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쨍했던 목요일 (6/4), 구덕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앞마당에는 폐백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도서관을 두르는 울타리 건너편으로는 숲으로 난 산책길이 보이는 곳.

나무그늘 아래 책 읽기 좋은 

아담한 '동네 도서관' 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구경/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이 날 제가 도서관에 간 건

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올해의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


최영철 선생님은 시가 오늘날에는 소수자의, 변방의 장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80년대에는 문창과 학생들 대부분이 시를 쓰는 이들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은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쓸모와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지금, 시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의 속성 때문에

최영철 시인은 "그래도 시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고 하십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시를 한 편 나누기로 합니다. 

선생님께서 낭독하실 테니, 저희 참석자들은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시를 눈으로 읽다가 소리내어 말하고 들으면 다르듯이, 

써보는 것도 느낌이 새롭습니다.


    첫사랑 

              -이우걸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 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3장 6구로 이루어지는 시조에서는, 마지막 두 구가 클라이막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이 그리는 풍경은 뜨겁기는커녕 오히려 심심합니다.

최영철 시인은 청산유수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 순간을 추억하는 시를 함께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익숙하고 훈련된 것이 아니라 

낯설고 처음인 것마냥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고 꽃이지만, 시인은 그 꽃을 매번 새롭게 봅니다.

"수없이 마음을 뺏기는" 사람이 시인인 것입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라"

최영철 선생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수영 사적공원의 곰솔나무


시인은 표제작인 <금정산을 보냈다> 이야기를 꺼내시며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요르단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아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인들은 사실 엄청난 부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빈손이어야 삼라만상이 자기에게 안깁니다. 

좋은 차 타고 흙길 밟지 않는 사람에게는 들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세요." 라는 제안을 하실 때에는

선생님이 오래 사시던 수영에 있는 

사적공원의 푸조나무에 대한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잎-푸조나무 아래


동반 강사로 자리해주신 조명숙 소설가님!


최영철 시인의 짧은 강연이 끝난 뒤, 

조명숙 소설가의 진행으로

시를 함께 읽고, 읽은 시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표제작 <금정산을 보냈다>를 참가자 분의 낭독으로 함께 읽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 이 시의 주제는 부모의 사랑입니까? 시가 너무 어렵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시는 평소에 쓰는 말로 쓰여져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데요.

답: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시입니다. 이것은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몰라야 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시를 이해할 수 있나요?

답: 시의 관문은 이해가 아닙니다. 이해는 서사적입니다. 시는 공감의 예술입니다. 또, 시는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걸 볼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없는가'하지 마시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이해의 통로로 접근하기보다, 느낌을 주는 시를 찾아 읽으시길 바랍니다. 



번외 질문: 시집 뒤에 실린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들꽃을 만지실 때도 꼭 "만져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 만지신다 읽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답: 네, 정말 그렇습니다. 물어봐야 되요. 꽃을 만져보면 꽃이 부끄러워서 몸도 비틀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게 시심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강연회를 마치고 나오니 구덕도서관의 얼굴마담이라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반갑게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시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솔율입니다. 축하2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제가 추위도 물리칠 만큼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이전에 포스팅 하기도 했던, <산지니>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시인선의 첫 주자, 금정산을 보냈다의 저자 최영철시인을 제가 만나 뵙고 왔습니다. 문학을 좋아하고 특히 시와 소설을 주로 썼던 저는 마치 우상을 뵙는 기분이었는데요. 선생님을 만나 뵙기 전부터 벅찬 가슴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 만남은 특별히 수영사적공원 일대를 거닐며 이루어졌습니다. 문학이야기와 함께 과거 수영에 얽힌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참 뜻깊은 시간이었는데요. 구체적인 여정이 궁금하시다면 어서어서 오세요!

 

# 수영을 거닐다

  2015210일 화요일 오후 130, 솔율은 함께 인턴을 하는 규형92’님과 지하철 3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약속 장소인 수영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는데요. 일일 사진사를 맡으신 규형92님께 DSLR 카메라에 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도착!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렀던 덕에 근처에 있는 수영팔도시장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기다림 후, 짜잔! 드디어 최영철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선 곧 환갑이 다가온다 하셨지만 너무나 정정하신 모습에 저희는 연세를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답니다) 선생님께선 저희를 수영 사적 공원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한적한 골목을 따라 드문드문 점집이 보였는데요. 선생님께서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수영은 과거 어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부들이 많은 만큼 점집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은 분명한데요. 수영을 비롯해 영도다리 근처와 같은 바다 어귀엔 현재까지도 옛날 점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또한 저희가 미리 다녀왔던 수영팔도시장 역시 옛날 모습에서 크게 변하진 않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센텀시티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 과거엔 강과 바다를 끼고 많은 물자들이 드나들었던 수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골목의 끝에 야트막한 언덕과 같은 곳, 수영사적공원이 있었습니다. 옛날 수영성의 위치에 조성되어 있는 이 공원은 국보급 천연기념물 나무가 두 그루 있고, 수영야류 전승관도 있습니다.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뒤로 아파트 몇 채가 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과거 아파트자리엔 군인아파트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잠깐,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네요.

집 근처 폐가로 방치된 군인아파트

나는 날로 기울어져가는 그걸 바라보며

날로 기울어져가는 우리 문학을 생각했던 것인데

그걸 정부보조금으로 빌려 한국문학 부활 프로젝트

간판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군인아파트니까 보초는 군인들이 서는 게 좋겠지

아무 쓸모없는 꼬투리나 물고 늘어지는 글쟁이들에게

모종의 적개심 또는 열등감을 키워온

그래서 인정사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리고 또 한 부류

웬만한 글 앞에서는 미동도 않는 노장들로 심사위를 구성해

잘 써야 하는데 배가 불러지면서 잘 못 쓰고 있는 놈

잘 쓸만한데 뚜렷한 전기가 없어 허송세월하는 놈

백 명쯤 추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해 오는 거야

모든 우아한 소지품 압수

사흘 정도 냅다 굶기고 두들겨 패는 거지

지랄발광들을 하겠지 눈을 시퍼렇게 뜨겠지

이유라도 알려달라며 통사정이겠지

- 최영철,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전문, 금정산을 보냈다, 2014.

  살짝 시를 언급하자, 선생님께선 시에 담긴 의도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전에 우리 문학이 가장 왕성했던 때는 군사독재시기, 거슬러 일제시기, 조선왕조시대 선비들의 귀향살이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문학의 역사는 오래 되었는데요.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는 스러져가는 아파트를 다시 세워 글을 잘 쓸 수 있음에도 농땡이를 치는 문인들을 그곳에 넣어서 질타를 하고 싶은 화자의 심정이 잘 드러나는 시입니다.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문인들에게 강한 일침을 날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공원으로 들어서자 돌담 아래 작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25의용단인데요. 25의용단은 왜구가 바다를 통해 침략해왔을 때, 성주들이 다 떠나고 전투에 참여했던 부하들과 수영성 어민 중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25명의 넋을 기리는 마음으로 지어진 사당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최영철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25의용단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옆으로 자라는 나무가 나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나무를 와목(臥木)이라 이름 붙이셨는데 누워있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앞서 선생님께서는문학의 장소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공간은 필요 없이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 내기도 하고, 구체적인 공간을 가지고 쓰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장소성인 것이지요. 최영철 선생님께서는 구체적인 장소, 성장하고 자랐던 공간에서 소재를 많이 얻으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과거 수영에 사시면서 (수영을 배경으로) 4~5권정도의 시집을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수영사적공원을 매일같이 거니시면서 시를 많이 낚았다고 말씀하셨네요.^^

내 머리맡 어디쯤 쓰러져 크고 있는 사철나무를

와목이라 이름 붙였다

기울어진 나무는

자기를 슬며시 쓰다듬고 가는 여인에게로 기울다가

행장 챙겨 무작정 따라나서기도 하다가

저렇게 호된 회초리를 맞고 쓰러졌을 것

위로만 바라보아야 할 본분을 잊고

옆으로 옆으로 한눈 판 죄를 벌하려고

하늘이 나무의 다리몽둥이를 꺾어놓았을 것

그러나 그때

나무를 쓰다듬고 간 그 여인은

먼 여정에 눈앞이 아득해져

잠시 손 짚어 찰나를 쉬었다 갔을 뿐

- 최영철, 수영성 와목

  실제로 와목은 사철나무며 넘어진 채로 죽지 않고 살아서 크고 있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문학적 대상을 볼 때 자신과 동일시를 많이 하지요.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10대 때 교통사고로 병원생활을 오래 하셨을 때와 와목을 동일시 한다고 하셨는데요. 산책을 가실 때마다 와목을 쓰다듬으며 얼마냐 힘드냐한마디 남기시기도 하고 꿋꿋이 살아있는 모습에 기특함을 느끼기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산책을 하면서 처음 일 년 정도는 그런 나무가 있는지도 모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고 하시네요. ‘나무가 나를 오래 기다렸을 텐데 바라봐주지 않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하고 와목을 쓰다듬는 선생님의 손길에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오목조목 돌들이 박혀있는 예쁜 돌담을 지나 수영야류전승관도 잠시 들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전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공연장에 지붕이 생겨서 이제 우천시에도 공연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더운 여름에 햇빛을 가려주고 비를 막아주는 것도 좋지만, 저는 없어도 그 나름대로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햇살을 받으며 전통 탈놀음을 즐기는 기분,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나요?

 

  전승관을 넘어 아래로 걸어가며 저희는 선생님의 지난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영사적공원과 팔도시장의 기운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사적공원을,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느껴지신다고 하셨네요.

  보통 성장환경이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태어난 창녕보다는 부산에서의 추억이 더 많으십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 부산으로 나와서 범일동 산동네 단칸방에서부터 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또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매축지라는 곳에 사셨다고 하셨네요. 매축지는 부산진시장에서 부두 쪽으로 가면 보이는 동네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선생님께선 지금도 가끔 찾아간다고 하셨는데요. 옛 골목이나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성장기를 보냈기에 번화가보다는 오밀조밀한 동네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셨습니다.

 

# 시간 앞에서 잠시 머물다

  5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앞에 있는 벤치에 선생님과 저는 잠시 몸을 기댔습니다. 앞에서 수영사적공원에는 천연기념물인 나무가 두 그루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나무가 바로 국가 차원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푸조나무입니다. 처음 선생님께서 이 나무를 보셨을 땐 쓰레기와 연탄재에 뒤덮여 있었다 하셨는데요. 나무치료사들이 치료도 하고 시에서도 여러 노력을 한 끝에 지금의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푸조나무와 공원 안에 있는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곰솔 소나무는 원래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던 나무였다고 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푸조나무가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자신이 산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힘들거나 절망스러울 때마다 종종 들리셔서 나무를 보고 만지시면서 오백년을 묵묵히 견디는 나무도 있는데 나는 엄살이 심한 것이 아닌가하며 반성을 하신다고 하네요.

  세월이 지나 고향에 왔을 때, 그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자연물들입니다. 사람, 건물은 조금씩 변화하길 마련이니까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마음속의 표적으로써 이런 나무가 남아있으면 잠시 멀리 떠났다 돌아오더라도 이전의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만졌던 가지를 또 만지면서 좋은 기운을 나누는 것 또한 가슴 따뜻한 일이겠지요.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긴 푸조나무는 선생님의 작품 중 푸조나무 아래라는 부제가 달린 연작시로도 남아 있습니다.

잎 하나 피우는 내 등 뒤로

한 번은 당신 샛별로 오고

한 번은 당신 소나기로 오고

그때마다 가시는 길 바라보느라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었답니다

 

잎 하나 떨구는 발꿈치 아래

한 번은 당신 나그네로 오고

한 번은 당신 남의 님으로 오고

그때마다 아픔을 숨기느라

이렇게 많은 옹이를 남겼답니다

 

오늘 연초록 벌레로 오신 당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렇게 많은 잎을 피웠답니다

- 최영철, -푸조나무 아래

  푸조나무의 풍성한 가지들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들이 조금은 애달프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벤치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뒤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서 말했던 곰솔 소나무인데요. 작은 소나무는 부산시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며 큰 소나무는 국가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큰 소나무를 남성성으로 보고 작은 나무를 여성성으로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주보고 서로 이야기도 하고 의지를 하면서 오랜 시간을 꿋꿋이 버텨온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북적함, 그 속의 묵직함

  곰솔 소나무 앞에는 남문이 있습니다. 그곳을 따라 내려오면 수영팔도시장이 이어집니다. 시장을 따라 걸으며 정겹고 소담스러운 시장의 북적북적함 속에서 선생님과 저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산지니 시인선 1호이자, 부산 원북원 프로젝트 후보도서에도 오른 금정산을 보냈다는 부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집을 편집하면서 구성이 바뀌는 일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엔 가벼운 분위기의 시들을 배치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무게가 있는 시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편집과정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거운 시를 앞으로 보내셨다고 하네요. 시 한 편 한 편에도 있지만 어떻게 배치하느냐와 같은 편집과정에서 들어가는 의도도 중요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밝지만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어둠을 대중문화나 소비를 통해 피해가려고도 하는데요. 누군가는 그 어둠을 정면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기초 장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시인의 역할은 위기에 반응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며 출판 역시 문제적이고 중요한 고민들을 엮어서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지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아주 잘 해내고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아낌없는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순수문학과 실용문학의 흐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문학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두 가지 경향의 비율이 어느 정도 평균을 이룬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청으로써 동감했네요. 시나 소설보다 장르문학, 영상매체가 이슈가 되는 요즘. 문학의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최영철, '부산釜山이라는 말' 中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시만이 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려나가는 것이 필요하지요.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의 문학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아 그것이 오히려 문제적인 현상이 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우려도 살짝 내비쳐 주셨습니다.

 

# 문학으로 가는 길

  팔도시장을 나와 선생님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맞은편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엇! 저의 가방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스치는 장면, 바로 푸조나무였습니다. 잠시 앉았던 벤치에 가방을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규형92님께 양해를 구하고 저는 다시 수영사적공원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가방은 벤치 위에서 묵묵히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선생님께서 반갑게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제 어깨에 들려있는 가방을 보시곤, ‘푸조나무 할매께서 지켜주셨네!’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게 시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푸조나무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과 저희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카페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현재의 문학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도 문창과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부산 여전, 부산 예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에 문창과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남아있는 곳도 통합이 되어버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 세기마다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18세기는 18세기 나름대로, 21세기는 21세기 나름대로의 기운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로 오면서 장점도 보이지만 단점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문학이라는 장르가 균열을 직면하고 아픈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지요.

  선생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현대 사회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집중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학과 같은 선의의 장르들이 본연의 기운을 잃고 잘 팔려야 한다, 독자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평균을 유지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 선생님도 저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을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만은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께 작품을 쓰시는 것 말고도 출판일을 하시면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이 보실 텐데 그런 분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여쭤보았더니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출판을 한다는 건 문학사회 안에서 산다는 건데 좋은 친구들도 많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 사는 즐거움이 있지. 물론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은 거지만, 순수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서로를 위해주면서 힘들 땐 잘 도와주고 도움 받고 하니까 좋지. 그게 문학하는 즐거움이지."

  선생님의 말씀에 저도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의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문청들은 많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글을 쓰고 글을 논하는 사람들을 저 또한 많이 만나고 있지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합평하는 그 시간이 저는 참 좋습니다. 보수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장르를 열정적으로 논하는 그 시간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값진 시간이 아닐까요.

 

싸인을 하시는 최영철 선생님 (feat. 뒷풀이장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문학이 가야할 길은 상처와 균열을 조명하며 아픈 소리를 내지르고 사람들도 그 아픈 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문청과 문학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쉽게 읽히는 책도 좋지만 약간의 무게가 있는 도서, 혹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책 또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의 바람 또한 공감이 되었습니다.

  많이 보는 TV프로그램을 좋은 시간대에 배치하고, 많이 팔리는 책을 서점에서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는 것, 이러한 구조를 바꿔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이슈가 된 원북원 프로젝트를 비롯해 책을 선정하는 방식이 많이 팔리는 책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기준은 바뀌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이 팔리고 독자들이 많이 찾는 것과 같이) 단지 양으로 판가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좋은 기준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다수결이 아닌 시민을 포함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많은 의견을 듣고 종합하여 기준의 절충안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출판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출판 본연의 의미를 가지고 출판사가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격려가 필요하고, 부산시에서 시행하는 부산문화재단 우수도서선정과 같은 제도가 출판사들에겐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현상을 통해 시()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도 관심을 가져주면서 지역출판을 장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제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작은 바람입니다.

 

  보통의 인터뷰 형식과는 달라 많이 당황하셨죠? 수영 일대를 거닐며 색다르게 진행된 만큼 리뷰 역시 딱딱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어떻게 느끼실지 흠흠..). 최영철 선생님과의 만남, 저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스승님이자 함께 문학을 하는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문학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시고 계신 선생님을 본받아 저 역시 쉽게 흐트러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엔 아직 치열하게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사회 속에서의 고독한 싸움이겠지요. 그러나 결코 의미 없는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연락에도 흔쾌히 만남을 응해주신 최영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이상 저자 인터뷰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뿌잉3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