시 태어나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불교 윤회사상과 티벳의 고대무속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제도로서, 티벳의 신정(神政)체제와 티벳정치를 상징하는 제도이다. 1950년 중국이 티벳을 무력침공할 때 활불들의 존재는 공산주의 유물사관과 민족단결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규정했고, 지속적으로 단속하여 한때, “마을마다 사원이 있고, 마을마다 활불이 있다고 알려진 티벳의 활불은 20세기 초 1만여 명에서 현재 수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티벳인들에게 활불은 민족의 영혼을 상징하는 심장과 같은 존재이며, 페마 감독이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을 등장시킨 것은 티벳의 민족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티벳 불교에서 불세출의 전설적인 영웅에 대한 숭배와 출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는데, 성스러운 돌오색신전에서 쿤둔 왕자’, ‘랄롱 페도르를 등장시켜 이를 재현해내고 있다. 이와 같이, 페마 감독은 이러한 티벳스러움을 영화 속 모티브로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티벳인들의 염원과 삶에 들어 있는 우애, 평화, 단결, 정의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보여준다.

 

중국 5세대 황지엔신 감독은 이러한 티벳 소재의 영화는 우리들이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영화이다. 티벳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우리들의 감성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베이징영화학원 시에페이 교수는 페마 감독의 시나리오는 그가 티벳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둘째, 티벳인의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내러티브의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스러운 돌에서는 소년 라마승과 고향의 아버지, 늙은 개에서는 티벳 유목개를 팔려는 반항적인 아들과 이를 지키려는 아버지, 오색신전에는 신전대회의 가치보다는 승부에 집착하는 아들과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관계가 주축을 이룬다. 페마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 속 가족관계는 불교적 가치관과 정신세계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형제와 모녀지간에도 그러한 자상하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전통문화와 정신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201411212차 인터뷰 중에서) 이러한 자상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이에 순응하고 스스로 깨우쳐 성장해나가는 아들과의 관계는 티벳인들의 전통적인 가족윤리를 보여주는 한편, 티벳인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이 어떻게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 영화 <성스러운 돌>에서 활불들이 TV를 시청하는 장면

 

 

셋째, 현대 문물의 범람 속에 충돌하고 소멸되는 안타까운 티벳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페마 감독은 서부대개발과 현대화로 대변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열풍 속에서 티벳인과 공동체가 어떠한 험난한 여정을 겪고 있으며, 또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페마 감독의 작품 속에는 티벳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성스러운 돌에서는 활불이 텔레비전과 VCD를 보는 것을 즐기고, 티벳 소년들은 새해맞이 쿤둔 왕자전통공연보다는 총과 폭력이 난무하는 홍콩액션영화를 더 보고싶어 한다. 늙은 개에서는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티벳 마을에서 티벳 유목개를 팔아서라도 돈을 벌려는 물질주의 가치관이 난무하고, 초원에서 유목을 하고 전통을 지키려는 노인들은 소외되고 밀려나 있다. 오색신전에서는 활쏘기대회의 가치관보다는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양궁을 사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서부대개발 열풍, 그리고 한족의 대량 이주는 티벳 커뮤니티의 변화와 해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를 미신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 국민교육은 전통 불교중심의 티벳 신정체제(神政體制體) 와해를 불러왔으며, 사회주의 현대화가 부른 물질주의 가치관은 우애, 단결, 자존감의 정신문화를 구가하던 티벳인들의 삶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늙은 개에서 표현하듯이, 중국 한족들의 티벳 지역으로의 대량 이주와 상업 정착은 티벳 공동체 해체를 초래하고 위협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략 800만 명 이상의 한족이 티벳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라싸의 경우, 13,000여 개의 상점과 호텔 중 티벳인이 운영하는 곳은 수백 개에 불과한 현실이다.

 

현재 티벳은 사회주의체제 대 불교체제, 현대화 개발 대 전통풍습 고수, 한족 중원문화 대 티벳 전통문화 존속, 물질주의 가치관 대 인간중심의 가치관이라는 대립과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페마 감독은 바로 이러한 시대와 지점에서 순수하고 자존감 높은 티벳 공동체와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영화 속에 담아냄으로써, 작금의 세태와 현실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페마 감독이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티벳인들의 고귀한 공동체문화와 가치관은 티벳 지역뿐 아니라, 중국을 넘어 인류보편적 가치관으로서 우리 시대의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페마 감독은 티벳이 직면한 정치적 주권문제, 한족화문제, 현대식 개발 문제, 물질주의 가치관의 범람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말하기방식, 무어화(無語話)’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페마 감독은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중국/티벳 사이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탈()정치적 영화이며, 사회성보다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풍격을 보여준다. 그저 티벳 전통풍습과 에피소드를 통해 그 속에 깃든 티벳 정신문화를 담담히 사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가장 강렬한 현실비판적 영화인 늙은 개에서조차 마지막 6분의 롱테이크 장면을 통해 대사 한 마디 없는 장면으로 마무리할 뿐이다.

 

페마 감독은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제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대신 티벳인들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삶과 인생관을 보여주면서, 말없는 외침을 던진다, “이 티벳과 티벳인들을 보라!” 역설적으로 그의 말하지 않는 외침이 우리 시대 티벳 문제에 대한 더욱 강렬한 도덕적 정치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⑥에서 계속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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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18.07.06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벳의 이야기가 많이 없는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티벳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라마가 환생한 사람으로 대대손손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굳게 믿고 있고요. 전생을 기억한다고 이야기하는 라마도 많이 있다고 하네요.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무형을 유형에 담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글에 담아 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2. chlgurwn33 2018.07.27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道, 無, 空, 해탈, 열반, 깨달음
    이러한 말이 무수히 많지만
    이러한 말은 한마디로 통틀어
    죄를 짓지 않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번뇌, 업(業), 죄를 짓지 않는
    계시종교의 완전함에 비한다면
    자연종교의 불완전함이 있기는 하지만
    인도는 힌두교나 불교나 윤회를 믿으니까
    불교는 힌두교 문화권에서 발생한 종교지만
    그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시’ 책 제4권 106번 155페이지에서
    예수님께서 “윤회는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시’ 책 제7권 221번 645페이지에서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오류라고 말씀하셨듯이
    또 영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말씀해주셨듯이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윤회 없는 공사상도 역시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책 제4권 ‘106. 가나의 집에서’ 편 155페이지 16-24째 줄까지【“오! 유다야! 유다야! 너는 죄인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엄격하겠구나! 사람들도 그들이 한 생명과 또 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을 둘 다 서슴지 않고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두 생명을 가졌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아! 저는 선생님이 윤회(輪廻)를 암시하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두 가지 생명을 모두 위태롭게 한다. 만일 네가 하느님이라면, 본능 외에 이성을 타고난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겠느냐?”】, ‘154. 게라사에서 출발’ 편 602페이지 10째 줄에서 603페이지 25째 줄까지【“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이교도들이 믿는 영혼이 다른 육체에 환생한다는 이론을 확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딴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것도 설명해 주십시오.”
    “똑똑히 들어라. 너는 정신이 진리를 자발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로 그것이 우리가 여러 일생을 산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네가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고, 어떻게 죄를 지었고, 어떻게 벌을 받았는지를 알 만큼 넉넉히 배웠다. 동물적인 사람 안에 어떻게 유일한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합해졌는지 설명해 주었다. 영혼은 매번 창조되고 절대로 계속적인 화신(化身)을 위하여 이용되지 않는다. 이 확실성이 영혼들의 기억에 대해서 네가 단언한 것을 무효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하여도 그래야 할 것이다. 동물은 한번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다. 사람은 비록 한번밖에 나지 않지만 기억을 할 수 있다. 그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인 영혼으로 기억한다. 영혼은 어디서 오느냐? 사람의 영혼은 어느 영혼이나 말이다.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은 누구시냐? 지극히 지적이고, 지극히 능하신 완전한 영이시다. 영혼이라는 이 기묘한 것, 그분의 부성(父性)의 명백한 표로 사람에게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려고 창조하신 이것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 자신의 특성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것을 창조하신 아버지처럼 지능이 있고, 신령하고, 자유롭고, 불멸의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의 생각에서 완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것이 창조되는 순간에는 천분의 일순간 동안 첫사람의 영혼과 같다. 즉 공으로 받은 선물로 인하여 진리를 이해하는 완전한 존재이다. 천분의 일 그리고는 형성이 되고 나서는 원죄로 손상을 입는다. 네게 이것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시는 영혼을 가지고 계신데, 그 창조되는 존재는 나면서 지워지지 않는 표로 상처를 입는다고 말이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예, 영혼이 생각되는 동안은 완전합니다. 창조된 이 생각이 천분의 일순간. 그리고 생각이 사실로 나타나면, 그 사실은 죄로 인해 생긴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잘 대답했다. 그러므로 영혼은 사람의 육체에 결합할 때에 그의 신령한 존재 안에 그 비밀의 싹인 창조주신 존재, 즉 진리의 기억을 가지고 온다. 아기가 태어난다. 아기는 착하고 훌륭할 수도 있고 불성실할 수도 있다. 아기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그의 ‘기억’에 천사들의 임무는 빛을 비추어 주고, 덫을 놓고 다니는 자는 어두움을 던진다. 사람이 빛을 추구하고, 따라서 점점 더 큰 덕행들을 추구하여 영혼을 자기 전체 존재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 따라서 영혼 안에는 마치 그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가로질러 있는 장벽을 점점 얇게 만드는 것처럼 기억하는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덕행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느끼는 것이다. 반대되는 주장이나 치명적인 무지로 인하여 흐려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속해 있는 민족들에게 윤리적 지식의 글들을 공급할 만큼은 넉넉히 깨닫는다. 알아들었느냐?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느냐?”
    “예, 결론을 내리자면, 영웅적으로 실천한 덕행을 가진 종교는 영혼에 참 종교와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소질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가서 쉬고 축복을 받아라. 어머니도, 또 너희 자매들과 여자제자들도. 하느님의 평화가 너희들의 휴식 위에 내리기를.”】,

  3. chlgurwn33 2018.07.2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7권 ‘221. 자캐오의 집에서 회개한 사람들과 같이’ 편 642페이지 18째 줄에서 646페이지 29째 줄까지【“도대체 무엇을 알고자 하오?”
    “저희들은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옛날 작가들이…. 그러나 저희들은 고대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짐승같은 인간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그걸 모릅니다. 영혼은 무었입니까? 혹 이성인가요?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왠고하니, 그렇다면 저희는 영혼이 없어야만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들은 영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영혼이라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면, 무형의 것이라고 하고 불사불멸의 것이라고 하는 영혼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과 더불어 끝나니까 불멸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죽은 다음에는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거 보시오. 영혼은 생각이 아니오. 영혼은 영이고, 생명의 무형의 근원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생명을 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그러나 참된 근원이오. 그것은 하도 숭고한 것이어서 아무리 강력한 생각도 그것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생각은 끝이 있소. 그러나 영혼은 비록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소. 더없이 행복하게 되거나 지옥에 떨어지거나 계속해서 존재하오. 그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거나 더럽게 했다가 다시 깨끗하게 해서,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그의 인성에 생명을 주라고 주셨던 대로 그분께 돌려드릴 줄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오.”
    “그렇지만 영혼이 우리들 안에 있습니까?, 또는 하느님의 눈처럼 우리들 위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소.”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갇혀 있군요? 노예로?”
    “아니오. 여왕으로 있소. 영원하신 분의 생각에는 영혼, 즉 영은 사람 안에, 사람이라고 불리는 창조된 동물 안에 군림하는 것이오. 영혼은 모든 왕중의 왕이시고, 모든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분에게서 왔고, 그분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 그분의 선물과 그분의 권리이며,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위대한 영원한 나라의 왕을 만들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난 다음 신(神)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고,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시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집에서 ‘사는 사람’을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으며, 영혼은 여왕으로,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지고 창조되었소.
    그의 하녀들은 사람의 모든 덕행과 기능이고, 그의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하녀와 생도는 사람의 생각이오. 생각은 영으로 능력과 진리를 얻고, 정의와 지혜를 얻고, 훌륭한 완전에 올라갈 수가 있소. 영의 빛이 없는 생각에는 언제나 결함과 어두움이 있을 것이고, 절대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요. 과연 영혼의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하느님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그 진리들이 신비들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오. 세상을 떠나서 높은 곳으로 비약하면서, 완전한 지능, 완전한 능력,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성을 만나러 올라가고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지렛대의 받침점이 없으면 사람의 생각은 눈이 어둡고 얼이 빠질거요. 데메테스, 이것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항상 환전상만은 아니었으므로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선생님은 정말 예언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환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내리막길의 마지막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여왕이라면, 왜 군림하지 못하고, 사람의 나쁜 생각과 나쁜 육체를 굴복시키지 않습니까?”
    “굴복시키는 것은 자유도 공로도 아닐 것이고, 압제일 거요.”
    “그러나 생각과 육체는 자주 영혼을 괴롭힙니다. 이건 저와 저희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래서 영혼을 노예를 만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혼이 우리 안에 노예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고상한 ―선생님은 그것을 ‘하느님의 입김과 그분의 모습’이라고 정의하셨지요.― 것이 하등의 것에 의해서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영혼이 노예상태를 겪지 말라는 것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의 원수를 잊고 있소? 하등(下等)의 영들은 당신들도 알고 있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모두가 잔인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기억하면서 제가 이런 인간이 돼서 늙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것은 오직 지옥의 영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때의 길잃은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그 때처럼 깨끗하게 될 만큼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혹 뒤로 돌아 걸어가는 것이 허용됩니까?”
    “뒤로 돌아갈 필요는 없소. 당신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요. 흘러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진 않소. 흘러간 시간을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흘러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소. 그러나 그것은 필요하지 않소.

  4. chlgurwn33 2018.07.2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설을 아는 곳에서 왔소. 그것은 틀린 학설이오. 영혼들은 세상에 머무르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절대로 이 세상의 육체로는 돌아오지 않소. 어떤 동물 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그와 같이 초자연적인 것이 짐승 안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 안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만일 그 영혼이 여러 육체 안에 들어 있을 수 있었다면, 최후의 심판에서 육체가 영혼과 다시 결합한 다음에 어떻게 갚음을 받겠느냐 말이오. 그 학설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적인 생(生)을 누리며 계속해서 깨끗해지는 동안에 최후의 재생*(여기서「재생」(再生)이라고 번역한 것은 réincarnation, 즉 영혼이 다른 육체에 들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에서야 영혼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완전에 이르기 때문에 그 마지막 육체가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오. 이것은 오류이고 모욕이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한된 숫자의 영혼밖에 창조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고,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오. 또 사람을 하도 타락해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함으로 오류이고 사람에 대한 모욕이오. 사람은 곧 상을 받지 못하고, 백의 아흔 아홉은 죽은 다음에 깨끗하게 함을 거쳐야 할 거요.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기쁨을 준비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은 사람이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마지막 날 이후에 그의 육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릴 거요. 사람은 그의 영혼을 위하여 육체를 하나밖에 가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한 생명밖에 가질 수가 없으며, 그를 낳아준 사람들이 만들어 준 육체와 그 육체에 생명을 주라고 창조주께서 창조해 주신 영혼을 가지고 상급을 받으러 갈 것이오.
    시간은 뒤로 거슬러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과 같이 재생*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 그러나 자유로운 의지의 충동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허락되오. 그렇소. 하느님께서는 이 의지에 강복하시고 그것을 도와 주시오. 당신들은 모두가 이 의지를 가졌었소. 그러니까 죄인이고 악습에 젖고, 더럽혀지고, 사악하고, 도둑질 하고, 타락하고, 타락시키고, 살인자이고, 독성자(凟聖者)이고, 간통자인 사람이 뉘우침의 목욕을 하고 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마치 자신의 죄를 갚고자 하는 의지가 그 속에 어떤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병적인 껍질을 산(酸)이 침식해서 부수어 놓는 것과 같이 묵은 사람의 타락한 본질을 부수고, 한층 더 타락한 정신적인 자아를 흩어버리고, 다시 건강하게 되어 새로운 생각과 깨끗하고 좋고 어린애다운 새 옷으로 꾸며진 자신의 깨끗해진 영을 드러내 좋소. 오!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다시 만들어진 영혼을 훌륭하게 덮어 그를 완성된 거룩함인 그의 초월적인 창조에까지 지키고 도와 줄 수 있는 옷이오. 그 완성된 거룩함이 내일에는 ―인간적인 정신과 인간적인 시간의 단위로 보면 먼 장래이겠지만, 영원의 생각으로 보면 매우 가까운 내일―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러울 것이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 안에 어린 날의 깨끗했던 어린 아이를 다시 만들 수 있소. 어머니가 가슴에 껴안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하느님의 천사가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바라보시던 다정스럽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착하던 어린 아이를 말이오. 당신들의 어머니들! 그 어머니들은 어쩌면 덕행을 많이 가진 여인들이었는지 모르오…. 하느님께서는 그 어머니들의 덕행에 상급을 주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으실 거요. 그러므로 모든 덕행있는 사람을 위하여 오직 한 가지, 즉 착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나라만이 있을 때, 그 어머니들과 같이 있게 같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오. 혹 어머니들이 좋지 않아서 당신들의 파멸에 이바지했을 수도 있소. 그러나 그 어머니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신들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 사랑이 없는 것으로 인해서 당신들이 나쁘게 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들을 거두어들인 지금, 당신들은 거룩하게 되어서, 천상의 기쁨 속에서 어떤 사랑도 초월하는 사랑을 누리도록 하시오.
    다른 것 물어볼 것이 있소?”
    “없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참조.
    ※ 인터넷 굿뉴스 성경본문검색「영혼」: 구약성경 총141절 + 신약성경 총17절 = 구, 신약 총158절 참조.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③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페마 체덴의 영화 역정 

 

 페마 체덴 감독은 196912월 칭하이(靑海)성 하이난장족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 구이더(貴德)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흔히들 티벳의 중심지로 알려진 포탈라궁과 라싸시가 있는 서장자치구가 아닌 칭하이성 동북쪽 내륙 변방 해발 2000미터 고원지대이며, 티벳에서는 그 지역을 암도(Amdo, 安多)라고 부른다. 원래 암도라고 불렸지만, 1950년 중국 정부의 무력 침공에 의해 칭하이성으로 귀속되었다. 티벳인은 중국어로 장(藏)족이라 하며, 다시 티벳 고원지대에 사는 라싸(拉薩)인을 중심으로 캄바(康巴)인, 암도(安多)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다. 암도인은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쓰촨(四川)에 흩어져 사는데, 페마 감독은 암도인이라는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 티벳자치구 지도, 암도(Amdo)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감독의 고향인 암도 지방의 구이더현은 전형적인 다민족 거주지역이다. 구이더현에는 티벳인들 외에 한족, 선비족 등이 함께 살아오면서 티벳문화와 중원의 한족문화, 그리고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서로 융합하고 교차하는 다문화 지역이다. 또한, 유교, 도교, 불교 등 다양한 소수민족의 종교가 혼용되어 발전한 문화적으로 다채로운 곳이기도 하다. 구이더현은 ‘고원지대의 작은 강남(高原小江南)’, 칭하이성의 성도에 해당하는 ‘시닝(西寧)시의 화원(後花園)’으로 불릴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고 다양한 색채의 문화가 숨쉬는 지역이다.

 

 페마 감독의 고향과 유년시절은 그의 영화 속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마 감독의 ‘티벳영화’는 대부분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촬영하고 있다. 실제, 암도 지역의 언어와 라싸 지역의 언어는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만 발음이 다르다. 페마 감독의 영화에 사용하는 티벳어는 정확하게는 암도 지방의 말이다.

 

 이처럼, 페마 감독은 티벳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서장자치구가 아닌 다양한 소수민족과 다원화성 문화배경을 가진 암도 지역에 성장한 것이 그의 작품 세계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티벳영화’를 지향하지만, 서장자치구 중심지 티벳인이 갖는 정치적 성격보다는 칭하이성 내륙 변방의 티벳 마을의 투박하고 진솔한 전통문화를 더 강조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타를로>의 한 장면,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티벳을 배경으로 하였다.

 

 

 그는 고향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며, 영화창작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10대에 접어든 이후 그리워하는 모든 것이 고향과 관련이 있다.”(1차 인터뷰 중에서, 2014년 10월 7일)

 

 페마 감독이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야외 이동상영관의 영화를 보면서부터이다. “초등학교 시절 집 근처에 황하가 있었고, 그 옆에 수력발전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상영되는 야외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 시절에는 해마다 열 몇 편 되는 영화들이 야외의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되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구이더현에 가니 영화관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전쟁영화를 좋아했는데, 당시에는 주로 일본군, 혹은 국민당과 싸우는 영화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이다. 그 영화는 다른 영화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화였다. 나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공간을 보여주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주로 인도영화를 좋아했다. 인도와 티벳의 문화는 아주 유사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가까워서 많은 티벳인들이 인도를 좋아했고 인도영화를 즐겨 보았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중학교 시절에는 인도영화를 많이 보았다.”(1차 인터뷰 중에서.2014년 10월 7일)

 

 페마 감독은 초, 중, 고등학교를 한족 학교가 아닌 티벳인 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중국어도 배웠다고 한다. 평소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던 그는 간수성 란저우시에 있는 시베이민족대학(西北民族大學, Northwest University for Nationalities) 티벳어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시베이민족대학은 1949년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선 이후 최초로 설립된 소수민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이다. 시베이민족대학 시절에는 문학을 전공하면서 티벳어를 전공했고, 대학을 마친 후 초등학교 교사와 공무원 생활을 잠시 하다가, 2000년에는 티벳문학에 대한 공부 열망이 커서 시난대학 대학원까지 진학하여 티벳어와 중국어 번역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에 기금회의 장학금을 받아 그토록 바라던 영화공부를 할 기회를 얻게 된다. 2002년부터 2년간 베이징영화학원에 진수생(進修生)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진수생 제도는 일종의 편입학 제도로서 학위는 주지 않고 1년 혹은 2년간 수업을 듣고 수료하게 하는 제도인데, 지아장커(賈樟柯) 감독 역시 베이징영화학원 진수생으로 학교를 다닌 바 있다.

 

 페마 감독은 영화 창작에 앞서 작가로서 문학 활동을 먼저 시작하였다. 1991년부터 티벳어와 중국어를 사용하여 이미 4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해왔다. 티벳어로 쓴 소설로는 「유혹(誘惑)」, 「도시생활(城市生活)」 등이 있으며, 중국어 소설로는 「유랑가수의 꿈(流浪歌手的夢)」과 최근에 나온 「마니석, 고요하게 울린다(嘛尼石, 靜靜的敲)」 등이 있고, 중국어로 번역한 글로는 「티벳: 다하지 못한 이야기(西藏: 說不完全的故事)」가 있다. 그는 티벳어와 중국어라는 두 개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티벳어와 중국어 사이의 글쓰기는 상호보완 관계와 같다”고 긍정적으로 말한다.2) 그의 문학작품의 우수성은 평단에서 이미 인정받아왔는데, 칭하이성이 주관하는 제4회 문예창작평장(文藝創作評獎) 우수작품상을 비롯하여, 제5회 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창작(中國當代少數民族文學創作) 신인우수상, 그리고 1981년 칭하이성에서 창립된 티벳문학의 대표적인 문학지 ‘장치아얼(章恰爾)’에서 주는 ‘장치아얼 문학상’을 받아 티벳을 대표하는 청년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페마 감독의 문학가로서의 감수성과 자질은 그의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시적 감성을 자극하는 빛나는 영상미학을 만드는 동인이 되었다. 페마 감독은 문학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문학과 영화는 기본적으로 유사하며, 문학은 나에게 영화를 찍는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해주었다”고 말한다.

 

 문학이 자신의 영화에 미친 영향을 묻자, “문학과 영화는 기본적으로 유사하며, 문학은 나에게 영화를 찍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해주었다. 예를 들면, 시나리오를 들 수 있겠다. 아직까지 나는 소설이 영화보다 더 편하다”고 답변하였다.(1차 인터뷰 중에서, 2014년 10월 7일)

 

 2002년 베이징영화학원에 진학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창작활동을 시작한다. 작가로서 명망을 얻던 청년작가가 왜 갑자기 영화를 찍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아주 좋아했고, 영화를 찍고 싶었다. 특히, 한족들이 티벳영화를 찍는 것을 보고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족들이 티벳혁명에 대한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정작 티벳인들은 불만스러운 점이 있었다. 티벳의 풍습과 전통문화가 진실이 아니었으며, 왜곡되어 있었다. 영화 속 언어 또한 한족 언어였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티벳인의 영화, 티벳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티벳배우들을 기용하여 영화를 연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다른 사람들이 만든 티벳영화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페마 감독은 “진실한 티벳(眞實的藏區)”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창작을 시작한 것이다.(1차 인터뷰 중에서, 2014년 10월 7일)

 

 페마 감독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존경하는 감독으로는 스웨덴의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을 꼽고 있다. 잉마르 베르히만(1918~2007년)은 스웨덴의 영화, 연극, 오페라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자신의 고향 스웨덴을 배경으로 신의 침묵과 부재, 광기 등 형이상학적이고 실존적 물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제7의 봉인〉(1957년), 〈산딸기〉(1966년), 〈페르소나〉(1967년) 등이며, 1960년대 유럽 모더니즘과 작가주의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사진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은 잉마르 베르히만이다. 그는 나의 영화공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종교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나는 그의 모든 영화를 찾아서 보았다. 또 다른 영향을 받은 감독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감독이다. 그는 나에게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소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없지만, 깊은 문화적 체험을 전해준다. 이러한 방식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페마 감독의 작품에 나타나는 느리고 유장한 카메라 움직임과 롱테이크의 사용, 그리고 정치적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말하는 방식의 스타일은 이들 감독에게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④에서 계속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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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②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페마 체덴(Pema Tseden)이냐,

완마차이단(萬瑪才旦)이냐

중국 티벳감독의 어떤 이름 

 

 페마 체덴 감독은 특수한 지점에 서 있다. 스스로 티벳영화를 호명(interpellat ion)하지 못했던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티벳을 배경으로 티벳인 배우와 함께 티벳인 스스로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호명하며 티벳어로 발화(發話)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티벳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페마 체덴 감독과 그의 작품에는 ‘티벳영화’로서의 어떠한 내용과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티벳영화’는 사회맥락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 장은 페마 감독과 그의 ‘티벳영화’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중국 베이징과 부산을 오가며 만난 세 번에 걸친 최근의 교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가 연출한 다섯 번째 장편영화 〈오색신전(The Sacred Arrow)〉이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방영되었고, 그날 GV(Guest Visit) 담당자로 그와 첫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는 페마 체덴(Pema Tseden) 혹은 완마차이단(萬瑪才旦),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페마 체덴이 좋으냐, 완마차이단 이름이 더 좋으냐”라는 첫 질문에 그는 조용히 웃으며 둘 다 ‘나’라고 답했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 장에서는 완마차이단이라는 중국어로 음역된 이름보다는 원래의 티벳 이름인 페마 체덴을 공식적인 감독명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첫 인터뷰는 2014년 10월 7일 12시 부산 센텀호텔 앞에서 진행되었다. 그가 감자탕을 좋아한다고 해서 둘이 감자탕을 먹은 후, 가을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해운대 모래사장을 같이 걸으며 서로의 가족과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페마 감독은 목소리가 작고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을 가진 문인형 인물이었다. 실제 그는 이미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첫 인터뷰에서 그는 티벳에 관한 나의 질문에 말을 아끼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살짝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식의 독특한 화법으로 답했다. 그날 〈오색신전〉 GV가 시작되었을 때에, 관객들은 예민한 티벳 관련 정치와 전통문화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을 하였지만, 그는 역시 말을 아끼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않으며, 그저 “영화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다”는 답변을 하였다.

 

 두 번째 만남은 2014년 11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였다. 베이징전매대학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대학생영화제 참석차 베이징에 갔을 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베이징영화학원 건너편 커피숍 위앤딩(園丁)에서 간단한 2차 인터뷰를 한 다음, 우리는 시내에 있는 티벳전통식당에서 그의 영화 스태프(티벳인)와 만나 티벳음식과 술을 먹었다. 나와는 중국어로 대화하고 스태프들과는 낯선 티벳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새삼 그의 이중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작정하고 예민한 정치, 문화, 종교 문제를 질문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티벳 전통 불교문화와 사회주의 종교관은 서로 충돌하지 않느냐, 가난하고 궁핍한 불교 신정체제보다는 사회주의 현대화가 경제적으로는 더 풍요롭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지, 또 티벳 독립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심지어 취중을 빌려 중국과 티벳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지와 같은 예민한 질문도 던졌다. 그는 항상 평상심을 잃지 않고, 가끔 손목에 찬 불교염주를 만지기도 하면서 조용히 웃으며 “영화 속에서 표현한 바와 같다”는 짧은 답변을 하였다.

 

 세 번째 만남은 2015년 1월 10일부터 이틀간 서울 아트씨네마에서 중국영화포럼이 주최한 <티벳영화: 페마 체덴 특별전>의 ‘관객과의 대화’를 맡음으로써 이루어졌다. 페마 감독은 상영전을 마친 다음 날 1월 12일 한국외대 대학원 브릭스홀에서 열린 ‘제2회 중국영화포럼 전국학술대회’에서 <페마 체덴의 소설과 영화> 섹션에 참석하였는데, 그때 발표자와 방담자로 네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페마 감독과의 네 번에 걸친 만남과 인터뷰 속에 ‘티벳영화’에 대한 학술적 고민이 본격화되었고,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되었다.

 

 ‘티벳영화’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영화사적으로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과연, ‘티벳영화’란 존재할 수 있는 용어일까, 또 ‘중국영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 것일까. 페마 감독은 왜 ‘티벳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으며, 티벳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중국/티벳 관계가 갖는 외재적(外在的) 현실이 ‘티벳영화’와 중첩되어 의미화되는 우리 시대에 페마 감독의 영화와 예술정신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누군가 폄하한 대로 중국 정부의 민족단결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소수민족 출신의 중국영화일까, 아니면 티벳의 정신과 문화를 내세워 현재 티벳의 정치적 종교적 염원을 표출해내는 티벳영화일까.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중국 티벳 출신 페마 체덴 감독의 작품을 작가주의(Auteurism)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티벳과의 외부적 환경 속에 ‘티벳영화’가 독해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사회맥락적(context)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작가주의(Auteurism)란 영화제작의 주체로서 감독을 중심에 두고 감독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일관된 주제, 세계관, 스타일에 주목하는 연구이다. 1950년대 트뤼포 감독 등 프랑스 누벨바그 그룹에서 시작한 주장으로, 구조주의적 현대영화이론에 의해 주관적 비평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과학적 비평담론으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콘텍스트 분석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맥락적 의미를 분석하는 비평방법론이다. 이 글에서는 작가주의 입장에서 페마 체덴 감독과 작품을 고찰하고, 동시에 사회맥락적으로 분석하는 두 가지 층위의 방법론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페마 감독의 영화 역정을 살펴본 후, 대표적인 장편영화 세 편을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중국 현지와 한국의 티벳영화 관련 문헌자료를 참조하고, 3회에 걸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페마감독과 그의 작품이 갖는 주제의식과 사회맥락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페마 감독 이전에도 티벳과 관련한 영화들은 있었다. 크게 ‘서구’, ‘중국 대륙’, ‘티벳 출신’에서 만든 영화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서구’에서 만든 티벳 관련 영화로는 1997년 프랑스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과 같은 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쿤둔(Kundun)> 등이 있다. <티벳에서의 7년>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1950년 중국의 무력침공과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재현하고 있으며, <쿤둔>은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티엔주앙주앙 감독이 1986년 연출한 <말도둑(盜馬賊)>과 2004년 연출한 <드라무(德拉姆)>, 1997년 펑샤오닝(馮小寧) 감독이 연출한 <홍하곡(紅河谷)>, 청년감독 루촨이 2004년에 칭하이성에서 산양 밀렵군과 맞서 싸우는 티벳자경대를 다룬 중국어 영화 〈커커시리(可可西里)〉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티벳인이 아니라 비(非)티벳인이 관찰자적 시선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티벳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편, ‘티벳 출신’이 만든 영화 중에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영화는 티벳계 부탄 영화감독인 키엔체 노르부(Khyentse Norbu)를 들 수 있다. 부탄의 스님이자 영화감독인 키엔체 감독은 티벳 불교의 환생자인 린포체로 알려져 있으며, 1999년 티벳어로된 부탄 영화 〈컵〉을 만들었으며, 2012년도에는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을 연출하여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2005년에는 인도의 티벳 망명자 공동체를 다룬 리투 사린(Ritu Sarin)의 영화 〈꿈꾸는 라사〉가 있었고, 페마 감독의 〈늙은 개〉 촬영감독이었던 손타르 지알이 페마 감독의 영향 속에 2011년 자신의 첫 장편영화 〈태양의 길목〉을 연출하였고, 2012년에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성장해서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의 〈아버지의 땅〉이 개봉되었다. 최근에는 2008년 티벳 다큐멘터리 〈공포를 극복하고(Leaving Fear Behind)〉를 만들다가 촬영지에서 체포되어 6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톤툽 원첸 감독이 복역을 마치고 2014년에 석방되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들 영화 또한 중국 외부에서 만든 영화가 대부분이며, 이에 비해 페마 감독은 티벳을 배경으로 티벳인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표현한 티벳어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본격적인 첫 ‘티벳영화’라는 영화사적 의의는 있지만, 현재 페마 체덴 감독과 ‘티벳영화’에 대한 학술적 선행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중국영화연구자 이병민이 2014년 티벳독립과 연관된 관점에서 쓴 「완마이단 영화의 문화의 재구성 고찰」과 인도에서 활동 중인 티벳 문화평론가 텐징 소남(Tenzing Sonam)이 분석한 「페마 체덴과 티벳 영화의 출현」이 최근의 성과이며, 중국 현지에서도 페마 감독의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전영예술(電影藝術)〉이나 〈당대전영(當代電影)〉 등에서 몇 편의 소개글이 있을 뿐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중국영화포럼학회’와 ‘(사)한국씨네마테크협의회’에 의해 2015년 1월 10일부터 2014년 1월 11일까지 서울아트씨네마에서 페마 체덴 감독 영화상영전이 열렸으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도 ‘티벳영화’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이번 상영전에서는 그의 영화 7편(단편 2편, 장편 5편)이 상영되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은 사실상 최초의 티벳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는 페마 체덴과 그의 작품 전반을 학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화의 종다양성 보존과 문화정치학적 개입을 하는 실천적 연구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특히, 중국/티벳이 갖고 있는 정치적 현실이 영화에 중첩되어 투영되는 외재적 상황 속에서, 중국이나 티벳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제3자적 글쓰기’가가능하다는 점도 이 글이 갖는 의의라 할 수 있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③에서 계속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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