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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2

왜성을 통해 역사 속 그날을 깨워본다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책소개)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현장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역사상에는 기쁨의 역사와 슬픔의 역사가 공존한다. 희비(喜悲)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재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도려낸 단정의 역사, 망각의 역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희망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왜성은 임진왜란이라는 420여 년 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블랙박스다.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에서 전남 여수까지 한반도 동남해안 일대에 분포해 있으며 이제는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일본 고유 양식 성곽의 원형이 남아 있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왜성은 임진왜란의 침략을 대변하는 유적으로 인식돼 홀대를 받아왔다. 이에 『역사의 블랙박스.. 2016. 7. 18.
5화-왜군, 진해에 수군기지를 건설하다-진해 웅천, 안골, 명동, 자마 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5화 :: 왜군, 진해에 수군기지를 건설하다 -진해 웅천, 안골, 명동, 자마 왜성 진해는 한·일 교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전쟁 기간 내내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격전지였다. 서해로 진출하려는 왜군이나, 왜군 본거지인 부산을 되찾으려는 조선 수군이나 진해 앞바다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92년 5월7일 거제 옥포에서 벌인 첫 전투(옥포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둔 조선 수군은 달아나는 왜군을 진해 앞바다까지 쫓아가 왜선 5척을 격침(합포해전)시키고 회군했다. 같은 해 7월9일 한산도해전에서 또다시 대승리를 거뒀을 때도 조선 수군은 진해 안골포까지 왜군을 쫓아가 왜선 30척을 불사르고 철수(안골포해전)했다. 조선 수군은 다음해.. 2016.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