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멍 모두 행복해질 거라 믿었주. 

경헌디 사름만 다 죽어 불고..."


뒷말을 잇지 못하는 김 노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다. 문식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빈 지게를 어깨에 짊어진 박도 침묵을 지킨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나무의 가지며 풀이 흩날린다. 힘없이 이리저리 휘돌리는 이름 없는 잡풀처럼 제주 민초들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_<레드 아일랜드> 본문 중에서



2018년 4월 3일

Posted by 와랑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요즘 온수입니까, 엘뤼에르, 전복라면 편집자는 산지니 홍보를 주 목적으로 하는 TF팀을 꾸려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하며 산지니를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홍보팀이 더 힘나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진을 누르세요~) 

 

              

 

 

 

오늘은 4월 3일입니다. 1948년 4월 3일, 올레길이 놓여 지금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섬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마침 위 사건을 다룬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이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조용 흔들어놓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저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전성욱 선생님도 호평하셨으니,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에 곧 평이 올라올지도?)

 

 

사장님이 권하신 책 『대한민국 잔혹사』(김동춘, 한겨례출판, 2013)를 읽고 있습니다.  4.3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 책은 아닙니다. 한겨례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라 저도 한 편씩은 보았었는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니 큰 흐름을 이해하기가 한결 편하네요. 정부가 수립된 이후 반복되는 국가의 폭력에 물든 대한민국의 풍경을 그리고 비판하는 책입니다.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국가와 사회가 버리는 것보다 참담한 일이 있을까?" 오늘처럼 참담한 날은 많았고,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많을 것입니다.

 

 

“야, 옥구열이. 너 평양 갔다 왔지? 그렇다고 한마디만 하고 끝내자.”

너무 느닷없는 말이라 멍해져 있는 그를 보고 수사관이 다그쳤다.

“17일, 새벽 4시에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간첩선 타고 진남포로 해서 평양 갔다 왔잖아.
채소 장사 했다는 걸 어느 동네 어느 아줌마가 증명해 줄 수 있나, 안 그래?”

신문은 수사관들이 교대로 드나들며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들어온 상고머리는
신문방법을 바꾸기라도 한 건지 제법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짬뽕까지 시켜 주었다.


“음식을 남기면 되나, 옥 선생이 자시던 거는 옥 선생이 깨끗하게 비워야지.”

상고머리가 이죽거렸다. 어느새 옥구열은 칠성판 위에 반듯하게 눕혀지고
짬뽕국물이 코 위에 얹힌 수건 사이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갔다 왔다고 한마디만 하면 깨끗하게 끝날 걸 뭔 고생을 이리 할까.”

호흡이 잠기고 심장이 터지고, 옥구열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희미한 어둠 속에 총을 든 놈이 칠성판 끝으로 가고 있었다.

─조갑상, 『밤의 눈』 에서


 

 

국가와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버림받은 적이 없는 제게, 미래의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과거에 엄연히 존재했던 폭력과 위협을 보여준 책은 『밤의 눈』입니다. 김동춘 선생님이 이 책의 뒤표지에 들어갈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연이 그렇게도 닿는군요.

이 책을 작업하면서 문득 무서워져서 농담을 했습니다. "이런 책 왜 편집했냐고, 누가 나 잡아가서 거꾸로 묶어 놓고 코로 설렁탕을 먹이면 어떡하죠?"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들은 왜 죽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 없음이 계속 무서웠습니다.

 

 

 

 

“호롱불 킬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밤의 눈』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대한민국 잔혹사 - 10점
김동춘 지음/한겨레출판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