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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2 50회 저자와의 만남-지친 내 영혼을 위해 떠나는(『기차가 걸린 풍경』)

  50회 저자와의 만남 

『기차가 걸린 풍경』의 나여경  







지난 21일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5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50회의 주인공은『기차가 걸린 풍경』의 나여경 소설가입니다. 특별히 50회라서 준비한 건 아니지만 나여경 작가와 대화하던 중 낭송 이야기가 나와 소박하게 작가낭송을 준비했습니다. 조용히 작가의 목소리로 책 속 문장을 찬찬히 들어보니 어딘가 모르게 다급했던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그럼 '지친 내 영혼을 위해 떠나는 기차역 여행'처럼, 하동역으로 먼저 떠나볼까요.


이날 낭송한 하동역 편「용이를 만나러 가는 길」중에서 


찬 기운 속에 서로에게 기대어 새날을 기다리는 이들을 떠올린다. 살아갈 이유들이 녹진녹진하게 그들에게 다시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바람이 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의 불빛이 반짝이는 조그만 종착역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면 참 좋겠다. 

 




나여경 작가: 살면서 여행을 다녀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연재 자체를 많이 망설였는데 본격적으로 스물여섯 개의 역을 다니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는 기자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어요.


아침에 나설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취재를 마친 후 기차를 타고 돌아올 땐 안 좋았던 일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구나, 아―여행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지요. 종종 사람들에게 어느 역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어느 것 할 것 없이 모두 참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박형준 사회자: 취재하러 가기 위해 역에 내리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나여경 작가: 역에 내리면 아는 사람도 없는데 허무맹랑하게 누군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또 누군가를 제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박형준 사회자: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인용하셨듯이 기차는 이별과 만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역에 내려서 역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이별과 만남, 기다림 등 사연 있는 곳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나여경 작가: 북천역이 기억나네요. 보통은 기다리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는 역에서 취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났는데 북천역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작정하고 간 곳이에요.


제가 유홍준 시인을 좋아하는데 유홍준 시인이 이병주 문학관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마침 북천역이 그 근처에 있어 그분을 만나러 갔어요. 그의 시를 읽고 말 한마디도 가슴을 스윽 벨 것처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가기 전에 취나물을 취재하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취재를 마치고 다 같이 피순대를 먹는 자리에서 유홍준 시인이 치마무덤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조지서는 연산군의 강직한 스승이었는데 연산군이 어릴 때 엄하게 다스렸다고 해요. 그게 앙금처럼 남아있던 연산군이 왕이 되고 나서 조지서를 불러들여 맷돌에 갈아 죽인대요. 그런 후 시신을 강물에 버렸는데 그 부인이 남편의 시체도 흔적도 없으니까 그 강물에 치마를 적셔서 무덤을 만든 게 조지서 치마무덤이래요. 그 기막힌 야기를 듣고 왜 그런 곳을 소개시켜주지 않았냐니까 분명 말을 했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치마무덤이 취나물 취재로 둔갑했던 겁니다. 기막힌 이야기를 품고 있는 치마무덤 취재를 놓쳤고 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갔던 북천역이라 기억에 남아요.


(자세한 내용은 북천역 편「지극함에 대한 소고」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치마무덤을 취나물로 오해해서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박형준 사회자: 오히려 조지서 무덤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북천역의 사연을 더 풍요롭게 만든 거 같습니다.


나여경 작가: 맞아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고 싶은 사연이 있기 때문에 더 애절하게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박형준 사회자: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사진을 잘 찍으신 줄 몰랐습니다. 사연 있는 사진이 있나요?


나여경 작가: 75페이지에 실린 사진인데요, 사진 찍는 데 정신이 팔려서 렌즈를 놓고 그냥 와서 다시 간 곳이에요. (웃음) 멀리서 봤는데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박형준 사회자: 역도 여객만 하거나 운송만 하는 등 여러 가지 역이 있는데 역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나여경 작가: 운송만 하는 나원역 철길 자갈돌 근처 산에서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로에 깔린 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솔사역은 선로가 있어서 기차는 지나가지만 사람이 탈 수 없는 곳입니다. 철로 가에서 기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걸 본 어떤 분이 소리를 쳐서 위기를 모면했어요. (웃음)


다솔사는 폐역으로 기차는 지나가지만 사람태우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기차를 보낸 후의 황량함은 다른 역과 또 다른 감회가 느껴졌어요


박형준 사회자: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습니다. 역사에서, 역의 흔적에서, 길 속에서 만난 시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나여경 작가: 죽동역의 소제목이 ‘이루지 못한 사랑 위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인데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또 이루어지지 않은 사연은 시간이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시간의 사랑이나 사물이 이루어지고 사라지지 않았다면 기억에서 쉽게 떨쳐버릴 수 있을 텐데 미완의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소환시켜 돌이켜보고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형준 사회자: 삼랑진역 편에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사랑스럽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나여경 작가: 제가 하동역과 삼랑진역을 두 번 갔는데 삼랑진역을 두 번째 갔을 때 기차를 놓쳐버렸어요. 다시 기차를 2시간 반 동안 기다려야 했는데 주변에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막 욕을 하고 큰소리로 떠들었어요. 그래서 짜증이 조금 났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의 말을 시로 여기자 생각했지요.


박형준 사회자: 그럼 제가 그 부분을 한 번 읽어볼까요?


여기도 씨벌

저기도 씨벌

씨벌이 살아서 펄펄 날아다니는데

처음엔 귀를 어떻게 간수해야 할 것인지 차마 난감하더니

나도 몇 잔 탁배기에 담궈 보니

씨벌 참 좋다.


나여경 작가: 조기호 시인의「조껍데기 술집」인데 시처럼 그 시간을 즐긴 거지요. 추워서 피할 곳도 없고… 대합실에 앉아 그런 소리들을 들으면서 그래, 차라리 시로 여기자 생각하니 그 말이 사랑스럽게 와 닿았어요. 그러자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박형준 사회자: 시를 읽으면서, 위트가 느껴졌습니다. 저도 버스를 탈 때 학생들이 욕 할 때 벌이 날아든다고 생각하자고 했습니다. (웃음)


(대담이 끝나고 독자분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다시 유쾌한 답변이 오갔습니다. 연신 웃으면서 대담을 듣다 보니 어느새 함께 여행을 떠난 것 같았습니다. 마치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뒤풀이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 담긴 시간과 풍경, 이야기를 간직한 추억이 책 속 구절처럼 또 다시 구워지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나여경 작가는 "앞으로 소설가니까 소설 열심히 써서 또 소설로 뵙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고, 박형준 사회자는 진심을 담아 책 속 문장을 낭독하며 이날의 짧고도 아쉬운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박형준 사회자:


(낭독)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네가 진저리나게 그리워도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푸성귀 가득한 비빔밥을 꼭꼭 씹어 삼킨다. 헛헛한 기분이 잠시 사라지는 것도 같다. 가당치도 않은 순간의 기억을 밀치고 행장을 꾸린다. 오늘, 누구라도 만나는 이가 있으면 가볍게 실토할 것 같은 마음도 단단히 추스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목숨 줄을 놓으려 했던 이의 기사를 읽었다. 웬일인지 뾰족하게 일어난 심경이 주저앉질 않는다. 그래도 번잡하고 호들갑스럽게 살지 말자.


일광역 편「사랑이 떠난 자리」중에서


(짝짝짝)




저자와의 만남이 끝난 후, 독자에게 싸인해주시는 나여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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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좋은 소설로 다시 만나요:)






Posted by 동글동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