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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31 미지의 섬에서 마주친 또 다른 나:: 장편소설 『토스쿠』 (1)

장편소설


토스쿠


필리핀의 섬에서 실종된 로봇공학자,

그가 만난 ‘또 다른 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연히 모인 곳은 한 로봇공학자의 목공심리치료소.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장 박사’와 함께 나무를 매만지며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어느 날, 장 박사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고, 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장 박사를 찾아 떠난 3인은 미지의 섬에 있다는 그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을까?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데뷔하고 소설집 『작화증 사내』로 부산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정광모가 새로운 장편소설을 펴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신작 『토스쿠』의 제목은 ‘또 다른 나’라는 의미를 가진,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작가는 “한 인간의 내면에는 수많은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다. 또 다른 나는 살인자이거나 독재자일 수도 있고 광신도이거나 예술가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살고 있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가능성의 씨앗을 싹틔워 인간의 한계와 현실의 본질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뚜렷한 개성과 사연 지니고 모인 인물들

선명한 이야기 속의 이야기 돋보여

『토스쿠』는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에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뒤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요트투어 사업을 하고 있는 남 사장과 그의 사업을 돕는 후배 손태성이 있다. 어느 날 남 사장은 일주일간의 무인도 투어를 예약 받는데, 손님 3인은 성격도 배경도 제각각이라 어떤 이유로 함께 여행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무인도로 떠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컴퓨터 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으나 해외에서 아들과 아내 모두를 잃은 박순익, 기계제작회사 직원으로 제품 배달 중 싱크홀에 빠진 후 폐쇄공포증을 겪게 된 오장욱, 한때 배우를 꿈꿨으나 스폰서와의 굴욕적인 계약을 견디지 못한 성주연. 이들의 선장이 된 태성은 어릴 적 부모 없이 보호시설에서 자랐고, 한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다 남 사장의 부탁을 받고 필리핀에 왔다. 처음에 순익 일행은 태성에게 투어의 목적을 비밀로 하지만, 순익이 장 박사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장 박사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토스쿠라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섬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나도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토스쿠라는 건 영혼의 문이랄까? 이승의 문이랄까……  하여튼 또 다른 문이라는 의미의 말인데…… 그 문이 열리면 자신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자신의 실체를 선명하게 들여다본다는 뜻이야. (…) 이곳 어느 섬, 정확히 얘기하면 죽음과 탄생의 성지, 그곳에 가면 자신의 토스쿠를 만난다는 거야.” (56쪽)

각각 뚜렷한 개성과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4인방의 이야기는 장 박사를 찾아가는 거시적 서사 내에 현대인의 고립과 누적되는 상처에 대한 선명한 장면들을 녹여낸다. 이야기 속에 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배치하며 작가는 노련하게 소설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9dB_1HSWd7U


유독폐기물을 싣고 표류하는 유령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

민낯으로 드러난 현대 문명의 모순들

『토스쿠』의 주인공 4인은 필리핀의 바다를 항해하며 현대 문명에서만 가능한 광경과 인물들을 만난다. 태성 일행의 배는 짙은 안개 속을 방황하다 다행히 큰 화물선의 도움을 받는데, 놀랍게도 거대한 화물선에 타고 있는 사람은 선장과 선원 1명뿐이다. 선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화물선은 중국에서 정체불명의 화물박스를 싣고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가고 있었으나, 항만관리소의 조사에서 화물박스의 내용물이 유독폐기물이라는 것을 밝혀졌다.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동남아시아의 모든 항구로부터 입항을 거절당하게 되었고 폐기물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선장과 충직한 선원 1명만이 유령선이 되어버린 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태성과 승객들은 해류가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해역을 지나기도 한다.

양동이, 석유통, 필름, 호스, 전선피복, 완구, 선풍기 날개, 화장품 용기, 자동차 램프, 헬멧, 우유병, 푸른색 물탱크, 낚싯대, 햄 포장비닐, 카세트테이프, 구두창, 주사기, 링거액 주머니, 합성피혁, 파이프…….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들은 너무나 거대해서 바다의 거품을 뚫고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로 보였다. (266쪽)

그들은 플라스틱 바다에서 쓰레기로 작은 시설물을 지어 살았던 사람의 흔적과 시신을 마주하며 현대 문명을 돌아본다. “가상은 때로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법”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광경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망각해온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성과 과학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히는 소설

이 세상에 ‘또 다른 나’가 존재할 가능성은 비이성적인 미신이나 흑마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토스쿠』의 인물들은 그 존재의 가능성을 거부하기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 박사를, 또 자신의 토스쿠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떠난 여정에서 번번이 드러나는 것은 이성과 과학의 명쾌한 설명을 벗어나는 세계이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주인공들은 필리핀의 사람들과 대자연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에 몸을 맡긴다.

인간의 인식과 기계문명의 이기 바깥에서도 이 세계는 생동하고 있다. 『토스쿠』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힌다.



글쓴이 : 정광모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작화증 사내』로 2013년 부산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토스쿠』로 2015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저서로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작화증 사내』, 『작가의 드론독서 1』이 있다.


차례

토스쿠

작가의 말 | 소설이 가는 길



토스쿠

정광모 지음 | 46판 336쪽 | 13,800원

978-89-6545-356-7 03810 | 2016년 5월 30일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로봇공학자 ‘장 박사’의 도움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던 사람들. 그들은 어느 날 장 박사가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또 다른 나’를 찾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나선 그들은 장 박사와 함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토스쿠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