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한파특보가 발효 중인데, 나라 밖에서는 벌써 얼음이 녹나 봅니다. 미국과 쿠바가 50여년만에 국교 정상화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들어라, 미국이여』를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쿠바의 군인이며 정치가, 노동운동가이며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 모음집입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현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라 카스트로의 형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2008년까지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았지요.
이 연설집에서는 그의 육성이 좀 더 생생하고 뜨겁게 들립니다. 예를 들면 이것. 유네스코 전 총리 마요르가 물었습니다. 오늘날 쿠바인의 꿈은 무엇인가? 카스트로는 대답합니다. 천백만 개의 꿈이 존재할 것이다. 마요르와 카스트로가 아닌 3자는 이를 "카스트로는 쿠바인들이 천백만 개의 꿈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저는 전자가 더 좋습니다.
바로 다음 문답 "이들의 꿈은 이전 세대의 꿈과 어떻게 다른가?" 도 좋으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또 마음에 드는 문답을 하나 더 꺼내면.
다가오는 20년 안에 가난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존재하는가?
인류는 이제 각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애틀과 다보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사람들은 금세기에 발생했던 대재앙과 대학살의 공포에 대해서는 자주 말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경제 질서 때문에 수천만 명이 굶어죽거나, 치료 가능한 병인데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들은 표면상으로 성장했다는 통계를 가지고 큰소리치지만, 결과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더 악화되고 있다. 성장은 종종 진정한 발전이나 더 나은 부의 분배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소비재의 축적에만 의존한다.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몇십 년 이후에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는 반면 가난한 자는 더 많아지고 더 가난해질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기사를 보니 미국과 쿠바의 화해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요. 양국 고위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대하거나 오바마와 카스트로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구체적인 실천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도 교황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1988년 1월, 교황 바오로 2세가 아바나를 방문했다. 교황은 당신을 설득시키려 했는가?
교황이 나에게 무언가를 설득하려 한 기억은 정말 없다. (중략) 우리는 교황이 도착할 때와 떠날 때, 공개적인 대화를 나누었는데,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각자의 입장을 개진했다. (중략) 결국 혁명과 교황 양자 모두 자신들의 힘을 훨씬 더 잘 인식하면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된 부분에는 쿠바가 교황 방문을 어떻게 조직했고 교황을 어떻게 맞이했는지도 언급되는데, 올해 교황 방한이 떠오르는 대답이었습니다.
뜨겁고 단단한(실제로 양장본이에요) 『들어라, 미국이여』 읽으면서 세상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기다려보려구요.
들어라! 미국이여 - 피델 카스트로 지음, 강문구 옮김, 이창우 그림/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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