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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2

예전 봄비가 아니네. 봄비 겨우내 햇볕 한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밑 마늘광 위으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 스민다 -이동순,『숲의 정신』, 산지니, 2010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네요. 감수성 풍부한 소녀적엔 일부러 비를 맞고도 다녔는데... 이젠 비도 예전 그 비가 아니네요. ㅠㅠ 숲의 정신 - 이동순 지음, 최영철.김경복.황선열 엮음/산지니 2011. 4. 22.
더불어 살아갑시다-이동순 시선집 『숲의 정신』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 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야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작은 풀벌레는 양말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양말 속의 작은 풀벌레를 떼어내는 순간, 그 벌레는 집(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작은 풀벌레가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신어야 할 양말을 내년 봄.. 2010.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