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시민연대 동부지회에서 주최한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소설 『밤의 눈』

이 책의 저자이신 조갑상 선생님과 함께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했습니다.

 

 

소설 『밤의 눈』은,

2013년 만해문학상을 받는 작품으로, 그 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둔중한 인식을 바탕으로 어둠과 침묵 속의 두려움, 슬픔, 공포를 건져올리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읽고 기억을 저지당했는지 보여줍니다.

 

이 날 행사에서 잔혹하고 고통스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차분한 문체와 어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조갑상 작가의 이런 어법이 주체하기 힘든 두려움을 더 극대화하고, 외면하고 싶은 대목에서도 책장을 넘기게끔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민간인 학살과 처형.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용범'을 통해 망각되어가는 역사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 더 자세한 책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

 

“호롱불 킬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밤의 눈』(책소개)

 

 

이 날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책을 읽고 오셔서 그런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밤의 눈』에 대한 감상과 저자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진정한 '저자와의 만남'이 아닐런지요)

모든 내용은 아니지만,

이날 주고 받은 이야기 중 인상 깊은 내용을 중심으로 여기가 옮겨볼까 합니다.

 

 

● 소설은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밤의 눈』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쓴 작품인 것 같다. '보도연맹'이란 소재로 글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전쟁을 보는 눈은 세월과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6.25전쟁,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지점에서 시작된 소설이 『밤의 눈』이다. '보도연맹'이라는 소재는 이 소설 외에도 여러 다른 작품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물론 같은 소재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남에 따라 반대편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 전선이 무너질 때마다 이어진 학살. 이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전쟁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 현실을 다루는 작품을 집필할 때의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검열에 대한 부분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역사의 내용을 가져올까'부터 시작해서 인물, 배경,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하게 된다.

 

 

● 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 많은 발품을 팔아 취재를 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밤의 눈』은 실제 사건을 다룬만큼 취재하는 작업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다.

 

책 가장 앞에 있는 '이슬람의 어느 이야기꾼과 청중들의 대화'를 넣었다. 그 이유는 『밤의 눈』이 진짜도 가짜도 아닌 이야기라는 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이것은 어느 곳에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여 쓴 것이 이 소설이다. 즉, '어느 곳에 있었던 일' 이것은 진짜가 될 것이고, '재구성' 하였단 것은 가짜가 될 것이다. 소설을 쓰기 전 가장 고민한 것은 '진짜'에 대한 부분이었다. 알아야 쓸 수 있고, 재구성 할 수 있으니까.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 책자와 같은 큰 자료들을 많이 이용했다. 여기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내가 어떻게 소설에 앉힐 것이가 하는 부분이 관건이었다. 마산에서 희생자의 자제 분을 만나 취재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작품을 쓰는 데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재구성하여 가짜를 만드는 부분에 있어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지역 답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대진읍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서 소설을 이끌어가도록 했다. 

 

 

● 유족회가 만든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목에서 너무 충격적이고 심장이 턱턱 막혔다. 국가의 폭력에 말없이 꾸역꾸역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희생자의 가족)의 모습이 읽기가 힘들었던 점도 있다.

 

인상 깊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정말 아무도 모르게 희생된 역사 속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 소설을 쓰면서 작가 본인도 쓰기 힘들었던 대목이 있는지 궁금하다.

 

글을 쓸 때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밤의 눈』에서는 노인과 손녀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그 부분을 쓸 때 감정이 들어가다보니 좀 힘들었던 것 같다.

 

 

● "전쟁이 난 뒤 대진에서 예비검속을 당한 민간인들의 첫 처형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또한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 모두 전쟁이 전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는 첫 순간이기도 했다" (p.45) 이 구절이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다. 전쟁은 군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후퇴를 하면서 잠재적으로 반대편이 될 수 있는 이들을 학살했는데 이 사건 하나만 봐도 전쟁이 일반인들의 삶 속에 들어온 것이다.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전쟁이 전선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순간 전쟁은 마을로 들어가 있었다.

 

 ● 끝으로 여자들만 있는 공간(조갑상 작가님은 청일점이셨습니다ㅎㅎ)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어떠셨는지.

 

매우 즐거웠다. 오늘 함께한 분들이 모두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 보기가 좋았다. 독자들과의 만남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 행사 뒷 이야기

저자와의 만남이 끝나고,

조갑상 작가님의 작은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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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6.06.24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꽃밭에 계신 조갑상 선생님^^ 진정한 독자와의 만남이네요. 이런 모임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정말 즐거운 자리 같아요.

  2. 권디자이너 2016.06.27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와서 질문하는 독자들.
    작가라면 꼭 만나고 싶을 것 같아요.

정형남 장편소설 

감꽃

 떨어질 때




소박한 민초의 삶을 한국 근현대와 교차하여 그려낸

정형남 장편소설 출간

장편 『삼겹살』 이후 2년 만에 중견 소설가 정형남이 새 장편 『감꽃 떨어질 때』를 세상에 내놓았다. 시골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배경으로 한 이웃마을 사람들의 구수한 입담과, 역사와 개인이라는 보다 깊어진 주제의식, 그리고 민초들의 소소한 삶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결코 운명이랄 수 없는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한 가족의 한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일흔셋의 한 할머니가 옛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전개는 역사의 비극으로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을 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아버지를 향해 매년 감꽃 떨어질 때 기제사를 지내는 이의 비극적인 인생을, 작가의 끈끈한 애정을 담아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서술한다.




역사의 광풍에 내몰린 순박한 사람들

그들이 겪은 한스러운 삶을 그려내다

정형남의 신작 장편소설 『감꽃 떨어질 때』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한반도를 살아가던 우리네 이웃들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 산 약초를 채취하며 생계를 잇던 조영의 일가, 그러나 운명은 조영을 엉뚱한 곳을 내몬다. 이웃집 삼수와 장을 보러 가던 중, 일본군을 기습 공격한 의병들을 뒤따라 함께 의병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조영은 도원경을 연상케 하는 산골오지 가마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며 가족과는 생이별을 겪고, 그간 조영의 아내 소도댁과 삼수의 아내 삼수네는 일본군에게 고문을 받으며 남편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그러나 의병군의 와해로 조영과 삼수는 낯선 곳에 집을 마련하게 되고, 아내와 재회하며 새롭게 삶을 꾸린다. 행복도 잠시, 남북의 분단과 제주 4・3, 여순사건, 6・25 등 전쟁의 환란 속에 가족들은 또다시 이별을 겪게 되고 조영은 다시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산사람이 되어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다.


『감꽃 떨어질 때』,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입체적 서사를 녹여내다

땟물로 얼룩진 갈데없는 낭인의 형상이었다./ 니가 아직도 한 가지 정신만은 지니고 있는가 보구나!/ 무인은 왕명인의 아들을 얼싸안으며 울음을 삼켰다. 두문골을 떠날 때 함께 가자해도 한사코 도리질하였다. 강제로 데리고 가려는 데도 죽자고 버티었다. 하는 수 없이 놔두고 갔는데 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염려가 되었다. (…) 왕명인의 아들은 알아들었는지 비죽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 속에서 찻잔을 꺼내 보여주었다. 니가 느그 아부지 혼을 찾는구나. 무인은 찻잔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_「넋 잃은 세월」, 195-196쪽.


난계 오영수의 적통이라 일컫는 정형남 문학의 백미는 가독성이 뛰어난 이야기에 그 힘이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전개되는 감칠맛 나는 대화들과 더불어, 무인, 왕명인, 김순열 선생과 같은 우국지사형 인물의 등장, 근대사의 폭력으로 가족을 잃고 정신마저 잃은 왕명인 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헌병대장의 통역꾼이 마을 여자들을 농락하는 일화까지 『감꽃 떨어질 때』가 그리는 한 편의 서사는 한국근대사를 조망하는 흡입력 있는 묘사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역사에 희생된 이들의 고난과 아픔

눈물겨웠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사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아. 항상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하느니./ 나 같은 놈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얼마나 치우치겄는가. 자네도 한번 만나볼랑가?/ 아니, 됐네. 나는 어느 쪽에도 관심 없네. 사람은 어느 곳에 처할지라도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어디 두고 보세. 뜨뜻미지근하기는. 흐르는 물은 어느 한곳에 모이게 되니께./ 조영은 속으로 놀랐다. 삼수는 이미 상당히 깊이 사상적으로 물이 들어 있었다. 잠시 말을 잊은 채 장터거리에 들어섰다. _「넋 잃은 세월」, 191-192쪽.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한국 근대사의 광풍은 한 가족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약초를 팔며 단란한 가족의 생계를 있던 조영네의 삶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해방 이후에도 조영의 딸은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놀림 받는다. 작가 정형남은 이처럼 간절한 목소리로 역사 속의 뒤안길에 감추어진 민초들의 삶을 묘사한다. 더욱이 조영네, 삼수네, 왕명인네 등 역사의 이름으로 전선에 나가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기고 진정한 가족애와 이웃의 우애를 환기시킨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아버지의 존재가 마치 ‘그림자’였음에도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가까이에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감나무 밑에서 조용히 감꽃목걸이를 땋으며 아버지와 함께 행복했던 한때를 추억하는 주인공 화자의 삶은, 잔잔한 그리움과 감동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지은이 : 정형남

조약도에서 태어났고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해인을 찾아서」로 대산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남도(6부작)』로 제1회 채만식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창작집 『수평인간』『장군과 소리꾼』, 중편집 『반쪽 거울과 족집게』『백갈래 강물이 바다를 이룬다』, 장편소설 『숨겨진 햇살』『높은 곳 낮은 사람들』『만남, 그 열정의 빛깔』『여인의 새벽(5권)』『토굴』『해인을 찾아서』『천년의 찻씨 한 알』『삼겹살』『감꽃 떨어질 때』를 세상에 내놓았다.



  

『감꽃 떨어질 때 정형남 장편소설

정형남 지음 | 문학 | 46판 양장 | 320쪽 | 14,000원

2014년 7월 31일 출간 | ISBN :978-89-6545-262-1 03810


시골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배경으로 결코 운명이랄 수 없는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한 가족의 한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일흔셋의 한 할머니가 옛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전개는 역사의 비극으로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을 담았다.  



차례


감꽃 떨어질 때 - 10점
정형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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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전쟁의 희생자들을 바라본 장편소설 『밤의 눈』의 북 트레일러를 공개합니다. 산지니 편집부의 미디어 브랜드 <산미디어San media> 첫 번째 작품 공개의 기쁨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이벤트 참여 방법>

1. 페이스북으로 참여하기
산지니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sanzinibook)에 올라온 북 트레일러를 감상하시고 내 페이스북에 공유한 다음, 감상평과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2. 네이버 블로그로 참여하기
산지니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sanzinibook)의 북 트레일러를 감상하시고 블로그에 퍼가신 다음, 북 트레일러 포스팅에 댓글로 포스팅 주소와 감상평을 올려주세요.

3. 티스토리 블로그로 참여하기
산지니 티스토리 블로그(http://sanzinibook.tistory.com)의 북 트레일러를 감상하시고 블로그에 퍼가신 다음, 북 트레일러 포스팅에 댓글로 포스팅 주소와 감상평을 올려주세요.

 

1월 29일부터 2월 8일까지 응모해주신 분들 중 세 분을 뽑아 『밤의 눈』저자 사인본을 드립니다. 중복 응모는 불가하며, 당첨자는 2월 12-15일 사이에 발표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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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밤의 눈』의 제목은 오랫동안 『그 여름의 그림자』였습니다. 『밤의 눈』이 막 출간된 지난주 부산에는 송이가 굵기도 한 첫눈이 내렸는데, 그늘 드리워진 여름과 눈 오는 겨울 사이의 그 무던한 섭리에서  다소 억지스럽게나마 어떤 상징성을 느끼며 감회에 잠깐 젖어 보았습니다.

 

첫눈과 함께 출간된 <밤의 눈>

 

『밤의 눈』은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소설입니다. 이 한 줄 때문에 '뒤로 가기' 버튼이 아른아른거리신다면, 잠깐만 서 계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얼른 읽고 책을 손에 잡으시면, 그때는 망설임없이(가끔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릴 때는 예외) 앞으로 앞으로만 가게 되실 겁니다.

 

 본서 정보과 소속인 그는 한용범에게 이른바 담당이었다. 정보과 형사는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와 같이 유신헌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헌법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읍에 들락거렸다. 어제 오후에도 한용범은 투표에 빠지지 말라는 그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기관의 선거 개입은 음으로 양으로 있어 왔지만 이번 투표만큼 노골적인 건 처음이었다. 장례 날이 투표일과 겹치는 걸 두고도 형사가 투덜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담당지역 투표율을 신경 쓰고 있다는 소리였다.

-망자가 산 사람을 만나게 하다(1972)

 

“도장은 와?”
“읍에서 내일 아침까지 군에 보고해야 할 끼 있다고 사람이 안 왔나.”  
“무신 소리고? 뭘 알아야 내주제.”
“아따, 춥은 한데 세워 놓고 구장보고 따질 끼요.”

구장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통계 잡을 일이 있든지 비료를 나나 주든지, 뭐가 있은께네 그러는 거 아이겠소. 관에서 하는 일에 협조 안 할라 카몬 하지 마소, 누가 손해 보는가.”
목소리는 낮았지만 위협적이었다.
“내가 시방 몇 집을 더 돌아댕기야 하는지 아나? 고마 자네 집은 뺄까?”
구장이 다시 나섰다. 
“그 참, 자다 봉창 뚜드리는 소리도 아이고…….”
그러면서 부친은 방으로 들어가 불도 켜지 않고 도장을 찾아 왔다. 구장은 미리 도장 찍을 데를 접어 왔는지 서류 종이를 내밀며 “여기, 여기.” 하고 말했다. 부친이 구장이 내민 인주에 도장밥을 묻혀 도장을 찍고 있는 동안 벙거지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사내는 두어 발짝 떨어져 서 있었다. 뒷날 고시돌의 부친은 그 사내가 근동 마을에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고 애매하게 기억했다.

“그기 다라. 호롱불 킬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
고시돌은 눈에 훤한 그때의 일이 아직도 얼척이 없는지 혀까지 차며 한숨을 쉬었다.
“그날 밤에 도장 찍은 게 보련 가입원서였단 말 아니가!”

-그해 여름(1950)

 

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다시 켜보지예.”
아내가 라디오 쪽으로 다가갔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일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아내도 처음 듣는 말들에 놀랐는지 자신이 다시 켠 라디오를 서둘러 껐다. 놀란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아내에게 그는 천천히 말했다.
“정변이 났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거야.”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아내는 여전히 겁에 질린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마요. 읍장을 그만두게 되겠지.”

-표적(1961-1968)

 

꼭 십 년 됐네요.”
“예?”
옥구열이 거울을 보고 말한 것처럼 거울 속에서 주인이 되물었다.
“육이오 나던 7월달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부친이 저기 건너편 미창에 갇혀 계셨거든예. 길가 땡볕에 앉았다 여기 와서 사장님 손에 머리를 깎았더랬습니다.”
(중략)
“이상하게도 그때 기억이 자주 났어요. 내가 들어올 때 친구하고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 나 때문에 그친 것 같았고, 내하고 몇 마디 주고받은 뒤로 그 친구분은 내가 머리를 다 깎고 나갈 때까지 내내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나는 내대로 두 분 중 적어도 한 분은 보련 가족이구나, 그렇게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유족회(1960)


 

“시내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학생들 데모하는 걸 싫다 안 하니 경제가 안 좋기는 안 좋은기라.”  
“우리 같은 서민들 사는 것도 팍팍해졌지만, 그동안 너무 틀어막았지.”
“어제 장사하는 사람들이 학생들 숨겨 준다고 셔타 문 올리고 내리느라 바빴다니 민심이 무서운 거라.”
“그래 말이야. 먹자골목 아줌마들이 학생들한테 김밥을 그냥 주었다잖아.”
(중략)
스크럼을 짠 시위대의 머리가 보였다. 선두는 어깨동무를 하고 충무동 육교 쪽으로 뛰어왔다. 몰려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옥구열도 박수를 쳤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사람의 시민이면 되었다.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할 말을 하는 국민이고 싶었다.

- 밤하늘에 새기다(1979)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부터 5․16쿠데타의 1960년대, 그리고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0년대 등 한국의 많은 시간이 이 소설에는 녹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면서, 정치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의 양상은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과거는 고착되는 대신 현실로 이끌려옵니다.

국가는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나누어,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어떤 이들은 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적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은 국민의 이야기로 기념되지만 대진읍(소설의 배경)에서 죽은 이들은 이러한 국민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밤의 눈』을 통해 전쟁이 전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최근 「남영동 1985」와 「26년」등 잘못된 과거사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공원 조성, 합동위령제, 특별법 촉구, 피해 배상 판결 등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직접적인 노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밤의 눈』은 이러한 노력의 문학적 일환이자 우리가 응당 함께 기억해야 할 고통의 기록이고, 희생을 위한 위로입니다. 등장인물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독자들을 많이 만나 위로받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는 저자의 바람에 독자 여러분들도 귀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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