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대학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논문과 학술서 출판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 집필에 매진하는 연구진들을 위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우수저서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특히 저자 지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라 우수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들에게 격려하는 차원의 제도이며, 타 기관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지 않고 출간된 인문사회분야의 우수한 교양서에 대하여 사후에 포상 성격의 사업비를 지원함으로써 연구자들의 저술의욕을 고취하는 목적에서 제정된 사업입니다.
산지니의 저자는 무려 5종의 책의 12명의 저자분이 수상하였습니다.
(유토피아라는 물음이라는 책에서 여덟 명의 필진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한국연구재단의 2014년 인문사회분야 우수저서로 선정된 책은 59종이라고 합니다.
그럼, 산지니 수상도서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 내용은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접수과제정보의 연구요약에서 발췌하였습니다.(저자분들께서 하나하나 직접 올려주신 내용입니다.^^)
연구요약: 학문하는 자가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들, 그 속에서의 사고들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된다. 서론 「상황적 사고」에 이어 본론 여덟 장이 배치되고 보론「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로 마무리된다. 본론은 학문하는 자가 겪게 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전개한 사고들을 담았다. 저자 자신의 체험에서 고민의 소재를 취해 일반 독자와 공유하려 시도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 사회사상사를 공부하는 지역연구자로서 타국을 오가고 외국의 언어와 정신을 익히는 동안 생겨나는 상황 속에서 일반 독자와 공유할 사색거리를 발굴해낸다는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작성했다. 다음은 일반 독자도 겪을 수 있는 네 가지 상황을 본문에서 취해 요약한 것이다.
(1) 외국어를 배워나가는 상황 - 「맥락의 전환」
처음 외국어를 입에 담으면 이물감이 느껴진다. 낯선 발음이 불편하고 상대에게 온전한 의미로 전달될지 불안하지만 점차 숙달될수록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진다. 일반 독자가 모국어도 추상 개념을 익히는 일은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어석했던 표현들이 어느새 몸에 익으면 외국어 실력은 붙은 셈이나, 외국어로 경험해야 했던 날것의 피부감각은 잊히고 만다. 마찬가지로 애초 생경했던 어떤 추상 개념이 점차 익숙해져 점차 개념과의 긴장관계를 잃어버리면 그 개념은 일반 독자에게 사고를 다듬기보다 안이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외국어 학습 상황은 한 가지 사례로서 「맥락의 전환」은 이처럼 외부의 맥락을 통과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모어의 정신세계에 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다뤘다.
(2) 외국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상황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
삶의 일부로 삼아 몰입할 책이 있다. 만약 그 책이 타언어로 써진 것이라면 그 책은 번역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번역하는 까닭은 남들에게 소개하기에 앞서 자신이 그 책을 진정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책을 외국어인 채로 남겨둔다면 대강의 의미에 만족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번역의 시련을 거친다면, 마음에 드는 문장만이 아니라 논리적 흐름과 말투까지도 읽어내야 하니 정말로 이해했는지가 가려진다. 나아가 번역자는 번역을 통해 과거의 정신, 외국의 정신을 지금 자신의 사회 속에서 되살려낼 수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는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일본 사상가의 번역자로서 저자가 번역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체험을 사색거리로 빚어내고 있다.
(3) 외국에서 지내는 상황 - 「내재하는 적대성」
외국에서 생활하면 홀로 있어도 날몸으로 다니는 게 아니다. ‘나’라는 개체는 이미 기억과 정보로 구성된 맥락의 덩어리다. 그래서 외국살이에서는 이질적 맥락들 사이에서 충돌과 교착, 교섭과 소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나’는 타인과 만나 한국인으로서 발화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는데, 그때 ‘나’라는 개체가 한국사회의 상황이나 역사를 얼마만큼 동일시해도 되는가는 결코 자명한 문제가 아니다. 그 고민을 통해서야 진정한 국제감각을 지닌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4) 한국에서 외국의 사태를 대하는 상황 - 「‘멀다’와 ‘가깝다’ 사이」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해일이 도호쿠 지역을 덮쳤고, 다음 날 후쿠시마현에 있는 도쿄전략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원자로 노심 용융이 발생했다. 그동안 수만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겨났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으며, 그보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방사능에 노출된 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인국에서 벌어진 사태의 심각성은 한국사회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멀다’와 ‘가깝다’ 사이」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치른 막대한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그 희생의 하중을 조금이라도 이식하고자 이웃나라의 상황으로부터 얻어야 할 한국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다.
이 책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더듬어 간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권력보다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작동하면서 사회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를 양산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들뢰즈와 푸코의 권력 이론을 참조한다. 이 책은 새로울 것도 없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기에 간과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무관심한 정치와 고루한 일상에서 권력이 우리를 현재 지금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를 밝힌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장은 하나의 고원으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어 내용을 보완하기도 한다.
먼저 프롤로그는 전반적인 들뢰즈와 푸코와 저자의 소개와 더불어 영화와 실생활 등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편재되어 있는 몇몇 실례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권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하는 소개의 글이다.
1장은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언어에 나타나는 권력적 속성을 다룬다. 이 주제는 “언어의 기능은 명령”이라는 들뢰즈의 언어에 대한 기발한 접근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 언어에서 드러나는 명령어적인 속성을 영화와 CF와 TV 프로그램, 그리고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예로 들면서, 들뢰즈 이론을 쉽게 설명하고 적용한다.
2장은 1장 언어와 권력과 연결되어 얼굴에 나타나는 명령어적인 속성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얼굴표정과 함께하기에 얼굴은 의미화와 해석을 위한 근거가 된다. “얼굴은 정치”라고 정의하는 들뢰즈의 테제를 역시 영화와 일상에서의 다양한 예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얼굴이 명령어적인 속성이 강한 기표적인 전제적 체제와 그 체제를 탈주하는 탈기표적인 체제를 중심으로 얼굴의 정치성을 설명한다.
3장은 먼저 들뢰즈가 예술철학에서 강조하는 재현 담론 속에 숨겨진 권력적 속성을 이야기한다. 재현의 권력적 속성을 탈영토화하는 실례를 예술작품을 통해 밝힌다. 또한 언어의 권력적 속성인 “언어의 통일성”을 서울 표준말과 방언을 비교하여 이야기하고, 언어의 권력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예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들뢰즈가 분석하는 권력의 위험을 다양한 예들을 통해 설명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조성의 정치학을 제시한다.
4장은 주디스 슈클라의 속물근성을 들뢰즈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슈클라는 출생과 연관된 세습 속물근성과 파벌 속물근성으로 분류하는데, 이것들은 우리나라에 너무나 만연하고 있고, 들뢰즈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이론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두 가지 속물근성은 파시즘적 속성과 전체주의적인 속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 파시즘적이자 전체주의적인 파벌 속물근성과 세습 속물근성이 권력의 작동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다양한 병리적인 현상이 되는 실례들을 분석한다.
5장은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에 강조하는 예술이론을 적용하여 두 가지 시작품을 분석한다. 예술가의 창조적인 작업을 매우 우선시하는 들뢰즈의 접근은 기존의 재현적인 내용과 형식을 탈주하는 시작품을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김혜영과 황병승의 작품에 수록된 시들을 욕망, 기호, 그리고 생성의 관점으로 재현의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예들을 이야기한다.
6장은 푸코의 권력 작동 방식을 구체화한다. 규율과 감시를 통해 하나의 담론이나 지식이 지식-권력으로 작동하면서 신체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생체-권력을 설명한다. 규율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취업과 시험의 예를 통해 분석하고, 일망감시 체제를 통해 비가시적으로 감시가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규율과 감시를 통해 어떻게 지식-권력과 생체-권력이 작동하는지를 밝힌다.
7장은 푸코와 들뢰즈의 권력 담론 속에서 유사한 점을 분석하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일상에서 작동하는 예들을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언어의 권력에서 화용론적 접근과 푸코의 언표와 담론의 접근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또한 권력이 생산적이라고 테제와 권력은 미시-물리적이라는 테제는 들뢰즈와 푸코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 테제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권력이 편재되어 훈육적 혹은 예속적 주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들뢰즈의 노마드적 주체와 푸코의 윤리적 주체를 비교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통해 수동적인 주체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를 되돌아보고, 신체 규율과 인구통제 두 측면으로 작동하는 생체권력이 자본주의에서 우리를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고발하고, 그 속박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공공미술은 노후한 마을에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생각의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재생의 역할을 하는 것이 현대의 공공미술 개념이며 정설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통영 동피랑,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공미술 마을이 있다. 이곳들은 한결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벽화를, 공공미술을 구경하는 우리는 왜 공공미술을 하는지? 누가 벽화를 그렸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서나 비슷비슷한 벽화가 있다고 퉁명스러운 얘기만 한다. 오래된 벽화는 낡고 헤어진 모습에 흉물이 되었다며,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주최측과 작가에게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본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는 마을에서, 도시에서 보이는, 즉 현존하는 미술의 현황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현대에 왜 공공미술이 성행 하는지를 우선 미술사의 관점과 예술가의 입장에서 풀어본 책이다.
저서에는 우선 대중 속에 미술과의 접목이 일어나는 장소인 도시로부터 시작한다. 도시가 발전하다가 쇠퇴하게 되면, 다시 재생을 꾀한다. 이 과정에 공공미술이 개입된다. 그러나 모든 도시공간에 미술이 개입되지 못한다. 그래서 공공이라는 장소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공적과 사적공간에 관해 언급한다. 그리고 공공미술이 근대적 미술 개념인 '사적 미술'의 경계를 넘어선 것으로, 예술이 사회를 위한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로, 다시 사회를 위한 예술로 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다시 예술은 왜 '공공'이라는 용어와 접목하려 하며, 접목해야 할까? 아니면 접목 당하고 있을까?' 의 의문으로 들어가 공공미술을 하는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지역마다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만들기를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부산의 경우 40여개가 넘는 공공미술마을이 있다. 이 중 골목길 부활, 달동네, 산복도로 등 장소와 지리적 특징이 반영된 15개소를 소개하며 장·단점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공공미술이 도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작가와 행정가, 주민들 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에 대한 제언이 담겨있다.
필자 가의 「유토피아의 초상―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에서 디스토피아를 읽다」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동시적인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함으로써 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적인 버전 속에 맞물려 있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의 창출을 드러낸다.
필자 나의 「유토피아, 충돌의 공간―한센인 집단 거주 용호농장에 대하여」에서 분석되고 있는 용호농장은 다수와 소수자 간의 유토피아적 의식이 충돌하고 길항하는 공간이다. 이윤과 직결된 도시적 공간 확보라는 도시인들의 유토피아적 의식과 한센인들의 생존 공간 확보라는 유토피아적 의식이 충돌하는 과정, 그리고 끝내 단절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으로서의 용호농장이 탄생되고 소실되는 과정을 오현석은 섬세하게 찍힌 자신의 르포사진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자 다는 김사과의 천국에서를 통해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작동하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는 상황, 물신화된 유토피아 관념의 허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이를 경유하여 윤성희의 구경꾼들을 통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필자 라의 「아토포스로서의 “제4세”―「선(線)에관한각서」의 안팎」은 작가 이상의 문학 속에 들어있는 묵시적이고 파국적인 심판의 이미지를 당대의 전시체제를 인지하는 이상의 역사신학적 관점의 반영으로 읽고 있다. 달과 지구의 충돌, 멸형(滅形)의 시간, 절대의 추구 등 이상이 말하는 ‘불세출의 그리스도’가 도래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은 삶을 군국의 단순한 질료로 재편하는 체제에의 불복종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필자 마의 「우울 이후, 안티-유토피아―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에 나타난 파국의 희망」은 광대한 사유화의 영역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오늘, 유토피아라는 개념과 그 내실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의 것인지, 어디에서부터 가능하고 또 불가능한지를 다시 정의하지 않을 때를 상상한다. 타락한 유토피아적/건축적 세계와 맞서는 세계감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필자 바의 「동일성의 구축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추구가 물질적 조건의 변혁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작성되었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기획이 해방기 이기영의 소설 『땅』에서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세세히 분석한다.
필자 사는 「싱글이 넘치는 신세계―결혼과 유토피아의 안과 밖에 대한 질문」은 일부일처제 사회, 가족 공동체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세계를 구상했었던 푸리에의 유토피아, 이른바 팔랑스테르의 실재적 가능성을 통해서, 현재 구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란 어떤 것일까를 더듬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최윤교의『싱글빌』과 2006년 세계문학상 당선작이었던 『아내가 결혼했다』가 보여주었던 결혼 및 가족에 대한 시각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의 질문법을 통해 국가에서 싱글인 ‘나’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들 7편의 비평에 이어져 있는 기획번역 2편은 포스트 유토피아 인류학이라는 공동비평집에 수록된 글들로 필자 바와 필자 자의 공동번역으로 싣게 되었다.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는 자신의 글「유토피아들」을 통해 여러 유토피아‘들’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제안하고 있다. 그 중 핵심이 되는 것은 그가 말하는 ‘감촉(촉감)’의 존재이다. 그는 ‘운동’에 내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에 구속되지 않는 어떤 장소로서의 ‘포스트’의 상황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실례로 두 번째 번역글 카스가 나오키의 「유토피아의 무게, 포스트 유토피아의 위안」은 피지 섬에서 수행된 인류학의 분석이 유토피아의 발로를 놓쳐온 것을 돌아보면서, 피지 선주민의 ‘식인’ 풍습을 취급하는 인류학자들의 선입견이 낳은 몰이해에 대해 비판한다. 인식에서 쓰여진 글이다. 카스가는 ‘선주민,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붙이고, 언어를 통한 이해 너머를 지향한다. 이렇게 카스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상상된 세계가 현재에 출현했을 때,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모색한다.
2013년 현재 미국에는 약 7만여 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있다. 이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라고 한다. 대학원생이 많았던 과거와는 반대로 점점 대학(학부)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대학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뜨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대학의 현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교에 20년 이상 몸담은 교수이자 미국 대학의 호기심 많은 방문자인 저자는 건물, 시설 등 ‘대학의 하드웨어’와 운영, 교육, 제도 등 ‘대학의 소프트웨어’ 속에 숨겨진 미국 대학의 힘과 경쟁력을 예리하게 발견해 독자에게 전한다.
미국에서는 좋은 미식축구 팀이 있다면 별도의 대학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미식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다. 그래서 학교 홍보나 재정 안정에 기여하는 미식축구팀 코치에 높은 연봉을 준다. 또한 기금 조성에 실패했을 경우 대학 총장이 사임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미국 대학의 운영방식이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학문과 진리 탐구를 수행하는 데 우선적인 것은 그에 필요한 재정 확보일 것이다. 저자 역시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고 고백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이 ‘고객’인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면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시민들이 앉아 스케치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대학 건물, 냉난방과 각종 시설이 잘 구비된 강의실,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학 경찰(University Police)과 비상 전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셔틀 버스(University Bus), 수영장․축구장․야구장․테니스코트․미식축구 경기장 등 각종 운동 시설,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는 문서 교정 서비스 같은 각종 편의 서비스와 장학지원 제도, 입시 제도 등 미국 대학의 면면은 한국 대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점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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