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계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2.24 편집자의 출사기 (1)
  2. 2010.05.28 모다난전
  3. 2009.11.18 40계단 콘서트 (4)
 
  편집자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 책상 앞에 찰싹 달라붙어 하는 일입니다. 원고 위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젓가락으로 고르거나 집어내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그리고 역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보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기도 합니다. TV나 신문만큼 빠르지않고 또 미리 확보된 시청자나 구독자도 없지만, 출판사도 세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니까요. 이 통로의 중간에서, 
편집자는 일종의 거름막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쓴 글이 독자의 가슴 속으로 더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곱게 빻아서 입자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죠. 거기에 다른 재료를 좀 섞기도 하고, 있던 재료를 빼기도 합니다. 근데 그게 생각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니, 편집자도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겠지요.

  암튼, 편집자의 일은 대부분 컴퓨터와 원고와 책을 앞에 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처음으로 외근이란 걸 했습니다. 김열규 선생님께서 부산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했거든요. 1930~194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소년 김열규'가 천방지축 뛰어놀았던 남포동 일대를 찾아나섰습니다. 물론 예전의 그 모습들을 그대로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은 찾는 것도 힘들었지요. 보수천에 걸려있던 검정다리는 보수천이 복개되는 바람에 덩달아 사라졌고, 부평시장엔 아케이드가 설치된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동광초등학교엔 비석과 옛터만 쓸쓸히 남아있었고, 40계단 옆에 있던 '학생 연맹'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흘러가기 마련이고, '학생 연맹'은 기억하기엔 너무 아픈 역사의 장소지만, 부산은 과거를 담은 공간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검정다리추억비 옆으로 포장된 도로(흑교로)가 원래는 보수천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지만, 예전엔 깨끗한 물이 자갈치로 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아,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특히 검정다리가 있던 곳은 물이 얕은 폭포가 되어 쏟아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풀장 치고도 일급 풀장인 이곳에서 수영복도 걸치지 않은 꼬마들이 제 세상 만난 듯이 놀아 댔다는군요. 김열규 선생님도 개구리처럼 첨벙 뛰어들었답니다.ㅎㅎ

》보수천 '검정다리'서 물놀이 (부산일보 연재 보기)  
 



부평시장이 있던 부평사거리는 일제강점기시절, 대표적인 일본인 상가 거리였다고 합니다. 국제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규모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조선 사람의 가게는 달랑 넷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곳이 주류도매상이었던 김열규 선생님의 집이었고요.
지금은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미관상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시장의 북적거림과 활기도 사라진 느낌이지만, 비가 올 때도 불편함없이 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장점입니다. 김열규 선생님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사먹었던 '뿌시래기'를 지금의 부평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산일보 연재 보기)





이곳은 동광초등학교 옛터입니다. 지금은 용두산 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주차장 뒤쪽으로 올라가면 당시 학교에 세워져있던 기념탑, 국민교육현장기념탑,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인데다가, 정말 옛 '터'만 남아있어서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터도 곧 허물고, <영화체험박물관>을 짓는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동광초등학교는 일본인만 다니던 소학교였다고 합니다. 학교 건물이나 규모가 '일선학교(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았다지요. 어린 마음에 분통이 터지고 시기심이 솟구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쪽발이 새끼들! XXX! "하고 '욕폭탄'을 동광초등학교에 던지고 왔다는데, 아주 머리쓰다듬어 줄 일이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산일보 연재 보기)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은 곳은 유명한 40계단입니다. 박주홍의 '경상도 아가씨'를 연주하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과 뻥튀기하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지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그런데 전쟁 전만해도 이 40계단 중간쯤에 '학생 연맹'이라는 우익 단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좌와 우의 격렬한 분열 속에, 학생들도 각각 '학생 동맹'과 '학생 연맹'으로 대치한 상황이었지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좌익으로 몰아 괴롭히곤 했다는데, 김열규 선생님도 그 파장에 걸려든 적이 있었답니다. 훗날, 아코디언 동상을 지날 때 다리를 저리게 만들었던 그 날의 일을, 그저 잊기만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부산일보 연재 보기)



옛 모습을 찾아다니는 건 마음 시원한 일이었습니다. 아스팔트와 자동차에 막혀있는 이 곳이 원래는 강이 흐르고 널따란 땅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마치 커다란 캔버스에 몇 개의 점만 찍혀있는 단순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편집자의 출사는 오랜만에, 따뜻한 겨울날 봄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모다난전

이런저런 2010.05.28 14:00


혹시 ‘또따또가’를 아세요. ‘또따또가’는 지난 3월 20일 문을 연 부산 중구 동광동과 중앙동 주변 원도심 지역에 자리 잡은 문화·창작공간을 말하는데요. 무슨 뜻인지 궁금하시죠.

‘또따또가’는 관용, 문화다양성 등의 의미로 쓰이는 불어인 똘레랑스(Tolerance)에 ‘따로 또 같이’(따로 활동하지만 때론 같이 활동함) 더하기 ‘거리 가(街)’를 합해 만든 이름이라네요.

현재 이 공간에는 문화·창작공간 36개소가 마련되어 있고 창작공간에는 젊은 예술가 41명과 공연단체 22곳이 입주해 있다고 합니다. 부산시가 예산 3억 원을 들여 조성했다고 하는데 타 지역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죠. 다 원도심 주민들의 협조 덕분이랍니다.

원도심 빈 상가건물 등을 활용해 젊은 작가들에게 안정된 창작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중앙동 상가활성화를 위해 조성했다고 하는데 정말 부산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 같아요.
이 공간은 저희 출판사와도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랍니다.

중앙동에 위치한 <백년어서원>에서 한 달에 한 번(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백년어서원 주변이 ‘또따또가’ 공간이랍니다. ‘저자와의 만남’ 참석이 저조할 때 가까이 또따또가 공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아는 작가분에게 가끔 참석을 종용하는 만행(?)도 부린답니다.


이 문화 거리에 새로운 문화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소식 올립니다.
중앙동 40계단 앞 사거리에서 오는 6월 5일을 첫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1시부터 6시까지 문화마켓이 열린다고 하는데요. 이름이 <모다난전(展)>이라고 하네요. 부산 사투리 ‘모두 다’라는 뜻이랍니다. 40계단 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교환, 판매를 하고 음악 및 다양한 장르의 공연도 열리고 시민참여체험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는 한마디로 열린 문화공간이 될 예정입니다.

아이들, 연인들 손잡고 많이들 참서하셔서 서울 인사동 거리 못지않은 문화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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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토요일 오후, 동광동 40계단에서 열린 인문학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백년어서원에서 주최한 <40계단, 기억을 더듬다> 라는 콘서트였습니다. 계단과 도로는 객석이 되고 도로 앞 광장은 무대가 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야외객석은 사람들로 꽉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할 수 없이 계단에 앉아 구경했는데 나중엔 엉덩이가 얼얼해 방석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부산 중구 동광동 40계단 주변은 인쇄 골목으로도 유명합니다. 계단 위아래로 소규모 인쇄관련 업체들이 옥닥옥닥 모여 있습니다.


시와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진 무대는 최원준 시인의 '40계단' 시 낭송을 시작으로, 1950년 평안북도에서 18살에 부산에 피난온 문윤서 할아버지(77)와 영주동에서 태어난 열 살짜리 김기영군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40계단은 6.25 동란 시절 남으로 남으로 쫓겨 내려온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입니다. 계단 중간쯤에는 1953년 지어져 1955년 음반으로 발표된 <경상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있는데, 그시절 삶의 고단함이 가사에 절절하게 나옵니다.

1절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2절, 3절 보기


20대 아코디언연주가 조미영씨


"아코디언은 대부분 소리에 반해 시작해요. 중간 음색이 없어요. 애절하거나 밝거나 뚜렷한 음색이 장점이죠.”
“여자 애가 연주를 하니까 다들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세요. 전국으로 연주하러 다녀요.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제일 인기가 좋은 악기죠." (관련내용:탈북자 출신 아코디언 연주자 조미영)

2001년 10월 북에서 가족들과 내려와 아코디언연주가로 활동하고있는 조미영씨가 <타향살이> <굳세어라 금순아> 등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를 연주했습니다. 아코디언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악기가 되어버렸지만 북한에서는 어렸을때부터 많이들 배운다고 하네요. 비록 엄마에게 회초리로 맞아 가면서 배운 아코디언이지만, 이제는 그걸로 꿈을 펼치고 있는 26살 젊은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뭣보다 라이브로 처음 들어보는 아코디언 음색이 정말 색달랐습니다. 흥겨우면서도 구슬프고... 




박태룡씨의 학춤


계단 중간쯤에 갑자기 흰 날개를 펄럭거리며 학 한마리가 날아왔습니다. 학은 계단을 내려와 무대 앞을 두어번 왔다갔다 하더니 훌쩍 무대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몸짓이 어찌나 가벼운지 정말 한 마리의 학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지혜 씨의 판소리 공연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김지혜 씨가 판소리 <춘향가> 중 한대목인 '사랑가'를 불렀습니다. 흥에 겨웠는지 아저씨 한분이 나오셔서 사랑가 가사에 맞게 즉석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다음 곡인 <진도아리랑>이 끝날때까지 아저씨도 함께 공연했습니다.

비보이 퍼포먼스팀의 힙합 공연


동광동 인쇄골목의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비보이들의 춤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5분 남짓한 짧은 공연. 보는 사람은 그저 흥겨워하면 되지만 무대에 서는 이들은 무척 긴장했을 겁니다. 자신들 차례가 오기 전까지 무대 뒤 차가운 보도블록에서 순서를 맞춰보고 계속 연습을 하더군요.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관중들은 박수도 치고 많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첼리스트와 아코디언의 협연


첼로와 아코디언의 협연이 이어졌습니다. 첼로나 아코디언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남남북녀 연주자들의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사람에 치이는 대규모 콘서트나 격식있는 음악회가 아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차가운 돌계단에 엉덩이는 시려웠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따뜻한 식혜 한사발로 언 몸을 녹이며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