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_ 『배회하는 유령』 인훙 지음|이용욱 옮김|산지니|384쪽|30,000원
우리가 잊었던 사이 이미 크게 바뀌었던 중국 문학의 새로운 사유, 중국 문화의 몰랐던 저력, 그리고 더욱 변화해나갈 중국을 향해 우리는 긴밀한탐색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를 ‘탐색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끄는 까닭이다.
프로이트주의는 중국 신문화 전개의 선구자 중 한명이었던 왕궈웨이(王國維)가 1907년 중국에 번역해 내놓은 해럴드 회프딩의 『심리학개론』이라는 책의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라는 글로 중국에 처음 소개됐지만, 그것은 프로이트주의 혹은 정신분석학이 아닌 전반적인 무의식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기술한 것이었다.
중국의 저명한 철학자였던 장둥쑨(張東蓀)이 1920년에 <時事新報> 총편집으로 재직하면서 발표한 논문 「정신분석을 논함」이 20세기 초기 정신분석학을 처음으로 중국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한 편의 좋은 글로 평가된다. 하지만 량치차오(梁啓超)의 연구계 제자였던 장둥쑨은 최근 조금씩 그에 관한 학술연구가 허가되기 전까지는 한동안 이름이 잊힐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이었다(중국 학계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한 것 역시 1992년 이후의 일이다). 그 뒤 중국 근대 문학 발전에 아주 큰 공헌을 했던 궈모뤄(郭沫若)와 주광첸(朱光潛), 그리고 루쉰(魯迅), 판광단(潘光旦) 등으로 그 문예적 영향이 연결됐다. 이렇게 적지 않은 중국 지식인들은 신문화운동이 급진적 혁명으로 내달려 한껏 진행되기 전까지 프로이트주의라는 문화 사조의 틀 안에서 그것을 자신의 문화관 혹은 세계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프로이트주의는 1930년대에는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고 소련의 영향이 보다 강해지면서 중국의 문학 무대 위에서 차츰 멀어져갔으며, 1949년 이후로는 중국 문화 속에서 사라져버린 문화 사조였다. 그러던 프로이트주의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로 권토중래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이트주의가 중국 문학에 미친 영향을 최초로 심도 있게 탐구해 정리해낸 저작이 바로 이 책이라는 점에 우리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제3사조 물결 속에서 집필된 책
이 저작이 관심을 끄는 것은 1980년대 중반 중국에 ‘제3사조’ 물결이 일어난 뒤 1989년의 천안문사태를 겪은 중국이 1992년 사회주의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저서라는 점이다. 중국 지식인들의 문학에 대한 역사적 시야와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추구한 중국의 변화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시장경제는 중국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화의 대중 지배권을 해체하고 다원적인 시장경제적 문화 자유의 시대로 들어선 출발점이었다. 덩샤오핑과 후야오방 시대의 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의 「희망의 들판에서」나 리구이(李谷一)의 「향련(鄕戀)」과 같은 노래는 탈계급화한 문화풍을 지향점으로 삼아 중국이 맞이할 새로운 방향을 그려내고자 했다. 대중적 감성의 차원에서도 새로운 문화풍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기조에서 저자는 신문화운동 이후의 계급투쟁 사조가 중국의 1930~1970년대에 가져온 영향에 대해 반성적인 시각을 통해 검토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진로를 열어가고자 하는 바람을 펼쳤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목에서도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던 지난 1980년대 중국 지식인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중국 낭만 문학의 지위를 높이 사는 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儒家 문화에 대해서는 상대적 관용을 보인 반면, 전통문화 정신 부정을 핵심 기조로 삼았던 5·4 신문화운동 혹은 천안문운동에 대해서는 ‘아우프헤벤(Aufheben)’을 지향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독법이다. 중국 민국 시기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자로 꼽혔던 장둥쑨이나 후스(胡適)와 같은 지식인이었다고 해도 중국 자신의 고유문화를 부정하였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중국 근현대 문학의 역사적 노정에 서서 그것을 직접 체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1920년대 이후의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이 중국을 소련식 체제로 바꿔놓았으며, 이것이 우리에게는 분단의 아픔의 계기를 제공하는 사태로 이어진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중국의 20세기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인문학적 탐색에 어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프로이트주의는 청춘의 낭만주의와 탈계급화한 사실주의를 개혁개방 혹은 시장경제 이후의 중국 문화 속에서 살려내면서도 과거 혁명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야에서 분석하고 반성해 볼 수 있는 심리학적 분석의 틀을 제공한다. 이것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지식인이 프로이트주의에 대해 다시금 커다란 포부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문예미학 이론, 문학비평 실천 및 문학 창작의 시야 속에 녹여내고자 한 까닭이다.
프로이트주의는 작가 작품 속의 무의식 경향과 의도에 관심을 갖게 할 뿐 아니라 텍스트가 수용자에 일으키는 심리적 동력의 동기를 탐측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문학 비평방법 중의 하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서방에서든 중국 민국 시기에서든 무의식을 의식으로 유도하는 유용한 문화학의 도구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쉬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주의가 세계 문학에 가져온 영향을 다루고자 했다면, 중국 동시대 격동기의 한국 문학에 끼친 영향까지도 기술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량치차오와 한국문학의 상호 영향 관계가 한국 학계에서는 일찍이 연구된 사정을 보면,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386’세대인 저자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중국 프로이트주의 수용의 시사점
게다가 중국이 홍색 문화(민국 시기의 체제 내의 지식인들은 그것을 ‘홍색’이라고 부르지 않고 ‘적색’이라고 불렀다)를 반성하는 입장에서 그것과 반대되는 개혁에 착수했던 일련의 상황에서 집필된 책이라 해도,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문명으로 삼는 절충형 국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992년 이후 중국의 노선이 과거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개혁인 동시에, 점진적 탐색의 노선인 점, 개혁과 개방이라는 것 역시 중국이라는 구조에 새로운 내용을 채워가거나 과거 민국 시기의 우수한 문화를 복원해가는 과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중국 문화 개혁의 방향이기도 하다.
향후 한중 양국이 시장경제 및 문화적으로 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추세에 놓이게 된다면 중국이 우리 모르게 쌓아 올렸던 프로이트주의적 문화 체험과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하나의 문화적 경로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프로이트주의적 문화학의 방법론의 현재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조정하고 유익한 무의식을 의식의 영양으로 섭취하며, 무의식을 의식으로 전환하고 무의식을 의식으로 승화하는 일은 분단된 민족이 한 마음이 되는 노력을 경주해나가는 데 필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이 책의 출판은 그간 양국 문화인들이 다소 길항하면서 접합점을 찾아내지 못했던 문학 연구의 공동의 역사적, 심리학적 출발점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잊었던 사이 이미 크게 바뀌었던 중국 문학의 새로운 사유, 중국 문화의 몰랐던 저력, 그리고 더욱 변화해나갈 중국을 향해 우리는 긴밀한 탐색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를 ‘탐색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끄는 까닭이다.
이용욱 칭화대·중국문학
칭화대 언론학부에서 문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대중음악으로 이해하는 중국』 등이 있다. 『중국과 프로이트-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꿈』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용욱ㅣ교수신문ㅣ2015-05-28
배회하는 유령 - 인훙 지음, 이용욱 옮김/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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