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 책상 앞에 찰싹 달라붙어 하는 일입니다. 원고 위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젓가락으로 고르거나 집어내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그리고 역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보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기도 합니다. TV나 신문만큼 빠르지않고 또 미리 확보된 시청자나 구독자도 없지만, 출판사도 세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니까요. 이 통로의 중간에서, 편집자는 일종의 거름막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쓴 글이 독자의 가슴 속으로 더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곱게 빻아서 입자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죠. 거기에 다른 재료를 좀 섞기도 하고, 있던 재료를 빼기도 합니다. 근데 그게 생각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니, 편집자도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겠지요.
검정다리추억비 옆으로 포장된 도로(흑교로)가 원래는 보수천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지만, 예전엔 깨끗한 물이 자갈치로 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아,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특히 검정다리가 있던 곳은 물이 얕은 폭포가 되어 쏟아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풀장 치고도 일급 풀장인 이곳에서 수영복도 걸치지 않은 꼬마들이 제 세상 만난 듯이 놀아 댔다는군요. 김열규 선생님도 개구리처럼 첨벙 뛰어들었답니다.ㅎㅎ
》보수천 '검정다리'서 물놀이 (부산일보 연재 보기)
지금은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미관상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시장의 북적거림과 활기도 사라진 느낌이지만, 비가 올 때도 불편함없이 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장점입니다. 김열규 선생님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사먹었던 '뿌시래기'를 지금의 부평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산일보 연재 보기)
이곳은 동광초등학교 옛터입니다. 지금은 용두산 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주차장 뒤쪽으로 올라가면 당시 학교에 세워져있던 기념탑, 국민교육현장기념탑,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인데다가, 정말 옛 '터'만 남아있어서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터도 곧 허물고, <영화체험박물관>을 짓는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동광초등학교는 일본인만 다니던 소학교였다고 합니다. 학교 건물이나 규모가 '일선학교(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았다지요. 어린 마음에 분통이 터지고 시기심이 솟구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쪽발이 새끼들! XXX! "하고 '욕폭탄'을 동광초등학교에 던지고 왔다는데, 아주 머리쓰다듬어 줄 일이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산일보 연재 보기)
그런데 전쟁 전만해도 이 40계단 중간쯤에 '학생 연맹'이라는 우익 단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좌와 우의 격렬한 분열 속에, 학생들도 각각 '학생 동맹'과 '학생 연맹'으로 대치한 상황이었지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좌익으로 몰아 괴롭히곤 했다는데, 김열규 선생님도 그 파장에 걸려든 적이 있었답니다. 훗날, 아코디언 동상을 지날 때 다리를 저리게 만들었던 그 날의 일을, 그저 잊기만 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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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세상을 보는 안목이 독자나 필자와 어떤 점이 다른지가 평소 궁금했습니다... 편집자도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이는군요. 다음에도 편집자의 편집후기처럼 맛깔스런 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