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남 장편소설
감꽃
떨어질 때
소박한 민초의 삶을 한국 근현대와 교차하여 그려낸
정형남 장편소설 출간
장편 『삼겹살』 이후 2년 만에 중견 소설가 정형남이 새 장편 『감꽃 떨어질 때』를 세상에 내놓았다. 시골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배경으로 한 이웃마을 사람들의 구수한 입담과, 역사와 개인이라는 보다 깊어진 주제의식, 그리고 민초들의 소소한 삶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결코 운명이랄 수 없는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한 가족의 한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일흔셋의 한 할머니가 옛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전개는 역사의 비극으로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을 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아버지를 향해 매년 감꽃 떨어질 때 기제사를 지내는 이의 비극적인 인생을, 작가의 끈끈한 애정을 담아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서술한다.
역사의 광풍에 내몰린 순박한 사람들
그들이 겪은 한스러운 삶을 그려내다
정형남의 신작 장편소설 『감꽃 떨어질 때』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한반도를 살아가던 우리네 이웃들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 산 약초를 채취하며 생계를 잇던 조영의 일가, 그러나 운명은 조영을 엉뚱한 곳을 내몬다. 이웃집 삼수와 장을 보러 가던 중, 일본군을 기습 공격한 의병들을 뒤따라 함께 의병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조영은 도원경을 연상케 하는 산골오지 가마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며 가족과는 생이별을 겪고, 그간 조영의 아내 소도댁과 삼수의 아내 삼수네는 일본군에게 고문을 받으며 남편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그러나 의병군의 와해로 조영과 삼수는 낯선 곳에 집을 마련하게 되고, 아내와 재회하며 새롭게 삶을 꾸린다. 행복도 잠시, 남북의 분단과 제주 4・3, 여순사건, 6・25 등 전쟁의 환란 속에 가족들은 또다시 이별을 겪게 되고 조영은 다시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산사람이 되어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다.
『감꽃 떨어질 때』,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입체적 서사를 녹여내다
땟물로 얼룩진 갈데없는 낭인의 형상이었다./ 니가 아직도 한 가지 정신만은 지니고 있는가 보구나!/ 무인은 왕명인의 아들을 얼싸안으며 울음을 삼켰다. 두문골을 떠날 때 함께 가자해도 한사코 도리질하였다. 강제로 데리고 가려는 데도 죽자고 버티었다. 하는 수 없이 놔두고 갔는데 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염려가 되었다. (…) 왕명인의 아들은 알아들었는지 비죽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 속에서 찻잔을 꺼내 보여주었다. 니가 느그 아부지 혼을 찾는구나. 무인은 찻잔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_「넋 잃은 세월」, 195-196쪽.
난계 오영수의 적통이라 일컫는 정형남 문학의 백미는 가독성이 뛰어난 이야기에 그 힘이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전개되는 감칠맛 나는 대화들과 더불어, 무인, 왕명인, 김순열 선생과 같은 우국지사형 인물의 등장, 근대사의 폭력으로 가족을 잃고 정신마저 잃은 왕명인 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헌병대장의 통역꾼이 마을 여자들을 농락하는 일화까지 『감꽃 떨어질 때』가 그리는 한 편의 서사는 한국근대사를 조망하는 흡입력 있는 묘사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역사에 희생된 이들의 고난과 아픔
눈물겨웠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사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아. 항상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하느니./ 나 같은 놈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얼마나 치우치겄는가. 자네도 한번 만나볼랑가?/ 아니, 됐네. 나는 어느 쪽에도 관심 없네. 사람은 어느 곳에 처할지라도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어디 두고 보세. 뜨뜻미지근하기는. 흐르는 물은 어느 한곳에 모이게 되니께./ 조영은 속으로 놀랐다. 삼수는 이미 상당히 깊이 사상적으로 물이 들어 있었다. 잠시 말을 잊은 채 장터거리에 들어섰다. _「넋 잃은 세월」, 191-192쪽.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한국 근대사의 광풍은 한 가족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약초를 팔며 단란한 가족의 생계를 있던 조영네의 삶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해방 이후에도 조영의 딸은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놀림 받는다. 작가 정형남은 이처럼 간절한 목소리로 역사 속의 뒤안길에 감추어진 민초들의 삶을 묘사한다. 더욱이 조영네, 삼수네, 왕명인네 등 역사의 이름으로 전선에 나가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기고 진정한 가족애와 이웃의 우애를 환기시킨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아버지의 존재가 마치 ‘그림자’였음에도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가까이에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감나무 밑에서 조용히 감꽃목걸이를 땋으며 아버지와 함께 행복했던 한때를 추억하는 주인공 화자의 삶은, 잔잔한 그리움과 감동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지은이 : 정형남
조약도에서 태어났고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해인을 찾아서」로 대산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남도(6부작)』로 제1회 채만식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창작집 『수평인간』『장군과 소리꾼』, 중편집 『반쪽 거울과 족집게』『백갈래 강물이 바다를 이룬다』, 장편소설 『숨겨진 햇살』『높은 곳 낮은 사람들』『만남, 그 열정의 빛깔』『여인의 새벽(5권)』『토굴』『해인을 찾아서』『천년의 찻씨 한 알』『삼겹살』『감꽃 떨어질 때』를 세상에 내놓았다.
『감꽃 떨어질 때』 정형남 장편소설
정형남 지음 | 문학 | 46판 양장 | 320쪽 | 14,000원
2014년 7월 31일 출간 | ISBN :978-89-6545-262-1 03810
시골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배경으로 결코 운명이랄 수 없는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한 가족의 한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일흔셋의 한 할머니가 옛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전개는 역사의 비극으로 생이별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을 담았다.
차례
감꽃 떨어질 때 - 정형남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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