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주벌판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벌이거나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총이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정상천이 지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이런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서영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자 신분으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다.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 전역과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이른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이 같은 기록을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만나가며 재조명했다. 유고 글과 프랑스 언론 기고문, 현지 인터뷰 등을 번역해 싣기도 했다. 서영해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면면을 보게 되는 셈이다. 재조명되고 있는 서영해의 삶도 남다르지만 저자의 삶도 흥미롭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등을 거쳐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고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에 근무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공부하고 집필활동을 해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서영해의 열정적 삶이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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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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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316쪽/1만 6000원

빛바랜 흑백사진, 서양 소년들 사이로 익숙한 외모의 동양 소년이 앉아 있다. 다부진 입매가 돋보이는 소년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 간 서영해(원 안)다. 우리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보베시의 ‘리세’에서 파란 눈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에 저항해 어떤 이는 총과 폭탄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펜을 들고 낯선 땅에 갔다.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서방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1920년 프랑스로 유학 간 청년 서영해를 그린다. 그는 임정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렸다. 불어로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인 엘리자와 결혼해 아들 스테판을 낳았고, 스테판의 딸인 수지 왕이 할아버지의 첫 전기에 추천사를 썼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서울신문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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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서영해가 파리 보베시 리쎄 고등중학교 졸업반 때의 모습.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서영해.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일생을 조선독립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축 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돼 있다. 또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지은이는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 서석주의 8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적부터 총명해 '서약방의 백미'로 불렸다. 세살에 서당에 다녔고 네살 때 천자문을 떼어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학교, 화교학교를 마친 그는 일제치하에 억압받던 당시 우리 나라의 암담한 현실과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평민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집안 내력에 뭔가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이런 활동은 사회적, 민족적 현실에 대해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 전까지 1년 6개월간 상해에 머물렀다. 상해 임시정부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 중에 나이도 몸집도 제일 작아 '임정의 막내'로 불렸다. "부모님 걱정하신다. 돌아가거라." 임정 어르신들의 염려에도 서영해의 독립에 대한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임정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1919년 4월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1920년 북경으로 가서 의열단, 고려공산당, 국민대표회의 등 활동에 전념했다.

 

임정은 국제외교무대에서 공용어인 불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서영해를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서영해는 파리 북쪽 보베시 각급 학교에 입학해 초·중·고 과정을 6년 만에 마쳤다.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한 유학만 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주불대표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그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의 유학생활의 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영해는 프랑스 유학 4년째 되던 해에 퇴학을 당할 뻔했던 일화가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선생이 "인구가 600만명인 조선민족은 매우 게을러서 조상이 전해준 문화유산까지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굴욕적 내용의 강의를 했다. 이에 서영해는 책을 집어 던지며 "조선민족은 2천만이고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육은 미개한 일이다"고 반박했던 것.

 

조선독립을 위한 기고를 통해 프랑스 언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언론이야말로 해외에서 독립운동하기에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1929년 파리고등언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임정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게 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 스페인, 벨기에, 제네바, 체코 등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돌아다니며 강연과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서영해는 1936년 주프랑스특파원으로 임명되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가자 나치를 피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3여 년간 참여하기도 했다.

 

이승만과 서영해는 한때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나중에 독립운동에 대한 노선차이와 개인적 성격차이로 멀어지게 됐다. 서영해는 광복후 귀국해보니 국내정세는 난장판이었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김구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 김구를 추종하던 서영해는 광복 후 국내 정치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재출국하게 된다. 서영해는 1956년 상해에서 인성학교에 근무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중국에서 병사했다는 설, 제3국으로 갔다는 설, 북한으로 가서 살다 사망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316쪽 1만6천원.

 
 


매일신문 김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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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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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편집자입니다. 

이번주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정리 기간이라 은근 바빴네요. 네! 텀블벅은 내일 발송될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기대해주세요.


텀블벅 준비하기 전에 한 번 해봤던 분이 발송하는 일이 장난 아니더라 해서 정말 그럴까 했는데요. 목표금액은 달성했지만 발송 도서가 아주 많은 건 아니라서 무난하게 진행했지만 후원자가 많아서 발송해야 할 도서가 많다면 정말 전 직원이 동원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그런 날이 많았으면 하는 이 마음은 뭐죠ㅎㅎ


오늘 아침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쓴 저자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텀블벅에 보낼 사인을 다 하셨다고 하시네요.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정말 매일매일 저자와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같아요. 아침에 출근을 알리며 알림처럼 울리는 책 소식. 반갑고 또 즐거운 아니겠어요. 책이 나온 후 아무도 기사를 써주지 않고 서점에 세일즈 포인트가 올라가지 않는다면 편집자로서 기운이 쭉쭉 빠지지요. 


오늘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책 작업을 하면서 

언론에 조명되지 않은 서영해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서영해는 파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 이후에 고국에 돌아와 서울에 살면서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불어를 가르쳤는데요. 일본인이 만들었던 불어교과서는 던져버리고, 본인이 직접 타이프를 직접 쳐서『초급 불어』라는 불어책을 만들어서 강의했다고 합니다. 


불어에 있는 특유의 기호표시는 만년필로 직접 표기했다고 합니다. 우리만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서영해 선생의 굳은 의지와 집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서문에는 "일본인이 만든 교과서를 배제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교과서를 쓰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독립에 대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러고 적혀 있네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입니다.



[서영해가 직접 작성한 초급불어, 169쪽]


서영해가 고국에 돌아오니 자신을 파리에서 일본 대사관에 밀고하며 일본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 공공연히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친일을 빠르게 청산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때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의 업적이 아직도 후대에 전해지고 있지요. 


"일본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했던 서영해 선생은 어지러운 국내 정세와 혼탁한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함께 완전체로 완전한 독립을 하기 바쁜데 이념과 세력 다툼으로 정치인들은 바빴으니까요.


한때는 이승만 박사와 친했지만 정치적 이견 차이로 결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김구와 친밀해졌습니다. 서영해의 책과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는『백범일지』에 김구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백범일지』원본이라고 하네요. 거기에 " 서영해 지제 혜존, 무자원단 백범 김구"

"뜻을 같이하는 동생 서영해에게 이 책을 드리니 간직해 달라, 1948년 새해 아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범일지 친필서명(백범이 서영해에게), 171쪽]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이 책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정리한 내용이 책에 정성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 남한단독정부가 설립되지 않고 통일된 하나의 정부가 세워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서영해는 다시 프랑스로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역사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과거를 공부하고 역사를 읽으면서 현재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죠. 서영해의 삶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얼핏 책에 한자가 많다고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책을 고르신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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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19.02.21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저도 이 책을 3.1절을 맞아 읽어 볼 책으로 찜! 해두었답니다 ^^

소설 ‘대한독립만세’ ‘독립운동가…’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인문·연구서 ‘만세열전’ ‘파리의 독립운동가…’ 등 숨은 주역 조명
광주 만세운동 다룬 소설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눈길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독립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을 다룬 청소년소설과 다양한 인문서·연구서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출판사 서해문집은 청소년문학 여섯 번째 시리즈로, 청소년소설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담긴 소설집 ‘대한 독립 만세’를 출간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엮었다. 정명섭, 신여랑, 이상권, 박경희, 윤혜숙 작가가 의기투합해 발간한 결과물이다.

그 가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다룬 정명섭 작가의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이다.

정 작가는 당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해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진 역사의 현장을 담았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수피아여학교 학생 윤형숙과 최수향, 교사인 박애순과 진신애를 중심으로 만세운동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윤형숙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한쪽 팔을 잃고 ‘혈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야기는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준다.

“순사 보조원에게 끌려 나가던 윤형숙이 외쳤다. “조선 독립 만세! 일본은 물러나라!” 고개를 절레절래 저은 일본 순사는 자리에 앉아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중)

이밖에 책에는 제주도 조천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다룬 ‘열다섯, 홍련’(신여랑), 경기도 용인의 만세운동인 ‘봄바람 스치는 남바위를 쓰고’(이상권), 통영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통영의 꽃, 국희’(박경희), 강원도 홍천의 항일운동 이야기 ‘끝나지 않는 아침’(윤혜숙)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독립운동가가 된 고딩’(초록서재)은 이진미 작가가 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태웅이는 어느 날 체험학습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한복판으로 가게 된다. 과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당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며 당시 열일곱, 열여덟 살 학생들이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실제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익상 의사의 이야기를 차용해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이규희가 쓴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꿈터)는 1919년 3월 1일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왔을 때 과연 그 태극기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단초가 됐다. 일본 순사들이 태극기를 빼앗아가는 것에 분노한 도철이는 할아버지와 태극기 목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설이 아닌 인문서와 연구서로 만세운동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책들도 있다.

3·1운동의 기획자들, 전달자들, 실행자들을 토대로 엮어낸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만세열전’(생각정원)은 숨은 주역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역사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통 영웅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과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열아홉 살 나이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배제고보 2학년 김동혁은 책에서 처음 다루어진 인물이다.

“이 책은 3·1운동 시기 독립과 자유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중략)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복원하는 것이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펴낸 ‘3·1 혁명과 임시정부’(두레)는 왜 3·1운동이 아니고 3·1 혁명인지를 주장한다.

“국권을 빼앗긴 뒤 한민족은 해방투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전략·전술을 동원하여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이 3·1 혁명으로 집약되면서 민족적 에너지가 폭발했다. 국치 9년만에 폭발한 3·1 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임과 더불어 봉건군주체제를 종식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렸던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책도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상천 저자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에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던 서영해의 삶이 녹아 있다.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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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ㆍ저술활동으로 독립운동
일대기 ‘파리…’ 출간 이어
90년前 불어로 쓴 소설 번역

 

1930년 2월 이집트 월간지 ‘이집트 여인’에 실린

서영해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의 소개 글.

 

 

“그는 (중략)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이상주의자, 평화 수호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그리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일제 강점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외교, 저술 활동으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 1956년 실종된 이후 60여 년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그 이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에서 뒤늦게 호명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전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이어, 그가 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이 번역돼 나왔다.

 

‘파리의 독립운동가…’는 한국과 프랑스에 남아 있는 각종 사료, 유족들의 증언을 종합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영해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큰 한의원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에 참여했다 수배자로 몰리자 이름을 희수에서 영해로 바꾸고, 상하이 임시정부 일을 잠시 돕다가 1920년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에 언론사인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해 27년 간 임시정부 파리 통신원, 주프랑스 대표위원을 지내며 한국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 여론을 끌어내려 애썼다. 그의 독립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에는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뒤늦게 평가할 나올 정도로 활약이 컸다.

 

 

이승만과 서영해의 한때 가까웠던 모습. 파리 시절에 찍은 것이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서영해의 삶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이 아닌 남북한 통일 정부를 지향한 김구를 따르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중국으로 갔다는 짧고 모호한 기록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월북 설이 파다했지만, 북한에도 남아 있는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자 정상천씨는 외교통상부 출신 국가균형발전위 과장이다. 2000년 파리로 국비 유학을 갔다가 서영해라는 이름과 우연히 만난 뒤 그의 비극적 삶에 매료됐다. 정씨는 18일 통화에서 “서영해는 남북한이 통일되는 완벽한 독립을 꿈꿨지만, 분단의 현실과 국내 정치 갈등 속에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핍박 받으며 철저하게 잊혀진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았다”고 말했다.

 

 

 서영해 전기를 다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 번역서. 산지니•역사공간 제공

 

 

서영해의 이름은 해외에서 더 크게 조명 받았다. 한국 역사와 풍습을 서술한 그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은 1929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었고, 유럽뿐 아니라 이집트 언론에까지 소개 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한국 독립을 넘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의 외침이 공명한 덕분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의 절규로 끝맺는다. “일본의 범죄행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바로 문명 사회 전체다! 억압하는 일본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인류 전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에 내쏘는 거침없는 일갈에 유럽인들은 매료됐다.  

 

 

 

1937년 3월 22일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에 참석한 서영해. 노르웨이, 덴마크, 멕시코, 쿠바 지식인들과 함께였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어느 한국인의 삶’ 해설에서 “자유·평화 사상에 바탕을 둔 서영해의 자취는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 차원에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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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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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천 지음, 316쪽, 1만6000원, 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서영해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 그의 삶을 짚었다. 서영해의 유고, 프랑스 현지언론 기고, 인터뷰를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 수배대상자가 된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설립한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이 왜곡한 한국 이미지 바로잡기에 주력한다. 오스트리아인 엘리자와 결혼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스테판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은 서영해를 가족과 갈라놓았다. 타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광복 후 조국은 그를 환대하지 않았고, 백범(白凡)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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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

 

[3.1정신 잇는 사람들]①<下>이승만과 외교독립론 양축
임시정부 프랑스 유학생…졸업후 외교·기자·작가 등 활약
전쟁 소용돌이에 두 차례 결혼도 잇달아 불행한 결말로
1956년까지 中서 교사…중국 실종, 월북 사망 등 說 분분

 

서영해 선생 (사진=부산박물관 제공)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렸던 서영해 선생은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무장투쟁론과 양대 축을 이뤘던 외교독립론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임시정부의 외교 및 선전활동에 주력했다.

 

본명이 서희수였던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불과했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수배되는 처지가 되자 아예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갔다. 이 때 이름을 영해로 바꿨다. `임시정부의 막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당시 임시정부 어른들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음에도 심부름을 하며 독립운동을 배웠다. 마침 임시정부에서 당시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본부가 있던 파리를 외교독립 거점을 삼으면서 프랑스어 인재를 키우기 위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다.

 

1920년 12월31일 프랑스를 단 한마디도 못했던 서영해는 혈혈단신 파리로 건너갔는데, 훗날 그는 “내 이름처럼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기개로 구체적 계획은 없었지만 흉중은 세계정복이라는 포부로 가득찼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리세(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교육과정)에 입학, 1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친 그는 부족한 체제비로 인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도 1929년 파리신문학교(에꼴 드 주르날리즘)를 졸업했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서영해는 졸업하던 해 파리에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고 기자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외무부 주법특파위원, 1940년 파리통신원에 임명됐던 서영해는 국제연맹에 일제의 한국 침략 부당성을 알리는 외교전을 펴는 한편 한국의 실상을 유럽에 알리는 작업을 했다. 임시정부와 유학생, 교민들과의 연락책,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까지 맡았다.

 

1929년 쓴 자서전 격인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을 출간해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로, 단군신화부터 `3·1독립선언서`까지 한국 역사를 꼼꼼이 수록해 한국을 유럽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 또 <심청전>, <흥부와 놀부> 등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가 1945년 임시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면서 그 해 주파리특파원 주법대표를 역임했고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과 최초의 주불(駐佛)대사로 임명됐다. 당시 임시정부 외교에서 `미국에는 이승만,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특히 서영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직전 김구의 대일선전포고서를 파리에 있는 일본대사에게 통고하기도 했다

 

서영해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예술가 엘리자와 1937년 파리에서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1939년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히틀러에 의해 1938년 오스트리아가 합병되자 임신한 엘리자는 고향 빈으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둘은 재결합하지 못했다. 1946년 26년 만에 귀국한 서영해는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국내 정치상황을 살폈다. 서영해는 정치적으로 이승만보다 김구쪽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해는 1948년 스무살 연하인 경남여중 교사 황순조와 재혼했다. 이승만의 정치노선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 실망한 그는 다른 세 부부와 함께 외국에서 살 계획을 세웠다. 1948년 10월 서영해 부부는 상하이행 배에 올랐고 이후 프랑스로 갈 준비를 했지만 부인의 입국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아내는 한국으로 귀국한 반면 중국 국적인 서영해는 귀국하지 못해 부인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

 

이후 서영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중국에서 죽었다거나, 프랑스로 갔다거나 월북했다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이 발간한 <부산독립운동사>에는 `중국에서 행방불명`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1956년까지 상하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서영해의 사진이 남아있고 당시 이 학교 교장이던 선우혁이 북한으로 건너간 만큼 그와 함께 북으로 갔다는 추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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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달 3.1 운동 100주년…텀블벅, 소장가치 높인 창작물 펀딩 대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3.1 운동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각광 받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텀블벅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으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텀블벅에서 독립운동 관련 프로젝트는 2017년부터 진행돼 총 5000여명의 후원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지난해 열린 '대한 여권 케이스: 잊혀진 독립운동가 김문로 선생 알리기' 프로젝트의 경우 후원자 약 2500명의 후원으로 목표액의 2만% 이상 달성했다.

 

올해도 총 10개의 프로젝트가 개설, 약 1100명의 후원을 이끌어 냈다. '한인애국단 제 1호 단원 이봉창' 프로젝트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온 피규어 제작 프로젝트로, 28일 마감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펼쳐진 '안중근 의사 피규어 프로젝트'에 이은 5번째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백범 김구, 이봉창 의사 등 총 4명의 독립운동가가 피규어로 재탄생됐다.

 

또한 파리의 독립 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서영해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고려 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는데 주력했던 그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아 관련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크라우드펀딩이 독립 운동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투데이 김우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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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KBS 역사 한방에 소개된 영상: https://youtu.be/K2xdA13C8uY] 


독립운동에는 무장투쟁만 있지 않았다.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되어 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독자들에게 글로 서영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서영해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세상에 알려져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정신이 후대에 오랫동안 전해지길 바란다.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 대상자가 된다.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12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임시정부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부친이 부쳐준 생활비로 근근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끊겨 재정적 지원 없이 어렵게 유학생활을 마친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불어로 쓴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프랑스 언론의 높은 관심으로 1년 만에 5쇄를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서영해의 글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그려본다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을 따르지 않고 김구를 추종하였다. 서영해는 타국에서 외롭게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해방 이후 조국으로부터 환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설자리를 잃었다. 아쉽게도 서영해는 말년의 행적이 불확실하다. 저자는 책을 내기 직전까지도 서영해의 마지막을 수소문했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영해가 남긴 글들이 남아 있다. 서영해의 글로 강렬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려본다


추천사

수지 왕(서영해의 손녀)

솔직히 나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서영해가 프랑스에 망명해서 벌였던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 나의 아버지 스테판은 오랜 병마의 고통 끝에 20131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추도사를 읽어야 했기에,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새로 발견한 내용들을 추가하였고,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길에 그의 아버지(서영해)의 삶에 대해 알려드렸다.

나는 선친이 처음으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마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고, 그의 아버지에게서 그 자신의 성격과 유사성이 매우 많았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_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


밑줄긋기


저자소개

정상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읽고 공부와 집필을 계속하여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논문으로 「1886~1910간 한·불 통상관계가 미약했던 원인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정책」, 「프랑스 소재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과정 및 평가」 등이 있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다.

 

목차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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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9.02.14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간 배경에 파란 책이 강렬하네요~

다니엘이 나타났습니다. 

비정상회담에서 독일 대표를 맡았던 다니엘 씨가 찾아왔습니다.


저희 사무실이라면 좋겠지만, 사무실은 아니구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을 찾아가는 MBC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다니엘 씨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3월 31일, 일요일 밤 11시, 방영 예정]



이번에 출간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서영해 후손 분이 서울에서 약국을 하고 계시는데요.

다니엘 씨가 찾아왔다고 하네요.

호호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이죠.


이번 기회에 독립 운동가의 후손분들이 많아 알려지고 

조선 독립의 뜻을 기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책 소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책 자세히 알아보기]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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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의 정상천 저자 인터뷰



"북한내 독립운동가 연구 확대할 때…통일돼야 진정한 독립 완성"


- [3.1정신 잇는 사람들] ①<上>정상천 국가균형위 과장

- `일요일의 역사가` 자처…휴일 짬내 집필·학회활동까지

- 프랑스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영해 업적·사료 발굴

- "재외 및 北으로 간 독립운동가 재조명 필요한 때"
- "독립운동가 가족 애환·생활고 등 연구하고 싶어"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이때, 남북한 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북한으로 간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남북통일이 이뤄져야 진정한 한민족의 독립이 완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30년을 일해 오면서도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틈틈이 아마추어 역사가의 길을 걸어온 정상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은 2019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그 누구보다 새롭다. 임시정부에서 파견돼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외교활동을 통한 독립투쟁을 벌였던 서영해 선생 연구에 매달려온 정 과장은 이달중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을 출간하며 첫 결실을 내놓기 때문이다. 

경북대 사범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정 과장은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산업부에서 통상업무를 맡았다. 이후 통상업무가 외교부와 합쳐지면서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근무했고 지금은 국가균형위에 파견나와 있다. 공직생활 중이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간 국비 유학생으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 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과 프랑스 경제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외교부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일제 치하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접하면서 역사 공부에 매달렸다. 

특히 당시 자료에서 프랑스 외무부 아주국장과 면담했던 `상하이임시정부 주불(駐佛)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한 뒤 그 주인공인 서영해에 매료됐다. 임시정부 내 외교독립론자로 널리 알려진 이승만이나 김규식, 조소앙 등에 비해 부각되지 못했던 서영해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 과장은 “서영해는 해방 후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1963년쯤 김일성의 해외파 숙청 당시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그의 활동과 공적이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서영해의 강직함에도 이끌렸다. 그는 “장개석 대만 총통의 눈치를 보느라 1934년 제네바 국제회의에서 발표할 보고서에서 `만주가 옛 고구려 땅이었다`는 문구를 삭제한 이승만에게 대노하거나 해방 후 경교장에서 유유자적한다며 김구 선생을 꾸짖는 등 서영해는 특유의 강직함으로 입 바른 소리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북으로 가서도 김일성을 비판하다 숙청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정 과장은 서영해의 유품을 찾다가 1985년 별세한 미망인 황순조 여사가 끝까지 가지고 있던 앨범에서 1938년 백범 김구가 일제 밀정에게 피격된 `남목청 사건` 이후 병원에서 치료 후 거의 완치된 사진을 발견했다. 이는 <백범일지>에 글로만 기록된 사건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백범기념관에도 없는 자료였다. 그 외 서영해의 유학시절 사진, 경교장에서 김구와 찍은 사진 등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내 연구와 저술이 서영해를 비롯한 해외 독립운동가 연구에 물꼬 역할을 됐으면 한다”며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영해 선생 등 해외 독립운동가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 규명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유럽쪽 독립운동은 서영해 외에 뚜렷하게 활동한 인물이 없지만 생계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던 현지 교민들과 유학생들은 모두가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의 활동이 재조명되길 바랐다.

아울러 정 과장은 “서영해처럼 북으로 건너가거나 납치된 탓에 우리에게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이런 분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남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북한과의 문화 교류가 가능해진 만큼 독립운동사에 대해 학술 차원에서 남북간 교류를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후에 친일파로 확인됐는데도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들이 많은데 서영해 선생은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불과 5등급으로 분류돼 건국훈장 애족장밖에 받지 못했다”며 이렇게 평가절하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 과장은 스스로를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부른다. 평일엔 업무에 집중하느라 주말에만 역사를 공부하기 때문. 그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없는) 책을 쓰면 ‘일 안하고 딴 짓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웃었다. 정치외교사학회, 프랑스학회, 학국역사학회 등 여러 학회 활동도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참여한다. 그는 지금까지 10개 이상 논문을 썼고 2014년엔 이를 엮어서 `한불관계 130년간의 교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이던 민필호 선생의 아들이자 신규식 임시정부 국무총리의 외조카인 민영백 (주)민설계 회장이 비공식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사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귀띔한 뒤 “독립운동을 하면 3대(代)가 망한다고 했다는데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애환이나 고통, 생활고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며 기회가 된다면 이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향후 연구 계획도 살짝 소개했다.

끝으로 3.1절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한 감회를 묻자 그는 “아직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이 완결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어떠한 외세의 영향 없이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독립이라고 본다면 이 땅에서의 진정한 독립은 남북이 통일될 때에야 완성된다고 본다”며 속히 통일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어떻게 이룬 독립인데 내가 3.8선을 머리에 베고 누울 지언정 남·북한 각각이 단독정부를 세우는 걸 인정할 수 없다`며 해방 후 임시정부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 선생의 발언을 후대 모두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 이정훈 (futures@edail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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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상천 균형위 운영지원과장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독립운동가' 불러낸 사연은

 

"공무원이 일은 안 하고 책만 쓰네"라고 비아냥대는 시선도 있지만,

그가 역사 관련 책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스타트업4] 정상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은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현직 공무원 신분이지만, 주말을 포함해 짬이 날 때마다 역사 관련 자료를 들여다본다. 물론 그가 하는 일과 역사는 큰 관련이 없다. 주변에서 쏘아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타트업4>가 정 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과장은 지난 14일부터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통해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 출간을 목표로 도서 출판 그룹인 산지니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23일을 남긴 현재, 후원금액 1,615,000원을 모으며, 목표를 161%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정 과장이 맡고 있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운영지원과 과장이라는 직책은 언뜻 보기에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책을 기획하게 됐을까.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 (출처: 본인)


제가 하는 일과 책의 연관성은 전혀 없습니다. 공직생활 하면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국비 유학생으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 별명이 일요일의 역사가입니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니 주중에는 근무를 해야 해서 주말에만 공부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부릅니다. 틈틈이 계속 공부해서 이번에 다섯 권 째 책을 발간하게 됐습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을 살린 거죠. 사실 업무와는 관계가 없지만, 전공과는 아주 관계가 깊습니다.”

 

현직 공무원이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많은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과장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사실 목표 금액인 백만원이라는 금액은 적은 금액입니다. 백만 원은 벌써 다 찼습니다. 후원자가 41명이나 되는 것을 보니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하.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두 번째 목적은 사전 홍보입니다. 서영해 선생 관련해서 책을 쓰고 있는 분이 두 분이 더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장석흥 교수와 파리의 재야 사학자가 관련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점을 찍어 두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고 있다. 최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받기 위해서 진행 했습니다.”

 

그가 직접 느끼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체감온도는 어떨까.

 

이 정도면 괜찮아요. 하하. 반응 좋습니다.”

 

그가 여러 독립운동가 중, 서영해 선생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2013년에 쓴 책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5페이지에 걸쳐서 서영해 선생을 언급 했습니다. 그 책을 보고 서영해 선생 유족들이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족과 산지니 출판 그룹의 강수걸 대표가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산지니 출판 그룹 에서 저에게 책을 써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 서영해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책을 보던 중, 서영해 선생의 명함이 눈에 띄어서 였습니다. ‘독립운동가도 명함이?’ 도대체 서영해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책에 소개하게 됐고, 그것이 인연이 돼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관련 자료가 상당히 부족했다.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데에는 서영해 선생 유족들의 도움이 컸다.

 

서영해 선생 유족들이 준 자료가 있었습니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에 영해(嶺海) 문고가 있는데, 여기에는 서영해 선생 관련 유품 860여 개가 기증돼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의 둘째 부인인 황순조 여사는 경남여고에 교사로 재직할 당시, 서영해 선생의 유품, 편지, 원고들을 동료 교사였던 류영남 박사에게 전달한 뒤, 출판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출판이 어렵게 되자, 류영남 박사는 황순조 여사가 교장 직을 지낸 경남여고에 유품을 기증 했습니다. 그리고 경남여고에서 올해 부산시립박물관에 유품 전부를 기증했습니다.”

 

이처럼 서영해 선생 관련 자료는 대부분 유족들에게 나온 것일 뿐, 관련 사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영해라는 인물이 완전히 잊혀진 까닭은 남북 분단과 관련돼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김구 선생을 추종했고, 이승만 박사와는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멀어진 사이가 됐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만 할 뿐, 흔적은 없습니다. 1956년까지는 상해에 사셨습니다.”

 

서영해, 그는 왜 철저히 잊혀졌을까.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이 북한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 측면에서 볼 때, 미국에 이승만 박사가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 선생이 있습니다. 주 정부 이외에 양대 축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이 프랑스에 있으면서 프랑스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스위스 제네바, 스웨덴, 중동,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활동했습니다. 활동 범위가 굉장히 넓었습니다. 체코에도 지부가 있었다고 하고요.”

 

정 과장은 이처럼 서영해 선생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기까지 조금은 견디기 벅찬 과정을 겪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공무원이 책을 쓴다고 하면, ‘저 친구는 일은 안 하고, 책만 쓰나’,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담컨대, 일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힘은 역사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나온다.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원동력입니다. 잊혀진 인물을 발굴한다는 짜릿함이 있죠. 잊혀진 역사적 사실을 발굴한다는 짜릿함은 금광을 캐는 광부들이 느끼는 감정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금맥을 개발한다는 짜릿함.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인 김규식, 조소앙과는 달리, 위대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철저하게 잊혀진 인물을 발굴해 알린다는 것에서 금맥을 발굴한 것과 같은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양 대 축 중 하나의 축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은 미국의 이승만을 중심으로만 얘기했었다면, 이제는 서영해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의 유럽외교에 대해서 부각시켜야 하며, 그래야 균형이 맞다고 보는 것이다.

 

서영해 선생은 860여 권이나 되는 책을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할 정도의 문필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단편소설 <구두 장수의 딸>, <잊혀진 파리의 여인> 등의 집필 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와 한국이라는 잊혀진 국가의 존재를 알린 거죠. 일본이 완전히 병합해서 지구상에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서영해라는 인물을 통해서 계속해서 오랫동안 한국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킨 것입니다.”

 

일요일의 역사가가 아닌,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 과장으로서의 그는 이처럼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이 국가 균형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볼까.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죠. 사실은 지금은 남북이 분단돼 있기 때문에 남한만의 균형발전이잖아요. 어떤 이들은 국토가 좁은데 무슨 균형 발전이냐. 중국·유럽·미국도 아니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작아도, 균형 발전은 필요합니다. 수도권인 서울·인천·경기, 부산, 대전, 인천 등 광역시로 발전이 집중돼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인해 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한반도 균형 발전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현대사,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잊혀진 북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재조명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임시정부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일성 장군의 활동 내력입니다. 임시정부를 부각시키면 북한 정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비롯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부각시키면, 만주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 세력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만주를 함께 평가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것도 균형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좌우의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합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서영해 선생을 2019년으로 다시 불러낸 정 과장은 향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잊혀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삶 또한 다루고 싶습니다.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을 했던 민필호 선생의 아들 민영백 ()민설계 회장의 외삼촌이 신규식 임시정부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입니다. 민필호 선생, 신규식 선생의 삶에 대한 책은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스타트업4=임효정 기자] hj@startup4.co.kr

 

출처 : 스타트업4(Startup4)(http://www.startup4.co.kr)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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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19.01.23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화이팅:)

안녕하세요. Y편집자입니다. 


오늘 새벽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고향 가는 티켓도 발권하고 룰루랄라

어제 오픈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도 달성했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을 14일인 어제 시작했고 

목표액을 백만 원으로 잡았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루 만에 목표액이 달성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관심에 보답드리기 위해 

책 출간에 더욱더 힘을 내겠습니다.


아직 펀딩일자가 한 달 남았으니 널리 많이 알려주세요.


[텀블벅 바로가기 https://tumblbug.com/activist]


*표지는 시안입니다. 더 좋은 디자인으로 독자분들에게 찾아가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전격 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MBC 방송 확정!

∴ 도서 소개

독립운동에는 무장투쟁만 있지 않다. 
언론가, 문필가, 외교관 그리고 독립운동가 서영해!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임시정부와 유일하게 연락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27년간 고군분투했던 큰 거목이었지만 최근에까지 우리에게는 잊혔던 이름!

긴밀하고 촘촘했던 서영해의 외교활동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고려통신사 설립
한국인으로 최초로 불어소설을 집필,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
한때는 이승만과 친하였고 김구와도 긴밀하게 연락했던 서영해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가 
1920년 12월 프랑스로 단신 유학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사무실을 얻어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였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고 전 유럽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참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단순히 기사만 쓴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서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담당하며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이라는 장편 소설과 『거울, 불행의 원인』이라는 이름의 한국 전래민담, 「구두장 수의 딸」과 같은 단편소설 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이후 상해에 살고 있던 
도산 안창호가 일경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 교섭을 한 것은
서영해의 큰 외교적 성과였다

프랑스 정부와 여론을 움직여 일본정부에 압박을 가하게 하고 국제여론을 조성하였다. 비록 안창호 선생이 석방되지는 못했지만 ‘서영해’라는 이름 석 자와 그가 운영하는 고려통신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안타깝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영해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시피 그는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 박사를 따르지 않고 김구 선생을 추종하였다. 

서영해가 우리에게 남긴 삶과 사상

서영해는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개인적으로는 단란한 가족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는 교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포사회로부터 재정적 후원도 기대할 수 없었고, 상해의 임시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았다는 기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영해 혼자서 독자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고군분투하였다.


**이번 책 출간으로, 서영해의 조국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신념을 기리는 건 물론, 서영해 이외에 잊힌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조명되어 그 숭고한 정신이 후대에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함께 화합하기를 바랍니다**

∴ 책 본문 소개



∴ 도서 사양

판형: 152mm*225mm
쪽수: 약 324쪽
정가: 16,000원
표지: 몽블랑, 210g, 4도 인쇄 
본문: 미색모조, 100g, 2도 인

∴ 본문 미리보기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아도 그 삶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한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한 내용들도 가득 차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서영해의 삶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압권일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그리고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만큼 그대로 투영된 삶도 많지 않다.

(…)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파리에 한정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전역과 때로는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유럽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_들어가는 말 중

고려통신사는 임정의 외무부가 대유럽 외교를 위해 서영해를 통해 1929년 파리에 설립한 통신사이자 외교기관이었다. 고려통신사 설립 이전에는 황기환을 중심으로 한 파리위원부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문제를 호소하고 독립을 청원할 목적으로 1919년 4월 설치되어 활동하였다. 파리위원부는 1921년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외교 및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유럽에서 임정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_고려통신사 설립 중

서영해가 1929년 파리에서 발간한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Autour d’une vie  coréenne)』은 그가 고려통신사를 설립한 이후 첫 번째 시작한 일이었다. 부제로 한문과 한글로 ‘한국역사소설’로 표시되어 있는 이 책은 순수 문학소설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었다._한국인이 쓴 최초의 불어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Autour d’une vie  coréenne)』

∴ 작가 소개 

정상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다.

∴ 굿즈 상세 소개 [미니 편지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보세요”

파리에서 홀로 독립운동을 하던 서영해는 임시정부에게, 백범 김구에게,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에게 자주 국제정세와 조선독립 운동의 염원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가 유일한 소통의 매체이자 독립을 활동을 알리는 끈이었습니다. 서영해가 간절한 마음으로 조선독립운동의 염원을 담은 편지를 썼듯이, 평소 미루어 두었던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해보세요.

-매직칼라 색편지지 6매, 110*160mm
-크라프트 봉투 2매, 115*165mm
-실버 스티커 2매

 ★ 리워드 한 눈에 보기 ★

A: 19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1권+미니 편지지1세트
B: 22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1권+미니 편지지2세트
C: 35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2권+미니 편지지1세트
D: 38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2권+미니 편지지2세트
E: 48000원 후원시-초판 도서 3권+미니 편지지1세트(무료 증정)

* 모든 도서는 저자 친필 싸인 초판본으로 발송됩니다.
* 모든 리워드 금액이 배송비 포함입니다.


· 프로젝트 일정

편집 최종 및 제작 준비: 2019.1~2019.2
인쇄 및 제작 시작: 2019. 2월(예정)
텀블벅 프로젝트: 2019.1.14.~2.14
배송: 펀딩 종료 후 2주 이내 후원자에게 도착 예정.


★★★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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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19.01.15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 만에 달성이라니! ♡
    앞으로도 쭈욱 이 기세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화이팅:)!

  2. 날개 2019.01.15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텀블벅 하루만에 달성이라니 놀랍네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실 듯^ ^

  3. BlogIcon 라미드니오니 2019.01.15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토리보고 놀러왔어요ㅎㅎ공감도 꾹 누르고 갑니다.
    오후부터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져서 움추려드는 저녁이네요.
    남은 하루도 즐겁게 마무리하시고 제 블로그에도 들러주세요^^

  4. 권디자이너 2019.01.16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꿈인가요^^
    정상천 저자님 화이팅!

  5. 전천후 2019.01.23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