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의 표제작 '날짜변경선'의 배경이 된 실습선에 탄 유연희 작가
높은 파도를 간신히 넘었다 안도했더니 또 밀려오는 다음 파도. '삶의 고통'은 그렇게 파도처럼 계속됐다.
'삶의 파도'가 버거울때면 그는 바다 앞에 섰다. 소설가 유연희(59) 씨는 "바다 앞에 서면 내 고민과 울화가 얼마나 찰나적인가를 깨닫게 되고, 나를 객관적으로 지켜볼 여유도 생긴다"고 했다.
유연희 소설집 '날짜변경선'
해양실습선서 한 달 항해 체험
아들이 디자인한 책 표지 눈길
그에게 바다는 "나를 벗어나는 곳"이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털어놓게 하는 곳. 바다는 나름 대답도 해주곤 했다.
사춘기 시절에도 외가가 있던 영도는 그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웬일인지 영도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공기와 분위기는 달라졌다. 근심과 불안은 다리를 건너기전 세상에 두고 바다 건너 한달음에 '딴 세상'으로 간 그는 용기를 충전해 살던 동네로 돌아오곤 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산지니)엔 그래서 바다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그는 '해양소설'이란 분류에 대해선 "해양소설이 아닌 건 육지소설이냐"며 웃었다. "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하고 그중 살면서 자연스러운 관심사였던 바다 이야기를 많이 쓴 것뿐"이라는 것이다.
등단 초기였던 15년 전에 써 두었던 단편 '유령작가'에서부터 5년 전 김만중문학상을 받았던 중편 '날짜변경선', 최근에 쓴 단편 '어디선가 새들은'까지 총 7편의 중·단편을 묶었다.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로'를 제외하면 모두 '해양소설'이다.
표제작 '날짜변경선'은 작가가 한 달간 한국해양대 실습선을 타고 항해했던 경험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육지의 삶에 지친 우울증 환자인 의사는 바다로 도피하고, 뜻밖의 조난 사고로 자신의 한계와 당당히 마주하면서 그의 지나온 시간들은 날짜변경선을 넘는다. '바다가 재탄생시킨 한 인간의 이야기'인 셈이다. '어디선가 새들은'에선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백짓장처럼 하얀 손톱이 부끄러웠던 아들이 북극 바다를 처음으로 항해하면서 아버지 세대 선원들의 고단했던 삶을 되짚는다.
오랫동안 '바다'와 '바다로 가는 사람'들에 천착해 온 작가가 소설마다 묻어둔 공통된 주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다. 그는 "배경이 바다일뿐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답을 얻기 위해 이렇게도 이야기하고 저렇게도 이야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번 소설집은 힘겨운 삶을 버텨내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가 실어주는 용기이기도 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전도유망했던 미대생 아들은 군 생활 중 가혹 행위 피해를 당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울증을 겪고 있다. 작가는 그 아들에게 소설집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와 아들의 합작품인 책이 아들의 생에 진정한 '날짜변경선'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는 또 하나의 해양 중편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지만 내용은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강승아 | 부산일보 | 2015-09-01
날짜변경선 - 유연희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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