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9.04.22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_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저자 정상천 선생님 출연
  2. 2019.04.16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와 함께하는 따뜻한 커피 한잔
  3. 2019.04.11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 : 부산박물관 서영해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3)
  4. 2019.04.04 [국제신문]-[문화] 뒤늦게 조명받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5. 2019.04.02 [부산일보]-[문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6. 2019.03.27 [행사알림]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1)
  7. 2019.03.27 [세계일보]-[문화] ‘파리의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전기 나왔다
  8. 2019.03.27 [OBS NEWS]-[문화] [새로 나온 책] 독립운동, 그 위대한 여정
  9. 2019.03.25 OBS뉴스 '새로 나온 책'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소개되었습니다!
  10. 2019.03.20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MBC 다큐멘터리 방영!
  11. 2019.03.07 [경기일보]-[문화] [이주의 신간도서]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外
  12. 2019.02.25 [내일신문]-[신간]『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무대에서 조선독립을 알리다
  13. 2019.02.22 [서울신문]-[그 책속 이미지] 펜을 든 동양 소년, 독립을 외치다
  14. 2019.02.22 [매일신문]-[서평]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 펴냄
  15. 2019.02.21 [광주일보] 3·1절 100주년 앞두고 ‘독립운동’ 서적 봇물
  16. 2019.02.19 [한국일보] ‘잊어진 독립운동가’ 파리의 서영해
  17. 2019.02.18 [뉴시스] 100주년, 책으로 되새기는 3·1운동
  18. 2019.02.15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_<이데일리>
  19. 2019.02.15 [이투데이] 3.1 운동 100주년…텀블벅, 소장가치 높인 창작물 펀딩 대세
  20. 2019.02.12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책 소개) (1)
  21. 2018.10.29 영화가 곧 삶이다-『영화 열정』(책소개)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저자 정상천 선생님께서 출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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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라파 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201213일 아침 남프랑스에서 제일 큰 항구인 마르세유에 하륙할 때다. 대저 나이 스무살 전에는 어찌 그렇게도 간이 크며 어렵고 무서운 것이 없었는지 따뜻한 부모 슬하에 이별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흉중에는 깊이 남모를 천진한 어린 포부를 가지고 용맹스럽게 세계 정복을 떠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 27년간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을 넘나들며 우리 독립의 정당성을 알려온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남긴 자필 유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다고 할만큼 우리 독립운동가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인데요.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주목을 받고 계시죠. 독립운동가 서영해. 우리에게 그 잊힌 기억을 일깨워주실 분을 우리 문화시대 초대석에 모셨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저자.

 

어떤 마음이 들어서 책까지 쓰게 되었나요?

-불 근대관계 연구 우연히 어떤 문서에 서영해라는 한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 명함이 있었다는 것도 그동안 몰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대표라는 것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서영해 선생 관련 자료를 복사해서 국내에 가져왔습니다.

그 후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라는 책 집필하면서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이름으로 5페이지 정도로 서영해 선생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을 유족들이 보고 접촉해와서 지난 2월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벌이신 독립운동에는 어떤 영역이 있었나요?

서영해 선생은 1923년에 고등학교 과정 졸업하고 1926년부터 임시정부를 대변하였습니다. 1927년에 집안으로부터 유학 송금이 끊기자 포도농장 인부, 식당 종업원, 도서관 사서 일을 했습니다.

사서로 일하던 당시 어떤 기자가 한국은 미개하다. 일본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라고 쓴 기사에 반박 기사를 쓰며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8년에 임시정부의 지시로 언론기관인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숙소인 호텔 드 상리를 주소지로 하며 본격적인 언론, 문필활동, 외교활동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국제회의에도 참여하셨습니다. 유럽이 세계무대의 중신일 때, 제네바 국제연맹, 파리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 반파시스트 회의, 작가회의 등 임시정부의 유일한 공식 대표로서 유럽에서 개최되는 각종 회의에 참석해서 일본의 식민지 피폐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활동을 하셨는데 잘 알려지지 않으셔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서영해 선생께서 유럽에서 벌인 많은 활약, 활동들 참 놀랍고 이 사실이 이제야 밝혀진다는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국악방송에서 서영해 선생님을 최초로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셔서 너무나 감격하고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도 하늘에서 기쁜 모습으로 방송을 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들으시면서 같이 가슴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상천 선생님이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 4월 11일에 방송에 출연하셔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어떤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셨는지,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우리나라의 독립에 기여한 바는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정상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수십 년간 많은 노력을 해오신 서영해 선생님의 삶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시작으로 서영해 선생님을 비롯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업적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어떤 희생도 무릅쓰지 않은 것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맡은 바였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그분들을 가슴에 새기고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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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여 알라딘에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추천도서를 포함하여 책을 구매하면

 상해임시정부 커피잔과 받침을 증정하는데요.

산지니에서 펴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이벤트 도서에 포함되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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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91326&start=welcomepop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박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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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불대한민국임시정부대표'라고 표시되어 있는 서영해의 명함에서 착안한 현수막이네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신 전시 기획 담당자분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서영해의 삶을 간략하게 요약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수지와 스테파니가 등장하고 많은 분들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좌:수지,우:스테파니(서영해 선생님의 손녀들)

 

 

 

 

 

 

서영해 선생님의 유일한 혈육 스테판과 그 자녀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속에도 등장하는 서영해 선생님의 후손들입니다. 수지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의 기록물을 유심히 보고 있는 스테파니

 

 

학예사의 친절한 설명을 전해듣고 있는 수지와 스테파니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한글로 기록된 기록물을 읽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우리나라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학예사의 설명을 듣는 수지와 스테파니

 

 

 

 

 

 

 

서영해 선생님의 책상을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정말 서영해 선생님이 앉아 계셨던 것처럼 그 시대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네요.

 

 

 

좌: 보베 리쎄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우: 리쎄 졸업반 때의 모습. 아랫줄 우측에서 두 번째가 서영해

 

 

류영남 선생님이 기증하신 서영해 선생님의 기록물들입니다. 유럽과 상해 등지에서 활동하신 서영해 선생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한국에 계신 서영해 선생님의 후손 분들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산지니X공간에서 열린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아시나요? 에도 직접 찾아와 주셨는데요. 이렇게 다시 뵈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관련 포스팅을 볼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님이 자필로 남긴 여러 기록물들입니다. 류영남 선생님께서 얼마나 소중히 보관하셨는지 짐작이 가네요. 아주 오래되었지만 잘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의 서영해

 

 

 

 

 

 

그렇게 수지, 스테파니와 함께하는 특별전 관람이 끝났습니다. 수지는 할아버지인 서영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모든 자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수집하여 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서영해 특별전 포스터

 

 

 

시민들이 직접 채운 태극기

 

 

 

 

 

 

 

 

특별전을 관람하기 전에, 또는 관람 후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함께 읽어 보아요.

미처 전시하지 못한 자료와 일화가 모두 담겨 있답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 | 판 |  16,000원 | 

 9788965455790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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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부산박물관서 11일부터 특별전

 

 

- 외교·소설로 일제의 침략 알려
- 서신·사진 등 130여 점 전시
- 강연회·음악 공연도 준비


오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부산박물관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린다. 임시정부의 주프랑스 대사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서영해 선생을 기리는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가 이날 시작해 6월 9일까지 개최된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의 서영해 선생. 부산박물관 제공

서 선생에 관한 소식은 지난해 연말부터 적지 않게 알려졌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서 선생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다. 밀정에게 총을 맞은 백범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진을 통해 서 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2월 서 선생의 독립운동기를 담은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가 발간돼 본격적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먼저 서 선생에 관해 소개하면 1902년 부산 초량의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정에서 활동했다. 1920년 프랑스로 간 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침략과 조선의 참모습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34년 임시정부의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45년 2월 프랑스 대사로 공식 임명됐으며 1936년 9월 브뤼셀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국제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한국 전래민담 ‘거울, 불행의 원인’, 단편소설 ‘구두장수의 딸’로 조국의 독립과 우리 역사·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서 선생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그를 단지 독립운동가로 한정하기에 재능이 너무 많았다. 서 선생은 해방 후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정치 혼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등을 지켜보다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부인과 함께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 들렀다가 우여곡절 끝에 생이별했고 1956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1937년 12월 서영해 선생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

서 선생에 관한 재조명 작업은 지난해 관련 유품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앨범, 프랑스 언론 기고문, 임정과 주고받은 서신 등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695점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됐고 이번 전시에 130여 점이 공개된다. 유품은 부인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과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 경남여고 역사관에서 관리하다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번 특별전은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파란만장했던 일생과 치열했던 독립운동으로 구성됐다. ‘영해嶺海, 태산과 그 깊은 바다’로 시작해 ▷‘압록강 철교 넘어 상하이, 파리로’ ▷‘임시정부 주프랑스 특파위원 서영해’ ▷‘귀국 후의 활동’ ▷‘결혼 그리고 영원한 이별’ 순으로 진행된다. 테마별로 서 선생과 관련한 유물 영상 사진 자료 등이 입체적으로 연출된다.


개막식은 오는 11일 오후 4시 부산박물관 부산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오후 1시30분 부산박물관 대강당에서 ‘3·1 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제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초청강연회와 부산시립예술단의 기념 음악회가 펼쳐진다. 특히 이날 서 선생의 손녀 수지와 스테파니가 박물관을 방문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두 손녀는 서 선생과 파리로 유학 온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스테판의 딸이다. 서 선생은 2차 대전 발발로 엘리자와 만날 수 없게 됐고 부산으로 돌아와 결혼한 황순조 씨와도 뜻하지 않게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손녀들은 2017년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찾은 후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부산에 온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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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습니다.”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기획과장이 올해 펴낸 그의 저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특히 부산 출신이기도 한 서영해 선생에 대한 재조명이 부산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서 선생, 3·1운동으로 수배 받아

파리로 건너가 임시정부 외교 활동

“市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한 서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과 함께 ‘임시정부 외교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서 선생은 임정이 독립의 수단으로 외교를 염두에 두고 기획해 키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정 과장은 부산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지난 28일 부산을 찾아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서 선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서 선생은 1902년 1월 13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한다. 당시 서 선생의 나이 겨우 17세로 ‘임정의 막내’이기도 했다. 서 선생은 이듬해인 1920년 12월 임정의 외교활동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고, 1934년 4월 2일 임정의 주불외무행서에 임명된다.

 

 

 

서 선생은 파리에서 ‘고려 통신사’를 세워 언론활동을 하는 등 27년 동안 유럽에서 언론가, 문필가, 외교가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해방 후 서 선생은 이승만이 아닌 김구의 노선을 추종한 데다, 정부 수립 후 상하이로 건너가 실종되면서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사람들에게 잊혔다.

 

 

정 과장은 2000년 파리에서 한-프랑스 경제 관계 연구를 위해 1년 동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다가 서 선생을 처음 발견했다. 정 과장은 “당시 Seu Ring-Hai라는 명함이 첨부된 문서를 처음 보게 됐다”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로 표기된 서 선생의 명함을 봤을 때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정 과장은 이 때부터 프랑스 현지에서 서 선생 관련 자료를 수집하거나, 유족들과 연락하는 등 본격적인 서 선생 연구를 시작했다. 정 과장은 “오랜 기간 동안 서영해라는 인물에 빠져 있다 보니 가끔씩 서 선생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 선생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산사람 DNA’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서 선생과 같은 훌륭한 분을 더 많은 부산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부산시 등에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사진 정종회 기자 jj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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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은 최근에 들어서야 정상천 작가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외교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영해의 뜨거운 삶을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작가님과 함께 짚어가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일시: 3월 28일 (목) 저녁 6시 30분

 

장소: 산지니 X 공간

 

*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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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공무원 역사학자 정상천 박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펴내

 

 

정상천 작가(왼쪽)와 서영해 선생의 6촌 종손녀 서혜숙·김기영 부부. 서씨 부부는 저자가 서영해 전기를 집필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다.

 

최근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 인쇄에 들어간 화제의 신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를 쓴 정상천(57) 작가를 만나 책을 쓰게 된 경위와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 1902∼?) 선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였다. 정 작가는 현직 공무원이다. 일반적인 전문 작가도 아니고 재야사학자는 더구나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5년,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통상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현재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말에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역사 배달부’를 자처한다. 

 

 

저자 정상천은 공무원으로서보다는 지금까지 총 5권의 역사서 저술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1994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박사를 마친 튼튼한 학문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에 저술한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프랑스 외교 사료를 통해 본 한·불 관계 비사’(국학자료원)는 그의 세 번째 저술로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120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 중 역사적 의의가 있으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으로 집필되었으며, 관련 분야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부산에 있는 출판사 ‘산지니’가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하였다. 정 작가는 파리1대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수집한 서영해 관련 사료를 참조하여 2013년 출간한 그의 저서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소제목으로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신간에서는 서영해의 친척들로부터 받은 자료,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영해문고 자료,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영해의 유품과 유고, 앨범 등 폭넓은 자료들이 참고 되었다. 촘촘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02년 부산 초량동의 한약방 집 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난 서영해는 3·1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소위 ‘임정의 막내’가 된 서영해는 임정 요인들의 권유로 미국보다는 유럽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보내어져서 불어에 매우 능통한 외교관이자 언론인, 문필가로 육성되었다. 서영해는 임정이 ‘기획한’ 유학생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하였으며, 20여 년간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한 유일한 외교관이었다. 그는 7개 언어를 구사했다. 그래서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다’라는 유명한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서영해(가운뎃 줄 안경) 선생이 1956년까지 생존해 있었음을 확인하는 사진. 임시정부 부속학교였던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졸업 사진이다.

 

 

정상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서영해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국내에서는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서영해는 17세 나이에 부산지역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하였습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다가 임정요인들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1947년 5월에 귀국하기까지 27년을 해외에서 지냈고, 귀국 후에도 국내 체류기간이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그를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1956년까지 상해조선인민인성학교에 교사로 근무한 후 북한으로 갔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서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애써 외면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임정의 열강에 대한 외교라면 우리는 모두 이승만 박사만 알고 있는데, 서영해는 유럽에서 어떤 외교활동을 하였는지?

 

 

“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1929년 9월 28일 서영해는 파리 5구에 위치한 자신의 숙소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합니다. 물론 임정의 지시로 설립했지만, 재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소개, 일본 상품 배척, 일본의 외교와 선전을 방해하는 활동을 목표로 파리를 중심으로 강연, 언론 기고, 책자 발간 등의 활동을 통해 외교독립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개최된 많은 국제회의에 임정의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나라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탈의 폐해에 대해서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서영해는 1929년 7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2회 반제국주의자 세계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국제무대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12명의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임정은 서영해에게 프랑스 정부에 대한 항의와 더불어 석방교섭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언론에 배포한 호소문 ‘유럽의 자유양심에 고함’을 통하여 한국인들이 일본의 야만적인 억압에 신음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일어난 도산 안창호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체포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 망명가들에 대한 환대의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하였습니다.

 

 

비록 상해임시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안창호의 석방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체포된 12명중 9명은 석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33년 1월초에 이승만이 미국에서 제네바에 도착하여 국제연맹을 상대로 독립청원서 제출 등 외교활동을 전개할 때 그와 함께 6개월간 숙식을 함께하며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서영해는 1936년 9월 3일부터 6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회 만국평화대회와 193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2회 대회, 1935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문화 보호를 위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 등에 참석하여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사정과 독립운동을 널리 선전하였습니다.

 

 

서영해는 유럽지역에 있어서 우리 임정의 유일한 공식대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9월 주법특파위원(駐法特派委員), 우리나라의 해방이 임박해 오면서 1944년 3월 주불특파원, 1945년 3월 12일에는 명실상부한 주프랑스대사의 직위인 주법대표(駐法代表)로 임명되었습니다.” 

 

 

 

 

정상천 박사가 2월 27일 교보문고 배움홀에서 열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북 콘서트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서영해가 북한에 살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는 북으로 갔으며,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였고,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

 

 

“그는 1948년 말 유럽에서 다시 남북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부인 황순조와 함께 상해를 거쳐 프랑스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상해에 머무는 동안 중국이 공산화되는 기막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중국 여권을 가진 서영해는 부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최근 그가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임정의 부속학교)에서 1956년까지 근무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6·25 때 납북되었던 임정요인들이 상해에 있던 서영해와 연락이 닿았을 것이고, 형식적이나마 김일성의 초청을 통해 당시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장이었던 선우혁과 함께 북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북한 탈북자 중 어느 유력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서영해는 6·25 전쟁 때 납북된 임정 요인들이 살고 있던 평양 창광산 자락에 거주하였으며, 임정 요인들이 만든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노동신문에도 기고를 자주 하였고, 민주여성동맹위원장이던 박정애·허헌의 딸 허정숙과 가깝게 지내는 등 당시 북한에서도 대단한 엘리트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자료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언제 어떤 이유로 숙청당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대쪽 같은 성격에 미루어 볼 때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1963년~1965년 사이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나 삼석 특설묘지 등 다른 애국지사들이 묻힌 곳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여전히 그의 마지막은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서영해와 관련 어떤 일들을 추진할 계획인지?

 

 

“우리 역사교과서에 서영해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임정 외교의 양대 축 중의 하나를 담당했던 서영해가 유럽에서 펼쳤던 활동을 평가해서 역사 기록에 남기는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1995년에 서영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는데, 그가 1926년부터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하여 단신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노고에 비하면 전체 5등급으로 된 건국훈장 중에서 4등급인 애국장을 받은 것은 격에 맞지 않은 포상입니다.

 

 

최소한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 정도는 새로이 추서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최근에 제가 한국외교협회에서 발간하는 ‘외교’지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에서의 외교활동 평가 및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였습니다. 오는 4월 발간될 예정인데, 거기에 자세한 외교활동과 평가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등 각종 자료에 그의 사망연도가 1949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망년도 미상’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서영해의 유가족과 협의해서 ‘서영해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관련 자료 발굴과 학술적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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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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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 앵커 】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죠.
새로 나온 책, 오늘은 독립운동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봅니다.

【리포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정상천 / 산지니]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펜과 종이를 들고 독립에 앞장선 이도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외교관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 선생인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독립운동의 불모지였던 유럽에서 식민 통치의 부당함을 알리며 항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서영해 선생.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겁니다.

 

 

 

<영상취재:한정신/영상편집:김영준>

김희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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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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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오늘 자 (3월 25일) 'OBS뉴스 새로 나온 책'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소개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광복을 외쳤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하였는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시작으로

 

그동안 숨겨졌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정상천 저자와 함께하는 인문학당이

이번 주 목요일 (3월 28일)에 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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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MBC 다큐멘터리 방영!

 

 

MBC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 그중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에서는 서영해의 잊혀졌던 삶을 되짚어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시청해 봅시다!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 - 100년만의 귀향 통해 해외의 독립운동사 정리


오는 4월 1일(월)부터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머나먼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영웅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특집 다큐 4부작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가 찾아온다.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영웅들은 결국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지에 외롭게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숨겨진 영웅의 후손들을 찾아,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선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보고 선조들이 다시 밟지 못했던 땅, 대한민국으로 초대한다. 배우 손현주와 허일후 아나운서를 주축으로 각 분야의 다양한 샐럽들이 사절단이 되어 직접 초대장을 전달하고, 잊고 있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촬영 중 만난 후손들과 세계 각지에 흩어진 독립운동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은 4월 10일(수)부터 MBC 1층 로비에 전시되어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iMBC 김미정 |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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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자 : (1부) 4월 1일 오후 8시 55분 

 

 

 

< 정상천 저자, 영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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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이주의 신간도서]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外

 

 

 

 

 

 


                                  ▲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 / 이용준著 / 더봄刊
지난 1984년 출판돼 단행본으로만 2억 8천만 부를 팔아치운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을 통해 경영을 배울 수 있는 책이 출판됐다. 저자는 드래곤볼에 등장한 인기캐릭터 손오공, 프리저, 베지터, 피콜로, 셀 등이 처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이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과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유수의 외국계 기업에서 조직 개발 및 기업 교육을 담당하던 와중에 드래곤볼을 읽다 비즈니스 관점의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베지터의 실패는 교만에서 비롯됐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배우는 시간관리’, ‘왜 기뉴의 체인지는 실패했는가’ 등의 챕터를 통해 비즈니스에 대해 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전망이다. 값 1만5천 원


 

 

 


                                   ▲ 사람이 너무 어려운 나에게



사람이 너무 어려운 나에게 / 가토 다이조著 / 작은우주刊
누구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살기 원한다. 인간이라면 타인에 의해 재단 당하고 잘려나가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잔인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신의 침대에 뉘어서 침대보다 크면 잘라내고 작으면 늘여서 죽였다고 한다. 오늘날 심리적으로 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학대당한 상처를 평생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사회가 제공하고 부모가 동의한 스펙이라는 틀 속에 구겨 넣어지고 있으며 생존하고 인정받으려고 자신을 억압하고 감추며 살고 있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허상을 만들고 그것을 실제의 자신이라 믿으며 모든 것을 바쳐 그 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부류이다. 저자는 무책임한 평가와 무관심한 지적에 노출되어 악영향을 받은 이들이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일어서지 못함을 안쓰러워하며 일어서는 법을 알려주려 한다. 값 1만3천800원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정상천著 / 산지니刊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조명한 책이 출판됐다. 그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그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값 1만6천 원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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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주벌판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벌이거나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총이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정상천이 지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이런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서영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자 신분으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다.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 전역과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이른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이 같은 기록을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만나가며 재조명했다. 유고 글과 프랑스 언론 기고문, 현지 인터뷰 등을 번역해 싣기도 했다. 서영해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면면을 보게 되는 셈이다. 재조명되고 있는 서영해의 삶도 남다르지만 저자의 삶도 흥미롭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등을 거쳐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고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에 근무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공부하고 집필활동을 해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서영해의 열정적 삶이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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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316쪽/1만 6000원

빛바랜 흑백사진, 서양 소년들 사이로 익숙한 외모의 동양 소년이 앉아 있다. 다부진 입매가 돋보이는 소년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 간 서영해(원 안)다. 우리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보베시의 ‘리세’에서 파란 눈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에 저항해 어떤 이는 총과 폭탄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펜을 들고 낯선 땅에 갔다.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서방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1920년 프랑스로 유학 간 청년 서영해를 그린다. 그는 임정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렸다. 불어로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인 엘리자와 결혼해 아들 스테판을 낳았고, 스테판의 딸인 수지 왕이 할아버지의 첫 전기에 추천사를 썼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서울신문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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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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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서영해가 파리 보베시 리쎄 고등중학교 졸업반 때의 모습.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서영해.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일생을 조선독립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축 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돼 있다. 또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지은이는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 서석주의 8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적부터 총명해 '서약방의 백미'로 불렸다. 세살에 서당에 다녔고 네살 때 천자문을 떼어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학교, 화교학교를 마친 그는 일제치하에 억압받던 당시 우리 나라의 암담한 현실과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평민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집안 내력에 뭔가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이런 활동은 사회적, 민족적 현실에 대해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 전까지 1년 6개월간 상해에 머물렀다. 상해 임시정부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 중에 나이도 몸집도 제일 작아 '임정의 막내'로 불렸다. "부모님 걱정하신다. 돌아가거라." 임정 어르신들의 염려에도 서영해의 독립에 대한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임정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1919년 4월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1920년 북경으로 가서 의열단, 고려공산당, 국민대표회의 등 활동에 전념했다.

 

임정은 국제외교무대에서 공용어인 불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서영해를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서영해는 파리 북쪽 보베시 각급 학교에 입학해 초·중·고 과정을 6년 만에 마쳤다.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한 유학만 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주불대표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그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의 유학생활의 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영해는 프랑스 유학 4년째 되던 해에 퇴학을 당할 뻔했던 일화가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선생이 "인구가 600만명인 조선민족은 매우 게을러서 조상이 전해준 문화유산까지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굴욕적 내용의 강의를 했다. 이에 서영해는 책을 집어 던지며 "조선민족은 2천만이고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육은 미개한 일이다"고 반박했던 것.

 

조선독립을 위한 기고를 통해 프랑스 언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언론이야말로 해외에서 독립운동하기에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1929년 파리고등언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임정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게 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 스페인, 벨기에, 제네바, 체코 등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돌아다니며 강연과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서영해는 1936년 주프랑스특파원으로 임명되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가자 나치를 피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3여 년간 참여하기도 했다.

 

이승만과 서영해는 한때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나중에 독립운동에 대한 노선차이와 개인적 성격차이로 멀어지게 됐다. 서영해는 광복후 귀국해보니 국내정세는 난장판이었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김구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 김구를 추종하던 서영해는 광복 후 국내 정치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재출국하게 된다. 서영해는 1956년 상해에서 인성학교에 근무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중국에서 병사했다는 설, 제3국으로 갔다는 설, 북한으로 가서 살다 사망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316쪽 1만6천원.

 
 


매일신문 김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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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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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한독립만세’ ‘독립운동가…’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인문·연구서 ‘만세열전’ ‘파리의 독립운동가…’ 등 숨은 주역 조명
광주 만세운동 다룬 소설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눈길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독립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을 다룬 청소년소설과 다양한 인문서·연구서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출판사 서해문집은 청소년문학 여섯 번째 시리즈로, 청소년소설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담긴 소설집 ‘대한 독립 만세’를 출간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엮었다. 정명섭, 신여랑, 이상권, 박경희, 윤혜숙 작가가 의기투합해 발간한 결과물이다.

그 가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다룬 정명섭 작가의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이다.

정 작가는 당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해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진 역사의 현장을 담았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수피아여학교 학생 윤형숙과 최수향, 교사인 박애순과 진신애를 중심으로 만세운동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윤형숙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한쪽 팔을 잃고 ‘혈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야기는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준다.

“순사 보조원에게 끌려 나가던 윤형숙이 외쳤다. “조선 독립 만세! 일본은 물러나라!” 고개를 절레절래 저은 일본 순사는 자리에 앉아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중)

이밖에 책에는 제주도 조천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다룬 ‘열다섯, 홍련’(신여랑), 경기도 용인의 만세운동인 ‘봄바람 스치는 남바위를 쓰고’(이상권), 통영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통영의 꽃, 국희’(박경희), 강원도 홍천의 항일운동 이야기 ‘끝나지 않는 아침’(윤혜숙)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독립운동가가 된 고딩’(초록서재)은 이진미 작가가 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태웅이는 어느 날 체험학습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한복판으로 가게 된다. 과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당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며 당시 열일곱, 열여덟 살 학생들이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실제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익상 의사의 이야기를 차용해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이규희가 쓴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꿈터)는 1919년 3월 1일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왔을 때 과연 그 태극기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단초가 됐다. 일본 순사들이 태극기를 빼앗아가는 것에 분노한 도철이는 할아버지와 태극기 목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설이 아닌 인문서와 연구서로 만세운동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책들도 있다.

3·1운동의 기획자들, 전달자들, 실행자들을 토대로 엮어낸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만세열전’(생각정원)은 숨은 주역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역사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통 영웅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과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열아홉 살 나이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배제고보 2학년 김동혁은 책에서 처음 다루어진 인물이다.

“이 책은 3·1운동 시기 독립과 자유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중략)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복원하는 것이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펴낸 ‘3·1 혁명과 임시정부’(두레)는 왜 3·1운동이 아니고 3·1 혁명인지를 주장한다.

“국권을 빼앗긴 뒤 한민족은 해방투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전략·전술을 동원하여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이 3·1 혁명으로 집약되면서 민족적 에너지가 폭발했다. 국치 9년만에 폭발한 3·1 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임과 더불어 봉건군주체제를 종식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렸던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책도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상천 저자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에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던 서영해의 삶이 녹아 있다.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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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ㆍ저술활동으로 독립운동
일대기 ‘파리…’ 출간 이어
90년前 불어로 쓴 소설 번역

 

1930년 2월 이집트 월간지 ‘이집트 여인’에 실린

서영해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의 소개 글.

 

 

“그는 (중략)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이상주의자, 평화 수호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그리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일제 강점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외교, 저술 활동으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 1956년 실종된 이후 60여 년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그 이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에서 뒤늦게 호명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전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이어, 그가 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이 번역돼 나왔다.

 

‘파리의 독립운동가…’는 한국과 프랑스에 남아 있는 각종 사료, 유족들의 증언을 종합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영해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큰 한의원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에 참여했다 수배자로 몰리자 이름을 희수에서 영해로 바꾸고, 상하이 임시정부 일을 잠시 돕다가 1920년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에 언론사인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해 27년 간 임시정부 파리 통신원, 주프랑스 대표위원을 지내며 한국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 여론을 끌어내려 애썼다. 그의 독립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에는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뒤늦게 평가할 나올 정도로 활약이 컸다.

 

 

이승만과 서영해의 한때 가까웠던 모습. 파리 시절에 찍은 것이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서영해의 삶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이 아닌 남북한 통일 정부를 지향한 김구를 따르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중국으로 갔다는 짧고 모호한 기록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월북 설이 파다했지만, 북한에도 남아 있는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자 정상천씨는 외교통상부 출신 국가균형발전위 과장이다. 2000년 파리로 국비 유학을 갔다가 서영해라는 이름과 우연히 만난 뒤 그의 비극적 삶에 매료됐다. 정씨는 18일 통화에서 “서영해는 남북한이 통일되는 완벽한 독립을 꿈꿨지만, 분단의 현실과 국내 정치 갈등 속에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핍박 받으며 철저하게 잊혀진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았다”고 말했다.

 

 

 서영해 전기를 다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 번역서. 산지니•역사공간 제공

 

 

서영해의 이름은 해외에서 더 크게 조명 받았다. 한국 역사와 풍습을 서술한 그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은 1929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었고, 유럽뿐 아니라 이집트 언론에까지 소개 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한국 독립을 넘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의 외침이 공명한 덕분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의 절규로 끝맺는다. “일본의 범죄행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바로 문명 사회 전체다! 억압하는 일본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인류 전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에 내쏘는 거침없는 일갈에 유럽인들은 매료됐다.  

 

 

 

1937년 3월 22일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에 참석한 서영해. 노르웨이, 덴마크, 멕시코, 쿠바 지식인들과 함께였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어느 한국인의 삶’ 해설에서 “자유·평화 사상에 바탕을 둔 서영해의 자취는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 차원에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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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천 지음, 316쪽, 1만6000원, 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서영해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 그의 삶을 짚었다. 서영해의 유고, 프랑스 현지언론 기고, 인터뷰를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 수배대상자가 된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설립한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이 왜곡한 한국 이미지 바로잡기에 주력한다. 오스트리아인 엘리자와 결혼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스테판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은 서영해를 가족과 갈라놓았다. 타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광복 후 조국은 그를 환대하지 않았고, 백범(白凡)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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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

 

[3.1정신 잇는 사람들]①<下>이승만과 외교독립론 양축
임시정부 프랑스 유학생…졸업후 외교·기자·작가 등 활약
전쟁 소용돌이에 두 차례 결혼도 잇달아 불행한 결말로
1956년까지 中서 교사…중국 실종, 월북 사망 등 說 분분

 

서영해 선생 (사진=부산박물관 제공)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렸던 서영해 선생은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무장투쟁론과 양대 축을 이뤘던 외교독립론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임시정부의 외교 및 선전활동에 주력했다.

 

본명이 서희수였던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불과했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수배되는 처지가 되자 아예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갔다. 이 때 이름을 영해로 바꿨다. `임시정부의 막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당시 임시정부 어른들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음에도 심부름을 하며 독립운동을 배웠다. 마침 임시정부에서 당시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본부가 있던 파리를 외교독립 거점을 삼으면서 프랑스어 인재를 키우기 위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다.

 

1920년 12월31일 프랑스를 단 한마디도 못했던 서영해는 혈혈단신 파리로 건너갔는데, 훗날 그는 “내 이름처럼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기개로 구체적 계획은 없었지만 흉중은 세계정복이라는 포부로 가득찼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리세(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교육과정)에 입학, 1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친 그는 부족한 체제비로 인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도 1929년 파리신문학교(에꼴 드 주르날리즘)를 졸업했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서영해는 졸업하던 해 파리에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고 기자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외무부 주법특파위원, 1940년 파리통신원에 임명됐던 서영해는 국제연맹에 일제의 한국 침략 부당성을 알리는 외교전을 펴는 한편 한국의 실상을 유럽에 알리는 작업을 했다. 임시정부와 유학생, 교민들과의 연락책,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까지 맡았다.

 

1929년 쓴 자서전 격인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을 출간해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로, 단군신화부터 `3·1독립선언서`까지 한국 역사를 꼼꼼이 수록해 한국을 유럽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 또 <심청전>, <흥부와 놀부> 등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가 1945년 임시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면서 그 해 주파리특파원 주법대표를 역임했고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과 최초의 주불(駐佛)대사로 임명됐다. 당시 임시정부 외교에서 `미국에는 이승만,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특히 서영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직전 김구의 대일선전포고서를 파리에 있는 일본대사에게 통고하기도 했다

 

서영해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예술가 엘리자와 1937년 파리에서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1939년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히틀러에 의해 1938년 오스트리아가 합병되자 임신한 엘리자는 고향 빈으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둘은 재결합하지 못했다. 1946년 26년 만에 귀국한 서영해는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국내 정치상황을 살폈다. 서영해는 정치적으로 이승만보다 김구쪽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해는 1948년 스무살 연하인 경남여중 교사 황순조와 재혼했다. 이승만의 정치노선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 실망한 그는 다른 세 부부와 함께 외국에서 살 계획을 세웠다. 1948년 10월 서영해 부부는 상하이행 배에 올랐고 이후 프랑스로 갈 준비를 했지만 부인의 입국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아내는 한국으로 귀국한 반면 중국 국적인 서영해는 귀국하지 못해 부인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

 

이후 서영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중국에서 죽었다거나, 프랑스로 갔다거나 월북했다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이 발간한 <부산독립운동사>에는 `중국에서 행방불명`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1956년까지 상하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서영해의 사진이 남아있고 당시 이 학교 교장이던 선우혁이 북한으로 건너간 만큼 그와 함께 북으로 갔다는 추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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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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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달 3.1 운동 100주년…텀블벅, 소장가치 높인 창작물 펀딩 대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3.1 운동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각광 받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텀블벅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으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텀블벅에서 독립운동 관련 프로젝트는 2017년부터 진행돼 총 5000여명의 후원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지난해 열린 '대한 여권 케이스: 잊혀진 독립운동가 김문로 선생 알리기' 프로젝트의 경우 후원자 약 2500명의 후원으로 목표액의 2만% 이상 달성했다.

 

올해도 총 10개의 프로젝트가 개설, 약 1100명의 후원을 이끌어 냈다. '한인애국단 제 1호 단원 이봉창' 프로젝트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온 피규어 제작 프로젝트로, 28일 마감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펼쳐진 '안중근 의사 피규어 프로젝트'에 이은 5번째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백범 김구, 이봉창 의사 등 총 4명의 독립운동가가 피규어로 재탄생됐다.

 

또한 파리의 독립 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서영해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고려 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는데 주력했던 그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아 관련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크라우드펀딩이 독립 운동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투데이 김우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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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KBS 역사 한방에 소개된 영상: https://youtu.be/K2xdA13C8uY] 


독립운동에는 무장투쟁만 있지 않았다.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되어 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독자들에게 글로 서영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서영해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세상에 알려져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정신이 후대에 오랫동안 전해지길 바란다.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 대상자가 된다.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12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임시정부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부친이 부쳐준 생활비로 근근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끊겨 재정적 지원 없이 어렵게 유학생활을 마친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불어로 쓴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프랑스 언론의 높은 관심으로 1년 만에 5쇄를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서영해의 글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그려본다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을 따르지 않고 김구를 추종하였다. 서영해는 타국에서 외롭게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해방 이후 조국으로부터 환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설자리를 잃었다. 아쉽게도 서영해는 말년의 행적이 불확실하다. 저자는 책을 내기 직전까지도 서영해의 마지막을 수소문했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영해가 남긴 글들이 남아 있다. 서영해의 글로 강렬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려본다


추천사

수지 왕(서영해의 손녀)

솔직히 나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서영해가 프랑스에 망명해서 벌였던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 나의 아버지 스테판은 오랜 병마의 고통 끝에 20131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추도사를 읽어야 했기에,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새로 발견한 내용들을 추가하였고,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길에 그의 아버지(서영해)의 삶에 대해 알려드렸다.

나는 선친이 처음으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마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고, 그의 아버지에게서 그 자신의 성격과 유사성이 매우 많았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_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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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상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읽고 공부와 집필을 계속하여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논문으로 「1886~1910간 한·불 통상관계가 미약했던 원인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정책」, 「프랑스 소재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과정 및 평가」 등이 있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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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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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든 사람”-장 뤽 고다르
영화를 구한 사나이, 앙리 랑글루아

“앙리 랑글루아는 누구인가?”

 

1968년 2월 말, 드골 대통령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가 들은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공동창립자이자 사무총장이며 실질적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 이 대답에는 틀린 것이 없지만 충분한 대답은 아니다. 이 간단한 설명으로는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랑글루아를 해임했다고 해서 프랑스 영화계 전체가 거리로 나선 까닭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 ‘앙리 랑글루아는 누구인가?’


『영화 열정: 시네마테크의 아버지 앙리 랑글루아』는 앙리 랑글루아의 생애를 담기 위해 그의 지인 및 관계자 76명을 인터뷰해 만들어졌다. 괴짜 영화광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인 이 책은 랑글루아 개인의 궤적을 따라가면서도 무성 영화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영화문화사의 형성기를 들여다본다.


1920년대, 대부분의 사람들(심지어 영화 산업 종사자들까지도)은 영화를 그저 값싼 일회성 오락의 형태로 인지했다. 하지만 앙리 랑글루아에게 있어 영화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예술의 한 형태였다. 그리고 1935년, 그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한다. 이곳은 잘 알려진 대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 누벨바그 감독들의 주요 모임 장소였다.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랑글루아는 당시 젊은 감독들에게 그야말로 ‘빛을 준’ 인물이었다.

 

 

 

 

 

 

▶ “우리에게 천국이었다. 은신처이자 집이었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프랑수아 트뤼포
전설적인 영화인들의 학교이자 도서관, ‘시네마테크 프랑수아’

 

1935년 프랑스, 무성영화가 사라지던 시절 청년 앙리 랑글루아는 무성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무성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의 서클Cercle du Cinéma’을 만든다. 이후 영화의 서클은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재탄생한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시네마테크를 향해 “영화에 대한 신념을 깃들게 하는 영화 교회이자 전설적인 영화인들을 배출한 영화 학교이자 도서관”이라고 칭했다. 이처럼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상영하고 보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등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세계관을 키워나간 곳이자 세계 영화사를 다시금 쓴 곳이라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위협 속에서도 2만 편이 넘는 영화를 지킨 앙리 랑글루아는 1948년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운영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예술인과 영화관들이 매일같이 넘쳐났다. 영화관이었지만 때때로 영화를 주제로 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를 경험한 당시 어린 관객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은 이후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누벨바그의 감독들이 되었다.

 

 

 

 

 

 

▶ “앙리 랑글루아에게는 영화가 곧 삶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그의 생애를 통해 영화사의 복원하고 재발견하다 

 

이 책에 나오는 앙리 랑글루아의 삶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그의 과대망상적 성향과 음모론에 대한 믿음까지 겹쳐지면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며 필름 아카이브의 역사와 필름 보존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다. 영화산업의 쇠퇴(혹은 변모)라는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세기의 말부터이지만 그와는 역방향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영화사의 재발견 혹은 영화사의 복원이라는 움직임이다. 이 분야는 무엇보다도 아카이브의 존재가 중시되는 분야이다. 특히, 책의 5장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에서 언급되는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웨딩 마치>의 사운드판 복원의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분실 내지는 결손된 작품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이를 통해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앙리 랑글루아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지 영화필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 사회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공유하며 이를 통해 배우고 소통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들을 지켜나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영화를 사랑했던 어느 괴짜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에 예술과 문화의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리차드 라우드는 정말로 중요한 책을 썼다. 영화 역사에 대한 중요한 공헌 중의 하나로 손꼽힐 것이다. _마르셀 오퓔스, <아메리칸 필름>

 

『영화 열정』은 개인적인 회상록이면서 동시에 필름 아카이브의 짧은 역사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오늘날 영화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랑글루아가 어떻게 거의 혼자 힘으로 이룩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_댄 이삭, <뉴욕 타임즈> 북 리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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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역자 소개                                                         

 

글쓴이 리차드 라우드 Richard Roud

미국의 영화비평가이자 영화 큐레이터. 1929년에 태어났으며 1950년 위스콘신 대를 졸업했다. 1951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갔고 이후 런던에 머물면서 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내셔널 필름 씨어터의 프로그래밍을 맡았으며 런던 필름 페스티벌, 뉴욕 필름 페스티벌의 디렉터로 일했다. 프랑스 및 유럽 영화를 영미권에 소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누벨 바그의 감독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편집한 책에 『영화: 비평 사전Cinema: A Critical Dictionnary』(1980, 2권)이 있으며 쓴 책에 『고다르』(1967, 증보판 1970), 『장 마리 스트라우브』(1972) 등이 있다. 1989년 프랑스 님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번역자 임재철

영화평론가.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서울 시네마테크 대표, 광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엮은 책에 『알랭 레네』, 『장 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 등이 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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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정 - 10점
리차드 라우드 지음, 임재철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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