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지니는 음악과 연극으로 조국의 광복을 노래한 독립운동가 한형석 선생의 평전을 출간했는데요. 지난 주 금요일엔 '2020 먼구름 한형석 문화축전'의 일환으로 세미나와 전시가 개최되었습니다.

 

오후 4시 행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던 일을 정리하고, 광복동에 있는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복잡한 광복동 중간,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입구에는 문화축전과 그 주최인 부산문화재단, 그리고 세미나를 알리는 배너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세미나 시작 전, 전시 물품을 먼저 둘러봤는데요. 선생의 젊은 날 활동 모습과 항전가극 <아리랑>의 포스터, 공연 장면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등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것과 이미 수십 년도 더 지난 옛날이라 그때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더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어요.

그래도 있는 자료를 양껏 활용(!)해서 이처럼 다양한 전시배너까지 설치해 놓았습니다.

 

마침내 세미나가 시작되고, (사)청소년교육문화재단 장혁표 이사장, 국립항공박물관 전시교육팀장이자 이번에 <한형석 평전>을 쓴 장경준 저자, 독립기념관 양지선 연구원, 필로아트랩 이지훈 대표 등의 강연이 잇따랐습니다. 각각 20분 정도로 강연 시간을 배정받았는데, 시간을 지켜 끝내는 출연자는 없었어요. 그만큼 한형석 선생의 삶과 예술교육, 구국활동 등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았다는 의미겠죠. 강연으로 못다 했던 이야기는 청중들의 질문과 조금 더 깊이 있는 대답을 통해 주고받았는데, 이 역시 시간이 조금만 더 넉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선생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그 내용을 알리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한형석 선생의 공을 되새길 수 있었어요.

 

강연과 세미나 이후에는 출판 기념회 시간을 잠깐 가졌는데,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한형석 선생의 손녀가 직접 연주하는 <압록강 행진곡>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손녀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작품... 다시 생각해봐도 뭉클합니다.

 

다음은 한형석 선생이 직접 쓴 글인데요. '그냥 갈 수 없잖아'라는 내용과 힘차고 부드러운 선이 조화를 이루는 글씨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싶다는 굳은 의지와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은 어디인가요?

산지니 블로그에 들른 김에 여기저기 지난 흔적을 남기는 건 어떠세요?

 

한형석 평전 - 10점
장경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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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민동에서 1950년대 초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을 운영할 당시 한형석(맨 왼쪽)과 그의 아버지 한흥교(왼쪽에서 세 번째) 선생. 부산일보DB

 

〈한형석 평전〉이 나왔다. ‘음악과 연극으로 조국 광복을 노래한 독립운동가’가 한형석(1910~1996)이었다.

그는 부산 근현대사에서 독특한 20세기 인물이었다. 20세기는 식민지 경험을 치렀고 그 식민지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인 시대였다. 부산 근현대 몇몇 인물들의 항일과 그 이후 궤적을 살피면 부산진의 박재혁과 동래의 박차정은 일제와 싸우면서 목숨을 바쳤고, 기장의 김두봉·김약수는 독립운동가로 남북 분단 뒤 북한으로 넘어갔고, 동래와 범어사에서 자란 장건상과 김법린은 부산을 떠나 해방 이후 서울 정치판에 몸을 담았다. 부산진의 최천택과 동래의 요산 김정한은 일제하의 부산을 지키면서 부산에서 사회운동과 문학에서 자기 길을 개척했던 이다.

 

아버지 이어 반평생 중국서 독립운동

광복군 들어가 ‘국기가’ 등 작곡도

두 동강 난 조국 실망 부산서 활동 펼쳐

‘먼구름체’에 고매한 인품 고스란히

 

이들과 견줄 때 동래 사람 한형석은 어릴 적 6년간을 빼고는 중국에서 반평생을 살았다. 스스로 ‘반(半) 중국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다. 1948년 귀국할 때까지 중국에서 32년을 살았던 그였다. 그것이 그가 감당한 20세기 동래 사람 한형석의 찢긴 삶이었다.

한형석의 골수에는 ‘근대 동래 정신’이 박혀 있었다. 그의 아버지 한흥교(1885~1967)는 ‘근대 동래’가 배출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신식학교인 개양학교와 삼락학교를 졸업한 아버지 한흥교는 부산 최초의 서양 의사였다. 한흥교는 1911년 유학 간 일본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신해혁명이 일어난 중국으로 간다. 중국에 가서 한흥교는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한흥교가 집안 사정으로 7년여 귀국한 시절, 세운 대동병원이 오늘날 대동병원의 시초였다. 여하튼 한흥교는 28년여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한형석은 그런 아버지 혈통을 이어받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12년을 중국에서 같이 살다가 헤어진 의사 아버지와 달리 그는 예술을 택했다. 갈등할 때 “프랑스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혁명가가 백만 대군보다 강했다”라는, 아버지 친구이자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성환의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한형석이 7~8년여 중국 예술계의 찬사를 받던 예술가에서 본격적인 항일 운동가로 변신한 것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였다. 전투에서 죽을 고비도 넘긴 뒤 1941년 이범석 장군 휘하의 광복군에 들어가 너무나 유명한 ‘국기가’ ‘압록강행진곡’을 작곡한다. 광복군으로서 한형석은 국내 진격을 위한 지옥훈련도 받았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해방이 갑자기 온 것이었다.

그의 호는 먼구름이었다. 한형석은 언제나 고요히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 없이 물 같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살았다. 대제국을 호령한 알렉산더 대왕이 부러워한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처럼 ‘가벼움의 철학’을 온전히 살았다. 그가 귀국한 것은 1948년 8월, 이승만 정권이 출범할 무렵이었다. 그는 비통해했다. 다시 찢긴 것이다. 두 동강 난 조국, 어지러운 사상, 그는 한강변에 서서 죽어간 동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반평생의 새 출발을 위해 고향으로 왔다. 그는 ‘미끄러져 내려왔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부산에서의 활동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부산문화극장을 개관하고 자유아동극장을 창립하고 색동야학원을 운영하는 등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그를 ‘고매한 인품’으로 추억한다. 그 인품의 한 자락을 ‘먼구름체’라는 그의 독특하고 멋진 서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서체는 부산대, 임시수도기념관, 동래임진의총, 대동병원, 충렬사, 윤흥신 장군 동상 등 부산 곳곳에 남겨져 있다. 중앙동 목로주점 ‘부산포’의 편액 ‘그냥 갈 수 없잖아’도 그가 썼다.

부산박물관에서 근무했던 장경준이 쓴 이번 평전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135쪽에 그의 삶을 4장으로 나눠 서술했고, 나머지 120여 쪽에는 ‘한형석의 예술 작품 및 기타 자료’를 실었다. 지난 2006년 부산근대역사관이 특별기획전을 열면서 출간한 〈먼구름 한형석의 생애와 독립운동〉과 같이 읽으면 보완이 될 듯하다. 이 책에 실린, 1977년 9~11월 〈부산일보〉에 연재한 한형석의 글 ‘나의 인생 나의 보람’은 압권이다.

한형석이 이국으로 떠나는 딸에게 써준 글귀는 깊이 새길 만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는 그 삶을 살았다. 장경준 지음/산지니/256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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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평전 - 10점
장경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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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탄생 110주년, 문화축전으로 기린다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음악가…13~15일 기념 심포지엄 등 개최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문화운동가인 먼구름 한형석(1910~1996·사진) 선생 탄생 11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2020 한형석 문화축전’이 처음으로 개최된다.

부산문화재단은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부산의 기억, 예술로 아로새긴 광복의 꿈’이라는 주제로 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며 부산 문화의 맥을 되살리는 축전을 연다고 8일 밝혔다.

축전은 크게 심포지엄과 평전 발간기념회, 기념 오페라 공연으로 구성된다. 오는 13일 오후 4시 중구 광복동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 개막식을 겸해 ‘먼구름 한형석 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 장혁표(전 부산대 총장) 청소년교육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이 ‘자유아동극장과 한형석 그리고 예술교육’을 주제로 강연하고 이어 장경준 국립항공박물관 전시교육팀장이 ‘한형석의 삶’을 발표한다. 양지선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아리랑을 통해 본 한유한(형석)의 예술구국 투쟁’,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가 ‘현대공공예술의 선구자, 한형석’을 주제로 발제한다.

한 선생의 일대기를 정리한 ‘한형석 평전(출판사 산지니)’ 발간 기념식이 이어 진행된다. 필자인 장경준 팀장은 한 선생과 관련한 논문을 다수 발표해 한형석 연구전문가로 꼽힌다. 평전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항일운동과 해방 후 부산에서의 문화운동 행적을 꼼꼼하게 검증하고 정리했다. 향후 한 선생 연구의 정본(正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한 선생 유품도 현장에 전시된다. 해방 이후 항전가극 ‘아리랑’에 대해 기록한 글과 악보, 아동가극 ‘리나(1937)’ 중 ‘유랑자의 노래’ 악보, 자유아동극장 가설흥행 허가원(1953), 탈극 ‘순절도(1969)’ 대본 등을 볼 수 있다. 선생의 손녀로 바이올리니스트인 한운지 씨가 축하 연주도 한다.

해방 후 부산으로 돌아온 선생의 행적을 담은 오페라 ‘그 이름 먼구름’은 14, 15일 오후 5시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공연(국제신문 지난 3일 자 18면 보도)된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기사원문읽기]


Posted by _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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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국제신문(https://url.kr/s1IndD)


위 사진은 부산포식당에 있는 편액입니다. ‘그냥 갈 수 없잖아라고 쓰인 저 글귀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독립운동가의 기개를 담고 있습니다. 편액은 예술구국활동으로 독립운동의 사기를 드높였던 한유한(韓悠韓)이 직접 쓴 것입니다. 한유한은 한국광복군 한형석이 항일예술작품 활동을 할 당시 일본 제국주의 감시를 피하고자 쓴 가명으로, ‘한국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 시절의 한형석(1945. 6. 15.)

 사진 출처한형석 평전』, 106쪽.


한형석은 예술구국이라는 항일투쟁 노선으로 중국 관내 한인 무장 세력을 규합하고 한·중 연대 투쟁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작품성으로 주요 활동지였던 중국의 예술 발전에도 큰 영향을 줬죠.


중국 학계는 한형석의 예술작품과 활동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 출처: 중국 논문 검색 사이트 즈왕(知王, https://kns.cnki.net/kns8/defaultresult/index)


2020년은 한국독립군 창립 80주년이자, 적후방 선무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한형석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형석의 고향이자 귀국 후 주요 문예활동지였던 부산은 한형석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개관한 국내 첫 아동극장(부산 부민동 소재)<자유아동극장>의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산문화재단은 그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창작과 평전 출간을 기획했죠. 뮤지컬<그이름 먼구름>과 평전은 11월에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형석은 한국전쟁 시기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색동야학원>을 개설하여 전쟁고아를 보살폈다그는 극장에서 아동극인형극그림연극을 2년 동안 500여 회 상연(11만 8천여 명 관람)하여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다

 사진 출처: 부산 서구 블로그(http://blog.daum.net/well0/2470)


먼 타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예술로 맞섰던 한형석은 전쟁과 분단으로 상처 입은 조국을 예술로 어루만졌습니다. 11, 한형석 평전으로 예술 구국에 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겸 문화예술운동가 한형석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한형석 다큐멘터리 보러가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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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신채호... 역사를 잘 몰라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수없이 접했을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입니다.

김원봉, 조소앙, 김상옥, 나석주, 김지섭... 역사를, 특히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만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한형석... 역사를 깊이 공부하지 않고서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이름일 텐데요.

조금은 생소한 그 이름, 한형석 선생님은 광복군에서 활약한 항일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분입니다. 작곡 등을 공부하여 한국 현대음악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으며, 이를 통해 해방 이후에는 부산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쓰시기도 했습니다.

2020, 올해는 한 선생님이 태어나신 지 110주년 되는 해로 산지니는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한형석 평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자와 부산문화재단 그리고 산지니가 협력해서 선보일 이 책은 깊은 가을, 여러분께 깊은 의미로 다가갈 것입니다.

한형석을 검색하면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선생님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 한형석 선생님은 베이징에서 소학교, 중학교,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구국 예술 운동에 뜻을 두고 상하이 신화에술대학 예술교육과에서 음악과 연극 등을 공부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산둥성 등지에서 항일 혁명 투쟁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예술 교사 겸 영어 교사, 항일연극대장, 공작대장, 음악 교관, 예술부장 등을 역할을 합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항일가극과 군가를 작곡해서 보급하기도 했고, EO로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본캐와 부캐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신 분이죠.

이 외에 더 깊은 한형석 선생님의 업적과 활동은 오는 11월 출간 예정인 <한형석 평전>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깊은 가을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일은 대한민국 광복 7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더없이 기쁜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남북 분단이 시작된 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쉬는 날 그리고 임시공휴일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새겨보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독립운동가들 외에도 제겐 어릴 때부터 광복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요. 일제강점기를 짧게 살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간, 아름다운 시인 윤동주입니다.

열 살을 조금 넘겼으나 정확히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한 그때부터 시인의 시를 보며 뭔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윤동주입니다.

 

문득 책상에 놓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이어리와 함께 814일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상징하는 반지를 함께 사진으로 남기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너무 유명해서 그 아름다운 글의 의미가 오히려 희미해진 건 아닌지 하는 윤동주의 시 가운데 가장 오래전부터 기억하는 <서시>를 공유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osted by the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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